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롯의 차이? 없는데요!

이제는 아브라함을 저들이(행함론자) 어떻게 엉터리로 보는 가를 살펴보자
아브라함 조차도 남은자 의미가 아니면

다윗의 시편 51편의 고백 즉 로마서 4장의 고백의 의미도 모른다는 것이다.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8-11-28 13:23:05,

창 19장에서 롯과 아브라함의 차이를 보면 아브라함은 가루세스아 (주님이 말씀하신 한영 한몸 한떡) 가루는 자기형체가 없고 주님 말씀만으로 빚어진. 그리스도의 살과 피) 기름지고 살진 송아지. 기름은 성령 의미이고 하나님 중심이라는것 버터와 우유는 주님으로 충만으로 채워진것 그리고 수종 들었다는 것은 섬기는 삶이다

2008-11-28 13:26:10,

롯은 무교병으로 대접함 이것은 박한 음식이다 아브라함처럼 행위의 신앙에서는 같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르다 신앙의 형식은 모방일수 있으나 내용은 모방이 안 된다 내용은 정신이다

아브라함 신앙자체가 장막을 지고 혼자 거하기에 남에게 칭찬이 없어도 섬기고 주님 말씀으로 채워진 인격으로 사는 삶이다

답변 :

(창 19:3)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창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창 18: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창 18: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 18: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창 18: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창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창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가루세스아 라고 하니 또또또 문자 쓰나보다 이건 뭐 히브리어인가? 지긋지긋한 성화론놈들
라고 비아냥 거렸는데 알고보니 가루 세 스아 띄워쓰기가 쪽지에서는 붙여지다보니 그랬군요

아무튼 그 억지로 퍼즐 맞추기 장난 놀이는 여전하네요
그냥 저처럼 모르면 모르겠다 라고 하면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 의미 없고 그냥 가루 세 스아(단위) 가루 세 뭉치 정도이지 이게 뭐 한 영과 한 몸과 한 떡과 삼위일체를 억지로 붙이겠다는 취지는 사위일체로 자기 알아 달라는 취지 밖에 더 있겠나요? 만약 안 알아주면 우얄껀데?

그 당시 문화에 해당되는 손님 대접이 아니겠나요?
우리로 치면 천사에게 금김치를 대접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후대 사람은 김치를 왜 했을까? 라고 또 분석해 들어가겠지요.
그럼 김치의 어원과 그 김치가 어디서 유래 되었고 다 조사하겠지요

그냥 참고만 할 일을 그만 주체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거겠죠. 정작 주객은 뒤 바뀐채

아무튼 자기들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해서든 롯과 차이나게 만들어서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작품인냥 떠벌리는 것이겠죠

그 삼위일체 한 몸 한 떡 한 영을 바치면 뭐합니까?

비웃었는데 뭘

머리를 땅에다 엎드려서 절 하면 뭐합니까?

대가리 박은 채로 키득 키득 키득 웃었는데 뭘

문제는 그 비웃음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비웃음을 어떻게 웃음으로 바꾸느냐 라는 영의 일이 중요한 거죠.

롯이 더러운 인간이다 라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롯을 어떻게 의롭게 했느냐 라는 교체작업의 영의 일이 중요한 거죠.

결국 그 영의 일에 그들이 불평불만을 드러내고픈 겁니다.
얼마나 일을 제대로 하셨으면 도저히 용납못하는 일을 했을까요?

그만큼 일을 제대로 했다는 증거입니다.

도저히 롯 하고는 천국에서 같이 못 살겠다 라고 나올 수밖에 없도록 하는게 영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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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28:59,

롯은 도시 거하고 있깅 롯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칭찬이 되어지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 형식이다

신앙에서 중요한것은 내용을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이다 롯의 신앙은 의미와 정신이 없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신앙이다 성도들의 신앙 자체가 모방에 불과하다

답변 :

남들이 들키지 않는 죄를 지적 받았다는 간섭 받았다는 자체가 사랑이 외부에서 있으면 게임 오바인 겁니다.

롯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롯 보다 단 하나라도 나은게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우상 조각가
믿음과 정반대의 인물을 뽑은 겁니다.

그래서 이 믿음 없는 자의 조상을
믿음 있는 자의 조상으로 교체시키는 방식이 바로 영의 일인 겁니다.

