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 독수리 비유 해석 (벌거벗은 애굽을 의지함, 종교 정치의 속임수) (겔 17,11-2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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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 독수리 비유 해석 (벌거벗은 애굽을 의지함, 종교 정치의 속임수) (겔 17,11-21)

종교적인(멋들어진) 구원이 아닌, 정치적인(모욕적인) 구원
히틀러(죽음,정치) 보다 더 강한 더 폭력적인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사랑(비폭력의 정치)!! 왜? 
너희도 원수사랑인 십자가 피용서(독생자의 화목제물 되심-눈물)로 구원되었기에 받은대로 도로 주라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독수리 그리고 수수께끼와 비유 (겔 17, 1-10)
에스겔 2019 2022. 10. 29. 09:34
21-049 수수께끼와 비유 그리고 독수리 (겔 17, 1-10)

〈에스겔 17,11-21 개역한글, 구약성경 1174쪽, 찬송가 31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183장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찬송가 31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1. 온유한 주님의 음성 네 귀에 속삭이네 
   네 마음 문을 두드리니 왜 주님을 피하느냐
   피하지 말라 피하지 말라 
   우리가 곁길로 피해도 맘속에 오시리 
   심판날 당할 때 주님을 너 맞을 준비해 
   맘속에 주님을 영접하라 주님 영접하라

2. 사랑의 주 예수 친히 이 땅에 내려오사 
   문밖에 서서 기다리니 참 놀라운 사랑이라
   피하지 말라 피하지 말라 
   우리가 곁길로 피해도 맘속에 오시리 
   심판날 당할 때 주님을 너 맞을 준비해 
   맘속에 주님을 영접하라 주님 영접하라

3. 주님이 부르는 음성 널 받아주시나니 
   죄버린 네게 임하시사 끝까지 널 도우시네
   피하지 말라 피하지 말라 
   우리가 곁길로 피해도 맘속에 오시리 
   심판날 당할 때 주님을 너 맞을 준비해 
   맘속에 주님을 영접하라 주님 영접하라

4. 주님의 은혜를 받고 예수님 영접하라 
   마음문 활짝 열어놓고 너 주님을 영접하라
   피하지 말라 피하지 말라 
   우리가 곁길로 피해도 맘속에 오시리 
   심판날 당할 때 주님을 너 맞을 준비해 
   맘속에 주님을 영접하라 주님 영접하라


〈에스겔 17,11-21 개역한글, 구약성경 1174쪽〉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
(13)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어늘
(15) 그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1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의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17) 대적이 토성을 쌓으며 운제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주지 못하리라
(18)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지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롬 12:17, 개역)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8, 개역)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9, 개역)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20, 개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1, 개역)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3:1, 개역)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2, 개역)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3, 개역)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4, 개역)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5, 개역)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롬 13:6, 개역)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 개역)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이웃사랑 이냐 육신의 일, 정욕이냐
(롬 13:14, 개역)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찬송가 183장 나 속죄함을 받은 후〉

1. 나 속죄함을 받은 후 한 없는 기쁨을 
   다 헤아릴 수 없어서 늘 찬송합니다
   나 속죄 받은 후 나 속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2. 나 속죄함을 받은 후 내 맘이 새로워 
   주 뜻을 준행하면서 죄 길을 버리네
   나 속죄 받은 후 나 속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3.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 자녀 된 것을 곧 증거 합니다
   나 속죄 받은 후 나 속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4. 나 속죄함을 받은 후 보혈의 공로로 
   내 주의 은혜 입으니 늘 평안합니다
   나 속죄 받은 후 나 속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아멘


(겔 17:1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17:12, 새번역)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어 보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왕과 지도자들을 붙잡아 바빌로니아로 끌어 갔고,
(겔 17:13, 새번역) 이 나라의 왕족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에, 이 나라의 유능한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겔 17:14, 새번역) 이것은 바빌로니아가 이 나라를 굴복시켜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만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려 한 것이다.
(겔 17:15, 새번역) 그런데도 그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에게 많은 군마와 군인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겔 17:16,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워 주었는데, 그 왕에게 한 맹세를 무시하고, 그와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니, 왕의 땅인 바빌로니아에서 그와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겔 17:17, 새번역) 바빌로니아 군대가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그의 성읍 옆에 흙 언덕을 쌓고 높은 사다리를 세울 때에는, 이집트의 바로가 강력한 군사력과 많은 군사로도 전쟁에서 그를 도울 수가 없을 것이다.
(겔 17:18, 새번역) 그가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다. 그가 언약을 어기고 이런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겔 17:19,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나의 이름을 두고 한 맹세를 업신여겼으며, 나의 이름을 걸고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내가 벌을 주어서, 그 죄를 그의 머리로 돌리겠다.
(겔 17:20, 새번역) 내가 그물을 쳐서 그를 망으로 옭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서, 거기에서 내가 나를 반역한 그의 반역을 심판하겠다.
(겔 17:21, 새번역) 그의 모든 군대 가운데서 ㉠도망한 사람들은 모두 칼에 쓰러질 것이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이렇게 말한 것이 나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 ㉠또는 '정예병들'


흔히 사람들은 종교에서의 신앙 또는 믿음은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설마 그런 순수하고 깨끗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가
즉 신앙이라는 믿음이
더럽고 추잡하고 속임수가 가득한 정치를 추구할 리가 없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반대입니다
그래서 불의한 청지기가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롭다 라고
소위 모든 종교와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윤리와 도덕과는 정반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실은 그 종교라는 믿음이 사실은 권력에 바탕을 둔 정치라는 속임수이다 라는 거죠
여기에 기독교 또한 역시나 마찬가지 이다 라는 겁니다

순수한 신앙의 마음자세로 예수님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 라고 외치는 베드로에게
어딜 사람의 일로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느냐
바로 이 하나님의 일이 바로 그런 사람의 일 곧 사탄의 일을 까발리는
인간의 믿음을 거짓으로 취급한다 라는 겁니다

