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자에 대한 가짜 해석

(뒤에서 소급되는 = 팔을 어긋맞게 하는 천국, 영의 나라, 예수님 나라)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남은자의 반대개념(엉터리 가짜개념)을 생각해보면 남은자의 의미도 알게 된다.
즉 가짜 남은자 의미를 붙잡도록 하는 진짜 남은자 의미 (가짜=육 의미를 들추어낸 성령)


남은자가 되고파 하는 인간들의 종교적인 열심 (미끼 물도록,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탐스러운)


어제 081130 예배 마친 후 이신진 성도님과 함께 이런 대화를 했다.

오후예배때에 이신진 성도님의 기도 내용이
남은자에 대해서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올린 블로그 내용도 그러하기에 혹시 제 블로그를 보셨냐고? 지난 번에 주소 알려 줬는데

아직 못 찾았다고 했다.

아무튼 오후예배 대표 기도의 내용이 남은자 라서

이신진 성도의 말을 들어보니 지난번 목사님의 설교 중에 12 광주리 의미를 통해서
남은자 그리고 새 이스라엘 이런 의미들이 하나도 쭈욱 연결된다 는 것을 알고서
기도 속에 언급했다는 것이다.

마침 그런 대화 와중에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남은자 새이스라엘 12광주리 또 그 12바구니를 남기는데 있어서 무능함(창조의 무능함) 그리고 첫사랑 처음자리
그리고 마태복음 최근 44번째? 공부 중에 어린아이란 법 에 무능자 처음자리에 해당 되는 자 라고 언급했고 이 모든 것이 다 남은자 와 다 연결 되는 의미이고

무엇을 알게 되었냐 하면

보통 남은자를 생각 할때 1차 합격 2차 합격 3차 합격 식으로 순서상 자꾸 떨어뜨려 가면서 최종 합격자로 생각하는 마치 광야에서의 탈락 개념과 특히 다윗언약에서 광야개념 그대로 적용하면 최종합격의 남은자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 반대 라는 것을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가나안 전쟁이라고 그때 툭 하고 말이 튀어나왔는데 가나안 전쟁이 아니라 기드온 전쟁이다.
기드온 전쟁을 통해서 군사 모집을 할때에 

자꾸 자꾸 작은 숫자로 최종 군사로 합격 시킨다. (육의 생각의 반대)

이것을 1차 남은자 2차 통과의 남은자 3차 최종합격자로서의 남은자 개념 보다

반대로 미래에서 꺼꾸로 (티비 광고처럼 헌 차를 새차가 뒤에서 검은차를 새빨간 차가 삼켜버리듯이)

꺼꾸로 소급해서 이 소급이라는 의미가 중요

소급해서 화살표 방향을 반대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의 일과 연관된 영의 소욕이 배태시킨 남은자 이다.

결국 이 법칙을 지금 또 이 순간 지식 습득 스폰지 처럼 빨아들여서 저장된 지식으로 써먹을려고 해도 안되는 이유는
영이란 육의 반대이기에 반대의 반대를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영 자체가 육의 거부를 전제로 하고
육의 차단이기에 그 자체로써의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거꾸로 라는 것도 우리가 자기 숙제로 따라할 수 없는 이미 주님의 숙제로 덮쳐질때에
우리는 그 결과에 당하는 입장만 있을 뿐이다.

말이 괜히 어려운데

쉽게 생각 하면 포도원 농부에게 삯을 계산하는 천국 비유와도 같은 의미 이다.

즉 성경의 계시를 엉터리로 해석하는 자를 반드시 성령은 대조 시킴으로써
우리 또한 그렇게 해석할수 밖에 없는데 그것이 아니다 라고 알려준다는 자체가 이미 사랑의 관계성에 놓였다는
남은자 라는 것이다.

왜? 무능하기에(창조 당할 입장이지 창조할 입장이 아니기에 그렇다면 무능함, 마치 엘리에셀? 종 처럼, 기도란 묵시적인 행동이다. 나는 무능합니다. 라는 뜻이다. 금식이란 나는 죽어 마땅합니다 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생명 앞에 서 보니 생명에 나는 무능하기에 마땅히 죽어야 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라는 뜻이다. 회개도 마찬가지 돌이키거나 변화 할 능력에 나에게 없습니다. 도통 내 죄에서 빠져나올수 없는 철저한 무능자 입니다 라는 고백이다. 유턴 자체가 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라고 세리 처럼 긍휼을 바라는 것 이것이 처음자리이다)

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천국 비유에서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 20: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마 2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마 20:5)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 20: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마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 20: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마 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 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마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 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16절을 말하기 위해서 나중 된 자를 어떻게 먼저 되게 하시느냐 하면

뒤에서 소급 시키는 것이다.

즉 주님 자신 즉 주인의 선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선함 자체에 철저한 무능자를 먼저 무조건적으로 편애 시켜 놓고
이 편애를 얼마나 편애 스러운가를 말하기 위해서

뒤에서 소급하면서 노동값을 정산한다.

무조건 적인 사랑을
얼마나 사랑인가를 부각 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무능자를 앞세워서, 무능장에게 사랑을 퍼부운 주인의 선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노동의 가치에 자기 공로를 드러내는 자의 악함을 드러낸다.(무능함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드러내는 자)

(이것이 천국 비유의 공통된 특징이다. 탕자비유에서의 아버지 긍휼을 얼마나 큰가를 말하기 위해서 맏아들 먼저 된자인 맏아들을 강퍅케 한다. 눅15장. 일만 달란트 용서의 비유도 동일하다. 마18장)

왜 뒤에서 소급할까?
법을 쥔 자가 최종적으로 하아라이트 클라이막스에서 빛을 빛 되게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어두움을 꽁꽁꽁 숨겨놓았다가 그 사랑을 극적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법을 쥔 자들에게(무능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인의 편애가 불공평하고 불공평할 수록
편애는 더더욱 그 가치의 진가를 드러낸다.

