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 제사장과 선지자와 너희 어미 이스라엘을 죽여라 (호 4, 1- 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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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 제사장(고아를 핍박하는), 선지자(나그네), 너희 어미(과부, 창녀 이스라엘)의 죽음 (호 4, 1- 5)

창녀가 된 이스라엘에게 장가 가리라 (호 3, 1- 5)
호세아 2023 2023. 10. 7. 07:09
23-06 창녀가 된 이스라엘에게 장가 가라 (호 3, 1- 5)

〈호세아 4, 1- 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9쪽, 찬송가 304장 새 579 어머니의 넓은 사랑, 찬송가 234장 새 199 나의 사랑하는 책〉 

〈찬송가 304장 새 579 어머니의 넓은 사랑〉 

1.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2. 아침 저녁 읽으신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 남은 구절마다 모습 본듯합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함을 얻으리 
   외워주신 귀한 말씀이  이제 힘이됩니다

3. 홀로 누워 괴로울 때 헤매다가 지칠 때 
   부르시던 찬송 소리 귀에 살아옵니다 
   반석에서 샘물나고 황무지가 꽃피니 
   예수님과 동행하면 두려울 것 없어라

4. 온유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고 굳세게 
   어머니의 뜻 받들어 보람있게 살리다 
   풍파 많은 세상에서 선한 싸움 싸우다 
   생명 시내 흐르는 곳 길이 함께  살리라


〈호세아 4, 1- 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9쪽〉 

(호 4:1, 개역)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4:2, 개역)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 4:3, 개역)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호 4:4, 개역)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호 4:5, 개역)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찬송가 234장 새 199 나의 사랑하는 책〉 

1.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2.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임금 다윗왕의 역사와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3.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4.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님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 때때로 성경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호 4:1, 현대어) [하나님을 몰라서 세상이 망한다] 오, 이스라엘 백성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걸어 고소장을 제출하시며 다음과 같은 죄목들을 열거하신다. '이 나라에는 진실도 친절함도 없고, 나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도 없다.
(호 4:2, 현대어) 너희는 신의 이름을 내세워 함부로 맹세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살인과 도둑질과 음행을 저지른다. 어디서나 폭력이 난무하고 살인이 그칠 새가 없다.
(호 4:3, 현대어) 그리하여 온 땅이 메마르고 나라가 번창하지 못하며 온갖 생물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이 사라지고, 물고기들마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호 4:4, 현대어) [이 백성이 제사장때문에 망한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라. 남에게 허물을 돌리려고 애쓰지 말아라! 보라. 너희 제사장들아! 내가 책망할 사람은 바로 너희다!
(호 4:5, 현대어) 그러므로 너희가 저지른 온갖 죄악에 대하여 사형 선고를 내리리라. 너희 제사장들은 대낮에 거꾸러져 죽고, 너희 예언자들은 밤에 거꾸러져 죽게 하리라. 너희 어미 이스라엘도 멸망케 하리라.


호세아 4장 4-5절만 각 번역을 살펴보겠습니다

(호 4:4, 개역)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호 4:5, 개역)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호 4:4, 새번역) "그러나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비난하지도 말아라. ㉠제사장아, 이 일로 네 백성은 너에게 불만이 크다. / ㉠또는 '제사장아, 나는 네게 불만이 있다' 또는 '제사장아, 네 백성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들과 같이 되었다'
(호 4:5, 새번역) 그래서 낮에는 네가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가 너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하겠다.

(호 4:4, 공동) 그렇다고 서로 탓하지는 마라. 서로 따지지도 마라. 사제야, 내 백성이 다 너희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호 4:5, 공동) 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대낮에 거꾸러지고 밤에는 예언자도 함께 거꾸러지리라. 이 백성은 너희 때문에 망한다.

(호 4:4, 쉬운) <하나님이 제사장들을 꾸짖으시다> “그러나 아무도 다른 사람과 다투지 말고 비난하지 마라. 너희 제사장들아, 백성이 너희와 다투어도 그들을 나무라지 마라.
(호 4:5, 쉬운) 낮에는 너희가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들이 너희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내가 또한 너희의 어머니,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겠다.

(호 4:4, 킹흠정) 그러나 아무도 다투지 말며 남을 책망하지 말라. 이는 네 백성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들같이 되었기 때문이라.
(호 4:5, 킹흠정) 그러므로 너는 낮에 넘어지고 또 대언자는 밤에 너와 함께 넘어지며 또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호 4:4, 한글킹) 그러나 아무와도 다투지 말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도 말라. 이는 네 백성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들과 같기 때문이라.
(호 4:5, 한글킹) 그러므로 네가 낮에 쓰러지겠고, 선지자도 너와 더불어 밤에 쓰러지리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호 4:4, 현대인) 그러나 아무도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비난하지 말아라. 너희 제사장들아, 내가 너희를 책망한다.
(호 4:5, 현대인) 너희가 밤낮 비틀거리며 너희 예언자들도 너희와 함께 비틀거리므로 내가 너희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

(호 4:4, 현대어) [이 백성이 제사장때문에 망한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라. 남에게 허물을 돌리려고 애쓰지 말아라! 보라. 너희 제사장들아! 내가 책망할 사람은 바로 너희다!
(호 4:5, 현대어) 그러므로 너희가 저지른 온갖 죄악에 대하여 사형 선고를 내리리라. 너희 제사장들은 대낮에 거꾸러져 죽고, 너희 예언자들은 밤에 거꾸러져 죽게 하리라. 너희 어미 이스라엘도 멸망케 하리라.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의 멸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없는 고아에게 기업이 되시는 하나님 그 자체가 기업이 되는
고엘의 하나님을

정작 기업이 없는 제사장은 우상을 섬김으로써
이 우상 때문에 이 제사장 때문에
오늘날로 치면 이 돈에 미친 목사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기업 없는 제사장이 기업없는 고아를 죽이듯이 피 흘린 죄를 묻겠다 라고
땅이 살아서 호소하듯이 말이죠

(창 4:10, 개역)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섬기는 임금이 없는냥 떠도는 나그네 선지자가 나그네 이방인을 핍박하는 겁니다
과부가 과부를 죽이듯이 브린나가 한나를 핍박하는
그 개인에게서 벌어진 것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가 그렇다 라는 겁니다

아니 자신들의 처음자리가 없어졌으니 멸망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것이냐 말이죠

기업이 없는 고아가 고아를 핍박하는
제사장이 고아를 등쳐먹고 피 빨아먹는 피흘린 죄
고리대업과 방탕과 착취 강제노역 우상숭배가
이 5대 죄악이 선지서에서 언급하는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유인 겁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 선지서의 특징은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를 자꾸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왜?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니까 말이죠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지금 현대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고
오늘날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 이듯이

주님은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번제와 제사를 중심으로 우상섬기듯이
점쟁이 찾듯이 찾는 겁니다
그거 다 박살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 박살이라는 죽음 속에서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번제와 제사는 곧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는 것은 곧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유치원 어린이 학생회 청년 대학부 설교가 아니라
고리대업처럼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겁니다 노예장사인거죠 마약이 싸게 공급되듯이 말이죠
고리대업은 결국 돈놀이가 아니라 사람놀이인 겁니다
착취를 왜 하겠습니까? 자신이 신체를 잔칫집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니
당연히 시소처럼 자신이 높아질려면 상대방을 낮추는 겁니다

왜 티비를 싸게 공급할까요? 부자들이 더 이상 자신의 영역에 넘어오지 말라꼬
촘스키가 그렇게 주장하더군요

그것을 염두하고 율법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율법의 완성인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약자보호법 이웃환대법 시형제결혼법이 있는 겁니다
이웃사랑하라고 하니까 자기가 아는 이웃을 사랑하는 꼼수를 펼침으로써

(눅 14:12, 개역)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눅 14:13, 개역)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눅 14:14, 개역)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언제든지 자신이 도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더라 말이죠
상대방이 보답을 안해도 되는 그런 도저히 갚을수 없는 여건인 이웃을 사랑하라
곧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하셨다 말이죠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이 율법을 지킬려는 그 완악한 마음으로
결국은 참이웃 되시는 예수님까지 죽이는
참으로 대단한 이웃사랑을 인간들은 하게 되는 겁니다
제발 이웃사랑 하지 마세요
제발 예수 믿지 마세요 인간의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살인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인정욕구로 인해서 하나님 저 참 잘했지요
하나님의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짓겠다 라는 이 이단 나사렛 예수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나사렛 이단 예수를 죽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 매국노 저 바알세불 걸린 대마왕 예수에게 속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해 놓고서는 제사장직 목사직을 매매하는 자신들의 부정성을
저 선하다고 우기는 일 하나로 카파르 덮어버릴려고 하더라 말이죠
율법 외에 한 의가 외부에서 덮어주는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의로움으로 자기가 자신을 덮어주는
나의 죄를 내가 사하노라 라는 식입니다
가룟유다도 시드기야 남유다 마지막 왕도 이들
악한 무화과 나무들의 특징이 바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믿음은 내가 성취한다 내 구원은 내가 이룬다 라는 식입니다
외부의 작용이 없는 겁니다

자 이런식이면 면죄부 보다 더한 것들이 남발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면죄부는 종교개혁 루터 때에 심각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증상물로 튀어나온 고름이 다 익어서 나온 것이고
정작 구약 선지자 때부터
심지어 예수님 당시 전 400년 간의 신구약 중간시대에도
또 로마에서 국교로 기독교를 승인할때에도 심각했다 말이죠
기독교를 승인한 이유도 사실은 세금을 거두기 위한 목적이였다 말이죠

https://youtu.be/jJwK8oX4l3w
일당백 종교의 흑역사 2부 
1부였던가?