왜 인간의 믿음을 거짓도 모잘라서 사탄의 일로 취급할까요

우상과 연관이 되어 있고
이 우상은 정치와도 연관이 된 
결국은 인간의 믿음은 권력추구인 정치와 연관이 되어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다 라는 거죠
곧 인간의 믿음이란 살인의지라는 권력추구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는 사람 치고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강도의 소굴인 거죠

정작 성경은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라고 해서
오히려 권력의 반대인 우는 자로써의 긍휼을 불쌍히 여겨주심을 바라고 있는데 말이죠

예로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임마누엘 아기를 어떻게 최전방 전쟁에 보내느냐
나는 그럼 어른 그런 부모가 되기 싫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눈이 어두운 소경인 입장이다 라는 거죠
소위 보이는 것만 보고서 그것도 모잘라서 보고싶은 것만 보겠다 라는 겁니다
확증편향 정도가 아닙니다
확증편향의 사람들을 욕하는 사람들 조차도 그 욕한다 라는 자체가
그것을 비판할 줄 안다 라는 속에 들어감으로써
저들 살인자를 욕하면서도 같은 살인을 저지르는 사고방식과 똑같다 라는 거죠
살인자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면서도 같은 살인의 사고방식인 거다 말이죠
(주여 주여 실로암망대가 무녀져 18명이 죽은 것은 하나님께 범죄해서 그렇지요
그래 그래 그다음 차례 니 차례이다 라고 말씀하시듯이
결국 인간이 말하는 믿음이란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 라는 의식이 이미 깔린
거짓됨이다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길을 어차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항아리에 든 쥐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있으니 
우물 밖의 시선이 단절이 된 우물 안의 시선이 전부인
닫힌 상황에 놓여져서 그저 누가 누가 먼저 들통나느냐 라는 치킨게임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히려 팔을 어긋맞게 하시는 정치 속에 정치를 하십니다
부정의 부정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하시는 겁니다)

치킨게임이란 50년대 미국젊은이들이 서로 반대편에서 차를 몰고와서 쾅 받기 전에 
누가 먼저 피하느냐 라는 일명 겁쟁이 게임인데
오늘날에는 누가 최종적으로 남느냐 까지 서로가 자기 피해를 감수하는
제 살 깍아먹기로 경쟁에 나서는 경우를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이런 제 살 깍아먹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겁니다
믿음이 아니라 사실은 칼이라는 권력을 소유하고픈 것인데
자꾸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데요 글쎄
칼로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는데
칼 구하지 않겠노라 해 놓고서는 뒤로는 칼을 구하더라 말이죠
결국 인간은 믿음을 멀리서는 멋들어진 것으로 포장을 했을 뿐
가까이에서는 처절하게 남에게는 지고는 못 산다 라는 치킨게임에 미쳐있는 상황입니다

가장 정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여자들의 애 낳기 싸움이다고 했잖아요

이건 뭐 남자들이 못 말립니다
누가 남편으로부터
신으로부터 누가 누가 더 남편의 사랑받느냐 라는 목숨건 싸움인데
그거 말리다가 남편이 죽임을 당하니 그제서야 사랑해줄 남편이 없어지는 뒤에야 비로소 아는 거죠
아 속았구나 라고 ~~~~~

이런 바닥을 미리 바닥치도록 하기 위해서 독수리 라는 독수리 시선
죽음의 시선을 끌고와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했구나
이 부정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이런 헛짓에 이런 속임수 밖에 안 펼치는 구나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닫힌 상황이구나

그래서 구원자란 그 닫힌 장독대를 깨뜨리는 구원의 뿔로써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시는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사기를 당했을때에 누구한테 갑니까
네 경찰서 형사에게 가겠지요

어라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사기를 친 놈이 도리어 먼저 경찰에 가서 신고를 하다보니
도리어 고소를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네 맞아요 변호사를 찾지요

왜? 지금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했는데 도리어 범죄자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전쟁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냥 사기를 당했다

아이고 쪽팔려라 라고 그냥 참고 넘어가면 그만 일 뿐인데
이 일이 나 아닌 내 가족에게 영향을 미쳐서 그냥 넘길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쩔수 없이 쪽팔려서라도 경찰신고를 하겠지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전쟁의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는 도리어 사기꾼이 나를 고소해서
졸지에 범죄자로 몰렸다

지금 하루 벌어 하루사는 상황이라서
가족들 챙길려며는 하루도 쉴 수가 없는 상황인데

자 이렇게 되어버리면 전쟁의 상황이 되어버리고
정치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즉 사건이지요

왜 구차히 이런 복잡하게 이야기를 끌고가느냐

구원이란 사건 의 상황이다 라는 겁니다
즉 전쟁이요 정치적이다 라는 겁니다
정치란 지난 주에 독수리까지 끌고온다 라는 겁니다

너는 독수리가 보는 시선에서 죽은 시체 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경찰서에 사거 형사를 찾을려다가 도리어 변호사를 찾아야 할 판국인 겁니다
전쟁이 일어났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구원자 라고 표현했는데
구원자 라고 하니까 자꾸 종교적인 의미로만 보는데 도리어 정반대죠
정치적인 상황이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종교적인 구원자 라는 표현 보다
도리어 변호사 라는 표현을 해야 실감이 나겠지요

한국인에게서는 법정은 무조건 이유 없이 이겨야 하는 목숨건 싸움 곧 전쟁이 되니까 말이죠
외국은 안 그러는데
한국인은 부부가 법정에 갔다?
이것은 무조건 이혼이 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뭐 4주 후에 뵙겠습니다 라는 것도 없어요 무조건 이혼으로만 치닫는다 라고

무조건 이기고야 말겠다 라는 치킨게임이 된 겁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입니다
사랑과 전쟁입니다 전쟁 ~~~~~~~~~~~

