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3 감사함(천국의 열쇠)으로 들어가는 성전의 문 (겔 46, 8-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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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3 감사함(인자의 죽음)으로 들어가는 성전의 문 (겔 46, 8-15)

천국의 열쇠, 수수께끼 인자
중첩(이중반복, 차이의 반복, 간극-공백 속의 공백-간극, 문 속의 문(오홀리바, 히스테리 속의 희숙대리)
부정함(단절)의 거룩함(한몸) = 인자(거울), 누구?누구?의 아들, 요셉의 아들일까? 하나님의 아들일까?)

안식일의 주인과 그 창조의 확장인 그리스도의 몸(초하룻날) (겔 46, 1- 8)
에스겔 2019 2022. 10. 15. 14:54
19-132 안식의 주인 예수님(안식일)과 그 창조의 확장인 그리스도의 몸(초하룻날) (겔 46, 1- 8)

〈에스겔 46, 8-1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6쪽, 찬송가 253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가스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가스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감사함으로 그 문에 나 들어가며
그의 궁전에 들어가

주께 감사드리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주님의 기쁨 내게 임하네
나 항상 기쁨 안에서 주 찬양

주님의 기쁨 내게 임하네
나 기쁜 찬송 주께 드리네 

〈찬송가 253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1.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참 험하니 
   우리 몸에 매여 있는 그 더러운 죄짐을 
   하나 없이 벗어 놓고 힘써서 들어갑시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길 갑시다

2. 이 세상의 많은 사람 큰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갈지라도 멸망길로 끝나니 
   세상 헛된 부귀 영화 모두 내어버리고 
   주의 말씀 순종하여 그 생명길로 갑시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길 갑시다

3. 구원의 문 열렸으니 주의 공로 힘입어 
   주저 말고 들어가서 생명길로 갑시다 
   구원의 문 닫힌 후엔 들어가고 싶으나 
   한 번 닫힌 구원의 문 또 열려지지 않으리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좁은 문 들어가 
   영생으로 인도하는 그 생명길 갑시다


〈에스겔 46, 8-1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6쪽〉

(8) 왕이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9)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거민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10) 왕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1) 절기와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 하나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 만일 왕이 자원하여 번제를 갖추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13) 아침마다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에바 육분지 일과 기름 힌 삼분지 일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를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 이와 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갖추어 항상 드리는 번제를 삼을지니라


〈가스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몰라 줘도 이세상 사람 날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겔 46:8, 현대어) [출입문에 대한 규정] 왕이 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바깥 마당에서 안마당의 동문 현관을 통해서만 들어와 그 문간의 문설주 곁에 서서 경배한 다음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가야 한다.
(겔 46:9, 현대어) 그러나 큰 잔치가 열려 온 백성이 성전에 모여 바깥 마당의 동문 앞에서 경배할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가서는 안 된다. 바깥 마당의 북문으로 들어왔던 사람은 곧장 앞으로 걸어가서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왔던 사람은 북문으로 나가야 한다.
(겔 46:10, 현대어) 이때에는 왕도 백성들 틈에 끼여서 성전 구내에 들어왔다가 백성들과 한데 어울려 다시 나가야 한다.
(겔 46:11, 현대어) [제물에 대한 규정] 희생제물을 바치는 모든 축제 때에도 황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에 각각 밀가루 22리터를 곁들이고 모든 어린 양에 대해서는 왕이 바치고 싶은 만큼의 밀가루를 바치되 밀가루가 22리터를 넘을 때마다 올리브 기름 4리터를 보태어 바쳐야 한다.
(겔 46:12, 현대어) 왕이 스스로 원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나 여호와에게 번제물이나 화목제물을 바치고자 할 때에는 언제든지 안마당의 동문을 그에게 열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를 위하여 안식일에 하는 의식대로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 왕은 동문을 통해 다시 나가고 곧 동문을 닫아 놓아야 한다.
(겔 46:13, 현대어)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 일년된 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골라서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겔 46:14, 현대어) 여기에 곁들여 또 매일 아침 바쳐야 할 곡식제물은 밀가루 약 4리터와 그것을 반죽할 올리브 기름 약 1.2리터이다. 내게 바치는 이 곡식제물의 규정은 앞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겔 46:15, 현대어) 이와 같이 아침마다 드리는 번제에는 어린 양 한 마리에 밀가루와 기름을 곁들여 나 여호와에게 바쳐야 한다.



지난번 에스겔 46장 1절부터 시작하면서
소제목이 달린 번역을 다 올려었습니다
다시 올릴 필요는 없이 한번 찾아보시고

오늘 본문에 해당 되는 소제목만 올려보면

(겔 46:8, 현대어) [출입문에 대한 규정] 왕이 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바깥 마당에서 안마당의 동문 현관을 통해서만 들어와 그 문간의 문설주 곁에 서서 경배한 다음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가야 한다.

새번역

여러 가지 규정
46:8 ‘ 제후가 들어올 때에는 대문 현관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그 길로 나가야 한다.

쉬운성경은
겔46:1 <경배에 대한 규정>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 안쪽 정원의 문은 일하는 육 일 동안은 닫아 두었다가 안식일과 초하루 축제일에는 열어라.

1절 소제목에 속하는 넓은 의미로 따로 다시 제목을 달지 않았구요
대부분 번역이 그렇구요

[현대인의 성경] 번역 이것은 베들레헴프로그램에는 소제목이 없고 인터넷 텍스트 자료 떠돌아 다니는 것 자료 받다 보니 있었구요
겔 46:8 [출입문에 대한 규정] 왕이 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바깥 마당에서 안마당의 동문 현관을 통해서만 들어와 그 문간의 문설주 곁에 서서 경배한 다음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가야 한다. 

딱 두 개 [현대어성경] [현대인의 성경] 이 두 번역본만이 있을 뿐이더라 말이죠

아 새번역은 여러 가지 규정 중에 하나로써 여러개로 나열이 되었다 라는 식이겠죠

아무튼 지난주에 에스겔 17장을 하면서 성경전체는 수수께끼요 비유요 비밀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해석불가입니다

무슨 의미인가를 아무리 알아볼려고 애를 쓰면서 이렇게 소제목까지 찾아봐도
번역서들 마저도 모르겠다 라는 느낌을 많이 풍기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무슨 수로 수수께끼를 풀 수가 있겠습니까

풀어라고 준게 아니라
율법도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누리라고 그 증상을 그 징후를 그 기능을 누리라고 준 겁니다
물론 누릴 인간이 없습니다 기쁘고 즐거우면 누릴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도 없기에 비밀로써 수수께끼로써

안 누리고는 못 배기는 식으로
왜 누리라고 하면 또 누리는 것을 지킬려고 한다 말이죠
즉 대상물로 삼아요 인간숙제로
그 반대로 누리도록, 안 누리고는 못 배기도록 만드시는 것이 바로
이 수수께끼라는 문제가 아니라 수수께끼라는 정답으로써
정답 그 자체로써 누리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수수께끼에게 당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의미에서 누린다 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아 그럼 누린다 라는 표현을 쓰면 반칙 아이가
당한다 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니 당한다 라고 해야지

