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질투의 사랑 여호와 (사 65, 1- 7).mp3
9.16MB


18-115 이방인의 구원으로 이동하는 주의 이름 (사 65, 1- 7)


불 타는 성전과 토기장이 (사 64, 8-12)
이사야 2017 2020. 11. 29. 11:02
18-114 성전파괴와 토기장이 (사 64, 8-12)

〈이사야 65: 1- 7, 개역한글, 구약성경 1045 쪽, 찬송가 191장 양 아흔 아홉 마리는
찬송가 412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7)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사 65:1, 새번역)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사 65:2, 새번역)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내가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사 65:3, 새번역) 『이 백성은 동산에서 우상에게 제사하며, 벽돌 제단 위에 분향하여, 내 앞에서 늘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백성이다.』
(사 65:4, 새번역) 『그들은 밤마다 무덤 사이로 다니면서, 죽은 자의 영들에게 물어 본다. 돼지고기를 먹으며, 이방 제삿상에 올랐던 고기 국물을 마신다.』
(사 65:5, 새번역)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멀찍이 서 있어라, 우리는 거룩하니, 너희가 우리에게 닿아서는 안 된다. 가까이 오지 말아라' 하고 말하는 백성이다. 이런 자들을 내가 참지 못한다. 그들을 향한 나의 분노는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오른다.』
(사 65:6, 새번역) 『보아라, 이 모든 것이 내 앞에 기록되어 있으니, 내가 갚고야 말겠다. 그들의 품에 갚을 때까지는, 내가 절대로 잠잠하지 않겠다."』
(사 65:7,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산에서 분향하며 언덕에서 나를 모독한 자들의 죄악과, 그 조상의 죄악을 내가 모두 보응하겠다.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겠다."』


(롬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사 65:1(칠십인역)』
(롬 10:21,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 ㉡사 65:2(칠십인역)』
(벧후 3:13, 공동)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여 있습니다. / ㉠이사 65:17.』

(사 65:1, 쉬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를 찾지 않는 백성에게 나를 알려 주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그들에게 나를 밝히 드러냈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하였다.』
(사 65:17, 쉬운) 『<새 시대가 온다>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다. 옛날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 65:1, 현대어) 『[하나님의 대답, 처벌과 보상]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었으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그들 중에 하나도 없었다. 나의 백성 가운데서 내 이름을 부르며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항상 `내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알려 주었다.』
(사 65:8, 현대어) 『[남아 있는 의인들의 구원] 그러나 남아 있는 의인들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포도송이가 별로 탐스럽게 열리지 않았더라도 `덩굴째 모조리 없애 버리지는 말아라! 그런 포도 송이 속에서도 짜면 즙은 나온다'라고 농부들이 말한다. 그래서 나도 내 백성을 모조리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 속에는 변함없이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 65:16, 현대어) 『그때에는 세상에서 서로 복을 빌며 인사할 때에도 `참되신 하나님'이라고 인사하고 세상에서 서로 맹세할 때에도 `참되신 하나님'이라고 맹세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 여호와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그때에는 이전의 모든 환난 고통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과거에 없었던 것처럼 그 환난 고통이 내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제목이 달린 번역서도 올려봤는데
현대어 성경의 1절은 아주 이상하게 번역해 버렸네요
그러나 8절의 소제목을 보니
남은 자만 돌아온다 라는 의미로 소제목을 달았다 말이죠

마치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 때에 이 말씀이 어떻게 구체화 되는고 하니
개같은 이방인과
그리고 이스라엘 속의 잃어버린 양 즉 이스라엘 조차도 거부하는
세리 강도 창녀 이런 자들

이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원자의 대상자가 된다 라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는 어떤자인가
지난 주에 최초의 선배인 애굽왕 바로왕의 사고방식대로
자신을 토기장이의 위치에서 판단하는 자
그 후배들이 줄줄이 심판 당한다 라고 예언하는 것을
에스겔서를 통해서 최근까지 살펴 봤다 말이죠

한결 같이 자기가 하나님이래요 글쎄
창조주의 자리에 다들 한결같이 앉아요
모세의 자리에 앉는 오늘날 목사들처럼 말이죠

그러니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신학은 결국
하나님을 대상물로 삼은 주체가 되어버린 겁니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가룟유다의 사고방식 말이죠