(그렇다고 그것 아니하면 정답이 되느냐 아니지요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겁니다 사탄의 가시를 이용하셔서
바벨론 왕을 주님의 종으로 삼았고
메데 파사의 왕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았듯이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짐승 네 우상 중에 있는데도 말이죠
이 마귀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를 말씀하시니까요
그래서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복종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롬 13:1, 개역)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몇 년전 김어준이 민주운동에 방송국 아나운서 기독교인이
저 말씀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라는 주장에 반대를 하면서 막 짜증내고
김용민 지금은 목사가 되었는데 자신들의 민주운동에 동의를 안하는 것에 대놓고 짜증을 내던데
이 놈들의 특징이 예수님에 대한 살인의지를 표하더라 말이죠
그 놈들의 특징이더라 말이죠
진짜 예수님이 맞다면 저런 쥐박이를 세울 리가 없다 라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지가 쥐박이와 똑같이 행동하는데
쥐박이 반대운동 보수반대운동을 하면은 자동적으로 의로와 지느냐 말이죠
그래서 사탄의 가시들을 활용하시는 겁니다
제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모르도록
누가 비유 비밀인 예수님을 알수 있겠느냐 말이죠
여자의 원수는 여자 라고 
자신의 남 7번 용서에 더한 7에 70번의 용서에 적개심을 보이는 겁니다
그것이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여자의 원수 개념인 거죠)

괜히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했겠습니까
이런 정치와 경제 곧 돈은 반드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마귀의 세가지 시험인 경제 종교 정치는 반드시 함께 엮여있는 겁니다

고리대금, 착취, 강제 노역, 방탕, 우상 숭배

오죽하면 예수님 당시에 부자가 구원받은 자의 대표성으로써 자리 잡았겠냐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찬 물을 끼 얹는 겁니다
지금도 그 당시와 똑같습니다
얼마나 착취했으면
얼마나 인간 자체를 돈으로 봤으면 네 맞아요 마르크스가 그렇게 본 거죠
돈의 흐름은 곧 인간의 흐름이니까 말이죠 우상의 흐름인 겁니다
정작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부자들의 필독서인 거죠
오히려 자본가들로부터 해방을 외친 코뮤니즘을 외쳤는데
그 코뮤니즘을 역설적으로 이용하는 부르주아들이 말이죠


자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의 내용은 너희 어머니 이스라엘은 멸망한다 라는 겁니다

어머니란 인간의 처음자리 곧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 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처음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처음자리인 땅인 거죠

이 땅이 인간의 어머니로써
그 땅과 하늘 사이에 인간은 낑겨있다 라고 성경은 보고 있습니다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우기면서
(사실은 과학 자체가 종교이거든요 지젝이 주장했죠
현대인들의 공동 종교인 거죠
과학은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 원인이 바로 행함 곧 번제와 제사입니다
과학에서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나오지
요나의 표적인 믿음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애 나온 선물 믿음이 안 나옵니다
과학에서 무슨 놈의 결과가 사랑이라는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 뿐입니다
살리는 마지막 아담이 나올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논리 이성 합리 철학 윤리 도덕도 마찬가지이듯이 자아가 곧 종교요 우상인 겁니다)

그래서 과학처럼 인간은 땅을 어디까지나 죽어있지 살아있다 라고 안 봅니다
땅이 무슨 놈의 살아있는냥 부지런히 움직여서 인간을 죽이고 있다고 보겠냐 말이죠
그런 하나님의 명령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저 땅은 지나가는 것이고 인간 본인은 그 땅에서 벗어난 존재로 보고 있는데
웃기게도 땅은 한 발치도 벗어난 자들은 단 한사람도 없다 라는 것

가인과 아벨의 사건 현장의 땅에서 단 한 발치도 벗어난 자는 없었듯이 말이죠

자 그래서 인간은 땅과 하늘 사이에 인간들만 존재한다 라고 보는 시선에
주님은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그 사이에 집어넣음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죽음 사건 마저도 그 사이에 낑가 넣어버리심으로
인간들의 낙원 건설을 방해하고 그 경계선 긋기
나의 구원의 영역 천국의 영역 낙원건설을 허물어 버리시는 겁니다

자 저런 개인의 구원을 펼치는 인간의 생각에
주님은 이 땅을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인간을 죽이는 기능으로 작용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죽음이 스멀 스멀 올라오도록 했고(여자는 반대로 죽음 속에서 저주 속에서 아이를 잉태하는 자식을 낳는 고통 곧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는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사실은 죽음 속에서 구원을 말하는 건데 그런데 정작 그 죽음 속에서 생명이 탄생을 하니 남자들은 이 생명의 비밀 근처에도 못가는 거죠)
그 죽음을 그 땅에서 올라오는 죽음을 억누르고 올라오지 않았다 라고
자신을 가스라이팅 세뇌 시키면서
낳았더라 낳았더라 라는 족보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가인의 족보입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 처음자리를 주님은
약속을 그 죽음 가운데 속에서 개입시킴으로 인해서

죽었더라 족보 속에 죽지 않은 자를 형성함으로써

하늘의 어머니 개념을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곧 약속의 개입입니다
(마치 성전의 기능처럼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이 약속의 개입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겁니다 곧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이라는 어머니를 통해서 이 처음자리를
이스라엘이 거부하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거부하는 식이 된 겁니다 그 밑바닥인 이 사망의 몸임을 까발라시는 약속의 개입으로 율법과 선지자의 개입으로 말이죠
그러니 이 사망의 왕 노릇 문제를 해결하는 왕이 등장하지 않으면
다윗이 구하는 그 왕을 구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번제와 제사 라는 자기 의로움 곧 행함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더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곧 사랑을 
긍휼을 바라지 않더라 그저 의인 건강한 자 될려고 하더라
죄인을 환자를 부르러 오신 주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더라 라는 겁니다)

그래서 죽었더라 족보인 아벨의 족보 속에 죽지 않은 에녹을 곧 약속의 자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죽어 마땅한 땅 속에서 죽지 않은 자를 보여주심으로 인해서
약속이 함께 동행하느냐 에녹 곧 하나님과 동행한 자
자신이 무슨 수로 이 심판의 불과 함께 동행할 수가 있겠습니다
안 타 죽으면 다행이게요
바로 그겁니다 왜 안 죽지
왜 안 쫓겨나지 왜 안 타죽지
이것이 약속이 함께 동행해 주는 자입니다
당장 불태워 죽여야 하는데 안 태워죽이시는 이유는
자신이 바른 자신의 긍휼의 피 용서의 피 때문인 겁니다
언제든지 일만달란트 용서받을 자를 지금 당장 죽여서도 되는데
이 일만달란트 라는 용서의 왕 됨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죠

자 그래서 땅의 어머니에서 태어난 자들 곧 가인의 족보 곧 낳았더라 족보
vs
하늘의 어머니에서 태어난 아벨의 족보 더 정확하게
아벨 대신에 준 셋 족보 죽었더라 족보

이 두 족보의 대조를 통해서

약속이 벌린 사건
곧 긍휼의 그릇이냐 진노의 그릇이냐 라는
토기장이의 토기 굽기가 벌어지는 장소로써

누가 땅의 계집 하갈의 자녀인지
이 두 언약 으로 벌리는 간극 자체를 거부하겠지만
자신들만의 간극 구분짓기 라는 바리새인의 버릇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심과

하늘의 어머니 예루살렘의 약속의 자녀인지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0, 개역)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너의 처음자리는 어디냐 라는 겁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이 너의 어머니냐
땅의 계집 하갈이 너의 어머니냐 

참으로 다행히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혹 깨달아서 고침을 받을까봐 걱정하셨듯이
하늘의 어머니 약속의 예루살렘 자유하는 자의 자녀도 아닌데
자유하는 여자가 낳은 자식이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겠느냐 말이죠
수고하는 태는 십자가인데
십자가가 낳지도 않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비밀이라서 아무도 못 알아먹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서는 무태한 자로
잉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하늘에 자식이 많다 라고
육체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써 자식을 낳는 겁니다

그러니 땅에서는 반대로 죽은 자 같은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부요한 자요
무태한 자 같으나 하늘에 자식이 많은 겁니다

즉 낳았더라 족보와 대비가 된
죽었더라 족보 속에서
에녹과 같이 죽지 않은 자
죽음을 격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자가 있는
약속의 개입을 하나님과 동행한 
은혜를 받은 자
율법으로 말미암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로 죽음을 격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 선악나무 생명나무 정녕죽으리라 정녕 의인은 살리라 하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자의 어머니가
우리의 본래고향 본래 처음자리인 겁니다

자 그래서 소위 말하는 이런 좋고 긍정적인 의미인
어머니 제사장 선지자 라는 개념이 
오늘은 그 반대로써 멸망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맞습니다
어머니도 실패하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우셨듯이
제사장도 실패하고 그래서 왕이 나타나서 제사장을 새로 지도해야 하는 겁니다
선지자도 실패하고 임금인 다윗언약을 외쳐야 하는데
거짓선지자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이미 다 이루어졌기에
땅의 이스라엘을 파괴해야 하는데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라고
눈에 보이는 존재적인 이스라엘을 주장하다가 악한 무화과나무 가룟유다와 시드기야 왕처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를 주장하지
다윗이 구한 왕을 외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반드시 멸망시키고 그 멸망한 자리에서
멸망하지 않는 화목제물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한 새언약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기념이름 임마누엘로 인해서

멸망한 그 자리 수태치 잉태치 못한 그 자리에서
부르신바 찾으신 바
이스르엘 버린 그 고아의 자리에서 고엘의 하나님
율법의 완성으로 오셨다 라고 하시는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하는 자의 어머니

어미 닭이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눅 13:34,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7에 70번도 넘을 정도로 무한대로 하루에도 7에 70번 넘는 하루에 수천 수만 수억 번도 넘는데
그것을 남을 7번 용서하겠다 라는 자기 의로움 쌓기로
내 구원은 내가 이룬다 쌓기로 인해서 너희가 원치 않고 방해하고
선지자를 죽였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 바로 이런 제사장이 고아를 죽이고
선지자가 나그네를 죽이고
어미 하갈이 어미 사라를 죽이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처음자리를 발로 스스로 차버리는 꼴을 보여주심으로써

그 버림 당했다 라는 그 자리 고아 사생아 이스르엘
그 긍휼 여기지 않겟다 라는 그 자리 로루하마
그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 로암미

그 처음자리 심판의 자리에서 그 절대심판을 절대용서로 옮기는
약속의 개입
화목제물 십자가의 피 와의 동행으로 인해서
이스르엘 잃어버린 자를 되찾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으심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 라는 자리에서 긍휼히 여기겠다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어머니
내 백성 아니다 라는 자리에서 내 자녀 맞다 라는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에게 죄인을 환자를 부르러 오신 의사로써

호세아는 약속의 개입을 브로큰 애로우 폭겨요청 하늘의 전쟁을 임마누엘 전쟁을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어머니처럼 한나의 기도처럼
마리아의 기도처럼

이스라엘을 향해서 폭격요청을 호세아가 지금하고 있는 겁니다

어머니가 멸망을 당한다 라는 것은
그 자식도 다 죽은 셈이 되는 겁니다
자식은 어머니가 낳았기에 말이죠

그러니 어머니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자식도 다 죽은 거죠

오로지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어머니 만이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 라는
죽었더라 족보 속에서 죽음을 벗어난 자인 약속의 자녀로써

이 둘을 다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가인의 족보는 하나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하나 만큼 살았더라를 보여주고 있다 라는 식으로 우기지만

제대로 죽지 않은 자가 무슨 수로 제대로 산 족보를 보여주겠습니까?

