109 버리지 않는 성읍 이라는 새 이름 (사 62, 1-1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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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9 새 이름 [버리지 않는 도성] 이라 부르리라 (사 62, 1-12)

새 이름으로 갈아엎기, 헵시바, 쁄라, 버리지 않는 도성 (사 62, 1-12)
사랑하는 도성? 노 노 노 NO NO NO, 버리지 않는 도성 ! 예 예 예 YES YES YES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15:20, 개역)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개역)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개역)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개역)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개역)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불의한 십자가라는 영원한 언약 (사 61, 8-11)
이사야 2017 2020. 10. 18. 10:38
18-108 불의한 십자가라는 영원한 언약 (사 61, 8-11)

(이사야 62: 1-12, 구약성경 1042 쪽, 찬송가 248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1,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8,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10,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11,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12,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사 62:1, 새번역) 『시온의 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사 62:2, 새번역) 『이방 나라들이 네게서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뭇 왕이 네가 받은 영광을 볼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에, 주님께서 네게 지어 주신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사 62:3, 새번역) 『또한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사 62:4, 새번역) 『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 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 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 ㉠히, '아주바' ㉡히, '셰마마' ㉢히, '헵시바' ㉣히, '쁄라'』
(사 62:5, 새번역)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 / ㉤히브리어 자음 본문의 발음을 달리하여 '너를 지으신 분께서'로 번역하는 역본들이 있음』
(사 62:6, 새번역)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님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사 62:7, 새번역)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 62:8, 새번역)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 곧 그의 능력 있는 팔을 들어 맹세하셨다.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의 식량으로 내주지 않겠다. 다시는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 사람들이 마시도록 내주지 않겠다."』
(사 62:9, 새번역) 『곡식을 거둔 사람이, 곡식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가 거둔 것을 먹고, 주님을 찬송할 것이다. "거둔 사람이 자기가 거둔 것을 내 성소 뜰에서 마실 것이다."』
(사 62:10, 새번역)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사 62:11, 새번역)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사 62:12, 새번역)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 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 이라고 부를 것이다.』


버리지 않겠다 라고 강조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네 맞아요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 이전에는 버렸다 라는 거죠

즉 바로 이 [잃어버림]을 분명히 구체화 했다 라는 겁니다.
덜 죽었다가 아닙니다
죽을뻔 했다가 아니라 아예 죽여놓고 확실히 버렸다
확실하게 죽였다 라는 겁니다.

학실히 ~~~~~~~~~~~~ 김땡삼

그리고 공백을 이 사이 간극을 구체화 시켜놓고서
띠 띠 띠 ~~~~~~~~~~~~~~~~~~~~~~~~
심장 박동수 제로 ~~~~~~~~~~~~~~~~~~~~~~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중간 기 라고 하면 안되겠네요
빈터 공백기

띠 ~~~~~~~~~~~~~~~~~~~~~~~~~~~~~~~~
축 사망 이다는 겁니다 ~~~~~~~~~~~~~~~~~~~~~~~~ 띠 ~~~~~~~~~~~~~~~~~

이 간극을 구체화 시켜놓고서
다시 살려서
너를 다시는 황무지라고 하지 않겠다
즉 땅이 황무지 곧 죽은땅 아닙니까

그런데 그 황무지라고 하지 아니하고
[쁄랴] 라 하겠다
그런데 그 죽음의 땅이 어떻게 하나님과 결혼한 하나님의 아내가 되는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좋은 땅이라고 하시냐 말이죠

지난 주에 말했듯이
누가 책임져 주는 남편이 졸지에 생겼기에
네 맞습니다

율법이라는 전남편이 아닌
전남편과 이혼해서
새남편과 결혼한
여자를 진정으로 책임져서 아내로 만들어주는 남자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
덩치는 이딴만한 근육맨이 모기소리로 부르는 한 남자가
바로 여자는 아내로 만들어주는 남편이 졸지에 생겨서 말이죠

물론 세상은 그 반대입니다.
아내가 싫고 아내를 진정으로 여자로 만들어 주는 그런 남자를 찾죠
우상인 거죠

또 새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겠다
너의 이전 이름은 버리운 자 인데
이제는 버리지 아니한 자 로 바꾸겠다 라고 헵시바 라고 하십니다.