여자가 들어간 전쟁은 이것은 목숨 걸어버린 겁니다
이런 여자 보다 더더더 한 전쟁이 더더더더 더한 정치가
여자가 낳은 아기가 들어간 전쟁입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 말이죠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원 전쟁은 바로 여자의 후손 전쟁이다는 겁니다

임마누엘을 구하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 : 누구 누구의 아들 아기를 구하라

뭐 안 구해?
그럴줄 알고 지옥에 있는 애굽왕 바로왕을 1300년 만에 다시 끄집어내어 소환했단다

그게 오늘 나오는 바벨론 왕 곧 독수리 이다 라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원조는 애굽의 바로왕인 거죠
에스겔 당시는 900년 만에 말이죠

400년 중간기 뒤에 예수님 때 이니까 1300년이구요
이런 숫자도 존재 개념이 아닌 기능 개념입니다
사건 곧 비유 비밀입니다 수수께끼
모조리 다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 동원이 되는 도구이지
기능을 따지는게 아니라 자꾸 존재로 따지게 되면
최종적인 존재인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 로 따지게 되는 거죠
내 존재에 도움 되면 선으로 보고
내 존재에 하등 도움 안되면 악으로 취급하겠다 라는 식인
예수님이라는 존재도 내 존재에 하등 도움이 안 됭께 에라이 죽었뿌라 라고 했듯이
성경에 나오는 숫자를 아무리 내 쪽으로 땡겨본들 소용이 없어요
그것도 모르고 안식일을 제 7일을 자기 쪽으로 끌아와서
자기 신체에 돌돌돌 칭칭감아서 도배를 했던 유대인들 도리어 강퍅하잖아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사탄의 회 이다 말이죠

이런 유대교를 기독교가 닮고파서 안달이더라 말이죠
저들의 신앙이 살인의지인데 유대인을 이기고파서 말이죠

미국에서 새벽 6시에 가게문을 여는 사람은 유대인 밖에 없데요 글쎄
그런데 더 독한 자들이 있는데 새벽 4시에 문 여는 사람이 한국인이래요 글쎄 ㅋㅋㅋ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는 말은 지금 이 닫힌 상황에서
닫힌 상황 너머에서의 긍휼을 바라라 주님의 아픔을 바라라 라는 주님의 마음을 쳐다보는 것인데

누가 지금 이 전쟁의 상황
정치적인 치킨게임으로 다 쏠려 몰려버린 상황에서
독수리의 시선에서 시체요 주검이 된 입장에서
누가 그것을 인정하고 긍휼을 바라면서
닫힌 상황 너머에 있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임마누엘을 긍휼을 구하겠습니까

도리어 지기 씷어서
이 싸움에서 지면 죽는다 싶어서
도로 뒤로 몰래 애굽과 손 잡잖아요

아니 독수리 시선에서는 이미 다 죽었는데

나 아직 안 죽었다 라고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라고 나오게 되니까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긍휼을 바라지 않으니까

악한 무화과 나무가 되는 겁니다

아니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운명을 결정 당하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서
여고냐 아동 8세인지 18세인지
겨우 3개월 10알 딱 100일 동안만 왕으로 지내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 여고냐는 주님의 긍휼 때문에 살게 되는데

그 여고냐가 선하냐 악하냐는 전혀 의미가 없어요
그렇게 다들 해석을 하는데
수수께끼 비유는 백날 선악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지금 독수리 시선이 이 정치적인 시선에서

다 죽은 것인데 믄 놈의 선한 왕이냐 악한 왕이냐 로 따집니까
그건은 이미 결과가 나타난 뒤에
과거를 회상해서 해석한

원인이 있어서 과거가 있어서
원인 있는 결과로 해석하니까
그것은 비유 수수께끼가 아니라
그건 종교요 윤리요 도덕이다 말이죠
그렇게 되면 백날 불의한 청지기 비유 
비~~~~~~~~~~유 수수께끼 백날 해석해 봐라 말이죠 안 풀려요
도리어 반대로 거꾸로 주님이 해석해 버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될테니 말이죠

아 그럼 나도 반대를 위한 반대로 할래 그럼 또 주님이 또 반대로 해석하지요

어떤 신부 사제 말 마따나 반사 ~~~~~~  아 아따 그 천주교 신부 빵 터쳤넹
얼마나 도리도리 무당을 이기고 싶었으면 반사 래 반사 ~~~~~~~~~

오죽했으면 비행기 떨어져 죽었뿌라 라고
그걸 또 비판하니까 반사 ~~~~~~~~~~

지도 같은 무당 이면서 말이죠

무당 아닌 놈이 없어요 글쎄

종교라는 아무리 멋들어진 것으로 포장을 해도
결국은 정치
추잡스럽기 짝이 없는 정치라는 권력이 다 오염이 되었는데
무슨 놈의 건강한 자라꼬 의인이라꼬
더럽다 제발 내 마당 밟지 마라 똥 묻히지 말라 라고
다들 잘 보일려고 온다 말이죠 교회에 말이죠
아니 누굴 속일려구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모욕적인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다들 잘 보일려고 와요 글쎄 ~~~~~~~~

막상 전쟁 한 복판
정치 한 복판에 있으면
이것은 닫힌 상황이기 때문에
저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받아서 실로암 망대에 깔려 18명이 죽은
그런 원인으로써 원인 있는 결과가 아니라
닫힌 상황은 누구든지 해당되는
그 다음 니 차례인데 우짜노 라고
독수리가 그 다음 너를 노린다 라는 닫힌상황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되면 너가 아무리 애지중지 공든탑으로 신앙을 쌓아보들
하루아침에 쓸모짝도 없는 모래로 성을 지은 것과 같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독수리 라는 정치를 바벨론왕을 끌어오는 겁니다
정치를 더 나은 정치로 박살을 내는 거죠
인간은 아무리 종교로 포장해도
사실은 우상이고 우상은 곧 정치요 속임수입니다
율법은 바로 그런 가면을 더더더한 몽둥이로써
종교라는 정치가 때리는 것 보다
십자가 라는 사랑으로 때리는 징계를 통해서

