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 준 것 도로 빼앗는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리라) (호 2, 8-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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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 준 것 도로 빼앗는 징계의 여호와의 사랑(누구인지 알리라) (호 2, 8-13)

음란을 제거하라 그제야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호 2, 1- 7)
호세아 2023 2023. 8. 5. 18:07
23-03 음란을 제거하라 그제야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호 2, 1- 7)

〈호세아 2, 8-1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8쪽, 찬송가 049장 새 482 참 즐거운 노래를, 500장 새 446 주 음성 외에는〉

〈찬송가 049장 새 482 참 즐거운 노래를〉

1.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이 세상 사는 동안 주 찬양하겠네 
   축복의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나 건너 갈 요단강 뚜렷이 보이네
   참 아름다운 노래 늘 높이 부르세 
   하늘의 소망 주신 주 찬양하여라 
   참 아름다운 노래 다 함께 부르세 
   하늘의 기쁨 주신 주 찬양하여라

2.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만왕의 왕되신 주 나 찬양하겠네 
   거룩한 하늘 노래 들려올 때에 
   참 그립던 주님을 반가이 대하리
   참 아름다운 노래 늘 높이 부르세 
   하늘의 소망 주신 주 찬양하여라 
   참 아름다운 노래 다 함께 부르세 
   하늘의 기쁨 주신 주 찬양하여라

3.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내 영혼 구원하신 주 찬양하겠네 
   땅 위의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에 
   저 하늘의 천사들 다 화답하겠네
   참 아름다운 노래 늘 높이 부르세 
   하늘의 소망 주신 주 찬양하여라 
   참 아름다운 노래 다 함께 부르세 
   하늘의 기쁨 주신 주 찬양하여라


〈호세아 2, 8-1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8쪽〉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11)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12)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13)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찬송가 500장 새 446 주 음성 외에는〉

1.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서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2. 나 주께 왔으니 복 주시옵소서 
   주 함께 계시면 큰 시험이기네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3.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4. 그 귀한 언약을 이루어 주시고 
   주 명령 따를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아멘


(호 2:8, 현대어) 그녀는 자기가 가진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내가 준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처럼 떠받드는 바알의 신상들을 만들 때 사용한 모든 금과 은도 내가 준 것이었다!
(호 2:9, 현대어) 그러나 이제는 내가 철마다 줄곧 대어 주던 새 포도주와 익은 곡식을 되돌려 받고,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우도록 주었던 모시와 양털로 지은 옷을 빼앗겠다.
(호 2:10, 현대어) 이제 내가 정부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알몸을 드러낼지라도 누구 하나 그녀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없을 것이다.
(호 2:11, 현대어) 내가 그녀의 모든 기쁨과 즐거운 모임들과 명절들과 축제들을 폐지하게 하고
(호 2:12, 현대어) 정부들에게서 선물로 받았다고 큰소리치던 그녀의 포도원과 과수원들을 모조리 망쳐 놓아 쑥대밭을 만들겠다. 그러면 들짐승들이나 그 열매를 먹게 되리라.
(호 2:13, 현대어) 그녀가 우상인 바알에게 불을 태워 바치던 갖은 짓거리와 금은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정부들을 쫓아다니며 나를 떠나갔던 그 세월만큼 이제 내가 그녀에게 벌을 내리겠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먼저 철학에서 이런 어려운 표현들이 있습니다
즉자 대자 대타자 즉자와 대자를 합친 즉자대자

즉자는 철학자처럼 어렵게 생각하기 보다 
일반인처럼 쉽게 생각하면 
즉자는 즉각적인 자아 
그러니까 내가 나의 팔다리를 의식하는
바로 내게 붙어있다 말이죠 팔도 다리도 다 보인다 말이죠
팔을 만져보고 아 내 팔이구나 라고 말이죠
그러니 이것을 구지 인식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붙어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대자는 자아를 대상화 했다 라는 겁니다 객관화 했다 라는 거죠
여기서 부터는 인식이 곧 생각이 생기는 겁니다
뭐 정신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 모든 사물에 들어있다
아니 내가 대상화 하니까 의미가 생긴거죠 모든 사물에 정신이 있는냥
이것이 유물론입니다 모든 사물에 의미를 두는 거죠
아니 내가 응시하는게 아니라 사물들이 나를 응시할수도 있다는 생각인거죠
내가 생각하는 건지 생각이 나를 다루는지
뭐 쉽게 한다고 해놓고서는 더 어렵게 듣기겠네요 아무튼
특히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나 일까요 나가 아닐까요
대상화 했으니까 객관화 했으니까
그러면 나도 나를 객관화 시킬수 있는
아 사람들이 나를 저렇게 보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말이죠

이것이 즉자와 대자 정반합 원리에서 정반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대자는 떨어져서(붙어있지 않고 외부에서 투입이 되는) 자기와 마주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즉자와 대자는 헤겔의 용어입니다 헤겔의 유물론
(대타자는 타인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겁니다 
나를 누가 어떻더라 저떻더라 라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기에 대한 평가를 듣는 거죠 
여기에 언어가 곧 인식이 동원이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즉자대자는 정반합의 합입니다 적절하게 중용을 지키는 거죠
대자인 자기를 대상화 해서 자기반성(타인의 평가)을 거쳐서
다시 한번더 부정(거리두기-반물아일체)을 거쳐서 자기에게로 되돌아 오는 것이
즉자대자입니다 
(즉자 곧 자아일체 물아일체일때는 마주침 곧 거리두기라는 부정이 필요가 없습니다 
객관화가 필요가 없어요 자아가 곧 주체이니까 말이죠 
타인이 나 자아를 어떻다 저떻다 라는 그 소리가 들릴필요가 없는 또 들을 필요가 없는
주체가 곧 내가 주인공이더라 말이죠 
그런데 법 상징계 언어가 들어오고 난 뒤에는 그런 자아를 부정해야지만 
비로소 객관화가 된다 말이죠 
주체가 찢어진채로 빗금쳐진 채로 타인도 주체도 아니고 
자기자신도 주체가 아닌 것을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 헤겔 말 마따나 인간은 평생을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만 할 뿐인 겁니다
나도 나를 인정하고 타인도 나를 인정하고 나도 타인을 인정해야 자아를 유지할수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늘 자기에게로 회귀 하니까 이 자아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없는 허구인 자아를 삭제할 방법이 없다 라는 겁니다 불교도 수천년 동안 내려오는 신을 인간에게서 떼어내는데 성공했지만
그런 성공한 자아를 떼어내는 해탈하는 방법은 아직도 해결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불교 보다 최고의 종교는 없다 라는 거죠 뭐든지 객관화 할려고 하니까 말이죠
그러니 불교야 말로 최고의 허구 허상 우상숭배인 겁니다 자아숭배 해탈할려는 자아를 추구하는
자아우상숭배 인 겁니다 사실 모든 종교가 다 그래요 유대교를 따라한 거죠
그러니 교리 플러스 실천을 종교라는 허구는 내 구원을 내가 따낸다 라는 식입니다
주체도 아닌 찢어진 주체인 주제에, 꼬라지 주제에 주인공인척 
주체인척 할려고 하니 피곤한 인생인 겁니다
오호라 이 사망의 몸을 우찌하면 좋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죽으면 죽으리라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 도로 빼앗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언제는 주실때는 언제고 이제는 빼앗다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것일까요?

핏덩어리야 살라 라고 주님이 창녀의 딸 포주의 딸인 이 예루살렘이라는 딸
지 어미는 가나안 잡족 헷사람 무녀의 딸인 창녀이고
지 아비는 가나안 잡족 아모리 사람 포주이다 말이죠

태어나자 마자 귀찮다 라고 버려진 그 시장 바닥 오물에 던져진 
탯줄도 안 끊긴채로 말이죠
(귀찮다 피곤하다 라는 의미에서 반대되는 것은 귀하다 영광이다 라는 것은
바로 자아숭배 곧 번제와 제사입니다 결국 돈입니다 신을 돈과 함께 섬기는
그러니 돈 버는 일에 귀찮은 것은 과감하게 짤라내는 겁니다)

그 핏덩어리를 보고 그냥 지나쳐가도 되는데
다 죽어가는 핏덩어리를 제발 살아라 라고 해서
씻겨주고 먹여주고 살진소 금가락지 새옷을 입혀서 다 살려줬더니만

이제 살이 오르고 가슴 유방도 커지고 하니까
자기가 돈을 줘서라도 창녀짓을 하더라 말이죠
보통 창녀는 돈 벌기 위해서 남자를 유혹하는데
이건 거꾸로 돈 줄테니까 나를 범해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겔 16: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6:2, 개역)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겔 16: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 16:4, 개역)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겔 16:5, 개역)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겔 16:6, 개역)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겔 16:7, 개역)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겔 16:8, 개역)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9, 개역)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겔 16:10, 개역)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겔 16:11, 개역)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겔 16:12, 개역)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겔 16:13, 개역)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겔 16:14, 개역)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15, 개역)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겔 16:16, 개역)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겔 16:17, 개역)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겔 16:18, 개역)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겔 16:19, 개역)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20, 개역)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겔 16:21, 개역)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겔 16:22, 개역)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겔 16:23,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겔 16:24, 개역)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겔 16:25, 개역)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겔 16:26, 개역)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겔 16:27, 개역)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겔 16:28, 개역)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겔 16:29, 개역)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겔 16:30,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겔 16:31, 개역) 네가 누를 모든 길 머리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않도다
(겔 16:32, 개역)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겔 16:33, 개역) 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겔 16:34, 개역) 너의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겔 16:35, 개역) 그러므로 너 음부야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어다
(겔 16:36,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네 누추한 것을 쏟으며 네 정든 자와 행음함으로 벗은 몸을 드러내며 또 가증한 우상을 위하여 네 자녀의 피를 그 우상에게 드렸은즉
(겔 16:37, 개역) 내가 저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겔 16:38, 개역)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 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겔 16:39, 개역)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겔 16:40, 개역)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겔 16:41, 개역)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겔 16:42, 개역) 그리한즉 내가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투기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겔 16:43, 개역)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44, 개역) 무릇 속담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하기를 어미가 어떠하면 딸도 그렇다 하리라
(겔 16:45, 개역)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미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미는 헷 사람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며
(겔 16:46, 개역)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좌편에 거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우편에 거하는 소돔이라
(겔 16:47, 개역)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치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치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겔 16:48,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겔 16:49, 개역)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겔 16:50, 개역)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겔 16:51, 개역)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한고로 너의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겔 16:52, 개역) 네가 네 형과 아우를 논단하였은즉 너도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그들이 너보다 의롭게 되었나니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은즉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겔 16:53, 개역)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돌이켜서
(겔 16:54, 개역) 너로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너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겔 16:55, 개역) 네 아우 소돔과 그 딸들이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요 사마리아와 그 딸들도 그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 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
(겔 16:56, 개역)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
(겔 16:57, 개역) 곧 네 악이 드러나기 전에며 아람 딸들이 너를 능욕하기 전에며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블레셋 딸들이 너를 멸시하기 전에니라
(겔 16:58, 개역) 네 음란과 네 가증한 일을 네가 담당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6:59,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겔 16:60, 개역)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겔 16:61, 개역)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겔 16:62, 개역)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겔 16:63, 개역)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16장 전체는 그야말로 969금 
므두셀라 저리 가라할 정도로 청소년 불가 아니 원조 할배 불가 판정의 내용입니다
중요구절만 올릴려다가 아니다 전체구절이 다 중요하다 싶어서 일부러 다 올렸습니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겁니다 성경의 80% 이상이 우상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죄문제
결국 성경전체는 다 이 우상문제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오로지 처음맹세 대로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출애굽때의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만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거죠 
그러니 너희는 가만히 서서 있어라 즉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받는다 그래서 애굽왕을 강퍅케 했다 독수리로 만들었다
그러니 그 독수리에 의해서 시체 중에 시체 죽으면 죽으리라 죄인 중의 괴수만 되어라 라는 식입니다 아니 그것도 행함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만들마 라고 죽으면 죽으리라 속에 넣겠다 라는 겁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만 바라보라 라는 겁니다
니가 할게 없다 라는 겁니다
자동적으로 가만히 있을 인간 없습니다 부정합니다
그 부정을 부정하고 역시나 처음맹세 대로만 밀어붙이신다는 겁니다
마치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다 죽어가는 놈 건져놨더니만 여호와의 이름을 금송아지에 새겨서
우상숭배로 밑에서는 잔치를 벌리더라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뭐든지 자기존재에 맞게 소유할려고
자기 몸에 장착 물아일체시킬려고 소유할려고 달려드는 겁니다
없는 자아인데 자아가 생기니까 그 자아를 소유할려는 자아가 또 생기는 겁니다
자기에게로 회귀하는 사망의 몸이니까 말이죠 
그것을 구원이라고 생명의 몸이 되었다고
착각하면서 엉터리 하나님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는 겁니다
구원도 소유했으니 마 이제 잔치다 라고 잔치를 벌린거지요
그런데 모세는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는 이 시내산 거룩한 곳에 
그 어떤 존재 짐승도 접근 못하는 곳에서 
오로지 언약만을 받기위해 40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언약을 받아 내려왔다 말이죠
즉 주님은 소유가 아닌 내 존재에 맞는 소유가 아닌
오로지 언약의 관계로서만 일하시겠다 라고 하실때에
밑에서는 완전 대조적으로 자기 존재에 딱 맞는 소유로써 구원을 소유했다는 식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금송아지 우상에 새겨서 잔치를 벌렸을때에
그거 생명 아니야 그거 유사생명 가짜 엉터리 구원이야 라고
이 언약의 정신은 바로 처음정신에 맞는 처음자리로 되돌리기 위해서
줬는 것 도로 빼앗음으로써 처음자리로 되돌려서 언약만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오늘 본문의 빼앗는 이유는 처음자리로 되돌려서 언약만을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꾸 구원도 소유 생명도 소유 자기 존재에 맞는
그래서 이 언약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는 여호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겁니다
오로지 언약 곧 너희가 나를 사랑한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자기 소유고 나를 위한 구원이 되고요
이건 만들어진 신 자기 머리에서 조작된 신이다 말이죠
바벨론 왕의 점괘랑 뭐가 다르냐 말이죠
난 안그렇다 바벨론 왕의 점괘 안 믿는다 라고 하지만
기도 내용이 전부다 바벨론왕 점괘와 별반 다를바 없는 식으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내 나라는 내 구원은 내가 지킨다 라고
그러니까 그거 박살 내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 오로지 이 언약의 피로만
버림받는 메시아
고통받는 메시아로써만 이 언약으로만 관계 맺겠다 라고 했을때에
이 비유가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피신랑의 피신부가 아닌 자들은 다 탈락 당하는 겁니다
그 도로 빼앗긴 자리에서 우는 자만 그래서 호세아도 같은 언약정신의 관계만을
이스라엘 멸망 직전에 보여주는 비밀의 비유의 결혼을 보여주는 겁니다)

핏덩어리야 제발 살라 라꼬 했는데 다 죽어가는 놈 살려줬더니
이제는 보따리 내 놔라 라고 강도짓 창녀짓만 하는 겁니다
아니 호세아가 이럴 것 같으면 말라꼬 결혼했냐 말이죠
결혼 억지로 실컷해놓고서는 거봐 도로 빼앗겠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우리가 에스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었듯이
지금 호세아가 결혼 이후에 결혼생활 자체도 뭐 좋아보이는 것 하나 없이
오히려 더 더러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럴 것 같으면 말라꼬 결혼했냐 말이죠

바로 이런 호세아의 결혼 한 이후의 모습이 바로 비유로써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결혼생활이 아닌 
도리어 그런 인식을 다 깨뜨리는 식으로써 비밀로써 보여주는 겁니다

즉 건강하고 의인인 이스라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인 자기 열심과
자기 의를 쌓아서 말씀 잘 지킨 자기 의에 순종한
그래서 자랑스럽게 십일조 했고요
이레에 두 번 금식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고 가져오는
그런 의로운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아닌

오로지 주님 쪽에서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로써만으로
첫사랑은 처음자리를 찾는 불의한 죄인만을 환자만을 불러서
이 화목제물이 기능에 딱 맞는 죄인 중의 괴수를 찾는 겁니다
창녀같이 더러운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결혼은
바로 주님 쪽에서만 마련된 회목제물인 언약의 관계만을 펼치시기 위함이다는 거죠

철저하게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지금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선지자로써 시대가
(아래 도표로 호세아가 이사야 보다 앞서지만 
우리가 살펴보고 있고 살펴본 호세아 이사야 에스겔 순으로 시간입니다
사실은 이미 기울어진 끝부분에 나타난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입니다 그러니 포로 안당할 멸망 안 당할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오히려 이왕 기울어진 입장에서 더더더 퍼뜩 빨리 망했뿌라 라는 식으로
이왕 썩은 이는 빼버리고 새 이 가 나기를 이전 것은 빨리 퍼뜩 지나가라고 말이죠
오늘 본문 빼앗는 하나님 곧 본래 하나님이 주셨으니 도로 가지고 가시겠다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미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716F505BD17E180B

