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 광야(죽음 속에서 꺼낸 사랑)에서 맺은 첫 언약대로만 (호 2,14-2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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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 하늘, 땅, 모든 피조물에게 응한 첫맹세 광야(사랑)에서 맺은 언약대로만 (호 2,14-23)

주신 것 도로 빼앗는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리라) (호 2, 8-13)
호세아 2023 2023. 8. 27. 07:40
23-04 준 것 도로 빼앗는 징계의 여호와의 사랑(누구인지 알리라) (호 2, 8-13)

〈호세아 2,14-2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8쪽, 찬송가 021장 새 021 다 찬양하여라, 378장 새 597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찬송가 021장 새 021 다 찬양하여라〉

1. 다 찬양하여라 전능왕 창조의 주께 
   내 혼아 주 찬양 평강과 구원의 주님 
   성도들아 주 앞에 이제 나와 즐겁게 찬양하여라

2. 다 찬양하여라 놀라운 만유의 주께 
   포근한 날개밑 늘 품어 주시는 주님 
   성도들아 주님의 뜻 안에서 네 소원 다 이루리라

3. 다 찬양하여라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이 세상 만물이 주 앞에 다나와 찬양 
   성도들아 주님의 뜻안에서 영원히 찬양하여라    아멘


〈호세아 2,14-2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8쪽〉

(14)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찬송가 378장 새 597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1.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영광의 주님을 비방했다 
   지극한 그 은혜 내게 넘쳐 날 불러 주시니 고마워라

2. 나 받은 달란트 얼마런가 나 힘써 그것을 남기어서 
   갑절로 주님께 바치오면 충성된 종이라 상주시리

3.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와라 이 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4.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호 2:14, 현대어) [사막에서의 종교 개혁] 그러나 나는 다시 그녀에게 구애하여 사막으로 데리고 나가 다정한 말로 위로하리라.
(호 2:15, 현대어) 내가 거기서 그녀의 포도원들을 되돌려 주고 온갖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바꾸어 주리라. 그러면 그녀는 기뻐 노래 부르며 내게 응답할 것이다. 마치 그녀의 젊은 시절, 애굽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내가 그녀를 해방시켰던 그 옛날과 같이 기쁘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호 2:16, 현대어) [정조를 회복하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날이 오면 그녀는 나를 '나의 주인'이라 부르지 않고 '나의 남편'이라고 부를 것이다.
(호 2:17, 현대어)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네 우상들을 떨쳐 버리게 하리니 다시는 아무도 그 우상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리라.
(호 2:18, 현대어) [평화의 새 계약과 창녀의 결혼] 그때에는 내가 너희와 들짐승들과 새들과 뱀들 사이에 계약을 세워 서로 다정하게 살도록 하겠다. 또 모든 무기를 부수어 전쟁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여 너희가 평화롭고 안전하며, 걱정 근심 없이 편히 잠자리에 들게 하겠다.
(호 2:19, 현대어) 또 나는 정의와 공평, 사랑과 긍휼을 예물로 주고 너를 영원히 아내로 맞이하며
(호 2:20, 현대어) 진실과 사랑으로 너와 결혼하겠다. 그때엔 네가 나를 참으로 알게될 것이다.'
(호 2:21, 현대어) [응답하는 미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날이 오면 비를 기다리는 대지의 호소에 하늘이 응답하고,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청원하는 하늘의 간청에 내가 응답하겠다. 그러면 습기와 이슬을 얻고자 부르짖는 오곡백과의 목타는 호소를 대지가 들어줄 수 있으리라. 천지의 대합창단이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고 함께 노래 부르며 '모든 것을 주신 이는 그분이시다!'라고 찬양할 것이다.
(호 2:22, 현대어) 그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곡식의 씨를 뿌리고, 몸소 그들을 키우겠다! '불쌍히 여김받지 못하던'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내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내 백성이다.'라고 이르겠다. 그러면 그들이 '주님이야말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응답하리라.'
(호 2:23, 현대어) (22절에 포함됨)

(롬 9:25, 새번역)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 ㉭호 2:23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개역)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개역)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24, 개역)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먼저 개유 라는 말이 낯설어서 다른 번역을 보니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 2:14,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 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호 2:14, 공동)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꾀어내어 빈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주리라.
(호 2:14, 쉬운)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녀를 꾀어서 광야로 데려가 다정하게 말해 주겠다.
(호 2:14, 킹흠정)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끌어당겨 광야로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위로하는 말로 이르고
(호 2:14, 현대인)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로 잘타이르고
(호 2:14, 현대어) [사막에서의 종교 개혁] 그러나 나는 다시 그녀에게 구애하여 사막으로 데리고 나가 다정한 말로 위로하리라.


꾄다 라는 표현이 많은데
막상 인터넷으로 검색한 사전에서의 내용은

개유: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이름. (어휘 명사 한자어 )

으로 나오더군요

현대어 번역 소제목에 (호 2:14, 현대어) [사막에서의 종교 개혁] 라고 했는데
이 사막이라는 죽음의 장소가 바로

개유하고 타이르고 다정한 말로 위로하고 구애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라는
이 사랑의 의미가 바로 광야 라는 겁니다

우찌 광야 라는 빈들이 거친들이 어떻게 사랑의 장소가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오늘 본문에 나온 바알의 장소인 땅의 원리 속에서
음부의 권세 속에서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깃발을 꼿은 이 사랑의 장소로써

이 바알이라는 땅의 신 땅의 원리가 작동하는 곳에
이 스올 지옥 그 무저갱이라는 요나서의 큰 물고기 뱃속 깊은 어두운 바다 속에서

사랑의 장소를 마련하신 그 광야언약 대로만
처음 맺은 언약 대로만 첫 맹세대로만 첫사랑 대로만 밀어붙이시는

이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시는 이 공백만들기 빈터만들기가
소위 예식장 결혼식장 시내산에서 언약을 들고 내려온 모세처럼
상대적으로 인간들은 시내산 밑에서 여호와의 이름과 금송아지를 합친
땅의 신을 믿는 판국에 말이죠

그러니 이 언약대로만 광야 언약 첫사랑 언약대로만 밀어붙이심 앞에서

모든 무릎이 꿇는

이 첩경을 평탄케 하시는
이 평탄 이 평화 라는 불도져 밀기는 왕 만이 이루고
왕 만이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는 이 공의를 이루신다 라고 했지요
지난 번의 왕관을 제거하고 면류관을 벗기는 에스겔 말씀을 통해서 말이죠


(호 2:16, 개역)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 2:17, 개역)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호 2:18, 개역)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들짐승 공중의 새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