즉 남은자란 먼저 되었다고 먼저 남은자 라고 우기는 자의 그 가짜성을 드러내면서(자기노동의 가치)
그것의 철저한 차단성과 단절을 부각 시키면서

동시에 남은자 를 형성하는데 철저하게 무능자 ( 성전의 두 사람 중 바리새인은 남은자를 형성하는데 자기는 무능자가 아니다 라고 도리어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자랑했고 하나님께(거룩을 동원하고 거룩 뒤에 자기 죄악을 은폐 숨겨버림) 감사하다고 했다) 일수 밖에 없는 나중 된 자 를 

무능자로 만들어서 법을 쥔 자를 차단함으로써 저절로 남겨진 자가 남은자가 되는 것이다.

즉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에 간다는 의미는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천국갈 조건이 일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천국 가냐

천국 갈 수 없다 라는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갈수 있다 라는 조건과 가치와 가능성을 제대로 갖춘 자들을 차단 단절 함으로써
천국 을 증거하신다.

제거 하다 보니 저절로 남은자가 생성이 되는데
알고보니 법을 쥔 자들이 한결 같이 그런 자는 절대로 천국 갈 수 없는 어떤 조건이 없는자다 제일 끝에 해당되는 자다 라는 자가 도리어 처음되는 자로써 등장 된다.

결국 첫사랑은 
하나님을 자기가 사랑한다는 조건을 다 갖춘자를 차단함으로써
진짜 처음 자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치 어린아이를 법을 쥔 자들의 모든 사고방식을 다 들추어 내고
제일 나중에 아무도 눈여겨 본 적도 없이

예수님과 자신과 한 패거리로 만들고자 정치적 술수에서

도리어 철저하게 소외된 자인 어린아이만을 
예수님 자신의 사람 속에 유일한 자임을 드러내는 방식인 뒤에서 소급하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란
아무도 못 믿도록 아무도 이해못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증거 된다.

왜냐? 어려워서?

천만의 말씀

너무 너무 쉬워서 아무도 못믿는 것이다. 아무도 이해 못하는 것이다.

오직 어린아이, 나중된자, 아무것도 내세울수가 없는 자
이들만이 믿음이 주어줬기 때문이다.

비유를 해석하기 위해서 지식을 갖추다 보니 도리어 비유 해석을 못하는 것이다. 바리새인 처럼

왜냐 주셔야만 아는 것을

자기 쪽의 숙제로써 접근하기에

도리어 뒤에서 소급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의 가치로써
믿음의 댓가로써
습득하기에 육의 소욕이 되었고
그 육의 소욕 때문에
영의 소욕은 일체
접근을 차단하는 식이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키도록
육의 소욕의 마귀성인 적개심을
도리어 지식을 습득한 이유로 더더욱 죽이고픈 선악법에 사로잡히도록 하는 것이다.

무능한 어린아이를 그런 아벨과 같은 자를
연자맷돌을 씌워서 죽이는 것이다.

차라리 성경말씀 모릅니다 지금 이런 무능자인 저를 알려주십시요 라고
나 소경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정말 정말로 성령을 입은 자 곧 남은자 이다.

우연히 영화제목을 찾다가 (금융사기를 다룬 영화) 렘넌트 곧 남은자 의 의미가 엉뚱하게 한 개 검색이 되길래
들어가 보니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남은자 공부를 전체로 도배를 했던데
그 내용이 오히려 가짜내용만을 가르치고 있었다.

링크

차라리 그 내용의 반대로만 알면 진짜 남은자 의미를 알것 같았다.

그리고 올해 처음달에 중고등부 교재를 구입하다가 안 것이지만
과거 청년부에서 다루던 그 내용들이 이제는 중등부에서 다루어 질 정도로
점점점 세상이 악하다 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 아니 이미 완료 된 상태이기에 종말이다.
종말이기에 저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모든 것들이 그들이 먼저 장악된 상태이다.
그러나 가장 나중에 나타나는 영이 모든 것을 뒤 엎어 버리는 뒤에서 소급하는  새로운 판대기를 짜는 방식)


왜냐?

대학부에서 사기 치던 그 내용을 가지고 (써먹으면서 우려먹던 내용들이)

이제는 중등부에게 우려먹을려고 대학생에게 사기치던 내용을 다루는 것을 보니

아 갈때 까지 다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저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무능하게 만드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우리 자신이 아니고 누구랴?

인간들이 할 줄 아는 모든 것을 모아서 남은자 운동을 펼치겠다는 그 내용들이
한결같이 저 여호와증인의 다단계 전도방식의 피라미드 십사만 사천명 되기 전도 운동 방식과 같았다.

여호와 증인들이 자신을 피라미드 제일 꼭대기 VIP 십사만 사천이 되기 위해서
밑에 회원을 가지치기 하듯이 다단계조직을 형성할려는 그 모습이나?

기존 정통교단에서 중등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렘넌트 운동이나
다를바 없이 백배나 지옥 자식 만드는 모습이다.

바로 이런 성령님의 일하심이 이렇게 배치시키심으로써
제일 나중 된자가 먼저 되는 식으로서만
철저한 차단을 통해서 철저한 무능인 자에게 뛰어드시는 것이다.

마치 솔로몬 재판 속에서 법의 칼 앞에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빠져나올 길이 아예 전무한 철저한 무능자, 지옥 갈수(사망의 권세) 밖에 없는 아기에게

미련하고 어리석게 법 앞에 도전하는 창녀로써의 어미가
그 죽음에 뛰어 들고
그 법에 도전하는 방식

이 길 외에는 남은자란 없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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