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거짓제사(번제와 제사)냐, 수치를 당치 않는 피 복음이냐 (사 66, 3- 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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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 거짓제사(번제와 제사)냐, 수치를 당치 않는 피 복음이냐 (사 66, 3- 6)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를 권고하심 (사 66, 1- 2)
이사야 2017 2021. 1. 24. 10:56
18-121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를 권고하심(긍휼히 여기겠다) (사 66, 1- 2)

〈이사야 66: 3-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047 쪽, 찬송가 9장 거룩 거룩 거룩, 78장 참 아름다와라〉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5)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사 66:3, 새번역)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자와 같다. 양을 잡아 희생제물로 바치는 자는 개의 목을 부러뜨리는 자와 같다.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의 피를 바치는 자와 같다. 분향을 드리는 자는 우상을 찬미하는 자와 같다. "이러한 제사장들은 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뜻대로 한 자들이다. 오히려 가증한 우상숭배를 즐겼다. 가증한 우상들을 진정으로 좋아하였다.』
(사 66:4, 새번역) 『그러기에, 나도 나의 뜻대로 그들을 혹독하게 다루어, 그들이 겁내는 것을 그들에게 들이닥치게 하겠다. 내가 그렇게 불렀으나 그들이 응답하지 않았으며, 내가 그렇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가 보는 데서 악한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골라 하였기 때문이다."』
(사 66:5, 새번역) 『주님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를 미워하는 백성은 너희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너희를 따돌리며, 이르기를 '주가 영광을 드러내어 너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우리가 한 번 볼 수 있게 하여 보아라' 하고 말하나,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사 66:6, 새번역) 『성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오며, 성전으로부터 소리가 들려 온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님의 대적들에게 보응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막 9:48, 새번역)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그, '게헨나' ㉢사 66:24 ㉣그, '그들의 벌레들'』
(행 7:49,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 ㉠사 66:1; 2』

(마 5:34, 공동)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 ㉠이사 66:1.』
(막 9:48, 공동)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이사 66:24.』
(행 7:49, 공동)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하늘은 나의 옥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어떤 집을 지어줄 것이며 내가 쉴 곳이 어디냐? / ㉠이사 66:1-2.』
(살후 1:8, 공동) 『㉠주께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거부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 ㉠시편 79:6; 이사 66:15; 예레 10:25; 출애 3:2.』

(사 66:1, 쉬운)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심판하신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은 내 보좌요, 땅은 내 발판이다. 그러니 누가 내 집을 지을 수 있겠으며, 내가 쉴 곳이 어디 있겠느냐?』

(사 66:1, 현대어) 『[그릇된 예배를 심판하심] 여호와께서 경건한 이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거짓 예배에 빠진 이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셨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인데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디에 성전을 지을 수 있겠느냐? 내가 들어가서 쉴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
(사 66:5, 현대어) 『[시온의 신실한 백성에게 주는 위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성도들아, 너희는 모두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너희는 나에게 충성하기 때문에 동족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너희를 조롱하고 있다. `너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뻐하는 꼴을 우리도 보고 싶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어 연관된 것을 올리다 보니
현대어 번역을 봐야 겠다 싶군요

(사 66:3, 현대어) 『그런데 너희는 지금 이방인들의 습관에 따라서 나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소도 잡아서 바치고 사람도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양도 잡아서 바치고 개도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곡물도 가져다 바치고 돼지의 피도 뿌린다. 그들은 나에게 분향하고 우상들에게 가서도 제물을 바친다. 그들은 언제나 제멋대로 하는 것들이며 내가 미워하는 것들을 모두 골라서 하는 것들이다.』
(사 66:4, 현대어) 『그러므로 나도 그들이 당할 재앙들은 모두 골라서 내리고 그들이 치떨리게 두려워하는 것들을 모두 그들에게 내리겠다. 내가 불렀으나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며, 내가 미리 경고하였으나 듣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너희는 내가 악하게 보는 일들을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만 골라 하여 나를 모욕하였다.'』
(사 66:5, 현대어) 『[시온의 신실한 백성에게 주는 위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성도들아, 너희는 모두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너희는 나에게 충성하기 때문에 동족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너희를 조롱하고 있다. `너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뻐하는 꼴을 우리도 보고 싶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사 66:6, 현대어) 『이미 예루살렘 도성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성전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함성이다! 너희를 조롱하는 원수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려고 함성을 지르며 성전에서 전쟁을 선포하셨다.』