너는 나의 기쁨이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이전에는 너는 나의 미움이였다는 거죠
그런데 졸지에 원인 없는 결과로 너는 나의 기쁨이다고

전에는 버림받아 마땅한 자가 어떻게
선택받아 마땅한 기쁨의 여자가 즉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었을까요

아 또 내가 싫어하는 종국이 노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사랑스러워
아마 아내가 아닌 가정부로 삼겠지만
이것이 인간 남자의 특징이지만

남자도 아니죠 애죠 애
여자를 귀찮게 하는 애기가 되어버린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네

그럼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자가 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섬기는 자가 되면 됩니다
아내를 위해 죽는 자 말이죠

자 이렇게 개인 적인 숙제로써
개인의 아내를 위한 순교나 죽음이 아니라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듯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섬기셨듯이
남자도 여자를 섬기는 겁니다.

그러니 사도와 선지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사도와 선지자를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왜? 떨어질수 없는 사랑의 관계이기에
누가 그리스도의? 무엇?

네 네 맞아요 사랑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 핍박 기근
도리어 넉넉히 이긴다 라고

주의 이름의 승리를 외치는 겁니다.
그 승리의 열매가 증상물이 바로 교회이거든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한 몸이 된 승리의 결과를 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 한 몸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
남자이거든요
존재의 남자가 아닌
사도와 선지자가 세상의 미말에 구경꺼리가 된 
찌끼 쓰레기가 된
섬김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이것이 이스라엘 기능이거든요
여기서 태어났거든요

남을 위해 죽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니까 말이죠
율법을 찢는 겁니다.

율법을 완성해서 책걸이 찢는 거지
미완성해서 찢는게 아닙니다.
마치 어린아이 만화에 드디어 열쇠를 찾아서 미션을 완성하니까
자물쇠로 묶여진 쇠사슬이 풀리면서
사라져 없어지는 것처럼 찢겨지고 페하여 지는 겁니다.
이것을 남자가 책임지는 사랑
섬기는 사랑으로만 이루어 진다는 겁니다.

삼손이 마치 그런 열쇠로 푸니까
자물쇠가 풀어져서 꽁꽁꽁 묶여있던 쇠사슬이 풀려져서 해방 구원을 얻게 되듯이
삼손의 수수께끼는 결국 자기가 죽어야만 남이 산다 라는
율법이 아닌 사랑이 바로 수수께끼의 답이다 라는 겁니다.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라는 겁니다.

(고전 13:1, 개역)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개역)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래서 망나니 삼손을 구원자로 세운 겁니다.
비웃으라꼬

그 비웃음을 웃음으로 바꾸시겠다 라고
그래 그래 암몬아 이스라엘에 멸망하니까 꼬소해 죽겠지
좋아라 좋아라 디제이와 엠씨가 만나서 만드는 힙합나라 암몬나라

그래 실컷 좋아라 하렴 그 다음 차례가 너 차례이니까

앞앞의 글 에스겔서에 암몬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겁니다.

망나니 삼손 하니까
누가 생각하는고 하니 영화 망나니 전우치

소위 손오공의 한국판 버전이지요
기생 오라비 삼손의 변주곡들인 거죠

아 꼴통 핸콕과 미친 메리

이런 어중이 떠중이로부터 구원받는다 라는 것이 얼마나 모욕적이겠냐 말이죠

그래서 앞의 글 마태복음처럼 사두개인은 고상하고 엘레강스한 구원을 받고자 하지
저 더럽기 짝이 없는 시형제결혼법은 하늘에서도 있으면 안된다 라고 보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땅에서만
그래야 고상한 천국이지
천국 마저도 개판이면 나 안갈란다 라고 하는 것이 사두개인과 같은 
마귀들의 부활관이다는 거죠
모든 종교가 바로 고상한 부활을 외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은
반드시 죽여서
반드시 황무지로 만들어서

