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 무할례시에 믿음의 자취대로 된 약속의 후사 (롬 4, 8-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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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대로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 (롬 4, 8-14)


일을 아니할지라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아브라함(주의 이름을 구원하기) (롬 4, 1- 8)
로마서 2022 2023. 2. 3. 14:31
22-020 일을 아니할지라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아브라함(주의 이름 곧 하나님 형상을 구원하기) (롬 4, 1- 8)

〈로마서 4, 8-1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4쪽, 찬송가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21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찬송가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1.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2.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네 슬픔이 없어지리 
   네 이웃을 늘 사랑하여 너 받은 것 거져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3. 주 예수를 친구로 삼아 늘 네 옆에 모시어라 
   그 영원한 생명 샘물에 네 마른 목 축이어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4.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 예수를 찾는 이 앞에 참 밝은 빛 비추어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로마서 4, 8-1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4쪽〉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10)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찬송가 214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1.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 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 볼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2. 우리를 깨끗게 한 피는 무궁한 생명의 물일세 
   생명을 구원한 친구들 하나님 찬양을 합시다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3. 주님의 깨끗한 보혈을 날마다 입으로 간증해 
   담대히 싸우며 나가세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4.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 앞에 찬양할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롬 4:8, 새번역)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
(롬 4:9, 새번역) 그러면 이러한 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롬 4:10, 새번역)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러한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기 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에 된 일이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된 일입니다.
(롬 4:11, 새번역) 아브라함이 할례라는 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롬 4:12, 새번역) 또 그는 할례를 받은 사람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할례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간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롬 4:13, 새번역)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롬 4:14, 새번역)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먼저 지난 번의 일을 하지 않았을 지라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는 행복하다 라는 내용에서
보편적 진리를 거스리는 구체적 보편성은

바로 이 일을 하지 않았다 라는 이 상식을 이 속담을 이 진리를 깨뜨린다 라고 했습니다

이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성령을 받아서 쓴 말씀이다 말이죠
말씀이 주체요 사도바울은 편지 곧 펜이자 잉크요 연필인 우체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길이다 말이죠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굽니까 노철수 누굽니꽈!!!!!!!!!!!!!!!!!!

손 깨끗한 자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자가 없어요
거룩한 자 곧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요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개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개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개역)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개역)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8, 개역)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9, 개역)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롬 3:30, 개역)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 3:3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다 치우쳐져 있다 라고 우리가 이미 시인했다 라고 했습니다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그럼 무할례가 더 나으뇨 결코 아니다 라는 거죠
막살기가
무율법이
은혜를 더 하고자 죄 짓기가
죄인 되기(의인 안되기) 가 더 나으뇨 결코 아니다는 거죠

며칠전 누구랑 통화를 했는데
죄라는 것을 자꾸 개인적인 행동으로 취급하더라 말이죠
네 물론 어쩔수 없는 인간의 한계치라서 어쩔수 없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죄라는 것은 권세 문제입니다 그래서 집단적이다 말이죠
개인 구원이 없듯이 개인 죄 짓기가 없어요
이것 또한 집단적입니다 정치적입니다
무인도에 딸랑 혼자 있으면 법이 없어요 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 거죠
둘 이상이 되어야 정치가 있어요

그러니 환경 핑계 댈수가 없다 라고 하지만
환경에 갇혀버린 이상 어쩔수가 없다 말이죠
그러니 권세적으로 집단적으로 한 사람이 잘못하면 전체가 다 벌받고 저주받고
한 사람이 잘 하면 전체가 복 받는 것이
율법을 준 취지 이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론 개인은 인정 안하거든요
그러나 집단은 시인을 해요 개인은 시인을 안하는데
여전히 의인은 있다 라고 해요
그러나 집단으로 가면 시인을 합니다
그 증거가 독수리를 보내면 비로소 시체 주검이라는 것을 시인하게 되니까 말이죠
사탄의 가시가 그래서 필요한 겁니다
안 그러면 목이 곧은 백성을 낮출수가 없어요
그 높은 자를 낮추고 그렇게 낮아진 그 낮은자를 예수 안에서 다시 높이시는
이 거룩, 하나님의 의,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수치를 가려주심만이
집단적으로 펼쳐지는 약속이다 라는 겁니다 후사 약속 기업 유업인 믿음입니다
허다한 구름같은 
하늘을 쳐다 보세 얼마나 구름이 빽빽이 있습니까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말이죠
그 허다한 믿음의 증인 목격자 이다 라는 거죠 

그 높은 자 목이 곧은 백성 중
거룩하다 라고 우기는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사람으로써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했구나 라는 이사야처럼
그 사도바울 유대인 백성 중 한 사람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
그 사도바울을

더더욱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벤트를 총감독까지 하고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있어서 최종적인 총괄 지휘자가 사도바울 아닙니까

그런 자가 과연 주의 산에 오를자 맞습니까
정반대로 가장 악날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은 죄인 중의 괴수 아닙니까

그랬던 자가 성령을 값없이 받아서
주의 산에 오르는 거룩한 자가 되어서
값없이
즉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일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그 주의 산에서 내려온 기쁜소식을 받아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길이 되었을때에

누가 도대체 이 사도바울을 말을 믿겠습니까

맞아요 이성으로 상식으로 안 됩니다
결국 같은 성령을 받으면 비로소 아 맞네 라고 된다 말이죠
즉 같은 죄인으로써
같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로써
값없이 말이죠

일한 것이 없이 말이죠

바로 이 행함의 노선이 아니요 ~~~~~~~ 이 대조로써 반드시 두 언약이 성립이 되어서
그 대조로써 행함의 노선이 아닌 믿음의 노선으로써

같은 아브라함이 이 믿음의 노선의 자취대로
그리고 다윗 또한 이 믿음의 노선의 자취대로

그리고 사도바울

이렇게 후사  유업 기업을 받는 자 즉 상속자

이 믿음의 자취대로만 상속을 받아서 이어져 내려왔다 라는 겁니다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함을 상속 받은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믿음을 상속 받았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의 후사

왜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믿음의 후사들이
세상의 후사

(롬 4:13, 개역)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행함을 보여주는 본 으로써 모범생으로써?