주체가 나를 대상물로 삼는 하나님의 숙제가 아니라
내가 도리어 주체가 되어 토기장이가 되어
하나님을 대상물로 삼는 그런 믿음을 펼치는 ...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분명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닌데 말이죠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1,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실상 앞의 마태복음에서 이것이 종교오락이라고 했듯이
큰 것도 못 잡는 주제에
작은 것 붙잡고 도토리 키 재기 하는 오락을 하더라 말이죠

애굽왕처럼 큰악어 
지옥자식을 백배나 만드는 지옥이 보낸 악령들린자는
인간의 숙제를 강요하니까 말이죠

우리는 주님의 숙제를 아예 볼 생각을 안해요
어디까지나 내 인생은 내가 이끌어 가겠다 라는 가짜 토기장이 노릇을 할려고 할테니
남이 한 것을 왜 볼려고 하겠냐 말이죠
내가 하는 것이 없으면 그 결핍이 미치게 만든다 말이죠
남자가 평생 강박증 정신병에 시달리는 이유이거든요
여자는 어떻게 해서든 사랑 받는 짓을 해야한다고 여기는 히스테리에 걸려 있고요
주님이 사랑해 주시기까지는 성질 급해서 못 기다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발적인 가정부로 나서게 되는 거죠
거기서 끝나면 다 게요? 반드시 계집종 하갈은
마나님 자리를 염두하여서
여자로써 남자에게는 자유하는 여자가 아닌 계집종 가정부 이고
여자들에게서는 남자 같은 토기장이 자리에 앉아서 갑질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땅콩 가족이 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인간은 딱 두 부류로 성경은 규정을 해 버렸습니다
제 3의 길은 없어요

누가 성경말씀 자기마음대로 곧 하나님 마음대로 규정한 인간의 두 부류를 인정하겠냐 말이죠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다들 토기장이가 되어버렸기에
맡겨지는 삶은 없는 겁니다.

자 그러면 다들 자신을 좋은 쪽에 둘려고 할 거 아니겠냐 말이죠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 이 두부류로 규정했는데

아니 누구 자신은 스스로 진노의 그릇으로 규정하냐 말이죠

그래서 율법을 주신 겁니다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자신은 진노의 그릇임을 알아라고 주셨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저 이방인과 같지 않도록 하시는 주님의 배려 조치였다 말이죠

아 그런에 이 놈의 이스라엘이 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그런 죄인 곧 원수도 주님이 용서하셨다 라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긍휼을 봐야 하는데

본인 스스로가 긍휼의 그릇으로 규정해 버리니까
토기장이가 그럼 뭐가 되냐 말이죠

이것은 이방인의 사고방식과 너무 너무 똑같아서
천년 전에 죽은 애굽왕과 즉 스스로 토기장이 자리에 앉은 자와
서기관 과 바리새인 곧 유대인들 모두가 존경해 마지 않는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 선생으로써
자신들을 인도해 주는 자가

바로 지옥에서 보낸 자의 대표성으로써 이방인 애굽왕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써 규정하시더라 라는 겁니다

안그렇다면 예수님이 몰고오신 천국의 원리와 맞아야 하는데 하나도 안 맞아요

자 그래서 육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리시는 겁니다

여기서 또 다시 강조하면
아 그럼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구나 라고 나선다는 자체가
여전히 율법의 취지를 몰라요
여전히 율법의 껍데기를 지킬려고 달려드니까
사랑은 없고 알맹이는 없고 자꾸 껍데기를 지키는데 정신팔려 있다 말이죠
그것을 종교오락 마약중독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영적인 사람이 될 방법이 없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이 가입된 취지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긍휼의 그릇이 될 방법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숙제를 보는데 있어서
자신의 숙제하기에서 시선을 떼야 할 판국인데
베드로 보세요
다윗 보세요
어떤 누가 자기 숙제를 포기할려는 자가 있겠냐 말이죠
오히려 시험이 다가오면 올수록 더더욱 본능적으로 그 난관을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쳐 나아갈려고 하지
누가 바로 포기해 버리고 누가 바로 자신의 숙제를 철거할려고 하는자 어디있겠냐 말이죠

