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2 중심 성전의 영광과 레위지파의 위상(정녕 죽으리라를 대면하는 영광) (겔 48,13-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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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2 중심 성전의 영광과 레위지파 위상(정녕 죽으리라를 대면하는 영광) (겔 48,13-14)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중앙, 중심 만들기) (겔 48, 8-12)
에스겔 2019 2023. 4. 22. 18:13
19-141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중앙, 중심 만들기) (겔 48, 8-12)

〈에스겔 48,13-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9쪽, 찬송가 009장 거룩 거룩 거룩, 0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찬송가 009장 거룩 거룩 거룩〉

1.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여 
   참성전 예수 우리 주로다

2.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보좌 앞에 
   모든 성도 면류관을 벗어 드리네 
   천군 천사 모두 주께 굴복하니 
   영원히 전능하신 주로다

3.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빛난 영광 
   모든 성도 면류관을 벗어드리네 
   거룩하신 이가 주님 밖에 뉘뇨 
   온전히 전능하신 주로다

4.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천지 만물 모두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십자가 예수 우리 주로다.  -아멘


〈에스겔 48,13-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9쪽〉

(13)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레위 사람의 분깃을 주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각기 일만 척이라
(14)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찬송가 036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1.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2.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 잊을 죄인아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찬양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찬양

3. 이 지구 위에 거하는 온 지파 족속들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 찬양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 찬양

4. 주 믿는 성도 다 함께 주 앞에 엎드려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 찬양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 찬양


(겔 48:13, 현대어) 제사장들의 땅에서 북쪽에 위치한 이 레위 지파의 땅도 크기는 똑같아서 길이가 동서로 2만 5천 자요 폭은 남북으로 1만 자가 된다.
(겔 48:14, 현대어) 이 두 구역의 땅은 어느 부분도 떼어 팔거나 다른 땅과 바꿀 수 없다. 이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영토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구역을 떼어 봉헌한 것이기 때문에 마치 모든 수확물 중에서 첫 열매를 내게 바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땅 어느 한 귀퉁이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길 수 없다.


(겔 48:13, 현대인) 제사장의 땅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들은 길이 13.1킬로미터와 폭 5.3킬로미터의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겔 48:13, 쉬운) 제사장들의 땅 경계선을 따라서 레위 사람들에게도 땅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이는 12.5킬로미터이고 너비는 5킬로미터이다. 전체의 길이는 12.5킬로미터이고 전체의 너비는 5킬로미터이다.

(겔 48:8, 새번역) "유다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거룩하게 바쳐야 할 땅이다. 그 너비는 ㉠이만 오천 자이고, 그 길이는 다른 지파들의 몫과 같이 동쪽에서 서쪽까지이고, 그 한가운데 성소를 세워야 한다. / ㉠약 12킬로미터
(겔 48:9, 새번역) 너희가 주께 거룩하게 바쳐야 할 땅은, 길이가 이만 오천 자요, 너비가 ㉡만 자이다. / ㉡약 5킬로미터


먼저 단위 길이가 궁금해서 다른 번역을 올려봤습니다
번역본 마다 조금씩 길이가 차이가 납니다
즉 이 더러운 세상의 길이 단위로 즉 언어를 가지고서
주님은 당당하게 아니다 뻔뻔하게 이런 단어를 쎠야 우리의 반발심이 나오겠죠
그런 의미에서 더러운 레위인과 제사장을 가지고서 성전 중앙의 영광을 말하시는 겁니다
환자를 가지고 의사의 기능을 말하듯이 말이죠
그러나 기능이 아닌 인간은 없는 자기존재라는 우상에 안 맞다 라고
환자로써 죄인으로써 의사의 기능이 아닌 의사 존재와 합체 소통 동일시 개방할려고 하니
건강한 자 또는 의인으로써 의사를 말하고자 하니까
너희는 창조주가 여호와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알려주마 라고 물에 빠드려 죽이시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상대적인 너희가 믿고파 하는 하나님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다 라고 그 차이로써
구별 단절 차단으로 나오시는 겁니다 그 어떤 접촉점
그 어떤 해석불가로써 비밀 수수께끼로써 말이죠
그러니 저런 인간세상의 단위로써 완벽한 정확한 치수를
사람도 아닌 천사가 짓는 성전으로써 설명함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기호 단어 언어를 가지고서 증거되는 이 치수에
우리의 숫자 개념 몸 공간 날짜 안식 때 라는 역사를 찢으시겠다 라고 나오시는
그 주님을 담는 그릇으로써 우리 자체가 성전으로써 성령의 전으로써 작용케 하시는 겁니다

어머니 말 마따나 계시록의 소돔과 고모라 라는 장소 공간 몸 그 같은 공간에
예루살렘이라는 이미 불타 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거쳐서
불타지 않는 성전을 중심을 세우시듯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는 겁니다
이미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음녀로써 들통났음에도 말이죠

지혜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너가 라는 사랑하느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믿음은 뻔뻔함입니다
주님이 뻔뻔하게
당당하게가 아니라 뻔뻔하게
(미쁘심이란 든든함인데 왠지 간극을 좁히는 의미 같은 성화론자들이 이용해 먹기 좋다 말이죠
그래서 뻔뻔함 곧 간극을 좁혀서 점점점 주님과 더 가까이 한 몸을 이루고자 내 쪽에서 다가가는게 아니라
그건 지옥의 세 구덩이를 못 넘어서는 또 의문의 반복인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것이고
주님 쪽에서 지옥을 타 넘어서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을 타 넘어서
뻔뻔하게 간극을 더더더 벌려서 즉 7에 70번 용서 일만 달란트 16만년 일해도 못 갚는 빚 사랑의 빚
더더더 벌려서 지혜자의 질문에 답변케 만드시는 너희가 날 사랑한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막힌담을 다 헐어버려서 둘이 된 원수 된 몸을
장소를 공간 역사를 찢고 하나가 된 평화를 이루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인간이 간극 좁히고자 하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은 악마짓에 해당되고요
반대로 남을 7번 용서하는 자들에게서는 7에 70번을 용서하시는 탕자를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는 그 예수님을 악마로 볼 수 밖에 없는 간극을 더더더더더더더더 벌리시는 겁니다
이 더 라는 단어를 490번 정도로 써야 하는데 ㅋㅋㅋ
그래서 레위인은 깨끗한 성화론자들 같은 자를 세우시는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주님 자신이 친히 손수 직접 알려준 비밀을 몰라요
그래서 행함을 강조 합니다
레위인은 더러운 자를 가지고서 소위 인간 말종이지요
그래야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이 아니라 그가 대신 매 맞는 장자가 아니라
탕자 아버지 재산을 말아먹은 이 탕자가 왕같은 제사장에 딱 맞는
인간의 머리로는 믿음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죄인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식입니다
부자 청년이 이스라엘 관원 즉 선생 모범시민에서 더 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 선생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함께 주님은 이들 모범인들을 모조리 독사의 자식으로 들통내시는 겁니다
인간끼리에서는 안 통하는 예수님의 해석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비교하니 맞았어요
가장 존경받는 그들이 악마의 자식임을
대표성이니까 모든 인간이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죄인이였음이 십자가에 모든 육체 공간 몸 그리고 그 몸이 시간을 드려서 행하는 실천
그 때 시간 안식일 지키기를 모조리 다 날려버리는 간극을 더더더 벌리시는
이 번제외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를 주님은 이루시는 겁니다
아비아달 제사장 죽이고
사독 제사장을 가지고서 이 레위지파 분깃을 설명하시는 겁니다
맏아들 죽이고 탕자를 가지고서 중앙 성전을 걸어다니시는 의사 참성전 되신 예수님을 설명하시는 겁니다)
인간 손바닥을 기준으로 해서 나온 길이 단위라서 차이가 날 수 밖에요
과연 누구 신체 부분의 길이가 기준이 될까요?
그럼 천사? 천사는 우리가 똑같은 치수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네 날개도 있고 여섯 날개도 있고 그것도 존재는 아니고 기능이니 말이죠
그럼 인간의 손바닥으로 출발해서 나온 길이 단위이기 때문에
보통의 평균치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요?
천사들이 정확한 치수로써 재었다고 하는데 말이죠
도대체 누구 신체요 무슨 기준입니까
그것도 인간들의 더러운 신체로 가지고 온 치수 단위로써 설명하시는데 말이죠

또 소제목을 단 번역 중에 조금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데

성경 프로그램이 아닌 인터넷에 떠도는 텍스트 파일인
새번역성경에서

북쪽 지파들의 몫
48:1 “ 지파들의 이름은 이러하다. 북쪽 끝에서 헤틀론 길을 따라 르보 하맛과 하차르 에난까지, 다마스쿠스 영토를 북쪽으로 두고 하맛 옆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이르는 땅이 단을 위한 한몫이다.