그러니 어머니 곧 자식을 낳은 자가 이미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게 아니라
즉음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땅의 계집종 하갈의 족보 속에 놓여진 겁니다

그러니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의 족보는
얼마나 자유하고 막살면

죽어도 사는 겁니다

무태하고 잉태치 못한데 어떻게 하늘이 자식이 많냐 말이죠

원인에 따른 결과가 안나오는 도출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계산은 땅의 계산 죽음의 계산법이지
생명의 계산법이 아닙니다

도리어 생명의 계산법은 자유로와서
막죽고 막무태하고 막잉태치 못한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자식이 많고요

땅의 계산법 죽음의 계산법은
아무리 바르게 살고 막잉태해도 자식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아니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많이 잉태하고 자식도 많이 낳은

낳았더라 족보 가인의 족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단 한 명도 없을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자 이렇게 나그네처럼 임금이 없다고 쫓겨나디고 떠돌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광야에서 죽음 사막 속에 놓여진 나그네와 같은 선지자에게
성령 곧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하는 여자 어머니가 성령으로 인해서 보여졌다면

성령이 임해서 다윗왕의 언약을 외치는 선지자가 됨으로써
이제 땅에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은

헐라 3일 만에 절대심판을 거쳐서 다시 세우겠다 라고 폭격당하도록 되어있는 겁니다
막힌 담을 허물어 버리는 겁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도리어 막힌 담을 더 더 더 높게 세우는 꼴입니다
의문의 반복입니다 전쟁의 마침이 없어요
담이 더더더 높게 높게 세워지는
시온산에 산당에 더 높게 더 크게 더 넓게 더 길게 더 더 더 신비롭게 세워지니까

저렇게 이-팔 전쟁이 마침이 없는 겁니다
그 완악한 수건을 벗을 길이 없습니다
죽음 속에서 살면서 뭐가 부요하니 거룩하니 거룩해서 저 더러운 팔레스타인과 구분짓기를 하는 짓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도 못 벗어난 겁니다

하늘의 자유하는 어머니가 없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자기만 있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러니 땅에 낙원을 건살하고 이스라엘을 백날 건설해도
그거 박살 나지 않고
더더더 담벼락을 더더욱 세우면 세울수록 더 망하는 줄도 모르고
오늘 본문 말씀
너희 어머니 이스라엘은 망햇다

이미 망한 줄도 모르고
부도난 수표로 그 잔상으로 그 철거된 에덴동산의 잔상으로

인간을 노예로 삼아 부요함을 추구하니
얼마나 헛되고 헛된 짓인 우상만 추구하고 있느냐 말이죠

그러니 율법으로 인한 행함이 아니면 자기는 곧 죽는다
더 이상 죽음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보는 것이

과연 은혜 또한 노예로 삼지 않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 까지도
사람의 일의 노예로 삼을려고 하니

웃끼는 일이지요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를
그것도 죽으러 오신 여자의 후손을
노예로 삼다니뇨

자신들의 막힌 담 쌓는 일에 더더더 높이 아름답게 신비롭게 세울려고 이용할려고
노예로 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임금 삼고자 했던 나그네 이스라엘
사실은 노예가 더더더 노예를 핍박하듯이
임금 삼는게 아니라 노예 삼을려고 계속해서 오병이어 기적을 보여봐 내가 믿어줄게
이것이 모든 인간의 믿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하나님을 노예 삼기입니다 그냥 죽이는 거죠
그것을 너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늘과 땅 사이의 사건
십자가의 사건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이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 사건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 만 존재한다 라는 그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기적인 겁니다
부정의 부정
마귀에게 마귀취급 받느 바알세불 악마의 대 마왕 예수님으로 오신 겁니다

낳았더라 가인이 족보
자식이 많이 낳는 땅의 계집 하갈화 된 예루살렘 이스라엘을 향해서

죽었더라 족보
땅의 계집 하갈이 낳은 자식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시는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어머니가 낳은 자식만이

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 죽음으 보지 않고 약속의 나라에 들어간

이 언약이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자들이
이 과정을 보여주고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십자가가 수고하여 잉태했거든요
어찌 무태한 불임의 태가 어떻게 어떻게

도리어 순풍의 태는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고도 하나도 살지 못하는지

이 무시 무시한 새언약을 이 화목제물을 주님은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모든 무릎 모든 입술이 경배치 않고서는 못 배기는 겁니다

자신의 피 흘리심 외에는 알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쯤이였던가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 뉴스를 보고 어머니에게 이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마침 어머니께서 찬송가는 말씀 아니냐 라고
제가 말했지요 말씀 아니다 라고
오로지 새 노래만이 말씀이다 라고

찬송가는 가르치는 자도 있고 배우는 자도 있고
즉 가르칠 가능성이 있고 배우는 가능성도 있는데

새노래는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고
즉 이 말은 가르칠수도 없고 교육 자체가 안되는 겁니다
배우는 자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공부하고 학습해도 배울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배울려는 자도 아예 없습니다

(계 14:3, 개역)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왜? 죽음 속에 죽었더라 족보 속에서 산 자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 어머니 처음자리를 보여주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 십 사만 사천명 동서남북 333 333 333 333
어깨에 십자가의 언약궤를 맨 예수님의 죽음을 어깨에 맨 자만이 부르는 노래인 겁니다
자유하는 예루살렘 딸은 자신의 낭군의 죽음을 어깨에 매는 자유함
마치 창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장사치르는 그 일로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기념되듯이 말이죠 이 자유하는 새노래를 제자들이 나무래고 화내고 짜증내고
아마 죽이고도 남는 비밀을 몰라서 그렇지 비유를 알았더면 벌써 몇천번도 더 죽였을 자유하는 여자였던 겁니다

(계 14:1, 개역)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2, 개역)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계 14:3, 개역)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4, 개역)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5, 개역)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6, 개역)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7, 개역)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성령이 손 수 직접 다 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단절 뚝뚝뚝 끊어졌다 라는 거죠 이어지질 않습니다


(시 33:3, 개역)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시 40:3, 개역)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 96:1, 개역)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시 98:1, 개역) [시]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시 144:9, 개역)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 149:1, 개역)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사 42:10, 개역)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계 5:9, 개역)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14:3, 개역)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그러니 새 노래만이 땅의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창녀 아닌 듯이 창년 짓만 골라 하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선지자의 기능으로써
율법과 모세와
선지자는 엘리야는
저 예루살렘이라는 소돔과 고모라에게 죽임을 당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 답게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바로 그런 사망의 몸을 들추어내심으로써

제발 용서해 달라고 우는 자와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자기 의로움을 쌓는 자로

두 언약으로 두 여자로 갈라놓으심으로써

주님은 자신의 피 언약을 그대로 화목제물을 그대로 밀어붙이심 앞에서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 마저도 불태우시는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하늘에 이미 예루살렘 어머니 자유하는 여자가 세워졌는데
눈에 보이는 땅의 어머니 예루살렘성전 이스라엘 나라
선지자가 미련 둘까요 아니면 불태울까요

불태우신다 라고
그림자는 가라 실상이 다 이루어졌다 라고

바로 그 인자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
새영을 받은 자가 선지자로써
자꾸 땅의 예루살렘을 파괴함으로써

곧 나의 신체 몸도 불태우시는 사망의 몸임을 들통내시는 이 심판의 주가 나의 구원의 주 라는 것을

참선지자는 이미 죽고 없는 다윗왕이 구한 새언약을 왕의 언약을 밀어붙이는
정작 나그네처럼 섬기는 임금이 없어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더라 말이죠

나그네 이스라엘이 나그네를 죽이듯이
가짜 선지자가 자꾸 누워서 침뱉기하듯이 선지자를 죽이도록

이 낱낱이 인간 속에 중심이 없음을
정직한 영이 없음을
그리스도의 마음
새 마음
새 영이 없음을 낱낱이 까발리는 율법과 선지자가 없었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저 개같은 이방인 지옥자식들과 다를바 없는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였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오로지 남겨둔 한 씨로 인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겁니다

우리는 그 주님의 죽음 주님의 고난 주님의 마음 아픔 속에 조금 씩 조금씩
참예 당함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언약에 감사함에
대신 매 맞고 대신 피 값을 치르심에 감사하면서 노래부르는 겁니다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9장은 이 남겨두신 한 씨 만을 하늘과 땅 사이에 남겨두시고

그 나머지인 인간 만이 존재한다고 우기는 그 씨들은 그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삭제 시키는 
두 언약의 대조인 갈라디아서 4장처럼 나오는 내용입니다


(롬 9:1, 개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2, 개역) [1절과 같음]
(롬 9:3, 개역)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4, 개역)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5, 개역)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6, 개역)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롬 9:7, 개역)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롬 9:8, 개역)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9, 개역)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롬 9:10, 개역)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롬 9:11, 개역)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2, 개역)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개역)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개역)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24, 개역)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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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죄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 1- 4)

생명 안에서 은혜의 왕 노릇 (롬 5,17-21)
로마서 2022 2023. 10. 14. 17:05
22-030 생명 안에서 은혜의 왕 노릇 (롬 5,17-21)

〈로마서 6, 1- 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6쪽, 찬송가 196장 새 262 날 구원하신 예수님, 482장 새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465 196 215 
새찬송가 262장(통196) 날 구원하신 예수님
새찬송가 364장(통482)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찬송가 196장 새 262 날 구원하신 예수님〉  

1.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저 죄인 어서 주께와 죄 사유하심 받아라 

2.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라 
   죄중에 상한 영혼을 주 온전하게 하시네