그 닫힌 상황에서 구원을 변호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구원은 엄청 요란합니다
전쟁이 집단적으로 두 세계가 충돌함으로 구원을 이루지

개인의 사적인 깨작 꺠작 종교놀이 종교장난 정치게임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 그렇게 종교가 정치라는 권력 추구라는 가면까지 들추임당함으로써

두 패로 갈라지게 되는 겁니다
이긴 자와 지는 자로

놀랍게도 지는 자에게 긍휼이 덮쳐지는 구원을 펼치시는 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두 언약이 성사가 되어야 언약이 된다 라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긴 자 하갈이 아무리 아이를 낳아본들 약속의 자녀가 될 수가 없구요
누가 봐도 진 자 본처 사래가 낳은 자식만이

이 모든 사건 곧 전쟁
구원의 전쟁
언약의 사건의 원인으로써 벌어진
도리어 그 증상물로써 두 여자가 나타나서
하나는 수태치 못하는 불임여서 죽은태
또 하나는 순풍 순풍 건강한 자

누구를 부르러 왔을까요?

구원자
변호사는
수태치 못하는 환자
죽은 태 죽은 자를 부르러 왔다 라는 겁니다

저런 단힌 상황에서 그것만이 전부라서 승부를 거는
저 하갈이 못 보는 세계를
이 사래는 자유롭게 막 봤던 겁니다

보고 싶어서? 믿음이 좋아서? 그렇게 되면 종교죠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는 이건 하갈 땅의 계집종의 사고방식인 거죠

보여주심을 당함으로써 안 믿고는 못 배기는
분명히 비웃었는데
그 비웃음을 웃음으로 만드신 주님의 마음을 보여짐을 당하는 바람에
졸지에 구원사건의 대상자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지유하기 싫어도 자유가 덮쳐져서 작살을 꽃아서
가는 곳 마다 사건이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소동이 막 일어나요 글쎄
물론 성경이니까 그들의 행적이 그렇게 기록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보니까 그렇지
라고 하는데 역시나 그것 역시 종교적으로 봅니다
마치 자신들은 정치적이지 않은냥 말이죠

이들이 활동하는 상황을 지도로 펴 보면요
꼭 정치 한 복판에 집어넣습니다
괜히 고래싸움에 등 터질려고 왜 그 중간에 낑가 넣는 것일까요

네 맞아요 구원전쟁이니까 말이죠

에스겔 당시 전후를 보자 말이죠
이스라엘이 굳이 이들 강대국 싸움에 낑길 필요가 없어요
지리학적으로 위치가 하필이면 중앙에 괜히 있다 보니 어쩔수 없겠지요
그래 그러니까 왜 젖과꿀이흐르는 땅 가나안 땅이 그들 국가의 중앙에 있을까요

이리가다가 한 대 쥐 박고 가고
저 국가가 저리 가다가 괜히 한 대 쥐박고 가고
남쪽이 북으로 쳐들어 가면서 중앙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짖밟고 가고
북이 남쪽이랑 싸우면 될 것을 괜히 가운데 있다 보니 한 대 맞고 가고

한 번 전쟁 나면 크게 나서 그렇지
한국이 지리학적으로 가장 전쟁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다 라고 어떤 미국 학자가 말하던데요

꼭 조선 말기 때
일본이 중국을 치겠다 라고 길 통로를 열어라 라고 했을때에
못 열겠다 라고 해서 괜히 얻어터지구
북한이 소련 탱크 앞장세워서 통일 시킬려구 한 대 때리고

땅 이라는 것이 닫히게 하니까 닫힌 상황이다 보니
닫힌 상황 바깥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터지기 전에
떠나면 된다 라고 했지요
전쟁 끝나면 다시 돌아오면 되구요
말이 쉽지
땅이라는 공간이 모든 연결망을 촘촘이 관계맺고 있기 때문에
떠날수가 없고 밖의 시선을 가지고 올수 없어요

원인이 있는 결과는 이미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할때나 그렇지
또 존재도 그렇게 보고 있지

기능적으로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닫힌상황 바깥의 시선을 가지고 온다 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불가능성으로써 원인 없는 결과로써 믿음이 구원이 펼쳐지게 되니까
우리가 말하는 존재의 믿음은 순 거짓이 되는 겁니다

뭐 거짓이라고 알아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벗어날 수가 있으면 또 몰라

땅에 발 딛고 있는 이상
닫힌 상황이고
너가 그 입장이 되면
과연 여고냐를 악한왕 선한왕 이라고 규정할 수 있냐 말이죠
악한 왕 여고냐 조차도 포로잡혀가는 외부의 강제적인 운명으로 결정함으로써
구원을 언약을
수수께끼를 완성 하시는데 말이죠
율법의 완성은 이 사랑 불쌍히 여겨주심인데
누가 불쌍히 여김받은지 안받을지는 주님 손에 달려있지
우리가 달임박질 한다 라고 해서 달리지는게 없어요
오히려 달음박질 하면 할수록

이 강퍅과 긍휼로 나누시는 이 언약의 취지를
더더욱 안 볼려는 완악함만 더해져가겠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눈물을 보라는 취지 이기에
주님의 아픔을 보라는 취지이기에

도리어 쫄딱 망하는 것이 도리어 은혜요 축복인 겁니다

언제까지 국가 흥망성쇠를 저 지도자 한 사람에게 달린냥
전전긍긍 하면서

에라이 비행기 떨어져 죽었뿌라 라는 저주의 기도를 언제까지 할꺼냐 말이죠

철딱서니 없는 천주교신부의 마음이
아무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 줘도 말이죠

그 의문의 반복 언제까지 하냐 말이죠

언제까지 이 닫힌상황에서 전전긍긍 마음 조마 조마 하게 하면서 살꺼냐 말이죠
그게 생지옥이고
지옥이 따로 없는 거죠

정치란 결국 믿을 것은 나 밖에 없고
그런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내가 원하는 왕이

