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4 성전을 수직(맡아서 하는 일을)하게 하고 (겔 44,10-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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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4 성전을 수직(맡아서 하는 일)하게 하고 (겔 44,10-14)

할례받지 않은 발가벗은 이방인과 같이 된 이스라엘 (겔 44, 4- 9)
에스겔 2019 2022. 4. 10. 10:52
19-123 할례받지 않은 발가벗은 이방인과 같이 된 이스라엘 (겔 44, 4- 9)

〈에스겔 44,10-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2쪽,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376장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찬송가 205장 예수 앞에 나오면〉 

1.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집에 길이 살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에스겔 44,10-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2쪽〉 

(10)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11)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전문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1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13)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14)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찬송가 376장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1.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2. 꿈같이 헛된 세상일 취할 거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뿐일세

3.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4.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5.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 하세  아멘


(겔 44:10, 현대어)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방인들이 성소에서 맡아 하던 일을 레위 지파가 맡아서 해야 한다. 레위 지파의 후손들은 앞으로 성소의 모든 대문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고 내 성소에서 해야 할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려고 끌고 온 짐승들을 도살하고 희생제물을 바치는 성도들의 온갖 시중을 들어 주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레위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떠나서 온갖 우상을 뒤쫓아 갔을 때에 레위 사람들이 오히려 더 앞장을 섰기 때문이다.
(겔 44:11, 현대어) (10절과 같음)
(겔 44:12, 현대어)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들어 우상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게 함으로써 그들을 무서운 죄악에 빠뜨려 놓았다. 그들은 이제 그 벌을 받아야 한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니 어김이 없다.
(겔 44:13, 현대어) 그들은 다시는 내 앞에 제사장으로 나설 수도 없고 특별히 거룩한 물건에 가까이 닿아서도 안 된다. 그들이 저지른 온갖 끔찍스러운 죄악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겔 44:14, 현대어) 이제부터는 성전에서 일꾼 노릇이나 하면서 온갖 비천한 일들을 도맡아 해야 한다.


(겔 44:14, 改譯)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殿)을 수직(守直)하게 하고 전(殿)에 모든 수종(隨從)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行)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수직하게 하다]는 말이 믄 말인가 싶어서 구절을 검색하니

(민 3:8, 개역)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지니
(왕하 11:18, 개역)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겔 40:45, 개역) 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겔 40:46, 개역)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마 28:4, 개역)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왕하 11:18에서 같은 단어가 나오던데
수직하 로 검색하니 4개가 더 검색이 되더군요
쉽게 말해서 물건이나 건물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 맡아서 하는 일을 말하는 겁니다

아무튼 성전의 일을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새 성전 곧 걸어다디는 성전의 증상물로써
성전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은사요 사명이요 성령의 일인 것이지요

분명 솔로몬 성전이라는 불타는 성전을 거쳤고
이 성전이 지난번 앞의 구절의 내용처럼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이 성전을 들락날락함으로써 더럽혔다 말이죠
거기에 제사장도 레위인도 우상숭배를 하는데 다 함께 미혹 당해서
성전을 더렵혔기 때문에 성전을 허물어 버려 불태워 버리시는 겁니다

자 그럼 그렇게 우상숭배를 했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금 에스겔 때에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와서
이제 성전이 없거든요
없으면 이제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분 또는 기능도 의미가 없어요
성전이 없는데 그런 성전 종사자가 하는 일의 직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벌 받고 심판 받는 
바벨론 포로 잡혀 와서 그저 죽는 것 밖에 남은 것이 없다 말이죠

아 그런데 그 심판 속에서 주님은 
이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능을 부여하심으로써
새성전의 증상물로 삼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성전이 없잖아요
네 없어요
새성전이 졸지에 생겨버렸기에
그 새성전의 증상물로써 기능이 주어진다 라는 겁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불타는 성전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성전
새직분으로써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능을 부여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성전의 증상물이다 라는 겁니다

즉 의사의 기능의 증상물은 환자입니다
고로 건간한 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의사에게 말이죠