3. 주 우리 죄를 인하여 피 흘려 죽으셨으니 
   주밖에 없는 사랑을 만 백성 알게 전하세

4. 주 예수 사랑 못 잊어 나 항상 눈물 흘리네 
   이 세상 어디 가든지 내 주만 생각 하도다

5. 목마른 자 이 샘에와 영생의 물을 마셔라 
   내 주를 사랑한대도 늘 맘에 부족하도다


〈로마서 6, 1- 4, 개역한글 신약성경 246쪽〉  

(롬 6: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송가 482장 새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1.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

2.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 
   저 광야 같은 세상을 끝없이 방황하다가
   위태한 길을 떠나서 주께로 내가 이끌려 
   그 보좌 앞에 나아가 큰 은혜 받게 하시네

3.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때껏 지은 큰 죄로 내 마음 섧고 아파도
   참 마음으로 뉘우쳐 다 숨김없이 아뢰면 
   주 나를 위해 복 빌어 새 은혜 부어 주시네

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주 세상에서 일찍이 저 요란한  곳 피하여
   빈들에서나 산에서 온 밤을 새워 지내사 
   주 예수 친히 기도로  큰 본을 보여 주셨네  아멘


(롬 6:1,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새번역)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3, 새번역)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 ㉠또는 '침례'
(롬 6:4, 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 ㉢또는 '침례’


로마서 1절 2절을 다른 번역은 어떤지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 동안 하도 성화론자들의 공격인 [방종] 개념 때문에
곧 행하는 문제인 거죠 죄를 행하느냐 안행하느냐 즉 죄 짓느냐 죄 안 짓느냐 라고
1절을 중심으로 보아 왔는데
알고 보니
2절을 중심으로 보게 되니
이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롬 6: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1,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새번역)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공동)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롬 6:2, 공동)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죽어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쉬운)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는 사람>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쉬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킹흠정)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롬 6:2, 킹흠정)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롬 6:1, 한글킹)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 6:2, 한글킹)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롬 6:1, 현대인)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롬 6:2, 현대인)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롬 6:1, 현대어)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침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계속 죄를 저질러야 하겠습니까?
(롬 6:2, 현대어)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살게 해주셨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부서져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산산이 부서진 것입니다.

(롬 6:1, 가톨릭)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은총이 많아지도록 우리가 계속 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롬 6:2, 가톨릭)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죄에서는 이미 죽은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죄 안에 살 수 있겠습니까?


번역들도 죄를 짓느냐 와 죄에 거하느냐를 구분 없이 나열했는데
죄란 짓는 의미가 아니라 행하느냐 안행하느냐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죄 짓는 나, 죄 안 짓는 나 의 문제가 되는 거죠
내 숙제로 보는 거죠 너 하기 나름이다 라는 실용주의인 거죠
자기 숙제를 잘 할려면 방종하지 말아야 겠지요

그게 바로 잘못 본 겁니다
죄를 인간이 다루는게 아니라 죄가 인간을 다루기 때문에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 증표 증상물이라고 하신 겁니다

즉 죄인은 구원자의 표상이다는 거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겁니다

결국 이 말은 죄의 안과 밖 이라는 장소 공간 판대기 구조 몸으로 표현한 겁니다
마치 그리스도의 세계 라고 마태복음 1장 족보에서처럼
세계관 판대기 족보처럼 다른 몸의 족보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 그 세계 안의 족보이냐 그 세계 아닌 바깥의 족보 곧 죄 속의 족보냐 몸이냐 라는

안 과 밖의 구분인 겁니다

죄가 들어와 버려서 죄 속에 속 이라는 공간에 갇혀 버려서
빠져나올수 없게 되었다 라는 거죠 포로되었다 라는 겁니다
아니 포로 된 주제에 죄를 짓느냐 마느냐 라는 문제는
바이러스 걸린 키보드 주제에 바른 타자를 하느냐 마느냐는 소용이 없어요
외부 바깥에서 백신주사를 투입하느냐 마느냐 라는
예수님의 조치 밖에 없다 라는 거죠

오늘 본문은 그 외부에서 죄 안에 갇혀 버린 자에게
어떻게 백신을 투입하는 문제로 다루고 있는데

웃기게도 은혜를 더할려고 죄를 죄 속에 거하겠느냐?
아니 이미 거하고 있는데 또 거할려고 ? ㅋㅋㅋ

자 그카이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가 계산을 하니까
아 그럼 방종 하지 말아야 겠구나 라고 똑같은 계산을 하는 겁니다
은혜를 더 할려고 죄 속에 계속해서 거하듯이
바이러스를 자기가 해결하겠다 라는 식인 거죠

내부 문제에서는 답이 없다고 했잖아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자꾸 의를 행할수 있다 라고 바이러스가 좋아라 라고 그래 그래 계속해봐
방종하지 말자 라고 계속 가르치라 라고 하는 겁니다
반작용은 한 풀이 이지 적개심이지 무엇에?
외부의 백신 주사에 대한 적개심이지
십자가에 대한 거리낌이지
도적질 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본인이 도적질하는
그래서 외부에서 선악의 바깥의 은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지
백날 해 봐라 말이죠 육체에서 과연 선한 것이 나오는가?
예수님까지 하나님 까지 죽인 결과를 이미 통보 받아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자꾸 방종하지 말자 라고
사형선고를 취소 할 수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외부에서 선언인데
자기자신은 바이러스 안 걸렸다 라고
사형선고 아직 안 받았다고 보는 겁니다

더더욱 십자가에서 모든 육체는 못 박혔다 라고
이미 선언해 버렸는데
그것은 예수 너 이고 라고 무신론자가 비웃는게 아니라
유대교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독교 까지 비웃고 있어요
그것은 예수님 생각이구요 저는 아직 사형선고 안 받았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죄 가운데서 죽었다 라는
사도바울의 이 외침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죠
그게 사도바울 본인도 죄 속에 살 때 본인이 십자가를 거부했던 마음인데
왠 은혜인지 말도 안되고 예수님을 죽이고 스데반 집사를 죽인 
죄 속에 살던 자가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죽음으로 나온 피를 발라
믿음을 발라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백신 주사
이 십자가만 알기로 한 백신 주사를 맞음으로 인해
이 외부에서 꺼내어주시는
죄 안에 갇힌 자가 장소가 몸이
죄 바깥의 예수님이라는 몸에 합쳐지는 백신 주사 십자가로 다시 태어난
십자가 주사로 죄 바깥으로 탈출하게 됨을 당하게 되니

비로소 이 소리를 하니까
똑같이 자기가 사도바울 자기가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죽였듯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소리인줄 모르고
죄 안에 거하는 소리만을 나열하는 것을
대 놓고서 이렇게
복음과 행함
은혜와 행위를 대조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 지가 그랬었었었었으니까 더더욱 더 잘 아는 거죠
본인도 그때 성령이 아니였기에 무슨 소리인줄 못 알아 먹었는데
당연히 거부하는 자들은 더더욱 무슨 소리인줄 못 알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음 자체가 바로 이 차이성으로써 드러내고자
복음의 유익을 위해서 말이죠 자기유익이 아닌
사랑만이 뭐든지 예가 되기에 말이죠

역시나 비복음은 여기서도 그저 자기 개인 구원
그 개인 구원이 모여 모여서 집단처럼 모양을 갖추고 경건의 모양을 갖추어도
역시나 개인 구원인 교리 종교 자기숙제로써의 실천 이딴 우상숭배이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뭐 그리 죄 짓지 않으면 된다 라는 식으로
정작 죄 바깥으로 벗어 날수 없는 소리만을 한다 라는 겁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니깐요

네 맞아요 은혜를 더 할려고 죄 속에 거하겠느냐 라는 이 말만 해석할 줄 알았지
사실은 해석 틀렸어요
그 뒤에 구절이 무슨 소리인줄 다 틀렸던 거죠
이 뒤 구절이 맞아야 앞의 구절이 맞게 되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
혼자?
개인?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누구와 죄에 대해서 죽느냐 가 사도바울이 말하는 바입니다

그 누구 라는 구체적 인물이 안 나오면
또 보편적 자신의 몸 곧 공간 장소 판대기 이지요
그리고 보편적 자기이 시간 때를 주장하는 겁니다
이것을 종식 시키는 종말이 와야 합니다

종말이 단순히 1999년 이라는 영화 속의 그런 종말이 아니라
그래서 종식이 안 됩니다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고 하잖아요
바퀴벌레에게 무슨 놈의 누구 라는 구체적 인물이 필요하냐 말이죠

그런 엉터리 해석하는 인간들의 바퀴벌레가 아닌
이런 엉터리 해석하는 인간들로 말미암아
그 허무한 인간 때문에 우는 바퀴벌레로써
주여 어서 심판해 주소서 브로큰 애로우 폭격요청 하늘의 핵미사일을 
이 인간들에게 퍼 부어 주소서 라고 우는 
그 구체적 인물을 부르짖는 바퀴벌레의 백신주사 요청으로 말미암아

이 구체적 인물이
나의 역사 곧 시간과
나의 몸 곧 공간 장소를 종식 시키는
곧 죄 속에 거하는 이 사망의 몸을 종식 시키는

이 백신 주사 한 방 핵미사일 한 방 쏴 달라
눈먼자의 도시 라는 영화에서 제일 마지막에 비를 내리잖아요
다들 바이러스로 인해 눈이 먼 소경이 되었는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길에서는 답이 없잖아요
그렇게 자기 속의 죄가 다 드러나고 난 뒤에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이 들통난 뒤에

한 방 핵미사일 백신이 비로써 전 지구에 떨어지니까
비로소 눈 뜨지
외부의 비가 안 오는 이상
답이 없어요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는 땜빵용 심리상담일 뿐이지
백신이 아닙니다
방종안해도 방종해도 여전히 죄 속에 거하는 거죠

죄를 죽이는 그래서 그 죄와 함께 죽지 않는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어요
자살해도 소용 없어요
개인 문제가 아니니까
죄의 권세를 한 방에 싹 잔탁이 외부에서 와야 하는 겁니다

그게 은혜의 왕 노릇이다는 겁니다

꼴에 아 그럼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라고 하니까
다들 거부감을 가지는데 있어서

