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언약 (할례 언약 곧 단절) :
육의 차단 = 모든 육체 십자가에 못 밖기

아브라함을 차단 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만 옳았음을 언약으로 세움
육의 활동(소욕) 거부하고, 오로지 영(마음판의 할례)의 활동만 부각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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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9 02:02:45,

창19장29절 “하나님이 소돔성과 고모라성을 엎으실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생각하사란 부분을 언약으로 봐야 하는거군요

답변 :

언약 아니면 곧 약속이 아니면 곧 피가 아니면
즉 예수님의 죽으심 낮추심 별세가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심 아니면
일하시지 않습니다.

저번에도 언급했듯이 에덴동산에서 주님은 두 나무만 중요시 합니다. 인간은 하등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 조차도 두 나무를 증거하는데 동원됩니다. 선악나무에 해당되는 인간과 생명나무를 증거케 하기 위한 인간

결국 개인용 구원 따위를 가르친 지금까지의 교회는 불교나 기타 우상 종교와 일반 다를바 없습니다.

아브라함 조차도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말하기 위해 동원 된 거지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 구원 자체에 목적을 둔게 아닙니다. 그것은 커다란 숲은 안 보고 그 부분적인 것만으로 자꾸 암호 해독할려고 집착하는 결과입니다. 왜 집착하냐? 당연히 자기 개인 구원과 연결 시키고자 하는 결핍채우기죠.

그러나 언약은 그런 인간의 심뽀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도리어 두 나무의 구조를 말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인간은 이용 당해야 하는 겁니다. 개인구원과 연결 시키고자 다가가는 것 조차 주님이 두 나무 구도에 넣기위한 목적에 걸려든 겁니다. 구원 조차도 선악으로 판단하겠다는 취지로써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도록 하여 영원히 못 빠져 나오도록 말이죠

다시 강조 합니다

아브라함 곧 인간은 비언약에 해당 되고
그 비언약과의 차이를 말하면서 언약을 말하는 아브라함 언약 곧 이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인간을 어떻게 교체 시켰는가? 그 약속에 다말처럼 목숨건 분이신 하나님 자기 자신의 열심 자기자신을 치심 자기자신의 제물되심(여호와이레) 자기자신의 낮추심을 인간과 대조시켜서 증거하는 겁니다.

누구 누구의 하나님이란 결국 그 누구를 육에서 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그 열심히 목적이지 자기자신의 영광만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죄인 만을 다루십니다.

의사에게는 건강한 자가 필요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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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9 02:03:40,

여기선 어떤 언약으로 봐야 하나요

답변 :

네 언약 곧 약속입니다. 창 3:15의 약속을 현실화 한 겁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지요
(잠깐 언약에 대해 설명하면
아브라함 언약은 앞전의 노아언약 곧 무지개 언약과 뒤의 모세언약(거룩한 율법 성취=안식=이웃환대법=원수살리기)을 드러내면서 새언약을 증거하는 겁니다.
노아언약은 무지개 곧 용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일만달란트 탕감한 임금 비유를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즉 용서 해 놓고서는 용서의 의미 모르는 자를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작살냄으로써 용서 다움의 용서의 진위를 맹렬하게 떨치겠다는 취지입니다. 함의 사고방식 작살

모세언약은 율법 곧 거룩완성 쉼 안식의 완성인데 바로 이웃사랑의 실현입니다.

이 이웃(원수)을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원수를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에서 출발 시킵니다. 죄인으로부터 출발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이 가입이 되구요. 이스라엘 조차도 원수 만들어서 사랑하겠다는 겁니다. 그 근거는 이스라엘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원수 위에 뿌려질 피가 중요한 겁니다. 이 피 모르는 놈 백날 율법 지켜봤자 헛수고죠. 모세언약을 쉽게 이해 할려면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 많이 있습니다. 반드시 두 패로 갈라놓는 입장인데 그 예로 성전 안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왔는데 하나는 바리새인 하나는 세리죠, 또 어떤 비유가 좋은 예가 되는가 하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입니다.

결국 이웃 사랑 완성은 희년과 연관되기에 누가복음 사도행전이 모세언약 곧 이웃환대법 약자보호법을 정작 법 쥔 놈들은 율법 지킨놈들은 단 하나도 못 지키고
그 율법 지킨놈에게서 반드시 죽는 예수님 혼자만 율법을 완성하는 취지로써
육(행함)은 거짓이고 영의 활동(별세) 만이 옳았다 라고 영의 활동만 부각 시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 십자가를 진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미래에서 덮쳐진 십자가의 용서를 말하기 위해서
소돔에 있는 롯에게 증거하러 간 겁니다. (소돔 속에서 그 십자가의 용서를 아브라함 본인 조차도 믿어야 할 판국이지 이미 믿었으니까 구원하고자 7번 8번 용서할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구원자 위치가 되었다 라는 의미는 저 마귀새끼 성화론자들의 주장이지요. 피를 모독하는 거죠)

바로 이 언약의 증거 자체가 소돔의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겁니다. (한 쪽은 심판 한 쪽은 구원)

소돔은 애굽의 10번째 장자재앙에 해당 되고
롯과 아브라함은 그 애굽에서 여호와의 열심히 탈출(자력이 아님) 당하는 이스라엘 역할입니다.