그래서 영원한 걸림돌이 되도록 한 거죠.

나중에 이것마저도 자기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은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빡빡 우길때에 선지자에게 딱 걸려든 겁니다. 푸하하하 누구? 왕비호 버전 누구?
너거들이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그럼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바라보고 기뻐했는데 정작 너희들은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네? 누구? 누구라꼬?

에라이 독사의 자식들아

드리어 도끼맨 세례요한은 이들을 도끼로 다 찍어서 지옥 불에 땔감으로 사용할려고 합니다.

푸하하하 차라리 돌들로 인해서 아브라함 자손 만들겠다 라고 비웃습니다.
도리어 아브라함은 믿음에 아무런 의미 없었던 무능함을
주님의 창조에 철저하게 당함으로써 창조 앞에 무능함을 보게 된 일을

유대인들은 정작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우길 뿐이지
창조 앞에 무능한 자입니다 라는 첫사랑의 고백 이스라엘의 고백을 거부하고
정작 창조에 끝까지 개입하고파서 창조를 난도질 할려고 하니까

세례요한이 욕설로써 퍼붓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자(은사)를 가인처럼 돌삐로 쳐죽일려는 듯이 죽이죠. 그러니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 까지 심지어 예수님의 피 까지
그들은 감당해야 하는 죄의 소원이 미래에서 덮쳐버린 겁니다.

그 목사들 그렇게 해석해 버리면 나중에 뒷 감당은 우에 할려고?
아브라함처럼 사래처럼 비웃었다는 거을 무슨 수로 감당 할려고 자꾸 성경의 영의 일에 자꾸 개입하고 감놔라 대추놔라 라고 건방지게 선생질 할려고 하는지?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 또 선지자의 피 예수님의 피 감당할 자신이 있나 보네 그려?

자기들이 모방 흉내 낸 것들이 들통날까봐 남보고 하지 말라네요 ㅋㅋㅋ
걱정도 팔자셔 남들 흉내 낼 시간이 없지만
할짖 없는 그들은 맨날 흉내 뿐인 겁니다. 남 걱정 하지 말고 자기 걱정이나 하라 하세요
돈 벌기 바쁜데 그런 흉내 낼 시간이 어딧노
권태로워서 별짖을 다 가르치네 ㅋㅋㅋ

차라리 도시 생활 하는 바쁜 롯은 빵으로 손님 대접 하듯이
손님 대접 하면 될 일을 그 내용 본문 우려먹으면서
목사 심방 대접 소홀히 딸랑 빵 커피로 심방 때울생각 하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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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31:19,

롯은 하나님에게도 세상에게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이다 롯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대표이다

롯은 환경 추구 세상에서 형통하는것을 추구하지만 아브라함은 자기안에 말씀세상을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안에 심고 천국을 가꾼것이다

답변 :

두 세상 밖에 안 만든 주님에 대한 모독을 그 성화론자들이 하고 있네요

네 그렇다 칩시다 경계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
그런데 롯이 그러고 싶어도 그런 두 세계가 아닌 다른 제 3의 지역이 없는데 우짤껀데요?
지금 롯을 무시하는 것 보다 두 세계 밖에 만들지 않은 예수님을 그 목사들이 무시하네요

지옥이면 지옥, 천국이면 천국 이 둘 뿐이지 연옥을 그 놈들이 오히려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만큼 롯이라는 의인이 발생 할까봐 겁나는 겁니다.
감당이 불감당이거든요 그 정도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 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 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히 11: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히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기에 롯 보다 더 나은 자 있나요? 믿음의 사람들은 다 똑같습니다. 왜냐? 세상이 감당 못하는 의가 입혀졌기 때문이니다. 이 예복에 대한 모독을 그들이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이 감당 못하는 의가 없고 자신들의 법으로써 자신들을 방어하기에 이유 없이 롯이 미워질 수 밖에 없는 거죠. 마치 베드로를 넘어뜨릴려고 우는 사자 같이 밀까부듯이 초정밀조사를 하는 겁니다. 제일 많이 자기들이 법적으로 약점 많은 자인 롯을 걸고 넘어지는 거죠. 그래서 베드로 내놔라 라고 예수님을 다구치듯이 그러나 예수님 기도하지 않으면 베드로는 이길 수 없듯이 지금 그 목사마귀들이 예수님에게 롯 내놔라 라고 정밀조사를 하고서는 기여이 천국에서 빼버리겠다는 취지입니다.