아니지요 믿음의 증인으로써 본을 보여주는 자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세상에 증거하는 증표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겁니다

즉 세상이라는 죽음의 세계에 증거하는 외침은 생명수 되신 사랑이지
이 십자가의 사랑을 외치는 것이 믿음이지

세상에게 행함을 외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은 다 해봤다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로 아이를 살려볼려고 다 해봤다 안해본줄 아느냐 다 해봤다
택도 안 먹혀 들더라 라는 겁니다
베드로 또한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장 지지겠습니다 같이 죽겠습니다 백날 캐도
이 지옥의 세 구덩이를 넘어설 수가 없더라 말이죠

도리어 진짜 사랑은
진짜 죽음 진짜 저주 진짜 절대심판을 타 넘어서 
주님 쪽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오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사랑이어야만

세상에 증거하는 믿음의 증인 즉 믿음 만이 물려줄 상속이요 기업이요 유업이다 라는 겁니다
다른 것을 외치는 것은 제발 죽지 말고 살아라 라는 소리가 아니라

왜 자꾸 죽을려고 하느냐처럼 생명수를 증거하는게 아니라 지옥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 되는 거다 말이죠

즉 세상의 후사

(속담 곧 보편적진리 라는 인간의 이성이자 논리이자 상식이
바로 세상이라는 성역이다 말이죠
그 성역을 깨뜨리고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후사 곧 믿음이라는 유업이다 말이죠 그 믿음을 상속받은 겁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워 버리듯이 그 눈에 보이는 성전을 사라지게 만들어야
그 사라진 성역 뒤에서 눈에 보였던 것이 사라짐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은 진짜 실상 곧 믿음의 주요 하나님의 형상이신
참성전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들의 성역
마치 군복무 라는 성역을 건드리듯이
유대인의 안식일을 건드리고
성전을 건드림으로써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마구 마구 건드려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그 뒤에 나오는 진짜 실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배후세력인 마귀와 그 마귀만을 상대로한 주의 이름 전쟁
인간의 자기 이름 뒤에 붙어서 활동했던 그 마귀를 그 성역을 드러내시는
찌르는 창이다 말이죠
그래서 꼬추를 짤라 버리는 겁니다
그 꼬추 짜른 그 자리에서
그 상처에서 이스라엘이 나욌듯이
진짜 실상인 믿음의 후사가 자손이 마구 마구 나오는 겁니다
꼬추 안 짤린 자리에서는 이스마엘만 나올 뿐이예요
자기가 누워서 침뱉기 하는 그 허구 그 의문의 반복
죽음도 못 통과하는 그 광야를 못 통과하는

그러니 인간들의 성역
빵구멍을 스스로 가린 그 수치막기인
그 남녀의 수치가리기인 그 성기를
죽은 태로 만들고
100세 넘어서 꼬추 짤라서 나온 후사
믿음으로써 약속을 이루는 겁니다

육의 행함으로는 절대로 못 이루도록
도리어 믿음의 후사를 핍받하는 이스마엘로써

이 두 언약을 충돌 시키시는 겁니다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으로써 말이죠

세상 그 성역 이라는 죽음을 이기는 것은
죽음 보다 강한
세상 보다 강한
독수리 바벨론 보다 강한 사랑 밖에 없음을 외치는 것이
믿음의 증인이다 라는 거죠

세상에 외칠 것은 딱 하나 뿐이다 라는 겁니다

주의 이름 곧 그리스도의 형상
새성전이신 십자가의 사랑 어린양의 희생죽음 뿐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행함으로 취급해 버리면
죽음도 지옥의 세 구멍도 못 넘어서는 것으로
세상에게
지옥에게 지옥을 넘어서 보라꼬 하는 소리인 거죠

후사 유업 기업 곧 자손 개념인 사랑이라는 정치는

바로 이 가짜 자손인 가짜 유업과 대조를 이루는 두 언약으로써
계십종 하갈의 자녀 이스마엘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의 자녀 이삭을 통해서
약속을 이 죽음 보다 강한 이 십자가의 피 용서의 사랑을 유업으로 받은 겁니다
이것만이 물려줄 유업 기업
하나님 자체를 기업으로써 물려주시겠다 라고
최초 처음으로 아브라함이 출발 한 겁니다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0, 개역)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일 한 것이 없는 자 라고 해 놓고서는

또 어떤 구절은 사도바울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라고 했다 말이죠

저 위의 일과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 라는 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의 시선에서는 하여튼 일만 하면 두 개 다 구지 구분 시킬 필요가 없다고 보겠지요
저렇게 복잡한 머리 아픈 것 보다 일만 해 두면 두 개 양쪽다 양다리 걸칠수 있으니까 말이죠

문제는 일을 안한 놈이 꼭 있다 보니 이거 어떻게 봐야 하냐 라는 거죠

문제는 두 개가 정반대의 내용 아니냐 말이죠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여기신 자의 복 곧 행복이다 와
(그리고 오늘 본문이 그 행복이 이러 이러 이렇게 나온거다 라고 합니다
즉 행함이라고는 일체 끼여들 틈이 없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
그 행복이 여기서 나왔다 라는 거죠
즉 믿음의 발 자취 대로 그 노선으로 말이죠
또 이자묵을까봐 잊어버릴까와 또 꼼꼼하게 행함이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라고 또 반복하면서
대조로 두 개의 차이를 더더더 벌리시면서 말이죠
즉 수시로 우리는 이 간극을 좁힐려고 하는 신체요 사망의 몸임을 극히 아시니까 말이죠
그래야 이 믿음이 수수께끼요 비유이지 천국의 열쇠이지
지나개나 다 풀어 해석해서 비밀의 열쇠로 다 문따고 들어오면
그게 무슨 비밀이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본문 조차도 단절의 수수께끼인 겁니다 비유 비밀인 거죠)

언제는 행함 아니다 일 하면 안된다 라고 케놓고서는
또 이제는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 라고 한다 말이죠
일 하지 않을꺼면 에라이 죽어라 라는 식이지요

우와 죽었뿌라 라고 과격함을 삥둘러 우회적으로 표현 한 겁니다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찌라처럼 말이죠