아니요 또 그래되면 존재로 여깁니다
실용주의 실존주의가 결국
그럼 내가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있어도 내가 없으니까
다 무용지물이네 내가 없는데 당하는 내가 없는데 누리는 내가 없는데
하나님만 있으면 뭐하노 내가 없는데
내가 있어야 누리든 당하든 믿든 말든 할 꺼 아니가

이게 오늘날 교회가 철학을 욕하면서도 모조리 다 천한 초등학문에 빠진
그래서 월삭과 절기를 지킬려고 하는
이 말은 결국 신학교리도 지키는 식으로 한다 라는 거죠
그래야 자기존재의 정당성을 갖출꺼 아니겠습니까

이런 짓 이미 유대인들이 다 해봤다 말이죠
주님 쪽에서 거부 했습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속일려구 하느냐

그러니 누가 크냐 라는 싸움, 이 정치라는 속임수 밖에 안 나오는 겁니다

아 네네 그럼 정치를 해 보세요
답이 나오나
답이 없어요 의문의 반복 뿐입니다
그러니 울리는 꽹과리 소음 밖에 없어요
자기 육의 자랑

사랑이 없으니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모든 수수께끼 즉 성경이라는 비유의 모든 정답은 사랑입니다
그것도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아들에게만 있는 징계 라는 사랑
즉 사생아 에게는 절대로 없는 몽둥이, 매 말이죠

수수께끼를 풀라 라는 말이 아니라
나는 사랑이 없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세요
내 쪽에서는 사랑이 나올수 없습니다
매를 대시더라도 사랑을 부어주소서 라는 의미에서
수수께끼로부터 당하는 겁니다

어떻게?
사랑이 없음이 들통나야 하고
즉 이 말은 사랑 빼고, 첫사랑 빼고, 모조리 다 갖추었다 라고 나오는 육체 라는 겁니다
에베소교회처럼 다 갖춘 것 그래 칭찬하마
그러나 딱 하나 없다 주님 쪽에서 직접 손수 마련하신 이 첫사랑, 화목제물이 없구나
아무리 너가 거짓선지자 쫓아내고
이웃사랑 실천하고, 충성봉사 하고, 말씀 아무리 잘 지켜도
이거 하나 없으면 소용없다 라고 하시듯이
이 계시록의 일곱교회는 책망받는 관계로써 주님 쪽에서 직접 손수 마련하신 일곱교회이다 라는 겁니다

일곱이란 절대심판과 절대거룩 그 사이에서, 그 간극에서,
그것도 부정의 부정이라는
간극 속의 간극,
사이 속의 사이에서 태어난 처음자리이니까
예수님과 관련된 기능에서 태어난 자(증상물)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사랑으로 낳은
너희는 십자가에서 낳은 내 자식이다 라는 거죠

십자가에서 잉태한 자녀 말이죠

이것을 이 세상 그 어떤 학문과 지혜로써 풀수 있는가 말이죠
피로 맺어진 관계인데

화목제물로 말이죠

자 그럼 본문에 들어갑니다
문이란 출입문에 대한 규정이라고 규정 법칙처럼 법으로써 말하는게 아니라
아 그럼 지키라 라는 말이구나

아니다 라고 했지요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래서 누리는 
존재로써 누리는게 아니라 기능으로써

관계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신랑과 신부로써의 관계로써 누리는 겁니다

누가 사랑을 지키라 라는 지키는 법으로 사랑을 지키는 자가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있어요 마귀 자식들
오늘날 교회 목사들이 아니면 교인 자기자신들이 자꾸 자신에게 지키라고 다구치고 있어요
마귀자식들로 만들고 있어요

누가 사랑을 지키는 자 가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네 있어요 마귀자식들 즉 사생아입니다

자아가 있는 자는 선악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지키지 못하면 불안해서 미쳐버립니다
지키는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자아가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죽은 자는
첫사랑이라는 화목제물 때문에
이 화목제물이라는 사랑의 관계성 때문에
기능적으로 징계 받는 자로 나타나는 겁니다

유대인이 왜 먼저 선택 되었는가
아버지가 때리시는 심판 주 이다 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된다 라고 했어요

(렘 25:29, 개역)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이게 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즉 사생아에게는 없는 징계요, 매요, 사랑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시편 1편 우리가 억수로 잘 외우는 그러나 이 비밀 이 수수께끼를 아무도 모르는

(시 1:1, 개역)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개역)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개역)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개역)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개역)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개역)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며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도다
왜? 심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아 그럼 참을성 있는 사람은 유리하겠구나
귀신잡는 해병 훈련 받은 사람은 유리하겠구나
이것은 훈련 배움 학문 이런 것과 전혀 무관합니다

가르쳐 주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것이 새 노래 즉 찬양이듯이

찬양이라는 즐거운 노래는
사랑이 오시지 않으면 아무도 못 불러요 글쎄

심판, 징계, 매가 와야 비로소 부르는 겁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면 매를 대실까요 글쎄

사생아에게는 때려죽어도 없는 매를 말이죠

장자가 맏이로써 매 맞을때에
아버지의 사랑에 홀로 듬뿍 받는
맏이 답구나 라고 동생들 대신해서 매 맞는 겁니다
든든한 미쁨이 되기에 기업을 물려줄만 한 거죠.


네 맞아요 예수님 뿐이죠 참이스라엘은 예수님 뿐입니다

(시 1:1, 개역)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개역)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왜 율법을 즐거워 하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할까요

지킬수가 있어서?

아닙니다
그 반대로입니다
지킬수 없는 율법을 통해서 저 분이 대신 매맞았다 라꼬 율법이 몽학선생으로써 저분을 화살표로 가리키는 겁니다
누군데요? 맏형 장자 예수님

아버지의 매를 즐거워 하고 아버지의 징계를 주야로 깊이 깊이 생각하시는 분은
예수님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악인을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시 1:3, 개역)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개역)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개역)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이 사랑을, 이 징계를, 이 매를, 이 심판의 주 되심을 싫어하고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면서 거부한다 말이죠

자 그럼 오늘 나온 본문은 어떤 번역서 소제목처럼 [출입문에 대한 규정 법칙]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존재이고 존재로 보면 또 지금 현재 유대인들처럼
제3의 성전 에스겔 성전을 자기들 손으로 짓겠다 라고 (자꾸 대상물로 삼으니까
그렇다고 반대로 대상물이 되면 심판이라는 징계뿐이니까 사생아는 꾀만, 속임수(정치)만 부리는 겁니다)

또 무너뜨릴려고 한다 말이죠
성전 세워 지으면 뭐합니까
또 무너뜨릴려고 성전 안에 우상그림 그릴꺼 뻔한데
오늘날 교회들은 안 그렇습니까? 다 그래요
왜 ?