얼마나 제대로 천국에 알박기를 잘 하셨으면 저 롯과 같이 함께 천국에는 못 있겠다고 그 목사들이 몸서리 칠 정도로 싫어하게끔 하신 거죠, 누가 손해 보나요? ㅋㅋㅋ

그리스도인 이라는 주님의 작품을 반드시 인간의 창작으로 만들기 위한 수작이 바로
롯이라는 그리스도인을 자기들은 같은 그리스도인 이라고 취급받기 싫다는 발상이죠.

즉 창녀 세리 강도가 천국에 들어갔어도 또 그들과 함께 있어도
롯 하고는 천국에 못 있겠다는 발상인 겁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을 자기들이 정의 내리고픈 꼼수죠

그런데 우짭니까? 아브라함도 롯으로 만들고 베드로도 롯으로 만들고 사도바울도 롯으로 만들어서 구원하여서
천국에는 오로지 롯과 같은 자들 밖에 없는 걸요, 롯으로 다 채웁니다.

그래서 천국을 엉터리로 만들려는 속셈이 들통난 거죠

세상에 그런 마귀들이 따로 없네요 정말 정말 주님이 일을 제대로 했기에
이 땅에서 이미 그 마귀성이 들추어지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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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34:31,

롯은 보이는 것을 따라갔지만 아브라함은 말씀으로 따라갔다 롯은 하나님 말씀으로 세운 의가 없기에 끌려다니는 신앙을 한것이다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이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믿고 의를 얻엇지만 롯은 의를 얻지 못했다 타의적 신앙이다

답변 :

아브라함과 롯을 차이를 두겠다는 발상 자체가
자신들이 교회 속에서 차이나는 위치임을 부각하고픈 탐욕을 은폐시킨 것이 들통난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조차 포경선의 창살이 꼿혀서 질질질 끌려서 구원 받은 판국이고
롯 또한 아브라함과 똑같이 포경선의 창살이 발사 하고 푹 꼿혀서 질질질 끌려온 판국인 겁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구출 작전을 통해서

아 맞구나 나도 롯이 소돔과 같은 지옥에서 포경선의 작살로 꼿혀서 구출된 것처럼
나도 가만히 이런 식으로 구원 받았구나 라고
아브라함이 믿어야 할 판국이지

거봐 거봐 난 너의 구원자야 롯 너는 나 아니면 죽었어 라는 발상
곧 성화론자들의 발상은 추호도 아닌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도바울의 말한 사도행전의 결론은 바뀌어져야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실컷 복음 여행을 통해서 아 구약 예언대로구나 라고
귀 있는자 듣고 귀 없는 자 안 듣는 구나 라고
남은자 또한 주님이 하셔야 할 판국이나 라고

본인 또한 믿어야 할 판국인데

만약 질문의 내용처럼 사도바울이 거봐 거봐 사도바울 내가 아니였다면
남은자는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 라고 나오게 되니

이것은 미래에서 덮치는 완료된 묵시의 종말의 영의 활동이 아니라

기여이 인간의 역사를 고집하겠다는 법적인 발상 밖에 안되는 겁니다.

아무튼 완료를 미완료로 남기고자 아니하면
자기들의 손으로 세운 교회의 의미가 사라지기에
자기들 손으로 지은 교회 자체를 의미 두기 위해서라도
이유없이 사기를 쳐야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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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36:36,

롯은 자기집을 못만든 사람이다 집은 하나님을 모신 집이고 자기안식처이고 자기거처이다 집을 못 만들었으니 굴로 들어간다 굴은 짐승이 사는곳이기에 굴로 들어가니까 짐승의 본능이 나온다 그래서 근친상간으로 모압과 암몬을 낳는다 원래 자녀를 낳는것은 남자의 자기 의지로 낳게 된다

답변 :

그렇게 말하는 목사가 마귀인 이유는
소돔에서 기여이 집을 짖겠다는 취지가
난 집이 있으니까 의인이다 라는 소돔의 멸망의 취지를 전혀 감도 못 잡은 자이다.