자 그러면 그 일이 똑같이 사람의 일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일 입니까
아니면 하나는 사람의 일 하나는 하나님의 일 각각 다른 일 입니까
곧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일? 입니까

또 있습니다 같은 의미로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앞으로 저주 받게 되니 예수를 사랑하라 라는 말이 아니라
시간의 여유를 준다 기회를 준다 라는 말이 아니라

시간 자체도 몸 자체고 시공간이 주님을 위해서 있으니
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이미 죽은 자 이다 이미 저주받은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즉 대조를 이루는 두 언약으로 치면
자기 몸 신체 중심의 시공간으로 보는 시선은
이미 죽은 자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 죽어라] 라고 했을 때에
그 일이 내 몸이 하는 일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일이 내 몸에 들어오는 언약 곧 약속이 벌리시는 사건 입니까

약속이 주체가 되어서 그 약속의 대상물이 된 자가 바로 나 이다 라는 거죠

(살후 3:10, 개역)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 3:1, 개역)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살후 3:2, 개역)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살후 3:3, 개역)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4, 개역)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살후 3:5, 개역)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6, 개역)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7, 개역)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살후 3:8, 개역)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 3:9, 개역)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살후 3:10, 개역)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 3:11, 개역)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살후 3:12, 개역)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 3:13,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 3:14, 개역)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살후 3:15, 개역)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
(살후 3:16, 개역)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살후 3:17, 개역)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살후 3:18,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전체를 보니
얼마전에 언급한
세상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즉 독수리 바벨론에게 복종하라
왜? 그들이 옳아서? 아니지요
주님이 세운 사탄의 가시라써
나를 약하게 만들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라고 낮추시더라 말이죠
이 얼마나 모욕적인 구원 입니까 이게 실상입니다 믿음입니다
헛된 허구의 멋들어진 구원은 거짓된 것으로써 없는 겁니다
지옥의 세 구덩이를 통과를 못하는데 그거 말라꼬 추구하냐 말이죠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 개역)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고후 12:2, 개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개역)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4, 개역)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5, 개역)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고후 12:6, 개역)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고후 12:7, 개역)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8, 개역)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롬 13:1, 개역)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2, 개역)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3, 개역)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4, 개역)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5, 개역)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롬 13:6, 개역)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 개역)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세상 권세자들 곧 독수리가 나를 시체 주검 만드는 것에
사탄의 가시로 푹 찔러서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에
복종하라

왜? 그거 진짜 죽음이 아니니까
진짜 죽음인 실상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이 죽음이 나를 제대로 죽였다가 살리는
진짜저주요 절대심판이요 다시 살리는 절대거룩인 절대용서 절대 사랑이기 때문인
실상이다 라는 겁니다

허구와 실상을 두언약으로써 대립시킴으로써
비로소 약속을 이루시니까 말이죠

그러니 말하고자 하는 목적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역시나 보이는 것들이고
진짜 실상은 안 보이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말라 라는 겁니다

이 사랑만이 저런 허구 허상임을 밝혀내니까 말이죠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았다 라고 하니까 또 고레스를 믿는 유대인 교파가 생성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마치 짐바브웨 목사 40일 금식 따라하듯이
트럼프가 코로나 걸렸다 라고 충격먹어 죽은 어떤 인도인처럼 말이죠
얼마나 말도 안되는 허구 허상 입니까

그 허상의 내막을 들추어내고자
세상의 후사
세상이 얼마나 거짓된 허구임을 드러내고자

더더더 말도 안되는 더더더 부정의 부정으로써 후사 믿음의 후사들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꼭 디자이너들이 잉여의 세계란 미의 세계란 아름다움이 세계란
보이는 것을 안 보이도록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디자니어의 사명이다 라고 하던데
본인이 믄 소리인줄도 모르고 하는 거죠

그 디자이너는 사라질 마음이 추호도 없이
이런 멋들어진 말 멋있지 않니 라고 주장하는 식이니까 말이죠
유대인들의 탈무드 같아요

대구에서 한때 유명했던 것이 있는데
콩국 말고요 ㅋㅋㅋ
대구백화점에서 수십년 동안 가스펠을 주말마다 불렀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 시키자 라고 노래 가스펠을 불렀다 말이죠

그럼 세상에 던져진 후사 곧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변화 시킬때에
어떻게 하느냐

부수는 겁니다
멸망시키는 겁니다
종말을 확 끌어당기는 겁니다
불 지르는 겁니다

또 어떤 정신병자처럼 교회만 불지르고 다니는 놈이 10년 전 쯤에 생기기도 했지요
한국에서 말이죠

이렇게 무식하게 따라하는 놈이 막생겨요 막살줄 너는 모르지 나는 막살줄 알아 라꼬

문제는 사라지게 하는데는 누구나 다 할 줄 알아요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자살하듯이 막 사라지게 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나타낼수가 있느냐 라는 겁니다 그것도 죽음의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쳐서 나온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이 ]사랑의 빚]을 내어 놓을수 있냐 라는 겁니다

높은자 낮추는 것은 더 높은 권세가 있으면 되요 가능해요 그래서 다들 모세의 자리에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을 하는거 아니냐 말이죠
마귀의 세가지 시험 중 세 번째 정치 아닙니까

문제는 그 낮아진 자를 다시 높이는 신부의 자리에 누가 올리느냐 라는 겁니다
그 죽은자를 다시 살리는
잃어버린 자를 다시 되찾는
사라진 자를 다시 나타내는 것은 과연 할 수 있냐 말이죠
이 자유 이 막살기는 할 줄 모르면서
막살기 라는 행함으로 껍데기만 자유의 껍데기
경건의 껍데기
율법의 껍데기만 취하고 율법의 속 알맹이는 정작 본인이 내 뱉어버리는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누워서 침밷기를 하더라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그저 속임수 트릭만 배워거지고
누굴 속일려고 말이죠

교회 막 부수로 불 지르러 돌아다닌
그 사람에게는 교회가 가장 쉬운 장소였지
성역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범접할수 없는 장소이어야 한다 말이죠

