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사 7,10-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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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8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사 7,10-16)


다른 이름(새 이름)으로 칭하(구원 받으)리라 (사 65,13-16)
이사야 2017 2020. 12. 19. 22:00
18-117 다른 이름(새 이름)으로 칭하(구원 받으)리라 (사 65,13-16)

〈이사야 7:10-16, 개역한글, 구약성경 974 쪽, 찬송가 123장 저 들밖에 한 밤중에, 
113장 그 어린 주 예수〉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12)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사 7:10, 새번역) 『주님께서 아하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사 7:11, 새번역)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사 7:12, 새번역) 『아하스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사 7:13, 새번역) 『그 때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들으십시오. 다윗 왕실은 백성의 인내를 시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이제 하나님의 인내까지 시험해야 하겠습니까?』
(사 7:14,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 ㉢칠십인역을 따름. 히, '젊은 여인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사 7:15, 새번역)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가 될 ㉤때에, 그 아이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입니다. / ㉤또는 '때까지'』
(사 7:16, 새번역) 『그러나 그 아이가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나이가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미워하시는 저 두 왕의 땅이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마 1:23, 새번역)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사 7:14(칠십인역)』

(미 5:3, 공동)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 ㉠이사 7:14참조.』
(마 1:23, 공동)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 ㉠칠십인역 이사 7:14.』

(미 5:3, 개역)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미 5:3,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미 5:3, 공동)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 ㉠이사 7:14참조.』
(미 5:3, 쉬운) 『주께서는 진통중인 예루살렘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백성을 바빌론에 남겨 두실 것이다. 그런 뒤에 포로로 끌려갔던 그의 형제들이 유다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미 5:3, 현대인) 『이스라엘의 수난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이방인들의 손에 맡겨 두실 것이며 그 후에 흩어져 있는 그의 동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 5:3, 현대어) 『그러므로 그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려 두실 것이다. 그후에 유형지로 끌려가서 살던 사람들 중에서 남은 사람들이 고국에 머물러 있던 동포들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성경을 살펴 볼때에는 항상 그 반대되는 한 세트를 염두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임마누엘에 대한 겁니다
즉 이 임마누엘의 의미를 알려면
반드시 그 반대되는 가짜 임마누엘의 의미가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작동이 된 것까지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아니 이스라엘 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 어디있겠냐 말이죠
특히 거짓선지자일수록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고 외친다 말이죠

그렇게 이 가짜 임마누엘이 어떻게 이스라엘 속에 활동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마치 마태복음을 우리가 살펴봤듯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거짓선지자 곧 독사의 자식들로써
이런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고 외치면서 가르쳐서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했다 라는 겁니다.

이들의 신학의 핵심은 바로
자기 의를 쌓아서 구원받자 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사상인거죠
남은자 사상 곧 임마누엘

(사 7:3, 개역)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사 7:3, 새번역) 『그 때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그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 윗못 물 빼는 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뭐야 그럼 같다는 말이네 네 같지요
마귀도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고 외치고 있고
참선지자 이사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고 외치고 있고

그러니 이 두 하나님이 직접 부딧혀야 하는 겁니다

한 쪽 임마누엘은 육체가 외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고
다른 한 쪽 임마누엘은 바로 그런 육체가 외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를 깨뜨리고 
다른 의미로써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인데 이것이 바로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라 라는 겁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니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내 하나님과 함께 한다 인데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 이다 라는 거죠

자손 개념은 아버지가 있고 그 다음 자식이 있기에
자식 자손은 아버지의 뜻에 맞게 태어나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의 주 개념은 바로 이런 육체의 고리를 끊는 의미입니다
즉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태어나야 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
곧 산 자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육체의 단절성으로써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들 곧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임마누엘인데

여기에 인간의 임마누엘은 어떻게 해서든 육체의 구원을 바래서 우리와 함께 한다고 외친거다 말이죠
거짓선자자들의 외침이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라고
그러나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나 평강이 없는 거죠

참선지자는 이 육의 단절인 성령으로 잉태된 아들의 징후
증상물로써

육으로부터 죄 로 취급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방금 어머니와 성탄절(아무 의미 없습니다) 기념으로 에스더 영화를 봤다 말이죠