복음은 반드시 거짓제사와의 차이점으로써 증거가 됩니다
그러니 거짓된 제사의 내막들이 나타나야 하고
또 그 거짓 제사에 모든 사람들이 장악 당한 상태에서
다들 그런 넓은 길로 가는 상황에서

아무도 가지 않는 복음이 좁은길로써 무시받음 속에서 그 차이로 드러나는 겁니다
즉 무지 무지 싫어하는 모습으로 오는 복음이다 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드리는 제사 번제 예배 기도 등등은 찬양도 포함해서 인간의 믿음과 행함이라는 신앙은
곧 가치있고 높은 것이고 거룩으로써
선을 가까이 하고 악을 멀리한 모습으로써 갖추어서 다가오고
그런 것을 교회에 채우는 식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 반대 이다는 겁니다

항상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개념은
오히려 반대로
수치를 당치 않는 구원을 말하는 겁니다

이상하잖아요
모든 종교는 높아지는 의미로써
쌓고 쌓고 쌓는
자신들이 쌓아 올린 의로움 거룩이 점점점 많아지고 높아지고 넓어지고 길어지는 개념인데

정작 복음에서의 구원은

수치를 당치 않게 하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이사야 이오팔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계 21:4, 공동)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이사 25:8.』


자 이렇게 되면
수치가 뭔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앞의 글 마태복음 무너지는 성전을 통해서
인간들은 자신의 가치를 모든 거룩을 집결시키는 교회를 통해서
자신과의 동일성을 추구합니다
아름다운 것들만 모아놓았으니 말이죠

이런 현실에
오히려 수치는 멀리하고픈 것들이다 말이죠 제거꺼리 말이죠

그러니 고아 과부 나그네가 교회에 오면 골치 아픕니다

교회가 무슨 놈의 복지센테 장애인 센터냐 라는 식으로 말이죠

또 역설적이로 고아원처럼 고아들을 모아서 교회로 운영함에 있어서
그것이 거룩한 모습이다 라고 나오는 자들 또한
수치를 멀리하는 것과 같은
선을 취하고 악을 멀리하고파 이런 선한 일들을 한다 라고 나오는데 이것 역시
거짓 제사이다 라는 겁니다

더더욱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라든지
약자 코스프레 라든지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케 한다는지

이런 것들이 왜 교회와 연관이 되어야 하느냐 라는 겁니다

오히려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무너지는 세상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이 되는 무너짐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참된 교회의 참된 제사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수치를 당하지 않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교회이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 눈에 보이는 교회는 정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에 소를 잡아서 제사를 바치듯이 
이방인의 제사와 다를바 없는
껍데기만 거룩으로 가득채운 식이다는 겁니다

진정한 거룩은 곧 하나님의 의는
또 다시 구절을 올리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곧 거룩 입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계 21:4, 공동)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이사 25:8.』

죽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죽음을 멸망시키는 것
사망을 멸망 시키는 것

자 이렇게 되면
인간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의 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죽음을 멸망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망 권세를 도리어 확장 시키고 있는 것이 되니까 말이죠

성전에서 두 사람의 기도중
바리새인의 기도인
십의 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살아 있는 자 마저도 죽이는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하다 라고
살인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게 살인이 아니고 뭡니까

내 죽을께 너 살아라 가 아니라
내 살란더 너 죽어라 라는 살인이 바로 인간들의 믿음이요 행함이요 예배 찬양 기도 금식 이웃사랑을 위장한 이웃살해이다는 거죠

그럼 너는 삐딱하게 말할게 아니라
그럼 너는 어떻게 하는지 보자

뭐 어떻게 하기는 뭐 어떻게 해요
세리처럼 죽은자의 자리에서
주여 저의 죄를 병을 고쳐주소서 라고

도리어 이 사망을 가지고 와서 해결해 달라고 
주님께 숙제를 떠 넘겨야 한다는 겁니다

왜 자꾸 너의 숙제는 그럼 뭐냐 라고
인간 숙제의 출발을 왜 보여줄려고 하냐 말이죠

그것이 자꾸 인간들이 주장하는 권리 이거든요
교회에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쌓아서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권리가 있다는 냥 말이죠