당연히 구원자 에게는 의인이 필요가 없어요 죄인만 필요하다는 겁니다
죄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과학의 물리학에서는 퀀텀 곧 양자 라고 합니다
경제학에서는 더 이상 나누어 질수 없는 잔여 잉여 이자 라고 합니다
이자금 잉여금 할 때 그 잉여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선물 또는 은혜 또는 믿음 이라고 합니다
즉 양자를 과학자들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라고 합니다
아이슈타인이 이 양자학이 말도 안되기 때문에 극구 반대했다고 하죠
과학 자체가 논리라서 원인 있는 결과가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원인 없는 결과가 나오냐 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말이 안되는 불가능한 비논리요 이해불가요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만약에 원인 있는 결과 이게 되면

이것은 나누어 지는 거죠 
선물도 아닌 거죠
일한 것에 대한 노동이다 말이죠 보상이다는 겁니다
믿음을 노동으로 봐 버리면 즉 원인이 되어 버리면
그 원인에 따른 댓가로써 보상으로써 추구하게 되면 이것은 자유하는 여자가 아니라
또 의문의 반복의 노동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서는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다는 겁니다
유대인 자체가 선물 덩어리 인데
졸지에 그것을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선물이 날라가 버리고
예수님의 숙제가 날라가 버리고
말이 되는 인간의 숙제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 라는
역시나 우상숭배로써의 탐심이 곧 우상숭배로써
탐심의 구원이 되는 겁니다 구원탐심

보상 믿워 줬으니까 보상 내 놔라 구원 달라 라고 멱살 잡고 협박하는 깡패처럼 말이죠

그래서 미래에서 쳐들어 오는 선물로써의 믿음은
바로 그런 나 깡패 같이 멱살 잡고 믿어줬으니까
예배 드려줬으니까
기도 해 줬으니까
말씀 지켜줬으니까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으니까 구원해 달라 라는 이 깡패로써의
원인을 갖춘 나 라는 존재를 삭제 시킴으로써

원인 없이 졸지에
잃어버림 속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되찾음을 펼치시더라 말이죠

그래서 우상숭배했던 그 제사장과 레위인을 다시 라는 개념 보다는
이전 것은 지나갔고 아예 새창조를 해서
새마음 성령의 은사를 주어서
이전의 불타는 성전의 증상물이 아닌
그렇다고 불타는 성전의 증상물로써 포로잡혀오는 그 일을 격도록 하시지요

오히려 예루살렘 거주민 포로잡혀가지 않는 거주민은
불타는 성전 때문에 성전도 사라지고 없으면서도
자신들은 저 포로잡혀가는 자들 보다 복 받았다 라고 착각하듯이

도리어 이렇게 포로잡혀서 
잃어버림 당해서
이 심판 속에서
새성전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 잃어버림 자에게만 이 새성전이 의미가 되는
환자에게만 의사가 의미가 있듯이

이것 때문에 포로잡혀오도록 하신거다 말이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토록 만든 것이다 말이죠

왜 스가랴 서에서 불타지 않는 흰 옷을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옷을
준비 하셨기 때문에
성전이 불타서 제사장 옷 에봇이 새까맣게 더럽혀짐으로써
마귀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잡아서
주님 앞에 데리고 와서 고소 송사를 하듯이 말이죠

아이고 잘 잡아왔다 안그래도 새옷을 입혀 줄려고 했는데
마귀야 참 잘 잡아왔다 라고 
마귀 보란 듯이 새 옷을 입혀 줄때에

밤새도록 고소장을 만든 마귀는 뭐가 되냐 말이죠

팽 당한거죠

바로 이것이 지혜입니다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만드는

때린 시어마이 보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 라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마귀 들으랍시고 세 번 묻는 예수님이 더 미워하도록 말이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나 예수를 미워한다 라고
왜? 세상이 왜 악한 가를 들추어내었기 때문에

다들 악도 적당히 알고 선도 적당히 그까짓꺼 대충 아는데
아니 예수님이 제대로 이 악마의 실체를
사탄의 깊은 것으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지혜로써 까발려서

이 두 언약을 차이냄으로써 언약을 말씀을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인해서
이 사탄의 깊은 것을 보여서 만 천하에 공개해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귀는 인간 상대 안합니다
예수님도 인간 상대 안합니다

