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사 65,13-16).mp3
9.35MB


18-117 다른 이름(새 이름)으로 칭하(구원 받으)리라 (사 65,13-16)


포도송이 즙과 기업 무를 자 (사 65, 8-12)
이사야 2017 2020. 12. 13. 10:33
18-116 포도송이 즙과 기업 (사 65, 8-12)

〈이사야 65:13-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046 쪽, 찬송가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340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4)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15) 또 너희의 끼친 이름은 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사 65:13, 새번역)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 종들은 먹겠지만, 너희는 굶을 것이다. 보아라, 내 종들은 마시겠지만, 너희는 목이 마를 것이다. 보아라, 내 종들은 기뻐하겠지만,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
(사 65:14, 새번역) 『보아라, 내 종들은 마음이 즐거워 노래를 부르겠지만, 너희는 마음이 아파 울부짖으며, 속이 상하여 통곡할 것이다.』
(사 65:15, 새번역) 『너희의 이름은, 내가 택한 백성이 저주할 거리로 남을 것이다." 내 주 하나님께서 너희를 죽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님의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실 것이다.』
(사 65:16, 새번역)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빌며,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도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지난날의 괴로운 일들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를, 내가 다시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 ㉢히, '아멘'』

16절 새번역에서
진리의 하나님을 아멘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 65:16, 새번역) 『땅에서 복을 비는 사람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빌며, 땅에서 맹세하는 사람도 진리이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지난날의 괴로운 일들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를, 내가 다시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 ㉢히, '아멘'』

즉 뭐든지 예가 되고 아니오 함이 없다 라는 겁니다.
결국 이름이란 그 사람의 전체 운명을 말하는데 있어서
진리의 하나님이 예 아멘 되신 하나님이 이름을 갈아버린다 라는 겁니다
뭐든지 예가 되는 이름으로
이삭아 예 예 예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예 예

(고후 1:18, 개역)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 1:15, 개역)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고후 1:16, 개역)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고후 1:17, 개역)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고후 1:18, 개역)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 1:19, 개역)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 1:20, 개역)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갑자기 팝송 예 예 예 가 생각나네요

즉 노래 부르시는 주님과 그 노래에 화답하는 (아가서 노래 중의 노래) 신부된 교회는
공명으로써, 같은 운명으로써, 같이 먹고 자고 마시고, 같은 예, 아멘 만 
외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라는 것은
아니요 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 무조건 예

예 라는 조건을 갖추어서 예가 아니라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예 가 된다 아멘이 된다 라는 겁니다.

죽어도 고go 예 
살아도 고go 예

자 그러나 반대되는 다른이름이 주어지지 않는 자는
그 이름 그대로의 운명 곧 아담
첫아담은 산자 그저 좀비처럼 먹고 살다 죽을 뿐이다 라는 겁니다
살려주시는 마지막 아담으로부터 이름을 부여 받지 
다른 이름을 새 이름을 받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새 이름이란 희생적인 아가페에서 오는게 아닌(의무감을 부여하는 희생강요가 아닌 그 반대)
에로스에서 나옵니다.
즉 율법의 완성인 질투의 사랑 곧 남을 위해 죽을수 있는 사랑은 에로스
곧 결혼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에서만 나오는 겁니다.

가인은 그 이름 그대로의 운명만 그저 먹고 살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벨은
음부의 권세 속에 계속해서 머물수 없습니다
무덤을 열고 나오는 자로써 새이름이 대신 주어집니다.