위기가 닥치면 닥칠수록 더더욱 다짐을 합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 라고
남들은 다 버려도 나 만큼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 라는
다짐의 다짐을 한다 말이죠

사탄아 물러가라 ~~~~~~~~~~~~

우와 이것 보다 더 절망적인게 어디있겠냐 말이죠

니가 토기장이냐? 내가 토기장이냐?
너가 나를 구원하니? 내가 너를 구원하니?
어디서 내가 너의 대상물이 되었니?
장모를 그럼 니가 고쳤어야지
물 위를 걷다가 그럼 물에 빠지지 말았어야지
율법은 너를 빠뜨려 죽일려고 가입이 된 거야

율법의 시선에서는 모든 인간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그 죄인을 이제 찾을 수 있어야 할 꺼 아니겠습니까

이상하다 율법이 가입이 됨 으로써 다들 뭘 해도 죄인이 되어야 하는데
죄인을 아무리 불러도 불러도 죄인이 없어요

죽은 자가 없어요

잃어버린 자가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말라꼬 왔냐 말이죠

지들이 다 알아서 하는 토기장이인데
토기장이가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철학자들의 일자 곧 하나님은
그저 난관에 부딧힐 때 그때 잠깐 도와주는 도우미 이고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이다
그 주체를 무로 돌리는 것도 나 이다
그저 내 숙제 도와주는 자가 일자이어야 한다 라고
졸지에 토기장이로써 일자를 규정해요 글쎄

인간에게 규정되는 그런 신이 무슨 놈의 신이냐 말이죠

이 말도 그들이 인정해요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을 드디어 해요
진리는 없다
신도 적당히 변호하고
또 중요한 것 인간도 특히 자기자신도 적당히 변호하고

이것이 바로 육적인 사고방식이다 라는 겁니다
주님이 규정해 버린 육적인 인간이다 라는 거죠

그럼 영적인 인간 곧 긍휼의 그릇은 그럼 누군가
누구냐 라는 개인으로 규정하시는게 아니라

지금부터 새로 그냥 창조해 버리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긍휼의 그릇이 그럼 누구지 누구지 라는 호기심은 사라지고
그 자체가 나를 규정한 내 기준에서 긍휼의 그릇을 도대체 누구로 하는가 라고
비교하고 대조하기위한 심뽀 이지만

주님은 긍휼의 그릇을 통해서 긍휼의 그릇이 누구냐 라는 시선에 호응하시는게 아니라
도리어 긍휼의 그릇을 새롭게 만드심으로서
창조주가 누구냐 라는 것을 목적으로 새삼스럽게 만드시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99마리 양은 아예 의도적으로 버려요
그리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는 분이 목자이다
창조주 이다 창조주의 기능은 곧 창조는
이것 뿐이다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 없다 라는 것이 창조주다 라고

기존의 저런 호기심의 발산 배후의 창조주 개념 조차도 다 틀렸다 라는 식으로
여호와가 누구인줄 알려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방인 중에서 누가 긍휼의 그릇이 되지 라는 개인 그 누구 라는 시선 보다

아니 도대체 유대인 곧 이스라엘 조차도 여호와가 누구인지 몰랐데
요즘으로 치면 교회 평생 다닌 자들 조차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데 라는
시선으로 주님이 의도적으로 그런 환경을 바꿔 버린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평생을 믿어도 다 엉터리 였구나 로 만들어 버리는 창조주 이시다 라는 겁니다

교회 평생 다녔던거 그거 철거해 버리고
선민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태생 이라는 것도

오늘 본문의 새언약의 기준에 의하만
지난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몰고온 천국의 원리에 의하면
토기장이 원리에 의하면

그 동안 쌓아올린 공든탑으로써의 신앙생활들이 모조리 다
지옥 자식으로 배나 만드는 것들이였다
자기도 천국 안 갈려고 하고
남도 천국 못 가게 막을려고 하는
마치 아버지 장로가 청소년기 사춘기 중2병의 아들을 억지로 라도 교회 다니게 해서
자기도 천국 안가는 아버지 장로가 되고
아들도 천국 못가도록 막는 배나 지옥 자식 만드는 식이다 라는 겁니다.