남유다 선지자인 이사야 보다 조금 한 5년 앞선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종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두 합친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끝을 예언하는 비유의 말 보다 더더더 충격적인 비유의 생활
비밀의 결혼생활 이것은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말 보다 더 
보통인간들이 결혼생활에서는 도저히 무슨의미인지 알수 없는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은 아예 대 놓고서 음란짓을 했구요
남유다도 마찬가지 이지만 그래도 몽둥이를 계속 때렸을 뿐이였지
개판이기는 매 마찬가지 였습니다

(호 1:1, 개역)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남유다 왕 웃시야 이 이름은 도표에는 아사랴 라고 남유다 13대 왕이구요
북이스라엘 요아스는 예후 쿠테타 일으켜서 아합 왕의 아들 요람왕을 죽이고 그의 어미 이세벨 왕비를 죽이고 왕이 되고 그 자손인 요아스 그리고 그 아들 여로보암
첫 번째 북이스라엘왕과 이름이 같아 헷갈리는데 그래서 여로보암 2세 라고 여기도 13대 왕이네요 북이스라엘 열세번째 왕

이런 왕들을 냅뚜고 주님의 뜻이 호세아에게 임했다 라는 말은
저들의 믿음 안 받겠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는게 아니라
자기의 의를 믿는 그 믿음 그거 도로 뿌수시겠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호세아만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펼치시겠다

그 주님의 뜻에
오늘 본문처럼 주신 것을 도로 빼앗겠다 라고 하시는
이 징계자가 누구인가 라는
그 징계자와의 관계성을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나타내시는 겁니다
이것은 전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성을 말하는 겁니다
(인간은 믿고픈 것만 믿고자 하는 확증편향의 정신병자입니다 모든 인간이 말이죠
그러니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파 하지 빼앗는 하나님은 아무도 믿고자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주님은 주시는 분이지 받는 분이 아니다 라고 받는 하나님 즉 바치면 복받는다와
상대적으로 주신다는 대조 대립의 의미이지 
오늘 본문에서 주신 것 빼앗는다 라는 의미에서
그런 안받는다 의 대립인 주신다 와 같이 보시면 안되고요 

오로지 언약 곧 십자가의 피 라는 첫사랑만을 보여주는 의미인데 
내 좋으라고 주는 것 없다 그러니 다 빼앗아야만 하는 겁니다
빼앗음과 주셨음의 대조로써 빼앗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럴때에 참선지자는 미움을 받고 
거짓선지자는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사람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합쳐서 증거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에스겔이나 참선지자를 자꾸 인자야 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 인자는 그렇게 싫어버린바 되는 하나님의 모습을 담기에,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기에
싫어버린바 되신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메시아를 증거하는 죽이시기로 작정된 인자인 겁니다
요나의 표적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그러니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단순히 기적을 우리가 생각하는 마술처럼 생각할게 아니라 
평상시 모든 것들을 모조리 나를 위한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로 
악한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보고 있고 

반면에 요나의 표적은 모든 것이 고통받는 메시아로써 
우리의 모든 일상 아까 헤겔의 유물론처럼 
모든 사물에 모든 피조물에 고통받는 메시아의 기능을 심었다 말이죠 
심지어 에스겔 성전 마저도 말이죠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은 먹거리 해결해주는게 아니라
오대제사 일곱절기로써 인자가 우리의 허물을 담는 죽으면 죽으리라를 담는 겁니다
그래야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이 처음사랑 첫맹세로만 밀어붙이시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을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삼았다 라는 이 언약정신만으로 관계 맺겠다 라는 겁니다 이런 성령의 소욕과
아 그런 십자가의 피 언약과는 관계 맺기 싫다 라고 육의 소욕과 대 충돌의 싸움으로써
결혼생활 자체가 전쟁터가 되는 겁니다 
전쟁같은 사랑 난 ~~~~~ 위험하니까 ~~~ 사랑하니까 ~~ 아 아악 ~~)


그런데 인간은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 싫다 라고
주시는 하나님만 믿겠다 라고 나올때에
오냐 그런 보편적진리로써의 속담과 섞은 우상과 섞은 그 하나님 박살내 주마 라고

도로 빼앗는 식이 아니면 이 존재로써의 가짜하나님을 박살내지 못하는 겁니다
고로 이스라엘 존재로써 나는 바벨론 왕의 점괘 따위는 안 믿어 라고
존재를 우기는 그러나 이스라엘이 믿는 그 하나님 조차도
바벨론 왕의 점괘 따위와 별반 다를바 없는

나는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니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지 빼앗는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했을때에

오냐 빼앗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 똑똑히 보여주마 라고 나오시는
존재로써의 하나님이 아닌 기능으로써 하나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존재는 자기의 존재와 자꾸 합칠려고 해요
물아일체처럼 말이죠
그러니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타인을 의식하듯이
자기가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가 자기를 눈치보고서
자꾸 뭐든지 자기 쪽으로 끌어들일려는 자기소유의 확대 자아확대를 노리는 겁니다
그러니 뭐든지 다 섞지요 합치 일치 동일시 하는 겁니다
이런 소유의식이 자기의 존재감을 더 극대화 하지만
이미 깨어진 찢어진 주체인 거죠

그런 구원소유에 반대되는 구원을 찢고 도리어 빼앗고 징계하고 심판하시는
이 언약과의 관계를 주장하시는 분이 바로 기능으로써 비존재로써
비주권으로써 싫어버린 바 되었는데
그놈의 하나님 주권사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게 바벨론 왕의 점괘랑 다를바 없는데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죽으면 죽으리라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속이고 꾀냐 어딜 사길 치냐 말이죠

오히려 그런 자기 의를 쌓는 것이 아닌

오로지 언약 정신으로만 우리를 찢으시고 징계하시고 도로 빼앗는
이 사랑이 아니였다 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었을 것이다 말이죠

자 그렇기 때문에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즉 소유를 원치 않고
소유의 넉넉함 곧 자기 의를 많이 소유하는
남을 7번 용서하기를 많이 끌어모아도 역시나 생명이 아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인애와 자비 곧 사랑을 원하심은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7에 70번 만이 무한대의 용서만이 생명입니다
생명인척 하닌 것 마저도 모조리 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번데기 앞에 주름으로 만들어 버린다 말이죠

존재는 소유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로 생명을 존재를 따집니다

소유의 넉넉함으로 생명을 소유할려고 합니다
그러나 백날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본들 남들의 눈치로 살려보고자 억수로 노력했다를 보여줘도 생명 아닙니다 생명은 나에게서 나올수 없습니다
도리어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나의 허구의 저주를 이기를 피 그 생명인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도록 말이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러나 언약은 주님 쪽에서 넘어온 화목제물은
바로 그것이 저주임을 아시고 바벨론 왕의 점괘이기는 매 마찬가지임을 아시고

그런 저주를 이기시는 피
요나의 표적
언약을 받고 약속을 받고 내려온 모세를 통해서

언약궤에서 나오는 퍼붓는 저주를 벧세메스처럼 동네사람들 다 몰살당했잖아요

(삼상 6:19, 개역)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삼하 6:6, 개역)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삼하 6: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살륙했잖아요 웃사로 얼떨결에 떨어지는 법궤를 잡다가 즉사 했습니다


언약궤에서 나오는 저주는 오로지 언약 본인이
곧 법궤 뚜껑에 뿌려지는 피 만이 그 저주를 거두는 겁니다
아니 모든 허물을 다 덮는 뚜껑을 덮었는데 왜 들따보냐 말이죠

어딜 더러운 손으로 만지느냐 말이죠

자아 곧 없는 자아 라는 허상으로 접근하면 
저 웃사라는 자아가 걱정 되어서
우와 너무 부당하다 라고 우기지만
우리가 선이라고 옳은 일이라고 우기는 그 일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 라는 점을 모르기는 매마찬가지인
바벨론 왕 점괘랑 매 다를바 없기는 마찬가지임이

오로지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피 뿌림만이 사랑임을 볼 때 알지
이 관계가 아니면
자꾸 존재로
나 존재 있고 너 하나님 너 존재 있고 그 존재와 존재끼리 만나자 가 되어버리면
모든 판단기준이 소유로 판단하는 겁니다
즉 나 라는 존재가 나를 소유했기에
나에게 유익이 되는지 아니면 손해가 되는지를 따져서
구원을 소유하겠다 라는 이 자기 의로움에 선악판단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의 의는 박살내시면서 다가오시는 의입니다
저 빼앗고 심판하시고 박살을 거쳐서 나오지 않는
하나님의 의는 없는 겁니다 그게 사랑잉께 말이죠
징계는 아들에게만 있거든요

이 피의 관계로만 맺으시는 주님 쪽에서의 찾아오심이 아니면
언약의 피를 모르는 겁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창조주가 누군지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가 안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 할 것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인
자기 열심 쌓기 밖에 없는 거죠 십일조 했구요 했구요 했구요 쌓기

아무리 맏아들이 아버지 곁은 떠나지 않고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어도
단 한번도 관계 이 언약의 피로 맺은 언약의 관계를 모르고

반대로 아버지 재산을 미리 받아서 다 탕진하고 돌아오는
이 탕자만이 이 언약의 피에 딱 맞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죄인임을 아는 겁니다

마치 가정부와 사랑하는 아내와의 차이처럼
아내는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에 모든 허물을 덮는 사랑 만을 나타남에 있어서
가정부는 행한 것만 따지고 그 행함의 보상만 따지는 자기유익을 구하는 선악의 법일 뿐입니다

자 그러니 맏아들은 뭡니까
아버지도 자기 소유였고
단한번도 아버지 말씀 어긴적 없다 라는 남 7번 용서 라고
손가락을 세알렸다 라는 것은
결국 소유로 본 겁니다
내 존재에 아버지 존재 합체 할려는
이거 바벨론 왕의 점괘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자기 유익을 구하는
항상 우상을 성경에서 언급할 때 자기를 위하여 라는 의미가 같이 나옵니다
그러니 손해 볼려는 짓인지 아닌지 늘 따지고
어쩔수 없이 손해 본다고 해도 그것을 억지로 참아도 역시나
언젠가는 그 보상을 바라는 역시나 역시나인 사랑의 관계인 아내가 아닌 역시나 가정부인 겁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펼쳐지는 금송아지 우상에 여호와의 이름을 새긴
그 잔칫집은 사랑이라는 화목제의 잔치가 아니라
울리는 꽹과리 아무것도 아닌 가정부의 잔치일 뿐인 겁니다 역시나가 역시나 한 
육 일 뿐인 겁니다

이것이 음녀입니다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고 선택합니다
자기가 선택했다 라는 말은 언제든지 버리겠다 가 이미 깔려있는
결국 자기가 주인공이다는 거죠

빼앗는 주님이 옳았다를 모르는
결국 주님이 누구신지를 몰랐다 라는 거죠
타인의 욕망에 따라
남의 눈을 의식해서
소유로써 자기 의를 많이 끓어모아 쌓았지
관계로서 피로써의 관계는 단 하나도 없었다 말이죠

많이 탕감 받을수록 많이 사랑하는
피로써 맺은 관계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것을 거부하고
왜 딸랑 3백 데나리온에 집착할까요
억지로 참았거든요 그래서 두고보자 잡기만 하면 가만히 안두겠다 라고 벼루었던 거죠
참고 참았다 라는 그 선함에 대한 보상을 늘 염두한 겁니다
그것을 삭제하고 빼앗고 부수시는 것이 일만달란트 탕감입니다
어쭈 그래? 그럼 그 다음은 니 차례이다 우짜노 라고
일만 달란트 줘놓고서 도로 빼앗습니다

얼마나 불가능한 용서인지 그 많이 탕감받은 것인지 모르니
용서의 왕이 안 보이니까
자기가 용서한 겨우 7번만 따지는 겁니다

그 정도로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데
이 사랑의 관계만 따지겠다 라는 겁니다 용서의 관계
그래서 죄인만을 부르러 왔고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일만달란트의 용서를 드러내는 겁니다
갑자기 자신의 선함 자신의 의로움을 되찾을려고 할 때
도로 빼앗으시는 겁니다

어디 7에 70번 용서 만 뿐 이겠습니까? 
그러니 숫자세기를 포기하라는 겁니다
자기 의 쌓기 포기 하라 라는 겁니다
숫자 셀수 있는 능력을 가미 개입 시키면 이것 또한 또
소유가 되는 내 존재로 끌어당기기 밖에 안되는 겁니다

진리는 초과잉적 제스쳐 라고 했는데
너무 과하다 입니다
허풍 아니야?
속이는 거 아니냐? 라고 오해를 받고야 맙니다
그러니 직접 안 당하는 이상
모든 인간들은 이 초과잉적 체스쳐를 거부감스럽게 여깁니다
얼마나 구원을 무시했으면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하질 않나
쪽팔려서 성화해야 한다고 하질 않나
자기가 어린아이 이면서 어른인척 성화해야 한다 라고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라 라고 하지 않나
그게 더 어린아이 짓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선함도 아닌데 선함을 추구하는 애 짓 꺼리만 해요
딱딱한 부정적인 죽음을
사탄의 가시를 거치지 않을려고 한다는 겁니다
여고냐 어린아이처럼 포로로 잡혀가지 않겠다 라고 우기는 식입니다
도로 여고냐 어린아이가 글쎄 딱딱한 음식을 먹는 어른이더라 말이죠

죽으면 죽으리라를 모독 하더라 말이죠
주님이 저주를 날리고 그 저주를 이기는 피를 
저주가 흘러넘치는 것을 뚜껑 덮는
본인이 심판 날리고
본인이 날린 그 심판의 칼에 대신 찔리는
주님이 그 피 값
그 저주 값 그 죄 값을 치르시는
이 또렷한 십자가라는 약속이 언약의 관계가 있는데

또 성화를 많이 끌어모아서 존재를 허구를 소유를 추구할려고 하니
바벨론 왕의 점괘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때려죽어도 자기 손해 보는 짓
즉 구원 안될만한 짓은 안 하겠다 라고 그 구원이 엉터리 인줄
없는 자아를 그 허구를 구원해서 뭐하게요
사람의 구원은 헛된데
주님이 심으신 내 안에 있는 예수만 구원하시는 겁니다
한 몸인 자는 무슨 말인지 알고
각자 따로인 가정부랑 결혼한 자 노예로만 취급할려고 결혼한자 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겁니다 한 몸 된 적이 없응께

오로지 하나님이 날리신 저주를
흠없는 어린양의 피 뿌림으로써 뚜겅 덮으심
어느 정도로 7에 70번의 용서
일만달란트 용서 16만년을 갚아도 못 갚는 빚
얼마나 초과잉적 용서입니까

어딜 7번 용서
어딜 석달치 월급 300데나리온을 일만달란트에 들이내미냐 말이죠

이 말도 안되는 사랑
말이 되면 안되요
말이 되게 할려는 사랑 때문에 가짜 사랑 때문에

뭐 7번 용서를 들이내밀고자
7에 70번 용서
4천조(빈살만) 곱하기 일만달란트 의 70번을 무시하는
이 칠이 절대저주를 절대심판을 거친 일곱 아닙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 그 사랑 아닙니까
부자청년은 아무리 전재산을 다 때려부어도
남을 살리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단 한푼이라도 손해 못 보겠다 라고 돌아서는
우와 그렇게 착하디 착하게 보인 율법 어릴적부터 지킨 자가
악마 중의 악마였다고 가면을 홀라당 다 벗겨버리시더라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한 수 배우겠다 라고 우리는 부자청년 따라했던 겁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는

보세요 빼앗는 주님 맞잖아요
원래 주님의 것이니 주님이 도로 가지고 가시는 겁니다
네 종말의 비유 3종 세트 중에
달란트 비유입니다

달란트 스스로가 알아서 남기는 남는 장사입니다
있는 자는 더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주님이 주신 것 도로 빼앗기는
원래 주인에게로 가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기능은

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기능을 보여주는

성전은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있는데
우리는 이스라엘은 이 두 나무가 있는 가운데서 동행 합니다

우리를 찢고 우리를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주님과  동행하는 겁니다

불로써 다 태우시는 그 불과 동행하는 함께 사는 성전을 중심을 허락하셨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여호와의 불과 함께 동행할 수 있을까요?