인간들은 항상 하나님을 위해서 집 지어서 하나님을 모시겠다고 늘 그 집을 가인처럼 하나님 이름으로 부적을 만들어 온 집을 도배를 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없고 자기들이 떡 하니 주인 노릇만 해 왔다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증거 했다. 더욱이 이스라엘이 그랬고 사도바울 때에는 가짜 교회와 대립된 주님의 교회의 대립 속에서도 그런 인간의 사고방식을 늘 들추어 냈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이 말씀을 엉터리로 보면서도 자기들은 안 그런다고 우긴다. 그렇게 우기는 모양새 조차도 성경 그대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다 라고 우긴다. 무슨 수로 고치랴? 아니 아니 절대로 고쳐지면 안된다. 예수님이 두려워 했다. 고침이 될까 싶어서 걱정 하셨듯이

그래서 롯에 걸려 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롯 하나 못 넘어서기 때문에 지옥 갈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어야만 한다.

이 얼마나 멋지냐? 사도바울 이라는 높은 수준이라고 여겨지는 바울에게 걸려 넘어지는게 아니라

자신들이 가장 얍잡아 보는 롯에게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건축자들이 필요 없다고 무가치한 자를 빼버려서 버린 그 돌이
도리어 그 돌이 편애를 받아서 주춧돌이 되는 머릿돌이 되는 방식 외에는
다른 걸림돌은 없는 걸이다.

롯에게 걸려 넘어질 자들이 많이 나타나도록 주님은 롯 자체를 표적(은사)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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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38:54,

모압과 암몬은 딸들의 의지에 의해 낳게 됐다 그러니까 타의적 신앙이고 자의적 신앙이 아니다 모방 신앙 끌려다니는 신앙 책임안지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믿으면 그때 의가 생긴다 자녀는 축복이지만 모압과 암몬은 죄악의 소산이다 거침이다

답변 :
언약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약속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기에 모압과 암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써 자기들이 쥔 법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 또한 모압과 암몬이 되어버린다.
유다 지파만 남고 다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그런 남아있는 유다 지파는 깨끗한가?
남아있다 라는 억지의 이유만으로 깨끗하다고 자부 했다.

그런데 웬걸?

개같은 수로브네 이방 여자 하나로 인해
그 깨끗하다 라는 유대인들이 다 더럽기 짝이 없는 가짜 라고 판명이 났다.

물론 그런 예수님의 판명을 그들이 수용할 리가 없다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이고 자기들의 법만 남아 있으면 된다.

뭐가 아쉬워서 예수님의 판명에 무릎을 꿇으랴?
이미 자기들에게는 하나님도 성전도 율법도 자기들 손아귀에 소유된 판국인데

(마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관심 사는 오로지 자기의 잃어버린 양 뿐이다.
즉 이스라엘 이다.

그러나 가짜 이스라엘 심지어 역사적인 정통을 그대로 간직한 유대인 조차도 가짜로 취급하고
정작 누가 봐도 가짜인 이 개같은 이 여자가 자신이 창조한 이스라엘 이라고 한다?

누가 옳을까?

누가 봐도 예수님은 틀렸고
역사적인 증거가 있는 법적 알리바이가 충분한 유대인들이 옳았다.

자 그럼 영의 일이란 바로 이렇게 육이 옳았다 라는 그 법을 일부러 세워 놓고
다 뿌셔 버린다. 그 교체작업을 멋들어 지게 하는 이유는
허물어지는 박살 나는 것을 봐야 비로소 일을 참 잘 했다 라고 증명자료가 되는 것이다.

(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막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여기 이스라엘 새 창조에 그 목사들이 개입할 만한 어떤 이론이나 어떤 행함이나 어떤 창작이나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요?

개가 되기 싫어서 롯을 걸고 넘어지는 거죠.

차라리 소경이였더면 좋았을걸

주인의 상에서 롯이 있다고 그 주인이 차린 밥상을 거부하겠다는 자체가
아직 덜 죽어봐서 덜 지근 지근 밟혀봐서 그런 겁니다.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밟아야 정신 차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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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40:57,

롯은 의롭기 때문에 건저 준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건저 주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롯이 아니라 가나안땅에 있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소돔과 고모라에서 건져주신 것이다 중보기도는 생각이 바로 된 다음에 하라

답변 :

실컷 지금까지
자기네들이 성경을 뒤엎어 버려 놓고서는 또 다시 자기들의 손에서 성경 말씀을 세우는 지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까지 롯이 미워 죽을려고 환장 해 놓고서는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인냥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봐준다 그러니 롯은 천국 밥상에 앉혀주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 놈들은 개처럼 맞아봐야 정신 차릴 겁니다.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건져 준 적 없고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약속 때문에 건져준 겁니다.