주님의 몫
48:8 “ 유다의 경계에 잇닿아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따로 떼어 놓아야 하는 구역으로, 그 너비는 이만 오천 암마이고 길이는 다른 몫과 같이 동쪽에서 서쪽까지다. 그 한가운데에 성전이 자리 잡게 된다.

남쪽 지파들의 몫
48:23 “ 나머지 지파들의 몫은 이러하다.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벤야민을 위한 한몫이다.

예루살렘의 성문들
48:30 “ 도성의 출구는 이러하다. 도성 북쪽의 치수는 사천오백 암마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땅분배를 북쪽 지파 몫 그 다음 주님의 몫 그 다음 남쪽 지파 몫이라고 했다 말이죠

또 다른 번역은 현대어번역의 소제목은

겔48:01 [일곱 지파의 땅과 중앙 구역] 각 지파에게 돌아갈 땅은 다음과 같다. 맨 북쪽 지역의 땅은 단 지파의 모교이다. 그 지역은 북쪽의 경계선에 따라서 동서로 펼쳐진 부분이다.
겔48:02 그 다음에는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면서 땅을 똑같은 폭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구획하여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라.

겔48:21 [왕의 기업과 다섯 지파의 땅] 그 중앙의 정사각형으로 된 구역에서 동서로 인접된 두 구역은 왕의 차지가 된다. 곧 동쪽으로는 요단강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이며 북쪽의 유다 지파와 남쪽의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두 지역의 안에 든 땅이다.

겔48:30 [예루살렘 도성의 새 이름] 새로 세워질 그 도성은 한면의 길이가 4500자인 정사각형으로 그 총둘레는 1만 8천 자가 된다. 이 도성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대문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세 개씩 열두 대문이 있다. 북쪽에는 르우벤문, 유다문, 레위문이 있고 동쪽에는 요셉문, 베냐민문, 단문이 있고 남쪽에는 시므온문, 잇사갈문, 스불론문이 있고 서쪽에는 갓문, 아셀문, 납달리문이 있다. 앞으로 이 도성을 다시는 예루살렘이라고 부르지 않고 ㄱ)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ㄱ.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라는 뜻이다)


현대어번역은 북 쪽 일곱지파와 남쪽 다섯지파로 땅분배를 소제목으로 달았고
중앙은 양쪽에 다 걸쳐놓은 느낌입니다 소제목 에서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내용은 레위지파에 분배된 땅이라는 겁니다

그냥 보통의 속된 땅이 아니라
거룩한 땅이다 라고
(다음 주에서 이 속된 땅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니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땅인데
그 속에서 또 거룩한 땅
또 그 거룩한 땅 속에서 또 하나님의 동행하는 장소로써

거룩이 점점점 분절이 되면서 더 거룩 더더 거룩 더더더 거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뭐 어쨌다고 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마음에 중심에 두기 싫어하기 때문에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하나님 없다 라는 것이 우리 속내이기 때문에

저런 구분 뭐 구별 뭐 분절 백날 떠들어 대어 본들
그게 뭐 어쨋다고 라는 것이
우리의 본심입니다

꼬끼오 한 번이 아닌 왜 세 번이냐 말이죠
바로 우리 속의 지옥을 건드리시는 겁니다
그냥 거룩도 아닌 거룩 속의 거룩 또 그 속의 거룩 왜 따따따블이냐 말이죠

우리가 우리 중심으로만 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내 이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그거 건드리시는 겁니다
도장 도장끈 지팡이

도장과 지팡이는 이해 된다 말이죠
그런데 끈은 뭔데 구지 세 번을 억지로 갖추냐 말이죠

그 아무것도 아닌 이 무시꺼리가
무시꺼리 비웃음꺼리가 되는 믿음이

나의 공든탑을 내 중심의 내 우상을 무너뜨리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닭백숙으로 잡아먹을 그 닭이
내 평생의 우상을 와르르르 무너뜨리는 여리고성 무너뜨리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군대로 작용하는 거죠
네 맞아요 이스라엘 없잖아
예수 믿는 자 없잖아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요즘 세상에 예수 믿는자 어디 있노
교회 다니는 자들 다 장사 하는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야바위꾼들 뿐인데

없어요 네 맞아요 없는데
그 안 보이는 비존재가 오히려 더더더더 활발하게 또렷히 밝히 보이면서
활동하더라 말이죠
그 어중이 떠중이 중에 레위인이 지금 땅 분배를 받으면서
야 땅 생겼다 재산 분깃 생겼다가 아니라
오히려 더더더 간극을 벌리시는
그 죽음의 의미에 더더더 대면하게 되는 겁니다
어린양 잡는 것도 이제 습관화 되어서
화 인침 받아서 마음이 딱딱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는 자 없어요
이제 하나님의 죽음까지 대면해야 할 입장에 놓여진 겁니다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 다 죽이고
오로지 사독 제사장 계열로써 말이죠

그 사독 제사장이 번제와 제사를 잘 드리는 달인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인애와 자비를 말하는 성전의 기능
의사의 기능을 말하고자
환자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입니다 깨끗하 자가 아니라 더러운 우상숭배자를 멱살 잡아서
레위인의 기능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자아를 죽여서 그 처음자리로써 말이죠 첫사랑을 외쳐야 하기에
자아가 없으면 그거 이 세상에서는 좀비 취급 받아요 죄인 악마 취급 받아요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돈 없으면 악마 취급 받듯이 말이죠

아이고 그것도 저주 그것도 죽음 그것도 좀비가
마귀가 좀비 만들기 전에 더더더더 간극 벌려서
절대죽음을 대면하는 자로써 죄인 곧 레위인 만들어서
이 제사장의 기능을 주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몰라서 복종치 않아서 망하는
저 이방인 같이 지옥 가지 말라꼬 말이죠

자기 의를 세우고 쌓고 하나님께 열심일줄 알았지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을 다 죽여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니 이미 죽은 시체로써 좀비로써 살아가고 있는데 그 죽은 가지고서 산자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을 증거하신다 라는 거죠

아니 이미 우상숭배자 또는 좀비처럼 죽은 시체로 살다가 지옥가게 내버려 두시지 말이죠
인간은 어차피 가망 없잖아요
그것 또한 속임수입니다 한 쪽 다른 강도의 생각인 거죠 어차피 죽으면 다 지옥인데
뭐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그건 반칙 부조리 7에 70번 용서라는 모욕적인 구원이잖아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 실용주의 이게 성화론이다 말이죠

내가 믿어주면 하나님이 생기고, 성화를 지키면 하나님 구원해 주고 멋들어진 구원이지요
내가 안 믿어주면 하나님은 없는 기고, 성화 못하고 예수님 세 번 부인하면 지혜자 질문에 답변 못하고

내가 믿어주면 그러면 하나님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그것 또한 없는 겁니다
내 존재가 먼저 이기 때문이다 말이죠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뒤를 따르는 열조의 풍습 속담 
보편적 다수의 눈치를 의식하는 것이다 말이죠

바로 이런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는 이 사기가
이 사기치는 믿음이
오늘 나오는 이 거룩과 대비되어서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식으로싸

거룩을 위해서 상대적인 위치에 인간의 믿음인 사기치는 것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은 거룩을 어떻게 해석하는 고 하니
자기를 의롭게 만드는 거룩으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도 그런 이유로 믿는 겁니다

문제는 그런 자기님을 하나님이 만든적이 없기 때문에
거룩하게 만든다 쳐도 자기 또는 자아가 없어서 거룩하게 만들어줄수도 없다 라는 거죠

물론 나는 내가 있다 라고 하지만
주님은 어디 어디 허구 안개 허상 먼지 뿐인데 라고 무시해 버리시는 겁니다
배제입니다 누락입니다 제외 소외 단절 말이죠