바르게 바르게 정치를 잘해서
조마조마하게 만들지 말라 라는 그 마음

비아니다 비아니다 라는 기도
이런 종교

이게 도리어 무당 왕 보다 더한 악마의 집단 아니냐 말이죠 사탄의 회
유대교가 이미 다 보여줬어요

왜 잘 살고 있는 애굽을 떠나서
멀쩡한 애굽 말이죠 에덴동산과 같은
그 당시 최고의 강대국 아닙니까

자기 나라에 가 본들 역시나 애굽처럼 되고 싶어서 하는 짓이
노예든 중산층이든 역시나 하는 일들은 똑같아요 에덴동산 만들기

이런 자유처럼 보이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그런 즐거운 노래가 있는데 말라꼬 이 멀쩡한 에덴동산을 등지고
오로지 광야, 광야가 뭡니까 죽음의 사막 아닙니까
광야 삼일 길, 죽음도 모잘라서 3일의 단절 속으로 더더더 들어가야 하고
어린양의 희생죽음. 그것도 모잘라서 어린양의 죽음까지 가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 3일의 간극 때문에
아브람의 아내 사라는
수태치 못한 여자가 되어야만 하고
그것도 모잘라서 100세 넘은 남편이어야 하고 이건 나 여자의 몸도 아닌 남자도 말이죠
또 그것도 모잘라서 희생제물로 이삭을 바쳐야만 하는 그 눈물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니

이것이 땅이라는 닫혀진 상황에서 벗어나는 
구원받는
주님의 눈물 속으로 들어가는 세계이다 라는 겁니다

이 어린양의 희생죽음 때문에
그 증상물로 태어난 자가
언약의 사람이지

지금 선악의 싸움에서 서로 누가 누가 이기느냐 라는 정치 속에서
치킨게임에서 언제 끝날지도 기약도 없는
마침이 없는 전쟁
했던 것 또 하고 또 했던 것 또 하고 또 했던 것 또 하는

이 의문의 반복의 마침이 되는

하나님과 같이 된 선악을 드디어 끝내는
그 의문을 말이죠

이 주님의 죽음이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주님의 세계를 곧 종말을 미리 앞당겨 오는
이 십자가의 정치를 보여주심으로써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는 겁니다

안그러면 꺠작 꺠작 저거들 끼리의 전쟁
마침도 없으니 평화가 올 리가 없고
평화가 오지 않으니
마침도 없으니
그 되도 않는 의문의 반복만을 하염없이 하는 그야말로 사망의 몸인 티를 팍팍 낼 뿐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어깨에 메고 하는 전쟁이지
왜 마침이기에 끝났기에

안그러면 시드기야 왕처럼 또 의문의 반복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원인 있는 결과 뻔한 결과로써 닫힌 상황이 전부이기에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이 종교가
사실은 믿음이 아니라
오기요 신념이요 똥고집으로써 
자기가 자기를 투사해서 믿은 우상숭배로써

바로 이것 때문에 다 망해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치우쳐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해서
자기를 투사해서 자기믿음을 믿는 믿음으로
지기 싫어해서 예수님까지 죽이는 이 실상을
율법이 미리 심판으로써 다 보여주는
그리고 율법은 죄아래 심판아래에 가둠으로써
독수리 시선 보다 더더더 더한 정치적인 몽둥이요 징계로써 말이죠
그리고 율법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의 세계만이

믿는다고 하는 우리 손으로 죽인 저 말씀만이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는 기쁜소식이기에
노래 아니 부르고는 못 배기는 사랑이 예 오신 것이다 말이죠

안그러면 우리는 자꾸 롯의 처처럼
이 마지막 때에 늘 뒤돌아서서 가게 되는 소금기둥이다는 겁니다

광야 광야3일길 어린양의 희생제물이
이 화목제물되신 사랑이 
나를 당겨주지 않으면
이미 우리는 소금기둥이다 말이죠
그러니 긍휼을 바라지 않는다면

또 우리는 강퍅한 마음으로
자기 고집인 똥고집의 거짓된 우상의 신앙으로써
이 전쟁의 상황인 닫힌상황의 정치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그저 강한놈 만나면 지기 싫어서 버티기로 일관하고
약한놈 만나면 바로 바로 이겨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그 헛짓의 반복

어딜가도 어떤 장소든 어떤 시간이든 이런 짓을 단 1초도 멈춘적이 없기에
허송세월 다 이 짓 하다가 다 보내는

도리어 십자가의 정치는
이런 바닥을 미리 미리 퍼뜩 바닥을 뜯어서
저 죽음 너머의 세계인 주님의 화목제물의 세계로
눈물을 씻겨주시고자
우리를 이 땅에서 눈물 쏟겠끔 만드시는 겁니다

왜 웁니까
못 이겨서
져서
죽음이 닥쳐서

아닙니다 그건 죄 아닙니다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드시는 것은
왜 이 화목제물을 못 보는 이 사망의 몸인가에 대해서
내 눈물로 우는게 아니라
주님의 눈물을 그 동안 못 봐서 우는 겁니다
머리에 숯불을 얹은 것처럼 부끄 부끄

어찌할꼬 어찌할꼬 우리는 정작 그를 죽였는데
도리어 그는 우리의 죄악을 대신 감당하셨기에
그 사랑에 목메어 우는 겁니다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얼마나 율법이 제대로 우리 마음을 찔렀으면
제대로 기능을 했으면
드디어 우리 속의 죄와 싸워 이기셨느냐 말이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사랑을 주셨느냐
긍휼을 용서의 피를 바르셨느냐 말이죠

바르메 바르메 ~~~~~~ 바르메 ~~~~

이 화평을 주시고자
둘이 원수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시고자 한 몸이 되시고자
검을 전쟁을 주러오셨고 집안 식구를 원수지간으로 만드셨고
국가끼리도 말이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으로
이 믿음의 조상만이
모든 국가의 중간에 낑겨 들어가서
다른 세계의 전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왜 애굽족장에 들어가야만 했고
이 이동경로 하나 하나가 말이죠