또 머리 굴려 계속 저렇게 사도바울이 당차게 이야기 하니까
어 그럼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으면 은혜가 되겠네 라고
자기 구원을 개인구원을 목적으로 도박을 거는 놈도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그것을 또 집어넣고 개입시킬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칼줄 알고 바울이 미리 차단하듯이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뭘 또 죄 속에 살아사
죄 속에 살려고 하니까 자꾸 개인 구원 개인 구원을 외치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잖아 그 컴퓨터 그 계산기 바이러스 걸렸잖아 라고
바이러스 걸린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겁니다

자꾸 가인의 족보 세계관처럼
낳았더라 낳았더라 생산 순풍 순풍 행함으로 자꾸 도출 되는
그거 말고는 답이 없다고 보는
그러나 답이 된 적도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 의문의 반복만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답이 없는 짓만 
1차 5차 중동전쟁 1000차 1000000000처 중동전쟁을 벌려도 
답이 있는 줄 아십니까 택도 없어요

애들만 잡아먹을 뿐입니다 애들만

아 답이 있넹
둘 다 다 죽이는 불도져 다 밀어버리는 겁니다 공백
빈털터리
사막 사막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그러니 유대인들은 답을 알면서도 거부하고요
헬라인 이방인 곧 팔레스타인은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중간치가 중립지역이 어디있습니까
세계적으로 반유대와 친유대 밖에 없는
인간의 최종모습이라고 저번에 자본주의를 보편화 했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의 저자 막스베버 유대인의 주장처럼 말이죠
인간들이 보편화 한 종말의 인간인데
정작 진짜 종말이라는 인물은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에 대해서 죽이는 제대로 말이죠

그런데 이런 죄도 엉터리로 해석함을 죄애 대해서 심판하시고
죄를 엉터리로 해석하니까 그 죄에 반대되는 의도 엉터리로 해석하시는 의에 대해서 심판
그리고 그들이 심판하고 구분짓기 하는 그 심판도 심판
그들의 종말도 심판하시는

외부의 백신핵주사 바로 모든 육체를 못 박아 죽이는 이 십자가만이
은혜인데
누가 백신을 더 할려고 주사 나 한테 만큼은 더 많이 놓아주세요 라고
주사 두 방 맞는다고 은혜가 오냐? 그 사고방식 자체가
방종하지 말라 라는 사고방식과 똑같이
여전히 죄에 대해서 죽이시는 이 백신주사 십자가를 이 의사를 거부하고
자기가 진단 내려요 글쎄 발 만 씻겨도 되는데 온 몸이 다 더러우니까
온 몸을 다 씻겨달라고 ~
도대체 환자 맞기는 맞나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 맞기는 맞나요 방종하지 말자 라는 님~~~~~

대화 자체가 안되잖아요
바로 그 대화 자체가 안되는 자의 내막까지 오늘 본문에서 다드러내시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성령이라는 종말의 주사 외부에서 투입해서 찌르는 그 주사를 
안 맞았을때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이 복음과 이 은혜와
이 약속의 완성과 대조를 하면서 말이죠

저들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게 되면
앞에서 다룬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느냐 그렇다 그래서 심판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가 심판이거든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앞뒤 안맞는 부조리가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십자가 라는 불륜 불의 스캔들 말도 안되는 
죄라는 선악의 법을 넘어서버리는 이 부조리가 하나님의 의 이다는 겁니다
이 불의한 의가 이 불의한 십자가 곧 장대 높인 달린 인자가 우리를 낫게 했습니다
이 똥물에 7번 담그는 
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우리를 낫게 했습니다 라고 말이죠

에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이 선해지겠네 라고
하나님을 원망 세 번만 하지 말고 천번 만번 하면 깨끗해지겠네
그 카이 이미 심판 이미 정죄 받은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그 싫어버린바 된 인자되신 예수님을 보겠다는 말입니까
여진히 자기 구원이라는 탐심을 우상숭배하겠다 라는 말입니까?

여전히 주체, 주인공을 자기에게 두지 하나님의 의 라는 심판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의라는 주체에 두지 않으니까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게 되고
곧 창조를 취소하는 창조를 모르니까 말이죠

그리고 반드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뒤짚어 씌워서 절대저주를 뒤짚어 씌워서
빈털터리 하나님의 원수 곧 바짝 메마른 뼈 사망의 몸 인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의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의가 말이 안되는 원인 없는 결과인데
말이 되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니까 자꾸 의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사실상 가르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원수사랑 입니까
가정부요 노동의 댓가 믿어준 보상을 바라는 종교라는 음녀이지
국가라는 짐승이 양성하는 음녀이거든요

지금 두 음녀들끼리 피터지게 싸우잖아요
우크라이나는 지금 관심사가 자기들에게서 벗어나 이팔로 넘어가버린 것에
제발 우리 좀 쳐다봐 달라고 합니다
미얀마 사태처럼 되어버린 거죠

그러니 인간에게서는 답이 없기에
답 비스무리 한 것으로 속여야 하는데 그것이 보편적진리인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남들이 도와주기 전에 자주국방이 탑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저런 사도바울의 거짓말
모세의 거짓말 오죽하면 애굽왕이 야들아 저 말을 믿냐?
사막 사막 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속에 들어가면 죽어요
왜 죽으러 가느냐
종교란 마약이란다
여기에서 너희들 종교 대우해 주마
제발 죽으러 가지 말아라 라고 모세를 거짓말로 취급했다 말이죠
즉 이 말은 히브리 잡족들도 거짓말임을 끊임없이
광야 속에서 속았는거 아니냐 라고 늘 모세를 죽일려고 시도했듯이 말이죠

사도바울은 그카이 너희들은 이미 정죄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끝까지 행함의 문제로 인간 숙제로 보는 그 사고방식을 말이죠
그 선악 나에게 유익이 되냐 나에게 손해가 되느냐 라는
사랑이 없으니 가정부 의식 노예의식 뿐인 겁니다
자유하는 하늘의 어머니 라는 모태 처음자리를 자기 스스로 발로 차 버리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음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이제 컷으니 내 나라는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자주 신앙 자주 국방을 추구하는
선악 또는 양심 또는 율법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죄 아래 가두는 것도 모르고
율법을 지켜서 정죄 하는 정죄한다는 말은 불안하다는 것이거든요
자기를 지키고자 정죄하지 않으면 자기 몸이 날라가 버려요 자기 몸 자기 역사 말이죠
남을 7번 용서를 하는데 46년 걸렸다 말이죠 베드로가 말이죠 ㅋㅋㅋ
성전을 짓는데  46년 동안 걸렸다 말이죠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ㅋㅋㅋ

분명 은혜의 문제 곧 믿음의 문제인데
졸지에 행함의 문제 율법으로 말미암은 행위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무도 의롭게 못하는 그 행함 말이죠

물론 믿음 조차도 물론 그들은 행함으로 보는 겁니다
선물인데 누가 선물을 숙제로 봅니까
선물을 숙제로 보게 되면
내부의 문제가 되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게 되는 거죠
즉 선물이 아닌 겁니다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어요 즉 언약은 약속은 인간에게서
다른 말로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은 선악이라는 법만 따지는 겁니다
사랑도 몇 번 했는데 라고 계산하는 7번 사랑했다 라고 라는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만 나올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믿지 말아라 말이죠 예수님만 또 죽일려고 할 뿐입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해서 주어진 선물인데
의인은 없는데 자꾸 자기 의를 쌓아서
육의 자랑을 꾀하더라 말이죠
그렇게 되면 또 경계선을 긋고 나의 영역 너의 영역 넘어오지 말라 라고 
자기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공간으로 담벼락 막힌 담을 헐고 있는데
도리어 높이 세우고 있더라 말이죠
저 매국노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이죠
그게 하나님이 아닌 우상인 거죠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니까 말이죠

바로 이 공간 개념이 죄에 거한다 라는 거한다 장소 개념으로써
죄가 들어온다 와 연결된 입장에서
공간 장소 몸을 다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연합 이라는 한 몸 개념이 역시나 오늘 본문에 나오지요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6, 개역)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 3:7, 개역)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개역)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개역)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3, 개역)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 3:14, 개역)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 3:15, 개역)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 3:16, 개역)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7, 개역)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8, 개역)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개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개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개역)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개역)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개역)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6,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연합된 몸
그의 죽으심과 합한 몸
세례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가 된 몸

자 이렇게 장소 공간 몸 네 맞아요 에스겔 성전 개념의 성전기능인 거죠
의사 기능
구원자의 기능 인자의 기능
그러니 율법과 선지자는 폐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마 5:17, 개역)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22:40, 개역)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눅 16:16, 개역)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24:44, 개역)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행 13:15, 개역)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28:23, 개역)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행 28:23, 한글킹) 그 후 그들이 그와 날을 정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오니,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써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시키더라.


그래서 인간의 숙제로는 믿음이든 행함이든 둘다 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둘다 다 말이죠

왕이 와야 합니다 유대인의 왕 말이죠

이 두 강령을 완성하는 자 말입니다

(마 22:40, 개역)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는 율법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선지자를
우리는 둘 다 죽일 수 밖에 없는
사망의 몸이다 라는 거죠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였고
우리는 이웃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을 선지자 라는 이웃 곧 나그네를 죽였다 말이죠
차라리 이웃사랑실천을 안했으면 죽이지도 않았을텐데 (물론 안한다 라는 것도 행함이니까
믿음의 차원과는 그렇게 되면 상관이 없게 되죠 내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 라고 상관이 되시도록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서 막힌 담을 허무시는 참성전을 삼일 만에 짓는 겁니다
이것이 다 이루시는 성전을 완공하시는 자 곧 유대인의 왕입니다 
유대인들은 절대로 허용못할 왕으로써 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는 도시야 라고
선지자의 죽음의 노선에 예수님 자신의 죽음도 함께
연합이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몸 장소 공간