누가요? 하나님이 말이죠
이런 하나님을 믿는 인간은 없습니다

모조리 다 없는 자아를 가지고 투사 투영 시켜서 자기가 조작한 하나님을 맹글어서
자기가 믿는 겁니다
이것읗 확증편향이라고 했지요
믿고픈 것만 믿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시인해 버린 바 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자 그럼 우리가 다 엉터리 이다 치자 너 말처럼 다 엉터리이면
무슨 기준으로 거룩이니 중심이니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뭐 있겟냐
우리가 다 엉터리 이기 때문에
아무리 거룩을 주어도
너 말처럼 우리가 엉터리 라서 그 거룩을 어차피 가짜로 볼 것인데 말이죠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접촉점이 없는 단절이다 라는 말이다 그죠

접촉점이 없는데 아무도 접촉할 수가 없으니
뭘 해도 다 엉터리 인데
아무리 기준을 즉 중심이 와도 
우리가 어차피 눈뜬 장님 소경이라서 어차피 못 알아 볼텐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어차피 실패할 텐데 
바로 그겁니다
아까전에는 성공을 자기 쪽에서 추구하고파서 하나님을 자기 쪽으로 끌어왔는데
그거 사기치는 것이다 라고 했고

이제는 어차피 복 안되고 성공 못하고 모조리 다 가짜믿음일 같으면
뭘 해도 저주 이다 라면
그 어떤 기준을 중심을 줘도 
오늘 본문처럼 거룩을 줘고 다 말짱 소용 없는 헛짓
헛되고 헛되고 다 헛된 모조리 다 헛짓 아니냐

네 맞습니다 맞고요

바로 그 헛짓이라는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이 벌리시겠다 라는 그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말려드는 식이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내 숙제가 다 엉터리 이다 라고 해서
주님의 손수 직접 하시는 숙제가 엉터리일 턱이 없습니다
내 엉터리면 주님이 엉터리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지 않으면
그 엉터리 잡고 계속 의문의 반복할 꺼다 말이죠

하나님 본인이 직접 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야말로 하나님 본인이 직접 하시는 일입니다
왜 사람의 일과 반대인가를 보여주시면서 말이죠

하나님의 일이 우리를 대상물로 삼는 것이
믿음이지

내가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 라고 대상물로 삼는 주체가 되는 식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안 할 인간이 없다 말이죠

바로 그 비언약을 재료로 삼아서 언약을
약속을
거룩을
하나님의 일을
상대적인 사람의 일
사탄의 일을 가지고서 그 차이로써
그 구별 구분 분별 그 차이로써 증거하시는
그 일을 보라 라는 겁니다

마음껏 막사시고 마음껏 실패하시고 마음껏 오독 하세요
뭐 방종 안하면 간극이 좁혀질줄 아십니까?
우리가 죄를 지어서 저주가 오는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으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그 사랑이 내가 주님을 사랑한 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자꾸 간극을 좁힐려고 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자기 의를 쌓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만 할 것이겠죠
그거 다 아시고 나오시는 하나님의 의
곧 앞 뒤 모순된 찢으셨으나 싸매어주시는 겁니다
그 높은자도 한 사람이고 그 낮추셔서 낮아진 자도 같은 한 사람입니다
죄를 유발케 하지 않으면 자기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교만인줄 모르는 겁니다

경건의 모양만 갖출 뿐이지 경건의 능력을 거부하는
안식일 지키는 자가 도리어 안식의 주인을 죽이게 되는
이 간극을 좁힐 재간이 인간 쪽에서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정의 부정
오히려 그 간극을 더더더 벌리시는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합니다
의사가 아닌 주제에 환자들 끼리 방종하지 말자 해 본들 의사는 그 속임수 그 환자들 말에 안 속습니다
십자가 라는 의사의 칼이 있는데 어딜 사기를 치냐 말이죠
그 또렷한 징계라는 칼이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골수 마음 다 찔러 쪼개는 이 말씀이 또렷히 움직이는 이상
간극을 좁히는게 아니라 상처를 더더더 벌리셔서
새것을 뽑아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 죄악에 뛰어드시는 분이 바로 의사 칼을 쥔
검을 쥔 의사
뭐 화평을 주러왔다구? 웃끼지마 검을 칼을 주러왔다 말이죠

부모나 자식이나 나 예수 의사 보다 더 사랑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치료 안한다 라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고칠수 없는 환자들끼리
진리가 뭐 어떻다는 둥 다 헛소리이다는 거죠

그래서 동원이 되는 것이 바로 레위인이다 라는 겁니다
즉 레위인은 제사장을 배출하는 지파이다는 겁니다

다른 지파는 제사장을 양성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이
그 제사장도 또 분절 또 구별 또 구분 갈라버리십니다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 다 죽여버리고
사독 제사장 계열을 성전 일에 종사케 하셨듯이 말이죠 솔로몬 때에 말이죠
그 이전에는 다윗 때에는

아직 다윗이 왕 위에 오르기 전에 
아 아니다 아직 이방나라의 왕제도가 들어오기 전에

엘리제사장을 죽여버리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거룩을 그 차이로써 증거하셨듯이 말이죠왕의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계열로 나눕니다
사울왕과 다윗왕
둘 다 죽으면 멈추느냐 아닙니다
사울왕을 아무리 심판해서 이스라엘 속에서 없애버려도 그 마음은 여전히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하고 있고 사울왕의 사고방식이 끝까지 갑니다 추숫날에서야 끝나겠지요
다윗도 이 사울왕과의 차이로써 나타내시는 주님의 일 하심만으로 드러나지
절대로 다윗 스스로의 숙제로 언약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두 패로 나누셨고요
선지자도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로 나누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봐서 그렇지
그 당시의 사람들은 거짓선지자를 추종했지
절대로 참 선지자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참선지자는 남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시로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 밖에 없습니다
그럼 오늘날은?
네 맞아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참선지자를 핍박 안하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늘 거짓선지자만 추종하도록 되어 있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거룩을 하나님의 의를 내 쪽으로 땡겨오는 해석이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거룩한 레위인과 제사장 이라는 거룩과 하나도 접촉점이 없는 의미가 되는 겁니다

아니 성화론자나 개혁주의자들이 말하는 거룩 곧 성화와 차원이 틀린
저들 바리새인이 말하는 거룩과 차이나는 그 반대의 거룩을 말하는 자가
심지어 오늘날에도 과연 있을까요?
이런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의미의 의를 그 거룩을 말하는 목사 있던가요?
없어요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또 목사에게 속습니다
그냥 아예 없다 라고 그냥 옜따 돈이나 받고 떨어져라 라고
거지에게 돈 던져 주는 식으로 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아주 우연히
간극을 좁히는 숙제 따위를 한 적도 없는데 우연히 만난
복음 증거자가 있다면
주님게 감사하세요 그 인간을 높이면 또 의문의 반복이 될테니
여전히 기대하지 마시고 우연이겠지 라고 하시면 됩니다
안그러면 또 섬겨야 하는 숙제를 또 하게 됩니다
섬기는자 세상에 없으니까 예수님만으로 족하시고
눈에 보이는 것에는 미련을 버리시고
그저 자기 가족이나 섬기시면 됩니다
그게 교회 아니고 뭐겠습니까?