이 말씀은 이사야서의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완료로 선언해 버렸다 말이죠

(사 43:19, 개역)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20, 개역)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21, 개역)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또 땅에서의 활과 칼을 꺽는다 전쟁을 없게 하겠다
이 말씀은 보습을 친다 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호 2:18, 개역)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사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 2:4, 쉬운) 주께서 나라들 사이를 재판하시고, 많은 백성들을 꾸짖으신다. 나라마다 칼을 부러뜨려서 쟁기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만들 것이다. 다시는 나라들이 서로 칼을 들지 않으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욜 3:10, 개역)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미 4:3, 개역)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칼 창 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방인의 무기인 거죠 곧 바알의 무기입니다
땅의 신은 이런 땅의 원리가 다 포함 된 겁니다

여기에 주님의 무기는 뭡니까 칼과 반대되는 쟁기 보습 땅을 골고루 평탄에 갈아버리는 겁니다 불도져로 미는 거죠
높은 놈 낮은 놈 없도록 말이죠 모조리 다 빈터로 만드는 겁니다 1층 0층


그리고

(호 2:21,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호 2:22, 개역)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하늘은 땅에게 땅은 땅의 소산물에게 또 이 땅의 소산물들은 이스르엘에 응한다 라고 말이죠
이스라엘 아닙니다 이스르엘입니다 저도 잠시 잘못 봤습니다
(
(시 1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개역)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 19:3, 개역)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5, 개역)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 19:6, 개역)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 19:7, 개역)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개역)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개역)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개역)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개역)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개역)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개역)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4, 개역)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어리석은 이 처음자리인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이스르엘에게 응한다 말이죠
무엇이? 첫맹세 첫언약이 곧 하늘의 선포, 궁창에 나타나심,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지식 곧 사랑을 전하고 언어도 없는데 소리도 없는데 텅텅 비어있는데 온 땅에 통하고
이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죽음이 마지막 아담이 죽은 자 아담을 살려주시는
이 이스르엘 자리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는 이스라엘로 삼으시는
이 사랑만 이 피신랑의 피 언약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하나님이 씨를 뿌렸다 즉 버렸다 라는 뜻의 이스르엘 말이죠

그리고 두 동생 이름이 바뀌죠

(호 2:1, 현대어) [동생들의 이름을 고쳐라] 오, 이스라엘아, 네 아우와 누이의 이름을 고쳐라. 네 아우는 ㄹ) 암미라 부르고, 네 누이는 ㅁ) 루하마라고 불러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ㄹ. '이제 너는 내 백성(자식)이다'라는 뜻. ㅁ. '긍휼을 받은 자'라는 뜻)

이스르엘에게 응함으로써 뭐가? 첫맹세 곧 광야에서 맺은 처음언약
누구에게 처음 자리인 이스르엘
이스라엘이 아닌 처음자리 죄인의 자리 이스르엘에게 응하니까 이스라엘로
그리고 로암미가 암미로  로 라는 것은 아니다 라는 낫씽 인 거죠
그리고 막내 로 루하마가 로 빼고 루하마로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광야에서 맺은 언약이지
곧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는 이 하나님의 의에만 예수님이 복종하셨거든요
이 믿음 바로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으로만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로 공짜로 많이 참아주신 대신 죽으신 그 사랑인 첫맹세대로인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만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곧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맺은 언약이지

행함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자 그러니

유대인 만이 아니 모든 인간은 선악의 법적이라서
행함을 따집니다 아 그러면 우리가 악을 행해야 하나님이 선해 지겠네? 라고 비웃죠

바울은 우리의 불의함이라는 처음자리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 자리에서
처음사랑 첫맹세 라는 광야에서 맺은 언약을 비로소 봐야
빈터가 되고
공백의 자리로 만드시는
이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 곧 사랑을
이 원수를 사랑한 율법의 완성을 보는데

또 인간들은 행함으로 따지다 보니
율법의 행함으로 해보니 법에 의에 이르지 못하더라 라는 겁니다
못 하는 것을 가지고 백날 따져본들 답이 안나오는 의문만 반복하는 거죠

그러니 율법의 행위 라는 표현을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과 자꾸 대조를 합니다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8, 개역)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3:2, 개역)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 3:5, 개역)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 3:10, 개역)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자 이런 판국임에도 붉두하고 왜 오늘날 교회는 자꾸 성화론을 주장하는지
그것은 바로 바알 신이라는 땅의 원리를 심고있는 겁니다
바알종교인 거죠

그래야 그것이 무기가 됩니다 법 지킨 것이 그러면 상대방을 제압하죠
네 맞아요 성화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곧 행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노예로 삼겠다 라는 일종의 가스라이팅 세뇌요 마약인 겁니다
안그러면 교회 질서 파괴 된다 라고 자꾸 징징 거리는 겁니다
갑자기 교회 헌법을 만들겠다고 했던 장로가 생각나네요
우와 깡패다 범죄도시 대사인데 범죄소굴이더라 말이죠

문제는 그들이 설명을 못하는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은 또 설명을 못해요
믿음을 역시나 행함으로 설명을 하더군요
그런 유대인이 법이 못 이르렀잖아요
성화 행함 주장하는 놈들 다 못 이르른 것 다 뻔히 보이는데
이상하다 뭔가 접근을 못하도록 막는 결계라고 할까요? 경계선을
목사 뿐만 아니라 장로 집사 주변인들이 목사의 아우라로 경계선 치는 것으로
보디가드 역할을 하더라 말이죠
마치 장자 애굽 장자의 죽음을 막고자 애굽의 10개의 신들이 보디가드 역할 하듯이 말이죠

몇 년 전에 이제 이것도 한 물 간 이야기 이지만
총신에서 데모가 일어나니까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보디가드로 삼았더라 하던데
학생들만 고생한 거죠 뭐

아무튼 이 율법의 행함 행위와 반대되는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 곧 용서로 말미암은 사랑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이것을 설명을 못해요

(롬 4:16, 개역)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롬 5:2, 개역)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12:3, 개역)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6, 개역)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고후 8:7, 개역)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엡 2:8, 개역)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구절에 어디 율법과 행위가 끼어들어갈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지은 교회 곧 바알산당들은

기여이 또 법을 집어넣고 선악을 집어넣더라 말이죠
그러니 빼박 어쩔수 없는 강도의 소굴이더라 말이죠
제가 거쳐본 교회들이 다 그래요 안 그런 교회가 없어요
그래도 희망을 가지겠끔 안 그런 교회 있을 거 아니겠냐
아니 없어요 없어야 빈터인 광야교회로 삼으신 겁니다
본인을 교회로 삼으심을 누리지 못하는데

(고전 6:19, 개역)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5, 개역)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6:16, 개역)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 6:17, 개역)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 6:18, 개역)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 6:19, 개역)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개역)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올바른 교회를 찾아서 뭐하게요 ~~~~~

있다 칩시다 빈터인데 공백인데 있을리 없지만 있다 칩시다
(제가 실제로 그런 교회이다 라고 자부하는 교회를 다녀봤다 말이죠
하도 친척이 와서 손가락 까딱 안해도 된다 라고 해서 말이죠
처음부터 아니던데 왜 자꾸 우기는지 끝까지 속이더라 말이죠
가장 경건하다고 소문난 한국에서 가장 성화된 교회라꼬 말이죠)
또 더럽히고 또 산당을 세울려고요? 자기 의를 쌓을려고요?
가증한 물건을 세울려고요? 성전에?