반드시 버리운 자 만들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내세울 꺼리가 없을때에
그 황무지를 쁄랴 라고 나와 결혼한 여자 이다 라고 새이름으로 만들고

더 이상 아무것도 내세울 자랑꺼리가 없는
도리어 철저하게 미움 받는 자로 만들어서
죽은 자로 만들어서
더 이상 자랑할 것이 없는 미움받고 버림받는 자가 되어서 내밀것이 없을때에
탈탈타 다 털려서 빈털터리가 되었을때에

너는 나의 버림받지 않은 자인 나의 기쁨이다 라고 헵시바 라고 새이름으로 부르시겠다 라는 겁니다.

과연 헵시바로 불리우도록 한 원인이 있었나요?
쁄랴 로 죽은 땅이 샘물의 강이 흐르는 땅이 되도록 한 원인을 갖춘 것이 있기는 있나요?
없어요

네 맞아요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원인 있으면 안돼요

원인이 있게 할려는 것이
인간이 믿는 가짜 하나님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율법이라는 전남편으로부터
가정부 취급만 받아요

율법은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소하고 송사하고 법으로 꼬투리를 잡아서
죽입니다.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함이거든요
그래서 모든 육체는 이 법에 의해서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그런 그림자인 율법이 아니라
실상인 새남편으로 인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랑으로 인해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몸을
곧 사랑을 새언약을 다 이루심으로써
새신부로 다시 살려내시는 겁니다

어처피 세상은 선악의 법의 세계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뭘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짖든 안짖든
법 아래 갇혀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바로 사랑의 세계를 다 이루신
이 십자가 라는 영원한 언약을 이루신
전남편을 폐하는 율법을 폐하신
새신랑에 의해서만
산 소망을 가질 뿐입니다.

그가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겁니다.
어차피 찢어질 것 찢으라 하라 말이죠
그가 주변 이방나라를 도구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멸망 시킵니다.

그렇게 멸망 시키는 그 이방나라는 신났다 라고 좋아라 하는 판국에
어라 도리어 자기가 때려죽여 시체로 만들어 버린 그 이스라엘의 시체에
도리어 깔려 죽는 겁니다.

이 수수께끼 풀 자 누굽니까

사랑 밖에 없어요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거든요
이 원수 문제를 비로소 해결한다는 겁니다.

손 안대면 안 깔려 죽어요
다 알아요 지식적으로 다 알아요
그런데 눈에 알짝 알짝 거리게끔
주님이 미끼를 던지니
안 물수가 없는 겁니다.

자 이렇게 이방나라도 이 이스라엘의 멸망속에 함께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나올 것 아니겠냐 말이죠
이게 믿음이거든요

말도 안되는 원인 없는 결과를 믿으니까 말이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니 말이죠

말이 되는 것은
원인 있는 결과는
며느리 룻이 모든 종교를 다 살펴봤다 말이죠
아이고 그까짓거 나도 하겠다
나도 종교 만들겠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그런데 시어머니 나오미가 도대체 어떻게 전도했길래
며느리가 어머니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라고 나오냐 말이죠
물론 첫째 며느리는 땡 탈락 했지만 말이죠

어머니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진짜 산 자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이죠

믿을 꺼리가 있어야 믿는 것이 인간의 믿음이요 종교 라는 666 짐승이요
인간이 확증편향으로 믿고파 하는 부활인데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전능자 여호와는
믿을 꺼리가 전혀 없어요
없는데 믿겨지더라 말이죠

원인 없는 결과인데 말이죠

자 이렇게 선지자는
산 자의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죽은 자의 하나님을 깨뜨리고자
우리를 공백의 자리로 물에 빠뜨리는 세례요한처럼
자꾸 빠뜨리는 겁니다.
빈털터리 공백의 자리에서
황무지 자리에서

누구를 보라?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 스올 무저갱 지옥 황무지에서
비로소 여호와를 만나는 겁니다.