그러니 주님의 잃어버린자를 찾으러 왔다 라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겁니다
주님의 숙제를 안 보고
자기 숙제만 보더라 말이죠

자기 숙제 그거 날라가버리지 않으면
주님의 숙제를 볼 리가 없다 라는 겁니다

주님의 숙제는
곧 하나님의 의는

사망 권세를 죽이는 겁니다

자 인간의 의는 이 사망을 없앨 마음이 추호도 없고
왜냐하면 자기가 남을 죽여야 자기가 사니까 말이죠

너 더러운 매국노 세리를 죽여야
자신의 거룩이 가치있게 드러나니까 말이죠

고로 인간의 믿음이란 살인의지일 뿐이다는 겁니다
제사를 드릴려면
제물을 바쳐야 하니까 말이죠
내가 잘 될려면 희생물을 바쳐야 하니까 말이죠

그런데 이 사망 자체를 없애면 되겠냐 말이죠
아예 사망 자첼흘 없앨 마음이 아예 없는 겁니다

하지도 않을 뿐더라 할 수도 없다 라는 겁니다

뭐뭐 ~~ 하지도 않을뿐더러 , 뭐뭐 ~~~ 할 수도 없다

우리 속에 그런 마음 자체가 아예 없어요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로 내 속에 선함이 없다
즉 살인의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자기의 의로움 만 쌓는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기도와 다를바 없는 중언부언이듯이
이방인의 제사와 다를바 없는 거짓제사이다 라는 겁니다

사망 자체를 없애는
하나님의 의에는 관심이 아예 없다는 것이
무너지는 교회요 무너지는 세상이다 라는 겁니다

마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율법을 쥔 남자들이

그 여인과 간음한 남자를 잡을 마음이 추호도 없는 것처럼
또 이혼증서를 모세에게 써 내라 라고 완악한 마음을 추구하는 남자들이
아내와 바람난 남자를 잡을 마음이 없듯이 말이죠

만약 깡패처럼 강한 남자이면 바로 꼬리를 내릴테니
무슨 수로 잡겠냐 말이죠
그러니 자기 보다 못한 연약한 여자를 추궁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깨끗한 여자와 결혼할 빌미를 법적으로 합법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자신은 여전히 거룩하고 깨끗하다를 유지하겠다 라고 말이죠

그것을 아무도 음란이라고 하지 않는데
예수님은 그게 바로 음란이다 라고 아예 대놓고 판을 뒤집어 버리시는 겁니다

어떤 누구도 법으로 가면을 쓴
거룩으로 가면을 쓴 인간의 악마성을 시원하게 발가벗기는
살인의지를 들추어내는자가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니 가면을 유지할려면
기존의 것을 유지할려면
모든 것을 무너뜨리러 오신 예수님을 가만히 두면 될까요?
그것 마저도 아시면서 그들은 더더욱 법을 더더더 더 더 더 높이 높이 세워야만 하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걸려드는 인간의 속임수 이어야 하니까 말이죠
앗수르가 높이 높이 영광 스럽게 되어야 하듯이 말이죠

자 이사야 마지막 장 66장에서

주님은 인간의 거짓제사의 내막과
살인의지가 아무리 인간의 거룩과 의로움으로 포장이 되어 있다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법으로 더더욱 더 더 더 포장이 겹겹으로 되어 있으면 았을수록

십자가라는 새언약을 말하는데 있어서 더더욱 활용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사망의 권세 이니까 말이죠


한번은 군대가기 전에 순둥이처럼 촌스러운 시골친구였던 동기가
군대 다녀온 뒤에 깡패처럼 껄렁 껄렁 거리면서 갑자기 변했는데
복학후에 처음 나눈 말이 
신천지 초창기인데
청도? 청송? 출신인데
신천지는 그때는 장막회 였으니까
황금성전을 너희는 있니 우리는 있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더라 말이죠