군복무 의도적인 회피는 평생을 간첩 빨갱이 소리듣는
지만 그렇습니까? 온 가족이 다 그렇게 빨갱이로 몰리는
바로 그런 모든 사람들의 성역을 건드리고
사라지게 만드는 겁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귀결 되는 자신의 신체 몸이지만
그 신체를 유지시켜줄려고 믿음을 주고 있는 그 성역이 결국은 세상이다 말이죠
계시록의 짐승이다 말이죠
이 짐승과 종교 곧 정치가 만나는 거죠 음녀와 국가 라는 짐승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약속대로 믿음의 발자취 대로
믿음의 주 께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기도하는 덕택으로
우리는 마구 마구 성역을 건드리는 겁니다
죽음을 자꾸 건드려요 글쎄

마귀가 이 세가지는 인간들이 못 건드린다 라고 자신만만해서
욥을 이 세가리로 건드렸거든요

그런데 믿음은
사랑의 빚은 바로 이 죽음의 세 구덩이를 마구 마구 막 건드려요 이런 막사는 자유는 할 줄 모르면서 어딜 흉내는 내는지 원
너나 잘 하세요 죠 친절한 예수씨 께서 말이죠
그 다음 니 차례이다 라고 말이죠

도리어 사탄의 가시에 푹 막 마음대로 마구 마구 찔러대시는 겁니다 믿음의 주 예수님이 말이죠

그래서 최종적으로 귀결되는 너는 사라져 주라 제발
그 꼬추가 짤린 그 사라진 자리에서
믿음의 후사
이스라엘이
유업을 받은 자가 나오는 겁니다
창에 찔린 그 상처에서 그 공백에서
그 간극에서

잃어버린 자가 다시 되찾음을 당하는 겁니다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쳐서 예수님의 피 용서 곧 화목제물이라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이라는 선물로

믿음의 후사가 나온다 말이죠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말이죠 부서진 사라진 허리에서
약속의 자녀 이삭이 말이죠
이게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에게서 난 자녀 이다는 겁니다

유업으로
기업으로
상속받는 자녀

정치란 사랑이란 결국 자녀
아들 싸움
인자 싸움
장자 싸움 전쟁이 되는

열매로 나무를 아는 겁니다
이 안다 라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즉 자녀가 아닌 자는 다 망한 자 이미 망한 자 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두 언약 두 자녀를 언급하는 거죠

땅의 계집종 하갈의 자녀 이스마엘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의 자녀 이삭

누가

언약을
약속을

하나님 그 자체를 기업으로 유업을 상속받았냐

누가 화목제물을 유업으로 받았냐

이 유업 못 받으면
지옥을 통과 못하니
이미 저주 이미 죽은 거죠

부자야 부자야 불에 타지 않은 옷을 값없이 값주고 사라 돈주고 사라

왜? 지옥의 불인 이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이상
이미 지옥인데
너 부자 라는 이 부유함이 그 복됨이
지옥도 못 통과하는 주제에 그거 무슨 소용있느냐 라는 거죠

그러니 누가 꾀냐
지옥도 못 통과하는 것들로 누가 속이냐
이 십자가의 절대심판이 절대저주 절대죽음이 또렷히 보이거든
어딜 감히 지옥도 못 통과하는 것들로 자꾸 사기를 치느냐

그 대표적인 사기가 바로 행함이라는 인간의 숙제

곧 오늘 나오는 손 할례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또 무지 무지 중요한 것이 뭔고 하니
아 그럼 나 손 할례 안할래
나는 무할례로 할례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할래 라고 또 추구할럐 할럐 할럐 하면서
무정치를 무할례를 행하더라 말이죠

즉 이 말은 화로다 화로다 나는 사망의 몸 지옥의 몸임을 지적받지도 않고
무할례를 할래 할래 라고 무행함을 무자아를 행함으로써 또 역시나 행함으로써
지옥의 세 구멍을 통과치도 못하는 그 행함을 그 무행함을 행해서
또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또 속이고 또 자기를 자기가 꾀고 있더라 말이죠

그것 역시나 약속의 노선 믿음의 노선 언약의 노선이 아닌
행함의 노선으로써

여전히 십자가의 죽음 보다 강한 피 용서의 사랑의 노선을 안 쳐다보고

내 쪽에서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겠다
장 지지겠다
같이 죽겠다 라고 또 나오는 겁니다
그 의문을 또 반복해요 글쎄

그래서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은
이 의문에 같혔음을 깨달아라꼬
죄 아래 갇혔는데

자꾸 할 줄 안다 라고 우기니까
그 한 것은 행한 것은 반드시 지옥의 몸이라서
반드시 육의 자랑을 그것도 약자 못행한 사람과 대조해서 자랑하도록 되어 있는
지옥의 몸인 티를 팍팍 내도록 되어있는데
육에 취해서 악령에 취해서
본인은 거룩을 자랑하는 줄 착각하면서
누워서 자기 얼굴에 자기가 침 밷기를 하는
이 미끼를 덮썩 물더라 말이죠

아니 마귀 잡을려고 쳐 놓은 올무를 지가 왜 걸려드느냐 말이죠

이 선악과를 왜 먹냐 말이죠

마귀가 자기를 때려죽어도 악으로 여기겠냐 말이죠
그럼 울겠죠
상한심령이 되겠지요

마귀는 때려죽어도 자신이 지옥에 갈 죄인으로 안 본다 말이죠
자기는 때려죽어도 의인이요 건강한 자요 선한 자라고 봐야
그 육의 자랑 으로 인해

저 죄인 
저 인간 나부랭이 따위가
저 모지리 환자가

우리 천사들과 비교가 되냐 말이죠

저 제일 늦게 창조된 육일 째에 맨 끝에 창조된 인간(계시록 거룩측량 생각나죠)과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는 제일 미약하고 제익 수가 작기에 마치 기드온 군사 300명 뽑듯이
조금이라도 용감한 자 있으면 뺍니다 기드온처럼 가장 겁쟁이만 골라서 가장 두려워 떠는 자들로만 모아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겁니다)

(신 7:7,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대조를 해서
꿀리지 않겠다 라고 모세의 자리에 앉은거 아니냐 말이죠