자기 손으로 짓기 때문입니다 어딜 더러운 손으로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손 깨끗한 자
손 깨끗하면 지어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으며 모두다 거짓되고 모두다 죄 아래 있다 라고 이미 선언했다 말이죠

안 받아요
그냥 주는 거나 받아먹으라 말이죠

그래서 [출입문에 대한 규정 법칙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성전문에 의해 규정당하는 백성 이렇게 되는 겁니다

문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쳐들어 와서
엑스레이 촬영하듯이 쭈우욱 나를 통과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나의 존재와 결부시켜버리면
앉은뱅이는 해당이 안 되는 겁니다

아니 북쪽문으로 들어온사람 되돌아가서 처음들어온 문으로 되돌아 가지 말고
반드시 남쪽문으로 방향을 한 방향으로만 들어오고 나가라 라고 했잖아요
남쪽문으로 들어온 사람도 마찬가지 처음들어온 남쪽문 되돌아 가지 말고
반드시 북쪽문으로만 나아가라 라꼬

우리 어머니 말 마따나 
에스겔이 신체의 모든 털을 깍아서 3분지 1

예루살렘 성전 그림 그려서 안에 털 뿌리고
또 3분지 1 성전 테두리에 뿌리고
또 마지막 3분의 1은 성전 바깥에 뿌려서 칼을 날려가 터래기 댕캉 댕칼 날려라

이게 미신처럼 보이는게 얼마나 당연하냐 말이죠

행구 이삿짐 보따리 챙겨서 떠나는 원맨쇼도 에스겔 혼자 보여줬고요
행구 인데 행주로 발음을 해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만

이 얼마나 어머니 말 마따나 미신의 행동 아닙니까

맞아요 어머니가 솔직하게 잘 표현해 주셨는데

미신적으로 보인다 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보인다 라는 겁니다
부정적이다 라는 말은 나의 신체에 안 맞아서 몸이 거부하는 반응이다 말이죠

즉 모든 신체는 선악적이거든요 내가 하나님이 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거부해요
그러다 보니 이 미신처럼 보이는 말씀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고
동떨어진 느낌인 간극을 더더더 벌리는 겁니다
부정적잉께 

이게 바로 수수께끼 이다 말이죠 비유
참선지자들은 거짓선지자처럼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하지 않고
늘 삐딱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느냐

수수께끼라서 그래요

즉 듣기는 들어도 꺠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어요

에이 그럼 나 여기 안 있을래 딴데 가서 놀래 라고 나올꺼 아닙니까

바로 이겁니다

누가 나 수수께끼 못 풀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우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죠

그런데 없는데
없었는데
방금 1초전에 방금 새로 생겨나고 새로 발생한 자들이 생겨나버렸오요
없어야 하는데 말이죠

알고보니 수수께끼 비유 비밀 말씀 계시
방금 막 쪄낸 찐빵처럼(이러다 다 죽어 라고 대신 심판받아서 겨우 겨우 남은자, 그 남은자만 돌아온 막쪄낸찐빵)
제발 좀 수수께끼를 풀어주세요 라고 우는 자를
수수께끼가 만들어낸 자가 생기더라 말이죠 방금 말이죠 새롭게
그 이전에는 없었다 라는 겁니다

누가? 징계가
누가? 심판이
누가? 사랑이 말이죠

사생아 에게는 없는
아버지가 말이죠

새로 만들어 버렸어요

이것을 원인 없는 결과로써만 나타내실때에

사생아가 견디질 못해요
아니 왜 나에게는 없는 아버지가 왜 너에게는 있고

아니 왜 나에게는 없는 매(징계)가 왜 너에게는 있느냐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것은?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뭡니까

네 맞아요 매, 징계, 심판입니다

또 유명한 구절 뭡니까
저의 블로그 사이트 검색 1 순위가 14년 동안 늘 초반에 검색어 1위가 십일조 였다 말이죠

즉 이 말은 떄려죽어도 내기 싫은데 내라 라고 얼마나 협박을 당했으면 말이죠
종교 기독교 천주교 방송 상담 1순위가 십일조 이였으니 말이죠


그런데 10년 전부터 완전히 사라졌어요
이 말은 한국교회도 유럽교회처럼 이제 장사가 안 된다 라는 겁니다
소멸 시기로 접어들었다 라는 거죠

빅데이터가 말해주니까 말이죠
빅데이터 즉 통계학이 말이죠

빅데이터란 양자역학입니다 초자아적 욕망이 공동분모로 자리잡았으니 벗어날수가 없다 말이죠
곧 사주풀이 예요 점쟁이가 우세하다는 겁니다 교회는 문닫고 교회도 점쟁이가 되었응께
독수리가 그래서 모든 인간을 시체로 보는 겁니다

자 그래서 그 이후 제 블로그 검색1위가

이제 수수께끼와 같은 구절들이 1위더라 말이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은?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것은?


뭐 이런 난제들~~~

네 간단해요 모든 수수께끼의 정답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기능이라서 존재에게는 안 나오는데
자꾸 존재와 결부 시킬려고 하니
왜 그 의문의 반복을 하느냐 말이죠

그러니 못 누리는 겁니다
그냥 누리는 관계인데

자꾸 지킬려고 해요 글쎄

막살기를 지킬려고 하는 놈이 있어요 글쎄
그렇게 되면 막사는게 아니잖아요 지키는 행함잉께 또 법속으로, 지키는 자아의 생생함으로 들어간다 말이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도 지고 남에게도 지워서 지도 천국안가고 남도 천국못하게 가로막아 삥이나 뜯기는

결국 지도 남에게 삥이나 뜯기는 우상숭배의 원리에 자기 꾀에 자기가 말려들더라 말이죠

자유를 지키자 라는 놈들은, 지켜서 자유가 되냐 말이죠
사수한다 라는 의미 말고요 행하자 라는 의미에서 지키는 자유, 자유를 지키자 를 말이죠
자유를 행하자 라고 
하라 하지말라 라는 법칙에 집어넣으면 그게 무슨 자유 입니까

하라 하지말라 라는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인데

그러니 자유 에게 말려든 거죠 가짜자유에게 말려든 겁니다

진짜 자유는요 인간의 대상물이 안 될 정도로 그 정도로 자유로와요
잡았다 하면 놓쳐버릴정도로 미끄럽습니다

마치 절대죽음처럼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라고 더더더 찢어버리듯이
죽음 것지도 않은 것에 매이지 않듯 자유 것지도 않는 것에 매이지 않는 자유
막 먹기를 탐하고 막 포도주를 즐기며 막 죄인의 친구처럼 막 자유하는 인자처럼
막 죽음으로 달려가는 앞으로만 가는 젖먹이 처럼 강한 자 없으니 말이죠

막 휘장을 찢어요 막 막힌담을 헐어버려요
원수됨도 막 찢어버립니다

그래서 두 패거리로 만들어요
있는 자 더 받는 자

없는 자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자

자유는 인간의 대상물로 당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자유는 인자처럼 막 섬기심 때문에
이 자유의 섬기심으로 두 패로 나누어짐을 당하는
섬기심을 당하는 대상물의 위치로써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어짐을 당하는 겁니다
심지어 인간의 엉터리 자유는 이것 마저도 흉내를 내니까 말이죠
자기에게는 징계를 쪽 빼놓고서 남에게 막 퍼붓는 그러니 자유롭지 못하지요
먼저 심판을 못 퍼붓기에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공의 곧 정의의 자유(날개)는