목사 아들들을 그 동안 대화하고 만나보면
아니 자식을 자기가 못한 말씀실천을 아이에게 뒤짚어 씌워서
온갖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도록 해요 글쎄

그냥 놀고싶어 하면 놀도록 냅뚜지 막는다고 되냐 말이죠

그런 목사가 교인들까지도 어떻게 다루겠냐 말이죠
자기가 다룰려고 해요 글쎄

자꾸 성전에 있는 금으로 맹세케 만들어요 글쎄
마귀들이 따로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 성전의 의미를 모르도록 막아서요
더러운 금을 어떻게 거룩하게 만드는지의 성전 기능을 알까봐 싶어서
다른 것을 자꾸 가르쳐요

이런 육적인 모습 그래 그래 많이 해보라
아이고 듣끼겠냐 더 크게 불러야지
아이고 그것도 복이가 더 더 더 큰 금으로 더 큰 금 더 많은 금을 바쳐서 그 금으로 맹세해 보려므나 그것도 큰 기가? 겨우 그 정도 량만 복 받을끼가 라고 자꾸 놀려 먹어요

이왕 사기치는 것 건축헌금 10억 이라고 작정헌금 써 내어서
그들의 사기에 더 큰 사기를 쳐서 그들의 속내를 들추어 내려므나 말이죠

아이고 아이고 그것도 행함이가? 말씀실천이가? 이웃사랑이가?
남을 7번 용서도 용서가
애들도 다 하고
너희가 지옥갈 자라고 여기는 이방인도 불교인도 다 한단다 겨우 그거가??????

자 그럼 영적인 사람은 누굽니까
아니 누구 라고 규정하지 말라매
네 맞아요

누굽니까
어 또 묻네

자 누굽니까

네 맞아요 아무도 없어요

새로 만들어야 해요

이제 다른 누구로 바뀝니다

아무도 없어야 비로소 누가 긍휼의 그릇을 새로 만드는지
비로소 보게 하시는 겁니다

긍휼의 그릇이 누구냐 그거 알면 우리는 또 죽여요
왜 그렇게 묻는다는 자체가
나를 여전히 고수하는 입장에서
나의 기준에 안 맞는 인물이면 언제든지 죽일 각오가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가운데 안심을 푹 놓았는데
어라 새롭게 새삼스럽게 새로 만들어지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긍휼의 그릇이 누구냐 라는 것 보다
도대체 언 놈이 이 놈을 만들었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죽였던 그 인물이 긍휼의 그릇을 만들더라 말이죠

이것이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반드시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는자와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과의 차이로써 증거되고

또 다윗의 자손이 어떻게 주가 되냐 라는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태어나야 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솔로몬의 이름 없는 형 곧 일명 꺽으신 뼈를 살릴길이 없어요
단절입니다.

육체의 모든 시도는 다 차단 당하고 기존의 쌓아올린 마일리지도 다 철거 되는 겁니다
꺽으신 뼈가 아니면 철거 당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 꺾으신 뼈가 어떻게 기쁜소식이 되냐 말이죠

이 꺾으신 뼈 만이
나의 그 동안 쌓아 올린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모조리 불도져로 밀어서 평탄케
평준화 시켜 버리시고

나의 그 동안 쌓아 올린 의로운 행동들을 모조리 다 철거하시고 불태워 버리시더라 말이죠
그 똥덩어리 안 태우면 냄새나요

그리고 이렇게 죽여 놓고 잃어버리게 해 놓고
빈털터리로 탈탈탈 털어서 절망케 만들어서
그 어떤 접촉점이 없도록
천국 가기는커녕 지금 지옥행 밖에 없는 절망 속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마귀에게 포로 잡혀 예수님에게 끌려온 입장에서

성전을 불태워 버려서 더 이상 나의 의로움이 없을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이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면서
내 쪽에서 다가가는 방식 다 철거 단절 차단하시고
주님 쪽에서 마귀를 타 넘어서 넘어오시는 방식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을 펼치시더라 말이죠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 곧 십자가의 피 용서가 없어서
인간은 망하게 되는 부류로 규정해 버리시고