율법을 쥐었다 라고 말이죠

(이스라엘을 가장 미약해서 선택했듯이
가장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공생애에 일방적인 편파 편애한 자들은 믿음 좋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정죄 당하는 믿음 없는 자들만 골라 골라서 믿음을 부어주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눈에 보이는 재산을 사라지게 만들어서
너의 눈에 눈꼽만치도 그 돈과 비교해서 가치와 비교해서
그 어떤 가치도 눈꼽만치도 가치 없는 저 가난한 자
죽은 자
눈에 비이지도 않는 저 가난한 자를 눈에 보이도록 가치있게 만들도록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보라
이 지옥 세 구덩이를 건너보라
근심하고 돌아서는 거죠 다시는 못 기웃거리도록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러니 저 부자청년처럼
도리어 믿음 좋은 사람이 될까봐 
일부러 보란 듯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먹보 술꾼 막사는 자로써 인자가 되시는 겁니다
막살기만 할 줄 알았지 인자는 때려죽어도 안해요 글쎄
가장 믿음 없는 자로 만드시고자 사탄의 가시를 푹 찌른 겁니다
혹시나 믿음 좋은 자 멋들어진 구원을 추구할까봐 시퍼서 
왜? 사람의 일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좋은 믿음을 가질려고 하는구나 왜? 높고자 말이죠
자기가 알아서 높아질려고 자기 의를 쌓고자 하나님께 열심이다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일 곧 하나님의 일은 바로 그런 높은자를 낮추시고자
믿음 탈탈탈 다 털어버리심으로써 아무것도 한 것이 없도록 만드신다 말이죠
오로지 예수님의 피 흘리신 공로로만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인간의 믿음은 죽음 세 구덩이 아니 한 구덩이도 안되는 판국에
세 구덩이씩이나 절대죽음으로 몰아가버리시니 원 할 말 다 한 거죠)

그래 그래 율법을 쥐도록 주님이 허락하신냥
마치 욥기에 나오는 마귀에게
그레 그래 생명 빼고 나머지 다 니 마음대로 하라 라고

마귀가 깨달은 보편적진리 곧 속담 상식이 나오는데
돈 없고
건강 없고
자녀 곧 후사가 없으면 반드시 하나님을 원망한다 라는
이 마귀의 깊은 내막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이 지옥 세 구덩이를 거쳐서 나온 것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거쳐서 나온 복음 기쁜소식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회개? 뭘 해도 사망의 몸이니까

누가 저 마귀의 세 지옥 구덩이를 넘어설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 보다 나을 수 있겠냐 말이죠

없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요

다 죽여놓고서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반전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 남겨둔 한 씨가

다 불태워 다 죽였는데
어라 진짜 하나님의 형상이신 주의 이름은 안 타더라 말이죠
광야를 통과했거든요
광야교회는 이 주의 이름
이 그리스도의 형상 덕분에 수치를 가리움을 당했거든요
누가 말 마까나 통장 마이너스 통장에 계좌 입금 당해버렸어요
분명 나는 빈통장에 없는 자 인데
주 안에서는 44조의 피 값이
말이 그렇지 44조 밖에 안되겠습니까?
그 44조에 7 곱하기 70 그리고 다시 7 곱하기 70 승 으로써 무한대로
우주 끝까지 확장 되는
이 사랑의 빚을 받았거든요

이것이 믿음의 후사입니다

이 믿음의 자취대로 노선으로써
예수님 자기 자신을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을 입금당함을 당해버렸다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20억은 명함도 못 내미는 뻔데기 앞의 주름 몇가닥
즉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취급 당하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 연변에서는 일 했다 취급 당할려며는
44조 일만달란트 곱하기 7에 70승이 되어야 한다 말이죠

그래야 지옥의 세 구덩이
죽음의 세 구덩이를
넘어섰다 라고 말 할수 있는 정도가 되지

어딜 되도 않는 육의 자랑을 자랑이랍시고 내미느냐 말이죠
도리어 부끄 부끄러워서 입도 못 띠는 것을

자랑이랍시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고
얼마나 부자청년이 철딱서니가 없냐 말이죠

젊은 청년이 그런 인식을 가졌다 라는 것은
주변에서 그렇게 부추긴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개인 죄가 아닌
집단적인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가
죄 아래 갇힌
주검 시체 무덤의 시스템인데
뭐 율법 지켰다 고라 고라 고라
그래 그래 전재산 가난한 자 나누어서 너처럼 부자청년으로 만들고
생명을 부어줘봐 ~~~~~~

못 하는 거죠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치지도 넘지도 않은 가짜사랑을 가짜 율법지킴을
도리어 똥덩어리 배설물을 들이내민 겁니다

주님이 이 세 구덩이를 이기시고 외친 천국소식
곧 후사요
기업이요

예수님 그 자체 라는 유업이다 라고 주실때에

회개하는 자 우는 자
왜? 나는 사망의 몸이기에
생명만이 필요할 뿐이기에 말이죠

그런데 아무도 우는 자가 없고
아무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에게 와도
잃어버린 자가 없는 겁니다
처음자리 이스라엘이 없으니
첫사랑 값없이 일한 것이 없는 자에게 주는 믿음을 유업으로 받고파 회개하는 자가 없어요

이 유업을 받지 않은 자는 지옥 못 통과 하는 거죠
광야를 못 통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와 같은 운명이다 라는 거죠

왜? 한 몸이니까
원수 된 것을
둘로 나누어진 것을

막힌 담
경계선을 허물어 버려서
한 몸으로
하나로 만들어 버렸거든요

그가 가면 나도 따라가는 경계선이 없어요
개인 구원은 도리어 경계선을 무지 무지 그어요
성화론자들이 마치 결백증 환자처럼 마구 마구 경계선을 긋더라 말이죠
물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깔마춤하고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 떨어지면 바로 청소하고
본인도 미쳐 죽어요 그런 자기 자신이 싫어서 말이죠
그러나 견디지 못하는 지옥의 몸이니
계속 해서 지옥이 시체가 스멀 스멀 올라와요
자기가 시체인데
떨어져 나간 사마리아인이 더 더럽다 라고 남의 눈의 티를 보고
자기 눈의 들보 그것도 특특특 특대 대들보도 못 보는 겁니다