즉 주님은 인간 보고 일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인간 때문에 일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이 가르치겠다 라고 용을 쓰고 있는데

주님은 자신의 약속만 관심 있습니다.

두 나무의 상황 이라고 말했죠?

주님은 오로지 창세전의 계획된 십자가만 관심 뿐입니다.

이 십자가를 드러내는데 있어서 두 나무의 상황으로 만들고

아브라함 역시

비언약인 아브라함과 언약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대비 되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진 겁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판국에 롯인들 예외 이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기가 혹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증거하면
자기자신도 가차 없이 저주 받아야 하고 또 마땅히 저주임을 자신은 예외로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갈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래서 그 성화론자 목사들의 트릭을 잘 파악해야만 하는 겁니다.
결국은 그들은 사람을 기쁘게 할려는 취지로서 그 따위 발언을 하는 겁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지금 모든 교회의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돈 벌려는 목사들이 무슨 짖인들 못하겠습니까? 말씀을 팔아서 돈 장사 해야하니 무슨 소리인들 못하겠습니까?

언약을 얼마나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해석했으면 그렇게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거죠

사도바울도 저런 판국에 무슨 제 3의 지역? 푸하하하
뭐 경계인? 에라이
종교꾼의 발상은 어디를 가도 한결같은 일관성이 있으니
너무 너무 신비롭네요 같이 산적도 없으면서도 나라 민족 의식주 역사 모든 삶이 다 달랐어도 그 마귀성은 한결같은 주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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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48:14,

아므라함과 롯을 통해 신앙의 여정을 본다 말씀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받았기에 의가 되어진것이고 의가 되었기에 말씀안에 거처가 생긴것이다(성전) 그의 삶은 자기의 모든 인격을 다해서 세스아의 떡을 통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만들어 간다

답변 :
그것이 거짓말인 이유가 정작 아브라함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아브라함은 그런적 없는데 라고 합니다.
왜 사기를 내 이름으로 치지?

아브라함은 도리어 예수님 외에는 모두다 가짜 삶이라고
도리어 자신이 보여준 삶을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고 반드시 붙이고픈 이유는
정작 아브라함이 쳐다본 예수님의 삶을 보기 싫어서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실제로 예수님의 삶을 사는 자는 없고
사람들이 종교위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나름대로 한 번 흉내를 내고 그 흉내낸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 손아귀에 넣어보고자 하는 심뽀인 겁니다.

여기서 롯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니까?

아브라함은 단것이라서 삼키고
롯은 하루살이 같아 보이니까 버리는 겁니다.

그 뻔한 술수를 요즘도 속아넘어가냐? 라고 묻겠지만
아니죠 성령님은 그 케케묵은 뻔한 술수에도 넘어갈 정도로
인간들의 자기들의 지혜 속에 갇혀 살도록 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시는 겁니다.

아마 기생 라합 또한 엉터리로 해석할껄요?

행함이 있는 믿음에 반드시 기생 라함의 거짓말이 아니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설명 못하도록 패스워드 걸어 놓았는데

그 비밀을 어떻게 해석하는 가를 보면 그 놈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수 있겠지요
한 몸 한 떡 한 영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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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50:51,

롯은 의가 없기에 심판날에 설수 없었지만 아브라함의 의를 빌어서 심판의 날에 피하지만 거의 거처는 성전이 아니라 굴이었다 그의 신앙 인격이 없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을 못 낳았기때문이다 아들이 있으면 영생을 얻고 아들이 없으면 영생이 안 된다

답변 :

그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 조차도 의가 없다 라는 것을 밝혀내시고자

만약 의인 몇 명 만 있다면 멸망 안하시겠습니까? 라고 주님이 묻도록 심은 겁니다.

처음에는 숫자가 제법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점점 가면 갈수록 민망해 질 정도로
아무리 봐도 의심반 희망반

그런데 나중에 결국은 그렇게 요청하는 (중보기도? 중보기도는 무슨 개뿔) 본인 조차도
소돔 멸망을 지연 시키는 의가 없다 라는 것을 알고

철회 하는 겁니다.