바로 이런 사고방식처럼
교회를 다녀봐도 장로들의 사고방식이
심심하면 일천번제를 우와 우와 그 정도로 드릴정도로 무지 강조를 하던데
그럼 얼마나 피 바다가 되겠냐 말이죠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의 위치인 나 장로이다를 주장하고픈 거다 말이죠
나 목사이다처럼

그게 다 나 살인자 이다를 마치 대 놓고 자랑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놓고 뭐 조상때로 돌아가면 선지자를 안 죽였을꺼다 라구요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굴 속일려구

십자가 자체가 우리는 살인자 이다 라는 건데 말이죠

그 증거 아닙니까

이미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 살인자입니다 나 의롭지요 거룩하지요 라고 말하고 있으니

누가 그래 너 의롭구나 너 거룩하구나 라고 속아 넘어가겠습니까

어라 그런데 다 속아 넘어가요

안 속아 넘어가는 놈 교회에서 나가라 라고 해요 글쎄

심심하면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한다 라고 얼마나 세뇌를 시키는데 있어서
저에게 강요하던데 정작 저에게 하는 말인데 저는 안 속는데
옆에 듣던 자들이 벌벌 떨면서 세뇌가 되는 것을 보고 놀랬어요
아니 자기들에게 하는 말도 아닌데 말이죠

왜 세뇌가 되는지 원
목사와 장로들 교회 종사자들은 그 말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맨날 징징 거려요
돈 내라 돈 내라 라고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의 곧 사망 권세를 없애는 것에 관심 둘까뇨?

사망 권세 없애 버리면 이런 종교오락게임을 멈춰버려야 하는데 무슨 재미로 사느냐 라고 금단현상을 부릴텐데?

그런데 이것 보다 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그냥 모조리 다 무너뜨리겠다 라는 겁니다
다 죽여 놓고 다시 사는
남은자만 건지겠다 끝 ~~~~~~~~ 이다는 겁니다

니 옳니 저 옳니 다 시끄럽다 다 죽여버리고
다시 사는 자만 챙기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누가 벌벌벌 떨면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쳐다보고자 하겠냐 말이죠
서로가 니가 옳니 내가 옳니 이 싸움 밖에 안하는데 말이죠

살해자나 살해당한 자나

하나님의 거룩은 안 쳐다보기는 마찬가지이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은
인간의 거룩에 의로움에 일체 양보가 없습니다
그런 가짜 거룩 가짜 의로움에 안 속아 넘어가겠다 라고 말이죠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는 모든 것이 화로다 화로다 라는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더러움이 있으면 멸망 당하는 것은 마땅하거든요
완벽한 심판이 하나님의 의이다 라는 겁니다

그저 인간의 제사는 종교 오락이라는 즐거움이다는 겁니다
게임은 곧 나 살고 너 죽이라는 살인이거든요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는 다 죽음 뿐이데 말이죠
도리어 자신의 산 자 임을 주장하는 구실로 삼더라 말이죠
자신이 구원 받을자 선택받은 자 라는 구실 말이죠

그러니 소를 바치는 것은 살인이고
다른 여러 번역은 사람을 살인해서 바치는 격이다 라고 했고요

(사 66:3, 새번역)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자와 같다. 양을 잡아 희생제물로 바치는 자는 개의 목을 부러뜨리는 자와 같다.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의 피를 바치는 자와 같다. 분향을 드리는 자는 우상을 찬미하는 자와 같다. "이러한 제사장들은 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뜻대로 한 자들이다. 오히려 가증한 우상숭배를 즐겼다. 가증한 우상들을 진정으로 좋아하였다.』
(사 66:3, 공동) 『소를 죽여 바치는 자가 사람도 죽여 바치고 양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자가 개의 목을 꺾어 바치는구나. 봉헌제물을 바치는 자가 돼지의 피도 바치고 분향제를 드리는 자가 우상을 찬양하는구나. 이렇게 제멋대로만 하려는 것들, 역겨운 우상에나 마음을 쏟는 것들,』
(사 66:3, 현대인) 『그러나 자기 멋대로 행하며 죄 짓는 일을 기뻐하는 자들은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양으로 제사를 드려도 개의 목을 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이 곡식을 드리는 소제는 돼지의 피를 드리는 것과 같고 그들이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 66:3, 현대어) 『그런데 너희는 지금 이방인들의 습관에 따라서 나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소도 잡아서 바치고 사람도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양도 잡아서 바치고 개도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곡물도 가져다 바치고 돼지의 피도 뿌린다. 그들은 나에게 분향하고 우상들에게 가서도 제물을 바친다. 그들은 언제나 제멋대로 하는 것들이며 내가 미워하는 것들을 모두 골라서 하는 것들이다.』