또 자기 의로움을 쌓아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옥의 방식이고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 이신 예수님의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으시는
십자가의 3일의 간극 속에서 이 거룩으로만
이 거룩으로만 천국 가는데
이 의에 복종치 않는
도리어 자기 의 로움에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철거하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이 몰고온 천국을 거부하더라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선민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고 당연시 여겼던 자들도 천국 못 가는 판국에
주님의 새삼스럽게 이렇게 아무도 없네

그럼 누가 천국 갈수 있겠습니까 라고 사람들이 심심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피 치 흥 이라고 반발 할때에

아무도 천국 갈자 없겠네

맞아요

그래서 새롭게 만드시는데 있어서
오늘 본문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새롭게 창조하겠다 라고
그들이 겉모양은 철저하게 개같은 이방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도 모르고 모르니 부른적도 없고
부른적도 없으니 찾은적도 없는
철저하게 단절이 꼬끼오 세 번 완벽한 단절이다 라는 겁니다.

그랬던 죽은자를 주님은 그들의 주가 되시겠다
그들에게 부르신바 찾으신바 되시겠다 라고
주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들의 이름은 남은자 이며
신약에서는 새이스라엘 이다 말이죠

자 졸지에 새 로 새롭다 라는 의미로 
이스라엘 에게만 붙여있는 이스라엘의 의미를
이방인에게 붙여서 새이스라엘이
그야말로 기존의 것을 수정해서 만드시는게 아니라
아예 새로 창조해 버리심으로써 인해
졸지에 기존이 이스라엘이 졸지에 구이스라엘로 옛이스라엘로
이전의 것
사라질 것
삭제될 것으로써

쌍둥이
도플갱어 
옹고집전처럼

인자로써 새롭게 창조가 되더라 말이죠

왜? 인자가 낳았으니까
해산하는 고통으로써 말이죠
사도의 피에서 낳았으니까 말이죠

사도나 인자를 예도 철학자는 자꾸 인간으로 보는데
아닙니다
성령입니다
성령이 낳았다 말이죠

갑자기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처음 편에서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외친 인질극 탈주범이 회개한 내용이 생각났는데

youtu.be/VgscSGBiG-A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눈물로 펑펑 울면서 말이죠

이 얼마나 건방집니까 얼마나 사가지 없고 뻔뻔하냐 말이죠
잠시 3초 였지만 말이죠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실천한다는 것이 자살이였다 말이죠

본인들이 내 인생을 저 더러운 자가 아닌 깨끗한 자로 살고 싶었다 라는 겁니다.
그게 육적인 사람이다 말이죠
육적인 사람을 시기해서 왜 나는 억울하게 당하고 
저 사람은 돈 때문에 형벌도 다 받지 않고 풀려나냐
지옥 사람들의 최고의 메시지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유전무죄 무전유죄

여전히 성경이 규정한 인간이 뭔지 모르는 겁니다
여전히 토기장이 버릇을 펼칠려고 저 놈은 진노의 그릇이고
나는 긍휼의 그릇이고 싶은데 억울하게 진노의 그릇이 되었다 라고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도 주님 앞에서 모두 진노의 그릇 이다 말이죠
주님이 새롭게 긍휼의 그릇으로 만드시느냐에 달린 주님 마음대로 인데

그런 주님의 토기장이 되심 앞에 맡겨버릴 생각 조차도 못하고
내 인생 내가 이끌어 가겠다 라고
이리 도망 저리 도망
온갖 민폐만을 끼지면서 말이죠

거기서 도망치는데 성공했고
다시는 못 잡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칩시다
자살 안 할까요?

아니 그 뻔뻔함 1초짜리 였나 말이죠
오히려 유전무죄 받은 자 보다 더 더 더 뻔뻔해졌다면
자살할 마음조차도 없이 잘 살꺼다 말이죠
잘 살고 싶었다메?????

이 사람 역시나 너무 작은 금으로 맹세한 겁니다.