괜히 그 소돔 속에 들어가서 남의 나라 조져 버리는 방식이
마치 탁란 현상처럼 볼모작전처럼 애굽에 푹 수셔 놓고 빠져나올때에 애굽조져버리는 겁니다.

이 의미를 모르는 광야 교회의 이스라엘 조차도 구원해 놓고도 다 죽여 버립니다.
구원이 목적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피가 목적인 겁니다.

즉 롯 조차도 아브라함 조차도 피를 모르면 조져 버리는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 목적이지
인간 구원해서 뭐하게요? 아무 쓸모짝도 없고 그런 놈들은 천국에 가서도 배설물을 자랑할려고 하기에 미리 짤라 버려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 자기 자신의 살과 피(십자가=요나의 표적)에 관심 없는 인간들은
어차피 애굽에서 건져 봤자, 만나가 뭔지 몰라서 자기양식만 쳐 먹다가 다 죽임 당하고
바로 그런 땅의 양식을 구하는 자는 철두철미하게 가려내시겠다는 취지입니다.
왜? 영생의 주님의 살과 피 (생명나무만)을 중요시 하시지
그 살과 피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롯도
아브라함도
남은자도 십자가를 말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동원시키는 것이지(그들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일 뿐 주객이 교체당한채로 주님의 살과 피를 주체로 증거함)

아무리 바리새인과 오늘날 성화론자들이 남은자 운동 하나님 나라 운동 새생명의 삶 운동 성화되자 한몸되자 교회답게 개혁하자 아무리 울부짖어도(주체를 여전히 인간 숙제로 봄)

피 모르는 자는 다 제거 합니다.

그들은 기껏 선악 나무(법)의 증인 이었지.
생명나무의 증인이 아니었던 거죠. 자기가 원수로써 용서 받은 것을 매일 매일 끄집어 낼수가 없는 겁니다.

겨우 말씀 지켰다 라는 법만 내세우니 자기를 선악으로 치장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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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9 07:35:08,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인 나라보다는 단체적인 나라를 표현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단체성을 말할때 성전이 건물마다 연결되어서 건축되어지는 거기에다 말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돌로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하나씩 하나씩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진다 성전에 가면 골방이 있다 연결되어야 가능하다 전체적인 확장이다

답변 :

그렇게 말하는 취지 자체가 전체 판대기로 안 보고
교회라는 사적인 탐욕을 부추기는 식입니다. 교회를 소위 유기체 라고 그렇게 연결 연결을 주장하는데 가만히 보니 바벨탑을 건립하는 취지와 같습니다.

교회 조차도 언약을 증거하기위해 동원되는 소모품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누락 되기 위한 목적인데
교회 자체가 주체가 되어버림으로써 증거되고 있으니 결국은 교회 건립을 인간의 숙제로 주장하는 이유가 바벨탑 중에 바벨탑을 꿈꾸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가 체제 시스템 조차도 날려 버립니다.

이미 하늘에 있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기체 유기체(철학에서 따온 표현) 말로만 하지만
아무리 해도 하나되지 못하고 늘 분열되는 그 불안정감을 견디지 못하기에
너무 너무 믿음이 없어서 유기체 유기체 하나 되자 하나 되자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만큼 불안하고 믿음이 없어서 하나 되자 라고 얼마나 하나 된 적이 없었으면 그것을 채울려고 결핍 결핍 결핍 놀아줘 놀아줘 놀아줘을 주장하는겁니다.

아무리 놀아줘 봤자 음부의 권세가 그들 마음에 이미 박혀 있기에
아무리 채워본들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미리 그런 자들은 제거 하는 겁니다.

이미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 주셨습니다.

목숨 버렸다면 이미 다 준 겁니다.

그런데 다 받아 놓고도

개혁 되게 해주세요
뭐뭐 되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취지는 이미 준 것 곧 피 에 대한 모독입니다.
알고보니 피 말고 다른 것을 달라는 취지가

한 풀이 원한을 갚도록 남보다 이기고 싶어서 사랑을 달라 그래서 남보다 사랑 더 많이 해서 믿음 좋다는 소리 들어서 그 동안 믿음 없다고 서러움 준 자들을 꺽어보겠다 라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늘 높고자 하는 것에 책망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인간들은 믿음 조차도 남을 꺽고자 하는 기독교문화운동으로 세상정복이라는 야심을 마치 성화론운동 하나님나라 운동 새생명의 삶 운동 묵시운동을 펼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미 완료된 것을 받은 것이 없기에
그 빈자리를 믿는 티를 내기 위해서라도 뭐라도 채워야 하는
지옥 스올 그 자체가 된 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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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9 07:37:35,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단체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정체성을 항상 표현한다 유대인은 우리만 생각하므로 어긋난것이다 질적으로 완성된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지는것이고 만유의 구원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속에 표현된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만유까지도

2008-11-29 07:39:53,

그러기위해선 개인적으로 말씀이 확고해지고 자기안에서 영육의 구분이 분명해지고  형제 형제사이에서 포로된 자들을 끌어낼수 있는 힘이 있어서 그와 내가 하나가 되어지느 연합체를 이루어야 한다

답변 :

그러니까 바벨탑이지요 알고보니 힘을 합치자 라는 것이죠
늘 힘에 굶주려 있고 지금은 미약하니 더 채워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왜 미약하게 볼까요?