며칠 전에는 벤허를 봤는데 말이죠

그 영화를 보다 보니 질질 끌다가 막판에 빵 하고 퍼트리던데
아주 재미 있는 것을 하나 발견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딜 가나 미움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죄악 덩어리 인 거죠

다들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파서 달려들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담은 그릇의 특징입니다

정작 인간 본인들이 미움 받아야 함을 마땅히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의 증상물이 등장하니까 아무 이유 없이 미워 죽습니다


바로 그 미워 죽이고자 만든 유대인 말살 죽는 날이 바로 구원의 날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주시고자
곧 주의 이름 이죠
1300년 전에 죽은 바로왕을 끄집어 내시는 겁니다.

하만을 끄집어 낸다 말이죠
이 하만이 결국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이름
주의 이름에 주선을 해 주는 역할 이다는 거죠

이스라엘은 하만의 위치인 모세의 자리에서 예수님 곧 주의 이름을 만나는게 아니라
임마누엘을 만나는게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지난주 마태복음에서 겉과 안을 이야기 했는데 겉을 옳게 여긴다 말이죠 바리새인이 독사의 자식들이 말이죠

그럼 유대인을 어느 자리에 속의 자리에 놓는데 겉은 틀려먹은 자리
위에서 언급한 절망의 자리
죄인의 자리
미움 받는 자리에 놓는 겁니다.

그래야 겉으로는 옳게 여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아야 하는 애굽왕 바로왕이 한 세트로 구성하듯이
하만이 그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자신이 높아지는 그때에 미움 받는 자로 드러나야 하고

유대인은 그 하만이 유대인을 말살할려는 그 날만이
오히려 구원의 날이 되는
죽으면 죽으리라가 옳았다 가 되는 겁니다.

이 죽음의 자리에서만 만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다 라는 거죠
성전의 기능 곧 요나의 표적에서
요나가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잖아요
그 성전에 뭐가 있습니까? 이름이 있다 말이죠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되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다 라는 겁니다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다른 표적 다른 구원은 없다 라는 거죠 십자가 말이죠

그러니 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인간의 육 쪽에서 펼치는 모든 구원의 방식을 단절 시키는 겁니다

오로지 주의 이름 곧 죄 가 되어버리신 예수님으로만 구원이 성사 되도록
스올 무저갱 그 지옥 속에 집어넣어서
애굽왕 속에 집어넣어서
마귀 속에 집어 넣어서
음부의 권세 속에 집어 넣어서

이것이 저들이 미움받은 모습이다 라는 거죠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모습

그 속에서 야곱이 왜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되었는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선악에서 무조건 악마들은 선의 자리에 놓여지고
남은자를 무조건 악의 자리에 놓는 입장에서

주의 이름은 그 죄의 자리에 놓여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겁니다
마치 성전측량 거룩측량 주의 이름 측량 할때에
가까이 있는 성전 가까이 있는 대제사장이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가장 끝에 있는 죄인 중의 괴수가 이 주의 이름에 딱 맞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써 신부로써 신랑에 주의 이름에 딱 맞는 한 몸
곧 신부가 되듯이 말이죠

그러니 저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의로움으로 겉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고

바로 그런 의 추구 때문에
상대적은 미움의 자리에 놓여지는 고아 과부 나그네가
남은자로써 주의 이름이 저 죄의 자리에
죽음의 자리에

생명의 길을
진리의 길을
부활의 길을 내심으로 인해서
그 섬기심으로 인해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해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자리로 나아가는 겁니다.