육의 소욕은 예수님의 소욕만을 겨낭하고 있고
예수님의 소욕은 마귀의 소원만을 겨냥하고 있다 말이죠

마귀는 지 마음대로 못해요
이 예수님의 소원을 나타내기 위한 부정적인 도구로써 동원이 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한세트로써의 사탄의 깊은 뜻을
한 세트로써 동원이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사탄의 깊은 것을 거쳐서 단한번도 우상숭배를 안해서
그런 조건을 갖추어서 성전의 의미를 나타내는게 아니라
그래 봤자 또 역시나 불타는 성전 이라는 결과 뿐이고요

정작 원인 없이 결과로써 덮쳐진 이 새성전의 기능에 맞게
그 증상물로써 나타나는 자로써의 제사장과 레위인은
아 이렇게 잃어버림 당함으로써 다시 되찾는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의
잃어버렸다가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으로써

더 이상 자기 의로움을 성전에 바치는 것이 아닌

주님은 받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이시기에

거꾸로 성전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
선물
잉여
증여
잔여물로써 
원인 없는 결과물로써
본인들 자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하늘에 속한
그 나무에 그 열매로써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열매로써

본인이 저 불타는 성전의 한계치를 겪어 봤다 아닙니꺼
겪어 봤응께
불타는 것이 마땅하다 안마땅하다
마땅하다 라는 똥 떵 어리 배설물이다 라는 것을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는
심판받아야 한다 라는 겁니다 불타 없어져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죽도록 배려 봐주심은
이것이 참성전의 기능인데

성전을 우상화 하고 우상을 세워서 우상숭배로 만들어 더렵혔으니
당연히 불타야죠 불타야죠 ~~~~~~~~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라는 직분을 
왜 이런 왕같은 제사장의 기능을 왜 허락하시는 겁니까

개인의 자질이 과거는 더러웠는데 이제는 깨끗하게 씻어서?
어차피 또 더러워지는 겁니다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이제 개인은 없어졌어요
자기의 것이 다 날라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레위인은 하늘에 뚝 떨어진 땅의 지분이 없는 자이거든요
이것을 육체로써 몸소 육체의 한계를 격었다 말이죠
뭐 겪었으니까 체험도장 찍어도 라고 인증샷을 증거물을 만들게 아니라
증거물 인증샷은 우리에게는 정작 아무 쓸모 없어요
증거물은 예수님만 들고다니는 인증샷이다 라는 겁니다

어떻게 마귀를 약올릴려고

이 봐라 내 피로 이 죄인 중의 괴수를 내가 죄 값을 치르었다 라고 말이죠

그래야 마귀가 격동하고 반발하는
비로소 사탄의 깊은 것이
오로지 십자가의 피 용서에서만 튀어나오거든요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속일려고 라고 하시는 이유는
속임수는 이 십자가 앞에서만 드러나지

십자가가 아니면
이 하나님의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요(헬라인에게서는)
그리고 거리끼는 걸림돌 유대인이 보여줘야할 이 성령의 은사를
도리어 자신들이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버릴정도로 속임수에 다 빠져버렸으니
이 십자가만이 유대인에게서는 걸림돌로써 유대인을 걸어넘어뜨리는 겁니다

왜냐 자신들이 이방인에게 스탑 멈춰 라고 해서 다리걸어 넘어뜨려야 했거든요
우상을 넘어뜨려 파괴해야하는데
도리어 거꾸로 우상과 하나님을 썩어버렸으니
오홀리바 우상숭배하는 음란한 저 사마리아 첫째 언니 보다
그 음란하다로 사마리아 언니를 욕하고 있는 그 당사자
둘째 여동생 예루살렘이 더 더 더 음란한 창녀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그 속임수 까지 다 까발리는 것은 이 십자가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 당사자로써 베드로가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고

우상숭배를 이방인처럼 했던 이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 유혹에 빠져
그 사탄의 일을 거침으로써

시아버지 유다처럼 이방여자 며누리 다말아 너가 나 보다 옳도다 라고

이 형식적으로 양잡고 6조각내고 번제 제사를 껍데기 형식적으로 드렸던
그 수천번 수만번 드렸던 형식적인 제사가
실제사건으로써 자신이 그 제물이 된 양처럼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역사가 찢겨지고
육체가 찢겨지고
육체의 소욕
육의 한계가 찢져기는