소돔 멸망이라는 영의 일에
자신은 도리어 멸망 안 받는 자가 아니라
마땅히 멸망 받아야 할 자임을 알고

창조의 일에 영의 일에 하나님의 일에
무능함 곧 자기부인을 주님이 덮쳐 씌웁니다.

무능만 할 뿐이다는 겁니다. 무능

결국 의인 탈출 곧 구원은
이스라엘 형성과 같고 그 이스라엘 곧 남은자 남은 광주리 열두 보좌는 자기가 일체 관여할 수 없는 무능을 드러내는 영의 일에 해당되고 도리어 당할 판국인데

뭐 의가 있어서 아브라함이 의가 있어서 롯을 구출했다고? ㅋㅋㅋ
왜 웃음을 자꾸 넣느냐 하면 비아냥 거리고 비웃어 줘야 기억에 남겠죠

아브라함 본인 조차도 의가 없기에 심판 받아야만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주님이 불쌍히 여겨서 의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긍휼을 부어서
긍휼의 그릇으로 삼았다 뿐이지

아브라함 어느 구석에 의가 있던가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아브라함이 의가 있나요?
아무리 아브라함 본인 조차도 의가 없었다 라고만 말한 것 밖에 없는데
무슨 근거로 아브라함이 의가 있었고 롯은 의가 없었다고 라고 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네요

이유는 그렇게 해석 하는 자기가 법이다 이것 외에는 달리 다른 방도가 없어보입니다.

왜 그런 사기꾼들을 깔아 놓아야 하는가?

바로 이런 사기꾼들에게 갇혀 있는 예수님 자기의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저들 소돔과 고모라 속에서 건지고자

예수님을 투입 시키는 겁니다.

아브라함 또한 예수님의 때를 쳐다보지 않았다면
아무도 건질 자가 없다 라는 의미 이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조차도 롯의 입장에서 건짐받아야 할 판국인데
건방지게 롯을 건지는 입장이 못 된다 라는 것을

(창 18: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창 18: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창 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 18: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창 18:28)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 조차도 의인에 해당 될 수가 없는 도리어 의인이 와서 건져주셔야만 하는 죄인에 해당된다는 취지로 주님이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7번 용서하면 됩니까? 라는 취지를 용서해야할 위치가 아니라
도리어 용서 받아야 할 입장에 놓여짐을 예수님의 성질 죽여가면서 끝까지 알려주시는 것처럼

아브라함 또한 당장 성질 같으면 아브라함 조차도 멸망하고도 남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의인의 자리가 아닌 도리어 죄인의 자리에 두어서 그 아브라함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소돔처럼 멸망치 않고 예수님을 구원자를 투입 시켜서 건져주겠다는 취지로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죄인으로써 구원자 예수님에게 구출 받는 겁니다.

결국은 이런 취지를 엎어버리고 자신들의 취지를 기여이 주장하는 그 모습은
마치 노아홍수 심판 뒤에 노아의 벗은 모습 마저도 법적으로 해석하는 함과 가나안과 똑같은 모습을 그 목사들이 하고 있고 이렇게 그런 생각을 벌려 놓도록 깔아 놓아야
약속의 구도 즉 두 나무의 상황으로써 영의 소욕의 일을 약속의 일하심이 맹렬하게 작용케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그놈들은 함의 사고방식 외에는 다른 생각을 펼치지를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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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54:03,

아들은 그리스도이기도 하지만 아들의 속성이 내 속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들은 자기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 전 이것을 행위로 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채워서 모방이 아닌 진실과 진정 온마음을 다해 진정한 사랑으로 나와야 한다는것이다

답변 :

아들의 속성을 기여이 내 속에 있게 해서라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을 과연 할까? 라고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아들의 속성을 가져서 드디어 이제 남들을 자기 손아귀에 정복하고자 하겠다는
악마의 모습을 비로소 드러내고파 안달이 나 있군요

결국 예수님을 이용하는 이유는 예수님 마저도 자기의 경쟁자로 보는 겁니다.
이미 예수님은 없고
예수님 본인이 아들의 소원을 집어 넣은 그 자들과 한 판 붙자고 하는 식입니다.
꺽고픈 거죠.

이것이 라멕의 찬양에도 나옵니다.

