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짓밟히는 주의 성전 (사 63,15-1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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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 유린(짓밟힘) 당한 주의 성소(만민이 기도하는 집) (사 63,15-19)


모세의 날, 이스라엘을 바다에서 건지신 자가 어디 계시뇨? (사 63, 7-14)
이사야 2017 2020. 11. 7. 16:52
18-111 모세의 날, 이스라엘을 바다에서 건지신 자가 어디 계시뇨? (사 63, 7-14)

(이사야 63:15-19, 구약성경 1044 쪽, 찬송가 248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시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의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긍휼이 내게 그쳤나이다』

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컨대 주의 종들 곧 주의 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대적이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19,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사 63:15, 새번역) 『하늘로부터 굽어 살펴 주십시오. 주님이 계시는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곳에서 굽어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열성과 권능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나에게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그쳤습니다.』
(사 63:16, 새번역)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직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옛적부터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이십니다.』
(사 63:17, 새번역)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주님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셔서, 주님을 경외하지 않게 하십니까? 주님의 종들 곧 주님의 유산인 이 지파들을 보셔서라도 돌아와 주십시오.』
(사 63:18, 새번역)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주님의 성소를 잠시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원수들이 주님의 성소를 짓밟습니다.』
(사 63:19, 새번역) 『우리는 오래 전부터 주님의 다스림을 전혀 받지 못하는 자같이 되었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는 자같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깨어진 다는 것은 곧 예수님 즉 참성전 되신 예수님이
허물어지는 성전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이심을 당하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성전을 바라보는 모습과
즉 설마 이스라엘이 성전을 스스로 깨드릴 이유가 없잖아요
자신의 신체와 똑같은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림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특이성입니다

또 이스라엘 말고 주변의 이방나라가 이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
속마음이 드러나야 하니까 말이죠
즉 왜 이 예루살렘 성전을 깨뜨리는 것에 이방나라가 집착 할까요?
자신들의 신과 연관 됩니다 곧 자신들의 한 몸으로 일체화 동질화 된 자기들 신
곧 자기 몸을 염두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이렇게 맞물려서 예루살렘 성전이 깨어지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또한 예수님이라는 참성전을 깨뜨리고자 하는 데에 집착
아주 아주 집요한 집착성을 보여주었다 말이죠 바로 십자가에서 말이죠

그 정도로 귀히 여기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도
이방나라도
이 주의 처소가 깨어지는 것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말이죠

결국
과거의 모세의 날과 연관 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 점령(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때의 
보호자 싸움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 겁니다.

보호자 싸움이 말이죠

주님 혼자 이 싸움을 외로이 하시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신체 라는 그 성전을 깨뜨리시기를 말이죠

누가 다시 일어나냐 라고 먼저 자신의 신체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인간들에게 내어주시는 겁니다
결국 인간들은 자신의 신체를 누워서 침뱉기 하듯이 깨드리는 줄도 모르고
남 이야기 하듯 남의 신체
예수님의 신체만 깨뜨리면 되는 줄 알았다 말이죠

인간이 기도한다는 말은 그 정도로 답답하다는 거죠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하나님의 집이 깨어지는 것에는
아무도 답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상하죠
답답해서 기도하는 집에 들어와서 기도를 하는데
정작 기도하는 집이 깨어지는 것은 안 답답해 한다는 역설성을 보여주는 것이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다 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기도란 바로 이것을 들키는 겁니다
내가 귀해서 
귀한 보물 같은 내가
보물로 안 알아주니까 답답해서 기도하는데

정작 그 모습이
그렇게 답답해서 기도하는 집에 왔는데
정작 기도하는 집을 아무도 보물로 안 여기고 있으니
기도하는 자의 마음상태가 과연 기도 맞기는 맞냐 라는 거죠

백이면 백 기도하는 집이 귀해서 기도하러 오는 자는 없어요
다들 자기가 귀해서
귀한 자기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해서 답답해서 기도하러 오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기도하는 집이 까발리는 겁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옵니다 
하나는 곧 바리새인은 십일조 내었다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았다 등등을 나열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또 다른 하나 곧 세리는 머리도 못 들고
가슴을 치면서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합니다
마치 화로다 나여 라고 외친 이사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아무리 봐도 죄인 중의 괴수일 뿐이구나 라고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원수일 뿐임을 고백할 뿐입니다

누가 기도하는 집을 귀하게 여기는 자 입니까?