자 그렇듯이
아니 소금이 짠 맛을 잃어버리고서 어떻게 썩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하겠냐 말이죠

이렇게
거룩이 누구를 죽여서 그 죽음 속에서 거룩을 보여주고 있는데 (레위 제사장 기능 성전 기능
간극을 점점점 벌리심)

한가하게 성화론으로 우리가 점점점 의인의 모습을 갖추자 라는 것이(간극을 좁히기)
얼마나 허구인 우상을 퍼트리고 있는 식이 아니냐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거룩은 바로 죽음을 통해서 증거되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레위인에게서 나는 제사장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과 달리

여호와의 거룩한 불을 직접 대면 독대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죽음을 대면하는 자가 레위지파에서 나오는 제사장 입니다

백이면 백 다 죽어나가는 식이다 말이죠
거룩의 기능과 안 맞기에 비거룩 하기에 말이죠

그래서 딸랑딸랑 방울을 흔들어서 죽었니 살았니 확인하고 시체를 끌어내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안 타 죽는 자들인데
대제사장이 죽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죄악이 있다는 것이고
고로 인해 저주가 임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대제사장 지 혼자만 깨끗하게 살며 된다가 아닙니다
딱 하루 대 속제일 이라는 일곱 절기 중에 하나의 날에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을 보시고 그 대표로써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얼굴과 대면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죽음과 대면 하는 겁니다

이건 이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대제사장은 누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왕들이 개판인데 백성들이 감추어 놓은 사정 하나 하나 말 하지 않는 이상 우찌 압니까
그러니 제사장은 그냥 난 죽었구나 하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셈이지요

살아나오면 휴 살았넹 기뻐하는게 아니라
여전히 주님의 죽음이 대신 펼쳐졌다 라는 것에서
왜 나는 안 죽지
말도 안돼 나는 죽어 마땅하데 라고
그 반대로 울어야 할 판국입니다
그 슬픔을 그 화로다 화로다 나는 사망의 몸이구나 라는 그 슬픔을
희락으로 확 바꾸는
그 거룩 그 하나님의 의 때문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새것을 말하는 자로써 세워지는 겁니다
네 맞아요 로마서 7장 끝 부분과 8장 처음 부분인
이 앞뒤 모순 되는
죄만 가져왔을 뿐인데
도리어 의로 덮어 씌우시는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느냐 나타낸다 라고 하는
이 앞뒤 모순된 죽었는데 살았고
찢으셨는데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해야 할 판국에 놓여졌음을
레위지파는 다른 지파에게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야말로 성전의 기능이지
하나님의 이름 곧 너희가 더럽힌 이름이라는 사건을 거쳐서
너희가 이제는 아무리 더렵힐려고 해도 더럽힐수가 없는
아껴둔 감춰둔 기념 이름의 기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그건 인간들의 하나님 형상 회복운동이고
아들의 형상
곧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라는 겁니다
인간이 하는 하나님형상회복이 아닌
예수님이 하시는 화목제물 되심
곧 하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거든요
즉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고 못 합니다
왜? 형상이 없어요
불에 들어가도 심팡과 저주 속에 들어가도 안 타죽는 형상이 없어요
하나님형상회복 운동 백날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를 부자와의 차이로써 언급하시는데
부자란 결국 성공한 자 즉 실패한 자가 아니다 라는 거죠
또 모든 사람이 인정한 축복 받은 자 즉 구원된 자로 본다 말이죠 하나님께 복받았응께
저주 받은 자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런 인간들의 속담 보편적진리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구체적 보편적진리
구체적이라는 실천하는 진리 이다는 거죠
그 행함이 있는 믿음이 뭔고 하니 부정의 부정이다는 겁니다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하나님의 행함
비오지 않기를 3년 반 동안 말이죠 간극을 점점점 더더더 벌리는 엘리야의 기도
얼마나 부정적입니까
그리고 정탐꾼을 숨겨진 여인이 아닌
거짓말로 정탐꾼을 숨긴 여자가 아니라 창녀 기생라합이라는 겁니다
거짓말 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가야 합니다
이거 인간들은 또 순하게 만들어서 하얀 거짓말 좋고 선한 의도의 거짓말 이라고 또 사기칠꺼 뻔하다 라는 것을 아시고
그런 간극 좁힐려는 행위 아시고
더더더 간극을 벌리는데 창녀 곧 기생이라고 했습니다
창녀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깨뜨려서 에수님의 더러운 발을 씻겼다 말이죠
그런데 이 여자를 자꾸 창녀 개념을 일부러 빼 버립니다

그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닌 것이 되지요
어디까지나 그 행함이 나도 할수 있는 가능성으로써
가능성과 기회로써 다가와야지 더더더 간극을 더 벌리는 
흉내 불가능
차단 단절의 의미에서의 거룩으로 증거해 버리면
목사들이 사기를 치면서 교회 일 좀 하라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언급하는 것이
그만 순 거짓임이 드러날꺼 아니냐 말이죠
그럼 이제 속일수가 없게 된다 말이죠

이 십자가 라는 부정적인 행함이 또렷히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언제든지 부를수 있는 가능성으로써의 이름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라고 하니까 지나 개나가 아니라
얼마나 부르는 것이 불가능 하면 다 짤라내고
임금님의 아들 혼인 잔치에 초청장 받은 자 다 짤라내고
거리에 만나는 족족 혼인잔치에  참여토록 하시겠습니까

그 정도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이 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누구든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누구든지와 정반대였다 라는 거죠

아니 누구든지 라메? ~~~~~~~~ 그러니 주님이 알려주시는 약속의 내용
언약의 정신에 관심 없다면 우리는 그저 외모로만 승부하는 식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을 썩는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 되는 거지요
율법이라는 올무에 걸려든 겁니다

그래서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죽음을 그 형상을 대면하고 독대하는 모습을 말이죠

저런 지나개나 누구든지가 왜 불타야 함을 말이죠
오히려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불 차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 타죽게 하시는 주님의 억수로 억수로 억수로 봐 주심이라는 긍휼을 보고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 우는 자들이
그야말로 지나개나 누구든지입니다
기뻐하라 스불론 땅 납달리 땅 개같은 이방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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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놀라서 다시 여호수아 땅 분배와 에스겔 땅분배를 살펴봤다 말이죠
이 스불론 땅 납달리 땅이 에브라힘과 므낫세 라는 요셉의 두 분깃에 속하더라 말이죠

이런 수수께끼를 누가 풀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단절입니다

어딜 주님께서 두 막대기로 나눈 것을 남유다 첫 번째 왕 르호보암이 지가 뭔데
합치게 할려고 하느냐 말이죠

예수님이 올때까지 그 간극을 계속해서 벌려져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바리새인처럼 사마리아 구역 삥 돌아가는 것이 간극을 벌리는 거냐
아니지요
그것 또한 간극을 좁힐려는 바리새인의 외식 겉모양 외 식 격식 외모 꾸미기인
중심을 예수님이 세워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죽음의 세 구덩이를 넘어서 오는 참성전을 세우겠다
곧 예수님 자기자신 말이죠

다들 아브라함처럼 다 피식 대학처럼 키키득 키키득 키득 키득 다들 비웃습니다

복음이라는 기쁜소식은 바로 이 비웃음 비아냥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그 말만 하지 않았다면
다들 비웃지 않았어요
그들 나름대로 다 진지하게 죄를 묻고 죄를 추궁 국문 심문하면서
다들 긴장하고 다들 진지한 가운데

갑자기 그 말 때문에 빵 하고 터져 버린 겁니다
안 웃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네 맞아요 그렇게 나와야 만 하는 것이 이삭이라는 누구 누구의 아들이어야 하듯이
인자는 그런 비웃음 빵 터지는
아니 불뱀에게 물렸는데
그 따위 말도 안되는
그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기만 하면 낫는다고?
장난하냐? 웃음이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진짜 즐거워서
아니지요 너무 너무 기가막힌 기가찬 소리를 하니까 말이죠
지금 심각하게 다 죽고 나만 남았다 라고 심각해 죽겠는데
7천명 남겨 놨다 라고 하시니까
이거 장난처럼 안 들리겠냐 말이죠

이 부정적인 행함의 믿음을 주님이 안 주시면
엘리야는 여전히 저 기준 저 모양 저 외모 저 경건의 껍데기 모양으로 계속 우길겁니다
그런데 엘이야가 다행히도 주님의 숙제 덕분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심 덕분에

이제 엘리야 본인도 저 말도 안되는 비웃음꺼리가 되는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자기 이름이 박살나고
자기이름을 박살낼 그 당사자가 바로 주님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 믿음의 새노래
언약정신
우리가 잊어버린 첫사랑을 처음자리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요나의 표적의 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자 이 이런 내용을 다 담아서 보여주는 자가
레위지파 제사장인 거죠
존재를 볼게 아니라
오늘날 목사는 아니지만
목사 라는 존재를 볼게 아니라
목사가 하는 기능
하는 일의 내용을 보고
이거랑 안 맞으면
그 목사 짤라내야 한다 말이죠
물론 그런 교회 없습니다
기대하지 마시고요 ㅋㅋㅋㅋ