본다 사라질 것을 의미두고 곧 자기자신이지요
나타날 것을 무시하더라 말이죠 곧 오늘 나오는 믿음의 자취 곧 후사입니다 약속을 무시해요

하나된 같은 운명으로써

십자가의 고통만 함께 고난만 함께 같이 한 몸으로써 당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원수를 사랑한 그 사랑의 마음씨
새마음 사랑이 철철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흘러 넘치듯이 나오는
사랑까지 나오는 그 운명까지 다 같은 마음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 동안 내가 안보인다 라고 사라졌다 라고 그 처음자리에 대한 첫사랑을
사라졌다고 안 보인다 라고 무시했던 그 마음. 그 새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타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아무리 봐도 근처도 못 가는 택도 없는 모습인 거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성령을 말이죠

어라 나도 모르게 나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와서 그런 행동을 우발적 하는 겁니다
그래 다음에 꼭 나도 이렇게 해야지 라고 포착해도
소용이 없어요 포착 안됩니다
도리어 사명에 은사에 포착 당해서 나옵니다
존재가 아닌 기능적으로
나는 추호도 저 원수같은 자에게 하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막 하더라 말이죠 막 막

말릴수가 없어요

그 기능 그 은사에 눈 녹듯이 와르를 무너지는 겁니다

우연히 나왔을때에
육의 자랑이 나오는게 아니라
도리어 웁니다

백날 따져봐도 나에게서는 안 나오는 낮설기 짝이 없는 기능이기에
나에게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너무 낯설어서 말이죠

자랑은커녕 사탄의 가시처럼 풀 찔리는 겁니다
머리에 숯불을 얹은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라서 빨개져서
부끄 부끄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내가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를 받았구나 라고
회개하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사라지게
삭제 시키는 이 심판의 제대로 된 절대사랑만이
이 십자가의 죽으심만이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말이죠

절대로 나에게서 나올수 없는
오죽하면 얼마나 나오지 않는 지옥의 몸이였으면 성령을 통해서
그것도 아주 아주 우연히 그것도 그것도 딱 딸랑 한명에게 겨우 겨우 사랑을 베푸는
내일은 장담할 수 없는 오늘의 수고 오늘에 족할 정도로
그 선물로써 우연히 나오는 사랑 앞에서
도리어 자기자신이 무너지는 겁니다 자기자신이

사도바울 본인이 도리어 복음을 외쳐놓고서
그 복음 앞에서 자기가 믿어야 할 판국으로써
매일 매일 무너지듯이 말이죠

매일 매일 퍼부어지는 용서를 누리는 겁니다 
이 새 것을 말이죠

그런 취지로써 오늘 본문을 언급할때에
행함이 끼여들 틈이 없어요

그러니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죽은 그 상황에서 나온 이삭으로 인해서 사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지고 삭제된 100세가 넘은 꼬추
남자의 자존심이 다 무너진 그 상황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이
인자가
누구 누구의 아들
내 아들은 이스마엘 뿐이고
이삭 도대체 넌 누구니

주여 도대체 누구십니까
인자
곧 수수께끼

사람인 듯 사람아닌 사람 같은
하나님 인 듯 하나님 아닌 하나님 같은 인자 ~~~~~~~

후사 곧 누구 누구의 아들

후사를 통해서 믿음에 접붙임 당하는 겁니다

즉 약속의 자녀 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이 실패를 한 덕분에
이방인에게로 넘어온 거죠
성공할려고 하지 마세요
성공할려다가 이스라엘이 실패 했으니까

그냥 양보하세요

그 유명한 광고 문구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처럼

너가 숙제 하지 마세요
예수님에게 숙제를 양보하세요처럼 말이죠

행하지 마세요
그냥 믿으세요처럼 믿음에게 양보하세요

그래야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겁니다

세상을 흔드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니까 말이죠

줄리 계좌 입금 당하듯이 말이죠
44조 일만달란트에 7에 70승 입금 당했음을 믿으세요 

당하는 겁니다
주의 섬기심에 섬김 당하는 겁니다
피 흘리셔서 죄 값을 대신 치르심을 당하는 겁니다

당한 자 만이 이 믿음을 세상이 견디지 못하게 증거하는 겁니다
오죽 좋았으면 말이죠

아니 도대체 누가 내 통장에 입금해 버렸냐 말이죠
이 빈 통장 마이너스 통장
이 사망의 몸에
누가 도대체 생명수를 부어서 흘러 흘러 넘치도록
감당이 불감당일수록
계산기가 고장이 나버리더라 말이죠
셀수가 없어요 셀 수가

다 죽어가는 우상의 몸에 누가 생명을 불어넣어버렸느냐 라고

믿음을 당해 버린 첫 번째 타자가 믿음의 조상이다 라는 겁니다

죽은 그 자리에서 말이죠
100세 넘어서 말이죠

도리어 살아있을때에는 아무리 행해도 믿음이 안 나옵니다
이스마엘만 나와요

후사
유업 기업이 안 됩니다

믿음을 물려줘야 하는데
행함이 그 의문의 반복이 나와본들 지옥도 죽음도 못 통과하는데

그거 유업으로 기업으로 물려줘본들 다 안개 일 뿐입니다
모래 위에 짓는 집입니다
창수가 나고 홍수죠
바람이 불고
지진이 나면 언제 있기는 있었냐 짓기는 지었었냐 라고 할 정도로 와르르 무너져 없어져 
사라져 버린 겁니다

튀르키에에서 때려죽어도 건축 허가를 내지 않았던 도시는 한 건물도 무너지지 않았더라 말이죠
건축할 때 얼마나 비리가 많냐 말이죠
아무리 돈을 찔러 넣어주어도 안 받겠다 라고
때려죽어도 건축 허가를 안 내어주니
친척들까지 제발 해 주라 라고 해도 안되는 겁니다

그렇게 욕 먹던 시장을
얼마나 감사해 할까요

우리 예수님을 우리는 얼마나 욕을 해 댔습니까
안식일 어긴다 라고
성전을 무너뜨리는 놈이라꼬
성역을 건드리는
바알세불 걸린 대 마왕이라고
얼마나 욕을 해 댔냐 말이죠