세리라꾸요? 아니 잖아요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성전 곧 주의 처소가 아니면
어디서 자랑하겠습니까
아 맞다 앞의 마태복음에서 사람들이 모인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랍비라고 칭함을 받기를 좋아라 했듯이
성전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지 자랑하는 자?
그들이 어디서든지 그런다구요?

네 맞아요 바로 그 시작이 성전 아닙니까
랍비라는 선생이
성전에서 자격증을 줬을 테니 말이죠
모세의 자리는 아무데서나 발급하지 않잖아요
네 성전 이겠지요

그러니 성전에서 자랑하는 것이 그들은 당연한 거죠
곧 모든 곳에서도 자랑이 되겠으니
그 원인이 성전으로 말미암으니까
얼마나 성전을 귀히 여기겠습니까?

그런데 세리를 보세요
교회에 와서 자기 죄만 나열하는데
교회에 과연 덕이 되겠냐 말이죠

교회에 덕이 안되요 덕이

자 그럼 누가 성전을 귀히 여기겠습니까
네 바리새인 아니냐 말이죠
성전을 사수 할려고
성전을 헐고 삼일만에 짖겠다 라는 예수님을 제거했잖아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사수할려고 참성전을 제거하는
그림자성전을 사수할려고 실상의 성전을 제거하는 ㅋㅋㅋ
이 얼마나 기이한 현상 
기괴스러운 현상 아닙니까

지지난주의 포도즙을 짜듯이 혼인잔치를 살벌하게 전쟁을 벌리는 어떤 임금처럼
이것이 계시록이다 말이죠
아무도 안 볼려고 하는 계시록 말이죠
혼인잔치의 기쁨의 하이라이트 절정인데
아무도 안 보고 아무도 증거 할려고 하지 않아요

그 기쁨의 연장선상에 있는 증상물이 바로 참선지자의 외침인
선지서들 말이죠
아무도 안 봐요
아무도 증거를 안해요

어려워서?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불가능 합니다 불가능
증거하는 놈은 죽어요
이 세상이 가만히 두질 않아요

아까 성전을 귀하게 여긴다는 바리새인은 정작 그 국가 시스템 자체가 성전화 되어서 그렇지
에스겔 보세요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요
녹슨 가마솥 비유에서 그들의 성전 개념은 이방나라에 둘러쌓인 가운데서는
아무런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마치 교회의 기능을
예수님을 죽이는데 사용해 놓고서는
교회의 기능인 구원을 해 달라고 외치고 있으니
아니 예수님 곧 구원자를 죽였잖아요
그런데 구원해 달라는 것이 무슨 소용 있냐 말이죠
그래 그래 건져줄게 어라
건져줄 구원자를 바로 앞 좀전에 너희가 아까 구원자를 죽였구나
구원자를 죽여놓고서 구원해 달라고 하니
참 기이하구나

바로 이것을 미리 앞당겨서 세리는 가슴을 치면서 우는 겁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런데 성전을 귀히 여기는 바리새인은
자신을 귀히 여기기 때문에 성전과 동일시 해서 귀한 자기를 더 귀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 하는 겁니다
저 더러운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하나님까지
성전도 모잘라서 하나님까지 끌어와서 말이죠

이것이 성전을 깨드리는 자와 뭐와 다를까요?