여기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을려고 하게 되더라 말이죠
더럽거든요 죄악이거든요 죄인 중의 괴수가 되거든요

그러나 성도는 주의 이름을 말하기 위해서
그 더러운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 놓여져서
주의 이름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십자가가 낳아버린 증상물
십자가가 잉태한

마치 아버지 없이 태어난 
처녀가 낳은 아이가 구원을 약속을 이루듯이
십자가가

인간의 모든 종교적인 테크닉의 방식을 끊고서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를 걸림돌이요

왜? 마귀가 그랬잖아요 자신이 옳아야 하는데
저 더러운 죄인이 옳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걸려넘어지는 겁니다
자기 자리인데

유대인은 그야말로 하만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써야할 화관을
죄인들이 쓰게 되니까 특히 사마리아인이 쓰게 되니까
걸려 넘어지는
거리끼는 걸림돌 이다 라는 말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진다 라는 겁니다
그 자기 꾀가 바로 자신의 의로움이 함량미달의 666이 되는 줄도 모르고
음녀처럼 굴다가 넘어지더라 말이죠

맏아들 곧 첫째는 겉을 옳게 여겼지 속이
탕자로 인해 드러나 버렸습니다 속이 얼마나 더러운지

그렇다고 탕자가 깨끗하다는 말이 아니거든여 심심하면 그러면 방종이 옳냐 라꼬 따지는 자들의 특징이 예수님 곧 주의 이름이 죄가 되셨다 라는 것을 안 쳐다 보니까
그것이 질투의 사랑을 안 쳐다보니까
울리는 꽹과리를 자꾸 따지는 겁니다 자기 소움이 더 시끄럽다 라고 자랑하듯이
탕자를 무지 무지 경계해요 글쎄
걸림돌이 되었다 라는 증거죠

탕자가 걸림돌이 되어버린 겁니다
십자가가 낳아버린 증상물에 툭 하고 걸려 넘어져버리듯이 말이죠

자 이렇듯이 육체로 아무리 이스라엘 이라고 해도
육은 육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매일 매일 주의 이름 속에 놓여져서
이스라엘 됨을 외치는게 아니라
주의 이름
곧 죽으시는 주님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임마누엘이 저들에게 도리어 거리끼는 걸림돌이 된 거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라고 아무리 끌어와서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것을 보이고자
겉으로 옳도록 보이고자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은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를 구체화 해 버렸습니다

아니 십자가에 죽은 하나님과도 함께 해야지요
죽으면 죽으리라도 되어야지요
저 가난한 자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주어야지요
못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 버리면 그런다고 십자가가 낳은 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 정도로 죄 덩어리이다는 것에
그 원수 됨에 있어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러 오신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아무도 부르지도 않는 이름으로써 말이죠ㅕ

이 이름은 주가 스스로 이루시는 겁니다
그 기능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감당하시고자

또 하나님도 그가 상하게 되기를 원하셨도다 라고 말이죠

이것만이 인간의 선악구조를 뒤 바뀌는 겁니다
십자가만이 말이죠

인간이 최고로 악으로 여겼던 그 하나님의 저주가 옳았고
인간이 최고로 선으로 여겼던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것이 바로 무조건 틀렸다 라는 것을

하만을 소환해서
애굽왕을 소환해서

그 차이로써

이 주의 이름
임마누엘을 펼치시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시러 왔다 라는

이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주의 이름에 의해
나의 이름이 삭제 당하고 갈아 엎게 되듯이 말이죠.

이 이름 다른 이름으로 주어지시는 다른 구원의 방식인 이 십자가는

겉과 속을 뒤 바뀌어 놓듯이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게 하시는

결국 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의 이름만이 옳았다

이 이름만을 
이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존재가 아닙니다 비존재입니다
이 주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비존재 취급 받는 겁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걸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임마누엘이 다들 무시하는 이 이름이 우리는 구원하시는 겁니다

내 구원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 왜 구원 받으셔야 하는가를 외치라꼬 말이죠
(나 라는 존재는 구원할 필요가 없습닉다 
존재를 구원해 봤자 또 상대방을 존재로써 대상화 해 버립니다 
자기가 우상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대상화 하는 우상화 하듯이 말이죠
결국 기능은 한 몸입니다 존재가 없어요 기능으로써 한 몸을 나타내는 겁니다
나는 죽고 그가 내 안에서 살도록 하겠다 라는 기능이 한 몸입니다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주의 이름을 위해 우리는 태어난 겁니다자아가 필요가 없이 끝에서 종말에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태어난 거꾸로 태어난 종말의 사람이
새 노래 꾼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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