왜 안 타들어가지? 빨리 재가 되어서 먼지처럼 연기사람 왜 안 죽고 왜 안 사라지는 것일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라꼬 안 타들어가도록 억수로 섬기시는 겁니다
가시 떨기에 붙은 여호와의 불이 말이죠

인간은 두 나무의 기능인
절대 심판과 절대 용서 라는 이 모순된 기능을 둘 다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호세아는 고멜과의 결혼을 통해서
저들 일곱 왕들과 반대의 기능으로써

저들 존재
저들 소유의 하나님과 반대되는

언약의 관계로써 밀어붙이시는 하나님을
이 동행을 이 결혼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곧 함께 동행하는 한 몸, 함께 다시 삶 생명입니다
이 참 생명이 있는데 다른 생명을 추구하게 되니까 

소유의 넉넉함으로 생명이라고 우기고파 합니다
그러니 법을 많이 지킨 것을 끌어모은다 말이죠 마일리지 쌓기 죠

자꾸 소유할려고 달려드는 법이 되어버린 겁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말이죠
법 위에서 군림하고자 하는 대타자의 욕망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런 상징계는 허구입니다
큰 타자 큰 성 바벨론 왕이 그래서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계명성이 되고자 한다 말이죠 그 욕망에 의해서 그 몽둥이에 의해서 모든 인간은 찢겨지는 겁니다

그런 찢겨짐은 아무것도 아닌 거죠 더 더더 찢으시느 여호와의 칼이 제대로 된 심판을
그리고 이스라엘은 바벨론 왕의 칼이 아닌 그 바벨론 왕의 칼을 도구로 삼으신 여호와의 칼 앞에 무릎 꿇는 이스라엘의 기능 먼저 매 맞는 장자의 기능 맏물의 기능을 보게 되는 겁니다

큰 타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대타자는 없다 말이죠 
그러니 법은 법 속에 있을까요 법 바깥에 있을까요?
법은 법을 지킬까요? 안 지킬까요
법은 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말이죠 자기가 죽은 줄을 말이죠
이게 실재계가 된 바벨론 왕 교만한 계명성인 겁니다
법은 죄아래 가두기 위함인데 명령어를 지켰다 라고 우기니 미끄러진다 말이죠
법 지키는 놈이 법을 어기는 놈이다는 겁니다
그런 법이 된 하나님이 된 인간과 달리 율법은 나 말고 율법 외에 한 의를 쳐다보라꼬
몽학선생 손가락으로 하나님의 의를 쳐다보라고 합니다
자기 의를 쌓지 말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라꼬 말이죠

인간 쪽에서 다가가는 사랑, 사실은 에스겔 표현으로 하자면
사랑이 아니라 연애질 곧 음행 음란인 거죠 
그 음녀짓을 들추어내시고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라꼬
이 절대심판에 첫 번째 타자의 영광을 먼저 매맞는 영광을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당하는 그 영광을 이스라엘이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 모든 이방인이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로지 호세아 라는 남편은 이 사랑의 관계만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고멜 같은 이스라엘에게 말이죠 그래서 망해야 하는 겁니다

망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목숨을 얻고자 하는 것이 잃는 겁니다

아니 성전에 제사장 기능이 발휘 될려면
의사 기능이 발휘 될려면
환자가 되어야 하고
죄인이 되어야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구제불능인 환자이다는 거죠

그 환자를 그 죄인을 신부의 자리에 격상 시키는
새영 새마음 곧 인자가 모든 허물을 담고서 다 덮으시는
이 피로써 종말의 때
(아니 영원 생명을 얻고자 하면서도 자꾸 구원 그 이후 라는 또 시간 또 때를 소유하고파 한다 말이죠 그 시간 그 때를 모조리 삭제 시키는 것이 종말 곧 성령의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때입니다 나의 시간을 인간의 역사를 삭제 시키는 안식의 주인이 있다 라는 것 자체가 영광인데 그러니 삭제 당하는 이전 것은 지나가는 영광이 있는데
또 구원 그 이후 라는 자기의 시간을 또 소유할려고 존재를 우기니 안식일을 지키는 자 만이
안식의 주인을 죽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종말의 때 예수님의 일곱절기의 완성으로
때가차매 로써
몸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된 나 밖에 없는 즉자 라는 몸을 삭제 시키는
한 몸이 있기 때문에 오대제사로 나의 몸을 찢으시는 참성전의 기능이 있기에
인자가 있기에 비존재로써 우리 육을 찢는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유월절 어린양이 있기에 한 몸 동행 함께 사는 참성전이 있기에

나의 공간 장소 몸이 날라가고 (죽으면)
나의 시간 때 역사가 날라가도 (죽으리라)
상관없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화목제가 있기에
죽은자 없는 자 무태한 자가 되어도
주님 쪽에서 넘어오신 생명이 있기에
정답이 찾아낸 잃어버린 양인 탕자 죄인이라는
정답의 증상물로 만드시는 겁니다

바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오로지 뚜껑 덮어 피 뿌리시는
이 언약의 피로써만
화목제물로만 
첫맹세대로만 밀어붙이심 앞에서

이스라엘은 그 증상물로써 우발적으로 나타나서
이 절대심판과 절대용서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화목제물이라는
언약의 피만 보여주도록 외치도록
증인으로써 세움받은 겁니다

이 새노래가 만들어낸 창조물
복음이
언약이
십자가의 피 신랑이 만들어낸 창조한 잃어버린 신부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피신부인 교회를 다 찾았다 다 이루었다 라고
선포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세우신 교회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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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8 아담(율법 있기 전의 죄, 사망, 원수, 연약함을)은 오실 자의 표상(해석,증상물) (롬 5,12-14)

죄인은 구원자의 표상, 우리의 불의함은 하나님의 의의 표상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제물(꺽으신 뼈)로만 즐거워함 (롬 5, 9-11)
로마서 2022 2023. 8. 12. 17:43
22-027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로만 즐거워함 (롬 5, 9-11)

〈로마서 5,12-1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5쪽, 찬송가 352장 새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473장 새 411 아, 내 맘속에〉
예수 나를 위하여(찬 144)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찬 219)
예수께서 오실 때에(찬 299)
내 임금 예수 내 주여(찬 352)
내 주 예수 주신 은혜(찬 353)
나 위하여 십자가의(찬 403)
아, 내 맘속에(찬 473)

〈찬송가 352장 새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1.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한없는 은혜 받고서 내 생명 모두 드리오니 
   그 풍성하신 은총을 주 내게 내려 주소서

2.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내 허물은 덮으시고 
   주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를 믿는 맘을 보사 
   내 중한 죄를 사하여 참 평안한 맘 주소서

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주 은혜에 감격하여 
   한없는 감사 찬송을 내 주님 앞에 드리오며 
   내 맘과 정성 다하여 늘 기뻐하며 살리라

4.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마음과 이 천한 몸 
   그 보배 피로 값주고 주 친히 사신 몸이오니 
   나 이제 사나 죽으나 주 뜻만 따라 살리라


〈로마서 5,12-1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5쪽〉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찬송가 473장 새 411 아, 내 맘속에〉

1.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 귀하다 이 평안함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2. 이 귀한 평화 내가 받고 보니 모든 슬픔 사라지고 
   맘에 기쁨 넘쳐 주를 찬양하네 아 평화의 임금 예수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3. 주 날개 아래 내가 사는 동안 이 보배를 빛내리라 
   기쁜 그 날이 와 주를 만나 뵐 때 아 그 평화 영원하리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롬 5:10, 새번역)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롬 5:11, 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롬 5:12, 새번역)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롬 5:13, 새번역)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롬 5:14, 새번역)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롬 5:14, 공동)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었습니다.

(롬 5:14, 현대어) 그러므로 그들이 죽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처럼 금단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특별한 법을 어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앞으로 오실 분의 표상이었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시기로 된 그리스도와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롬 5:14, 가톨릭)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먼저 표상이라는 단어를 다른 번역에서는 모형이라고 했는데요
저는 아 이 모형이라는 단어를 오해할수 있겠구나 라고
제가 도리어 착각해서 또 다른 번역을 보니
대부분 모형인데 오해할 만한 원형이라고 공동번역에서 나와있구요
카톨릭 성경은 예형 이라고 모형과 비슷한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저는 오해 하겠다 싶어서 살펴본 것이 제가 도리어 오해한 줄로 모르고
모형이라는 번역에 좀 의구심을 가졌어요
왜냐하면 그 동안 모형이라는 단어를 억수로 많이 배워오면서
다들 그림자 라고 배웠으니까 말이죠
네 맞아요 말, 언어, 단어의 뜻은 맞는데

문제는 오늘 본문을 보니 그런 드러난 의미 보다
도리어 감추어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서 그런 관점에서 볼때에는
원형이 먼저 있고 그림자가 뒤에 있는데
그림자가 모형이 먼저 있고 실상이 뒤에 오니까
인간의 시간 개념과 안 맞다 보니
인간 쪽으로 모형이라는 개념을 당길려고 하니 
무리 데쓰 무리가 따르는 듯이 느껴지는 겁니다
정 당기고 싶으면 나의 시간과 몸 곧 장소 라는 이 역사가 날라가 버려야
이 묵시를 제대로 보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러면 또 당기는 의미가 없는 겁니다
묵시를 담을 그릇이 못 되거든요

그런데 그건 저의 착각일 뿐 우리가 원래 본품 보다 샘플을 먼저 시식이나
화장품 샘플을 먼저 접하듯이
영화도 본편 보다 먼저 예고편을 보잖아요
아 맞다 그것이 있었네
괜히 제가 무식한 것을 제가 오해한 것을
다들 아는 것을 괜히 쓸데없이 의아해 한 겁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아실 겁니다

표상 즉 표출 되어서 드러나다 라는 것 보다
증상 이라고 하면 증상물 보다
죄인 보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아담 보다 아담을 오실자의 표상으로 삼으신 구원자
환자를 부르러 오신 의사에
더 시선을 돌릴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나 건강한 자 맞잖아
나 의인 맞잖아 라고
다들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저 매국노 세리처럼 삥뜯지 않았고(바리새인)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맏아들)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고(부자청년, 유대인 관원 지도자 선생)
저 비싼 향유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줘야한다 라고 정의를 외치고자 분노하는(예수님 제자들)
자 이런 자기의 의에 순종하는 자
이런 건강한 모습 의로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더더 예수님에게 어필할려고
소경 아니다 라고 하는 자가 소경 맞다 라고

아담을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고자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더라 라는 겁니다

아무튼
우리가 억수로 그릇에 대해서 자주 세뇌 당하듯이 배워왔는데요
이왕 세뇌 당한 것 한 번더 전복 시켜 보자 말이죠
우리를 말하고자 함인지
예수님을 말하고자 함인지

그릇에 담을 보배에 대해서 교회에서 배워왔는데
그래서 보배 곧 그릇에 담을 보배 라는 의미에서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김국환의 노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아 최근에 이것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 들었는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였나?
아 아니다 정준희의 해시태그 포레스트 검프에 대한 이야기에서 들었군요

https://youtu.be/AQGXttpwNIg

그래서 몇 년 전에 접시, 그릇을 깨자 라고 이야기 한 적 있는데요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 개역)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고후 4:2, 개역)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고후 4:3, 개역)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4, 개역)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5, 개역)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6, 개역)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3, 개역)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4, 개역)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5, 개역)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7, 개역)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다들 교회에서 배우기를 우리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다 라고 가르치면서
자꾸 율법의 행함을 주입식 교육으로 당해왔던 겁니다
그 해석이 틀렸다 라고
믿음의 은혜로 들어가게 됨을 당하게 되면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게 아니라
지구 보다 더 큰 행성 아니 은하계도 아니 그 은하계 마저도 먼지 취급받는
하늘영광 보배에게 질그릇처럼 생긴 일회용 소모품 종이컵이
그 영광에게 붙어 있습니다 그 거룩이 활활활 타오르는 그 영광에

그야말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가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것은 행성인 보배가 우리(소모품 종이컵)를 담은 겁니까? 즉 붙어있는 겁니까 접붙임
아니면 조그마한 종이컵이 큰 행성을 담은 겁니까? 
지구보다 큰데 무슨 수로 담을수 있냐 말이죠
(이것을 또 무식한 놈들이 그릇깨자 막 살자 라고 또 존재로 해석하고 행함으로 해석하니
막살기를 진짜로 지켜요 글쎄 막살자가 덮쳐지는게 아니라 말이죠
자기 살이있음에서 자꾸 출발하더라 말이죠 
그게 자기 의에 또 순종하고 자기 열심을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추구하더라 말이죠
종이컵 그릇을 기능으로 말씀하시는데 기능 곧 존재 보다 먼저 앞선
기능으로써 증상물 표상인데 자꾸 내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이 선이 된단 말인가? 에라이 
역시나 생명은 주께 있다 가 아니라 나도 생명있다 살아있다 존재한다를
한다리 걸치고파 하는 존재임을 주장 함을 들추어내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아니 벌써 깨어지고 찢어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도 남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다니엘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심판의 불 저주의 불 사망의 권세 속에서 
무슨 수로 안 타죽고 살아있냐 말이죠
어라 그런데 예수님 불 보다 더 강한 
죽음 보다 더 강한
질투 보다 더 질투하시는 부정의 부정 죽으면 죽으리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춤추기 위해서 태어났고
동원이 되었고 은혜가 왕 노릇함을 말하기 위해서
죄인 환자 심판받는 원수가 되어서 불 속에 등떠밀려 들어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거든요
종이컵이 심판의 불 속에 들어가서 심판도 담아야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 진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더더 부정의 부정 죽으면 죽으리라가 붙어버려서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 불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하나님의 불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불과 함께 동행하고자 태어났다 말이죠 기능으로 말이죠
존재 보다 비존재가 더더더 존재적이다 말이죠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요
무태 한 자 같으나 하늘에 자식이 천지삐까리 ㅋㅋㅋ 이더라 말이죠 

어 그런데 왜 안 찢어지고 안 죽고 왜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지?
오실자의 표상 기능을 하라꼬 

비로소 생명을 보고 그 풍랑에 의해서 나의 살고 죽음이 다 날라가고 말이죠
주여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죽음도 풍랑도 사망의 권세도 잠잠케 하시는
도대체 누구시지요 라고 생명의 비밀을 아무리 들따 봐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비밀 잉께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비유로만 풍랑을 독수리를 바벨론왕을 일으켰응께 말이죠

비로소 생명의 비밀을 보고 왜 나는 죽어야 합니까 가 아니라
왜 나는 아직 살아 있어야 합니까 벌써 죽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 풍랑에서 건져주시고 살려주시는 지요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새번역)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 ㉭창 2:7(칠십인역)
(고전 15:45, 쉬운)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고 기록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6, 개역)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 15:47, 개역)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전 15:48, 개역)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전 15:49, 개역)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50, 개역)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1, 개역)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개역)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개역)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개역)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7,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8, 개역)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로마서 5장 다음 시간에 나눌 말씀이 죄를 뚫는 내용인데 사망을 뚫는 구원의 뿔이다 말이죠)

살려주시는 마지막 아담을 말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그래서 너는 산 자로 산 영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라꼬 말이죠
죄수복을 입히신다 라는 겁니다

생명의 비밀을 만나고 말이죠

왜 안 찢어지고 안 죽고 왜 아직까지도 살아있죠?
오실자의 표상 기능을 하라꼬 

죄인 되라꼬
환자 되라꼬
불의한 자 되라꼬

그래서 아직 안 죽이시고 죄 지으라꼬 막 살아라 라꼬 살려주시는 겁니다
사실은 이미 벌써 죽었으니까 말이죠 존재는 없고 기능으로만
증상물로만 있는 겁니다

내 안에 예수가 산 것을 말하기 위해서 나의 죽음도 유익항께 말이죠

그래서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질그릇을 깨자 그래야 보배가 드러난다 라고
자주 언급했었잖아요

아니 보배가 행성이 이미 지구보다 크고 종이컵 보다 큰데
질그릇 컵 깨어본들 티도 안나고 깨져본들 아무도 모르는데 
왜 질그릇을 깨뜨려야 보배가 드러난다 라고 하느냐

이 말은 그 정도로 보배가 중요하고 
질그릇인 우리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말을 함으로써 
강조점이 우리 질그릇에 있지 않고
주체가 주인공이 보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에게서는 때려죽어도 보배가 아무리 중요한다 해 본들
지구 보다 더 큰 행성으로써의 보배가 안 보인다 라는 점입니다
오로지 자기 밖에 안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은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심으로써 다 이루심으로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 라는 약속으로 그 언약으로만의 관계로

내가 내 자신의 의로움에 순종하는 그 꼴을 못 보시겠다 라고
하나님의 의가 나의 의로움을 자꾸 매일 치심으로써
불의한 자로 만드셔서 오로지 피로써만 화목제물로써만 관계 맺겠다 라고

안 죽이시고 살려두시는 겁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인간이 안다 라고 우겨도 그 안다 라는 지식을
자기 자신에게 주도권을 두고 있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자체인 사랑이 화목제물이 십자가가 안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이 사랑은
나를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늘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나의 의에 순종할려는 나를 늘 치시고자
나의 의를 매일 매일 날려버리는 빈털터리 만드시는 겁니다

오로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받는
이 화목제물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이 언약의 관게만을
밀어붙이시는데 있어서

죄를 죄 되게 하시고자 죄 아래 가두시고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 놓아서 백성 맞다 라는 언약의 줄로만

그래야 마귀와의 내기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이 피 언약인 요나의 표적만 펼치지
인간이 자기 손해 안 보겠다가 다가오는
바벨론 왕의 점괘 치듯이 다가오는 것을 일체 다 거부하시고
임금 삼고자 함에 있어서 도망치십니다

정작 주님의 사랑이 다가오심 앞에서는
고멜처럼 나 죄인 아니다 창녀 안될란다 라고 도망치고 말이죠

비록 창녀이어도 많은 남정네로부터 사랑받고 있잖아 라고
그것을 또 의 라고 자랑 하는 겁니다
많이 사랑 받으니까
거 보세요 가장 성화가 된 바리새인이나
바벨론 왕의 점괘나

어차피 사랑 아니잖아요 지 잘났다 아닙니까

그저 자기 의만 쌓는 겁니다

뭐만 보인다? 질그릇인 내 밖에 안 보이고 나만 중요하다 라는 거죠
그러니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안 깨어지는한 
보배가 아무리 지구의 몇천번배 보다 더 커도
결국은 나 밖에 안 보는 보고픈 것만 보는 나에게 갇혀버렸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이런 소경 이 정도로 심각한 소경인줄 우리는 모르는 겁니다
 
없는 자아에게 자아가 포로되고 갇혔고 억눌렸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벨론 왕과 같은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리라 라는 그 욕망이
그 타인의 욕망이 이미 우리 속의 자아로써 주인공인냥 자리잡아버렸기에
이 죄의 소원을 넘어설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소원 이라고 표현 할 정도 이겠습니까?
즉 소원 곧 이 욕망 외에는 없어요 다른 것은 인정 안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망이, 죄가 왕 노릇한다 라고 왕 개념을 집어넣어서
다른 잡하단 것은 여기에 끼일 틈을 안 주는 겁니다

(눅 23:34, 개역)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눅 23:34, 공동)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가졌다. / ㉠시편 22:18.