우리는 뭘 해도 예수님을 선지자를 죽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바로 그것이 걸어다니는 인자 라는 새성전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나를 사망의 몸으로 규정짓고 심판하시고 다시 싸매시는 겁니다
죄가 들어오듯 이제는 은혜가 들어오는 겁니다
이 은혜 문제를 행함으로써 죄를 다루듯이 다룰려고 하니까
은혜를 더할려고 죄를 더 짓겠느냐 라고 짓는다 로 우리는 보는 거죠
그래서 방종개념이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수하고 경계선 긋기로 구분짓기용으로 사용되는 거죠
너 사마리아 방종하는 인간들 넘어오지마 나도 너희 구역 안 넘어갈게 라고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처럼 성벽을 세우는 거죠 무슨 놈의 감옥이냐 말이죠
이 두 감옥끼리 서로 지 잘났다고 싸우는 가운데 애들만 죽어나가는 겁니다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는 거죠 언제까지 이 의문의 반복만을 주구장창 할 껍니까?
답도 없는데 ~~~~~~~~)
바로 그것이 걸어다니는 인자 라는 새성전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우리의 죄악을 인자라는 신체 몸 박스 공간 장소 에 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죄 짓는다 가 아니라 거한다 라고 장소 몸 또는 여기에다가 더 이중반복적인 의미로써
공명되듯이 짝꿍 되듯이
[~~~ 안에] 라고 누구 누구 안에 라는 의미로써 더 강조가 되어버리면
이건 뭐 권세 문제이지
행함 문제가 아닌 겁니다

주체 주인의 권리 주권 곧 왕 노릇이라는 표현이 앞에서 나왔듯이 말이죠

자 그러니 방종으로 1절을 규정지어 놓고 봐 버리니까
밑의 구절들이

은혜 안에 라는 누구 라는 인물과의 한 몸 연합이 중요해지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교회를 더 중요시 하자 라는 졸지에 교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불교인거죠 불교란 교리 플러스 실천인 겁니다
종교인 겁니다
종교는 음녀입니다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기 하는 거죠
자기 쪽에서 신랑을 사랑하겠다 라는 식입니다
그러니 돈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사랑에 무슨 놈의 돈이 필요하냐 말이죠

도리어 힘을 빼는 약하게 만드시는데 말이죠

아니 죄 아래 갇혀서 포로된 자가
신랑을 찾아나선다?

그게 희년이겠습니까? 복음이겠습니까?
그건 또 하나의 노동의 댓가를 바라는 가정부인 거죠
사랑 따위는 필요가 없는 믿어준 댓가
말씀을 지켜준 댓가 내 놔라 라고 멱살 잡고 겁박하는 깡패짓인 겁니다

이게 한국교회가 돈내고 복 받자 라는 야바위꾼 강도의 소굴이 된 이유입니다
유대교도 마찬가지였구요
인간은 안 됩니다 다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이웃사랑실천하는 놈 치고 사기꾼 아닌 놈이 없어요
노인들 대상으로 하는 사기꾼들이 처음에는 얼마나 효자 효도의 달인들로써
외로운 노인들의 말 벗이 되어주잖아요 아들같이 딸같이 말이죠
어느정도 되었다 싶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기를 치는 거죠
물건 팔고 벗겨먹을 수 있으면 모든 것 다 동원해서라도 말이죠

그래서 지난 주에 제사장을 낮에 죽여라
선지자는 밤에 죽여라
이스라엘 너희 어미 너희 처음자리를 다 죽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고아라는 기업이 없는 제사장 주제에 고아가 고아를 잡아죽이고 말이죠
제사장이 제사장을 죽이듯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고 나그네가 나그네를 죽이고
과부가 과부를 죽이는

이 사망의 몸의 실상을 낯낯이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그렇게 다 들추어서
심판하시고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듯이
반드시 창녀 너 고멜에게 창녀인 이스라엘에게 장가들겠다 라고
의인 이스라엘이 아닌
창녀 죄인 환자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장가 들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왜 그러시냐 말이죠

성전의 기능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정직한 영이 없어요
중심이 없습니다

이 중심의 기능을 하시겠다 라고
그래서 반드시 내 너의 피 신랑이 되고
너의 전 남편 바알의 이름을 너의 입에서 반드시 제거하겠다 라고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하시면서

처음사랑으로 먼저 떳기에
우리는 그 증상물로써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로써

이 율법의 정신인 약자보호법 (고아에게 기업이 되시는 고엘)
이웃환대법 (나그네에게 임금이 되어서 섬기시는 왕으로 오심)
그리고 시형제결혼법 (과부에게 남편 없는 과부에게 남편이 되시는)
이 율법의 완성으로써 반드시 오시겠다 이것이 복음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은혜 라는 것은 행하는 문제가 아닌
방종처럼 말이죠 죄 짓니 마니가 아닌

거하는 장소로써 들어오는 겁니다

안에 밖에 라는 장소개념으로써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은혜가 왕 노릇으로써 일방적으로 내 안에 쳐들어 와버리게 되면

이제 나의 운명은 이 은혜의 운명과 같아지는
한 몸이 되는 연합이 되더다 말이죠

인간에게서는 두 몸이 하나가 되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것을 두 몸으로 여전히 간극을 두자 라는 식이 행함입니다

그러나 둘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버리면
행함이 날라가 버리고
같은 운명 같은 몸이 되기에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에 함께 사는

이거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행함에게서는 나올수가 없는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이라는 선물로써 주어지는
장소 몸 공간개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장소로 이야기 함에 있어서
장소도 장소인데 여기있다 저기 있다가 아닌
장소이긴 장소인데 비밀의 장소처럼
무슨소리인줄 모르는 장소
즉 행함이 끼여들 틈을 안 주는 장소
곧 너희 가운데 천국이 있다 라고 해 버리니까

이건 뭐 같은 한 운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되는

오히려 단절 차단의 의미가 더 강해져 버리더라 말이죠
그 가운데서 선물로 은혜가 외부에서 덮쳐지고
믿음이 선물로써 외부에거 덮쳐지는 자에게서는
이 눈물 슬픔 잿더미 심판을 거쳐서 나온
대신 희락을 대신 감사를 대신 찬송의 옷이 덮쳐지니까
사랑 안하고는 못 배기는

인간의 행함이나 인간의 행함으로써 믿음 따위는 항상 타인의 욕망을 따른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인데

사랑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더라 말이죠

베드로야 이 여인은 보자마자 더러운 발에 뽀뽀하고
비싼 향유로 자기머리카락에 적셔서 씻기고
내 낭군이시군요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껴안듯이
해를 품은 달처럼 말이죠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아무리 창녀일지라도 창녀마리아를 껴안는데

너 베드로는 장모를 고쳐줘도
물에 빠진놈 건져줘도
단 한번이라도 이 여인처럼 했더냐?

왜? 물위를 걸었을때에 남들 보라꼬 남의 눈을 의식해서
믿음질 자랑질했지
믿음짓을 자랑할려고 할 뿐이지 사랑할려고 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너 베드로도 똑같이 창녀 만들어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으로써 오시겠다 라고
비로소 죄인이 되고
창녀가 되니까

의사를 기뻐 껴안고
구원자를 사랑해서 뽀뽀하더라 라는 겁니다

네 암요 암요 암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꼐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결국 인간의 믿음이라는 신앙생활 조차도 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겁니다

마치 예루살렘 힌놈의 골짜기 부활의 마을이라고 하는
그 동네에 살아도
늘 부활 되기를 바라면서

나사로 일부러 죽이시고 일부러 또 3일 뒤에 늦게 가니까

동네사람들이 부활의 동네이기는커녕
시기와 질투의 소돔과 고모라 지옥의 마을 처엄
 
아이고 사랑했다메? 사랑했다 했으면서 이렇게 늦게 오냐 라고
행동 하나 하나를 꼬투리 잡고자 눈 시퍼렇게 심판할려고
죽일려고 달려들더라 말이죠 심판주에게 말이죠

얼마나 웃깁니까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불에게 불을 막 던져요 
심판의 홍수 노아홍수 심판에게 물대포를 막 쏘아대고요

심판주의 여호와의 칼 되신 분에게
인간들의 칼을 막 날려요
죽음을 막 날려요

사망을 막 날려요

사망아 누구를 쏘려느냐?

사망과 생명의 주에게 말이죠

이런 우리의 내막까지 낱낱이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성전의 기능과 무관한 자가 되는 겁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어요

누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 식인종 맞습니다 라고 먹겠느냐 말이죠
다들 그 정도까지는 죄인이 아니다 라고 선을 긋죠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고 선지자를 죽이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라고

베드로는 도리어 끝까지 따라 가겠습니다 장지지겠습니다 함께 죽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자꾸 의인 될려고 건강한 자 될려고 하지마
그거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거야
그거 가정부이고 노동의 댓가를 바라는 거죠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거야

너를 반드시 나를 세 번 부인하는 죄인 만들어서
창녀 만들어서
너의 전남편 바알 우상
우상의 사고방식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장지지겠다는 둥 함께 십자가에 달리겠다는 둥
그거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온 의인 되겟다 정의실천하겠다 건강한 자 되겠다 경건의 모양을 갖추겠다 그거 반드시 제거해서 그 우상을 제거해서
나 너를 반드시 창녀 죄인 환자 만들어서
이 피에 맞는
이 새성전의 두 기능 장소와 때, 몸과 역사(시간) 반드시 불도져로 밀어서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때로 채워서 한 몸을 이루는
이 성전의 기능을 너에게 펼치겠다

이 성전의 기능을 주시는 분이시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안 받는다 받는 분 아니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주시는 것이 돈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돈 돈 돈 뿐이지만 그 정도로 우상숭배자이지만
반드시 그 전남편 바알을 제거해서
반드시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사는

이 화목제물의 피를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로 만들어버리시겠다 라고 
너는 나의 헵시바야 쁄라야
나는 너를 천국으로 삼아서 너를 반드시 함락 침략 침노하고야 말겠다 라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차지하듯이
함께 죽고 함께 사는
함꼐 동행하는 한 몸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하이라이트인데
다들 겁주는 종말의 공포가 되어버리니까
돈 바치고 영혼 바치고 다 속아넘어가는 거죠

우리가 지금 에스겔 호세아 하고 있잖아요
구약의 요한계시록인 셈입니다

이거 사랑의 최절정입니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결혼에 이 한 몸 됨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외부나
내부나 
즉 우리 자신에게서 말이죠
전남편 바알을 제거하시듯이 우상을 다 제거하시듯이

모조리 다 그 방해되는 요소를 심판하시고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구원을 결혼식을 딴 따 따 단 하시지