전체 판대기를 규정하는 영의 일이란 피만을 드러내기 위한 구도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무슨 수로 든 삼킬려고 (마치 베드로를 삼킬려는 마귀처럼)
교회에 모든 사활을 걸겠다는 취지가
바로 언약에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언약은 그저 교회를 삼키기 위한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교리 신학일 뿐이고
정작 교회 하나만을 영원히 꼬끼어서 영원히 자기 뱃속에 집어 삼키겠다는 취지입니다.

집단 판대기 라는 의미는 개개인의 선악나무 생명나무란 없고
이미 전체 판대기 자체가 비언약과 언약의 구조로 판을 결정했다 라는 취지인데

자꾸 만인구원설과 같은 자꾸 구원과 연결시키는 그 병적인 행세는

결국 교회를 잡아 먹지 않고서는 못견디겠다 라는 회칠한 무덤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을 악하다 라고 규정하심으로써

두더지 게임 아시죠

교회를 미끼로 낚시 줄에 달아서 물릴랑 말랑 간드러지게 올려 놓고
그 미끼를 삼키고자 깊은 바다 속에서 올라와 뛰어서 미끼를 물려는
바다 용, 머리 내미는 두더지처럼 그 크로크다일
큰 악어의 머리를

사오정의 뿅 망치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열

계속 조 팹니다.

마치 롯을 소돔에 심어서 그 롯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과 구원을 행하는
예수님의 피가 발린 의로운 롯을 기준으로 해서 롯 건드렸다고 다 죽여버리는
주님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전쟁에
교회 마저도 소모품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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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

다윗언약도 이왕 한 김에 설명해 보며는
왕만 있으면 게임 오바 다 라는 겁니다.

즉 섬기는 왕만 있으면 게임 오바(백성을 섬기는)

자 그렇다면 섬기는 왕을 말하기 위해서는 가짜 왕(백성을 삼키는=가짜메시야)을 드러내어야 하는 겁니다.
그 섬기는 왕과 그 나라와 그 백성은
바로 이 가짜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인데

이것을 다윗은 가짜 왕의 자리에서 인간은 왕 아니요(선악 때문에 하나님 같이 되었는데 알고보니 가짜 하나님이지 참 하나님이 아니요) 오로지 섬기는 왕이 진짜 왕이더라 라고(백성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는 자)
그 진짜 왕을 눈에 보이도록 보여주면 좋을텐데 눈에 보이지 않고 또 기가막힌 것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을 다윗왕은 알았거든요 다윗이 알았던 그 왕을 섬기지 않으면 다 작살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알게된 왕을 기준으로 해서 가짜 왕을 무수히 세우고 다 작살내고
그러면 그럴수록 저들은 바벨탑을 노아홍수 때문에 결핍 채우기 위한 결집으로 세울려고 했듯이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세웠듯이
이스라엘 속에서 나타나는 왕들은 족족 이스라엘 국가 체제에 집착 합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 삼킬려는 목사들과 그 쫄개들처럼

그래서 선지자 라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써 그들이 세우는 성을 족족 허물어 버립니다.

돌 위에 돌 남지 않도록

(마 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막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눅 19: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눅 21: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그리고 다윗이 알게된 그 왕(임마누엘)을 기준으로 선지자들은 이미 완성된 나라를 보고서 뿅 가서 그 완성된 나라 아니면 다 누락 시켜버리는 겁니다.

심지어 선지자 자기자신 마저도

선지자는 지금 현재의 이스라엘의 심판을
어차피 없어질테니까 그 없어진다는 취지로 자기 신체에 담고서
미움받는 자리, 죽을려고 환장한 죽음의 자리 (은사)
에 서서 미래의 완료된 나라와 그의 왕을 소개 합니다.

당연히 개죽음 당하는 거죠

그런데 그 다윗언약을 증거한 선지자가 딱아 놓은 그 코스 그대로
예수님이 또 그 코스 대로 행하십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이느냐?

구약에 이스라엘이 참선지자를 죽였듯이

그냥 안 죽이고 반드시 거짓선지자(마귀의 영)와 인간 왕과 그리고 그 국가 시스템인 힘의 결집인 바벨탑과 결합을 해서 (이것이 계시록의 상황도 동일합니다.)

동일하게 예수님의 죽음도 바로 이런 상황 그대로 인간의 모든 육적인 본성 곧 마귀와 종교의 힘과 성전의 결집과 그리고 이방왕의 힘을 동원해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 하시는 겁니다.

우리 또한 동일한 구도에 놓여 있습니다.

자 이런 모든 십자가만을 창세전에 예정한 그 계획이

아브라함 언약에서 미리 그 서막을 이 전체를 말하기 위해서 그 예정된 것을 하나 하나 보여주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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