물 위에서 만난 여호와는 가짜였다 자기가 상상한 하나님이였다 라는 거죠

원인이 아예 없는
그 죽음 속에서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 길이다

즉 나는 생명이 아닐 때 죽음일 때 예수님이 비로소 생명으로 보이는
예수님만 생명이다는 겁니다.

내 속에 생명이 있다고 여기면
아무리 물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도 예수님은 생명이 아니고
부활도 아니고
길도 아니고
진리도 아닌 거죠

그렇다면 나 또한 새 이름이 필요가 없다고 여길꺼다 말이죠
자기의 이름이 죽도록 미워야 (죽은 자의 하나님)
새 이름이 죽도록 기쁠꺼 아니겠냐 말이죠 (산 자의 하나님)

감당이 불감당이라서 얼굴이 빨개져요 새색시처럼 부끄 부끄

마치 성령을 머리에 숯불돌을 얹인 것처럼 말이죠

(롬 12:20, 개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 새번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잠 25:21; 22』

(롬 12:17, 개역)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8, 개역)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9, 개역)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20, 개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1, 개역)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잠 25:20, 개역)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
(잠 25:21, 개역)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 25:22, 개역)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원수도 사랑하시다니
무릎 안 꿇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전투 그림
바이사의 전투 그림 1만 군대와
다빈치의 전투 그림 2만 군대

어서 어서 화친을 청하라 말이죠
감히 누가 사랑과 맞짱을 뜰수가 있겠느냐 말이죠
(아니 거꾸로 된거 아닙니까? 어린아이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싸움하는 말도 안되는 전쟁을 하듯이 말이죠)

사랑은 울리는 꾕과리 곧 에디오피아 군대의 무기가 달랑 달랑 흔들려서 서로 부딧히는 소리 조차 마저도 잠잠케 하거든요

(사 18:1, 현대어) 『[유다에 온 구스 사절단] 나일강 상류의 ㄴ) 구스는 군인들이 가득 찬 나라이지만 그 시끄러운 무기 소리는 그 나라에 들리는 상엿소리에 불과하다. (ㄴ. BC 701년에 유다를 반앗수르의 동맹에 가입시키기 위하여 구스 사절단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죽음 보다 더 더 더 강한
죽음을 시기하는 사랑이니까 말이죠

누가 끊을 소냐
골리앗이?
칼이?
죽음이?

그러니 이스라엘 조차도 나누어 질수 없는 잔여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헵시바야 쁄랴야 라는 새 이름으로써
새 일의 증인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내 멸망당할게 너 구원받으라 라고
이방인에게 증거하지 못했던
여호와를 이제야 증거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하는 방식으로써 말이죠

그러니까 에스겔 아내가 죽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죽는 겁니다.
죽고 예수 안에서 다시 살 듯이

그 공백을 만들어서
그 빈자리를 이방인으로 채우는 겁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과 똑같이 원수 짖 밖에 안해요
하하하 호호호 실컷 비웃다가

주의 이름을 부른적도 없는 자가 주의 이름을 부르신바 되도록 하고
주를 찾지도 않던 자가 찾으신바 되도록 하시겠다 라고 
이 새 일에 주변나라가 다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 하나 가 새 이름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 말마따나
개명을 하는데 나훈아 테스형 부른 나훈아를 너무 좋아라 해서
자기가 자기 이름을 갈아버린다 말이죠

한국에서는 다섯자 까지만 허용을 해서 (대한외국인 퀴즈 프로그램에서 봤어요)
나훈아의 노래를 너무 좋아라 해서 노래제목처럼 이름을 손고장난 벽시계 로 개명을 할려고 하는데
다섯 글자 까지만 허용을 한다고 하길래
고장난벽시 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말이죠

이것이 새 이름 일까요?