계시록의 24 장로 또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친 장로들이였다 말이죠

그런데 지옥의 세 구멍
지진 강도 8에 가까운 다 죽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제는 너무 너무 감사해서
고맙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겁니다

다들 죽어 나갈때에
하나도 무너지지 않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였으니 말이죠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은 자는 저주 받아서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고
지진이 나서 다 죽은 겁니다

그 절대지진 속에서 왠 은혜인지 살려주시니
안 사랑 하고는 못 배길꺼 아니겠습니까

이 믿음의 자취를 따른 (이삭의 노선, 곧 행함의 노선이 아닌 이스마엘의 노선이 아닌)
실상을 또렷함을 물려줄려면
후사가 되게 할려면

믿음을 당할려면

아브라함이 죽은 그 자리에서

상처난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나왔듯이 말이죠

후사가 나옵니다
약속의 자녀 이삭이 나타나는 겁니다

사라진 아브라함 속에서 이삭이 나타나듯이
그것을 다시 이삭이 희생제물 죽음으로써 아버지 아브라함이 살 듯이

주께서 내 주께
아들 예수님이 사라짐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비로소 나타나는 겁니다
비로소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여호와가 누구심을 아는 겁니다
다른 길로는 없습니다
열매로만 인자 라는 수수께끼로만 비로소 창조주를 아는 겁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창조주를 알 턱이 없어요
주여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라는 첫사랑을
처음자리에서 알 듯이 말이죠
잃어버린 자리
삭제 당한 자리
사라진 자리
사망의 몸이였는데 누가 나의 사망을 삭제 시켰지
목마른 내 영혼인데 누가 나의 목마름을 이 수치를 이 죄악을 삭제시켰지
누가 우상조각가 아브람을 삭제 시켜 아브라함을 나타나게 했지 라고 말이죠

가장 흔들리는 갈대였던 베드로를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게 하셨자 라고 말이죠

이것만이 세상에 증거할 약속이다 말이죠

세상에 외칠 유일한 기쁜소식
복된
행복한

소리 ~~~~~~~~~~~~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기쁨이 없어요
즉 다른 말로 세상은 사망은 허구 허상은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믿음을 가장 듣기 싫은 나쁜소식인 셈입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의 복음 외에는

다 죽음은
다 허구인 안개요 허상이요 헛된
존재의 함성 징징거림 일 뿐입니다
왜 내 말 안 들어주냐 왜 날 안 믿어주냐 라는 징징거리는 목사들의 징징거림처럼 말이죠
돈 주면 뚝 그칩니다 신기해요 글쎄
돈 뿌리 치는 놈을 못 봤어요

다른 소리는 없어요
다른 복음은 없어요

이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는 기쁜소식입니다(즉 사람은 세상처럼 무지 싫어하는 소식 나쁜소식인 겁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쁜소식 

곧 이 행복에 대한 사도바울이 외치는(저들에게는 행복은커녕 불행한 사탄의 가시 찔린게 뭐가 행복하냐 라고 비웃은 십자가의 피 용서 이다 말이죠 얼마나 모욕적으로 들리겠냐 말이죠)

이 믿음을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비로소 그 점잖은 광명한 천사가 난리치면서 본색을 드러내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노선대로 자취로써

믿음의 후사
약속의 자녀를 세상에 내 던지고 있습니다

마른 뼈로 새로 만드신 하나님의 군대 새이스라엘로써 말이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말이죠

(요 3:13,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개역)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개역)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개역)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개역)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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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싱의 후사, 세상은 우리 밥이다 아니다 우리는 세상의 메뚜기 이다

세상이라는 속담(상식)을 깨뜨리기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총량의 법칙 마저도 너끈히 넘어서버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불안이다
불안에서 죽음 아래에서 나온 보평적 진리인 속담은 상식은 정답이 될 수 없다
비밀을 푸는 천국의 열쇠가 안 된다
이 죽음 이 불안을 깨뜨리는 것만이
행복이다 곧 잔칫집(성역)을 무너뜨리는 주의 이름 곧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다윗이 말한 행복은 이 지옥의 세 구덩이를 넘어서 왔다

(민 13:23, 개역)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민 13:24, 개역)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민 13:25, 개역)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민 13:26, 개역)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민 13:27, 개역)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젓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민 13:28, 개역)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민 13:29, 개역)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민 13:30, 개역)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민 13:31, 개역)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민 13:32, 개역)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민 13:33, 개역)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세상의 후사
곧 세상을 주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상속받은 거죠
건물주는 이 상속에 근처도 못 옵니다
온 세상을 다 주셨다 라는 거죠

과연 세상이라는 독수리 사탄의 가시가 우리의 밥 입니까
아니면 우리는 세상이 보는 메뚜기 도리어 밥 입니까
(행함의 세계에서는 천년 만년 억년이 걸려도 택도 없는 소리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에서는 이미 다 이룬채로 그 결과물을 이미 누림을 당하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무할례시에 그것도 율법을 지킨몸이 아닌 그건 사망의 몸이고
믿음을 선물로 주신 믿음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그리스도와 한몸으로 인치심을 당한 몸으로써 말이죠
그 증거가 바로 나입니다 내가 그 증거물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내가
예수님을 싫어하던 내가
예수님을 외치고 증거하고 있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숨김수가 없으니
그런 내가 곧 야곱의 허리를 부서뜨려서 그 간극에서 나온 이스라엘로써의 내가
너무 너무 낯설기 짝이 없는 겁니다
나는 분명 예수를 싫어하는데 내 안에 예수의 영이 들어온 때 부터는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온 몸에 온 시간에 도배를 하고 있더라 말이죠
이 간극을 메울 길이 없어요 더더더 벌어질 뿐인 겁니다
낯설기 짝이 없어요 두 자아가 있는 다중인격 같다 말이죠
서로의 소욕을 마구 마구 거슬리는 겁니다
이 수고가 오늘로 족하도록 성령의 놀라운 탄식의 사건이 매일 매일 벌어지는
졸지에 성령의 전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모든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성령의 전 말이죠
행함의 세계에서 빼낸 믿음의 증거물 결과물 십자가의 피로 씻김당한 자로
십자가에서 태어난 잉여물 말이죠 그러니 성령을 받으면 이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를 증거하기 바쁩니다)