(마 24:15,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막 13:14, 개역)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우상숭배를 대 놓고 노골적으로 하더라 말이죠

인간 자체가 우상덩어리입니다 바알 그 자체입니다 
땅의 원리만 가득 모아서 자기영역 만들기 만 할 뿐입니다
뭐 열린교회(그 당시 유행하던)를 반대하고 
상대적인 닫힌교회(유행을 안 따른다고)를 표방한다 라꼬 ~~~

그 자체도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을 말하고 있지 않죠
그저 율법의 행위만을 따지니 자기들의 행함을 주장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말하게 되면 미친놈 취급받거든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행함
그리고 실천 이런 것을 보여줘야 사람들을 세뇌 가스라이팅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믿음을 신뢰를 주게 되거든요 그렇게 장악하는 겁니다

자 이 부분은 우리 로마서에서 다시 나누도록 하고요
호세아서로 돌아와서

에이 뭐 그냥 길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이 바로 결론을 언급해 버리면

(호 2:23, 개역)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고 하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기의 의에 순종하는 자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은

이 왕의 면류관을 거부하고
자기가 이겨서 의를 쌓는 그 왕관을 하나님 됨을 바알신과 한몸이 된 것을

도리어 자기 꾀로 인해서 무너지도록 만드시겠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첩경 높은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는 이 첩경을 평탄케 평화로 이루시는
이 왕의 전쟁이 있는데

바알과 한 몸으로써 쌓은 무기 달그닥 거리는 이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으로 잔칫집을 남의 것 빼앗고 전쟁을 통한 노예삼기로 일삼은

이 사망의 왕노릇 바벨론 왕의 왕노릇 바알신의 왕노릇이라는
이 칼과 창의 끌어모으기 왜? 노예확보이니까 말이죠

현대의 자본은 결국 노예확보인 인간확보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구독자를 많이 늘리는가?
사람 자체가 돈이 되는 겁니다
그 돈을 많이 끌어모으는 것이 바로 바알종교이다 말이죠 
거기에다가 금송아지에 여호와의 이름을 새기듯이
바알과 여호와를 섞어넣은 오늘날의 기독교처럼 말이죠
말이 하나님을 믿는 거지 돈을 섬기는 두 주인을 섬기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이 깨달아서 한 말이 아니라
주님이 알려주신 표현인 겁니다 섞었다 라고
인간이 세뇌 당한 입장에서 섞은 것을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긴다 라는 것을
때려죽어도 말 못합니다

말하는 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임을 아는
빈자리가 된 자
광야가 된자
많이 탕감받은 자 만이
많이 사랑하는

사랑 곧 용서받은자만이 표현한다 말이죠

이제는 저런 표현도 즉 성령의 고백 아닙니까 놀라운 탄식 아닙니까
그 놀라운 탄식도 또한 바알과 섞어버리는 겁니다
그게 순복음 아닙니까 성령운동
얼마전에 탈북한 애기엄마가(전화기 너머로 애기 울음이 들려서리, 조카일수도 있겠죠) 
신사도운동 순복음쪽에서 분파된
예슈아 이단 쪽에서 연락왔던데
뭐 밤새도록 글을 읽고 울었다 라고 하던데
그 울음이 졸지에 무기가 되다 보니
예슈아 집단에 들어오라고 도로 전도하더라 말이죠

그런 바알종교 라는 칼과 창 오늘날로 치면 부자 예수님 당시에는 이 부자를
그 당시에는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봤던 그 보편적진리를 박살내서
쟁기와 낫으로 평평하게 만드는 이 하나님의 의를 펼치신다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돈과 예수님을 두 주인으로 섬길려는
오늘날 교회들인 이 바알종교를 반드시 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라고 우기는 자들을

(호 2:22, 개역)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이스르엘 자리에서 처음자리
곧 고아 과부 나그네
눈먼자 갇힌자 포로된 자
앉은뱅이에게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 자에게
흑암의 백성 지옥의 백성 개같은 이방인 갈릴리에게
곧 이스르엘 하나님이 버린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 맞다 라는

이 앞뒤 모순된 이 하나님의 의로만 높은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는
먼저 된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 먼저 되는
창기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가는
이 팔을 어긋맞게 하시는 이 하나님의 의 라는 불도져 빈터만들기로써만
하나님의 원수 만들기 로써만

이 광야에서 맺은 언약 곧 사랑의 언약
십자가의 언약을 이루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사랑(광야, 빈터, 공백 빈자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무기 달그닥 거리는 것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사랑 곧 남을 7번 용서가 아닌 이거는 유대인 무기이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십자가 라는 7에 70번의 용서인 사랑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무기인 겁니다

이 십자가의 언약만을 남기고 모조리 다 빼앗는 겁니다

이 십자가 때문에 이 피흘리심 이라는 광야 광야 3일길 어린양의 죽음이라는
초상집에서 광야에서 맺은 언약만이

창조주의 사랑으로 창조하신 원리인
반드시 바알신의 땅의 원리를 깨부수시는 원리인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바알신을 남편으로 둔 고멜의 자리에서
이 남편인 바알이 박살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내가 니 본래 남편이다 너의 본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이 고멜아
이 고멜의 자식인 이스르엘아

너 이스르엘 자리에서 나의 광야언약이 펼쳐졌다

그러니 이 모세언약인 율법은

타 죽이고도 남았는데 억수로 봐준 누구 땜에
마지막 아담 땜에
그래서 불이 붙이도 안 타죽도록 했는데
즉 이 말은 왜 안 죽죠 라고 율법을 통해서 봐야 하는데
도리어 남 죽이는 무기로 삼아서 자기 잔칫집
자기 의를 쌓기를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율법 지켰다 음행을 제거했다 라고 자부하는 그 모습이 도리어
음행인 모습을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치는 그 다윗왕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임을

율법의 올무에 걸려든 겁니다
그 지적을 통해서 비로서

용서를 구하는 상한 심령으로써
광야 라는 처음자랑 첫맹세의 언약으로

이 언약대로로만 밀어붙임을 본인이 하나님의 원수 자리에서 외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죄수복을 입고서 말이죠
특별사면을 외치는 겁니다

죄수복을 어떻게해서든 빨리 벗어버리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게 아니라
그래서 자꾸 성화론을 해야 한다고 우기는 겁니다
왜 쪽팔리니까
멋들어진 구원이 되어야지 부끄러운 구원이 되면 안된다 라고
또 경건의 모양을 우기지 왜 그게 흠모할 모양이 있는 권력이니까 말이죠
아름다운 풍채가 있다고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 는 싫어버린바 된 흠모할 모양이 없는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는 겁니다
오죽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자리에서는 이 율법의 완성인 원수도 사랑하는 이 사랑을 못보고
자꾸 자기 유익으로 끌어와서 또 구원의 조건을 갖출려고 하니까 말이죠