즉 인간이 끼일 틈이 없고요 주님은 마귀만 죄만 사망만 상대하신다는 겁니다
여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식으로 중간에 끼인 겁니다
욥기에서 마귀와 여호와의 내기 장기에 욥은 죽어나가는 새우등터지는 식으로 끼인 겁니다

죄의 소원은 소원 곧 굴레 권세 곧 왕 노릇에 벗어날 자 단 한 명도 없게 하시고
그 죄라는 부정한 권세에 더더더 부정한 죄가 거부하는 은혜의 왕 노릇으로써
아들의 소원 외에는 성경은 관심이 없다 라느 겁니다
즉 아들의 소원인 생명의 소원은 왕 노릇함에 있어서
다른 것은 왕 노릇 축에도 못 드는 인정 안해준다는 단절성 입니다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새번역)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 4:7, 공동)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창 4:7, 쉬운) 네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죄는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창 4:7, 킹흠정) 네가 잘 행하면 너를 받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네가 잘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그의 열망이 네게 있으리니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4:7, 한글킹)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창 4:7, 현대인) 네가 옳은 일을 했다면 왜 내가 네 예물을 받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을 것이다. 죄가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여도 너는 죄를 이겨야 한다'
(창 4:7, 현대어) 네가 잘하였다면 어째서 내가 네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어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느냐? 네가 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죄가 네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급기야는 너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리라.'
(창 4:7, 가톨릭)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소원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눅 10:22,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아들의 소원은 또 어떻게 번역했는지 보니
소원은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소원이라는 단어는 개역한글 밖에 없구요
다른 번역은 같은 의미로써 세 번이나 중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말이죠
원하심 = 계시(선택, 택함) 받은 자 = 아는 자)

자 저런 죄의 소원과 상대적으로
이 보다 더 절대적인 죽임이 없고 이 보다 더 절대적인 생명이 없는 죄의 소원과 상대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소원은 정녕 죽으리라 정녕 살리라 와 동행하는 것이 있는
중심이 있는 시온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정녕 죽으리라 와 같이 무능한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정녕 살리라에 못 들어간다 말이죠 
그러니 또 어린아이 와 같이 될려고 존재로 니고데모처럼 다시 뱃속에 들어갈려고 하면 안되고
마른뼈 죽은 뼈처럼 하나님의 군대로 사용하시는 주님 쪽에서 넘어오심
곧 하나님의 의가 불 속에서 함께 출 추는 그런 하나님의 군대인 기능이지
이것을 자꾸 흉내낼려고 막살기를 지키라는 말이 아닌데
그러면 불 속에는 왜 안들어가냐 말이죠
막 살기를 지키는 자기 의에 순종하지
하나님의 의에 순종치 복종치 않더라 곧 자기 의 쌓기인 거죠

이 죄의 소원을 다른 번역은 어떻게 했나 싶어서 살펴보니 낱말의 의미를 풀어쓰는 식인데
주로 [지배] 라는 의미로 했고 정치죠 지혜롭게 할 만큼
죄의 [열망] 이라고 했구요 경제죠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데
자꾸 살아있다 라고 우기니까 자기가 살아있음에서 출발하시는 겁니다
정작 말씀은 반대로 죽으면 죽으리라 인데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이 욕망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욕망] 이 표현은 정신분석학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구요
정신분석 이라는 것이 히스테리를 연구하다가 발생한 학문인데
이것이 자궁입니다 히스테리 자궁이라는 뜻이거든요
긍휼이라는 뜻도 있구요

남자들은 강박적이라서 도대체 이 생명의 비밀이 뭔데 라고
이 생명의 탄생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달려들어도 도리어 쭐꾸덕 미끄러져버리다 보니
어떤 철학책 향략의 전이 라는 책이 있는데 지젝의 책인데

재미있게도 그 책 제목 표지를 제가 말하고파서인데

http://flkac.cafe24.com/carousel_img/2016_040.jpg

여성의 자궁 속을 아무리 들따 봐도 생명의 비밀을 찾을 수가 없어요
남자의 욕망은 그 비밀을 캐내는 겁니다

왜 내 한테 없는 생명 하와 생명이 왜 너에게 있는거냐 라고

남자란 뭐든지 이겨먹을려고 하는 강박증 때문에 
약한 어린아이까지 약한 여성까지 이겨먹을려고 말이죠

뭐든지 파헤치는 비판 비평을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래야 학문이 성립이 된다 말이죠
그래야 남을 이겨먹거든요 
네 맞아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을 이겨먹기위한 강박증이지
한 번 용서 두 번 8번 용서를 자꾸 모아요 편집증이지요 그래야 이겨먹죠
진짜로 사랑이 있어서 용서하는게 아닙니다 내 밑으로 무릎꿇어 라는 식입니다
타인은 무조건 지옥이고 자기만 무조건 천국이다입니다

그래서 뭐든지 파헤쳐보고자 해체주의인 포스트모더니즘처럼
메타 저 넘어에 뭐가 있는데 싶어서
초월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 곧 비밀을 캐내고자
찢어버리고자 하는 편집증 환자 이다는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기 만의 법칙으로 재정렬 재편집 할려고 달려든다 말이죠

그런데 아무리 들따 봐도 생명의 비밀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의사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는 
역거운 내장 장기들 등등 있으니
찾을 길은 없구요 도리어 응시할려다가 도리어 응시당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음부의 권세처럼 죄의 소원처럼 말이죠
그 왕 노릇에서 평생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 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졸지에 해석할려고 달려드는 그 정신병 강박증 해석망상 자체도 종노릇인 거죠
읽기는커녕 도로 읽혀짐을 당하는 겁니다
죄를 뚫어버리기는커녕 도리어 뚫혀짐을 당하는 겁니다
자기가 해석 응시 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해석당하고 응시당하는 거죠
그래서 야동 중독 무슨 중독 다 그런 식입니다 언제든지 빠져나올수 있다고 착각하는거죠
아무리 냉정하게 사물화 해서 접근을 해도 말이죠

또 공동번역과 카톨릭성경은 이 죄의 소원을 [노린다] 라는 의미에서
공동번역은 굴레 라는 의미를 집어넣었다 말이죠
굴레 쇠사슬에 얽매이듯이 갇혔다 포로되었다 수갑이 채워졌다 라는 거죠
꼼짝마 너는 포로 되었다 라고 말이죠
세상은 죄가 아담으로 인해서 들어옴으로 인핵서 이제 굴레 곧 감옥이 된 겁니다
세상이라는 감옥
그 감옥에서 뭐 부자로 살다가 다시 천국으로 들어간다 웃끼는 소리죠
그런식이면 천국도 감옥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누구 말 마따나 한국은 천국 보다 더 천국 같은 지옥이라서
아무도 천국에 갈려고 하지 않는 
대 놓고서 놀기 좋은 곳이 되었다 라고
아니 이렇게 자살률 1위인데 놀기 좋다니
그 잔칫집을 남의 것 빼앗았기 때문에 천국인데 자살률 1위 라는 겁니다

진짜 천국은 심심해서 답답해서 못 살겠다 라는 거죠 
너무 너무 심심해서 천국은 심심하면 데모할 판국 입니다
텅텅 빈
그러나 지옥은 빽빽 합니다 밤마다 파튀 ~~~ 축제가 벌어져요 글쎄 
뿌뿌부 이디엠 가락 틀어놓고 밤새도록 흔들어 댑니다 
강원도 양양이 갑자기 핫플레이스가 되다보니 밤새도록 음악을 서로 더 높이 틀다 보니
주민들이 지옥이 따로 없어요 지옥이 
하루 종일 울리는 꽹과리 굿판이 벌어지니까 말이죠
과거의 모든 술은 제사에서 사용되는 짐승의 피 이거든요
번제와 제사 뿐인 세상
행함 뿐인 세상
인간의 믿음은 예수님을 죽이는 살인의지 뿐인 겁니다
그런 이미 죽은 자들이
그게 생명 있는 줄 살아있는 줄 알고
아무리 완벽하게 제사 곧 번제와 제사인 술상을 이게 추수감사절 아닙니까
곡식을 거둔 열매로 술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잔칫날
그런데 정작 좀비들이 머리 도리 도리 흔들면서 뿌뿌뿌 춤추고 노래 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죄를 아주 냉정하게 사물화 되었는데
냉정하다는 표현은 봐 주는 것 없이 물건 취급한다는 겁니다
뭐 인권 따지고 온정과 긍휼 따위 그런 것 안 통하고 오로지 물건 취급하는 겁니다
지난 주 언급한 헤겔의 유물론처럼 말이죠
헤겔은 이 사랑을 철저하게 냉정화 시켜서 사물화 시킨 겁니다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말이죠
물론 철저함 근처도 못 갔지만 말이죠
존재로 취급안하고 기능으로만 그러니 오로지 죄인 환자 취급만 한다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죽은 셈인 거죠 코로나 처음 퍼질때에 오로지 물건 취급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그래서 벌금 억수로 때리잖아요 그러다가 그 왕따 당한 것 때문에 몇 년 뒤에 보니
완전 공무원 자격 다 박탈당하고 가족들 외면하고 완전 쫄딱 망한 인생 취급
그야말로 수에 칠 가치가 없다 라고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라는 말씀이 실제로 실상화
리얼 생방송 현실화가 된 입장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냉정하기 짝이 없이
사물화 취급 당하는 겁니다

자 그런데 생명의 비밀을 캐내지 못하니까
소원이 죄의 소원이 지배할려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왔고 나가고 하듯이
사물화 물화 유물론처럼 물체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이랬다 저랬다 히스테리처럼
외부에서 들어왔는데 타인의 욕망이 말이죠 이게 법이지요 법
그러면 들어온 것 찾아서 빼내듯이 나오게 하고자 아무리 들따보고 파헤쳐도
안 보이는 겁니다 그 생명의 비밀을 찾을수가 없어요
기껏 한다는 것이 바로 외부에서 안 들어왔다 취급하고
내면의 숙제로 남기는 겁니다
자 그러면 죄가 인간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는다 거짓말을 한다 라는 식으로 거꾸로 해석합니다
거짓말이 인간에게 덮친 것인데 말이죠

그러니 밤의 세계 곧 실재계 라는 무의식이
눈 떠 있을 동안에 억눌렸던 것이 주인공처럼 막 슈퍼맨으로 막 날라갑니다
억누른 욕망이 마구 마구 튀어나오는 거죠

사랑을 아무도 내 편 만들려고 해도 냉정하고 차가운 냉소적인 사랑은 때려죽어도
내 편 안 들어주고 임금 삼고자 하는 나로부터 도망쳐 버립니다
반대로 그런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나를 풍랑으로 독수리로 사탄의 가시로 찔러 쪼개는
바벨론 왕의 칼로 말이죠 그렇게 고멜이 되고 만드시고자
죄를 죄 되게 만드시고자 하시는 의사 구원자 고통받는 메시아로 오실때에는
또 반대로 내가 도망쳐 고멜처럼 도망치는 겁니다
죄인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 싫다 라고 말이죠 거부한다 말이죠

이 두 소욕이 서로 싸우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생명이 있는 줄 착각하고 이미 죽은 자인데 말이죠
성령의 소욕은 죽은 자 라고 소경이라고 해야 고쳐주고 새마음 새생명을 줄껀데
자꾸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까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생명인척 하면서
또 또 인간이 주인공 주체가 되어서 죄를 다스리는냥 죄를 짓는다 라고 하고
거짓말을 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즉 자기가 항상 주체인냥 거짓말을 내가 하느냐 마느냐 로 달렸다 라고 보더라 말이죠

아닙니다 죄가 덮쳐진 겁니다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 거짓말이 죄가 주인공 주체가 되어서
거짓말이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백날 회개 눈문 금식 기도를 해도 죄를 자기 쪽에서 되도않는
일회용 무화과 나뭇 잎으로 가려도 안 가려지는 겁니다
율법 네배나 갚으라 로 가려도 안 되는 겁니다
피 흘린 양의 가죽 옷 즉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말하지
부자가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는 양가죽을 말하는게 아니지요
그 예수님의 피 흘리신 화목제물 아니면 언약의 줄 아니면
가려질수가 없는 겁니다
죄가 왕 노릇 왕입니다 왕
인간이 죄 짓는게 아니라 왕이 덮쳐졌어요
욕망의 왕이

그래서 욕망 이라는 표현이 왕으로써
다른 욕망은 다른 소원은 취급도 안해주는 왕이다는 겁니다
죄 라는 왕
사망이라는 왕 만의 욕망만 욕망으로 취급하고 
나머지 왕도 아닌 주제에 되도않는 사탄의 얕음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소원이라고 했어요 다른 소원은 취급안하고 죄의 소원만 소원이라고 말이죠

전적으로 외부에서 덮쳐졌다고 하신 겁니다 왕이 죄의 왕이
사망이라는 왕이 덮쳐졌고
냉정하게 사물화 해서 왕 노릇하고 있다 라고 합니다
기능적으로 철저하게 비존재화가 되어서 눈에 안보이게끔
비밀을 캐낼수 없도록 기능이 왕처럼 군림해서 왕의 명령을 안 따르고는 못 배기는
그래서 죄가 덮쳐진 외부에서 들어왔다 라고
오늘 본문에서도 언급 합니다

(롬 5:12, 개역)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딱 한 사람의 죄가
사망이라는 왕을 들어오게 할 수 있느냐 말이죠
하여튼 성경은요 말이 되는 것 하나 없어요
모조리 다 비유 비밀 입니다

이 죽음의 비밀을 무슨 수로 풉니까
남자의 욕망 이 보세요 욕망 죄의 소원은 뭐든지 비밀을 풀고파 하는 강박증 아닙니까
비평 비판하면 그 비밀을 풀어야 하는데 해석 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남자 답게 구원자가 될 수 있는데 구원은커녕 도리어 갇혀버렸다 말이죠
해석할려고 다가 가다가 도리어 해석망상에 갇혀버렸다 말이죠
죄의 소원을 다스리기는커녕 도리어 장악 당하더라 말이죠

자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라고 사물화된 죄가 먼저 언급이 되고
뒤에 인간이 죄를 지었다 라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즉 죄가 들어온 것이 먼저 있고 기능이 먼저 있고 비존재가 먼저 있고요
그 다음 죄를 짓는 존재가 나중에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반대로 보고 있지요 그래서 자유의지가 있다 라고
그거 철학사상인데 뭐 설명 뭐 해석할 길이 없으니 차용해 오는 거죠
과학에서도 물론 과학도 종교화 되었지만
과거 90년대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즉 선택이죠 선택하는 것 보다
먼저 움직임이 먼저 한 1초도 안 되게 먼저 앞서더라 라고 했다 말이죠
최근 과학에서는 훨씬 더 앞선 10초 이상 전에 먼저 선택보다 더 앞서서 움직이는 기능이 발휘되더라 그래서 자유의지란 없다 오히려 결정론 이미 결정된 결과물을 당할 뿐이다 라고
뭐 진화론도 깨지고 뭐 자유의지도 깨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스트레스 받는 것은 지 마음대로 사는게 덜 피곤하더라 라고 저번에
너튜브 매불쇼 과학코너 엑소 가 말했다를 언급했었죠