저 양자의 세계
잉여의 세계
선물의 세계
실재계가 쳐들어와서
상징계의 법 고추 남근의 우상을 깨뜨려 버리니까

머슴아가 졸지에 여자가 되어서
어머나~  다시 한 번 말해봐 텔미 텔미 테테테테 텔미 라고
나 보다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여자가 남자를 안더라 말이죠

오홀리바 텐트 속의 텐트
긍휼 속의 긍휼

내 긍휼 내 거룩은 이 하나님의 긍휼 앞에서는 쨉도 안 되더라 라고
부정의 부정
생명의 생명
종말의 종말을 외치는
비로소 종말의 사명인 종말의 은사인
제사장과 레위인
진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땅의 지분이 없이
그 어떤 땅과의 연결점이 없는
단절된 채로 이 땅에 이 걸어다니는 새성전의 기능의 증상물로써
새롭게 등장하게 되더라 말이죠

이 기능에 개인이 받았다는둥 못받았다는둥 이라는 존재는 다 의미가 없거요
역사는 의미가 없고요

오로지 그 역사를 찢는 개인을 찢는
묵시만이 종말만이

저들 언약 비언약과 맞물려서 종말로써
이 두 언약을 구성함으로써
언약을 약속을 성사시키시는 겁니다

자 그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라고 약속 성취를 이미 하셨다
그러니까 이제 약 속 성취 그 이후
그 유명한 명제

구원 그 이후 라는 개념을 우리 인간에게 따와서 합체 붙일게 아니라
반대로 그 약속성취를 다 이루셨다 라는 그 선포의 대상물로써

우리는 증상물로써 역사 속에서 시공간을 찢으면서 불쑥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건덩어리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구원 그 이후  

라는 시간개념을 지닌 우리에게 맞추는게 아니라
그런 시간의 산물인 우리를 찢으면서 나오기 때문에

거꾸로 늘 수시로 약속의 성취가 매일 매일 덮치게 됨으로써
겉사람은 날로 날로 썩고 부패함이 드러나고
그로인해 동시적으로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지는

이것은 개인에게서는 그 어떤 유익이 되는거 하나도 없는데
개인의 발전 개념이 없는데 개인이 없고 집단에게만 유익이 되는데
개인이 모여 모여 집단을 형성해 본들 역시나 개인일 뿐이고
여기서 집단이란 이스라엘 뿐입니다
이스라엘 집단만이 유일한 종말의 단체 집단이거든요
아 저 이스라엘 현재 국가 민족?
그거는 이스라엘 아닙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말고요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

오늘 본문처럼

새성전이 아니였다면

이미 불타는 성전에서 같이 타 죽었어여 할 저 제사장과 레위인 역시나
소돔과 고모라 였어야 하는데

새성전이 떳기 때문에
이 새언약의 증상물로써
새성전을 말하기 위한 기능 
또는 은사로써
사명이 그들을 다루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능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제 하늘에서 이렇게 뚝 떨어진
직분 답게

땅의 지분 재산은 다 날라가 버린 거죠
지금 에스겔이 구약에서 이렇게 나열하는 것은

신약에서는 우리 또한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이 걸어다디는 새성전 되신 참성전 이싱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말하기 위한 증상물
십자가의 피 용서의 증상물
다 이루었다 라는 증상물로써의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오홀리바 죄인 중의 괴수로써 이 십자가의 피만 자랑하는 자로 세워졌다 라는 겁니다

개인적인 잘 됨이나 복 받고 이런 것 다 날라가 버리고 없어요
있든지 없든지 이제는 그런거 초월해 버린 겁니다
종말이니까 말이죠 성령의 은사 종말의 영이 덮쳐졌기에 ~~

초월한다 라고 해서 배 안고프고 안아프고 안춥고 병들지 않는다 라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이 나를 다루고
추위가 나를 다루고
질병이 나를 다루어도
죄가 나를 다루어도