자 그렇게 나는 패하고 그는 흥해야 한다 라는
그 언약 정신을 담은 기능인 레위지파 제사장처럼

나다나엘도 왕같은 제사장의 기능을 하고 있네요

아이고 아이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냐 말이죠
그 사람을 도리어 참이스라엘 이라고 했습니다

(요 1:47, 개역)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솔직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간사한 것 오히려 더 맞아요
간사 합니다 간사하기 짝이 없어요
그 간사함을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어떻게 다루십니까
미래 완료 미래 표절 종말을 확 끌어오니까
우리 나다나엘이 달라졌어요 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간사한 자가 말이죠 
간극을 좁힐려는 자가 아니고
간극을 더더더 벌릴려고 했던 자 이다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 야곱이 누굽니까 ~~~ 노철수 누굽니까?
사기꾼 아닙니까
오 그래 나다니엘 너가 바로 그 사기꾼이구나 라는 겁니다
그 간사한 놈이구나
바로 너를 간사함이 없는 사기꾼 이스라엘 야곱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부정의 부정

간사한 놈이 더더더 간사한 간극이 벌어지는 자로써 참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믿음 없는 믿음처럼
교회 없는 교회처럼
이스라엘 없는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메타 라는 표현이 초월적인 또는 넘어서다 라는 뜻인데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이스라엘을 넘어서는 이스라엘 이구나
참 이라고 참이스라엘 이구나 라고
일방적으로 뒤집어 씌워버리는 겁니다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부조리 입니까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이 들으면
예수님 안 죽이고 베기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인간의 믿음 곧 살인의지만 잔뜩 배웠지
중심을 하루 만데 나다나엘에게 성전을 그 중심에 박는
이스라엘 만들기를 하시는 주님을 배워본적이 없는 겁니다

그 사기꾼을 가지고
사기꾼이 말하는 나사렛을 가지고서
전쟁을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인자전쟁 말이죠
참이스라엘괴
참성전을
3일 만에 짓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앉은뱅이여
흑암의 백성인 지옥의 자식들 우상숭배자들아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그 우상 그 사망 그 어두운 흑암의 저주 백날 추구해 봐라
내가 빛을 비추면 그거 다 죽었던 바다가 다 살 듯이
단 하루 만에 말이죠
어두움이 사망이 썩 물렀거라 가 되는
그 증인이 바로 너가 나다나엘 너가 되게 만들어 버리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중심 세우기
이스라엘 세우기
성전 중앙 만들기 하시겠다 라고 말이죠

아니 실천의 대가들인 자들도 아직 46년 동안 성전을 다 완공 못하고 있는데
뭐 3일 만에
뭐 단번에 단 하루 만에????
에라이 사기꾼아 ~~~~~~~~~~

이런 결과를 이런 원인 없는 결과
인간 숙제 없이 나타나는 주의 이름의 아들의 형상이 하시는 일을 미리 보여주는 자가

더러운 자리에서 밑둥치 짤린 자리에서 보여주는 자가 레위인 곧 제사장 이다는 겁니다
결국 레위지파의 제사장도 결국 실패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이루십니다

우리 실패는 당연한 겁니다
실패 하라고 주신 의미입니다
성공해 버리면
그 놈이 졸지에 의사가 되어야 한다 말이죠
제사장는 환자의 자리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안그러면 또 사람의 일
장지지겠다 끝까지 따라가겠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겠다
사탕아 물러가라 ~~~~~~~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구나

왜 하나님의 일
성전의 일 성전의 기능을 개 무시하고
또 성전에 바치는 정성
지성이면 감천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돈으로 헌금으로 이룰려고 하느냐
내가 너 같이 돈이 미쳤니 ~~~~~~~~~

예수님 당시의 레위인과 제사장은 오히려 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탄의 일 사람의 일만 생각했고 그것을 가르치다 보니
실천의 대가인 바리새인이 양성이 되었고 (에스겔 레위지파 제사장 양성과 정반대죠
그런데 오늘날 신학교 꼬라지 보세요 조폭들까지 동원이 될 정도이니
그 놈의 돈이 뭔지 ㅋㅋㅋㅋ 조계종 조폭동원 그렇게 비웃더니만 그 다음 니 차례가 됐죠)
이스라엘 전체 유대인 전체가 그렇게 배우다 보니
베드로 또한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못하는 겁니다
아니 할 수가 없어요 배운게 그게 다 이니까 뭐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게 전부인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 레위지파의 제사장을
성전에 가두어서 이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고자
갈기 갈기 찢겨짐이 벌어지는 절대저주 절대죽음 절대심판의 장소가
주어지는 겁니다

이 중심만을 우리 마음 판에 박아 넣겠다 라는 겁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죄를 지어서 저주가 임하는게 아니라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즉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니라 지옥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지옥간다 라는 겁니다

죄를 짓냐 안짓냐 성공이냐 실패냐 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 여부로 따지는 식으로 인간은 평생 얽매여 삽니다
그래 그래 너의 그 행함의 법칙대로 행함의 책에 니 생각대로 니가 스스로 지옥에 가구나
니 숙제 잉께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라는 그 세계가 이 땅에 있는 나에게 쳐들어 오지 않으면
천국 곧 약속의 땅 원래 가나안 땅이였지요
그 땅이 침략 당하듯이 이 약속의 원리인 내용이 뭔지 모르면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면 즉 주의 이름이 내 이릉믈 박살내어서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
그러니 인간의 성공 실패라는 의식 자체가 그런 행함 그런 선악의 법칙이
아예 안 통하는 십자가의 피 용서, 요나의 표적의 세계에는 안 통하는 
전혀 다른 세계를 이 땅에 이 중심에 이 성전에 박아버렸다 말이죠
그 참성전의 원리가 너 중심 허물고 예수님 중심으로 박아버리지 않는 이상
다 헛된 우상인줄 알아라 라고
주님의 숙제이지 내 손에 달린 문제가 아님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하나 하나 이거 뭐 완전 그 어떤 누구도 해석할수 없는
비밀 수수께끼로만 가득찬 말을 간따나 못 알아먹는데
더더더 못 알아먹도록 계속해서 환상 속에서 본 에스겔 성전의
치수 하나 하나 꼼꼼하게 나열하고 오늘 레위인까지 다 언급하시는 이유는
이거 내가 손수 직접 이루시겠다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나는 이미 통보 했다 너 이거 못 보면
아무리 본다고 우겨도 소경이야 아니 소경만들어 버릴 거야
변두리 껍데기 외모 아무리 잘 봐도
중앙을 중심을 볼 줄 모르는 너는 무조건 지옥보내고야 말겠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니 자식 다 지옥 보내겠다 이미 출애굽기 십계명
레위기 율법 신명기 새로운 계명에 기록된 대로 너에게 퍼붓고 말 거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레위지파 제사장이 그 기록된 말씀 예언된대로 보세요
중앙에 레위지파 지분이 있더라 말이죠
땅의 분깃이 없던 지파들이 말이죠
더더욱 무시하기 딱 좋았던 자들이 어라 있었네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였네
없는 자 같으나 있는 자였네
무태 한 자 같으나 억수로 하늘에 자식이 많았넹
이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의 기능으로써 제사장의 의미를 보여줬었는데
제사장 본인들 조차도 개무시하는 이 제사장 기능
다른 지파는 더 하겠죠 더해
그런 이 거룩한 성전의 기능을 개무시받는 기능을
주님이 어떻게 하나 하나 다 이루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제 저 완벽한 성전과 그에 동원되는 모든 기능을 보고
우리는 이미 시인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가 나 보다 옳도다 라고 말이죠

죄는 인간의 실천과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짖냐 안짖냐가 아니라
죄가 인간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그런 죄로 인한 죽음으로
하나님과 대면하는게 아니라

정녕 죽으리라를 이루실 분은 주님 당신 뿐입니다 라고
제대로 된 진짜 죽음 절대죽음 절대저주 절대심판 속으로 들어가는 자 이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기능을 미리 보여준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누가 주동해서 죽입니까
오늘날로 치면 목사들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죽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을 다 죽이고
사독 제사장 계열로만 계열 반차 이것은 혈통 족보 보다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를 말합니다
사람의 뜻으로 난 자가 아닌 그러니까 그들은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다가
왜 짤려야만 하는 지를 보여준 겁니다

아무튼 아바이달 짤라내고 사독 제사장을 세워서 다윗언약정신을 인애와 자비를 이어갑니다

이것이 사독 제사장만 가두어서 제사 드리는
5대 제사가 펼쳐지는 장소 곧 몸

바로 인자라는 몸 박스에 우리의 허물을 죄악을 가지고 와서
그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고자
정녕 죽으리라가 펼쳐지는 몸
모든 허물을 우리의 불의로 그가 죽임을 당하는
그 몸으로 교체 시키고자

이 기능에 동원이 되는 자로써 제사장을 세우셨다 말이죠

이들이 번제와 제사의 목적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불의함으로 그가 죽임을 당하는

그 죽음 당하는 그 인자의 몸
인자의 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죄인과 같이 되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의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그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는 겁니까?