뭐 하긴 살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짐승에게는 안하니까 말이죠

그리고 어린양을 바치는 것은
자기 따나 성경에 기록한 대로 거룩한 제사이니까 거룩을 바치는냥 했다 하지만
정작 받으시는 분이 그거 더러운 개 를 바치는 것과 뭐와 다르냐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곧 정결한 짐승인 양을 바치는 것이 도리어 부정한 짐승을 바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무너지는 심판의 자리
죄인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서 제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을 쌓기 위한 종교오락으로 자기 즐거움을 기쁨을 아름다움을 의로움을 노리고 바친다는 겁니다

성경적으로 문자 그대로 또는 문자주의가 아니라해도 역시나 성경대로 한다는 것 자체가
성경을 무시하는 식이다는 거죠

또 곡물처럼 주르르 붓는 예물들은 돼지 피를 붓는 것과 같고
향기를 흠향하시라고 태우는 분향제사 곧 번제는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무튼 아무리 인간쪽에서 정성과 아무리 의로움과 거룩을 바친다 라고 해도
전체적인 구조 자체가 인간은 이미 더러움 속에서 드리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미 새 것, 새 언약이 떠 버린 이상
기존의 드리는 방식은 다 더럽다 라는 거죠
이전의 것들은 다 무너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전의 것 조차도 제대로 드린 적도 단 한번도 없기는 매 마찬가지 이구요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7, 개역)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18, 개역)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9, 개역)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 23:20, 개역)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 23:21, 개역)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 23:22, 개역)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미 마음 자체가 마귀에게 곧 선악에 장악당한 상황이라서

자기 개인 구원 챙기기라는 용도로 출발하는 이상
거짓제사요 살인하기를 자랑하는 것 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제사이기에
우상이다는 거죠 우상에게 잘도 바치는 구나 라고 말이죠

우상이 저 이방인의 제사인줄 알았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교회가 앞장서서 드리고 있다 라는 겁니다

아무도 무너지는 자리
잃어버림 당해야 하는 자리에서 못 드리기에

드릴수 없을뿐더러 아예 단절이 된 안 받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시는 것에 주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뭐 주시느냐

바로 무너져야 함을 주시는 겁니다

곧 잃어버림이요 심판이요 죽음입니다

주님 쪽에서의 죽음 이요 심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만
거룩을 양산하시겠다 이지
인간 쪽의 거룩은 가짜 이다는 겁니다

왜 그럼 피 입니까
피 아니면 죄 사함이 없습니까

네 없어요
죄를 사한다 라는 말은
수치를 가려준다 이고

수치를 가려준다는 것은
주님 자신이 피 흘리심으로만 거룩이 양산된다는 겁니다

피 흘리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이사야 25팔

사망 권세를 멸하는 것은 주님의 죽음 뿐
예수님의 심판 받으심

주께서 내 주께 라는 표현은
하나님 본인이 심판 주 이시자
하나님이 본인이 그 심판을 받겠다 라는 겁니다

이 간극 벌리기가 바로 하나님의 의요
이 의에 의해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는 겁니다

그러니 쌓기 쌓기 하는 거룩 마일리지 쌓기
인간의 자기 의로움 쌓기가 아니라
그것은 우상숭배이고
개인 구원 챙기기 이고

도리어 잃어버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림 당하지 않는 되찾은
이것이 수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치를 당치 않게 하시는
구원인

하나님의 거룩을 입혀 주심이다는 겁니다

바로 피 옷
그리스도의 피 옷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묻었는데 그 죽음이 내 죽음인줄 알았는데
인간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들기에 의미 없고요
인간의 심판 받음은 주님의 심판 당하심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이니