그런 것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뻔데기 앞에 주름 밖에 안되는 심각한 것이 못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스데반을 죽여놓고서도
그 어떤 변명이나 사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내용이 없어요
오히려 더 뻔뻔스럽게 때를 얻든 못얻든
듣든지 말든지 십자가를 증거하기 바쁜
불도져로 밀어 붙이기가 더 심각하고 더 바쁘고 더 급한 일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개인 개념이 날라가 버렸으니까
사적인 스데반과 사도바울의 개인 일은 없는 겁니다
오히려 그런 일 마저도 주님이 하셨다 라고
더 뻔뻔스럽기 짝이 없이

이 뻔뻔함이 도리어 십자가와 연관되겠끔
오해받기 딱 쉬운
종말의 단체로써 발가벗은 자로써
스데반도 발가벗었고
사도바울도 이제 발가벗겨진

이 종말의 직분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십자가에 복종하는
이 십자가의 지혜를 증거하기 바쁘지
그런 사적인 개인 감정에 놀아날 시간이 없어요 바빠요 바빠

오히려 개인적인 일로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빠지게 되면
이것은 또 의문의 반복으로써 사탄의 깊은 것을 여전히 모르고 얕게 보고서
하나님의 깊은 뜻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거다 말이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라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고백을 하는 것이
베드로가 천국 열쇠 쥔
사실은 베두로가 쥔게 아니라
천국 열쇠가 베드로를 붙잡고서 때려죽어도 놓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쁜데
이런 스토커가 따로없지요
7에 70번의 용서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스토커 이다 말이죠
이런 기능이 성령의 은사로써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우리 또한 스토커로 돌변하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언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언제 예수님 미안합니다 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지에 라고
죄책감 느낄 여유 따위는 없어요

도리어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회개 하는 자로 태어났음을 감사하도록 되어 있지
즉 사랑하기 바쁜데
언제 가정부처럼 이거 했슴돠 저거 했슴돠 보상해 주세요 라고 따질 여유 따위가 없다니깐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것은 또 다시 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라는 말은
뭐든지 다 선물이였다 라는 겁니다
주님이 펼치신 주님의 십자가 자작극이군요 라는 겁니다
거기에 동원이 된 증상물로써
십자가가 잉태하여 낳은 잉여물이 나 군요
개인의 나가 아니라
교회로서의 나
종말로써의 나
그러니 불타지 않는 성전이 낳은 종말의 단체로써의 나 이기 때문에

이 종말의 단체는
종말이 반대인 역사의 산물들에게 오로지 종말인 십자가만을
듣기 싫어하는 
미워죽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외칠 뿐이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너 제사장 당첨 너 레위인 당첨 이라고
새성전의 기능을 보여주도록 세상에 내던져지는 겁니다

한마디로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사도와 같죠
이것이 영광이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을 말하기 위한 일에 종사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영광의 직분을

벌레의 우상과 바꾼다 해본들
주님 손해 보는 것 없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냥 밀어붙이시는 입장에서
제사장 본인들이 레위인 본인들이
바벨론 포로잡혀가는 그 불도져에 깔림을 당함을 통해서
본인들이 불도져에 깔려 죽는 잃어버림을 격음으로써
아니증거하지는 못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마치 포로 전에 이사야가 저들의 발가벗음을 이사야 신체에 담아서
거울로써 보여주듯이 발가벗음처럼

또 예수님이 인자로써 저들의 죄악을 담아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박스에 담아서 피로 덮듯이

그런 발가벗겨진 모습처럼
제사장과 레위인도
그 땅의 그 어떤 접촉점이 없이
밑둥치 짤린 채로써

새마음
부드러운 마음의 은사가
제사장과 레위인을 발가벗은 잃어버림을 당한 모습으로 다루면서
참성전의 기능인

철저한 심판의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죄로 인해 그 죽음을
더러운 죄를

거룩한 의로
생명으로 옮기는 기능을 제사장이 하듯이

아무리 인간의 제사장이 다 실패해서
그 어떤 누구도 이제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기능만은 살아서
존재가 아무리 없어도
역사도 없고
시간도 공간도 아무리 없어요

종말은
묵시는
기능은 너끈히 넉넉히 다 이루시듯이
그 증상물로써 다 이루었다 라는 미래완료가 거꾸로 덮쳐져 와서
이렇게 제사장과 레위인을 새성정의 증상물로써

참성전 되시는 걸어다니는 성전이신 예수님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자로써
세움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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