(창 4:25, 개역)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무덤 으로 검색을 하니 대조 되는 내용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겔 37:12, 개역)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 37:13, 개역)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마 23:29,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 27:61, 개역)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 27:64, 개역)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마 27:66, 개역)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마 28:1, 개역)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 28:8, 개역)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무덤이 없이 따로국밥처럼 구원하시는게 아닙니다
분명히 무덤 속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덤 속에 계속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써는 이미 죽은 신체에서는 행함 실천 조차도 불가능합니다
불가능 하게 할려고 일부러 죽음 속에서 펼치시는 것이 불가능한 구원입니다
모욕적인 구원이란 인간 쪽에서 손을 못 대게 한 구원성사 이다는 거죠

그리고 지난 주 말씀처럼 불가능을 더 더 더 더더욱 불가능하게 할려고
죽음의 사신 애굽왕 바로왕까지 900년 전에 죽은 놈을 소환해서
그 놈 아래에 갇히도록 포로되도록 
사망의 권세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게 만드십니다

아닙니다 나는 사망에 절대로 종노릇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놈이
시드기야 였지요

사망의 종노릇 하지 않으면 은혜가 왕노릇 하는 
놓아주시는 이를 쳐다 볼려고 하겠냐 말이죠

그래서 다들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맨날 시험해 놓고서는 막상 시험하지 않겠데요 글쎄
그리고서는 애굽과 손 잡잖아요

왜냐하면 살겠다 나는 이유 없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라는 생존이
진리의 하나님 보다
임마누엘 보다
아멘의 하나님 보다 먼저 있기 때문에

그 먼저 있는 그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기 위해서
애굽왕을 소환 하는 겁니다.

(히 2:15, 개역)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먼저 죽기를 무서워 하기에 네 맞아요 생존이 먼저 이거든요
종노릇 하도록 포로 되게 하시고

그 포로된 모든 자들을 놓아주시고자
새 이름으로 다가 오시는 겁니다.

결국 다른 이름으로 칭해서 복 주시겠다
다른 방식으로 구원하시겠다 라는 것은

기존의 것으로는 구원이 안된다 라는 겁니다
기존의 것은 뭡니까
애굽의 속성만 드러내는 겁니다
심지어 이스라엘로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도 애굽화 되어버렸거든요
오늘날 교회가 돈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 집단이 된 것처럼 말이죠

다른 방식으로만 구원 됩니다.
이스라엘도 이제 야곱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새로 받았듯이
이제 이스라엘이 아닌 새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새로 받아야 하는데
누구의 운명과 같은 운명이다는 겁니다.
과거 구약에서는 안 보여줬어요
그저 다윗언약 이후로 참선지자들을 통해서 조금 조금
샘플 맛만 보여줬다 말이죠

그럼 누구의 운명과 하나된 마음 입니까?
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그냥 예수님이 아니라
십자가를 다 이루신 예수님 이다는 거죠

그럴때만 다른 이름을 부여 받는 겁니다
대신 매 맞은 분 덕분에 말이죠

이 대신 매 맞은 분을 거부하고
이 큰 크나큰 7에 70번 용서를 거부하고
자기가 남을 7번 용서해서 구원받겠다 라는 식은
새 이름을 거부하겠다 라는 거죠
기존의 이름을 갈아버리고자
애굽왕 바로왕을 소환하시는 이 하나님의 일 조차도 관심 없고요
그저 사람의 일로만 
그저 생존 생존 밖에 모르는 부자처럼
창고를 늘려서 우와 내 영혼아 그 동안 수고했어 이 창고 늘린다고 얼마나 부지런히
바르게 살아왔니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키고 말이야

이게 애굽왕 바로왕도 자나깨나 자기 백성 배불리 먹이는 것이였다 말이죠
왜? 자기가 선악을 쥐고서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베풀겠다 라는 심뽀로 말이죠

자기 건들면 저주하고 악한 놈으로 규정하고
자기 안 건드리면 축복하고 선한 놈으로 규정하고 말이죠

이게 인간의 신 개념입니다 신을 인간의 손으로 조작한 거죠

그런데 막상 성경을 보니까 그런 인간의 머리 아이디어에서 나온 신과 정반대가 바로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 라는 예수님입니다

주여 죽어주세요 오냐 죽어주마 라고
인간의 선악과 정반대입니다.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말이죠
이 운명에 함께 동행 할 수 있겠니
이것이 진리의 하나님
아멘의 하나님 이다는 겁니다.
얼마나 미쁘면
이 사망을 좀 건드려 해결해 주세요 라는 의미로써
주여 죽어주세요 라고 기도 요청하는 겁니다.
마리아와 한나의 기도가 사망권세에 대한 폭격요청이다 말이죠

창녀 마리아는 아에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듯이
향유를 비싼 향유를 머리카락으로 젖셔서 예수님의 발을 씻더라 말이죠
시체 딱는 겁니다.