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표현이 다윗에게서는 다윗의 열쇠이고
신약의 베드로에게서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세상의 정치 전쟁에서는 나올수 없는 열쇠를
여자의 후손의 전쟁과 정치에서는 더더더 또렷한 열쇠입니다

땅에서 풀고 매고, 열고 닫고자 전쟁 중간에 낑기는 겁니다
하늘에서 풀고 매고, 열고 닫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의 조상의 전쟁 이동경로로써 말이죠
신약은 지금 우리죠 더더더 깊게 들어갑니다
이제 우리 마음속 깊이 깊이
네크워크는 너무 너무 광대해 라고
공각기동대 만화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의 유명한 대사 인데
니체와 들뢰즈의 사상으로써 초인인 자신을 무한긍정을 
광대한 네트워크 세계에 빗대어서 말하고자 하는데
아닙니다 광대 넓고 깊고 깊으다 이기는커녕 너무 너무 얕아요
아무리 바벨론 왕 새벽의 아들 계명성처럼
하나님의 별 보다 더 높고 더 크고 더 넓고 깊은 광대한 네트워크일지라도 전기 뽑아버리면 말짱 도무룩입니다
도리어 그런 것에 아브라함을 투입시켜서 전쟁을 하듯이 확 마 다 찢어버려서
무화과 나무 잎도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광대한 네트워크 없고 뽑아버릴 전기도 없어도
이 화목제물만 있으면
우리 믿음도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우상숭배의 믿음인데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만 있으면
첫사랑만 있으면
아무런 조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십자가의 죽음 말이죠
이것 떄문에 우리가 손에 쥔 것 다 빈털터리 만들어 버릴려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겁니다
그래야 처음자리 인 빈자리 이스라엘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주님의 눈물을 바라보고 긍휼을 구하는
용서를 죄사함을 받은 것이 사람의 유일한 행복이요 곧 구원이다 말이죠
기쁨의 소식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 말이죠

수치를 가리움을 받은 자
눈물을 씻겨주심을 당한 자
이게 구원인데

어라 또 정치적으로 누가 누가 크냐 라는 또 자존심세계 권력의 세계라는 힘을
이 피 위에서 예수님의 죽음 대신 매 맞음 앞에서 펼치고 있으니
강도의 소굴이 따로 없죠

(롬 4:1, 개역)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9, 개역)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이 말은 상대적으로 가짜믿음은 자기가 일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할려고 한다 라는 겁니다
은혜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보상해 달라 라고 말이죠
항상 두 언약의 대조로써 언급합니다

심지어 신명기에
이스라엘을 왜 택했냐?
가장 작은 수의 민족이고
가장 미약하다 라고 선택했다 말이죠

(신 7:7,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즉 만민 중에, 여러 민족 중에 언약의 기능으로써 택했다 라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말이죠
심지어 1절에 나옵니다

(신 7:1, 개역)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신 7:2, 개역)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신 7:3, 개역)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신 7:4, 개역)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 7:5, 개역)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신 7:6, 개역)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 7:7,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7:8, 개역)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 7:9, 개역)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 7:10, 개역)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절에 다수로 구성된 민족은 안 택하고 말이죠 일곱족속이 다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런 민족과 상대적으로 대조적으로 말이죠

마치 계시록의 성전측량 거룩측량과 비숫하죠 제일 끝에 있는 자를 먼저 측량하고
제일 가까이 있는 자를 나중에 하듯
이런 원리가 바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이다 이 언약정신으로 밀어붙이신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활동 조차도 예수님 자신이 거룩한 성전으로써 걸어다니는 성전으로써
거룩한 제사장과 바리새인이 아닌 그들과 대조를 이루는 창녀 세리 강도

이들이 먼저 천국간다 라고 거꾸로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되는 거룩측량

왜? 예수님의 피가 죽은 자도 살리기에
건강한 자
의인에게는 쓸모 없는 피 이기에

그렇다고 일부러 약한 자 미약한 자가 될 수가 없어요
상대적으로 대조로써 복음을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기 위함이지
은혜를 더하고자 일부러 환자로 만들수가 없어요 심지어 이런 식의 사고방식 자체가
바리새인이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할려는 시도였죠 어떤 놈은 일부러 막 살고 일부러 죄지을 줄 아는 자 되고 일부러 죽은자 되겠다 라고 나오는 식이 되는 거죠
정작 주님은 그 반대를 위한 반대를 또 형성 또 새롭게 형성하시는데
없는데서 방금 가장 미약한 자 없는 자 이스라엘을 새로 만들어버리시는데
또 상대적으로 되게 만드시면 우짤려고 ~~~~
그 다음 니 차례이다
이 수수께끼를 이 비유를 자기 쪽으로 당길수가 없는데 말이죠
자꾸 정치적으로 말이죠 더 한 바벨론이 와서 박살을 내는 겁니다

자 그렇게 정치적으로도 게임도 안 되는데 가장 미약한 민족을 
강대국끼리의 전쟁 중간에 낑가 넣겠다 라는 겁니다

가장 작은 수란 숫자가 작다가 아니라
없다 라는 겁니다
없어요 죽은 자도 없구요 불가능성입니다
막사는 자도 없구요 없음입니다 내 쪽으로 당길수 없어요
죄지을줄 아는 자도 없어요 주님의 소관인데 지가 조작해 내고 있으니 원

좁은 길로 가라 넓은 길로 가는 것은 멸망의 길 지옥이다 라고
상대적으로 대조로써 언급합니다
왜? 내 소관이 될 수가 없기에

영국 속담인지
영어 속담인지 들은게 하나 있는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속담은 말 귀를 알아먹어요