뭐 선택장애 있는 것 또한 선택을 못하는게 아니라 
못하도록 이미 먼저 앞서서 장악한 거죠
왜? 외부에서 덮쳐졌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이미 자기가 주인공이다가 덮쳐져버렸기에
죄가 왕 노릇하는 죄의 소원으로써 인해
죄가 주인공인줄 모르도록 죄가 감추어 버린 이상
인간 지가 주인공인냥 착각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죄가 인간을 숙주로 삼은줄도 모르고 말이죠

죄 아래 다 같혀 버렸다 말이죠
이것을 알려주는 율법이 있어야 안 망하는 자 이고
율법이 없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말이죠 

율법은 바로 이 죄를 죄 되게 만들고자 가입이 된
죄를 읽으라고 줬는데
어라 죄를 읽기는커녕 도리어 죄를 다스렸다 라고
죄의 소원을 더더더 펼치듯이 제대로 숙주 노릇을 하더라 말이죠

맞아요 죄를 읽으라고 준 율법이 주인공이 되어 알려준 것을
우리는 내가 율법을 지킨 주인공이 되다 보니 죄를 읽기는커녕
읽힘을 당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놓고 율법은 율법 외에 한 의가 있다 라고
율법 자기가 나에게 죄를 읽으라고 해서 읽었는데
죄를 읽기는커녕 죄에게 도로 읽힘을 당하도록 만들어서
현행범으로 체포 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라고
마귀에게 잡히는 것이나 율법 몽학선생으로 잡히는 것이
다행이 율법이 변호사 율법 외에 형사 외에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 라고
변호사를 가리키는 몽학선생의 기능을 하더라 말이죠

범죄자가 되지 않으면
죄를 죄 되게 하지 않는 형사가 없다면 율법이 없다면
범죄자도 아닌데 변호사가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율법이 가입이 되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 말이죠
이제 몽학선생은 율법 외에 한 의를 소개하는 기능을 하는데

율법이 대표자 모세 
두 증인 중의 한 명 율법 대표자 모세 곧 우리를 무조건 이유 없이 찢는, 범죄자로 만들고
두 증인 중의 한 명 선지자의 대표 엘리야 우리를 무조건 새마음 종말의 영으로 싸매시듯이
율법의 대표자 조차도 실패함으로써 왕이 와야 하고 제사장을 다시 지도 한다 말이죠
얼마나 개판이면 아비아달 제사장은 약속의 자녀가 아닌 명분을 따라 딴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데 있어서 여기에 다윗의 조카 요압장군까지 다 정치적으로 다 묶이느냐 말이죠
그래서 다시 솔로몬 왕으로부터 새로 지도 받아야 할 제사장으로써 사독제사장을 따로 세우시는 겁니다 아비아달 제사장은 쫓겨나지만 사실상 요압장군처럼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다 죽여버리시는 겁니다 
또 선지자의 대표자 조차도 죽지도 않고 하늘에 올라감이 그 자체도 무의미 하기에
참성전의 기능을 수행할 왕이 와 달라고
끝까지 섬기시고자 죽기까지 복종한 
하늘 영광 다 버린 죄인으로 오신 화목제물로 오신 왕
이 왕 노릇 만이 다른 잡다한 것들을 잠잠케 한다 말이죠 중심도 아닌 것들을
생명도 아닌 것들을 잠잠케 말이죠
그 섬기는 대신 매 맞는 왕이 와야 한다 라고 변화산에서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다윗이 뿅하고 갔습니다
다윗은 그저 비밀 풀이 해석망상에 사로잡혀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이 죄를 해석할려다가 도리어 해석 당하는
넘어설수 없는 정직한 영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분명 이길수 있다 라고 봤는데
어라 도리어 죄를 죄 되게 하는 율법의 취지를
성령으로써만 새마음 인자의 소원으로써만 비로소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자는 인자의 소원은 오로지 이 화목제물로서만
사랑으로써만 이 죄의 소원을 뚫어버리더라 말이죠
이것을 목격한 자가 다윗이다는 겁니다

이제 이 다윗왕 마치 죄가 왕노릇하듯 다윗이
사울도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 보다 더더더 악한 놈이 되도록
죄가 죄 되게 하는 이 죄의 소원에 단단히 걸려서
사울왕이나 다윗왕이나 도진개진
바벨론왕의 점괘나 이스라엘의 기도 점쟁이 찾듯 하나님을 찾는 거나 도진개진

그 죄의 소원이 덮쳐진 다윗에게
인자의 소원 아들의 소원이 덮쳐져서
죄가 사망이 왕노릇하는 다윗에게
은혜가 왕 노릇하도록 인자의 소원이 덮쳐져서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시는데 있어서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듯이 다윗도 그랬고 솔로몬 왕 땜에 우상이 다 들어온 거죠
사실은 솔로몬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다 퍼진 그 우상숭배를
혼자 독박 쓰듯이 결정판 마무리 판으로 대표성으로써 보여주는
전체 모든 아담의 속성을 담은거지 개인적인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그 이전 이미
아부지 다윗 왕의 회개 눈물 금식 기도는 그럼 바벨론 왕의 점괘 곧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그것을 주님은 도리어 이 한 사람에게 덮쳐진 들어온 다윗의 죄를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 시키고 있는데 말이죠 솔로몬이 저럴 정도면
이제 빼도박도 못한다 왕 노릇 맞다 기능이지 존재가 아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죄를 죄 되개 하시고
이제 다윗이 죽고 없도록
다윗의 운명에 다 복속 되도록
이스라엘을 포로
죄악의 왕노릇
사망의 왕노릇에 포로 억눌림 갇히도록 하시는 겁니다

왜? 사망이 죄악이 왕 노릇 하도록

자 이렇게 원수의 목전에 발 아래 지근 지근 밟히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상황으로 만들어야

부림절
심판받는 이스라엘의 멸절 몰살 말살 멸망의 그 심판의 날이 그 종말의 날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새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도록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 곧 하나님의 저주요
헬라인 이방인 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미련한 지혜가 우리에게서는 끝까지 섬기심이다는 겁니다

이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만드시고
하만의 제비뽑기를 옳게 만드셔서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는 이 언약을 똑똑히
또렷하게 명료하게 미래완료로써 보여주시는 겁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말이죠 그래서 죄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을

어떻게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은혜가 왕 노릇 하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으로 인해
은혜가 왕노릇함이 보여지는

이 자궁 속의 자궁이라는 생명의 비밀을
아무리 들따 봐도 없어요
오히려 여성은 월경 때문에 피가 쏟아짐 때문에
남자의 7일 부정 보다 두배나 더더더 더한 14일 부정함으로
단절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부정한 불의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긍휼을 의로움을 용서를 보여주더라 말이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복음서에서 대립구도가
약한 무능한 아이와 자립적인 어른과의 대조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고 하시고
순수함 아닙니다 건물주를 꿈꾸는 어른의 욕망을 심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죽은자와 같은 무능한 어린아이가 어른과 대조를 이루고

또 선택민족 유대인과 버림받은 사마리아와 대조를 이루고
그래서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 먼저 되는 거죠
그리고 건강하다 의롭다와 창녀 세리 강도가 대조를 이루고
그래서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 간다 라고 말이죠
그카면 아무 창녀를 데리고 너 먼저 천국가겠네 라고 비꼬는 놈들 꼭 생기기 마련이지요
대조를 이루는 이 기능을 주님이 펼치지 않으면 찢고 싸매는 이 두 기능 두 증인의 완성인
참성전과 무관하니까 은혜를 더하고자 백날 죄를 지어본들 역시나 존재이지 기능이 아닙니다
죄가 왕 노릇한 것도 못 보여주고 창녀됨 부정한자 됨 잃어버린자 됨 도 못 보여주고
동시에 은혜가 용서가 왕 노륵 함도 못 보여주는
그저 은혜를 자기가 쟁취할려고 죄를 더하겠다 라는 역시나 존재 자기가 주인공인
아니 죄가 주인공임을 못 보여주잖아요
다윗이 백날 자기가 주인공될려고 회개 눈물 금식 기도 해도 소용없음을 들통 당하는
그게 없잖아요 그 기능이 없는 채 존재가 될려고 막살려고 하니 참 기가막히죠
동시에 화목제물인 꺽으신 뼈의 죽음이 역시나 없어요
은혜를 더하고자 백날 죄를 지어도 말이죠
뭐 과거에 어떤 전도사가 아브라함 흉내낸다고 자기 자식을 제물 바치듯 죽였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화목제물 입니까? 희생제물 입니까 역시나 지가 주인공이지
죄가 왕노릇도 아닌 사탄의 깊은것도 아닌 얕은 것 아니 바벨론 왕으로부터 멸망당해야지
지가 지를 멸망 시키고 있어요 글쎄 
그리고 동시에 은혜가 왕 노릇하는 기능으로써 새마음 곧 마지막 종말의 영이 덮져져야 하는데
안식일 지키듯이 자기가 날짜 시간 때를 채우고 있으니 그게 무슨 주님의 시간 이요
종말 곧 완성 마침이 됩니까
도로 자기 시간과 역사 날 때가 날라갈 판국인 죽으면 죽으리라가 아니라
지 구원 될려고 아브라함 흉내내고자 믿음의 조상이 되고자
쓸데 없이 자식을 이삭으로 만들어서 죽이는
해석망상인 강박증인 거죠

최근에 아프리카 목사가 예수님 흉내낼려고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따라하겠다고 하다가
죽었는데 또 다시 다른 아프리카 목사가 또 흉내 내다가 죽었다 말이죠
아들의 소원이 덮쳐지지 않으니까
죄의 소원으로 함 넘어서보겠다 라고 하니
그런 아프리카 못지 않게 한국은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복 받는자
그 복받은 이거 추구하고파서 그저 돈돈돈 자본주의 구조에서 못 벗어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못 벗어납니다 벗어날려고 시도 자체를 아예 하덜덜 마세요

자 바로 그렇개 죄를 죄되개 하시는 율법을 통해서 죄 아래에 갇히도록 하시는 겁니다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 저 이방인처럼 되지 않도록 하시고자
주님은 선지자 곧 인자를 투입 시키는 겁니다
인자는 나를 인자를 드러내는 표상으로 증상물로 삼았다 말이죠
곧 의사를 드러내기 위해서 환자로 삼아버렸다 말이죠
환자 죄인 죄를 죄 되개 만드셨다 말이죠
왜? 구원자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러니 우리는 의사의 증상물로써 환자가 되는 겁니다

이게 글쎄 놀랍게도 한국기독교 뿐만 아니라 전세계 기독교에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백날 성경박사 해 본들 바벨론 왕 점치는 것이나
불교 천주교
그렇게 천주교 욕해 놓고서는 뭐 다른 것 하나 없어요

자 인자를 그렇게 나를 표상으로

사실은 오늘 본문으로 치면 개인 적인 나를 언급할게 아니라
오늘 본문 로마서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아담인 셈이지요 아담을
제대로 찢고 그 아담을 제대로 싸매시는 
하나님의 의를 담고 투입되는 자로써
남도 아닌 나로부터 미움을 당하는 인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음꺼리인 거죠
남도 아닌 수제자 베드로로부터
남도 아닌 다윗으로부터
남도 아닌 선지자로부터 그래서 요나의 표적인 겁니다

단절 되었다 나의 개입이 일체 없는 도리어 나는 나를 죄로 죄 되게 만드신
그 주님과 그 의사와 조우하는 만나는 대조가 되는
아직 원수일 때 아직 죄인일 때 내 시간이 다 날라간 공든탑 나의 의가 날라간 그때가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죽으면 죽으리라 가 덮쳐진


그런데 인자를 다 죽여버렸뿟네 그려
이제 우짜죠

죄가 죄 되게 하심을 당하는 겁니다
그렇게 나의 몸을 찢고자 어린양을 찢어서 그 위에 피를 뿌리는
이 오대 제사 공간 몸 장소를 날려버렸다 말이죠
그 죄를 거룩으로 옮기시는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의 기능을 하는 인자
인자를 죽인 것이 존재를 죽인 것이 이메 인자의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더더더 그 사망을 뚫고서 더더더 발휘가 되는
어서 죽어주세요 어서 별세해 주세요 창녀마리아가 미리 장사치르는
이 3일의 간극을 통해서 몸을 모든 육체를 못 박았으니
이제 때 마무리 완성을 단 하루만에 급히 이스라엘을 내가 낳았다를 다 이루시는
그 시간 역사를 끝내는 종말의 영 새마음이 오기를 소망 소원하는
아들의 소원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다 이루어지는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사는 이 믿음을 다 이루시고 선물로 주셨다 말이죠

자 그러니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해 놓고서는
율법 지키는 놈이 율법을 죽이는
안식일 지키는 놈이 안식의 주인을 죽이는

이 죄를 죄 되게 하시고자

더 이상 죄 아래로 가두는 율법을 알려주는 자가 없도록 아무리 참선지자를 죽여도

나의 죄악을 고치는
그 찌르는 창 만이 나를 제대로 고치는 의사의 수술칼인데
이제는 찌르는 창이 없으니 나를 제대로 고쳐줄 자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없어질 창이겠습니까? 무시하고 비웃어서
여호와의 칼을 없애버린다고 해서 없어지냐 말이죠

바벨론 왕의 칼이 있지롱 ~~~~~~~~~~~~~~

내 죄악을 제대로 읽어대는 해석하는 자는 정답 뿐인데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 뿐인데
그래서 하늘 영광 버리고 죄인으로 오신 예수님 뿐인데
그 앞에서 문제아 일 뿐인 환자인 죄인으로 들어날 뿐인데

아냐 나는 건강한 자 되고 싶어
아냐 나는 의인이 되고 싶어 라고
그렇게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자로써 주일성수를 철저히 지키는 자로써
아무리 안식의 주인을 죽이고 선지자를 죽여 없애버린다고 해서
존재는 죽일지언정 기능이 없어지냐 말이죠 또 다른 계란 또 다른 계란
네 맞아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계란 치기를 한다고 해서
오늘은 세 번 부인 안했구나 다행이다 라고 해서
그 다음날 넘어 갈수 있냐 말이죠
죄가 왕노릇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데

은혜가 왕 노릇할려며는 어서 어서 부인하라 라고 주님이 다구치시는데
사탄아 왜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니 사탄이니까
하나님의 일만 하시는 바로 그 예수님으로부터
죄가 외부에서 들어왔듯
은혜가 예수님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옴을 당하는 은혜가 왕노릇하는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그 기도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그 기도
그 믿음이 와야
내 믿음 날라가고 새믿음으로써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즉 화목제물 제대로 덮쳐졌느냐 네 제대로 덮쳐져서
사망의 왕노릇을 거쳐서 은혜가 왕노륵 함을 누리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아 아까 그 대조
소위 빛의 아들들과 대조를 이루는 불의한 청지가
이 부정한 자가
죄가 죄 되게 함을 당함을 거쳐서
그 부정의 자리
백성 아니다 라고 하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는

이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예수님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기능을 이스라엘을 나타내는데
불의한 자가 새이스라엘의 기능을 말이죠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데

존재를 우기는 빛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드러낼 이스라엘의 기능을 저 불의한 청지기에게 빼앗기니까 도리어 예수님을 언제 죽일꼬 라고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 뿐이고 왜?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니까 말이죠
내 존재 안 알아주는 예수도 다 죽여버리는
이게 이미 죽은 자입니다
이 죽음을 이 죄를 못 읽으면서 자기가 이미 죽은 자인줄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인줄 못 읽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왔으면 안 타죽어야 하는데 어라 타 죽는데
얼마나 더러우면 말이죠 홀라당 다 타죽냐 말이죠
이 타 죽어야 하는 현실 이 샬롬을 직시함에 있어서

주님의 죽으심으로 대신 매맞으심으로 대신 찢겨지심으로서 나온 가죽오스로 인해
불 태움 안 당함을 불 속에서 누리는데

부자는 이 불을 이 심판을 읽지 못하니가
아무리 방탄복 아무리 최고의 고급 방호복 아무리 입어도
벌거벗은냥 바로 타 버리는

아이고 부자야 돈 많다메 돈주고 값주고 피 옷을 사라
그런데 못 사는 겁니다 그걸 알면서 더 놀리는 냥
아이고 그래 그랬었었었어요 그럼 값없이 사라 라고
아니 부자인데 자존심이 있지 돈 있는데
돈 없는 놈 취급 당해서 값없이 사렴 이라고 놀려먹듯이 말이죠

아 그럼 값없이 부자도 입을 수 있겠구나 했는데
어라 값없이도 못 사는 부자를 들통내는
우와 이건 뭐 살벌하기 짝이 없더라 말이죠

부자란 지금 한국처럼 그 당시 부자는 아미 지금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 모든 시대 전 세계인이 다 동일할 겁니다 아니 동일합니다
부자란 구원받은 자 복 받은 자로 인식이 된 상태인데
아예 지근 지근 발가벗겨서 저런 저주 저런 거지 상거지가 없도록 만드시더라 말이죠