이 사망 권세 좀 이겨주세요 저는 이 사망 권세 속에 갇혀 있습니다 라는 요청이다 말이죠

그런데 다들 한결 같이
배불러 터져 있고
목마르지 않으니까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고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이런 사탄의 일을 들이내밀더라 말이죠

아니 갇힌 놈 맞냐 말이죠
포로된 놈 맞기는 맞냐 말이죠
포로된 놈이 무슨수로 십일조를 내며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키냐 말이죠

그럼 말라꼬 포로된 놈도 없는데 예수님이 말라꼬 오냐 말이죠
사망에 종노릇 하는 자를 놓아주러 오신 분이 무슨 의미가 있냐 말이죠
구지 구지 일부러 의도적으로
900년 전에 죽은 애굽왕 바로왕을 말라꼬 불러재끼냐 말이죠(에스겔 기준)
왜 1300년 만에 애굽왕을 말라꼬 부르냐 말이죠
모세 또한 동시대 인물로써 변화산에 1300년 만에 부른 이유는

주여 죽어주세요 이 부르짖음 만을 목적으로 불렀다 말이죠

주님이 애굽왕을 풀었거든요

자 그럼 기존의 방식으로는 구원 못 받아요

다른 방식 곧 다른 이름으로 구원 받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다른 이름으로 부르신 자만이
저들 애굽왕 손에서 건져주시듯이 말이죠

그러니 혼인잔치는 오히려 이런 원수들을 풀어버림으로써
그 원수들 보란 듯이 펼쳐지는 질투의 사랑이다는 거죠

죽음 속에서 나와서
무덤 속에 나와서 새 이름 다른 이름으로 불리움을 받는 겁니다.

즉 부르신 자가 있다 라는 겁니다
부르신 자는 신랑이고
부르심을 받은 새이름을 다른이름을 부여받은 자가 바로 신부 이다는 거죠
새 이스라엘

이사야 서에서는 남은자만 돌아오리라 라고 했듯이
기존의 이스라엘 조차도 안 됩니다
남은자 라는 새 이름을 다시 부여 받아야 합니다
누구처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는
이방인이 구원 받은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다 죽여놓고서 ~~~~~

네 맞습니다 새출발하는 겁니다
창조주를 모르고도 천국에 갈수 없잖아요?
창조주를 알려줘도 자기 멋대로 창조주를 믿고 있으니
단 한번도 이스라엘은 창조주를 믿은 적이 없이
그저 선택된 민족이라는 껍데기만 잔뜩 취할 뿐이지
알맹이는 냅따 다 버리더라 말이죠

큰 것은 다 버리고 (7에 70번 용서를 다 버리고 작은거 남을 7번 용서하겠다)
장난치는 깨작 깨작 그저 사적인 개인구원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타짜 라는 영화의 아귀가 오함마를 가지고서
애굽왕 바로왕을 오함마로 가지고 와서 (마치 앗수르를 몽둥이로 삼으셨듯이)
그 손모가지를 거는 겁니다.
동작 그만! 어디서 장난질 이냐 라고 말이죠

즉 창조주를 무시하는 것은 애굽왕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역시나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진리는 그들이 관심이 없고
알맹이는 빼 버린채 껍데기만 잔뜩 채우더라 말이죠

(계 3:14, 개역)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 3:14, 새번역) 『"라오디게아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아멘이신 분이시요,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 ㉣또는 '천사' ㉤또는 '기원' 또는 '근원'』