그러나 성경은 수수께끼입니다
내 쪽으로 당기면 수수께끼 비밀이 더 이상 아니무이다

좁은길은 자세하게 말 안하고서 넓은 길 봐라 봐라 보라카이
어떻트노? 애굽 쫄딱 망했네예 ~~~

이제 알았제
아니 모르겠는데예

여전히 몰라요
지금 강대국 다 망해야 하잖아요
안 망했어요
이미와 아직의 중간상태 라고 또 이야기 해요

마음 속에 이미 깊이 깊이 박혀있어요
이거 무슨 수로 무너뜨립니까
마음 속인데

가장 작은 수 가장 미약한 나라는 그럼 잘 되어야 하잖아요
역시나 안 그렇습니다
악의 되물림 가난의 되물림 때문에 더더욱 악순환이 되어갑니다
누가 봐도 강대국이 조금이나마 개인적인 삶이 숨이 틔이지
가난한 나라는 강대국이 다 빼앗아 가니까 악의 되물림이 되어서
숨이 턱턱턱 막혀요

그럼 가장 작은 수의 민족, 가장 미약한 나라는 네 맞아요 없는 민족입니다
좁은 길은 없는 길입니다

없는데 어떻게 있게 하시느냐 말이죠
없는 민족인데 어떻게 전쟁을 하고 그것도 강대국 중간에 낑가서 전쟁을 벌리느냐 말이죠

심지어 그 당사자 이스라엘 조차도 이 없는 민족을 없애버렸어요
이스라엘도 이런 판국인데 그것도 어리석은 자 입니까 아니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하잖아요
도리어 우리 이방민족은 몸에 배여있는 것이 우상적인 믿음인데 종교 뿐인데
무슨 수로 이스라엘도 못하는 이 언약의 믿음을 할 수 있겠냐 말이죠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라고 백날 목사들이 구라를 치면서 세뇌를 시켜도 안 됩니다 안되요
우리보고 하라는 말이 아니였다 말이죠
이스라엘도 안 되는데 무슨 수로
이것은 하라 하지 말라 라는 법적인 의미가 아니라
행함도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에서 출발했기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이미 다 한 것으로 쳐주는
반칙이 부조리 불법이 덮쳐졌다 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이제는 주님이 하신 것만 즉 대신 매 맞으심 뿐이죠
이것으로 전쟁에 투입이 되는 겁니다
다 구멍 뚫어버리듯이 뚫는 겁니다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처음자리인 이스라엘을 발로 차버려서 개나 줘버려 라는 식으로
발로 차 버렸다고 해서 이 대신 매 맞으심이 취수 되느냐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스스로 발로 차버려서
처음자리 이제 없지롱 이라고 까불어도
첫사랑이 있는 이상
화목제물
대신 매 맞음이 있는 이상

첫사랑의 증상물로써 처음자리는 저절로 새로 생겨나겠끔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방인으로써 그 증거 입니다

네 맞아요 없는 그 민족인 이스라엘은 예수님 딸랑 혼자 뿐입니다

우리를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얼마나 말씀 그대로 입니까 이 수수께끼의 말씀이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고자 죄 값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 말이죠

(사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 예수님 마저도 없애버려서 진짜로 없어요 없다카이
좁은길도 없고 좁은 길과 상대적으로 넓은 길은 망하는 길이라고 말한
예수님도 없애 버렸으니 
이제 그 말에 저촉 안당하니까 무시하고 살아도 된다 라고
인간들은 만들어 버렸어요

지금 현재 유대인들이 구약만 믿는다고 해도 순 거짓말로 드러났죠
너튜브에서 이사야 53장은 없는 장으로 없애버렸잖아요
유대인 아무도 이사야 53장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요
악마의 집단 맞지요

네 맞아요 눈에 보이는 닫힌 상황에서는 없어요 안 보여요
니체가 예수님을 상대로 해서 경쟁하듯이
오늘날 현대인들은 니체의 후예로써 예수님과 경쟁해요
유대인들이 성경에 있는 그것도 구약만 인정한다 라는 그 구약에 있는 이사야 53장도 없애는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과 경쟁해야 하거든요
이겨먹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종교이고 이것이 곧 정치라는 힘 추구입니다
지면 안되기에 늘 음녀를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고픈 권력을 손아귀에 잡고 싶어해요
신흥 이단들이 왜 정치와 손 잡습니까 신천지가 돈을 때려부어요 글쎄
미국 복음주의 이번엔 브라질 복음주의까지 그러던데
한국은 이미 뻔하고
한국 천주교 보세요 저주의 기도나 하고 말이죠
나 있음 만을 위해서는 나 보다 강한 것은 없애버리고자 하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타고픈 것이 오히려 종교가 더 더더 정치적인 이유인 겁니다
그러니 없애버려야죠 예수님을 말이죠 기여이 성공 했다 말이죠
성공 했는데 어라 진 것 같은 이 찝찝함은 뭘까요

도리어 내 손에 죽음 없어져 버림을 당한 예수님은
오히려 더더더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하고 전세계로 돌아다니고 있어요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지옥까지 말이죠 얼마나 자유롭냐 말이죠

그런데 없는 그 비현실적인 것을 누가 보고 기뻐하고 믿었느냐
아브라함이 믿었다 카이
어떻게
이삭의 죽음으로 인해서 눈을 뜬 겁니다

죽음이란 없음과 있음의 경계선으로 볼꺼다 말이죠
더군다나 언약의 희생제물은 더더더 그 경계선이 더 또렷해 지는 겁니다
죽음 너머의 없음이 오히려 더더더 있음이 되고
그 앞에서 있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 독수리의 시선
이 정치적인 느부갓네살왕을 여호와의 종으로 삼아서
인간들의 유대인들의 권력추구를 꼬추 짜르듯이 힘을 짜르는 할례를 하듯이
댕캉 다 잃어버림 당함으로써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로 만들어야 돌아오는
어디로 돌아옵니까

니 눈물은 눈물 축에도
니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진짜 죽음인 예수님의 죽음으로 돌아올꺼 아니겠냐 말이죠