제사장의 기능이 번제와 제사 입니까
현대로 치면 헌금 봉사 예배 충성입니까?

아니면 인애와 자비 곧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그 인애와 자비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라는
그 인애와 자비를 말하는 것이 제사장기능 입니까?

무엇이 도대체 더러운 죄악을 거룩으로 옮가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을
기쁜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길로 전하는 거룩으로 옮기는 것이

그 제사장 기능이
아비아달 계열의 번제와 제사 입니까?
아니면 사독 제사장 계열의 인애와 자비 곧 긍휼을 바라는
맞습니다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꽁꼬물
긍휼 불쌍히 여겨주심
이 인애와 자비로 먹고 살지 않습니까? 라는 마음입니까?

말로는 우리는 인애와 자비이고
번제와 제사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다 라고 하지만

인간의 외모가 중심이 된
교회 사람들의 행동을 봅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도 마찬가지
포로 전의 이스라엘의 모습
심지어 포로로 잡혀와서도 이스라엘의 모습을 봅시다

말도는 인애와 자비를 아무리 외쳐도
인간은 번제와 제사 라는 그 외모로써
인간 끼리의 승부를 거는
그래야 자기 영역이 생기고
그 자기 영역으로 경계선을 그어서

나는 일곱 번 용서 했는데 너는 몇 번 용서 했냐
나는 80% 성화 했는데 너는 몇 퍼센트 성화되었냐

이 따위 종교오락이나 하고 있더라 말이죠
이 세상은 게임판입니다 정치판입니다
정치란 어떤 철학자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네 맞아요 간극을 누가 더더더 벌리느냐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정치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십자가정치냐 이 게임입니다
그래 그 게임 제대로 보여주마 장난치는 게임 말고
진짜 목숨이 오락 가락 함 해볼까 라고 주님은 더더더 간극을 벌리십니다
종교꾼들 얼마나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하는데 그것이 게임 오락이라고 해 버리면
얼마나 우리를 개무시하는 것일까요

인간은 자기 사랑이라는 게임에 중독이 되었다 말이죠
교회 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오락에 미쳐있어요
비젼 이라는 용어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성화나 비젼이나 이거 이미 미국에서 유럽에서 다 실패한 것들 
다 수입해 온 것 아니냐 말이죠
유행도 오락 게임이니 놀려고 가지고 온 겁니다
처음에는 돈 되니까 돈 누가 많이 버나 라는 놈들은 단물 빨아먹고
그 뒤에 뒷북 치듯이 다 따라하면 더 이상 돈이 안되거든요
이것이 인간의 정치 곧 인간의 사랑 입니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게임 오락을 우리는 평생 죽을때까지 손 못 놓는 겁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그 의문의 반복을 박살낼려면 예수님의 죽음 곧 화목제물까지 십자가의 사건까지 가야
모든 육체를 못 박는 중심이 비로소 세워지는 겁니다
비로소 잠잠해 지는 겁니다

(합 2:20, 개역)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비로소 넉넉히 이기신 주의 이름에 나의 이름이 무너지는 겁니다

주의 성소에 들어가니
네 맞아요 인간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 개역)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 73:2, 개역)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시 73:3, 개역)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73:21, 개역)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시 73:22, 개역)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시 73:23, 개역)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개역)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개역)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26, 개역)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분깃 주님의 성전을 중심에 땅 중앙에 박아서 세워 만드시니 비로소 멈춥니다
자기가 짐승인 것을 알고 부끄 부끄 머리에 숯불을 얹은 것처럼 이 모욕적인 구원이 임한 겁니다

아삽이 비로소 배아파 안 합니다
지옥이 올라와서 배고프다 난리 치지 않습니다
이길려고 하지 않더라 말이죠

더 이상 종교오락 게임을 멈추게 됩니다
괜히 복수심에서 이길려고 한 겁니다 그 오락 의문의 반복 다람쥐 챗바퀴 도는
시치프스 신화에 갇혀 버린 겁니다

그런 인간의 우상을 파괴하라 라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대로 세웠더니만
아예 자기들이 가장 먼저 우상숭배의 달인이 되어버려서

회개 눈물 금식 기도의 달인이 되어서 저 세리를 이기게 해 주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밧데리 충전 받는 식으로 성령을 언급하지를 않나

이제 에너지만 확보되면 이기는데 문제 없다 라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임금 삼고자 예수님을 따라잡을때에
예수님을 미끄러지듯이 도망치는 겁니다
리마리오처럼 몸에 빠다 버터 바른냥 미끄러져 놓쳐버립니다 단절입니다 연합할려고 다가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도망치십니다
오늘 나오는 거룩 기름을 발랐는지
잡았다 하면 미끄러쟈서 놏치고 마는 겁니다

이런 거룩을 성화론자들이 외칠 리가 있겠습니까?
자신들이 포착했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 
잡았다 라고 여기는 그따위 거룩을 외치지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안잡히는 포착불가 믿음불가
인간의 믿은에서는 안 잡히는 말이 믿음이지 종교성이거든요
인간의 종교성(교리 플러스 실천이라고 지젝이 말했지요)에서는 포착 불가입니다
그래도 인간은 포기 안합니다 이제는 행함 실천으로 구체적 보편적진리로
말을 대따 어렵게 했지 구체적 이라는 말은 실천하는 진리 라는 뜻이거든요

그럼 남을 7번 용서가 맞네
네 맞아요
어라 방금 또 갈아버렸군요
7에 70번 용서가 나타나는 바람에

휴지조각 부도난 수표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저 새성전 예수님만 안 나타났다면
우리가 충분한 진리였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 박살 내버립니다
뭐 충분한 진리라꼬 왜 엉터리인지 하나 하나 보여주시는 겁니다
딸랑 예수님 혼자서 모든 인간을 상대하시면서 말이죠

바로 그런 인간의 어두움을 가지고서 예수님 자신의 빛 되심을 증거하십니다
두 언약을 성사시키면서 언약을 다 이루신 겁니다

더더더 부정한
부정의 부정으로써 나오는 구체적 보편적진리인 7에 70번의 용서
부정 보다 더더더 부정한 더 나은 제사인 인애와 자비로써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는 그 악마 짓에 착한 더더더 착한 두배나 되는 남을 14번 더 곱하면 196번 하면 우리 자존심은 상하지만 우리가 그거 인정 하고 우리가 더더욱 노력해서 달성하면 된다 라고
새로운 목표로써 열심히 자기의 의를 쌓으면 된다 말이죠 가능성이니까

그러나 반대의 길로 부정 보다 더 나은 긍정이라는 선이 아니라
도저히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더더더 부정함으로써
7에 70번 남용서하시는 원수 용서하시는 번제와 제사 라는 부정 보다
더더더 부정한 더 나은 제사인 인애와 자비 무조건 용서하는
저 악마 탕자를 용서하는 그 7에 70번은 도저히 가능성이 없으니
화가 나서 아벨을 죽여 버리듯이
탕자를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에 반발하는 겁니다
이건 뭐 가능성이 없어요 나랑 정반대의 길로 가는데
치료할려면 약이 필요한데 똥물에 7번 담구는 겁니다
7번을 내 쪽으로 당기는 행운의 숫자가 아니라
7에 70번이라는 희년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절대심판 절대죽음 절대저주인 십자가에서 나온
똥물 7번에서 나오는 용서였으니 누가 따라하겠습니까 행함으로 모조리 다 짤라내는데