그게 또 잔칫집 바알종교의 무기가 아니고 뭡니까 또 인간의 믿음은 살인의지
칼과 창을 의지하는 것 아닙니까
울리는 꽹과리 무기가 달그닥 거리는 소리 아닙니까
육의 자랑을 멈출 수가 없거든요

그거 불도져로 밀어버리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불에 칼에 무너뜨림을 당해서

이스르엘 자리에서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는
이 말도 안되는 앞뒤 모순을 통해서만이

마귀가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겁니다

천한 계집종을 고멜 창녀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
예수님의 신부의 자리 왕비의 자리에 놓아야
마귀가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는 마귀가 박수를 칩니다
솔로몬의 재판을 마귀가 박수를 치잖아요
격동하지 않아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이 빈자리에서
첫맹세 사랑을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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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9 사망의 왕 노릇(죄)을 꿰뚫는 은혜의 왕 노릇 (롬 5,14-16)

아담(환자)은 오실 자(살려주는 의사)의 표상(증상) (롬 5,12-14)
로마서 2022 2023. 9. 2. 14:46
22-028 아담(율법 있기 전의 죄,모친의 죄로 낳은 다윗,사망의 몸,원수,연약함을,문제아)은 오실 자(다윗 자손)의 표상(해석,정답,증상물) (롬 5,12-14)

〈로마서 5,14-16, 개역한글 신약성경 246쪽, 찬송가 101장 새 080 천지에 있는 이름 중, 474장 새 486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471 474  10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찬 101)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찬 474)

〈찬송가 101장 새 080 천지에 있는 이름 중〉

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2. 주 십자가에 달릴 때 명패에 쓰인 대로 
   저 유대인의 왕이요 곧 우리 왕이시라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3. 지금도 살아 계셔서 언제나 하시는 일 
   나 같은 죄인 부르사 참 소망 주시도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4. 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그 이름으로 우리게 참 복을 내리신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아멘


〈로마서 5,14-16, 개역한글 신약성경 246쪽〉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찬송가 474장 새 486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1.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2.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3.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내 주 예수 날 건져 주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롬 5:14, 새번역)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롬 5:15, 새번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롬 5:16, 새번역)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먼저 16절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라는 표현이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느뇨 그렇다] 라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 봤습니다

(롬 5:16, 개역)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롬 5:16, 새번역)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롬 5:16, 공동)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아담의 죄는 그 효과에 있어서 서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은총의 경우에는 죄지은 많은 사람이 은총을 거저 입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롬 5:16, 쉬운) 또한 하나님의 선물과 아담의 죄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심판이 오게 되고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했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많은 범죄 때문에 오게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의롭다 함을 받게 하였습니다.
(롬 5:16, 우리말) 또한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인해 생긴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해 정죄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사는 많은 범죄로 인해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됩니다.
(롬 5:16, 킹흠정) 또 이 선물은 죄 지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심판은 정죄에 이르렀으나 많은 범죄로 인한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칭의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롬 5:16, 한글킹) 또 그것이 범죄한 한 사람에 의하여 비롯된 것과 같지 않은 것처럼 그 선물도 그러하도다. 이는 한 사람으로 인한 심판은 정죄에 이르지만 많은 범죄로 인한 값없는 선물은 의롭다 하심에 이르기 때문이라.
(롬 5:16, 현대인) 또 거저 주시는 이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생긴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지은 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많은 죄인들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롬 5:16, 현대어) 아담이 저지른 한 번의 죄가 많은 사람에게 죽음의 형벌을 가져다 준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값없이 많은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생명까지 주십니다.
(롬 5:16, 가톨릭) 그리고 이 선물의 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 한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 왔지만, 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마치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 이라는 표현의 무한반복처럼 들립니다
이 십자가의 피 용서만을 무한반복 하시겠다 라고 말이죠
구원 그 이후 라는 것이 없다는 거죠 매일 매일 구원을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매일 매일이 처음자리요 매일 매일이 첫사랑 처음맹세대로만 이다는 겁니다
내 중심의 시간은 없고 시간 자체가 인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안식의 주인만이 쉼을 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다른 것으로는 쉼이 평안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에스겔 호세아를 반복하듯이
죄 아래 가두고자 고멜 창녀 죄인 만드시고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 만드시고
백성 아니다 라는 그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고 하시는 이 은사
이 은총 이 선물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으로 불도져처럼 밀어붙이시겠다는 겁니다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시는 이 첫 맹세대로만 밀어붙이시고자
공백 만드신다 라는 겁니다
빈자리 곧 하나님의 원수 만들기를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많이 탕감받는 자가 바로 오실자의 표상으로써 많이 사랑하듯이 말이죠

또 로마서 3장 5절 우리가 반발하는 아마 성화론자 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다 반대하는 이 구절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 놓여진다 라고 했다 말이죠
나를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나를 제대로 구원하시겠냐 말이죠
뭐 죄를 다스리는 그 죄의 소원이 나를 제대로 심판하겠습니까?
그래서 왕 노릇이라는 표현이 다스린다 라는 겁니다
주제 주도권이 죄가 인간을 쥐고서 쥐락펴락한다는 겁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의는 바로 그 죄를 꿰뚫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은혜가 왕 노릇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소원대로만 밀어붙이신다 라는 거죠
이 아들은 또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합니다
이 공백이 이 빈자리가 나를 제대로 된 심판을 정녕죽으리라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아들의 혼인잔치를 펼치시는 겁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놓는 이 첫맹세 십자가의 사랑으로만 말이죠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1, 개역)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롬 3:2, 개역)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3, 개역)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롬 3:4,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6, 개역)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 3:7, 개역)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4, 새번역)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 ㉠"주님께서는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인정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실 때에 주님께서 이기시려는 것입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51:4(칠십인역)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4, 새번역)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롬 3:5, 새번역)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롬 3:6, 새번역)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롬 3:7, 새번역)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나도 역시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습니까?"
(롬 3:8, 새번역) 더욱이 "좋은 일이 생기게 하기 위하여, 악한 일을 하자"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비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롬 3:9, 새번역) 그러면 무엇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이 이방 사람보다 낫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롬 3:5, 공동) 우리의 불의가 오히려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느님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말이지
(롬 3:6, 공동)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겠습니까?

(롬 3:5, 쉬운) 내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논리의 방식대로 말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의롭지 못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더욱 밝히 드러날 경우,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롬 3:6, 쉬운)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지 못하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겠습니까?
(롬 3:7, 쉬운) 사람들 중에는 “내가 거짓말을 하여, 그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롬 3:8, 쉬운) 이것은 마치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악을 행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가르친다고 우리에 대해 비난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정죄를 받아 마땅합니다.