하나는 계집종 하갈 언약
또하나는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언약

자유가 지 마음대로 우리 허락도 안 맞고 마음대로 말이죠

자유하는 여자가 자기에게서는 정작 자유가 없고 자유로부터 당한 모습 밖에 없는

정작 이 세상에서는 자유가 박탈당한 죽은 태의 모습
죽은자 같으나 산 자이기에 죽은자와 같은 모습 밖에 없어요
이 수태치 못한 여자가 하늘에서 자식이 많은 자유하는 여자였고

순풍 순풍 아이가 많은 여자인 계집종은 자식이 다 죽어 없는 지옥이 땡기는 여자였다 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보세요

성전의 문이
우리 허락도 안 맞고
북쪽으로 들어온 놈 남쪽으로만 나가라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가거나

몸을 돌리거나 하지 말고 한 방향으로만 해라

남쪽문으로 들어온 놈도 마찬가지

그러나 동쪽 문으로 들어온 왕은
들어왔던 동쪽문으로 나아가라
왕 만큼은 들어왔던 길 다시 되돌아 나갈수 있다

이게 무슨 미신 같은 행동 입니까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을 법칙으로 보게 되면요

말이 안되는게

에스겔 이후 70년 바벨론 포로 이후 되돌아 와서
이스라엘에게 왕이 있던가요?

왕 제도 공중해체 되었어요

없어요

그런데 왜 왕을 언급할까요

없는 왕을
생기지도 않을 왕을

아 지금 현재 이스라엘은 대통령 제도 이니까 그럼 대통령???

이 내용은 수수꼐끼라서 아무도 못 풀어요

그냥 당하는 것 뿐입니다

수수께끼 자체가 정답 잉께
정답이 찾는 것은 저 못풉니다 라는 죄인만 찾을 뿐이다 말이죠
문제아, 탕자, 망나니, 환자 
왜? 그들만이 고쳐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자기 죄로 우는 자 이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자기 죄 란
우리가 생각하는 죄 아닙니다
대부분 인간이 말하는 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것을 말해요

그거 죄 아니구요
또 그렇게 그런 것을 죄 라고 여기니까
언제든지 고치고 수정할 수 있고
바르게 할 수 있다 라고 여긴다 말이죠 이게 죄입니다

즉 죄란 인간에게서 다루어지질 않는데 다룰수 있다 라고 여기니까 죄인줄 모르는 것이 죄 이다 말이죠
즉 어 너도 죄 라고 말하고 있으니
인간이 다루듯이 말하고 있네 너도 틀렸네
네 당연하지요 저도 틀렸지요

모르는 것이 죄 이다 라고 제가 죄를 규정하는 위치에서 말하는
존재로써의 죄 규정
또 죄 자체가 존재 인냥 규정

이 둘다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죄 이다 말하는 이유는

즉 죄가 우리 우위에 있응께 훨씬 월등항께
우리 손에 다루어지질 않는 기능적이다 라는 기능성을 말하고 있어요
존재가 아닌 ~~~~~~~~~~

그럼 너는 우째 죄를 아노
죄 아래 있는 놈이 무슨 재주로 죄를 알 수 있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까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서
로마서라는 수수께끼가 반칙으로 인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부조리 반칙 컨닝을 시켜서 알게 된 것이지
우리가 우리 자발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다 라는 거죠

그럼 그 로마서 즉 성경전체는
이런 죄를 마귀를 부정을 가지고 와서
더더더 더 한 부정으로서 즉 반칙 불법 부조리 이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알게 해 주신 것이지

십자가 아니였으면 저것을 죄로 알지 못하고 의로 알아서
자기 의를 쌓고자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아서 말이죠
복종해서 복종이 아니라 그냥 덮쳐지지 않아서 말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 곧 심판이 없어서 망하더라 말이죠
이미 벌써 말이죠
남겨둔 한 씨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데
얼마나 울리는 꽹과리 소음을 꽥꽥 질러대든지

자 한 쪽 방향으로만 지나가라 라는 말은
이 동쪽문으로 오시는 왕과의 관계성 때문입니다

백성이란 오로지 왕의 섬김으로만 사는 자들입니다
이 왕의 섬김은
대신 매 맞음입니다

대신 죽으심

이것이 사랑이요
사랑만이 승리하는 다 이루는 
넉넉히 다 이루는 겁니다

성전이란 백성과 왕이 만나는 자리인 것처럼
평화를 이룬 왕의 등장으로써만 세워지는 성전이니까 말이죠

여부스 땅 시온땅 못 차지하면 왕 아닌 겁니다
전쟁의 마침이 없으면 왕이 아니요 평화도 아닌 겁니다

오로지 섬기는 왕으로써만 평화가 이루어지고 성전은 신랑신부 한몸으로써 그 섬기는 왕과 백성이 만남이다 말이죠

창조주께서 니 내 누군지 아니? 네 압니다 창조주요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더 더 잘아십니다

그럼 창조주를 알려면 창조주와 만나는 장소가 바로 성전인데(예수안, 너희는 성령의 전이라)
그 성전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는 일이 바로
피 흘리심이라는 사건(십자가)이 매일 매일 벌어지고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작동하고 있더라 말이죠
어떤 사건?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제가 주께만 범죄햇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라는 한 몸 사건

사랑 사건 말이죠.

5대 제사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참성전이라는 인자라는 몸 공간)
그리고 일곱 절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써 시간)


오로지 피 흘리심 대신 죽으심으로만 하나님과 자기백성을 만나시는 겁니다
그 장소와 그 시간이 대신죽음 당하심이 펼쳐지기에 말이죠
이 대신죽음이라는 문으로써 둘로 나누어지는 경계선이 되는 겁니다

심판 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뒤돌아 서지 말아라 인데
한 몸이 되지 못하는 자 배배배 배신이야 배반하는 자를 언급하심으로써 

이 차이를 보여주는 거죠

한번 애굽을 빠져나왔으면 애굽으로 다 다시 돌아갈래 박하사탕처럼 하지 말아라 말이죠

즉 제사장이 이 특정한 공간에 갇혀서(갇혔다 라는 표현이 또 오해할수 있지만
존재가 아닌 기능 이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의미에서)
곧 성전에서 처참하기 짝이 없는 온 몸에 피 튀기는 일을 함으로써

더러움에서 깨끗함으로
아무리 너희 죄가 붉을 지라도 흰 눈과 같이 희게 하는 기능이 바로 제사장 기능이요
성전이라는 장소 곧 하나님과 자기백성과의 만남의 장소, 곧 한 몸, 그리스도 안에, 피난처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를 생각하라
피난처가 없으니 뒤돌아설수 밖에요

대신죽는 죽음이, 대신 죽는 피발라주심이, 대신 죽는 섬기는 왕이 없으니
자기가 죄의 소원을 자기 숙제로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눅 17:32, 개역)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24, 개역)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5, 개역)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7:26, 개역)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눅 17:27, 개역)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눅 17:28, 개역)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개역)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눅 17:30, 개역)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 17:31, 개역)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눅 17:32, 개역)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눅 17:33, 개역)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5, 개역)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눅 17:36, 개역) (없음)
(눅 17:37, 개역)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눅 17:37, 새번역)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이다.“