과연 국가 전체 나라 이스라엘 전체 나라가 성전화가 된 그 속에서가 아닌

이방나라 속에서도 과연 그런 기능을 하는지 보자
그때는 과연 성전을 귀히 여기는지 보자

볼 필요도 없이 성전 안에서 자녀까지 재물로 바치고
태양신 담무스신 온갖 신을 모아서 굿판을 벌리고 있으니
얼마나 성전을 귀히 여기서 그랬을까요?

성화론자들을 보면 바로 이런 굿판을 벌리는 놈들과 똑같아요
효험을 볼려고 성전에서 서로 이런 짖을 해요 글쎄

성화 되었다 라는 소리 들을려고
교회에서 말이죠

그러니 더더더 효험 있는 굿 판을 더더더 벌리는 겁니다
온갖 배설물을 교회에 성전에 다 가지고 오는 겁니다

너희는 내 앞에 보이러 온다 라고

그 정도로 인간은 자신이 귀하지
성전이 하나도 귀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을 깨뜨리시는 겁니다.

과연 참성전 곧 허물어졌다가 다시 삼일 만에 지은 성전 앞에서는

다윗의 주 앞에서는 과연 또 배설물 똥덩어리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그런거 가지고 또 자랑질 하러 오는지 말이죠

다윗의 자손 앞에서는 그런짓이 통했다 라고 자랑질을 했다만
과연 다윗의 주 앞에서는 과연 통할지 함 보자 말이죠

얼마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처소를
이방나라의 산당처럼 취급했으면

하나님이 귀한 보물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귀한 보물이라고 세운 산당 취급하듯이
성전을 취급했기에
온갖 불공의 정성을 성전에 까까득 채우는 겁니다

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킨 것
아버지 말씀을 단한번도 어긴적 없다는 것
큰 계명 두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
온갖 자신의 귀한 보물인 자기 것을 까까득 배설물로 똥을 쳐 발라요
치매 걸린 할머니들이 과거에 시골 마을에 그런 모습들을 보였거든요
요즘은 요양원에서 다들 침대에 묶어 버리잖아요

제발 그 똥덩어리 그만 좀 가지고 온나 라고

(사 1:11,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개역)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개역)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약자를 괴롭혀서 가난한자의 귀하게 딸같이 여기는 어린양을 빼앗아
자기에게 온 손님 마귀에게 대접해서 바치더라 말이죠
자신의 양들이 그렇게 많은데 말이죠

그게 바로 원수 다윗 이다는 겁니다

원수로 밝혀버리지 않는 주는
다윗의 주 
곧 메시아가 아닙니다

다른 메시아 이다 말이죠

그래놓고 율법 대로 4배나 갚으라 라고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판결을 내리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거죠

성전은 이런 나의 죄악을 까발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자신의 죄악을 감추는 곳으로 삼아버리니
성전이 안 깨어지고 배기겠냐 말이죠

에라이 이 놈아 그 놈이 바로 너다 너

그 원수는 너 라니깐

너가 감히 성전을 짖밟고 유린하고 있구나

언제?

거봐 예수님을 죽이잖아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여기지 다윗의 주 라고 안 여기잖아
왜? 너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인줄 모르니까
성전에 온갖 더러운 똥을 도배하고 있잖아

감히 이방나라의 제사 제단처럼 취급하고 있잖아
그들 역시 온갖 정성을 바치니까

정성 쌓듯 산당취급하잖아

특이성이 없다 말이죠
불도져처럼 첩경을 밀어야 하는데 도리어 첩경을 첩첩산중으로 더 높게 더 크게 더 깊에 세우질 않나 신비롭게 효험있게 산당 만들 듯이 말이죠
대형교회가 다 이런 짖으로 세운 산당이거든요
참성전의 기능도 못하는 주제에 온갖 인간의 정성을 다 담아요 글쎄

이것이 바로 성전을 세우는게 아니라
성전을 깨뜨리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이런 인간의 정성으로 세워지는 이방나라 산당 제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손수 만드시고 직접 임재하셔서 영광이 가득차는 곳이 이스라엘의 성전이다는 겁니다.