(롬 3:5, 킹흠정)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사람으로서 말하노니) 보복하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
(롬 3:6, 킹흠정)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 3:7, 킹흠정) 만일 내 거짓말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풍성하게 되어 그분이 영광을 얻게 되었다면 어찌하여 내가 여전히 또한 죄인으로 심판을 받느냐?
(롬 3:8, 킹흠정) 차라리 (우리가 중상모략을 당하듯이 또 어떤 자들이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주장하듯이), 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악을 행하자,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1, 현대어) 그러면 유대인이 나은 점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무슨 특전이라도 받고 있습니까? 유대인의 할례의식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롬 3:2, 현대어) 그렇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맡겨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또 그것을 행하게 하시려고 한 사실입니다.
(롬 3:3, 현대어) 분명히 유대인들 가운데는 불충실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몇 명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약속을 어기시겠습니까?
(롬 3:4, 현대어) 절대로 그럴 리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ㄴ)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의심을 품는다 해도 언제나 참되고 올바릅니다'라고 시편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ㄴ. 시51:4)
(롬 3:5, 현대어)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것은 잘된 일입니다. 우리의 죄가 선한 목적에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도 악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연히 알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도움을 주는 마당에 우리를 벌하신다면 그게 정당한 일이겠습니까?'
(롬 3:6, 현대어)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눈감아 줄 리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심판하시겠습니까?
(롬 3:7, 현대어) 가령 우리가 거짓말을 해야만 반대로 하나님의 진실성이 더 크게 드러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죄목으로 우리를 심판하여 정죄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롬 3:8, 현대어) 만일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편다면 결국에 가서는 우리가 악하면 악할 수록 하나님께는 더 좋은 일이 된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파멸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개중에는 내가 이런 설교를 하고 있다고 떠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롬 3:3, 가톨릭) 그러면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불성실할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들의 불성실함이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입니까?
(롬 3:4, 가톨릭)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에 당신의 의로움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당신께 재판을 걸면 당신께서 이기실 것입니다.” 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지만 하느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롬 3:5, 가톨릭)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낸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인간의 방식으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내리시므로 불의하시다고 해야 합니까?
(롬 3:6, 가톨릭)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야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롬 3:7, 가톨릭) 나의 거짓으로 하느님의 진실하심이 더욱 돋보여 그분 영광에 보탬이 된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으로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롬 3:8, 가톨릭) 더 나아가서 “악을 행하여 선이 생기게 하자.” 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어떤 자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면서 우리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합당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나타난 불의한 청지기 비유 비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게 하는
그래서 죄인 만들어 버리시는

그리고서는 그 죄를 뚫어 버리시는 이 사망의 왕 노릇을 이기시는
은혜의 왕 노릇

불의한 청지기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지
탕자가 말이죠

자칭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기는 자 빛의 아들들이라고 우기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못 나타내더라 라는 겁니다

(눅 16:8, 개역)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눅 16:8, 현대인) 주인은 옳지 못한 이 재산 관리인이 일을 지혜롭게 처리한 것을 보고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다.


네 맞아요 주님의 의가 의도적으로 불의한 청지기를 자신의 증상물로 삼은 겁니다

아니 너는 내 백성 맞다 라고 선언하실려며는 너는 나의 신부야 어여쁜자야 라고 하실려며는
평상시 나는 주님의 백성 맞아 라는 빛의 아들들에게 선언하심이 옳을까요
아니면 말도 안되는 이 사랑은 원수사랑은 너는 내 백성 아니다 라는 자에게 
인자는 그 행한 일로 옳다함을 받으실까요

마귀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반응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겁니다
저 놈 만큼은 내 것인데 그렇게 공들여서 타락 시켰는데
빼앗기고 전리품으로 삼으시면 안된다 라는 이 반발성
이 살인의지 이 거부감 이 싫어하심만을 주님은 상대로 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선악나무는 마귀를 잡을려고 쳐 놓은 올무요
율법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한 올무인데
뭐 율법 지켰다? 양심을 지켰다? 죄책감으로 반성하고 돌이켰다?
안 속습니다
그냥 이 사망이 올라오는 몸을 밀어버리는 은혜의 몸만을 바라보는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달라고 우는 자 말이죠

그렇기에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나의 구원을 위한 의가 아니라
개인구원은 없고 집단 구원 아 그럼 동아리 만들고 조직체를 구성하면 되겠구나가 아니라
은혜의 몸 새 몸 새이스라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해서 그 집단만 즉 약속의 몸들만
구원하시는 겁니다

정작 예수님은 죄인으로 오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죄인이 되심이 바로 하나님의 의 이다 말이죠

자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죄도 엉터리 죄 이고
의도 엉터리 의 이고 심판을 의라고 하는데 성화론자 치고 심판받아 마땅한 자라고 여기는 자가 없어요
오죽하면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일반인이 하는게 아닙니다
왕비가 해요 왕비 왕의 아내 자리에서 말이죠

왕의 자리는 빈 자리 이다 라는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가장 높은 하나님과 같이 된
그래서 왕의 자리가 비면 안된다 라는 그런 인간이 왕의 자리에 앉고자
왕의 DNA을 누리고자 하는 판국에

정작 진짜 은혜 라는 왕 노릇을 하시는 예수님은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내려오셨다 말이죠
죄인이 되셔서 죽기까지 복종 하셨다 말이죠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셨는데

어떤 놈이 입을 땔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할 지어다
이게 진짜 세상의 중심인 성전인데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그저 자기 높아지고자 하는 성전 뿐이니
그거 박살 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인간들이 교회에서 하는 짓 꺼리를 보세요
서로 누가 누가 잘 났나 라는 싸움 밖에 없어요

그런 자들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아무리 교리로 만들어 놓아도
다 엉터리 인 겁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죄 그런 보편적 진리를 깨뜨리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는
예수님이 죄인으로 오심 만이 죄가 되는 겁니다

아담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것도 마지막 아담
마지막이라는 때
아담을 이전 것을 삭제 시키고자
본인이 죄인으로 오시는
이 죄 만이 죄를 제대로 알려주심인 겁니다

그래서 사망의 몸으로 만들어 버리시는 거죠

인간은 매일 매일 눈만 뜨면 자기 살아있음만을 나타내려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스멀 스멀 매일 매일 올라오니까
평생을 이 죽음이 올라오는 것을 가리고 막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이 죄를
이 죽음을
이 사망의 왕 노릇하고 있음을 안 들킬려고
죽음을 피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 라고 연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자요 의인 이라고 가면을 써야 한다 라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자에게 쓸데 없고
5장 16절 구절처럼 똑같이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롬 5:16, 개역)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인자는 은사는 은총은 은혜의 왕 노릇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의로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거 비유입니다 모든 성경은 비유입니다 이거 흉내 내지 마세요
그냥 막 사세요
죽으면 죽으리라 도 흉내낼 생각 하지 마세요
우리는 왕비도 아닌데 아무리 죽으면 죽으리라 흉내 내어 본들 티가 안 납니다
원래 이미 죽은 자인데 뭘 죽으면 죽으리라 하냐 말이죠
누가 봐도 살아 있는 분 딱 한 분 만이
제대로 된 절대 죽음을 정녕 죽으리라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런 아담이라는 죄인에게
죄인을 부르러 오신
환자만을 부르러 오신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의사만을 드러내고자
우리를 오실 자의 표상 증상물로 삼으신 겁니다 그림자 말이죠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누굽니까?
이스르엘 아닙니까
백성 아니다 라는 자
곧 불의한 자 에게
하나님의 의가
곧 내 백성 맞다 라고 선언해 버리시는 무시험 합격 외치시는
주님이 오셨는데