즉 주님의 시선은 이 성전에서의 자기 백성과 하나님의 만나는 장소가
마치 노아방주처럼 종말 끝을 미리 당기는 유일한 장소로써 증거하심에 있어서

다른 장소는 모조리 다 죽음 뿐이다 라는 겁니다
이런 시선은 마귀 또한 독수리시선처럼 세상은 심판받아야 한다

즉 독수리 라는 마귀 라는 사망권세는 인간의 근본 뿌리 원천을 다 흔들어 버립니다
풍랑은 말이죠

그러나 그 풍랑 보다 더한 창세전의 근본뿌리를 더더더 원천 다 흔들어버리시는 분은
오로지 예수님 뿐이십니다 이 처음자리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자리에서
첫사랑으로써 왔기에

누구 한테 무릎 꿇어야 하느냐 라는 겁니다
풍랑 입니까
[심판 속에 진노] 속에서의 용서에게 무릎 꿇어야 합니까
일만 군사 입니까 이만 군사 입니까
딱 봐도 애들은 다 압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자 시체일 뿐이다 라는 시선에서

그 마귀의 시선에
독수리 시선에 더더더 더 간극을 더 벌려서 
좁힐려고 하시는게 아니라 더더더 벌려서

좁힐려는 시도 남을 7번 용서 조차 아예 못하도록 아예 원천 뿌리를 흔들어 버려서
도리어 7에 70번 용서를 받아야 할 판국의 자리에 그 처음자리 그 탕자의 자리에사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도록 하시는 겁니다 아니 그 문이 쳐들어 온 겁니다

맏아들은, 남을 7번 용서하는 자들은, 부자청년은 좁히든 넓히든 
자신의 하기 나름인
자기 영역이라도 있지만

탕자는, 도리어 7에 70번 용서받아야 할 판국인 죄인이나 환자는
이제 자신의 모든 운명이 탕자의 아버지,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세주,
환자를 부르러 오신 의사에게 그 운명이 넘어가 버린 겁니다
어린아이처럼 외부에서 운명이 결정난 것처럼

반대로 어른은 자기가 개척해야할 운명 밖에 없으니 말이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자기의 유죄성이 곧 주께만 범죄했습니다가 구체화 되니까
운명을 결정해 버리니까 (율법의 기능)

더더더 간극을 벌리는 7에 70번이라는 율법의 완성(더 찢음으로 더 싸매는)을 보고 의사를 보고 죄인은 기뻐하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여 이렇게 또렷하고 명료하고 미래완료만을 누리게 되고(다 이루었다)
그 반대로 내가 함 해보고자 한 것은 도리어 흐릿하고 모호하고 의문이고 결국 사기친 것으로 드러나고

도리어 이 십자가가 날 죄인 만들어서
오늘 나오는 성전의 문이 말이죠
문이란 여 쪽에서 저 쪽으로 이동했다 라는 것이거든요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말이죠
그 경계선의 기준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기준이다는 겁니다
이 선악이 주님 혼자만의 기준인데 인간의 선악은 오히려 반대
악을 사랑하고 선을 예수님을 미워하는 선악 밖에 안나오더라 말이죠

성전의 기능에 휘말려 버렸다 라는 겁니다
누가 주의 처소에 등 떠밀어서 들어오게 되었냐 말이죠
왜 나 같은 죄인을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들었냐 말이죠


아니 눈물로 씨를 뿌렸는데
어찌 기쁨으로 단을 거두냐 말이죠
이것 조차도 앞뒤 모순이지만 처음부터 모순이였씁니다

아무도 눈물 흘리는 자 없는데 성령을 그것도 원치 않았는데
누가 이 상하고 통회하는 썩어뭉들어지는 마음을
썩은내 나는 죄가 불타는 향 냄새를 누가 눈물로 흘립니까
아무도 없는데 성령이 허락도 안 받고 임의로 와서 결정해 버리는 겁니다
그 부정 속에 다시 또 더더더 부정으로써 말도 안되게 예루살렘 창녀 딸에게 말씀으로 오시는 겁니다

자아가 죽으면 끝났는데 내 안에서 죽은 내 속에서 예수님이 살 줄 누가 알았느냐 말이죠
그것도 남도 아닌 내가 죽인 내가 부인한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예수님이 말이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꼐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비로소 주인과 종의 관계인 자기 운명은 내 것이 아닌 주인 되신 예수님으로 넘어가버렸다가 되는 겁니다

더더더 시체 취급하고
더더더 죽은 자 취급해서

그런 죽은 자를 살리시고자

대신 죽는 이 성전으로써
이 문으로 오셨기 때문에
걸음을 못 걷는 앉은뱅이로 만들어서
죽은자 만들어서
마귀가 욥을 쳐서 건강 재산 빼앗는 것 보다 더더더 더 찢어버리고 더 간극을 벌린
절대죽음으로써의 예수님의 죽음을 보니 뻔데기 앞의 주름이였더라 말이죠
어딜 풍랑이 예수님의 죽음 보다 더 또렷하냐 말이죠 어딜 사기를 치냐
누가 꾀냐 말이죠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성전의 문이 나의 온 몸 구석 구석을 다 뚫어서 모든 근본을 다 뒤 흔들어버립니다
문이 엑스레이처럼 쭈우욱 스캔하듯이
문이 나를 통과해서 한 쪽 방향으로 말이죠

죄 아닌 것이
죽음 아닌 것이
시체 아닌 것이
병 아닌 것이 없어요
뭘 해도 죄 밖에 안 나오는 겁니다
광야교회라는 사막이 스캔을 하니 뭘 해도 죽음 시체 죄 원망 밖에 안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치료 하시는 의사로 오시는 겁니다
그게 문 ~~~~~~~  문 리버~~~~ 문 네버 문이여 영원하라 ~~~~~~~~~ ㅋㅋㅋ

그래서 죄에서 거룩으로 옮기시고자 하시는 겁니다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이것이 동쪽문에서 오르락내리락 하시는 들락날락 하시는
세상 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시는 이스라엘 왕
평화의 왕 이다 말이죠

평화는 이 원수 된 둘이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시는
막힌 담을 헌다 말이죠
중간에 막힌 휘장을 찢으셨다 말이죠
그 속에서 니 틀렸니 내 옳니 가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 곧 우상은 누가 크냐 싸움 뿐입니다 바리새인의 성정에서의 기도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자기 죄로 우는 이 사망의 몸을 주님의 죽음으로써만 비로소 보는 겁니다)
사마리아 더럽다 라고 삥 둘러 가고
아니 유대인이면서 어떻게 사마리아와 상종하십니까
(그 정도로 막 자유로와요 인간들이 선을 그은 그 경계선을 선악을 막 마구 마구 타 넘어버리는 자유)


그 앞에서 인간끼리의 죄, 원수 됨이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북이스라엘 남유다 이 무슨 수로 하나가 되겠습니까
철천지 원수 인데
사마리아와 유대인이 말이죠