그렇다고 진짜로 똥물 7번 담구면 피부병 낫겠다 싶어서 담구지 마세요
그거 믿음 아닙니다 어차피 내 쪽으로 당기면 행함입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믿음은 주님 홀로 다 하시고
우리보고 다 했다 라고 의를 거룩을 입히심이지
우리가 거룩을 쌓는거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성화론자들이 그래서 악마들입니다 마귀 새끼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이런 용서는 인간이 모든 인간이 나를 반드시 포함시키세요
행함인 내가 반발하니까 그러니까 진짜 용서인 겁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라고 울부짖는 영화 밀양의 전도연의 복수심인 겁니다
그냥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세요
우리의 원망을 다 토해놓게 하시고 용서하십니다
그래야 부끄 부끄 모욕적인 구원이 옳았다가 됩니다
전도연처럼 멋들어진 구원을 하다가 이 모욕적인 구원에 넘어지는 겁니다

이거 여자들이 죽이고파 하는 용서라고
연약한 여자들마저도 도저히 견딜수 없는 격동케 만드는 용서

아니 내가 용서하는데 나 보다 더 용서를 해

거짓말이야 거짃말이야 거짓말이야 ~~~~~~~~~~~~~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의 전도연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의 하이에나 울부짖음입니다
그 올라오는 지옥을 배고픔을 견딜수가 없습니다
채워주시는 수치를 가려주시는 모욕적인 구원이 없어서
금가락지 새신발 새옷이 더더욱 빵구멍을 뚫어서 간극이 더더더 벌어지니까
음부의 권세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면서 세상은 이 지혜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죽일려고 본격적으로 나서는 겁니다
행함에는 이 믿음인 요나의 표적 이 십자가의 무조건 용서는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악마요 부정이요 부조리 불법 편파사랑 스캔들 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조리가 유대인 율법이 있는 세계에 들어오면 안되기에
방종이 퍼지면 안되기에 말이죠

여성이 원수같이 여기는
나 보다 더더더 용서하는 그거 못 견디는 겁니다

자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남을 이겨먹기 위한
번제와 제사이지

나는 죽어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인애와 자비를 구하??? 긍휼
아니다 말이죠

바로 그런 아비아달 제사장 계열을 짤라내고서
사독 제사장 계열로써 나오는 제사장 곧 거룩을 그 차이로써

펼치는

이 죽음 속에 들어가는 자
정녕 죽으리라와 대면 하는 자

그 정녕 죽으리라를 우리가 당해야 하는데
주님 본인이 심판과 저주를 날려 놓고서
주님 본인이 그 심판과 저주를 대신 당하는

이 거룩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

레위지파에서 나오는 제사장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들은 땅에 속한 일을 하는게 아니라
하늘에 속한 일을 함으로써
그래서 땅의 지분이 없는 겁니다

어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땅을 주신다 말이죠

문제는 우리가 아는 그런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새성전이라는 중심을 말하기 위한 땅이기에


땅에서 벗아날 수 없고
땅이 허락하는 것만 먹을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땅
척박한 땅에 속해서
화살과 활이 없으면 하루라도 넘길수 없는
땅이 뿜어내는 저주를 받는
그래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고
여성은 해산하는 고통을 격는
그것으로 끝납니까?
아이 젓병 분유 청결유지 온갖 전염병 예방주사에

그야말로 레위인 제사장처럼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해산 하는 고통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듯이
아이 키우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이 천사같은 아기의 얼굴을 보면 그 단새 모든 시름을 다 잊어버리고 새 힘을 얻는
그러니 번제와 제사 따위는 족히 비교가 되지 않는
인애와 자비를 어린아기를 통해서 얻고자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죽음 보다 강한 사랑처럼 말이죠

제사장이 바로 인자 되신 예수님의 정녕 죽으리라 라는 그 절대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네 당연히 죽겠지요 죽어도 그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듭니다
제사장은 예수님의 정녕죽으리라를 다 이루신 그 절대저주 절대죽음 절대심판이라는
진짜 죽음 제대로된 죽음 제대로 된 저주 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곧 사랑으로 인애와 자비로
절대 용서로 나오는 겁니다

이 거룩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기 위해서 말이죠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슬픔 대신 희락을 항상 기뻐하라를
즉 항상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어두 컴컴한 깊은 바다
스올 무저갱 그 지옥 속에서
지옥 대신 희락을

잿더미 대신 화관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성전이 불타 떨어진 잿더미로 인해서
거룩한 제사장의 옷 에봇이 새까맣게 더럽혀 졌을때에

주님은 새옷 흰옷 화관을 주님의 영광스러운 격에 맞도록 높이시는
화관 꽃 왕관을
너는 나의 헵시바야 쁄랴야 하고 내 사랑 내 어어쁜 자야 내 신부야 라고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격상 시키시는 겁니다

레위인의 위상 격상 영광은 바로
이렇게 땅의 지분이 없어서
세상사람의 시선에서는 죽은자 같으나
오히려 하늘에 속한 자로써 구분 구별이 되어서

땅이 없는 자로써 땅이 있는
믿음 포기하는 믿음
막살기를 포기하는 막살기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 라는 이런 표현들처럼

지금 에스겔 환상 속에서의 새성전과 세세하기 짝이 없는 땅분배 이다 말이죠
땅 없는 땅
공동체 없는 공동체
교회 없는 교회
교회를 넘어서는 교회 로써

거룩을 포기하는 거룩 왜? 제사장은 온 몸에 처참하기 짝이 없는
온 몸에 피가 튀는
흠 없는 양을 잡아서 죄악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 말이죠

그러니 이런 제사장의 기능은 누구에게 딱 맞습니까?
네 맞아요 요즘으로 치면 의사의 기능이지요
누구에게 딱 맞아요 네 맞습니다 환자입니다

요즘은 의사가 돈 안되면 안합니다
인애와 자비 따위는 개나 줘버려입니다
그래서 소아과 병원이 자꾸 줄어든다 말이죠
간따나 아이도 낳지 않는 세대에 말이죠
장애인 아이를 가진 부모는 더더욱 애 타는 겁니다
시사 다큐를 보니까 맞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는 그야말로 심각하더라 말이죠
세상은 돈 되는 인간만 취급해서 발가벗겨 먹고
하루살이는 바로 걸러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의 영적인 의사 제사장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번제와 제사의 달인만 되었지

인애와 자비가 없어요

제사장만 그렇겠습니까? 연관된 성전 종사자 다 그렇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새성전으로써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으로써
문둥병자를 깨끗이 고친 후에 제사장에게 보이라 라고 합니다

일종의 암행어사 출두요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문둥병자가 있다 라는 것이 말이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엉터리인 거죠
고치는자 없으니까 말이죠

또 한가지는 제사장에게 깨끗함을 받았다 라고 검증을 받아야
이 문둥병 고침 받은자가 걸어다닐수 있는 자유가 허락이 됩니다
안그러면 또 코로나처럼 비상사태로 전염병 막겠다 라고 다 차단해야 한다 말이죠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러니 제사장은 땅의 지분이 없는 처음부터 죽은자로써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가듯이
하나님의 얼굴을 독대 하는 겁니다


자신의 성화됨? 거룩됨? 의인됨으로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려주심 아 불태워 죽여야 하는데 아 화목제물 땜에 니 봐줬다 라고
은혜로 살려주심 곧 불쌍히 여겨주심
그러니 레위인 제사장 입장에서는
멋들어진 구원 따위는 없어요
그저 모욕적인 구원 밖에 없다 말이죠
그게 5대 제사 이다 말이죠 공간 장소 몸

죽은 몸으로써 산 자는 저 분입니다를 외쳐야 하는 겁니다

안타죽는 샬롬 이라는 뜻은
간반에 하나님의 얼굴을 독대하고도 안 타 죽었냐?
그래서 벧엘 하나님의 집 여기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하늘의 사다리
유일한 통로 이다 라는 겁니다

이미 율법이 가입이 되기 전에
성전이라는 중심을 펼치신 겁니다
물론 꿈에

진짜 현실이다는 거죠

눈에 보이는 현실은 없는 것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이게 산자의 하나님으로써 야곱은 독대 한 겁닏자

죽어야 하는데 안 타 죽었다?