(왕상 8:10, 개역)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왕상 8:11, 개역)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왜 제사장이 능히 일어서지 못할까요?
인간의 정성을 배제 누락 시키시는 겁니다
구원이란 외부에서 일으켜 주어야만 성사가 되지
인간 내부에서 정성을 바쳐서 이루는 이방나라의 신전과는 다르다 라는 겁니다.

왕상 8장 전체가 (꼭 8장 전체 다를 읽어보시길, 다 올릴려고 하니 내용이 많아서 생략)
다윗의 자손이 곧 아들이 아버지를 살리는 주가 되는

(왕상 8:19, 개역)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주께서 내 주께 펼치시는 구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들은 솔로몬이 아니라 그림자이고
진짜 현실은 바로 예수님 곧 다윗이 말한 주 이십니다

무너지는 성전은 성전이 아니무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거든요
사람의 손으로 짖지 않은 성전은 따로 있다 말이죠

인간의 손 이라는 내부 작업에 의한 성전이 아닌
외부에서
그것도 외부의 사고방식에서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는
삼일만에 짖는 성전이냐 말이죠
거룩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음이다 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 거룩이 인간의 손으로 짖는 성전에는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의를 자꾸 세워요
하나님의 거룩에 곧 의에 복종치 않아요
십자가를 거부한다 말이죠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꾸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낸 숙제를 거룩이다고 바쳐요
이 완악함을 깨뜨리시는 것이
외부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거룩 곧 의입니다 이 의에 복종케 하심입니다

넘어지지 않기에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거룩을 거부하는 겁니다

또 외부에서 주어지는 구원이 뭔고 하니

(출 40:34, 개역)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 40:35, 개역)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 40:36, 개역)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곧 주의 영광이 외부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구원은 외부에서 성사가 되는 겁니다.
구름은 어떻게 인간이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영광에 접근했다가는 타 죽거든요

주님 혼자 주께서 주께 로 구원을 성사 시켜 버려요
여기에 인간은 배제가 되는 겁니다

주의 성소는 두 개의 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예루살렘 성전
또 하나는 지상의 성전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나서 모든 구원을 결정해 버리시는 겁니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눅 10:22,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 10:21, 개역)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구약 때는 이름만 지상의 성소에 알려주었고 곧 [하나님의 이름] 이지요
일종의 하늘의 성소 본점이 파견한 분점이 지상의 성소인데
이 분점이 아니고서는 구원이 없는 거죠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없다 말이죠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분이
바로 신약에서는 구체적인 인물 곧 실상이다 말이죠

하나님은 우선 이름만을 지정하시고
신약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이름에 해당되는 인물을 나타내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지상의 분점인 성소는 그림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져야 합니다

그 깨어지는 성소를 보고 오늘 본문의 기도자는 기도하는 겁니다
지상의 성소가 파괴 됨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이 취소가 되는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워서 기도하는 겁니다

(왕상 8:41, 개역)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왕상 8:42, 개역)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왕상 8:43, 개역)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 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지상의 성소인 분점이 하는 일은 뭡니까 
바로 주의 이름을 알리는 겁니다

자 그럼 주의 이름은 또 무슨 일을 합니까

(왕상 8:44, 개역)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왕상 8:45, 개역)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왕상 8:46, 개역)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왕상 8:47, 개역)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왕상 8:48, 개역)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왕상 8:49, 개역)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왕상 8:50, 개역)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왕상 8:51, 개역) 『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왕상 8:52, 개역)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왕상 8:53, 개역)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주의 산업을 삼으셨나이다』

바로 구원
저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기도와 간구를 들으셔서
지난 주의 모세의 날로 만드시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즉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서 
의를 입혀 버리시는 외부의 작업으로 인해 구원을 펼치시는 것이
주의 이름 이다는 겁니다

곧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사야 이오팔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
스올 무저갱 곧 지옥이라는 그 죽음 속에 빠져있을때에

성전 쪽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왜? 그 성전 속에 주의 이름이 있으니까 말이죠
처음에 법궤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었다 말이죠

삼하 6장에 나오네요

(삼하 6:2, 개역)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증거궤에 뭐가 담겨져 있나요?