량이 작다, 무게가 작다 가 아니라
백날 온 천하의 금을 다 가지고 맹세해도
어차피 자살할 사람이다 라는 겁니다
너무 작은 그릇이니 말이죠

아니 큰 그릇 줘도 못 먹어요
성전 안에 있는 금이 아니라
성전 자체를 줬다니깐요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놓고서 그 의미를 모르니까
예수님 자기자신 자체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나만의 나를 따로 챙기고 그것이 안되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겁니다.

아니 없는 나를 왜 챙기냐 말이죠
안되겠구나 어차피 실패한 것 저들의 손에 그 없는 나를 없애버리겠다 라고
헛발질을 하더라 말이죠

이런 지강헌이와 같은 사고방식의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특히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다 이래요 촛불시위에 참석한 자들 말이죠

태극기 부대도 똑같은 놈들이고 말이죠

없는 나를 왜 사수할려고 하냐 말이죠
없는 국가를 그 허구 헛깨비
안개를 왜 챙길려고 하냐 말이죠

그래서 겨우 딸랑 금으로 맹세를 하더라 라는 겁니다.

그저 그저 남을 7번 용서 하는 고만 고만 한 것으로
선민이다 구별 되었다 선택되었다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저 닭그네와 같지 않음을
저 쥐박이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장난하냐 말이죠

겨우 그 작은거 구할려고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 하냐 말이죠

바로 이런 모습이 앞의 글 에스겔서 에서의
이스라엘 속에 지옥의 대표자 애굽왕 바로왕을 1000년 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환해서 애굽의 위치가 이스라엘 이다 라고 규정하시는 겁니다.

정작 이스라엘은 애굽이 되어버렸고
오늘 본문 개같은 이방인 다들 원래 망해야 할 자입니다 라고
본인들도 인정하고 다들 인정하는 그들이 도리어 이스라엘로 이동하더라 말이죠

저 애굽이 된 이스라엘은 그냥 바로 애굽이 되지 않고
그 앞서서 애굽의 위치가 이동합니다

잠시 블로그에 올린 에스겔 글 리스트를 올려 볼께요

2020.11.29 애굽 왕 바로에 대한 심판 (겔 29, 1-12)
2020.11.22 교만한 두로 왕에 대한 심판 (겔 28, 1-26)
2020.11.15 두로 족속 심판 (겔 26, 1-21, 겔 27, 1-36)
2020.11.07 에돔 족속과 블레셋 족속 심판 (겔 25,12-17)
2020.11.01 모압 족속 심판 (겔 25, 8-11)
2020.10.25 암몬 족속 심판 (겔 25, 1- 7)
2020.10.18 울지 않는 선지자와 아내의 죽음(이스라엘 멸망) (겔 24,15-27)

애굽이 점점 이동해요
암몬에서 모압으로 
모압에서 에돔으로
에돔에서 블레셋으로
블레셋에서 두로로
두로에서 애굽으로

그냥 이것은 역사적인 흐름이 아닌 성경에서 나열한 것이고
실제로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합을 하고 다시 잡아먹고 멸망시키고 
멸망시킨 나라가 도리어 또 다른 나라에게 잡아먹힘으로서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잡임이 되더라 말이죠

실제로 앗수르에 애굽이 이동했다가 다시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으로 애굽이 이동하죠
그리고 그들이 마치 10가지 재앙의 10가지 우상 곧 신들처럼
그 보디가드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장자를
신들이 인간 장자를 보호했던 애굽때처럼 활동하더라 말이죠

그 장자를 치시고자
예수님 이라는 장자가 맏아들이 한 세트를 이루시고자

비로소 너희는 여호와가 누구인줄 알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야 이거 너무 방대하잖아요
아니 그럼 그 이스라엘처럼
우리 또한 애굽왕 바로와 그의 장자를 치시듯이
구원의 날을 펼치시겠다

그럼 오히려 내가 지금 그 사건과 나와 무슨 상관있냐
여호와가 누구관데 라고 애굽왕의 심정과 똑같이
말씀 자체가 운동력이 있어서
나를 애굽왕 바로왕 취급하듯이 하신다는 말이네

그러니 진노의 그릇으로 왜 나를 만드냐 라고 반발할 수밖에 없도록
지금 새롭게 펼치시겠다 라고

네 맞아요

성경은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를 겨냥해서 싸우시는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름 가지지 말던가