부자는 의사 조차도 개인 의사 돈 먹여서 개인 주치의로 만들어서
오로지 자기만 치료하는 자로 담당시켜 만들어도

의사만이 쥔 수술칼을 쥔 자로써 고쳐줄 자이고
죄에서 구원해 줄 자인
그 의사의 증상물로써 환자를 부르러 왔고
우리의 환자 됨이 의사의 기능을 드러내고
그 구원자의 증상물로써 죄인만을 부르러 왔는데

환자 주제에 병든자 주제에 죄인 주제에
의사를 종 다루듯이 하고
심판 자를 도리어 심판하고 있으니
바벨론 왕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겠다 라는 놈
이 놈이 벌거벗은 부자인줄 도 모르고

(사 36:6, 개역)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사 42:3,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마 12:20,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그 바벨론 왕의 점괘를 안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나 애굽 발가벗은 애굽을 의지하듯이
애굽 찾듯이 하나님을 찾는

정작 상한 심령이 덮치면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죄를 죄 되개 하심으로써
사망의 몸임을 들추어내는데

늘 우리는 점쟁이 욕하면서 점쟁이 짓만 하는 겁니다

여기서 벗어날길 이 얼굴에 음행을 제거할 길은 오로지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미리 예수님을 장사 치르는
이 언약 뿐인

이 화목제물 뿐인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와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이 우리는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자기 아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 뿐인데 말이죠

우리의 죄 곧 불의 함이 구원자의 구원 기능인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을 드러내시고자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실 자로
아담은 죄인은 오실자 예수님을 말하기 위한 증상물로써 동원이 되는 겁니다

아담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아직 연약할 때에
이전 것 때 시간을 날린 아담의 시간을 날린 마지막 아담 곧 오실자
살려주시는 영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 증상물로써 아담을 말이죠

개인 구원은 없어요 집단 구원입니다
아담이 그러니 개인이 아닌 거죠 모든 인간은 아담에 속했지요
아담 조차도 죄를 죄 되개 하기 위해서 동원이 된 기능 도구 사물이지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도 아닌 주제에
의인이라고 구원자 흉내내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환자 아니다 건강한 자 이다 라고 의사 흉내내는
그러나 대충 대충 심상히 (대수롭지 않고 흔하게) 건성으로 고치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소리만 하더라 말이죠

(렘 6:14, 개역)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8:11, 개역)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2,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렘 6:13, 개역)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6:14, 개역)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5, 개역)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8:6, 개역)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렘 8:7, 개역)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렘 8:8, 개역)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렘 8:9, 개역)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렘 8: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8:11, 개역)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8:12, 개역)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저마다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지나개나 칼을 잡으니 수술 할 줄은 모르고
남을 죽이는데만 사용하더라 말이죠 
칼이 어찌 남을 죽이는 기능이 아닌 고치는 수술칼이 될 수 있으냐 말이죠

오로지 죽이는 용도로써의 그 바벨론 칼을 가지고 어떻게 수술의 칼이 되느냐 말이죠
심판의 칼이 어떻게 구원의 칼이 되는 겁니까?

(마 13:10, 개역)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 13:11,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2,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3,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6, 개역)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 13:17,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 13:18, 개역)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다 말이죠
이 심판의 칼이 있는 자는 더 받고요 수술 칼이 7에 70 개나 있어요 영원히
이 심판의 칼 곧 수술 칼이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남을 7번 용서 받는게 아니라 도리어 용서하니까 얼마나 없었으면 있는 티를 낼려고 죄 아래 갇힌 사망의 몸임을 환자임을 안 들통당할려고 자기가 수술 칼로 해 보니 소아과 의사가 소멸이 되듯이 돈 안주죠 아이 보호자 깽판치죠 갑질 당하죠 못하는 겁니다 ㅋㅋㅋ
주여 내 딸이 귀신 들렸나이다 라는 그 런 자에게만 의사가 보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쓸데 없는 진짜로 쓸데가 없어진 의사 이다 말이죠
귀신들린 자식 덕분에 예수님을 만났다 말이죠
빌라도가 니가 유대인의 왕이냐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유대나라의 임금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유대나라는 우상의 나라입니다 사탄의 회입니다
빌라도 나라입니다 그 우상나라를 천국도 더럽힐려고 아들의 나라에 그대로 가지고 간다?
그 음행을 소아과 의사 다 죽일려고 ~?????
건강한 자들이 오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입니다

이 제대로 죽이시는 죄를 죄 되게
사망을 사망 되게 하시는 주님이 아니면
죽음을 죽음 되게 하시는 심판의 주를 못 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생명을 못 보고 
자가기 살아 있다 건강하다 의인이다 만 우기는 겁니다

의인이 건강한자 살아있다는 자가 우찌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딘 부스러기를 감사할까요?
우찌 똥물에 7번 담글까요? 문둥병자가 아닌데 아니 문둥병자 이면 일수록 
더더욱 피부가 민감한 자인데 우찌 담그겠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제대로 된 죽음이 안 읽혀지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못 쳐다보고 또 비밀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건상한 자 의인의 시선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의 시선에서
안식의 주인을 비웃는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구원 받을 가치도 없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살았다고 우기면서 고래 고래 함성을 지르지만 울리는 꽹과리 이지만
주님은 안 속고 안 듣고 오로지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너희는 잠잠하라
그 입 다물라 오로지 화목제물로만 언약으로만 밀어붙이십니다
그 죽음 앞에 뭐 그리 떠들어 대냐 말이죠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데

중심도 없고 생명도 없는 것들이 뭐 그리 말이 많냐 말이죠
울어도 시언찮을 판국에

칼 로써 죽이는 목적이 아닌 살리는 목적인 지닌 비밀은 오로지
생명의 수술 칼의 비밀은
심판의 칼 죽이는 칼 본인이 자신이 대신 죽임 당하는 이 진짜 죽음
이 십자가의 피 라는 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시고 그 나머지는 다 음란 음행일 뿐입니다
제대로 죄악을 사망을 원수를 읽을 줄 아는(여호와의 칼은 비웃지만 바벨론 칼은 두려워 하면서 정작바벨론 칼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사망을 휘두르더라 말이죠제대로 죽이지도 못하면서 그러니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그저 자기 존재만 의사흉내내는 의사 존재, 이스라엘 지도자 존재, 선생 존재 만 우기면서 
대접 받기만 할려고 할 뿐이지 섬기지는 못 하는 겁니다 중심이 생명이 없으니 말이죠
정작 진짜 의사는 자기의 피를 수혈해서 자기는 죽고 남을 살리는 수술칼인데
얼마나 무시했으면 말이죠 그러니 화목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오실 자 예수님의 증상물 표상 아담 환자를 제대로 찌르고 제대로 싸매는(고멜은 오실 자 곧 나를 제대로 읽는, 고멜(죄)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심판하는, 
오실 자 호세아 피 남편 실상의 모형 그림자 표상이다는 겁니다
언약이라는 이 남편이 아니면 음란을 제거할 방법이 없어요 
화목제 십자가의 죽음
곧 언약 외에는 안 되는 겁니다)
제대로 죽이고 심판하고 제대로 다시 살리는 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 십자가가 라는 하나님의 의가 밝히 보이는데
죽은 자를 살릴 줄도 모르는 주제에 뭐 남을 7번 용서 했다고?
유사 용서
용서 축에도 못 끼이는 우리 연변에서는 7번 용서는 용서 축에도 못 끼입니다
적어도 7에 70번 이거는 역사의 숫자가 아닌 묵시의 숫자 곧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흉내낼 생각 조차도 하지 말라 로써 묵시의 세계 천을 곱하게 되면
하루에 아니면 1초에 7에 70번의 무한 반복인 이중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손가락으로 일곱을 세듯이 천을 세는 천 그까짓거 못 셀거 뭐 있냐 라고 보시면 안되는게
천이란 역사의 세계를 단절 시키는 개입을 못하게 하는 의미인데 
자꾸 난 천을 셀수 있다 라고 보니까 미끼를 물다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겁니다
하루에 평균 200번 무의식적으로 거짓말한다고 했는데
이 거짓말 무슨 식으로 씻어내냐 말이죠

소용없어 거짓말이라는 드라마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봤는데
처음에는 오 그럴 듯 하네 싶더니만 
결국 연애 호세아 선지자에서 말하는 연애(음행, 음녀) 이야기로 가기에
그만 흥미가 없더라 말이죠
요즘 한국드리마가 낯설고 생소한 소재로 처음에는 잘 출발하다가
무슨 강박증처럼 자꾸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을려고 하니까
이 연애 마치 가요가 모조리 다 사랑이야기 노래이듯이
진짜 사랑은 싫어버린바 되었기에 싫어합니다
아니 아름다운 풍채 흠모할 만한 사랑할 만한 매력이 없으니
다들 고개를 돌리는데 왜 좋아라 연애하겠습니끼 

이 음녀들이 연애 해 줄까 해도 할까 말까 안될 판국은데 
주님은 더더더 창녀 고멜
더더더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오셨다 말이죠

호세아가 그래서 교회에서 설교하기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언급한 연애 우상과의 연애는 밥먹듯이 합니다
누구 말 마따나 드라마는 여자들에게서는 야동이다 라고 하니까 말이죠
모든 드라마가 음행으로 끝납니다 음행으로 ~~~~~

그래서 소용없어 거짓말 드라마를 보고

저게 무슨 거짓말이고 지가 더 거짓말을 하네 라고 
처음에는 재미 있을 것처럼 보이더니 그만 재미가 없더라 말이죠
거짓말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진 그 자가 더 거짓되더라 말이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개역)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결국 주인공 주체는 돈이 주인공이더라 말이죠
음행 곧 육의 사랑, 연애가 돈이 되거든요
돈이 주인공으로써 일한 노동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요 보상으로써
돈이 주인공이다 라는 것이 드라마의 내용인데
그 썩을 재물을 부도난 수표를 왜 모으는지
노예를 많이 모아서 뭐하게요
사실은 모을 수 밖에 없어요 돈의 숙주이니까
죄의 숙주이니까 말이죠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 거짓말이 들어오는 겁니다
죄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겁니다
일본 애니 그 뭐였더라 오른손에 괴물이 들어와서 숙주로 삼아버린 기생충과 같은 제목
아 맞다 기생수

돈이라는 신이 들어와 버렸기에 우리는 돈에 미치지 않고서는 하루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수가 없습니다

가장 최고의 노예가 가장 최고의 주인이 되어서 도리어 인간이 노예짓하더라 말이죠
거짓말 하는 알아채리는 능력 조차도 돈이라는 신 앞에서는 찍 소리를 못하넹 ~~~~ ㅋㅋㅋ
그래서 무당들을 다 죽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그래놓고 왜 바벨론 왕의 점괘를 왜 옳다고 하시느냐
그 느부갓네살 왕을 왜 내 종이라고 종으로 삼고
고레스를 메데 파사 은신상에 해당되는 그 우상숭배자를 왜 메시아로 삼아서
성전을 짓게 하느냐

왜냐하면 그런 이스라엘의 기도가 바벨론 왕의 점괘와 같기에
다 죽일려고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짓는 그 이스라엘을 다 죽일려고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짓는 성전에 안 계시고자 말이죠
단절의 의미인 겁니다

무당 뿐만 아니라 우리도 다 죽이신다 라는 것을 아느냐 라고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죽으면 죽으리라 만이 죽음을 제대로 읽는 겁니다 내 죽음이 아닌 주님의 죽음을 말이죠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2화 처음부터
라디오뉴스에 끔찍한 살인사건에 범인이 동료직원을 토막살해하고 
내장 장기 등의 살까지 뜯어먹었다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우리는 죽음을 읽지 못하다 보니 
나(에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이 피로만 이 화목제물로만 관계 맺겠다 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 그럼 제가 인육을 뜯어먹는 살인마 라는 말입니까 그래 
너 죄인이야 라고 하시는데 있어서

우리는 살인마 아니다 라고 하니까
생명나무도 엉뚱한 것을 생명이라고 우기는 식입니다
아니 언제는 유월절 어린양 잡고 그 고기 뜯어먹고 
또 뜯어먹을려고 다음해 다음번 제사에 바치고 또 뜯어먹고 
포도주 마시고 할때는 언제고 왠 인간인 척? 왠 살인마 아닌척?
지금까지 다 해 놓고서는 ~~~~~~~~~~ 
특별히 이스라엘은 더더욱 그렇잖아요
그러니 율법을 다 엉터리로 지킨 겁니다 죄 아래 가두어
죄를 죄 되게 함으로써

주의 살과 피가 아니면 저 죽습니다 라고 이미 죽은자라고 나와야 하는데

엉뚱한 데서 생명이라고 우기니까 죽음인 자신을 못 보는 겁니다

사망의 몸인줄 모르는 겁니다 죄의 소원이 들어간 자임을 죄가 왕노릇 사망이 왕 노릇하는줄 말이죠

그래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이 의가 영광이 덮쳐지니까 비로소 보는 겁니다 생명의 실상을

그 실상의 그림자 표상 증상물로써
생명의 증상물로써 나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7에 70번 용서의 왕의 위상에 걸맞는 죄인 환자로써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낼 때

그것도 원수의 목전에서 밣혀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 취급받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그 자리에서
이 이스라엘 말살 몰살의 점괘 친 날이 그 멸망의 날이 구원의 날

은혜의 해 곧 주의 날임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증인이 되는 겁니다


나는 바벨론 왕의 점괘가 거짓임을 안다 난 안 믿는다 라고 해서
그 해석의 개입을 주님이 허용하시는게 아닙니다
너도 똑같은 놈이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울로 삼아버렸다 말이죠
거울로부터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하신 그 풍랑으로 부터 도로 해석 당하라 라꼬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고백 외에는 나올게 없습니다

바로 그런 너의 죄악이 읽혀져야 한다 해석 당해야 한다
그 죄 그 사망의 왕 노릇 바벨론 왕으로부터 칼로부터 해석 당하고 찔림을 당해야
멸망 당해야 그 보다 더더더더 부정한 하나님의 칼 내가 부정했던 그 하나님의 칼로부터
수술 칼로부터 이제 고쳐주세요 라고 나오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칼로 부터는 풍랑을 통해서 물 위를 걸은 것 다 찢겨지지 않겠다 라고
하나님의 칼을 무시할때는 언제고 이제 바벨론 왕에게 찔리니까 수술해 달라고
비로소 하나님의 칼이 옳았음을 더더더 옳았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내가 무시했던 그 며느리 다말이 진짜 예수님의 족보 생명의 족보를 언약의 줄을 던져주는
그가 나 보다 옳았다 생명의 줄이다 라는 겁니다
그 수술칼을 볼려면 바벨론 칼이 우리는 찢어야 비로소 그 비밀이 내가 무시했던 그 수술칼이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는 죄를 죄 되게 하심을 격는
죄를 읽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생명의 비밀이 짜 놓은 자작극 입니다
누구로부터? 반드시 내가 무시한 비유 비밀로부터 거꾸로 해석 당해야 한다 말이죠
나의 엉터리 해석
곧 해석망상을 거쳐서 그 해석망상에 의해서 반드시 무시 받고 내가 죽인 그 예수님으로부터
도로 해석 당하는

죽음으로부터 해석 당하고 정녕 죽으리라
생명으로부터 해석 도로 당하는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 의인은 주님 뿐임을
그 사랑은 

살려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임을 
그래서 아담은 오실자 마지막 아담의 표상 그림자일 뿐이다는 겁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따라할 필요가 없다 말이죠
그 그림자 죽은 것일 뿐인데
왜 생명을 불어넣느냐 말이죠 니 죽음도 죽음 축에도 못 드는
정녕 죽으리라를 주님만이 보여주시니까 ~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이기에 

이 사랑 곧 화목제로만 밀어붙이시는데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가 있는데 뭐 니 옳니 내 옳니
경계선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하고 
아주 무당 굿판으로 시온산까지 다 산당을 짓는 그 버릇 어디로 안 가는 겁니다

우리는 뭘 해도 강도의 소굴 짓 밖에 바벨론 점치는 짓 밖에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죽음의 비밀 생명의 비밀을

그 비밀이 바로 내 속의 죄가 마치 마귀 귀신처럼 왜 벌써 왔냐 라고 따지듯이
생전에 그 어떤 사람과도 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이
귀신과 무덤가의 청년에게 들어간 죄가 들어간 그 귀신과 
무덤가의 청년을 숙주로 삼은 그 귀신과 예수님이 대화를 하신다 말이죠
그래서 이제 나오라 라고 아니 들어간 귀신을 아무도 빼낼 마음도 없는데
이제는 나오라 라고 하고 또 다시 귀신의 요구대로 돼지떼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 라고
나오고 들어가고 라는 표현으로써 돼지떼 속에 들어가 버리니까
그 증상물로써 인간들이 아니 왜 우리 축산업을 붕괴 시키느냐 라고
예수님께 감사한게 아니라 귀신들린 청년 문제를 해결해 줘서 고마운게 아니라
얼마나 불편했냐 말이죠 무덤가가 하필이면 마을과 마을 사이 중앙에 있다보니
삥둘러서 갔으니 말이죠 졸지에 경게선이 쳐져있던 그 막힌 담을 허물어줘서
고마운게 아니라 청년 부모가 우리 마을 사람인데 고맙습니다가 아니라
왜 우리 경제 문제 망가뜨리느냐 라고 쫓아내버리는 겁니다
그 동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결국 귀신이였던 거죠
내가 귀신임을 감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귀신으로 뒤짚어 씌워야 하는 겁니다