애굽왕처럼 토기장이 곧 창조주의 자리에 앉듯이
이스라엘 또한 모세의 자리에 앉더라 말이져

그러나 정작 미쁘신 분은 
진리는 높은 자리가 아닌 그 반대의 자리
죄인의 자리에 앉아서 창조를 보여주시더라 말이죠

누가? 진리의 하나님, 아멘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 말이죠

진리란 아멘이란
아까 예만 있고 아니오 함이 없다 라고 했잖아요

(고후 1:18, 개역)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 1:19, 개역)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인간에게는 진리가 나올수 없고
아멘이 나올수가 없어요
그래서 맡길수가 없는 겁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 27:46, 개역)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모든 인간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의해서 버림받은 자로 규정이 되어버린 겁니다
왜? 인간에게서는 진리가 나올수가 없기에
아멘이 나올수가 없기에

이런 버림받았음을 예수님을 통해서 봐야 하는데
다들 선택 받았다 라고 나오는 모습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청년이든
바리새인이든
맏아들이든
가인이든
다들 선택 받을 짖을 했다는 그 내용물들을 잔뜩 들고오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해석하고 말씀을 해석해서 실천하고
그저 하나님에 대한 열심만 있지
그것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오독을 하더라 말이죠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정작 예수님은 이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아닌
요나의 표적이라는 버림받아 마땅한 십자가를 잔뜩 들고오시는 겁니다

하나님께 열심으로만, 섬김으로만 하면 된다고 보는데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다 말이죠 진리를 아멘을 쫓은 것이 아니다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시드기야의 사고방식과 똑같은 거지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더라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완악한 모습이다는 겁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자기가 섬기는 그 열심으로만 
말씀을 해석하다 보니

왜 나는 버림 받아 마땅한 죄인인가를 십자가를 통해서 못 보는 겁니다
십자가는 이유 없이 인간은 버림받아 마땅한 자 이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정 그러면
모세의 자리 안 앉던가
안 앉아 보시던가

선악을 포기 하시던가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의 사고방식으로 살수 없고
촘촘하게 이 세상의 원리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래야 생존을 한다 말이죠

여기에 다른 방식의 구원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을 인정하라 말이죠

아 안되는 구나
구원은 물 건너 갔구나
내 쪽에서의 숙제는 더 이상 안 통하는
그저 자기 숙제하기 바쁜 심판받아 마땅한 세계인
애굽왕 바로왕 자칭 토기장이라고 우기는 자들의 세계에
포로된 입장이구나

그러나 보니 그 포로된 티를 팍팍 내는 겁니다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께 대해 열심이 특심이고
저 마다 예수님께 다가와서 이런 의를 쌓았으니 구원받을만 하지요 라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따위 사적인 구원 따위를 바라면서
깨작 깨작 장난질을 치는 가운데

예수님은 아주 아주 큰 것
악마의 손에서 너희들을 구원하러 왔다 라고
그 악마의 내막을 보여주니까
다들 자기 모습들이다 말이죠

아니 내가 말씀을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는데 그게 악마 라꼬?

네 악마 맞아요

포로된 줄도 모르고 뭐 지켰다고 내밀고 있으니
악마가 아니면 무슨 수로 지키냐 말이죠
악마만이 지키거든요
절대로 막 살면 안된다 라고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하잖아요

예수님은 버림받았다니깐요 십자가에서 말이죠
이 십자가를 무시하고
이 진리를 무시하고
이 아멘을 무시하고
이 창조를 무시하고

저번에 창조주가 너 누군지 모르지
알며주마
창조주는 자기가 창조한 것을 버리는 심판하시는 분이 창조주야 라고
이스라엘은 아무리 자기가 하기 싫어도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공중분해 되는 포로 되어 쫄딱 망함으로써
창조주가 이런 심판의 주 이심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어라 그런데 정작 그 심판 속에 들어가 보니

내 심판 받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 죽음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줄
불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춤추고 노래할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죽음 속에서 생명을 보게 되었고
스올 무저갱 지옥 속에서 길을 보게 되었고
사막 속에서 진리를 아멘을 만나게 되더라 말이죠
내 죽음 이 사적인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되는

진짜 아멘은 예수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창조주를 내 손으로 만날길이 없으니까
그 죽음 속에서 창조주를 만나는 겁니다
아니 죽음 조차도 누가 만들었는데 말이죠