놀랍게도 이름은 철저하게 타자 적입니다
아니 자기 이름인데 이름에 대한 자기가 주체적이질 못하는 것이 이름이다 말이죠
여러분 개가 자기 이름을 개 말고 닭이라고 불러다오 라고 아무리 개명을 했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개입니다.
종말의 속성까지 다 담아서 지어서 부른 이름이거든요
개는 아무리 닭이라고 불러다오 개 라는 이름 싫다 라고 해서 개명해도 소용이 없어요
타인이 그렇게 부르면 끝이니까요
개가 만약 닭의 속성만 보이면 아무리 개 로 불러다오 라고 해도
타자는 넌 개가 아니라 닭이구만 이라고 부른다 말이죠

그러니 외부에서 이름을 결정해요
새 이름 내가 스스로 백날 개명해도
여전히 옛이름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의 개명이지
새이름은 아닌 겁니다.

새 롭다 라는 것은 새 언약과 연관이 됩니다.
새 마음 새 영
그런데 여전히 새로운 마음이 아닌
기존의 헌 마음 기존의 헌 술 헌 부대 이다 말이죠

권세 이야기를 몇주전에 했는데뿌리 근원 배후세력이 바뀌지 않는 이상
새롭다를 붙일수가 없다 말이죠

그래서 남편을 갈아요 갈아
전남편 율법을 갈아요
죽은 하나님을 갈아요
가짜 하나님
우상을 갈아요

그래야 새신랑에 걸맞는 새신부이기에

그 이전과 차이나는 이름으로써 새 로운 이름을 주셔서 부르시겠다 라는 겁니다.

비웃음을 웃음 곧 이삭으로 바꾸시듯이 말이죠
믿음이 이렇게 바꾸었다 라는 겁니다.
내 믿음이 아니라
믿음 되신 예수님이 말이죠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로힘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뀜을 당하기 위해서
욥은 애매한 고난 속에 놓여져야 했던 거죠

자 자 그래서 새 이름 곧 이전의 이름이 삭제되어서
이전의 이름과의 차이로써 지어진 새이름이기에
그 이름이 바로

산 자의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단다 라는 새사건으로 즉 십자가로
사랑으로 지은 이름이단다 라고 지어서 부르는 새 이름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의 이름은

버리지 아니하는 성읍 이라고 말이죠

아니 이게 무슨 이름이고
이름이란 운명 즉 미래완료가 담겨져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개명도 하고 예명도 짖고 하는 이유이거든요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버림받을까봐 염려하는 이름이다? 아니다?
이미 버림받아 봤거든요

이미 물에 빠졌기에
물에 빠질까봐 염려하겠냐 말이죠

이미 죽은자가 되었기에
죽을까봐 걱정하냐 말이죠

새이름은 그래서 이런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자 그럼 부자청년처럼
전재산을 다 나누어 주어도
근심이 된다면
여전히 그는 새이름을 거부하는
한 몸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다른 몸
전남편 율법에 종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겁니다.
의문의 반복이다는 거죠

그래서 근심하고 돌아서는 겁니다.

그러나 새이름 새이스라엘은 전재산을 나누어 줄수 있을까요?

동성애자 축제 퀴어 축제에 감리교 목사가 로만 칼라 옷을 입고서
목사직에 짤려서라도 그들을 변호하겠다 라고 나서는 모습은
과연 새 일과 연관이 되어 있을까요?

없어요
소녀상 세우는 위안부 운동
하여튼 무슨 무슨 운동 하는 놈들은 다
율법의 법 법 법 따지는 가정부이지
새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촛불 운동하면서 어두움은 빛을 이길수 없다 라고 어린아이를 내세우는 마귀들은
어두움과 빛이 동전 한잎의 앞과 뒤인 한 몸이다는 겁니다
태극기 운동 하는 놈들과 같아요
서로 원수로 으르렁 거리는 모습은 연기입니다 연기
보이는 것은 거짓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말이죠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보겠냐 말이죠

김어땡 다스뵈임돠 와
가로세우땡무소 랑 같은 동전의 앞과 뒤인 한 몸이다 말이죠
둘다 새것이 아닌 마귀들인데
거기에 왜 속냐 말이죠
진중땡이나 노철수나
서로 으르렁 거리는 원수 유시땡이나
다 같은 놈들이다 말이죠

모조리 다 이전 것으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밖에 없어요
울리는 꽹과리 누가 더 소음을 크게 내느냐
무기 싸움입니다.