아 하늘 여왕에게 곡식을 멈추지 않고 바쳐서?
곡식 바치는 제사를 멈추니까 우리가 쫄딱 망했구나

아니다 말이죠

오히려 망하게 만들어서
죽여서

레위지파처럼 땅의 지분이 없는냥 다 날라간 빈털터리?? 되어서
땅 없는 땅을 받듯이

제대로 된 죽음을 보고서
슬픔 대신 희락을 주시는

그 인애와 자비를 보라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겁니다
즉 자기 이름이 박살나지 않는 자는 구원이 없다
다른 말로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이미 죽은 시체 좀비일 뿐이다 말이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제사장은 인간의 믿음 인간의 성공 실패 여부를 점쳐주는 무당처럼 인간들의 믿음이 이용해 왔는데
그런 버릇 대로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 인자를 찾아와서
하나님께 물으러 점쟁이 찾듯이 찾아왔는데

제대로 된 기능 보여줘봐?
오늘 나오는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바로
인간의 성공 실패 여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죽음을 보여주는 자로써
성전의 거룩 기능을 곧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고자
갈기 갈기 찢겨지는
양을 찢듯이 레위인 제사장도 찢겨지는 그 처참하고 살벌한 죽음을 대면하는 겁니다

그 찢으심으로 다시 싸매어 주심이라는 이 하나님의 앞 뒤 모순된 간극이 바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믿음인 화목제물이니까 말이죠

안그러면 슬픔 인데 희락 곧 항상 기뻐하라가 없어요
안그러면 새까만 잿더미 대신 화관을 곧 범사에 감사하라가 없어요 신부로 격상 시켜주는 섬겨주심이 없으니 말이죠
안그러면 근심 대신 찬송을 곧 쉬지말고 기도하라 가 없어요
아니 사랑하게 되면 감출수가 없어요 말이 많아져요 쉴 새 없이 신랑 예수 자랑 합니다

(사 61:3, 새번역)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어디 1절부터 봅시다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61:4, 개역)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사 61:5, 개역)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사 61:6, 개역)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우와 그래서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라 쳐라 먹이라 라고 하셨다 말이죠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 이기에

(요 21:15, 개역)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개역)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개역)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8,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9, 개역)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를 오직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는 식이다 말이죠

(사 61:6, 개역)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그래서 어떠한 죽음으로 라고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자로써 말이죠
왕 같은 제사장 말이죠

자 다시 돌아와서

근심 대신 찬송으로써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십니다
아이고 마 또 묻는다 제가 주님 사랑한다 카이
어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요 21:17, 개역)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새번역)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베드로가 근심이 되었는데 노래를 주시니까 찬송을 주시니까
안 사랑하고는 못 배기는
춤추고 기뻐하고 안 감사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다윗이 꺽으신 뼈로 씹고 뜯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듯이 말이죠
안 사랑 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 자기 영역이 삭제함을 당하는 관계가 바로 동행입니다

이스라엘이 잔칫집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애굽에서 똑같이 10가지 재앙을 당하는 그 속에서
자기 삶이 날라감을 당하고서

오히려 애굽에게 없는 하나님과의 동행 한 몸
초상집의 광야 죽음
광야 3일 길 죽음 저주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심판
속에서

구원을 얻는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오히려 쫄딱 망함으로써 영광을 얻게 되는
아까전 이사야 61장이 그렇지요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기쁜소식을
죽은자 인데 말이죠

레위 지파의 제사장의 격상이 그러하듯이 말이죠

이 처음자리를 첫사랑 되시는 주님께서 손 수 직접 만드시는 겁니다
인간이 누가 자기 스스로 광야죽음
광야 3일 길 죽음
어린양의 희생제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주님이 손 수 직접 하시는 일 덕분입니다

아무리 다 완벽하게 다 갖추어도
이거 하나 빠지면 다 소용없듯이

(사 5:12, 개역)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사 5:13, 개역)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사 5:14, 개역)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사 5:15, 개역)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사 5:16, 개역)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사 5:17, 개역)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처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화목제물 십자가 말이죠 이 높은자 낮추시고 낮은자 높이시는
99마리 양 버리시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 찾는 목자의 섬기심 이거 없으면 다 소용없다
이거 딱 하나 말이죠)

레위인을 그렇게 손 수 직접 구별 시킨 겁니다

이거 딱 하나 

이거 우리가 할 수가 없는데
어라 동행하시는 주님이 대신 처리해 주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포로 속에서 에스겔 새성전을 주신다 라는 말이 말도 안되죠
거기에다가 70년 만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없는데
성전 지을 모든 자재를 메데 파사 고레스 왕을 메시아로 세워서
다 대어주고 있으니 말이죠

모든 걸음 걸음 걸이가 모조리 다 감사이다 말이죠

지금 포로 속에서 새성전의 환상이 이렇다 라는 겁니다

무엇이 현실일까요?

포로 속? 요나의 큰 물고기 어두컴컴한 지옥 스올과 같은 그 지옥이 현실일까요?

그 처음자리에서 빛으로 첫사랑으로 뛰어드신
이 말씀이 이 약속이 현실일까요?

나는 중심이 없음이 명확해 졌는데
정직한 영이 없어서 명확하게 들추임을 당했는데

그래서 비로소 상한심령으로써 사망의 몸이라고 죽어 마땅함으로 우는데

그 슬픔 속에서 기쁜소식을????

말이 되냐 말이죠

그래서 그 동행자 곧 목자가 매일 매일 양을 칩니다
늘 죽음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성전짓기
중심만들기를 대신 해 주신다고 해서
인간은 그 중심 마저도 또 나를 위한 자기 배를 위한 그래서 임금 삼듯이
또 역시나 우상숭배로 빠지지만
가만히 두지 않고 늘 죽여주신다 말이죠

내가 내 스스로를 죽이지 못하니까 말이죠

자기부인
회개
못하니까 대신 하시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부인도 자기자랑으로 바꾸고 
금식을 자랑해요 그럴 것 같으면 말라꼬 하냐 말이죠
회개를 아이 살려달라고 혹시나 싶어서 합니다
그게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식으로 말이죠

백날 해도
주님이 손 수 직접 하신

대신 중심 만들기가 없으면

우리를 아예 할 줄 모르니까

아무리 다 갖추어도 이거 딱 하나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이런 실패와 성공은 인간 손에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주님 손에 달린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말이죠

왕같은 제사장은 바로 이 십자가만 외치는 자입니다

제사장처럼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분별된 몸처럼 말이죠

인간의 제사장 기능은 강도만난자를 오히려 더 피해 가는 겁니다
부정한 피를 시체를 만지면 안된다 라고 말이죠

레위인도 지나가고 제사장도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만이 그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는
진짜 제사장 기능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껍데기 외모만
중심은 없는
속 알맹이는 없는 껍데기만 갖추었을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사장 기능은
나 같은 죄인
강도 만난 자
다 죽어가는 우리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려주셨듯이

너희 죄가 아무리 주홍빛같이 붉을지라도 흰눈과 같이 희게 하시고자
오히려

요나의 죽음 속에 그 더러움 속에
그 사망의 몸 속에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죄인의 사망의 몸의 슬피 우는 그 차갑고 어두운 그 깊은 바다 속에 뛰어드셔서

베드로를 건져내셔야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비로소 아는 겁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야다 사랑 아느냐

니 내 누군지 아니?


네 압니다 라고 한 몸 된 자만이
신랑의 신부 만이 안다 라고 외치는
비밀의 관계로써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죽은 자 천한 비천한 자를 영광스러운 왕비의 자리에 승화 시키듯이

레위인을 땅도 없는 자에게 땅을 주시듯 격상 시키심을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로써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을 외치도록 하시고자
주님이 손 수 직접 구분 시킨 겁니다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으로써

레위지파를 격상 시켜듯이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다 이루었다 라는 그 영광을
우리에게 입히심으로써

우리는 이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고자 죽음에 뛰어들 수 있는 영광을 받은 겁니다
네 맞아요 십자가의 죽음을 외칠수 있는 입술을 허락받은 겁니다

그 부정한 입술로써 감히 말이죠

비록 죄수복을 입고서 외쳐도
사라질 완악한 수건을 안 벗는 자들과 대비시키는 언약의 자작극에 의해서
신나게 외치는 그 십자가의 용서만을 즐기는 겁니다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 안하고는 못 배기니까
저절로 외쳐지는 이 새노래를 말이죠

나의 죄악을
나의 이름을 삭제 시키는

이 주의 이름을 신나게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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