이 죽음으로 피 흘리심으로 온 피옷으로 인해
상한 심령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는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심판 받아야 하는 자 인데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나오는
인애와 자비가 주님 쪽에서 왔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들이 마귀와 합해져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번제와 제사로 이 피 흘리심을 거부하는 겁니다


죄 사람
수치를 가려 주심을 거부하고

반대로 의로움 쌓기로 주장함에 있어서
살인을 더 구체화 더 합법화 하더라 말이죠

누구든지 다 아는 죄인 강도의 살인 보다
법을 지키고 의를 쌓고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까 라고 평생을 고민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이 더더욱 살인자 이다 라는 것을

주님의 피 흘리심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들추어내시듯이 말이죠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어떻게 하면 인간의 자기 의로움을 
십자가의 피 용서 라는

피 흘리심이라는 죄 사함을 거부하고
수치를 가려주심을 거부하고

의 쌓기에 위해서

세리와 같은 매국노 자를 죽이다가
어차피 죽어 마땅한 놈이니 죽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거 맞기는 맞다 말이죠
그러니 이런 놈들이 많이 나와줘야 자신의 의로움이 더더욱 부각이 될테니
이 살인을 더더욱 펼치는 겁니다 우상숭배를 위해서
즉 자기를 위해서 말이죠

성경에는 항상 우상을 언급할 때 자기를 위한 것은 다 우상숭배 라고 했거든요

그러나 자기를 챙긴다는 의미에서

자기를 잃어버린다 라는 주님의 교체작업은 인간은 거부하는데 있어서
도리어 교회가
이스라엘이 더더욱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거부한다는 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겁니다

놀랍게도 교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 어떤 교회든 그 어떤 교인이든 
역시나 마찬가지이고
저 또한 마찬가지 임에 있어서

우리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자요
이 사망의 몸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무너져야만 하는 세상과
무너져야만 하는 성전 곧 이스라엘 즉 교회와
무너져야만 하는 신체 곧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한
신체로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왜 내가 심판 당하지 않고
그 심판의 자리에서 왜 내가 심판 당하지 않고
왜 주님이 당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이것이 다윗 언약 곧 새언약으로써
주께서 내 주께 이다는 겁니다

이 앞 뒤 모순 되는 원인 없는 결과인 십자가를 새로운 현실로 다 이루셨다 라고 하실까요
마침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이중성 이라는 표현이 이번주에 나오던데

이 이중성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 무한반복이다는 겁니다

차이가 반복 되는
계속해서 분절 되는 생명이다 라고

문제는 이런 철학자들 인문학자들 정신분석자들은 결국 도착점이 인간이다 말이죠
인간 구원을 위해 힘써요
참선지자랑 반대죠
거짓선지자 이다는 겁니다
도착점이 인간이기에
출발도 결국 인간이다는 겁니다

자기 개인 구원 챙기기 뿐 이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아무리 이 이중성 여자가 있어봐야 남자는 찌질한 놈인지가 드러나도록 되어 있고(홍상수의 찌질남, 김기덕의 나쁜남자)

하나님 나라 독립 운동가 바리새인 앞에 매국노 세리가 있어야
바리새인이 일송정 푸른 솔은 선구자로써 자기도 천국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가로막는 자인줄

오늘날 목사들이 바로 그런 자 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서 어른이 됨으로써 즉 악을 저지르고 더러운 짖을 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이 이중성으로 인해

비로소 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쳐다볼거 아니겠냐 말이죠

그 이중성을 들으니
지젝이 말한 서로마 카톨릭 말고 동로마 동방교회 정교회가 바로
이 어린아이와 같은 유아기 라고 했는데 말이죠

바리새인이 다 이런 유아기 이다 말이죠
어른처럼 장성한 자가 될려면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말이죠
죽음을 먹어야 해요
나쁜 남자가 되어야 한다
악을 저질러야
소년에서 어른으로 되는 겁니다

또 여기에다가 서로마 카톨릭처럼
바리새인은 법까지 쥐어서 살인자 행세를 한다는 겁니다
법을 쥔 상징계처럼 말이죠

그러니 이들은 실재계 곧 괴물인
이웃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법을 지킨다는 이유로 살인하는 줄 모르는 겁니다