누가 이기냐

다 헛되고 헛된 짓이다 말이죠
새 것이 떳다면
헛것임을 아는
의문의 반복인 바람쥐 챗바퀴 도는 것인데
헛된 줄 모르기에
새 일이 뜨지 않았기에
새 이름을 받지 못했기에
외부에서 선물이 없기에

모두다 허무에 충성하는 겁니다.

할 짖이 그 정도로 없으니까
자기에게 의미를 두니까
그 의문을 붙잡고
가정부로 사는 겁니다.

법만 지키면 되거든요

사랑 따위는 개나 줘버려 라고 말이죠

누가 용서를 바라겠냐 말이죠
도리어 용서하는 자가 되는 주체자가 되길 원하지
서로가 주체자가 되길 원하는 겁니다.

책임져 주는 자가 없으니까 말이죠
남편이 없으니

그래서 율법이 시온에서 나와서
시온에 저마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신비로운 산당을 짖고자 
시온산을 다 더렵힌
그들은 오히려 거룩하게 더 높이 더 넓게 지은 교회인데
양적이지 않다면 질적으로 우리는 저런 수준 낮은 성화론이 아니라
수준 높은 성화론 그것도 소수의 최정예 교인으로 성장 시키는

모조리 다 내 구원은 내가 따 낸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그거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도리어 너희들을 갈아 엎어버려서
다 죽이시는 겁니다
싹 다 갈아 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의 재개발로 불도져 밀 듯이 다 밀어서
평평하게 평탄케 만들어서

황무지로 만들어서

그 황무지에서 생명의 강이 흐르도록
새 이름을 주시는
새 신랑이
인자가
섬기는 자가

내가 대신 죽을께 너가 살아라 라고

이스라엘에 해야할 섬기는 기능 곧 제사장 나라 기능을
예수님 께서 다 이루셔서 한 몸으로써 삼아주심으로서

이제 새이스라엘 특급포도상품은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섬김으로 인자와 한 운명으로
새이름으로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겁니다.

진짜로 버리지 않는 것 맞지요 라고
또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처럼 원인으로 만든다 라는 것은 도리어 의심인거지요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의심이란 여전히 율법 아래의 버릇 그 우상숭배를 버리지 못한 거다 말이죠
주님이 숙제를 해주지 않으니까
또 자기가 자기 숙제를 답답해서 해 버리는 식이다 말이죠

버리지 아니라는 성읍 이라는 이름 자체가
결과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자꾸 원인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 말이죠

무식한 놈 막살아라 라는 말은
결과 인데
자꾸 원인으로 만들어서
막살기를 지켜요

그러니 예수님이 숙제를 해주지 않으니까
자꾸 그렇게 자신을 위장하는거다 말이죠

막사는 놈처럼 보이도록 가면을 써야 하니까 말이죠
또 다른데 가면 막살지 않는 놈으로 또 가면을 바꿔 써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죠

새 이름이란 내가 짖는게 아닙니다
외부에서 결정해 버리는 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입니다.

새이름 자체가 원인 없는 결과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헵시바야 쁄랴야 곧

너는 나와 한 몸이다 같은 운명이고
같은 새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이거 이제 절대로 나누지 않겠다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 라는 주님의 믿음이 담겨진 고백입니다
내 고백이 아닙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 예수님의 물음은
너는 나의 사랑이다 라는 이름을 부르심입니다.

네 저 주님의 사랑
주님의 찬송 여기 있습니다 라고 베드로는 화답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둘을 갈라 놓을수 없는 관계가

바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새신부가 바로
성령의 성전으로 삼으신
다시는 버리지 아니하는 성읍
전에는 치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거룩이 카파르 덮여진 자가 바로 
성도인 교회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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