마귀 보란 듯이 배 아파 죽으라꼬 말이죠
그냥 하는 법이 없어요

이 사랑의 최고의 선물인 결혼식을 우리는 자꾸 음녀처럼 자기가 사랑할려고
신랑찾기를 할려고 하니까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사랑하겠다 끝까지 따라 가겠다 라는 것이
도리어 나 저 사람 알지 못한다 알면 장지지겠다
그 놈의 장은 저기서도 여기서도 두 쪽에서 다 지지는
결국은 10번 이상 해 버릴 수밖에 없어서
지질 장도 없게 되는 그 한계에 부딧히게 만들어서

이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사랑만이 승리하는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는 은혜인데
이 행함이라는 선악의 법으로 자꾸 해석하는 버릇 때문에
방종하지 말자가 오늘의 내용이 아니다 말이죠

방종 하지 말자 라는 말은 곧 세 번 부인하지 말자 가 되는거 아닙니까

아니 그러면 너는 세 번 부인 하자 라는 말이가
라꼬 또 꼴깝게 듣는다 말이죠
자꾸 인간 숙제로 돌려야
삥을 뜯거든요 돈을 내거든요
가정부 만드기 수법이라는 말입니다

(롬 6:2, 개역)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래서 이미 죄 아래서 죽었다 라는 겁니다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율법을 성경말씀을 대상물로 삼아서 행하고 규치 지키고 실천하지가 아니라

율법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말씀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죄에 대해서 죽이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죽었는데 그 속에서 살수 있겠냐 말이죠

자 그러니 이것을 자꾸 믿는척 하니까
율법 지키는 척 하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니까

그 남도 조져야 하는 율법 지킨 자신이 남들을 정죄하고 돌아다니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지키는 놈들 끼리 끼리 유유상종 모여서 사마리아 아예 못 넘어오도록 선긋고
지들끼리는 남 용서 몇 번 했니 라고 서로 저울질 하는데

율법을 가지고 말이죠

율법 앞에서 얼마나 장난질 하고 얼마나 강도짓을 하는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 라는 비유에서
제사장 레위인들이

사실상 강도 만난자 그리고 지나가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인물로 나오지
정작 강도가 없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그 강도가 누구다? 제사장 레위인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놈들이다 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완전 정반대
그것도 철천지 원수 사마리아인이 이웃으로 나온다?
비유 듣고 깨닫고 고침을 받으라고 하시는 소리입니까
아니면 절대로 못듣도록 단절로써 차단으로써
혹시나 고침을 받을까봐 싶어서
철천지 원수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써 말씀하십니까?

비유 내용이 귀에 들어오기는커녕
입에 거품을 물고 뭐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증거한다고?
그 자체가 예수 저거 안 죽이고는 못 견디겠다 로 만드시는 겁니다

아니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미사일로 아이들을 죽였는데
그들을 이웃으로 원수를 사랑하라 로 비유를 증거하면
이스라엘 그 악마들이 가만히 있겠냐 말이죠 부글부글 끓겠지
두 악마들이 서로 서로 누가 부모잡아먹고 누가 더 자식잡아먹느냐
그것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말이죠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저들의 신들은 다 악마예요 알라든 여호와든 다 악마라니깐요
창조를 취소 시키는 창조

아무리 임금삼고자 해도 도망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 라고 하시는 분이
진짜 하나님이시다 말이죠

제발 좀 내 땅 좀 그만 밟아라
제발 좀 오지 말아라
내 마당만 밟는다
너희는 나에게 자꾸 보일려고 오는 눈도장만 찍어서 
열 번 찍으면 한 번 공짜를 바라는 그 심뽀로 온다 라고

그래서 선지자는 이웃은 나그네는 자꾸
내 손에 죽을려고 자꾸 속을 빡 빡 긁어대는 겁니다

난 절대로 살인 안 할 거야
난 절대로 원망 안할 거야
나는 절대로 나그네를 쫓아내지 않을 거야 라고 하지만
반드시 내 손에 죽어서

정직한 영이 없음을 고발 당하도록
내 손에 죽은 선지자로부터 고발당하도록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치는 그 놈이 바로 너 다
라고 외치는 이웃으로써 나그네로써 이런 이웃을 도저히 영접못하는
쫓아낼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들어서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선지자로부터 고발당해서
반드시 울게 만드는
49일 지나도 때려죽어도 안 우는 자에게
50일째 되는 날에 (날짜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 역사 내 시간을 날려버리겠다는 의미로써의 종말 
즉 주님의 시간이 졸지체 쳐들어옴으로써 내 역사 시간은 날라가버리는
일곱 절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오순절) 나팔절 대속제일 장막절(초막절)
성령이 부어지니까 갑자기 어찌할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라고 우는
반드시 우는 자 만들고야 상한심령 만들고야 말겟다 라고
매국노 세리가 가슴을 치면서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뭘해도 죄인인 심판받아 마땅한 사망의 몸임을 알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우는
그런 창녀 죄인 환자 만들고야 마는
선지자로 이웃으로 오시겟다 라고)

그 피 위에 세워지는 새성전으로써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성전 기능
정직한 영의 기능
중심의 기능
인자의 기능으로써

이 은혜가 이 믿음이 왕노릇함을 말하고자
대조가 되는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을껀가 가 아닌? 죄 속에 거할껀가?
더 넓은 의미에서의 공간 장소 몸 개념으로써 권세 사망권세 왕노릇을 대조해서

그 차이로써 은혜의 왕노릇을 증거하는데
엉뚱하게 방종하지 말자가 되어버리니까
이건 계속해서 도리어 죄 속에서 살자 계속 거하자 계속 이 의문의 반복인
행함문제로 내 숙제로써 두자 라는 식이 되어버리니까

뒤의 의미들이 다 날라가 버리는 거죠
대조가 되는게 아니라 같은 동질성으로써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역시나 우상이나 하나님이나
재물이나 하나님을 두 주인을 섬기자 라는
그 놈의 눈에 보이는 교회들의 한결같은 결론 돈 내고 복 받자 라는
그 음녀짓을 유대인들을 보고서도 또 똑같이 따라하는 강도의 소굴이더라 말이죠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니 함께 죽지도 않는데 어떻게 함께 다시 살수가 있냐 말이죠

되찾는다 라는 의미는 잃어버림의 의미가 있어야 되찾음이 의미가 있는데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말이죠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니까
거 봐라 행해야 한다 라고 나오잖아 라고 또 반박해요 글쎄

바로 그런 의식이 법 지키기라는 선악에서 입니까 곧 남의 시선을 의식함 입니까
아니면 사랑해서 입니까

가정부 월급 받기 입니까
아니면 아내의 피신랑 사랑 입니까 아니 이런 허물도 다 덮어주시나요?

천사가 죄인을 흠모합니까?
가정부를 흠모합니까?

천사는 가정부를 흠모할 턱이 없어요 자기도 다 할 줄 아는데요 뭘
천사는 죄인을 흉내조차도 할 수가 없어요

찢겨졌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을 당하는 일으 흉내조차도 말이죠

자신들이 맡은 기능 자체가 틀리는데요 뭘

신부의 기능을 할 수가 없어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피신랑의 피 흘리심의 대상물이 될 수가 없다 말이죠
결혼 상대자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피신랑이 좋아라 미쳐서 스토커처럼 자기 목숨 버려가면서
지옥에서 건진 자는 피신부 뿐이거든요

신부 자체로는 피신부가 아닙니다 피신부가 될 수가 없어요
제가 사실은 잘 못 표현한 것인데 독자적으로 피신부가 될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같은 운명이라고 해서 피신랑의 동질성으로써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피신랑 혼자 다 했지
아무리 신부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해서 피신부가 되는게 아니라

아 참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제가 잘못 표현했네요

피신랑의 피로 사신 교회라는 의미에서 피교회 피신부라는 의미인데
말을 줄이는 식으로 말이죠

신부 자기 피로 사는 교회도 아닙니다
왜 이것을 집고 넘어가야 하느냐 하면 방종개념이 나온 의미 조차도 이래서 그렇거든요
항상 눈에 보이는 나 중심을 먼저 우선시 하다 보니
보이는 내가 다니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의식하고 눈치보고 말이죠
자기가 투사 시킨 가짜 예수를 눈치보듯이 말이죠
그런 목사 장로들 뿐이라서 맨날 싸우다 보니

진짜 복음은 내 숙제 아예 없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소식이냐 말이죠
그러니 정확하게
피 신랑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인 거죠
예수님의 숙제 뿐이였다 곧 피 흘리신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은 예수님 뿐이셨다
여기에 왜 자꾸 목사 장로들이 끼여들어서 자꾸 숙제를 하라고 강요하는지 원

예수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어넣지 마세요
만약 넣는다 라는 것은 남의 시선을 또 의식하는구나 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냥 예수님이 아닌
반드시 내 죄를 캐내어서 아무리 의인이라고 우겨도 반드시 캐내어서
없던 죄도 만들어서 캐내어서 그 죄 값으로 피 흘려 죽는
내 죄를 대신 해서 죽으시는 그 죽음으로 합하러 오신 한 몸이지

그러니 얼마나 싫어버린 바 되겠습니까? 그것도 나에게 말이죠

그 정도로 남의 시선 따위는 끼여들지 못하게 하시는 사랑이요 징계이거든요

그런데 자꾸 가짜 예수를 내가 조작해서 투사시켜서
(이게 개혁주의이고 이게 성화론자 아닙니까)
흠모할 모양 많고, 아름다운 풍채에 이게 늘 남의 시선 의식인 거죠
귀히 여김 받지 않는 것을 누가 바라겠냐 말이죠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진 자 만이
이 십자가가 영광으로써 바라는 겁니다 귀히 귀히 여기심을 받는 거죠
누가 이 비유를 비밀을 듣고자 보고자 하겠냐 말이죠 다들 고개돌리는 판국인데 말이죠
그러니 우상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우리 숙제에서는 없는 겁니다
매일 매일 용서를 부어주심 만이 다 이루심 인거죠
곧 손수 직접 마련하신 이 화목제물 첫맹세로만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울리는 꽹과리는 타인의 욕망을 타인이 부러워 하는 것들을
역시나 똑같이 투사 시켜서
결국은 복 달라 결국은 돈 달라 라는 소리인거죠 (존재의 함성입니다 나 살아있는데 안주면 우짜노? 뭐 살았다고? 너 이미 죽었는데 ~~~
사 딸라 사달라 김두한 4 딸라 ~~~~~~~ 4 달러 돈 달라 돈 달라 ~~~~)