아니 언제는 두 막대기로 찢으셨을때는 언제고
다시 하나로 다시 싸매어 주시는 겁니까

남유다 첫 번째 왕 르호보암이
안돼 절대로 이스라엘은 둘로 나누어 지면 안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이 한풀이가 무슨소용있냐 말이죠

둘로 주님이 나눈 것을 다시 합칠려고 하니
한 대 얻어 터지더라 말이죠

솔로몬의 우상숭배 땜에 징계한 사랑의 매 인데 말이죠

그때는 둘로 나누시겠다 라고 할 언제고 
왜 이제는 다시 하나로 합체
다시 싸매어 주시느냐 말이죠

이 하나님의 공의 곧 거룩 즉 절대심판과 절대거룩을 말하기 위해서

죄가 푹 익도록 하신 거다 말이죠

북이스라엘은 저러다 망했고
남유다는 이러다 망했고

북이스라엘은 다윗의 등불이 없어서 망했고

남유다는 망하기는 망해도 다윗의 등불로써 왜 망해야 하는 지를
그래서 우는 자가 남유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망하는 겁니다

이것이 심판 주가 세상을 이렇게 심판 하시겠다 라는 취지로 먼저 종말을 심판을 받는
시범 뭐라 하더라 유격훈련받을 때 아 조교 시범조교로 세우신 겁니다

그래서 주꼐만 범죄한 자로 만드시고자
그래서 먼저 심판 받는

아니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심판을 드러낸다 말이가
그래 드러낸다 매, 징계,

에라이 그럼 우리가 악한 짓 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더더더 나타나겠네

그카이 너는 이미 정죄 받았는기라

나 봐라 나 사도바울 봐라
나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때문에
너가 생각하는 그런 엉터리 의는 복받았다 라고 나오잖아요

아니야 나 봐라 방금 그렇게 말한 내가 지금 하나님의 진노 속에
심판 속에 있잖아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야

그래서 먼저 매맞는 사도로써 세움받듯이, 죽이시기로 작정 된 자. 매 징계

이 대신 죽으심이라는 십자가가 이 하나님의 절대저주 절대진노가
하나님의 영광이란다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영광이란다

그럼 이 에스겔 성전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기 위한
수수께끼였다 말이죠

수수께끼 백날 풀어도 십자가의 죽음 인간은 정답을 못 써냅니다

그냥 수수께끼로부터 당해 봉께
저절로 십자가의 죽음이 저절로 튀어나오더라 말이죠

이런 반칙 이런 불법 이런 말도 안되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자기를 대신해서 죽으시러 오신 예수님을 보는 한 쪽 강도와
둘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 라고 배신 
뒤돌아 가는 자 이 둘로 나누는 것이 수수께끼가 벌리는 일이다 말이죠
수수께끼 자체가 정답으로써 말이죠

그런데 반대로 수수께끼 자체를 문제로 보는 자는 다 말려드는 거죠
자기 꾀에, 자아가 없는데 자아를 챙기기 위해서 문제로 보고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다 말려드는 ~~~

아 그럼 죄인(환자)이 되면 막살기를 하면 천국 가는게 아니라
악을 그럼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겠네?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푸는게 아니라


수수께끼가
죄인를 부르러 왔응께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불의함을 들추어내시니까)


의인이다 건강한 자다 너는 안그렇제 나는 그렇거든 이라는 자와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자로

둘 로 나누는 것이 수수께끼 이다 라는 겁니다
(단독자로 대하는 대상물로 삼으면 자기 숙제 뿐이라서 아 그럼 우리가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선이 드러나겠네 라고

자기 행함에 안 맞다 라고 나오고
반대로 단독자로 독대가 아니라 그 반대로 독대 당하게 되는 대상물이 되면
두 패로 나누어짐을 당하게 됨으로써 나는 사망의 몸이다 가 덮쳐져서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 심판을 이 징계를 이 매를 사랑으로써 누리는 겁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화목제물을 주신
화목제물 대신 죽는 그 첫사랑의 증상물로써의 처음자리로 만드시는 그 사랑이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즉 한 방향으로 가라 뒤돌아 가지 말아라 라고 하시는 이유는

뒤돌아 되돌아서 가는 자 (첫사랑을 잃어버린 자) 또한
성전의 문이(곧 예수님이 문이십니다 미리 답을 말하면 ~~) 
그런 자를 발생시키고야 말겠다 라는 겁니다
(이런 두 패로 나누심 자체가 자신의 공의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우리는 힐문할 입장에 못 서는 겁니다
기능 자체가 그런데 자꾸 존재로 따지니까
왜 나는 긍휼의 그릇에 안 넣어주냐 라고 따질 수 밖에요
정작 자기가 싫어하고 거부하는 긍휼의 그릇은 기능이고

진노의 그릇은 존재인데 존재로써 따질려고 하니 이미 심판받은 거죠
기능은 존재에게 넘어갈수가 없어요 부자(존재)가 거지나사로(기능)에게 넘어갈수가 없듯이
그렇기에 토기장이 존재가 아닌 토기장이 기능은
둘로 나누어야 아 심판 주 맞네 라고 심판의 기능으로 영광 받으시니까 말이죠
심판의 기능의 주를 보고 기생라합은 간담이 녹아서 40년 동안 벌벌 떨었응께 말이죠

존재에게서는 때려죽어도 안 보이는 심판을 보고 말이죠
그러니 존재로 백날 따져본들 소용이 없어요)


청함을 받아놓고도 택함을 받지 못한 자를

이 청함을 받았는데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은 뭡니까 라는 수수께끼 스스로가
발생 시키듯이 말이죠

수수께끼 자체가 자기 스스로 영광 받고자 말이죠
그냥 신나게 이 수수께끼를 누리면 되는데

아니 가만히 보자 그럼 나는 청함받았고 택함 받지 못할 수도 있겠네 라고
미리 지레 짐잗 해서
이 수수께끼는 나 라는 존재랑 안 맞다
물러가라 물거라
청함을 받았는데 택함을 받지 못함이 왠 말이냐
정부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라고 나오는 겁니다

개그콘서트 남보원 남성인권보장위원회 

youtu.be/fAT0sfCQ0Lg 아따 겨우 찾았네 이름 까먹어서리 ㅋㅋㅋ

청함만받은자인권보장위원회 청보원
진노의그릇인권보장위원회 진보원

자 이런 존재의 함성을 일괄처리 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모조리 다 죽여버리시는 겁니다

샷다 마우스 그 입 다물라 ~~~~~ 경빈; 여인천하


(시 62: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을 의지하여 한 노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합 2:20, 개역)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습 1:7, 개역)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습 3:17, 개역)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슥 2:13, 개역)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허걱 욥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밤새도록 끍어대는 그 저주
절대심판인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썃다마우스 그 입다물라

입 다물고 머라 쳐박고 재를 뿌리며 
생일을 저주(예레미야)하고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다윗)
비로소 주께만 범죄한 자 라고

성소에 들어가 보니, 대신 죽으심을 보니(아삽)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을 보고서 화목제물을 보고서 그 입 다물라
잠잠케 되는 겁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극한소음 밖에 없어요
악인은 이 심판을 견디지 못해서 밤새도록 울부짖는 하이에나 배고파서
채워도 채워도 채울수 없는 지옥이라서 밤새도록 웁니다 