광야에서 10번 넘게 원망한 증거로 그 압축물로서의 원망한 증거물 세가지

십계명 깨어진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

그런 수치를 덮어버리고 가려주시는 것이 바로
피로 가려서 안보시겠다 라고 허물을 덮은 것이 여호와의 이름 이다는 겁니다
그 법궤를 성막 천막이 법궤를 모셔서
그 이동하는 텐트가 이제 고정적이 건축물로써 왕상 8장에 세워지는데
여전히 외부의 작용인 피로 덮어버린 여호와의 이름이 있다 말이죠
앞으로 오실 어린양의 피로써 흘리신 분의 이름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전은 이 이름을 알리는 기능입니다
이스라엘 에게만?
아니죠 
만방에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이름을 알릴수 없었다 말이죠
자기 몸 챙기기 바빠서 정성과 보물을 바쳐서 자기 의를 쌓기 바쁜
우상섬기기 바쁘니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과 함께 지상의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됨으로서
만방에 외쳐지게 됩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공준분해 해체가 되었는데 그 파편이 만방에 저절로 떨어져서 증거를 해요 글쎄 ㅋㅋㅋ
쫄딱 망했을 뿐인데 말이죠

이름을 가두어 두기만 했을 뿐이지
못 움직이도록 말이죠
그것이 숨막히는 무거운 사랑 강호동 이경애의 코메디
그걸 다시 너튜브로 보니까 중국 전족이 생각나네요
도망 못치도록 신발을 작게 만들어 멀리 도망 못가고 돌아오도록 하는
거꾸로 인데
지금 구글로 검색해서 사진을 보니 발 모양을 보니 다 망가져 뼈가 다 굽어버렸더라 말이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랑 곧 질투가 없는 사랑인거죠
못 움직이도록 건물 안에 가두어서
1주일에 한번만 찾아오고 용돈 주고
더 이상 시어머니 간섭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파괴 되니까
이름 자체가 스스로 움직여서
자기 이름을 자기 스스로 구원하시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 이름을 증거하시면서
이 이름이 모든 우상의 손모가지 발모가지 목모가지를 다 짤라 가면서 움직이는 사랑을 펼치더라 말이죠
심지어 이스라엘의 우상이 되어버린 성전 마저 파괴하면서 말이죠
46년 동안 짖는 질질 끌면서 짓는둥 마는둥
저놈 눈치 보고 이놈 아부하면서 어느세월에 짖냐 말이죠
백날 정치적 공작과 아부를 해도
안 지어지는 겁니다.

에라이 뿌싸뿌라

그렇게 해서 주의 이름을 증거할 마음이 있기는 있냐 말이죠

하나님의 구원이란
요나가 바닷물 속에서도 성전을 향해서 기도해서 살아나게 되는 부활 생명 길 진리를 누리게 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성전에서
비거룩인 더러운 죄를 거룩으로 옮기는 기능이 거룩한 성전의 기능이 펼쳐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의 정성이나 성의를 거부하시고
이는 사람의 뜻이나 혈통이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 만의 의논으로 성사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이루어 지는 겁니다.
그저 인간은 그 어떤 허물도
아무리 허다한 허물도 다 덮는
그저 죄인으로써만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정성이나 의로움이 아닌 죄인일 뿐이기에
편파적인 부조리로써의 반칙의 구원이기에 말이죠
그래야 이 모욕적인 구원에
모든 입을 다 막아버리시니까 말이죠

어머니 말 마따나 죽은 놈 살려놨더니만 보따리 내 놓으라 라고 협박하는
멋들어진 구원을 배불러 터진 구원을 바라고 있기에
너 내 이름 모르지 오냐 내가 알려주마 라고
알고 있다 해도 소용 없어요 거봐 모르잖아 라고 무조건 충돌 하시는 겁니다.
여호와가 누구인줄 알게 해 주겠다 라고 한발짝 한발짝 들이내미시는 겁니다