누구를 두려워 해야 합니까
몸과 육체를 죽이는 자를 두려워 해야 합니까 (애굽왕 바로왕)
아니면 영혼 까지 멸하시는 주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까?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눅 12:4, 쉬운)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친구들아, 몸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진짜 진리 곧 아멘은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우리에 송아지 없어도
아멘만을 아멘 한다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한다
이것이 아멘이다 라는 겁니다

(합 3:17, 현대인) 『비록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으며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나지 않고 밭에서 농작물이 나지 않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현대인)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 되시므로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합 3:13, 개역)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합 3:14, 개역)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합 3:15, 개역)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합 3:16, 개역)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 3:17, 개역)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개역)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맡기는 겁니다

버림 받기 위해서 선택 받은 것인데

구원받기 위해서 선택 받았다 라는 것을 다들 들고오니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표적 기적 구원을 줘야 합니까?

요나의 표적 곧 버림받는 십자가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데

여전히 내 구원만 따지고 있지, 깨작 깨작
알맹이 버림 받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3일 만에 다시 살리신
이 창조
이 진리 
이 아멘을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더라 말이죠

우리는 바로 이 아들을 위해 태어난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뜻에 맞게 아들이 태어나 인간의 뜻에 맞도록 해주길 바랬는데
거꾸로 였다 말이죠

아들에게 맞추고자 하나님 아버지 조차도
그를 죽이시기로 작정한 것을 기뻐했다 라고 하실 정도이니
얼마나 인간이 바라는 구원과 안 맞습니까?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이 버림받는 판국에 우리는 내 구원 내 돈 내 돈 돈 돈 구원 구원 외치고 있으니 말이죠
비로소 욥이 이 버림받는 십자가의 표적을 보고
생일을 저주하고(곧 자신의 출발지 인 거죠)
머리를 땅에 쳐박고 잿더미를 뿌리면서
다시는 피부병 아토피 고쳐 달라고 하지 않는 겁니다

내 죽음은 죽음 근처도 못가는 것이거든요

허걱 

놀라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저주를 보고 비로소
진리를
아멘을
창조를 보게 되었으니 말이죠

바로 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새로 의를 형성해서 만드신 의로운 옷으로 흰옷을 입힌
입혀짐을 당한 자가 바로 새 이름을 곧 다른 이름으로 칭함을 받는
다른 방식의 구원을 받은
새신부입니다

네 맞아요 십자가의 피로 만든 흰옷을 입은 거룩한 신부 새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 이 신부는 예수님의 피만 자랑할 수 밖에 없어요

이 부조리한 스캔들인 십자가를 말이죠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외친 모세처럼 말이죠

안그러면 또 우리는 이 다른 이름의 방식이 아닌

기존의 방식으로
처음 아담의 방식으로 구원을 추구할려고 할꺼다 말이죠

아니 버림받아 마땅한 자임을 전혀 모른채로
또 예수님을 또 십자가에 또 죽일려고 말이죠
내가 의를 쌓아서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것
나의 선악의 판단
내가 남을 7번 섬겨서 나온 성경해석이 왜 엉터리인줄
십자가를 통해서 못 보니까 말이죠

우리는 도리어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알맹이 
진리
아멘
창조를 통해서 곧 십자가 라는 큰 의미를 통해서

깨작 깨작 장난질 하는 종교오락 중독 게임에서 손 떼고
이 십자가에서 나온 새 이름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태어났기에 말이죠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요 3:30, 새번역)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 ㉣해석자에 따라 36절에서 인용을 끝내기도 함』
(요 3:30, 공동)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 3:30, 쉬운) 『그분은 점점 더 위대해질 것이고, 나는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요 3:30, 현대인) 『그분은 점점 번영해야하고 나는 점점 쇠퇴해야 한다.』
(요 3:30, 현대어) 『그분은 더욱더 위대해지고 나는 더욱더 작아져야 한다.』

(요 3:28, 개역)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요 3:29, 개역)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 3:30, 개역)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1, 개역)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 3:32, 개역)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요 3:33, 개역)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요 3:34, 개역)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요 3:35, 개역)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요 3:36, 개역)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