이것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라는 내용인거죠

뭘해도 죄 밖에 안나온다는 것을 모른다는 자체가
바리새인처럼 법을 쥐는 모습이다 말이죠

오늘 본문이 바로 법을 쥐고 있는 바리새인처럼 번제와 제사를 드리는 놈들이 바로
살인자
독사의 자식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러니 이들에게 불법자요 더러운 자들이
괴물로써 이웃으로써 등장함에 있어서

이들의 고아 과부 나그네 곧 이웃을 신원하지 않는 모습이 드러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신약에서 예수님이 구체화 시키실 때 이런 내용으로 드러나는 거죠

그러니 불의한 청지기가 더 나은 지혜이다 라고 하시듯 말이죠
누구 보다? 자칭 빛의 아들들 이다 라고 하는 자
그것도 주인에게 고자질을 하는 
왜? 정의를 실천한다 라고

그러나 과연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했었던가요
도리어 갈취를 했잖아요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4, 개역)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도둑놈들이다 라고 말이죠

오늘 뉴스에 코로나 시대에 자꾸 기독교가 사람들의 기대에 자꾸 벗어난 행동을 하니까

지긋지긋하다 라는 불만에

전국 기독교 대표가 사과하는 내용을 뉴스를 통해서 봤다 말이죠

그 사과가 진정한 사과일까요

돈 줄어들까봐 하는 사기짓입니다

진짜 내용물은 그 이단들 신천지와 같은 그런 놈이 아니라
바로 사과를 하는 전국 기독교 대표들이다 말이죠
얼마나 사기를 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단들 신천지들이 증상물로 나타나는 겁니다

언제는 대통령에게까지 교회협회회장이 기독교를 핍박하지 말라고 미리 걱정을 깔아 놓더니
이제는 반대다 말이죠
사실은 기독교를 핍박하지 말라가 아니라
기독교가 세상을 핍박해도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거든요
반대로 들어야 합니다

그랬던 놈들이 이제는 또 반대로
사과 합니다

그거 거짓말인줄 다 아시죠
쌔빨간 거짓말인 줄 ~~~~~~~

사과가 아니라
세뇌 시킨 인간들로부터 돈 뺏는거 더 이상 세상이 간섭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도 돈 벌겠다 라는 선언이예요

불도져로 다 밀어야 합니다

무너져야할 교회요
무너져야할 성전인줄 모른다면
그거 짐승입니다 666 종교 오락이다 말이죠
내 즐거움
오락게임기 교회를 빼앗을 생각 말라 라는 엄포인데
그 말 때문이라도 교회 무너뜨려야 한다는 겁니다
모조기 다 우상숭배이니까 말이죠


이런 우상숭배라는 살인에 의해
피해자는 오로지 예수님으로써

이 피 흘리심 외에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을 구체화 시키시는 겁니다

왜? 거봐 너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잖아

너 그 죽음
그 사망권세

없앨 마음이 추호도 없잖아

너의 의로움을 쌓기 위해서 도리어 살인하고 있잖아

사망권세를 해결하고자 하는 거룩 곧 의로움은 인간 쪽에는 없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바로 그런 사람의 일에 빠진 너를
하나님의 일인 십자가 라는 피 흘리심을 통해서

내 쪽에서 이미 너를 용서했다 라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믿음으로 물으시고

행함이 내 쪽에서의 숙제가 모조리 다 믿음(예수님의 숙제)으로 인해 다 짤림당한 베드로가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믿음으로 화답하게 됩니다

선악을 주님이 해결해 버렸으니 말이죠

그러니 거짓제사는

오늘 66장 마지막 장에

이미 참된 제사 라는 십자가의 피 용서 라는 피 흘리심이라는 새언약이 떳기에
하나님의 깊은 것이 떳기에

한 세트로써 

이전 것
사라질 것으로써

거짓 제사가 나타나고
그 차이로써

참된 제사를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미 십자가라는 다 이루셨다 라는

수치를 가려주시는 구원이 먼저 떳기에

인간의 가짜 구원들이 그 내막을 드러내도록 말이죠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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