그 이름 앞에 그저 죄인(원수)으로써만 들통나야 하고 
그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그래서 어찌 다윗의 주가 자손이 되겠느냐 라고 물으셨듯이) 
다른 이름을 준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이 계속 유지가 됨으로써 죄 용서 받기를 바랬다 말이죠
그런데 성전이 깨어졌다
심지어 이스라엘 조차도 공중분해 해체가 되었다
이제 어디서 죄 용서를 받냐 말이죠

신약에서는 그 이름이 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으로 인해 약속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 십자가의 피로써 
용서 받지 못하는 죄란 없습니다

그런데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림자인 건물성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즉 모욕적인 구원 싫다 라는 겁니다
영광 스러운 구원을 해 달라는 거죠 배불러 터진 겁니다.
십자가는 너무 너무 불의한 스캔들 부조리함 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성전을 다시 지어서 회복했다는 둥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 하여서 회복 했다는 둥
투람푸를 이용해서 다시 예루살렘을 수도로 만들었다는 둥
미국 복음주의는 다시 제 3의 성전을 재건 하겠다는 둥
백날 해도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따라하지 말자

제3의 성전이라는 것은 없어요
다니엘서와 에스겔 서를 근거로 대던데?
그것은 새성전 되신 인자를 두고 말하는데
건축물도 아니고 애매한 것을 어떻게 해서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하더라 말이죠

여전히 이스라엘 현재 이스라엘 나라를 성경에서 말하는 신약에서도 말이죠
이스라엘로 보는데 육적인 이스라엘 혈통은 배제입니다

교회도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거든요
성령의 전은 우리 곧 사람이다 말이죠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룬 그리스도의 몸과 머리 되신 예수님
자꾸 예수님 떼고서 제3성전을 이룰려고 하니 미친놈들인거죠
어떻게 해서든 사람의 손으로 지어볼라고 ㅋㅋㅋ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습관 자체가 바로 우상숭배이다는 거죠
그게 편해요
사람들을 결속 시키는 정치적인 쇼 이거든요
미국의 보수주의도 미친놈들인거죠
그래서 동성애 반대 운동을 하거나 낙태운동을 하면 저절로
성령의 전인 교회가 될까요?

여전히 다윗의 자손이라고 배불러 터져서 부르고 있어요
모욕적인 구원이 아니라
성경퀴즈의 달인이 되겠다는 심뽀로 말이죠

자 지지난주 포도즙 짜는 붉은 옷을 입은 자가 누구냐?
그때도 강조된
돕던 자가 있더냐? 모조리 인간 쪽에서의 숙제 다 거부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혼자만 하십니다

또 지난 주에 모세의 날
그 사건을 기억해 달라 라고
브로큰 애로우를 요청 합니다

구원의 날을 펼쳐달라고
다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물에 바닷물에 빠졌다가 다시 바닷물에서 올라오는
그 사건을 그 모세의 날을 기억해서 다시 펼쳐달라고
결국 물에 빠뜨려 달라는 겁니다

또 오늘 본문 주의 성소가 깨졌다 라는 겁니다.
구원이 취소 되는 겁니까 라는 걱정의 기도를 하지만
오히려 이제 그림자를 누락 시키고
실체의 시대가 왔다 라는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놓았다 라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 라는 진짜 현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

더윗의 주가 오셔야만 한다는

그 아들이
그 인자가 바로 십자가를 다 이루셨다

모든 허물을 다 덮은 피 용서를

단번의 제사로 말이죠

용서 받지 못할 용서는 없을 정도로
이 십자가만을 
귀히 귀히 영광 스럽게 하셨다 라는 겁니다.

이 십자가라는 죄인 용서
원수도 사랑하신 그 증거물로써의 죄인으로써

예수의 이름을 만방에 외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그 십자가를 자랑하도록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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