이 주님이 내 구원을 목적으로 하시는게 아니라
그래서 인간들은 죄도 의도 심판도 자꾸 개개인 적으로 다룰려고 한다 말이죠
그게 엉터리입니다
집단적으로 다룹니다 아담 모든 아담입니다
한 사람 잘못 하면 다 잘못한 것으로 말이죠
그런데 종교가 그렇게 해 버리면 장사를 못 합니다
돈이 되게 만들려며는 마약을 개개인이 살수 있도록 돈으로 
종교를 교리를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말이죠
그래서 개개인의 숙제 로써의 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 종교 교리에서 나온 죄 개념 의(정의, 선함) 개념 심판 개념을

그게 바로 유대교 아닙니까 모든 종교의 대표성으로 주님이 의도적으로
이 마귀의 사탄의 깊이를 거치도록 하시고자 말이죠

구약 말라기 이후에 그 400년 간의 빈공백을 인간들은 견딜수가 없습니다
뭐라도 꽉 꽉 채워 넣어야 한다 말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리새인 아닙니까
완벽한 종교 마약입니다

주님이 일부러 키웠다 말이죠
그들의 손에 죽는 죄인이 되시고자 말이죠

그들 바리새인이 말하는 죄와
오늘날로 치며 성화론자 개혁주의자가 말하는 죄와

죄인으로 오신 예수님이 말하는 죄가 서로 안 맞아요

그럼 의도 안 맞고 심판도 안 맞아요

백날 교리 만들어도 안 맞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뭐 양자 컴퓨터 다 동원해도 만들수가 없도록 하셨다 말이죠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라는 이 말씀 하나 못 넘어서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주가 아닙니다
내 손에 죽은 주입니다

그것도 그냥 내 손 아닙니다 내가 아닙니다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고 자부했던 죄인 아니다 라는 나입니다

그카이 에라이 그럼 내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겠네 라고 비꼬는 겁니다
아니 심판으로써의 의가 나타난다 라고 했는데

이미 버릇이 자기 우상화가 장착이 되어 있으니까
개인 구원
개인 의
개인의 죄 짓냐 안 짓냐
개인의 심판의 지옥이냐 축복의 천국이냐 라고 개인 숙제로 본다 라는 그 보편성을
주님은 가만히 두질 않고 반드시 박살 내시겠다 라고

이 주를 우리는 거부하고 개인의 사적인 구원을 주실 주를 따로 꼬불쳐 놓으니까
임금 삼고자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 다녀도 이게 음녀이죠
주님은 도망 치시는 겁니다 너의 주 너의 임금이 되지 않겠다 라고

그리고서는 반대로
주님 싫다 라고 누가 봐도 그래 그래 싫어할 수 밖에 없네 라고 여기는
그 창녀 고멜과 결혼 하시겠다 라고 막 주님이 따라다닐때에
정작 고멜은 도망 치기 바쁘다 말이죠

인자는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세리와 죄인의 친구 로다

성경에서 친구 개념은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는 관계라고 했다 말이죠

아니 세리와 죄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 라는 이 하나님의 의에

바리새인들은 이런 비꼬는 별명이나 짓고 비웃으면서 말이죠
자기들의 의로운 행위 행함
율법으로 난 행함인  금식하고 절기 지키고
그 400년 빈 공백을 회개하고 눈물 흘리고 금식 기도로 꽉꽉 채워서

그 나라 없이 떠도는 그 설움을 반드시 찾고자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http://kcm.kr/dic_view.php?nid=37440 

신구약 중간사 도표를 보니 처참하기 짝이 없는 독립투쟁의 역사이더라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이 말은 상대적으로 반드시 잡아먹고야 말겠다 라고 강대국이 어떻게 해서든 잡아먹을려고 발악을 한다 말이죠 주님이 일부러 그렇게 키우셨다 라는 겁니다

아니 이런 역사 그것도 정통의 역사를 개 무시하고
주님은 뚱딴지 같은 소리로 
인자는 먹고 마시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는다 라고 하시니
말이 되냐 말이죠

지금 죽음을 막고 나라의 존패 민족의 존패가 좌우되는 이 마땅에
겨우 겨우 죽음을 피하게 된 이 구원의 역사를 개 무시하고
이런 자기 의를 세우고 하나님께 열심이 특심인 충심인 이런 역사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지혜 이 사랑
지혜는 사랑은 그 행한 일로 무조건 옳다 함을 받는다?

여기에 상대적인 유대인들의 목숨 건 민족 사수 성전사수 나라 영토 사수가 다 엉터리였다?
종교개혁 500주년 다 떨떠름한 그래도 돈만 보면 웃음꽃 피는
그 종교개혁 500 주년 다 엉터리 이다?
아니 그럼 천년 만년도 자신 만만 해야지
지금 언제든지 사라져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소망 따위가 아예 없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자기 교회 하나 그거 지키기 바쁘거든요
그야말로 말라기 이후 400년 빈 공백이나
지금의 자본주의에 잠식 당한 상황이나 매 마찬가지 인

그저 내 몸 뚱아리 하나 건지고자
죽음을 멀리 멀리 피하고
사망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 그거 남들이 눈을 의식해서 그거 하나 가리우고자
건강한 척
의인인 척 하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우기 바쁘고
그런 고단한 삶에 부자들은 쉽게 쉽게 가리우는 것을 보고
부자는 축복 받았다 라고 보고 있으니

아니 그게 저주 받았다 라고 저주의 원형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다 뒤짚어 엎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러니 저 미운 놈 안 죽고 뭐하나 라고
거 보세요 죽음도 사적인 복수심으로 해석하더라 말이죠

인간은 살아있음도 죽음도 그저 자기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살 하면 그거 죽음인 것 같죠 다 끝나는줄 알죠
아닙니다 다시 살려내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즉 영원히 죽지 않는 곳에서 괴로움의 고통을 당한다 말이죠
죽음을 피 할려는 것이 도리어 죽음과 가장 가까이 하게 되는
오홀리바 예루살렘 딸이 더 큰 꼬추 바벨론을 사모한 것이
도리어 바벨론에게 쫄딱 망하게 되듯이 말이죠