나 보다 죄의 소원 가진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결국 그들에게서 마저 예수님은 생명나무가 아니라 선악나무로써 맹렬하게 작용하는 거죠

죄의 소원 마저도 아들의 소원으로 가르치고 싶어 하는 높고자 하는 중독병에 걸려 있는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지상의 교회들은 이런 라멕만 가득차 있습니다.
목사도 라멕 뿐이요 교인들도 라멕 뿐입니다.

자기 건드리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복수심만 가득 찬 자들

교회를 한 풀이로 만들고파서 작두를 타는 목사를 건드리지 말라는
무당들 한 맺힌 놈들의 살풀이 하는 노래만 펼치는 모임으로만 다닐 뿐입니다.

(창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창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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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56:25,

아브라함은 이 과정을 거쳐서 아들 이삭을 낳았지만 롯은 다릉이 없었다 롯은 근친상간을 통한 사생자가 나왔다 여호와의 총회에 못들어간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적도 말씀을 나눈적도 감사한적도 단을 쌓은적도 없다

답변 :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 하나요?
그 근거는 어디에 있나요? 즉 여호와의 총회란 천국?

놀랍게도 아들과 아버지의 소원 외에는 어떤 누구도 끼여들 수 없는 총회인줄 모르기에
참여한게 무슨 자랑이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자체가

자기들은 마치 참여한 냥 말하면 곤란한 거죠

(신 23:2)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뿐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아마 이 본문을 근거로 한 모양이네요

놀랍게도 나중에 12지파 조차도 총회에 들어올수 없는 사생아로 판명이 납니다.

그렇다고 12 지파가 취소 되느냐?
전혀 아니올시다

12지파 자리는 이미 예정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취소 되는 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교체 당하죠

또 더 큰 문제는 그 12 지파 자리에 남아나는 자들이 일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남은자만 12지파가 됩니다.

희한 합니다.

분명히 남아나지 않아서 교체당하는데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넘치도록 있는 겁니다.
(마치 엘리야가 자기만 남은 줄 알고 자기열심만 열심이다고 특심이다 라고 할때에
나 혼자 남은게 이게 무슨 남은거냐 라고 남은자 조차도 단지 숫자가 하나 다 라는 이유로 전혀 안 기쁜 겁니다. 그래서 심각한 분위기를 개그야 채널로 채널 돌려 버리니까 심각하다고 울며 짜며 하던 그 심각성이 갑자기 배를 잡고 깔깔깔 웃는 채널돌리기를 하시는 겁니다. 즉 남은자 7천명 이다? 우짤래?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전 없는 줄 알고 아이고 무안해라. 바로 영의 일이란 우리를 늘 낯설고 경험치 못한 새로운 곳으로 남들이 격지 못한 곳으로만 자꾸 인도하기에 자기를 챙길 여유 조차고 못 주는 판대기 전체를 퍼붓는 겁니다. 왜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보느냐? 영이 덮쳐지지 않았기에

(왕상 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 19: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이것이 바로 돌들을 통해서 아브라함 자손 아브라함 총회가 되는 방식입니다.

남은자란 곧 이스라엘이란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자도 살리시는 오직 창조의 능력으로만 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창조함을 당하는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창조에 무능하고 소외된 입장 뿐입니다.

그런 자를 첫사랑의 자리에 있는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 처음자리 첫사랑의 자리 라고 합니다.

신명기에서 그렇게 암몬 모압 너거들은 못들어가지롱 이라고 여겨졌던 다른 12지파에 해당되는 그 당사자들 조차도 멀리도 아닌 그 다음 여호수아서에서 다 밝혀지듯이 단 한 지파도 단 한 놈도 못들어 갑니다.

그래서 일부러 다 죽이는 사건이 광야 40년 이지 않습니까?
40일을 1년으로 계산해서

이거 이거 너무 하지 않나요?
매일 매일 치워야 하는 시체가 평균 8명? 잘 기억이 안나는데
8명도 심한 판국인데

암몬 모압 걱정할 판국일까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늘 노래 불렀죠
차라리 암몬 모압이 더 부럽다고 애굽나라 지옥백성이 부럽다고
아예 발 디디지 않고 총회에서 짤리는 것이 낳지
막상 들어와 놓고도 못들어가 광야 모래 뿐인 곳에서 무덤조차도 없게 만드는 구나
아이고 억울해라 라고 울부짖교

결국 구원에 대해서 또 죄에 대해서 아예 전무 하기에
의인 롯을 시비 거는 겁니다.