그러니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그 아픔 속에 그 눈물 속에 집어넣어야 이것 보다 더더더 현실적인 것이 어디있겠냐 말이죠

그 죽음에 아파하는 눈물을 흘림으로써 말이죠
누구보다 자기 자식이 죽는 판국에 비현실로 취급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장 현실적인 거죠

네 바로 이겁니다
누구보다 가장 비현실로 없는 의미로
약속 따위
언약 따위는 없다 라고 취급해 버린 당사자 이스라엘 마저도 그렇게 없음 취급함에 있어서

정작 주님이 포기하지 않고
자식을 잡아먹고
부모를 잡아먹는 비참한 현실로 몰아가서라도
이 절대심판이라는 율법이 있는 이상

언약을 보여주시고자 포로잡혀가게 하는 심판을 현실로 보여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렇게 죽으라고 안 믿겠다 라는데
안믿겠다 라는데 그냥 내버려 두시지 왜 기어코 멸망시키고 민족해체 시켜서라도
매를 대시는 이유가 뭘까요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게 하심으로써

그야 말로는 간단 합니다만 이거야 말로 가장 수수께끼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도록 매를 대시는 이유는 사랑 뿐입니다
자식은 때려죽어도 모릅니다

누가 사랑을 머리로 이해를 합니까
사랑 보다 그것도 상대적인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야 말로 가장 수수께끼인데
누가 믿었으리요 ~~~~~~~~~~~

우리는 그저 매가 없는 사생아만 대따 부러울 뿐입니다

아버지도 없고 매도 없고 심판도 징계도 없는 그런 세계만을 꿈꾸고
오직 육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만을 꿈꾸는 그야말로 초인일 뿐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높은 하나님이고
자기가 자기에게 유일한 선이고 유일한 신이고
나머지는 다 악일 뿐입니다그런 자아에게
무슨 놈의 가장 미약하다니 가장 적은 수 이니
어라 더더더 수수께끼로써
없는 좁은길 없는 이스라엘민족이니 라는 말 따위가 
거리끼는 걸림돌인 수수께끼가 될 수 있겠냐 말이죠
이게 무슨 놈의 징계요 매요 사생아에게 없는 회초리가 되겠냐 말이죠

없으면 없는 겁니다 라고 양탈쓴늑대 사모처럼 무시해버리고 없음 취급해 버리면 되는데

없으면 없을수록 더더욱 또렷한 것은 왜 일까요
이스라엘 조차도 발로 차버린 이 이스라엘을 왜 이스라엘은 더더더 집착 할까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할 건 다 하고 다 이루고 갔어요
그 흔적이 몽둥이 매 심판의 흔적 아닙니까
요한 계시록 백날 역사속에서 끄집어내고 미래에 벌어질 사건을 백날 계산해 보세요 나오나

하나도 안 나옵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역사 속에서 왜 찾습니까
언약의 사람에게만 벌어지는 언약의 사건이기에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자도

아무리 교회가 한국의 땅을 십자가 네온 싸인으로 도배를 해도
그 속에서는 하나도 단 하나도 안 이루어지고

이미 다 이루었다 만이 알아서 다 이루심으로 

주님의 눈물 속에서 이루시지
인간의 눈에 포착이 되게끔 이루시지는 않습니다

독수리 비유해석을 통해서
역사와 무관하게 주님은 다 일을 다 깔끔히 처리하심으로써 다 이루셔서 데리고 갈 뿐
우리는 그가 지나간 빈자리의 흔적만을 바라볼 뿐
내 쪽으로 끌어당길수는 없는 겁니다

자가용이 흙탕물 튀기면서 물에 젖은 바퀴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지
차를 멈춰 세워서 잠시만요 조사좀 할께요 라고
앞으로만 가는 보좌를 멈춰서 조사해서 믿을만 해서 믿는게 단 하나도 없는
도리어 쾅 하고 충돌사고만을 당한 자만이
알 뿐입니다

그런 꽝 하고 언약하고 충돌해서 박은 자기 차가 다 찌끄러진
이스라엘 국가가 해체 당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쫄딱 망한 것이 축복으로써
이거 하나 건진 겁니다

첫사랑

이 첫사랑에 꽝 하고 박살이 난 처음자리만이 아는 겁니다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을 말이죠

이거 하나 때문에
국가 나라 하나를 해체해서라도 쫄딱 망해서
바벨론 포로 되게 만드시는 열심을 나타내심으로써

이스라엘 하나는 끝까지 사랑하시는 겁니다
물론 이 이스라엘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아닌
존재도 아닌
기능으로써 말이죠

언약의 백성 말이죠
이 약속을 끝까지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걸어서라도
너를 반드시 지옥 보내고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을 곁에 두게 하셨는데
우리는 거꾸로 해석을 해서
노아도 수수께끼고
다니엘도 수수께기이고
욥도 수수께기인데
이 독수리 시선으로써 우리를 죽은자 취급해서
심판을 날리는 자 인데

왜 내 구원에 방해되는 짓만 하고 심판만 날리느냐
왜 내 구원을 안 이루어 주느냐 라고
나온다 라는 자체가

이미 망한 자 이고

내 구원을 날려버리는 이 심판만이 이 징계만이 진짜 변호사 이다 라고
주님 쪽에서 손수 마련하신 화목제물만이
이 주님의 눈물만을 바라보면서
긍휼을 바라는 자로 만드시는

이 십자가의 지혜가

우리를 두 패로

강퍅한 저 애굽왕과 바벨론이냐
아니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님의 눈물을 보는 자 이냐 로

두 언약으로 나누심으로써 약속을 성사시키시는 겁니다

아니 이미 다 이루었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다 이루심의 완료의 증상물로써

우리는 두 패로 갈라지게 되는 겁니다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이 낳은 약속의 자녀와

땅의 계집종이 낳은 자로써 말이죠

이 약속을 그대로 밀어붙이시는 방식이 오늘 나오는 독수리 수수께끼로써의 해석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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