그 심판은 절대심판에 족히 비교 못하는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써 
더더더 찢는 화목제물로써

이건 뭐 마귀의 시선 보다
독수리의 시선 보다 더 한 더더더 간극을 벌리시는 겁니다

노아의 때를 기억하라
롯의 처를 생각 하라

인자로써 오신 걸어다니는 성전은
이 세상이 죽은 세상이요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자 로써 판명남에 있어서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주님께서 
그 독수리이 시체꺼리 밖에 안되는

요나의 죽음 속에 뛰어들어서

독수리의 시선에서 시체 주검
죽음 보다 더더더 더 한 죽음으로써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진짜 절대죽음으로써

이 성전에서 펼쳐지는 죽음으로써

[죽음 속의 죽음] 속에서 생명의 공간을 마련하심으로써

안식을 마련하신 겁니다 안식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즉 왕과 안식일 그리고 성전
이것은 그 어떤 인간도 이룰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원수 된 것을 하나로 만드는 평화의 왕과
죄에게 거룩으로 옮기시는 안식의 주인과
피흘리심이라는 대신 죽으심이

인간 이스라엘 왕에게서는 이루어진 적도 없고
그런 쉼이 있어본적, 평화가 없었고, 마~~~무리, 마침, 완성 다 이루었다가 없고
대신죽으심은커녕 인간의 손으로 짓는 성전은 도리어 강도의 소굴
우상으로 도배가 되었을 뿐인
이 실패의 단절을 톡톡히 거쳐서

왜? 인간은 생명이 아니기에
죽은자의 하나님이기에

산자의 하나님은 예수님 뿐이기에
아브람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들은 죽은자로써 엉터리 하나님만 외쳤을 뿐인데
언제 주님께서 친히 사신 살아계신 하나님 본인의 숙제로써
일방적으로 다 이루셔서 산 자의 하나님으로

그러니 그들은 아브라함으로써 예수님의 때를 봤고
이삭은 자신의 선택인 맏이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서 산 자의 하나님을 봤고
이삭은 분명 사랑하기로 작정 된 자는 맏이 형 에서였건만
도리어 자신의 선택은 뭘 해도 엉터리 였음을 말이죠
그리고 야곱은 요셉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통해서
산 자의 하나님을 봤고요
그 중간에 갑자기 낑긴 이야기 시아버지 유다는
며느리 다말의 죽음을 통해서 산 자의 하나님을 노래 했다 말이죠
그가 나 보다 옳았다를

그러니 왜 나는 뭘 해도 틀렸는지가 드러남으로써
그가 왜 나 보다 옳았는지가 노래하는
유다 에게서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웬수 에게서 감사함이 나와 요 글쎄

그래서 시편 곧 다윗 
유다에게서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 라고 했습니다

(시 100:1, 개역) [감사의 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시 100:2, 개역)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 100:3, 개역)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4, 개역)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00:5, 개역)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리로다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돕니다
그것도 6일 동안

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10번 14번이나 원망했습니다 라고
(사실상 매일 매일 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죠

설마 겨우 14번만 원망했겠습니까 사막인데 물도 양식도 없는데)
웁니다
자기 죄로 웁니다
어깨에 증거궤를 메고서
그 증거가 세가지 증거물 십계명 깨어진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 이겁니다 라고

광야교회란 주꼐만 범죄한 것을 모으는 장소 였던 겁니다
이 심판을 견디지 못해서 마귀는 예수님을 세번 시험합니다

제발 인간을 구원하는 참 좋으신 메시아가 되어달라 라꼬 ~~~~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이 지옥가는게 아니라
그것이 죄가 아니라

그런 지옥에 갈 사망의 몸인 것을 들추어주신, 처음자리를 들추어낸 첫사랑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는 것

왜 날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해서 원망케 만들고(경제문제로 원망안하고 싶은데)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해서 원망케 만들고(이건 뭐 빼도박도 못하는 죄 안 짓고 싶은데)
원망케 만드는 곳으로 인도해서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만드십니까 라고(정치, 주께만 범죄한 자 되기 싫은데)

원망해서 죽은 자가 되는게 아니라

이미 죽은 자이기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심으로써

비로소 마침
그 의문의 반복에서 마침 마무리 종말 빨래 끝 다 이루심을 보게 하시는
이 안식일의 주인을 보라 라꼬

그래서 남들이 지적 받지 않은
목이 곧은 백성임을 지적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가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해 주신
그 대신 죽으시는 그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이 대신 죽는 이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원망케 만들어서 니 사랑 아니요 내 사랑

이 사랑 안 쳐다보는 자가 뒤돌아 서는 배신 자 이다 라고
(이 처음사랑 잃어버리지 말라꼬

처음자리 너희는 다 불뱀에게 물려죽은 자야 라고 들추어내시는 광야교회 이 심판 이 공의 이 징계로만 들어가는 문)

이 어린양의 죽음으로만
이 문으로만 들어오라 라는 겁니다

이 사랑 아니였으면
우리 벌써 소돔과 고모라

아니 가버나움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냥 일반 도시이다 말이죠
소돔과 고모라처럼 억수로 타락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억수로 신앙이 좋은 동네마을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반적인
보편적인 마을인데
느닷없이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베풀었다 라는 이유로
그냥 아니 누가 많이 베풀어 달라했더냐 말이죠
그냥 주니까 넙쭉 받았을 뿐이고
그리고 그저 평범하게 일상생활할 뿐인
각자가 자기 자리에 되돌아 가서 일할 뿐이고

그런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라고
소돔과 고모라 심판 보다 더한 심판을 퍼붓겠다 라고 하시니

앞 뒤가 맞지 않더라 말이죠

즉 주님의 시선은 
이런 악의 평범성처럼

이 세상의 이런 평범한 도시 조차도 소돔과 고모라로 보신다 라는 겁니다
마귀 보다 더더더 한 시체로써 말이죠
심판의 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쳐달라 불쌍히 여겨달라 라고 하는 자가 없으니
예수님 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신의 의사 기능과 전혀 안 맞는
건강한 자 의인들만 가득할 뿐이지
잃어버린 이스라엘 곧 하나님이 거주할 집 내 집
주님의 처소인 이스라엘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주님이 거할 처소는 우리 곧 성도 이고
우리가 거할 처소 또한 주님이 품 이다 말이죠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거하면 

이 주님이 손 수 직접 만드신 성전으로써
자신의 거할 처소로써 우리를 방주 성전 만들기를 직접 하신다 말이죠

(시 118:19, 개역)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 118:20, 개역)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요 6:56, 개역)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1, 개역)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2, 개역)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3, 개역)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 15:4, 개역)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개역)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7, 개역)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개역)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9,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10, 개역)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2, 개역)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3, 개역)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개역)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시 118:14, 개역)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시 118:15, 개역)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시 118:16, 개역)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시 118:17, 개역)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시 118:18, 개역)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시 118:19, 개역)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 118:20, 개역)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시 118:21, 개역)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시 118:22, 개역)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 118:23, 개역)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시 118:24, 개역)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시 118:25, 개역)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시 118:26, 개역)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 118:27, 개역)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시 118:28, 개역)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시 118:29, 개역)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러니 쟁기를 잡고 뒤돌아 서는 자는 배신자요
이 배신자의 반대는 감사하는 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는 자