아니 이름 없으면 죽은자 취급 받아요
국가 소속이 될 수가 없으니
그 어떤 보호 조치를 할 수가 없다 말이죠

아감벤의 비서류자, 문서난민
적어도 지강헌은 서류는 있잖아요 이름도 있구요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하잖아요

이름 없는 자를 무슨 수로 기억합니까
바로 이런 자를 기념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새언약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름도 없어요 지강헌은 그야말로 배불러 터진 소리 한 겁니다
꺽으신 뼈 보세요
다윗이 배불러 터진 구원을 바라다가 한 대 얻어 터진 겁니다.
뭐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 보겠다 라고
새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삭제 당한자입니다
꺽으신 뼈가 너 다윗을 도로 살리시겠다 라고

죽은자로 규정해 버려요
죄인 중의 괴수로 말이죠

자 이렇게 약할때에
강함 되시는 젖먹이 되시는 임마누엘을 구하게 되지

안그러면 내 이름에데가 간따나 멋있는 내 이름에다가
예수님 이름까지 덧 떼워서 본드 붙여서
더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데 있어서

창조주는 젖먹이로
무시받는 창조의 기능으로

에에 그에 무슨 창조 입니까 라고
다들 거들또 안보는 방식인
요나의 표적으로

다들 싫어버린바 되고
고개를 돌리는
거리끼는 걸림돌의 방식으로 구원을 펼치실때에

오늘 개같은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겁니다.

다들 반대하고 거부하는 창조 요 구원입니다
아무도 옳습니다 라고 못 나오도록 하시는 구원
마치 베드로를 세 번 부인하게 만드셔서 펼치시는 구원처럼 말이죠

네 바로 그것이 원수 만들어서 구원입니다.
왜 우리를 기여이 꼭 원수 맹글어야만 했었었냐 말이죠

안 그러면 또 애굽왕 바로왕의 방식을 추구하고
지옥 자식 백배나 만드는 방식을 추구할테니 말이죠

그 어떤 연결고리 
너와 나이 연결 고리 다 끊어서

그 잃어버림 속에서 다시 되찾으시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방인은

그야말로

(마 4:11, 개역)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 4:12, 개역)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마 4:13, 개역)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귀를 거치신 다음에
즉 이 말은 인간은 마귀를 안 거칠려고 해요
그 다음에 흑암의 백성
사망의 땅에 폭삭 주저 앉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천국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원인을 다 없애버려서 말이죠

자 그럼 이제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임을 주장해서 구원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모욕적인 구원처럼
나 이스라엘은 도리어 저 개같은 이방인의 자리
흑암의 백성
사망의 땅에 있고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 앉은뱅이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까요

남은자가 다시 도로 되어야 할 판국입니다

이스라엘 자리 버리고
왜? 에스겔서에서 뭐가 되었다?
애굽이 되어버렸어요

어라 그런데 그 절망 속에서
이제 성전도 불타 버린 상황인데

도리어 이방인에게 구원의 빛이
남은자 라는 새언약으로
한 남겨둔 한 씨 예수님 덕분에
새이스라엘이 새로 펼쳐진다 말이죠

이스라엘도 이스라엘 자리 버리고
새이스라엘

아이고 겨우 금으로 맹세하는
남을 7번 용서하는 그 함량미달의 작은 것에 매달릴레

아니면 큰 것 곧 차고도 넘치는
더러운 금 마저도 용서하는 거룩케 만드는 성전으로 맹세할레?

이 남은자로 맹세
한 아기 
한 젖먹이
한 임마누엘로 맹세 할레
한 새이스라엘로 맹세 할레

뭐가 보이냐 말이죠
뭐가 큰지 작은지
인간의 선악으로는 못 보는 것을
보고 무엇이 큰지를 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99마리 양이 큰지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이 큰지

무엇이 거룩케 하시는 지?