귀신들린 청년은 정작 기능이였고 정상인이다 라고 우기는 존재가 그 존재들이 바로
귀신들린 자임을 들추어내시고자 주님이 귀신 취급 당하셔야만 하는 겁니다

죄가 들어간 죄의 소원이 덮쳐진 자입니다 
죄가 나간 것을 보고도 니나 가라 하와이 로 만들어버렸다 말이죠
자 그럼 귀신 문제 보다 개인 청년에게 들어간 귀신 문제 보다
사회 전반적인 모든 아담의 문제를 지적하러 오신 겁니다
유대 사회 전체가 교회 국가와 민족 전체가 교회아닙니까
그 교회 전체가 귀신들렸다 라는 겁니다

이 죄가 들어간 인간 곧 아담을 통해서 의사가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겁니다
내 딸이 귀신들렸고 나도 못 고치는 이상 저도 귀신들렸고 고쳐주세요 라고 하는 자 만이
생명을 보고서 의사를 보고서 고쳐달라고 하지

내가 환자도 아닌데 예수님이 의사처럼 전혀 안 보이는데 무슨 수로 고쳐 달라고 하겠냐 말이죠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말은 저는 귀신들린 자입니다 고쳐 주세요 라는 고백입니다
주님 쪽의 사랑이 덮쳐진 자에게만
은혜가 왕노릇함을 본 사망이 왕노릇함에 환자임을 알고서 은혜가 왕노릇하는 생명을
의사를 제대로 보는 눈을 허락해 주셔서 말이죠

네 맞아요 고침받아 놓고도 쫓겨나는 고통받는 메시아가 나의 신랑임을
그 환자를 주님이 찾으시는 고멜이 저입니다 라고 앉은뱅이 이방인에게 찾아오신
은혜를 본 자 만이 말이죠

네 맞아요 이제 슬슬 인정 합니다 은혜를 볼 눈이 없는 소경임을
그러니까 소경이니까 고쳐 달라고 보게 해 달라고 해야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예수님을 쫓아낸 돼지 축산업자들은 마귀의 3가지 시험처럼 귀신의 요청 요구 기도처럼
저 돼지떼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
귀신이나 인간이나 자꾸 저 천국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 라고
고통받는 메시아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듯이
가짜 천국 가짜 메시아를 요구하더라 말이죠
왜? 예수를 쫓아내는 것이 귀신 좇아내듯 하였거든요 이런 의인 이런 건강한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죠
제대로 귀신의 숙주 노릇을 한 셈이지요

바벨론 왕의 점괘 따위는 우리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은 안 믿어 라고 우기지만
예수님에게는 안 통하는 겁니다

그 다음 니 차례다 우짜노 실로암 망대 무너진 사건이나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1, 새번역)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눅 13:2,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거봐 거봐 갈릴리 그 더러운 이방인이 제사 제물을 바칠려다가 빌라도가 마침 나타나서
그들을 죽이는 바람에 그 피가 제물에 섞여버렸으니 그들은 이미 저주받을 운명이였어 라고
보는 그 해석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그래 너는 엉터리 제사 안 드리는 놈이 맞기는 맞냐

그래 그래 성전으로 맹세하는 것은 더디 이루어지고
성전에 금을 바쳐야 맹세 또는 기도가 빨리 이루어진다 라고 여기는 그 보편적 속담
그거는 뭐 우상숭배 바벨론 왕의 점괘이기는 매 마찬가지 아니냐?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인데 우짜노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두 증인을 죽여버렸는데 그만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울을 보여주는 줄 모르고

죽였다 우리를 괴롭히는 이 두 증인 죽였다
참성전의 두 기능 몸과 시간을 없애버리는 이 나쁜 성전의 기능을 죽였다 라고 좋아라 했는데
어라 누워서 침뱉기 라는 미끼를 덮썩 물어버렸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제 율법을 알려주는 자가 없는데
개같은 이방인처럼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처럼
에라이 더 잘 되었다 이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수준으로 그까짓꺼 높이면 되지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는 달인
그것도 사탄의 자식 독사의 자식들이

자기가 대접 받고자 인정받고자 더더욱 율법의 껍데기 4배나 지키면서
남을 7번 용서 했다 라는 그 자기 의를 쌓기함으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두 증인을 죽여버리면 되는 식으로써

시온산 곧 여호와의 산인 세상의 중심인 시온산에
누가 더 높냐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기냐 누가 더 넓냐 누가 더 신비롭냐 라고
산당을 누가 더 높게 크게 길게 넓게 신비롭게 세우느냐 라는 경쟁을
시온산에 도배를 하더라 말이죠
강도의 소굴이 된 겁니다
사탄의 중심으로 도배를 하더라 말이죠

계시록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하나님의 산인 예루살렘에 있더라 말이죠

(계 11:8, 개역)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두 증인이란 걸어다니는 참성전의 기능을 하는 인자로써
하나는 우리를 찢는 기능이고 하나는 다시 싸매는 기능인
거룩한 성전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5대 제사와 7절기의 기능
그러니 우리가 가지고 오는 때와 몸을 모조리 거부하는 거죠

안식일 지키기를 거부하고
의인된 몸을 거부하는
오로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때를 주장하는 참성전의 기능
동행
언약과의 관계성
함께 사는 한 몸 그러니 생명나무 선악나무가 있는 걸어다니는 참성전과 동행하는
그러니 우리는 이 두 증인의 기능을 하는 참성전 곧 하나님의 중심과 동행함을 
당하는 거죠 당하는 거
두 증인으로부터 공격받는 이 두 기능 찢고 다시 싸매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으로써 당함으로써 
이 공백 이 삼일의 간극에서 태어난 십자가에서 태어난 증상물이

이 증상물 모형 그림자가 원래 먼저 나보다 먼저 있었던
다윗의 자손
곧 다윗의 주
다윗이 말한 주께서 내 주께
주님이 치시고 주님이 다시 싸매시는 이 두 주 와 함께 동행하는
이 언약 이 새언약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증상물
오실자의 증상물 로써의 아담 곧 죄인

아직 연약할 때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제물의 증상물 로써의 원수
죄인 아담

으로 화목제물로부터 해석 당하는
정답으로부터 뽑혀 나오는 주께만 범죄한 자
그 죄를
정답이 찾아낸 죄인으로써 읽혀져야 해석이 되어져야
그 죄인 또한 피 신랑이 피 신부로써 비유가 되지
해석 불가가 되지

사람들이 해석할 줄 아는 아담 원수 죄인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증상물로써는
죄의 소원을 못 넘어서는 죄 아래 갇힌 자가 죄를 해석해서
문제 풀기를 해서 나온 자들은

의사를 의원이 찾아낸 자가 아닌
음녀가 찾아낸 신랑
믿고픈 보고픈 먹음직 보암직 그런 신랑 밖에 안되는

죄로 모르면서 의를 알앗다 라고 우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음녀

오실자 마지막 아담이 찾아낸 죄인 원수로써의 아담
그 아담은 오실자의 증상물
실상의 그림자
의사가 찾는 환자
구원자가 찾는 죄인인데

곧 주께만 범죄한 자인데
인간은 죄를 짓는다 거짓말을 한다 라고 해석하니까
죄가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개념이 없어요
들어오고 나온다 라는 것은 외부 작용이고
거짓말 한다 죄 짓는다 는 것은 내부작용으로 보는 겁니다
칼부림사건이 구조 문제인데 묻지마 살인 말이죠
개인의 문제로 취급해 버리는 그 조직 자체가 사실은 범죄자이거든요
독재자는 수천만명을 죽여도 영웅 대접 받아요
그러나 딱 한 명을 죽인 개인적인 살인 뭐 정신병이든 뭐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닌
묻지마 살인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악의 평범성이니까 말이죠
악의 평범성 또한 구조적으로 인정할 뿐이지
들어온다 나간다 개념은 여전히 인정 못해요
그래되면 사회가 무너져요
구조적이니까 억제 시키기 위한 보안대책을 마련하는 거죠
돈 있는 선진국은 되지만 돈 없는 국가는 택도 없죠

악의 평범성을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가 주장했지만

정작 다윗은 내 속의 죄가 이미 장악해 버렸다 라고
들어와버렸으니 나는 언제든지 튀어나오는 이 죄악을 
말릴수가 없다 라고 인정했거든요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주님이 악령을 집어넣어서 나오듯이 말이죠

아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2화 토막살인 뉴스 처음시작 하던데
나중에 3화가 어린아이 토막살인 사건까지 더 깊게 나오니까

아 이거 너무 심한데 위에서 언급한 내용 다 지울까 싶었는데
다윗 보세요 꺽으신 뼈로 기뻐한다 라는
유아 토막살인 자와 뭐가 다를까요
그 정도로 일급 살인자에게 이 의사의 존재가 아닌 기능을 말하기 위해서
죄를 악령을 심어버리셨거든요
이런 바닥을 안치면 또 겨우 오늘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 안했다 라고 우겨도
그 다음날 또 그 의문의 반복은 계속 되는 겁니다
아 그럼 방종 하라는 말이가
아 그럼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난다는 말이가 에라이 퉤퉤퉤

드라마에서 속이 불타듯이 부모마음이 찢어짐을 봐도
역시나 그 부모도 그 부모의 아부지 어무이 자식 잡아먹기는 매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예수님까지 하나님까지 잡아먹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인간인데요 뭘

그래놓고 우리는 천국처럼 살다가 천국에 가고자 하는 그 음행을
아니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데
마치 세상에 속한 그 버릇 그대로 천국에 가서 까지 발휘 할려고 하니
여전히 예수님의 나라를 개무시 하더라 말이죠
주로 하나님 나라 운동 하는 놈들이 지금까지도 그래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아주 아주 개 무시하는 자들이
놀랍게도 성화론자들 의로움을 쌓겠다 라는 자들 아닙니까

사도바울도 죄를 인간이 [짓다] 거짓말 [한다]로 봤던 
율법의 대가였던 바리새인 중이 바리새인 이였는데
아예 이제는 죄인 중의 괴수 라고 들어오고 나가고 라는 시선에서
이미 모든 인간은 십자가에 의해서 다 죽은자 라고 시인을 해 버렸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죄가 불의함이 들어오고 나감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들어오고 나간다 라고 했을때에
하나님이 심판의 주 되심을 드러내고자 표상 으로 삼았기에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된다 말이죠
심지어 지금 현재까지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 잔상이 남아있는 듯
가는 곳 마다 차별을 격고 있고
그들은 그것을 억누르고 돈으로 승화 하더라 말이죠
율법 만이 자신들을 지켜준다 라고 말이죠
안 망한다 라고 말이죠
여전히 죄가 인간을 다루는게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 라는 자기 숙제로 봄으로 인해서

뭐 그런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이 선해지겠네 라고 비웃는 겁니다

비유 비밀을 해석할 수 있는냥 무시하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 그 의
그리고 하나님이 선해 지겠네 라는 그 선이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했음을 못 보고 믿음의 관계로써의 표현을
율법의 행함으로 해석하게 되니
예수님의 죽음을 항상 빼 먹느 언약을 빼버려요 글쎄
자기 손해냐 아니냐 그것만 계산한 겁니다
아 그럼 내가 율법 그 동안 지킨 것 다 허사다 이말이네 에라이 퉤퉤퉤
보세요 자기 손해 안 보겠다
난 구원 못 받으면 안된다 라는 것이 먼저 깔린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다 보니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 죽음을 죽음 되게 하시는
십자가의 피 곧 죽음 곧 하나님의 의를 못 보고 복종치 않고
그저 자기 열심 그저 자기 의 쌓기여부로 천국 가냐 못 가냐 그것만
바울아 제발 좀 이야기 하고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십자가 좀 그만 좀 캐라
뭐 알아먹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도 모르는 그 비유 말해서 뭐하노 라는 식입니다
더 약 올리게 나는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니
미치고 팔짝 뛰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고침을 받을까봐 두려워 떠시는
이 비유 이 비밀의 방식이 아니면 말씀 안하시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사망의 비밀을 모른채로 정녕 죽으면 죽으리라
주께만 범죄했습니다 라는 언약의 고백 
성령으로 인한 고백이 무슨말인지 모르는 비밀이기에

생명의 비밀도 모르는 겁니다
생명은 주께만 있고 
주님만 생명인데
그 유일한 생명 되신 예수님만 죽인 주께만 범죄한 자인데

자기도 살아있다 라고 보니까
살인 안했으면 천국 살인 했으면 지옥 이라고
지 마음대로 해석하는 그 망상에
주님은 남을 미워하는 자 마다 살인하는 자 라꼬
모든 아담은 결국 산영 즉 살았다고 우기는 좀비로써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이 십자가 사건에 다 동참된 식이다 라고
살인마로 규정해 버렸다 말이죠
다들 미워하거든요 남녀노소 어린아이 곧 늙어 죽는 힘없는 노인 마저도
예수 죽이는데 있어서 예수 미워하는데 있어서 일심동체 이다 말이죠

왜? 율법의 행함으로 들어가는 천국을 가짜로 규정해 버렷으니
이제 죽어도 살아도 어딜 갈 수 있는 것이 없도록 다 없애버렷으니 말이죠
그게 기쁜소식인데 말이죠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만 들어가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곧 유대인의 왕이 섬기고자 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한
그래서 그 십자가의 증상물로 태어난 자가
표상이
실상이 낳은 
피신랑이 피를 흘려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사랑만 따지시는
화목제만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피 흘리심만 따지시는 그 나라인데

그 외에는 다른 나라는 없는데 그래서 소원인데
왕노릇인데

죄가 왕노릇해서 죽기를 무서워서 가짜 천국을 만들었는데
어디에게 갈수 없게 죽어도 못 가는 마치 구천을 떠도는
월말 김어준 철학 강의에서 불교에서 그런 자를
이 땅에서 아직 미련이 남아 있어서 자기따나의 사건이 해결이 되지 않은채로 있어서
떠도는 것이 귀신이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제발 좀 가라 라꼬 49제 칠 칠이 사십구
우리로 치면 칠칠절 해방절 나팔절 뿌뿌뿌 완료 마침이 되었는데
마침이 없이 계속 의문의 반복으로 미완료인채로 뭔가 찝찝하게 남아있으니 구천을 떠돈다 라고 말이죠

마침이 없으니 완료가 없고 다 이루었다가 없으니
굴레에 쇠사슬에 다람쥐 챗바퀴에 갇혀서 감옥 수갑채워져 있으니
계속해서 떠도는 겁니다
어딜 가고 싶어도 못 가도록 막아버렸으니 말이죠

죄를 짓고 안짓고 거짓말을 하고 안하고 로 해석을 하더라 말이죠
왜 해석하느냐 살아있다고 보니까
자기가 죽은 줄도 몰라요
그런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나
지금 주민등록증 말소 안된 사망처리가 안된 아직 살아있다고 하는 자들 또한
주님이 보시기에는 다 귀신들인 이미 죽은자로 보시는데

왜 그럼 안 죽고 아직 살아있느냐 빨리 죽이시지
그건 죄 지으라고 살려주시는 겁니다

죄를 죄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보라꼬
넌 이미 죽은 환자야
죄인이야를 보여주심을 당할려며는 의사가 외부에서 들어와야 하니까 말이죠
죄의 소원처럼 죄가 세상에 들어왔듯이
은혜가 그 왕노릇이 들어와야 하니까 백날 설명하고 교육하고 이해시킨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오로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그 당사자가 찾아오심 밖에 없어요

아니 2천년 전에 죽은 예수님이 어찌 지금 2023년에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게 바로 사람의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믿음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으니 문제죠
아니 1998년 쯤 고2에서 고3으로 올라갈 그 쯔음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 그 시간을 우려먹어야 가짜 믿음이 안 들통날려고 계속 우려먹을수 있는데
아니 지금도 현재도 2023년 기후재앙 닥치기 직전 지금 현재 8월 24일로
주님 쪽에서 만나시고자 이렇게 말씀으로 쳐들어 와 버리니
도망 칠래야 도망 칠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먼저 심판하듯이 먼저 매 맞는 겁니다
이 사랑을 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요
죽음 보다 강한지 안한지 우찌 아느냐
죽음이라는 사망의 권세 왕 노릇을 먼저 깔고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을 안 당하면 또 모르겠는네
재수 없게 사실은 최고의 축복이요 영광이지요
먼저 당하게 되니 본 것을 안 봤다 라고 부인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물 깃는 박을 던져버릴 정도로 놀래 자빠져서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죄를 죄 되게 하시고 제대로 죽이고 제대로 살리는 이 선지자가
마지막 아담인 살리는 영 종말때에만 나타난다는 그 영 완료된 마무리 마침이 되는 영을 부으시는 자가 나타났어요 라고 동네방네 외치고 돌아다니는
아름다운 발이 안 되고는 못 배기게 되더라 말이죠