내 대신 죽으신 나의 낭군이 당신이시군요 라고
사랑 안하고는 못 배기는
그래서 뒤에서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내 낭군
여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마지막 아담 남을 살리는 영 이시다 말이죠

그러니 북문이든 남문이든 주의 오른손을 맞이하는 겁니다

이 둘은 이 절대죽음 절대심판 속에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놓여지면서
주의 오른손만 바라는 겁니다 사마리아인 문둥병자 한 사람이 말이죠

그 한 사람 사마리아 문둥병자가 감사함으로 들어갔고
우물가의 여인이 그 문에 들어갔고 말이죠

아니 내 죄를 용서하시고자
죽으시러 왔는데
창녀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머리에 붓는 이유가 뭡니까
종말, 마침을 보여줬거든요
누가? 예수님이 말이죠

이 사랑을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 십자가에 죽으시러 오신 율법의 완성을 마침을 봐 버렸는데
이 죽음을 미리 장사 치르지 않고서 못 배긴다 말이죠

오히려 제자들은 배신해서 뒤돌아 선 것은 아니지만
물론 가장 화를 낸 가룟유다는 뒤돌아 섰지만
이 수수께끼를 알 길이 없어서
나중에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난 뒤에
이 수수께끼의 의미를 알게 된 겁니다

선악의 법이 아니라
사랑이였음을

이 주께만 범죄한 자에게 대신 죽으신 그 사랑을 쳐다본다면
뭘 해도 다 죄 뿐임을

그 죄를 불태우시는 하나님의 불 로써 심판 진노로써

이 불과 동행하는 자로써

이 심판을 하나님이 집에서 먼저 시작하심으로써

세상이 이미 이 불 속에 심판 속에 놓여진 세상은 심판 받아야 할 죽은 시체 라는 시선을
성도에게 먼저 미리 앞당겨 심판을 하심으로써
이 징계를 통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아니 더러운 곳에 주님이 함께 거주하시겠다 라고 하실순 없잖아요
앞에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모조리 다 불 태웠듯이

아 그럼 다시 기회를 주면 안 태우실까요

맹 그래도 불 태우십니다

왜 맹 더럽거든요

이 주님의 절대죽음 절대심판만이 거룩하게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너희 죄가 붉을 지라도
아무리 창녀 고멜일지라도
흰 눈과 같이 희게

흰 새 옷으로 신부단장 해서 말이죠

(계 21:1, 개역)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개역)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시록에 문 되신 예수님이 이 12지파 동 3 북 3 남 3 서 3을 다 이루십니다
인간 유대인들에게 맡겼다가는 한 지파 유대지파만 남고 다 죽일려고 할 겁니다
나머지 11지파는 사라지든 말든 아예 관심 없듯이 말이죠
이런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자가 예수님의 마음과 합해질 수 있겠습니까

(계 21:13, 개역)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21:9, 개역)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 21:10, 개역)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11, 개역)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21:12, 개역)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 21:13, 개역)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21:14, 개역)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계 21:15, 개역)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계 21:16, 개역)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계 21:17, 개역)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계 21:18, 개역)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계 21:19, 개역)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계 21:20, 개역)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계 21:21, 개역)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개역)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4, 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 21:25, 개역)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계 21:26, 개역)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계 21:27, 개역)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리고 그 성 안에는 따로 성전이 또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즉 이 말은 인간들이 요구하는 성전은 따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한 구원의 장치 였기에
어라 이게 아니네 라고 뒤돌아 서도록 하기 위함이니까 말이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버린 이상
내가 예수님을 위해 살 수 밖에 없고
주님의 살과 피가 곧 죽음이 내 속에 들어와 버린 이상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서

예수님을 위하여 죽을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같은 운명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아 여기 감사하는 자와 대비 대조를 이루는 배신 배반 하는 자가 언급이 됩니다

(계 3:7, 개역)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계 3:8, 개역)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다윗은 자신의 유죄성 곧 주께만 범죄함을 이 꺽으신 뼈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어린양이 성전되심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왠 은혜 입니까

대신 정녕 죽으리라가 덮쳐질 줄

이제 이 절대심판 절대저주 속에서 다윗은 사는 겁니다
야 이름없는 아기야 너 죽고 내 살자가 아니라
내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이 죽었는데 부활이 죽었는데 자기분신 말이죠
이제 살아도 내가 산 것이 아니지요
내 구원을 위한 하나님 이용하기가 모조리 다 차단 당하고
오로지 여호와의 문이 쳐들어와서
주님이 손 수 직접 토기장이로써 빗으시는 성전만들기
매일 매일 뿌려대든 그 처참하기 짝이 없는 피 흘리심
대신 죽으심으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내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이 이스라엘 해체를 통해서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미끼로 또 조교로써 이렇게 심판하시겠다 라고 먼저 죽이시는 겁니다
이 심판이 옳았다 라고
그리고 살리시는 것도 조교로 시범 조교로 이런 식으로만 살리시겠?? 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가장 좋은 예죠 아니 다윗인가 아니 모세인가 
그러고 보니 성경 전체가 다 이런 식입니다 
엘리야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했던 엘리야 
요나 후딱 하루 만에 도는

욥은 이루 말도 못할 정도입니다
그 욥이 격은거 우리도 예외가 아니듯

이 공의를, 이 심판이 나 보다 마귀의 시체취급 보다 더더더 간극 벌리시는
어딜 절대심판이 있는데 사기를 치냐 면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라고
다윗이 사기 치다가 딱 걸렸다 말이죠

(삼하 12:12, 개역)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삼하 12:13, 개역)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삼하 12:14, 개역)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삼하 12:21, 개역)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삼하 12:22, 개역)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삼하 12:23, 개역)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24, 개역)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삼하 12:25, 개역)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그러나 이 사기 친 것 떄문에 지옥가는게 아니라
여호와의 문이 쳐들어 오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지옥에 가듯이
여호와의 문이 쳐들어 왔으면
즉 성전 속에서 어린양의 죽음이 나의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그 주의 오른 손 오른 팔이 나타났으면
비로소 그 사랑의 징계로
그 절대심판으로 우리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는 겁니다
왜 이미 앉은뱅이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자가 되었어도
그 여호와의 문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쳐들어 와 버렸으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이 감사는 인간의 자기유익을 따져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으로써만 나왔기에
당위
존재로써의 감사는 조건을 따져서 자시 신체에 편함과 불편함에 따라 달라지지만
당위는 아예 죽여놓고서
요나의 표적으로써 그 죽음 속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감사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감사가 나를 잡아먹어버렸기에
감사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뒤돌아 서고 싶어도 뒤돌어 설수 없는
작살에 꽃혀버린 운명으로써

주께만 나아가는 자로 새로 창조해 버리신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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