보편적진리(속담,상식,윤리도덕,법)을 깨뜨리는 더더더 간극을 벌리는
간극 천원짜리 변호사 생각나지요
빈 공백의 박스를 가지고 와서
증거
증표 (할례의 증표)를 채워보세요 라고 더더더 간극을 더 벌리는 목적으로싸
빈박스를 가지고 옵니다

증표란 믿음의 증거란

보이는 것을 안 보이도록 불태워 버리고
성역인 성전을 불태우고자 마구 마구 건드립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요
네 맞아요 올무처럼 미끼처럼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요

아이고 그것도 미끼가 라고
더더더 이스라엘 곧 언약의 증표가 있는
믿음의 후손
언약의 후사들을 미끼로 건드리라고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 깨작 깨작 신경을 건드리는 거죠
속을 박박 긁어댑니다

세상이 믿음의 자녀의 밥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메뚜기가 되는지
보이는 것으로는 의미 없어요
할례도 아무것도 아니고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시선 곧 때의 시선 모든 시공간응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이니
예수님 중심입니다 구약이 시온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듯이
이 성령이라는 아직 때가 안되었는데 비로소 때가 되어서 준 선물
믿음으로 태어난 자들 성령으로 나타난 자들 곧 약속의 후사들이

세상을 불지르러 돌아다니는 겁니다
정작 세상이 밥이기는커녕
도리어 세상이 우리를 메뚜기처럼 막 잡아먹었는데 목베인 영혼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시선에서는 다 이루었다를 누리는 증상물로 나타나는 것이더라 말이죠

아니 아예 잡수세요 라고 포로만들어 시체 만들어서
바벨론 독수리 멋잇감으로 이스라엘을 줬는데

옳타구나 마구 마구 찢어먹었는데
이제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는 역사와 공간에서는 이제야 다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사라진 시점에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언약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믿음이 튀어나와요 글쎄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냐 말이죠
잃어버린 자가 어떻게 다시 되찾느냐 말이죠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한 므나
심심하면 잃어버렸다 라는 수수께끼는 내시는 겁니다 글쎄
수수께끼 정답은 그 잃어버리게 하신
찢으신 그 분이 되찾고 다시 싸매는
상처는 사라짐은 그 찌른 짤라낸 삭제시킨 그 심판의 칼에 의해서만

(히 4:12,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풍랑 보다 더 강한 좌우의 날선 검인 이 임마누엘 아기
인자로써만 다시 되찾을 뿐이다 치유할 뿐이다는 겁니다
포로잡혀갔는데 새성전인 인자를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광야 광야3일길 어린양의 희생죽음에서 만날 줄이야 ~~~~~~~~

악   뿔   사 ~~~~~

드디어 당신이 부르짖던 생명수가 그 죽음의 바다를 다 살리는 생명수로 넘쳐난다
2023년 전 세계를 물로 씻고 불로 태우고 성령으로 세례 마음판에 할례를 퍼붓는
전세계인을 경악하게한 초특급 미스테리 스릴러 

인자 and 새영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아서 ~~~~~~~ 개봉박두  (개콘 DJ변)

그것도 인간 아버지와 인간 아들의 약속 속담 보편적 다수의 진리인 민주주의 다수주의가 아니라
빨갱이 다수를 모으면 민주주의 되겠넹
참 민주주의 꼬라지 좋다 말이죠 무당이나 임금으로 세우고 말이죠
마귀를 세상은 세상 임금으로 세웠거든요

도리어 이스라엘이 사라진 그 자리에

이스라엘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맺은 언약이 튀어나오는데
(사실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어린아이 곧 이스라엘에게만 나타내시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시는)

(마 11:25, 현대어) [그렇습니다, 아버지;눅10:21-22]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여,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마 11:26, 현대어)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마 11:27, 현대어)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택한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마 11:28, 현대어) [내게로 와서 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 11:29, 현대어) 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ㄴ. 렘6:16)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 이스라엘이 사라진 자리에서 말이죠
이것이 처음자리에서만 나오는 첫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 곧 언약완성인 다 이루었다입니다

그러니 그 이스라엘이 혈통으로나 육으로나 사람의 뜻이 아닌
이스라엘 자체가 비밀덩어리인데 수수께끼인데
그 특급상품이 일반상품과 별 다를바 없는 시간이 지나면 다 썩고 부패하는 비리의 온상
회칠한 무덤인 껍데기 이스라엘이 아니라

인자로써의 이스라엘
즉 인자라는 비밀을 품은 곧 주의 이름안에 감추어진
사실은 주의 이름이 보물이고 그 보물을 담은 그릇인데
정작 보물에 감추어진 사라진 누락되는 비밀로써
수수께끼로써

세상을 상속 받은 겁니다
다 우리 밥입니다

이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 라는 거죠

곧 이스라엘은 사라짐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의 발자취를 따른
약속의 후사
약속의 자녀입니다

(PS 아브라함 보세요 그가 받은 유업 재산 기업 중에
돈 되는거 있던가요
눈에 보이는 거 있던가요

그딴 썩어질 것들은 하나도 상속 받은거 없어요 얼마나 다행입니까
썩지 않는 것을 상속 받았습니다

그것을 그 유업 그 이름을 가지고
세상을 불지르고 깨뜨리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얼마나 신났습니까

불놀이야 ~~~ 아 ~~~ 
두구 두구 둥 두구 두구 둥 짠 ~~~~~~~~~~~~

기타치는 사람 요 부분이 제일 신남 

자짠 잔잔라 잔잔라 잔자란 짜잔 
자짠 잔자라 잔자라 잔자라 짜잔 ~~~~

저녁 놀  이 지고 ~~~~~  자짠 잔자라 잔자라 잔자라 짜잔 ~~~~


불놀이야 ~~~~~~~~~~

이 주의 이름 전쟁을 
불 속에서 나옴을 당해서 
줄리 계좌 입금 당하듯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의로 여김을 당했듯이

이 주의 이름 전쟁의
원인 없는 결과로
그 증상으로 즐기며 누리는 삶 뿐인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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