그때 첫사랑이 지금 매일 매일 첫사랑으로 계속 쳐들어 오닝께
무슨 수로 말리느냐 말이죠
자꾸 자꾸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데 말이죠

계속 해서 많이 탕감 받는 일 밖에 없어요
7에 70번 용서 받는 일 밖에 없어요
즉 상대적으로 죄 짓는 일 밖에 없어요
뭘 해도 죄 밖에 없어요
매일 매일 일만달란트 44조 20년 전 부터의 계산치인데 요즘으로 치면
영적가치로 치면 만수르 보다 더 부자인 빈 살만 보다 곱하면 일만달란트 라는 식이다 말이죠
목숨 값잉께 아니면 16만년 곱하기를 하던가
그런 첫사랑이 그때 90년대 보다 더 많이 탕감 더 많이 용서로써
퍼붓듯이 말이죠 2800조 빈살만 저리가라입니다
그거 용서 취급도 안해줍니다 돈 취급도 하지도 않아요
남을 7번 용서가 무슨 놈이 용서냐 말이죠
적어도 7에 70번 용서는 돼야지 라고 번데기 앞에 주름 잡는다 취급 당한다 말이죠

주님은 이미 모든 인간은 죽었응께 해석의 권리 조차도 안 주는데
준 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더라 말이죠 

그래서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그렇다
에라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겠네 라고
믿음이 아닌 행함으로 해석하는
믿음도 그냥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곧 하나님의 의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그 모순된 간극 공백에서 출발하는
십자가의 죽음이거든요
그런데 자꾸 자기가 살아있다 라고 보니까 해석을 취사선택합니다
믿음도 내 믿을 수 있는 것 선택하고 
내가 도저히 믿을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것은 배척하는 취사선택을 하니
그 행함으로 나 살아있음을 기준으로 해서 출발하는 해석으로 하니까

사망도 생명도 모르면서
성전에 정녕죽으리라 와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왜 있는지를 모른채로
성전의 두 기능 몸 장소와 날짜 시간을 없애버리고 새 몸 새 날을 보여주는
참성전의 능을 모른채로 자기 의를 쌓기 밖에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지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이 넘어오는 것을 거부하더라 말이죠
이 죽음과 생명을 함께 동행해야 하는데

동행자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지가 동했했노라 라고 임금삼고자 했으면 됐다 라고
그런데 임금 삼을 줄 알고 예수님은 참성전은 도망쳤거든요

죽음의 비밀도 모른채로 생명의 비밀을 알수 없게 하고자
도망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

비유 비밀을 해석하겠다 라고 달려드니

어라 비유가 안 도와주네 라고 가룟유다 하나님나라 운동하는
독립운동 하는 자가 비유 그까짓거 뭔데 라고 비유 없어버리고 죽이면
안 비유가 되지롱 이라고 죽여버리더라 말이죠

역시나 그 비유를 죽여버리면 이제 비유 아니지롱 이라고 나오는 겁니다


(계 11:3, 새번역) 나는 내 두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계 11:4, 새번역)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요, 촛대 두 개입니다.
(계 11:5, 새번역)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계 11:6, 새번역)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 11:7, 새번역)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아비소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계 11:8, 새번역)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곧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계 11:9, 새번역)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 두 예언자의 시체를 볼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 11:10, 새번역)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 시체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이 두 예언자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계 11:11, 새번역)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나와서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 ㉡또는 '영이'
(계 11:12, 새번역) 그 두 예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는 큰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내게로'
(계 11:13, 새번역) 바로 그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 도시의 십분의 일이 무너졌는데, 그 지진으로 사람이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은 두려움에 싸여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계 11:14, 새번역) 둘째 재난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 재난이 곧 닥칠 것입니다.
(계 11:15, 새번역)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 ㉣또는 '메시아’


비유 비밀을 해석하겠다 라고 달려드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 죽여버리는 겁니다
비유란 해석하닌게 아니라 그냥 해석 당하는 선물입니다
믿음은 내가 믿는게 아니라 믿음이 나에게 들어오는 선물입니다

그러니 왜 찢는지 라는 이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죄가 왜 들어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말이죠

죄를 죄 되게 하기 위해서 죄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들어온 죄를 통해서 성전의 기능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걸어다니는 성전 사람의 손으로 지을수 없는 참성전의 기능인 의사기능
곧 더러움애서 거룩으로 옮기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이죠

의인 그냥 의인이 되겠냐 말이죠 율법 지켰다 라는 행함을 강조할거 아니겠습니까
남을 7번 용서했다는 둥 이레에 두 번 십의 일조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의가 안 나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도 않아요
주님이 만드신 환자 주님이 만드신 죄인이 아니거든요
주께만 범죄한 자가 아니다 보니
고통받는 메시아를 모르고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누군지 모른다 라는 겁니다
그저 마귀의 세가지 시험처럼 나의 살아있는 생명에 딱 맞는 메시아가 되어달라고 하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나 이런 메시아 되어주세요나
바벨론 왕의 점괘나
우리가 평상시 기도하는 남 7번 용서, 십일조 이레에 두 번금식,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는 이것이 음행을 제거했노라 하면서도 음행이 가득한
바벨론 왕의 점괘나 점쟁이 찾듯이 기도하는 것이나 다 똑같다 말이죠
죄 안 지었는데 그것만 우길 뿐이지
죄가 들어오는
인간이 죄 짓나 안짓나에 달린게 아니라
죄가 인간들 다루느냐 숙주로 삼았느냐 들어온거냐 나가느냐에 대한 문제를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식입니다

그러니 그 비밀 그 비유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라고 없애도(바로 위에 올린 계시록의 두 증인 죽여버리기) 
다시 나타나면 그 죽음이 소용이 없는 거죠 사망아 도대체 누굴 쐇니
분명 쏴서 죽였는데 다시 일어나면
총이 화살이 무기가 아무쓰잘데기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죄 보다 사랑이 더 강한겁니다
다시 나타낭께
그 비유 죽여도 또 다시 살아나니까
그럼 이제는 안 보면 그만이지 뭐 무시하면 그만이지 뭐
마치 새롭게 무시하는냥 애초부터 무시햇거든요
처음부터 여호와가 누군지 창조자가 누군지 몰랐으면서 말이죠
다시 산 자는 창조주와 함께 하는 자 밖에 없어요

거부하고 십자가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 안 보면 되지 라고 해도
이 십자가 라는 구원의 뿔이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의 속내를 자꾸 수셔대는 겁니다
다리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실족케 만들고 말이죠
바벨론 왕의 점괘가 옳도록 만드시는
어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말이죠

물 위를 걷는 베드로 팍 다리 걸어 넘어뜨려 실족케 만들어
물에 빠져 죽도록 아니 물 위를 걷는 것을 자랑할려다가
물 속에 빠져 죽는 발가벗겨짐 웃사꺼리가 되니까
그러니 이 바벨론 왕 독수리 이 풍랑 이 사탄이 가시가 아니면
주님은 영광 안 받는 겁니다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아요 글쎄
즉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겁니다

계시록 올린 구절에서 일곱 번째 전 까지의 여섯 번째 까지는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 여섯 번째 날까지 도는
우리를 찢으시는 우는 자 만드심처럼 보입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다 라고 뺑뺑이 도는

죽으면 죽으이라 라는 자기부인으로 만드시는 종말의 때 성령의 때입니다
나의 때가 역사가 날라가는 날입니다
그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되는
일곱 번째 날은 이제 싸매어 주시는 나팔 뿌뿌뿌 하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날입니다

그 무능의 자리
그 백성 아닙니다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그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 로암미 로루하마(안긍휼) 이스르엘(버림받은)
그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는
단절을 거쳐서 나온 이 화목제물 만이
우리의 음행 곧 음행을 제거한 나 옳았지요 라고 우기는 그 음행을
제대로 제거하는 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하나님의 의 앞에
나의 의 쌓기는 제대로 찢겨짐으로써
바벨론 왕의 점괘나 우리의 의 쌓기나 똑같은 음행이기에
그 사망의 비밀을 거쳐서 생명의 비밀을 보니
뭘 해도 이미 죽어있는 자 임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봄으로써
왜 내가 달려야 할 그 자리에 왜 주님이 달리십니까
생명은 당신 뿐인데 라고
정녕 죽으리라 라는 저대로 된 절대 죽음을 보고서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제대로 된 절대생명을 보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 죽음의 비밀 그 생명의 비밀에 끼일수 없고
도리어 당함으로써
절대죽음과 절대용서 생명을 베푸시는 이 간극 이 공백에서 나온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오홀리바 언니 오홀라 사마리아 보다 더 더 더 더러운
여동생 예루살렘 오홀리바의 자궁 속에 자궁으로써
허다한 허물을 죄를 씻기시는 더더더 더러운 죄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감당하신
이 언약의 정신 언약의 줄로써만
밀어붙이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동원이 된 겁니다
우리는 벌써 죽어고 남았어야 하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 라는 것은
죄 지으라고 남아 있는 겁니다
그 죄인의 자리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고 하시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죄를 죄 되게 하시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런 관계성을 거부하고 나 개인을 뚝 떼어서
나 라는 개인을 의롭게 만드는데 있어서 언약정신은 반대로
십자가는 그야말로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라고 볼륨 이빠이 틀어놓고서
이 십자가를 방해하더라 말이죠

저들의 이스라엘 곧 계시록에 의하면 
두 증인을 두 기능 참성전의 기능 몸과 때를 날리는
이 두 기능을 없애버릴려고 점친 날이
그 원수의 목전에서 죄인으로써 붙잡힌 이스라엘 몰살의 제비뽑기로 정해진 날
곧 심판의 날
나의 죄로 죽어야 할 날이 곧 나의 구원의 날이 되는
죄를 짓는게 아니라 죄가 들어온 날을 삭제 시키는 생명이 들어오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래서 포로된 날 백성이 아니다 라고 한 날이
오로지 화목제물의 공로로
구원의 날이 됨에 있어서
세상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아니 죄인인데 왜 용서하냐 말이죠
그러니 미치고 팔짝 뛰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말살의 날 끝 종말 말기 마지막 때의 날이 
도리어 우리의 구원의 날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심을 당하는 날이 되는

바로 이 화목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랑만 원수사랑 죄인사랑 환자용서의 날로만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도리어 의인들이 광명한 천사의 가면을 쓴 자들이
이 십자가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에 다 넘어져서 반발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마지막 아담이 오심으로써 살려주시는 영이 오심 때문에
우리 아담은 이 아담 말살의 날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심을 당하는 날에
진짜 인간

그러니 인자는 그럼 신이냐? 하나님이냐? 아니다 말이죠
하나님의 아들 이다 말이죠 즉 화목제물이다 말이죠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써 그것도 죄인
인간 취급도 못받는 죄인으로써

하늘 영광 버리고 오심으로써
모든 인간은 이제 가짜 인간으로 드러났고

인간이 믿는 신은 다 가짜 신으로 드러난
진짜 하나님이시다 말이죠

두 증인 당연히 율법의 대표자 모세이고 죄를 죄 되게 만드는 찢는 기능이고
당연히 엘리야 다시 오실 엘리야가 당신 입니까 라고 할 정도로
선지자의 대표 곧 종말의 때 시간 역사를 박살내는 기능이 선지자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아 율법이 대표 모세 라는 제사장 기능은 몸 공간을 찢는 기능이고요

그러니 인자는 이 두 기능을 담은 모든 허물을 담는 신체 몸 박스로써 몸 공간을 찢겨짐을 당하고
종말 새영 새마음의 때 
때란 인간의 공들여 시간을 들여 쌓은 의를 찢고 거부하고
주님의 완료 라는 끝을 땡기는 안식의 주인으로써 역사 시간을 찢는 묵시로써 완료로써
미완료가 없는 또렷한 이 사랑의 완성 율법의 완성 다 이루었다로써

그 인자로 비밀 비유로써 정녕죽으리라 와 정녕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죽음과 생명으로 오셨다

즉 죽어야 하는 죄인으로써 오셨다
그 죄인이 참 인간이더라 말이죠
나머지 모든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 건강하다고 우기는 의인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참인간이 없어요
그러니 죄가 들어간 숙주가 된 죄인에게
더 한 죄인으로써 오셔서 죄가 나가도록 하신 이 화목제
모든 육체를 공간을 몸 장소 공간을 찢는 더더더한 몸 더한 죄인으로 오셔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이 인자의 기능을 다 이루었다 말이죠

정작 모든 아담은 죄인 안 될려고 의인될려고 하는데
주님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의 자리에서 버림받았다 말이죠
내 아들 아니다 고아다 말이죠
로루하마 긍흉히 여기심을 받지 못했다 두 번째 마귀 시험 종교적으로 
사랑받는 아내가 아닌 버림받은 과부 온갖 저주를 막아줄 남편이 없는
로암미 백성 아니다 인간 아니다 섬기는 임금이 없어서
나라 없이 떠도는 떠돌이 나그네 이방인으로 취급 받았는데

그 분이 도리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였고
그 분이 긍휼을 베푸실 여호와 였고
그 분이 이방인의 구세주로써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는

누가 믿었으리요 즉 안 믿져지는 겁니다
누가 저 분만이 참인간으로 보이겠습니까
인간은 모두다 자기가 인간이다 라고 여기지
짐승으로 원수로 죄인으로 환자로 여긴다면
저 분만이 참 인간임을 거울로써 십자가로써 언약으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볼 텐데
본다고 하니 소경이니까 안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신입니다
인간은 단 한버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어요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새긴 그런 자기의 행위만을
신으로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신이 나타났다 빨리 퍼뜩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신이 아님을 들통당하고
자기가 인간이 아닌 마귀임을 들통당하게 되어 있다 말이죠

그 당시 제일 존경받는 이스라엘 선생이자 지도자인
바리새인을 악마 취급 하시는 분은
예수님 딱 한 분 뿐입니다

이런 또라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다들 존경하는 선생 취급하는데
(또라이란 법을 거부하고 지킬줄도 몰라요 오로지 법을 완성해 버리는
사랑만 추구할 뿐입니다 모든 경계선을 허물어 버리는 돈키호테와 같아요
아 그래서 죽은 신 니체가 말한 유럽의 신화 이야기를 인용해서 만든
그 죽은 신을 다시 지젝은 또라이를 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유일한 딱 한 사람만이
이 바리새인을 마귀로만, 독사의 자식으로만 대하시는데 바리새인이 안 죽이고 베기겠습니까?
다들 자기들을 다 존중하고 있는데 유독 예수만 저러고 있으니 바알세불 걸린 대 마왕 맞지 않냐 말이죠

아니 자기 의를 쌓는 유대인들의 멘토 길인도자를 소경으로 하루 아침에 말이죠
바로 이렇게 상극으로 극과 극으로
자가 의를 쌓는 자의 대표성인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으로 취급하시면서까지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의를 대 놓고 공격하심에 있어서
예수님만 주장하시고
예수님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시지
다른 이는 없다 라고 취급해 버리시는 겁니다

예수님 본인이 바로 하나님의 의 곧 찢겨지시고 다시 부활하시는
참성전 그 자체이신
세상의 중심이시니까
모든 입을 다물게 하시는 분이시니까 말이죠

이 주님의 십자가의 의에 의해
매일 매일 나의 의로움이 공격당함으로써

오로지 나를 나의 표상으로 내가 나를 낳는 나의 증상물이 아닌

오로지 오실 자의 표상
마지막 아담이라는 살려주시는 자의 영을 받은 자로써의
살려주심을 당한 오직 화목제물의 증상물로써
우리를 매일 매일 죽이시는 아담
날로 날로 겉사람을 죽이시고
속 사람을 날로 날로 새롭게

예수님을 나타내시는 자로 증상물 오실자의 표상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다른 복음 
다른 기쁜 소식은 없으니
하나도 안 기쁘니
아니 숙제 안 적도 없는데 정답이 찾아와서 무시험 합격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것에
가장 악날한 그 다윗이 말이죠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모른다고 했던 그 베드로가 말이죠

예수님을 죽이는데 총감독 연출을 맡았던 그 사도바울이 말이죠

그런 죄인 중의 괴수가
불의한 자의 자리에서
오로지 이 첫사랑 처음맹세만을 증거하기로
십자가만 알기로 한 겁니다

나의 죄를 대신 해서 죽으신 
하나님의 저주인 심판을 받은 자는 예수님 뿐이기에

다른 사랑은 없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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