자 그러니 그것을 미리 앞당겨 당하는 첫 번째 빠따 타자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으로 착각한 것인데
이스라엘은 이스르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매 맞는
버림 받는 자로써 선택된 겁니다
이 잃어버림의 자리에서
되 찾는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백성 맞다 라고 하시는
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자 선택받은 겁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지혜자는 끌고 가는 겁니다
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
엘리야는 딱 한 사람
많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요
많은 이스라엘 과부도 아니요 아니 과부가 잃어버린 자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리고 많은 이방인도 아니요
많은 이방인 가부도 아니요 아니 이방인 과부는 진짜 잃어버린 자 아닙니까? 아닙니다
딱 한 사람 이방인 사렙다 과부 딱 한 사람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이 불의한 자 한테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겁니다

일곱명의 남유다 왕 4명 북이스라엘 왕 3명이 아닌 오로지 딱 하면 호세아에게만
말씀이 임하듯이

딱 한 사람 문둥병자에게만 보내심을 엘리사는 받았다 말이죠
많은 이스라엘 사람
많은 이스라엘 문둥병자
많은 이방인
많은 이방인 문둥병자도 아닌 모두다 다 아닌
오로지 딱 한 사람 이방인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오로지 빈자리가 된 네 맞아요 손 수 주님이 직접 만드신 죄인
왜? 하나님의 의에 걸맞는 죄인 만들기로써
주께만 범죄한 자 다윗에게만 오실자의 표상으로 삼으신 다윗의 자손이다 라는 겁니다

이 백성 아니다 라는 그 빈자리에서 주님이 손수 마련하신 죄인의 자리에
주님이 뛰어드신 이 요나의 표적만을 밀어붙이시는
이 첫맹세 첫사랑은 주님이 손수 만드신 백성 아니다 라는 이스르엘 자리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으로 오실때에만

이 사랑을 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자요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중
그 십자가의 죽음이 내 죽음입니다 라고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이 두 나무 정녕 죽으리라 정녕 살리라와 함께 동행하는 한 몸으로써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주와 한 몸이 되는 겁니다

(요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죄란 율법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라고 생각하는 것을
나 예수를 믿지 않는 것으로 새로 규정하신다 말이죠
왜냐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거든요
시간인데 본인 아브라함의 시간이 날라가니까 주님의 때
마지막 아담을 본 겁니다
그럼 아브라함 본인은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를 포기하고 빈털터리가 되니까
보이게 되는 거지
내가 이루었다 지켜냈다 사수했다 내가 믿었다를 주장하게 되면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되면 예수님의 때가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저 그런에 이런 알맹이는 다 빠진채로
내가 아브라함 자손이다 라고 자부했던
시아버지 유다처럼 그 조상에 그 자손처럼
유대인들은 껍데기만 정통 정통 재탕 삼탕 수천년탕 우려먹으면서 내려왔으니
그 교리에 죽고 살고 목숨 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주님이 속아 넘어가주실까요?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을 쫓지 않고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데
내가 의를 행했는데 뭘 용서 받고 뭘 탕감받냐 라고
거 보세요 예수님의 때를 보는게 아니라
화목제물이라는 진짜죽음을 정녕죽으리라 라는 진짜 죄를 보는게 아니라
이 절대죽음을 펼치시는 세상의 중심은 성전 걸어다니시는 인자 라는 성전을 보는게 아니라
새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이
자기가 알아서 죄 짓냐 안 짓냐 로 판단하는

아니 왜 예수님의 때를 바라보냐 말이죠

아니 성전에서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바리새인은 십일조 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토색 삥뜯지 않게 해주심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했는데 이 하나님이 우상이다 말이죠 마귀죠

그러나 매국노 세리를 예수님의 때를 바라보는 겁니다
다윗이라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으로써 오실자를 바라보고
이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주께만 범죄했다 라고

예수님을 비로소 바라보는 겁니다 이 죄인으로 오신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말이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은 알고보면 비워있는 자리에 앉고싶은 자기를 투사시킨 하나님이다 말이죠

진짜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와서 죄인으로서 죽기까지 복종한
이 죄 
이 죽음
이 심판 
이 하나님의 의를 새로 규정하셨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줄 하나도 모르는 겁니다

아니 생각을 해 보세요

율법의 행함으로 가 아닌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라고 했을때에

[율법과 행함] 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알아먹었고 몸이 잘 안 따라줘서 그렇지 알아먹긴 알아먹었고 그렇게 해석한 자신을 행하게 만듬으로써 그 거룩한 율법에 자신을 포함 시킬려는 행동들 아닙니까? 눈치채로 알아먹었응께 말귀를 알아먹은 겁니다

그러나 읂혜로 말미암은 믿음은 행함이 아닌 이유는

환자로 만드시는 의사 때문에
졸지에 환자가 되고 죄인이 되게 하시는
의사의 믿음 문제로 달려버렸으니
그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것을 무슨 수로 말 귀 알아먹게 설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을 누가 이해해서 행동합니까
행동 하기 전에 이미 덮쳐져서 저절로 나오는 기능인데

사랑은 나의 인식 생각 의식 해석을 거치지 않고서 그냥 펼쳐지는 겁니다
그러니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이 사랑이 안 오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성화론자 교회나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늘 꽹과리 굿판 소리만 나옵니다 무당이 따로 없어요
오늘날 목사들 보세요 무당들 아닙니까
그저 돈 돈 돈 내 돈 내 돈 내 돈
조승연의 탐구생화에서 현대 자본주의 조차도 결국은 인간이 돈이다
그 사람을 자기 노예로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에 달렸다 라고
이것을 실천하는 자들이
교인들 등에 빨 때 꼿아서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들이 오늘날 종교지도자들 아니냐 말이죠
사상가 철학자 지도자 선생들 아닙니까
그런 대우를 받다가 만만한게 초등교사이다 보니
졸지에 갑자기 주객이 뒤 바뀌어지니까 거꾸로 막 자살을 한다 말이죠

자기도 왕의 DNA 인데 사실은 DNA는 의미 없어요 RNA가 진짜 기능인데 말이죠
아무튼 자기도 왕의 DNA 인데 더더더 더 한 꼬마 DNA을 섬기라고 하니
자기가 왕인데 도리어 섬김 받아야 하는데 섬기라꼬 하니
할 턱이 있냐 말이죠 그것도 왕 왕 왕 왕 나는 왕자다 라고 하는
공 공 공 공 나는 공주다 라고 하는 아이들이 합쳐서 30명이나 되는데

다윗이든 솔로몬이든 남의 양 그것도 딱 한 마리 양 밖에 없는
그것도 딸 같이 여기는 전재산인 양을 빼앗아 손님 마귀에게 대접하는
그런 짓 안하고 배기겠습니까? 그게 왕 자리이거든요
사람 됨됨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왕 자 무당 통령 보세요 
2조 6천억 23억 달러를 재건 비용으로 지원하겠다? 
이게 장사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러니 바닥을 치면 인간은 자살을 할 뿐이지
죄인이 안 되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왕의 DNA입니다
한국 사람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듯이 얼죽아모든 아담은 얼어죽어도 왕의 DNA  얼죽왕 
성경에서는 얼어죽어도 선악과 얼죽선 이다 곧 뱀의 후손 이다 말이죠

아니 우리가 뱀의 후손인 주제에
뭐 우리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겠넹 에라이 사도바울아 라꼬 비꼬듯이
우리는 왕의 DNA 이냐 아브라함 자손이야

그카이 사도바울이 사도요한처럼 돌삐로도 아브라함 자손 만든다 라고
이미 정죄 이미 심판 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눈 만 떳따 하면 자기 구원을 땡기니까
이 하나님의 의 라는 절대심판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유익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엉터리인 율법으로 난 행함을 깨뜨리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 인데
깨어짐은 싹 뚝 빼 놓고서 개인구원 왕의 DNA 만 챙길려는 그 심뽀를
사도바울에게 딱 걸려 들통나 버린 거다 말이죠

자 그러니 죄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의를 안다?