용서 받을게 없는 자에게는
큰 것이 안 보이니까

생명 보다 소유의 넉넉함에 빠지고

용서 받을게 있는 자
곧 죄인에게는
죄인을 부르시러 오시는
하나님의 의 되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크게 보이는 겁니다

이방인은 비로소 여호와를 주 라고 부릅니다
이름을 불러요

즉 원수의 자리에서 말이죠
환자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에서
비로소 용서해주시는 분을
원수에게도 사랑해 주시나요 라고
모든 입술로 주 라고 부르고
모든 무릎을 꿇고 주님께 경배하는데

용서 받을게 없는 이스라엘은
이 주의 이름에 무릎도 꿇지 않고
입술로 찬양도 하지 않으면서

죄의 소원
곧 겨우 그 짝은거 
그 쪼매한 것

겨우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금으로 맹세한 것을 지킬려고
내 돈 띠먹은 놈 잡겠다 라고 나서는 겁니다.
나는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데
너는 그거 못하고 오히려 민족을 배신하여서 매국노처럼 삥이나 뜯고 있지?

겨우 그깟 거룩이 거룩 축에도 못드는 함량미달의 거룩을 666을
짐승을
사탄을
애굽왕 바로왕 토기장이의 자리에 앉은 놈을 다 따라하는
사람의 일에 빠져 있다 라는 겁니다.

일만 달란트 라는 큰 것을 못 보는
그야말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저주 받은 자들이

도리어 이방인이 아니라 선민이라고 하나님을 안다
여호와를 안다 창조주를 모를턱이 있나 라는 이스라엘이 저주 받은자 이고

주님을 부른적도 찾은적도 없는 이방인에게
부르신바 찾으신바
그 어떤 연결 고리 없이
오로지
이 십자가의 피 용서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길로는
모든 입술이 찬양치 못하게
모든 무릎이 꿇지 못하게 하셨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이방인이 보고 기뻐서
죽은자가 기뻐서
우는 자가 기뻐서

그 원수 짖만 한 자신을 용서하시는 그 피용서에
남은자로 돌아오도록 하시는 겁니다.

둘째아들 이방인 곧 창기 세리 강도처럼 말이죠

(마 21:28, 개역)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개역)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개역)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탕자가 먼저 천국가는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는
인간 쪽에서는 나올수 없는
인간 교리 인간 신학에서는 아예 없는
새 언약을 다 이루시는 겁니다.

(눅 15:11, 개역)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눅 15:12, 개역)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 15:13, 개역)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눅 15:14, 개역)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눅 15:15, 개역)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눅 15:16, 개역)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17, 개역)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 15:18, 개역)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 15:19, 개역)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20, 개역)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개역)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개역)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개역)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개역)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25, 개역)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눅 15:26, 개역)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눅 15:27, 개역)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눅 15:28, 개역)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 15:29, 개역)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 15:30, 개역)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31, 개역)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2, 개역)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맏아들은 자기가 하나님께 열심만 있었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이 용서의 사랑을 그 큰 것을 못 보고
금으로만 맹세했고
자기의 의를 쌓았을 뿐이지
아버지의 의에 복종 곧 탕자를 용서하시는 그 마음을 거부했던 겁니다

일만달란트 탕감 비유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완악한 마음 나는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겨우 그 짝은거 작은거

큰거를 때려죽어도 못 보는
그야 말로 소경 아니냐 말이죠

모조리 다 소경 만들었다가 다시 눈뜨게 하시는 그 큰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두운 눈
곧 날 때부터 소경인 자인줄도 모르고

겨우 성전에 있는 금으로 그 작은거로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남을 7번 용서 했니 8번 용서 했니 
46년 동안 성전 짖니 하는 장난치는 판국에서
오락 게임하듯 종교놀이를 하는 판국에서

그것도 맹세냐 라고 3일만에 짖겠다 라고
성전으로 맹세를 하시고
7에 70번 무한대로 용서하시겠다 라고
일만 달란트 용서하시겠다 라고

우리가 찾아가는 방식인 겨우 사람의 일로 취급해 장난 치는 이웃사랑이 아닌

내가 너를 위해 죽으마 라고 이 배포 넓은
바다 같이 큰 사랑으로
이방인도 돌아오게 하시는
제대로 된 완벽한 거룩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들고온 것들이 다 똥덩어리 였음을
비로소 소경이라고 고쳐 달라고
우는 자로 만드셔서
이 이방인의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높이도록 
죄인의 자리에서 구원자를 외치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