남 걱정할 입장이 전혀 모른다는 것은
곧 구원도 죄도 성경말씀도 아예 모른다는 취지인 겁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성경으로 사기쳐서 먹고는 살아야 겠고
우짭니까? 주님이 제대로 심은 결과이니 톡톡히 그 값어치를 하는 거죠 뭐

마치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시험하고파서 안달이 난 것처럼
무조건 이유 없이 시험할려고 달려드는 것과 같은 겁니다.

지옥은 아무나 못 갑니다. 예수님이 정한 자만 지옥 갑니다.

아무나 마귀 역할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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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58:02,

하나님 말씀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듣다보면 롯과 같이 된다 말씀이 자기속에서 의가 되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의 날에 건질게 없는 인생이 된다

답변 :

거봐요 구원 자체도 모르는 소리를 하는 거죠

건질게 없는 채로 건짐 받았는 자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 아브라함이 동아줄 타고 올라가는 데 참 신기하게도 롯도 아브라함 바지자락을 붙잡고 올라가는 겁니다.

그 광경을 보는 하늘나라의 천사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 납니다.

죄인 하나가 고침을 받게 되니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서 나팔 불고 난리 난리 잔치입니다.

(눅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아브라함만 올라 온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쌍태입니다 ㅋㅋㅋ

바지밑에 누가 또 있는거죠

기생 라합만이 빨간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줄 알았는데
마치 자석은 라합만 붙었는데
그 자기장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기생라합의 치맛자락 붙잡은 것 뿐인데
자석의 자기장으로 인해서 라합의 가정까지 구원이 되는 겁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네 가족 네 집 네 가정 이라는 취지는 판대기로 일하시지 개인적인 사적인 구원은 없다는 뜻입니다,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개인적인 지옥이란 없습니다. 판대기로 심판입니다. 그 판대기 전체 판으로 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의인 몇 명만 있으면 보류 하겠냐 라고 묻고 여호와의 대답 조차도 판대기로만 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사적인 감정을 허용치 않는 겁니다. 아니 생각을 해 보세요 창세전에 생명책 기록 자체가 나를 위한 생명책기록이 어디 있나요? 주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판대기 기록이지 사적인 기록을 해서 뭐하게?, 그러나 성화론자들은 판대기 자체를 무시하는 놈들이기에 말 안 통합니다.)

천사들 난리 부르스 칩니다. 잔치 났어요 잔치

누가 잔치 날에 울겠습니까? 누가 건방지게 잔치날에 애곡을 합니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자들은 오늘날 교회 뿐입니다.

왜? 롯처럼 천박스러우면 안된다고 위선 연기를 이제야 펼치는 거죠

소돔과 고모라 딴 곳이 아닙니다. 교회입니다.

가버나움은 소돔 고모라 근처도 안 간 전혀 다른 동네입니다.

단지 예수님이 그렇게 가버나움에 말씀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피리를 불어도 요지부동 했다는 이유로
소돔 보다 더 심한 심판을

도시 자체가 거덜나도록 퍼부겠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꼭 가버나움 짝 난 겁니다.
요지부동입니다.

그저 롯처럼 안되기만을 바라는 자기 행실 단도리 하는데 미쳐 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눈치만 보는 거죠

이거 결백증 환자들이지 이게 무슨 그리스도인 입니까? 미친갱이들이지 좀비들

도리어 언제 춤 추느냐 마귀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니까 그때서야 춤춥니다.

그리고 마귀가 자기들의 뺨때기를 때려도 도리어 잘 도 다른 뺨을 대어 줍니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고후 11: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그러나 롯이 구원 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화를 버럭 냅니다.
(이것이 왜 신비냐? 인간의 행함이 전혀 무개입인 순수창작품 불순물 제로 이거든요
그러니 시기가 나서 배 아파 죽습니다. 반드시 배 아프게 하겠다는 취지가
남은자 개념에서 나오는 겁니다. 로마서 11장 남은자란 이스라엘을 시기케 함)

아니 교회에서는 입밖에 못 내도록 아예 단속을 하겠다고 적극적인 아주 적극적인 막는 행동을 일관되게 합니다.

이게 놀라운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롬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롬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롬 11: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롬 11: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롬 11: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

(롬 11: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롬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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