그래서 주님은 반대로 행하시는 겁니다
인자는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함을 받듯이

주님이 지금 이 불의한 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고 바리새인으로부터 비꼬는 별명을 받는다 말이죠

이것응 아 그럼 먹기를 탐해도 되겠네 포도주를 즐겨도 되겠네 라는 독자적인 일이 아니라

누구와의 관계 속에서 그 불의함에 뛰어드신 하나님의 의 곧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친구 곧 바로 이런 죄인을 위해서 죽으시러 왔다 라는 것이

진짜 죽음이고 진짜 심판 자 이고 진짜 정녕 죽으리라를 보여주시는
죄인를 위해 대신 죄인이 당활 죄 값을 형벌을 대시 매맞는 
이 죄를 보여주시는 자가

진짜 죄를 보여주시는 자 이지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드시는 자 말이죠
우찌할꼬 라고 마음을 찌르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자 이지

성령을 부어주지도 않았는데
뭐 양심껏 죄책감을 느낀다? 그것도 얼마 못가는 이유는
주님은 지금 마귀만을 상대하시는데
죄 만을 상대하시는데
사망의 왕 노릇을 상대하시는
은혜의 왕 노릇하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왕의 왕관과 면류관을 벗긴다 라는 에스겔서를 통해서
왕이란 제대로 높은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이는

높은 자를 낮추는 것은 세상 임금 중에 가끔은 있어요
친구를 위해 죽는 자도 가끔 있어요

(요 15:13, 개역)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개역)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7, 개역)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개역)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9,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10, 개역)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2, 개역)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3, 개역)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개역)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개역)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6, 개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7,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8, 개역)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9, 개역)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0, 개역)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가끔 있다 라는 말씀은 정확하게 못 찾겠내요

아무튼 바리새인이 비꼬면서 별명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때려죽어도 나는 저런 죽을 자를 위한 친구가 되기 싫다 라고 나올때에

그래 내 친구다 우짤래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래 나 이들 너희는 때려죽어도 친구 삼을 수 없는 이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목숨을 버릴자로써 왔는거 우찌 알았노
그 카는 너희들은 때려죽어도 못 하지 라고 말이죠

왜? 왕의 DNA를 가졌거든요
자살하는 자들이 친구로 삼았다면 자살같은거 안합니다
똑같은 왕 이라고 우기지
그 모욕 못 참죠

그냥 그래 나는 매국노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라고 하면 될 것을
뭐 이거 따라하고 흉내낸다고 저들이 가만히 안 두죠
죽을때까지 끝까지 괴롭히거든요

요한복음 15장이 사랑 친구 이야기하다가 미움 핍박 이라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세상 다워햐 하기 때문에

이 천한 계집이
이 불의한 자가

왕비의 자리에
하나님의 의가 덮쳐지는 꼴을 못 보는

심히 격동하고 견딜수가 없도록 하시는
지혜자의 지혜는 마귀만을 상대하시거든요

괜히 같이 마귀랑 같이 덤비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견딜수가 없응께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그래서 새언약에 맞는
첫맹세에 맞는
세로운 죄인으로써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 
너는 내 자녀 아니다 라는 자리 종이야 너는 그 종 자리에서 자녀의 자리로
꺼림받는 계집 곧 창녀의 자리에 시집 뿐만 아니라 왕비의 자리 주인의 아내 자리
그카고 보니 애굽의 주가 된 요셉이 생각나네요
억수로 미움 받아서 아예 땅에 파묻어 죽여버렸잖아요
어라 그런데 다시 살아났뿟넹
애굽의 주가 되었넹
총리가 아닙니다 애굽의 주인이 된 겁니다
오바 해석이라구요

이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타남으로 애굽은 지옥이 되는 거죠

그 새로운 왕 들 또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왕의 DNA를 우기니까 말이죠

쭐꾸덕 미끄러져서 빈자리로 만드시는
불의한 자 죄인 다윗을 하나님의 원수로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의에 복종 치 못하니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이 아니라

반드시 빈자리 꽉꽉 채우는 율법의 행함을 우기니까

예수님의 때 
때란 종말 곧 성령의 일
곧 죽기까지 복종하신
역사에서는 나올수 없는 행동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창조했거든요

이 창조를 인간이 선악의 의식으로 행하고 실천하고 따라할려고 해요
결국은 남의 것 빼앗는
교사 목숨 빼앗고
교사 목숨 못 빼앗으면 자기 자식 목숨 빼앗는 교사에게 죽임 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것 밖에 없어요
교회에서도 하는 짓이 이것 밖에 없어요
자기 유익이 안되는 놈은 다 죽이는 겁니다
미워하는 것 조차도 살인이니까 말이죠

그카이 내 자식 왕의 DNA 인데 언 놈이 기죽이냐 라고 막 죽이죠
그 카면 교사도 가만히 안 있죠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도 죽거든요

그러나 이런 죽음 조차도 죽음이 될 수가 없기에
세월 지나면 이제 울지도 못합니다

절대 죽음이라는 정녕죽으리라를 보여주시는
세상의 중심인 성전에서 보여주시는
양을 갈기 갈기 찢어 죽여서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죽음만이
우리가 울어야 할 죽음일 뿐인 겁니다

그 죽음이 나의 죽음이여
그의 다시사신 믿음이 나의 믿음의 주 되심을 위한 은혜 곧 정답입니다
그 정답이 찾는 증상물로서의 탕자 곧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겁니다

주님은 자신이 행한 일로써 옳다함을 받고자
자신의 증상물만을 자랑하시는 겁니다

십자가가 자랑하는 탕자
내가 탕자가 자랑하는 이 십자가가

모든 것들을 빈자리로 원수로 만드는
칼과 창을 쳐서 보습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자기 의에 순종하고 자기 열심에 거기에다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까지 더한자는
이 하나님의 의인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십자가의 죽음에 복종할 수가 없는 겁니다

사망을 멸하는 것은 이 화목제 뿐입니다
죽음 보다 강한 것은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신 일만달란트 탕감 뿐이고
7에 70번의 용서 감히 흉내도 못 내는 이 모든 허물을 덮는 사랑 뿐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요
울리는 꽹과리 일 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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