그러니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죽지 않는 이상

이미 죽었는데 또 그 죽음 속에 거하면서 살아야 하는 그 마침이 없는 거죠
죽었는데 안 죽엇다 라고 우기고 있으니 말이죠

이것을 참나 말로 표현할려고 하니 뭐 우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이죠
소위 모태 신앙이라는 둥 하는 자에게는 아예 안 통하고요

전혀 무신앙이였다가 주님을 만난 자는
처음사랑때를 기억해서는 대화가 통하는데
그 사이에 목사들에게 세뇌가 되었는지
결국은 행함 이야기를 안 하면
또 자꾸 무슨 소리인줄 못 알아먹더라 말이죠

그러니 교회에서 오히려 대화가 되는 사람이 없어요 없어

다 탈탈탈 털려서 빈털터리가 되니까 조끔 대화가 될까 말까
바로 또 목사에게 세뇌 당해 버리니까
바로 행함으로 또
늘 목사 눈치, 주변인 눈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저들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말이죠
이게 갇혔다 라고 장소 개념으로써 죄를 거한다 라고 표현한 겁니다
장소로 몸으로 공간으로 세계로 판대기 구조로
새번역은 죄 가운데 라고 가운데를 장소도 되지만
누구와 합쳐졌느냐 죄와 한 몸이냐
그리스도의 죽음과 한 몸이냐 라고 ~~ 관계성을

그러니 우리 앞에서 호세아에서
그래 그래 많이 많이 딴남자랑 놀아나라 이 창녀 이스라엘아
그러나 나 여호와 반드시 너에게 새장가 가고야 말겠다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곧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며 
죽음과 한 몸 된 너 창녀 이스라엘아
그 죽음 보다 강한 너의 본래 남편 왔다
그리고 그 죽음을 시기하고 투기하는 사랑이란다 라고
죽음 보다 강하니 그 죽음을 뚫어버리고자 죽으러 왔단다
그러니 더 이상 죽기를 무서워 사망의 왕노릇에
종노릇 아내노릇 할 필요가 없는
이미 죄 가운데 죽었다 말이죠
죄가 사망이라는 전남편이 죽었는데
없는 사망을 신랑으로 삼아서 살겠다고?
이미 죽었는데 너의 전남편 죽음은 죽었는데?

죽음이 뭐 있어야 죽음 가운데 사냐 말이죠
네 맞아요 광야 속으로 들어가는 출애굽 사건이 기억나지요
그래 그래 많이 원망해봐라 
사망이 이 죽음의 사막 가운데서 아무리 너를 죽일려고 달려들어도
사망과 함께 죽었으니 어찌 죽음 가운데 사냐
이제 너는 창녀 이스라엘 너는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로만 살도록 되어 있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동행의 수갑
사랑의 밧줄로 단단히 묵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저들
늘 목사 눈치, 주변인 눈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저들이 아무리 가만히 두질 않는다 해도

자유하는 꼴을 막사는 꼴을 못 본다 해도
그러니 방종자 라고 손가락질을 해서 이 사망에게 눈치 보도록 만든다 해도
그런 의식을 아무리 심는다 해도

사망아 누굴 쏘느냐?
주님이 언제 나타났는지 다 대신 맞더라 말이죠
우리는 바로 그 공로만을 바라본다 라는 취지에서
지금 사도바울은 아주 당당하게

이 은혜를 저 행함의 법칙과 대조해서 증거함으로써
은혜라는 예수님의 죽음과 합한자로써 증거하는 겁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라고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로써
이것 보다 영광이 없다 라고
아니 내 같은 사망의 몸에

하나님의 의인 절대심판과 절대용서인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시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그 앞에서 그 입 다물라
너무나 숭고하여서
숭고 곧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숨이 멎을 정도로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라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몸이라는 공간 장소에서 나타내시는
그 창조를 펼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 자체가 저들 성화론자 뭐 방종 운운하는 자들과 틀리는 겁니다

방종한다고 새언약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사랑의 용서가 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방종 안한다 라고 해서 새언약이 되는 것도 아닌

이미 전체적인 구조 판대기 자첵가 통체로 완료된 채로써
지금 통보만 할 뿐입니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 가운데 속에 거하겠다 라는 것도
행함의 발로 견딜수가 없어서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뭐라도 채울려고 발악하는 모습이고
그것을 또 반대한다고 해서 저절로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이 믿음과 합하는 몸인가 아닌가
합한다 라고 해서 또 자기 숙제로 여기면 이거 또한 음녀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겠다 라고 나서는
해 봤짜 유대인과 다를바 없는
바벨론 큰 꼬추만을 우상으로 삼는
왜? 나는 망하면 안되니까 내 아들 고아 되면 안되고
내 남편 나그네 백수 되면 안되고
나 아내는 과부가 되면 안되는
그러다 보니
고아가 고아를 죽이고 제사장이 제사장을 죽이고
나그네가 나그네를 죽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죽이는 선지자가 선지자를 죽이는
과부가 과부를 핍박하는
왜? 율법 지키기 위해서
제사장이 율법 지키기 위해서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쳐 가듯이
성경은 너무나 차갑게도
예수님은 너무나 차갑게도
강도는 정작 출연인물로 빠져있는데
누가 이웃이냐 라는 동시에
누가 강도냐 라고
강도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이웃도 밝혀지지 않는
사탄의 깊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깊이인 사랑
하나님의 의도 안 나타난다 라고
도리어 누가 봐도 철천지 원수인
저 사마리아
저 팔레스타인이 선한 이웃이라고
아니 원수인데?????

200명 인질로 삼아서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죽인 자들인데?

누가 저들을 죄 속으로 몰아넣었냐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로 안 보이는
이 하나님의 의가 덮쳐지지 않은 이상
십자가의 죽음인 이 피 흘리심의 십자가의 사랑이 덮쳐지지 않는 이상

이 팔 서로 지 잘났다고 지가 옳다 라고 나서는
그 의문의 반복인
원수 갚기에서 벗어날길이 없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개인 구원을 이미 염두해 두고서 봐버리면
그 개인 구원이 바로 원수 갚기이거든요
너 보다는 내가 무조건 잘 되어야 해 라고

언니 사마리아를 앗수르 큰 꼬추 사모한다 라고 온갖 욕에 온갖 저주를 다 해놓고서는
지는 동생 예루살렘은 더 큰 꼬추 바벨론을 우상숭배라고 자기 신랑으로 맞이하는

이 원수 갚기
여자의 원수는 여자 아닙니까 그게 영화 밀양에서 나오잖아요 전도연
용서 라는 그 여자만의 기능을 왜 하나님 니가 뭔데
내가 용서해야 하는데 니가 뭔데 먼저 하느냐 라꼬 ~~~~~~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김추자 거짓말이야 ~~~~~~~~~

사랑도 거짓말 ~~~~~~~

이게 모든 인간의 행위요 모든 행함이 바로 원수 갚기
너 하나님 가만히 안 두겠다 라고
약사 장로 타락시키겠다 라고 나서는 겁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겠다 라는데 왜 방해 하냐 라고

방종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놈이 더더더 방종을 대 놓고서
원수 갚기 이게 인간의 믿음인 행함인 겁니다

그래서 그거 깨뜨리시겠다 라고 나서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네 맞아요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사도들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사도들이기에

이 예수님의 죽음만이 원수 갚기 라는 그 의문의 반복의 고리를 끊어내지
그 허상 그 허구 그 그림자를 실상으로 내 행함으로 나타내겠다 해 본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이냐 말이죠
마귀 밖에 더 있냐 말이죠

자살도 일종의 원수 갚기입니다
아무리 나를 타락시켜도 나는 내가 알아서 내가 썩은 부분만 오려내듯이
마귀에게 속았던 그 부분만 짤라 내겠다 라고
끝까지 정의를 실현하겠다 이 선악을 발산한다는 자체가
원수 갚기이고 
하나님은 날 버려도 나는 너를 안 버린다 라는 식으로
자기 의를 추구할 뿐이지

정작 그따위 유치찬란한 조작된 신 조작된 정의와 상관이 없이 펼쳐지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으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그 정도로 나는 사망의 몸이군요 라고 우는자로 만드시는
이 정직한 영을 부어주소서 라는 새마음이 새영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오지 않으면

헌 마음 헌 부대 헌 술로 승부를 걸겠다 라고
헛짓
칼로 물 배기
말라꼬 하냐 말이죠 허구인데
안개를 왜 잡을려고 하냐 말이죠
신기루를 왜 잡아서 뭐하게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거 안개인데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사람의 구원이요
인생 허무 그 자체인 허상인데
뜬구름 잡아서 누구한데 과시할려고
도로 욕만 먹는 줄로 모르고
누워서 침 뱉는 짓만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즉 행함은
다 차단 시키는 겁니다
일체 개입 못하도록

(롬 6:3, 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4절은

누가 선한 사마리아 이웃처럼
강도 만난 나에게
바이러스 걸린 나에게
다가와서
제사장도 지나가고 목사처럼 말이죠
레위인도 지나가고 더럽거든요

그런데 내가 더럽다 라고 사마리아 이 개같은 이방인
우상숭배자 라고 침뱉어 쫓아낸 자가

강도 만난 나를 치료해 줄때에

외부에서 백신 주사를 놓아줄때에
3-4절은 그야말로 외부의 작용이다 라는 겁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하는
의사 팔레스타인 의사가 자기 피를 뽑아서 수혈할 때에

그의 죽음과 그의 다시 살아남과 합해지는 몸 공간 장소의 투입 천국의 침략만이

죄와 함께 죽는 이 종말을 고하고
주님의 종말과 한 몸이 되어서
그의 몸인 장소인 곳에서만 사는

에스겔 새성전의 5대 제사 기능과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고자
처참하기 찢고 찢는

그 찢은 몸을 다시 싸매어 주시는

때 주의 때와 합하는 일곱절기를 통해서
나의 때로 나의 시간으로 격었던 그 경험치를 훌훌훌 탈탈 버리고
예수님의 시간으로 안식의 주인으로 꽉꽉 채움으로써

비로소 안식이라는 창조

인간의 안식일 지키는 것을 박살내고 취소시키지 않는 이상
텅텅 빈털터리
절기를 지킨 것이 도리어 안식일의 주인을 죽인
그 허구 그 우상을 깨뜨리는
이 안식의 주인의 침략으로 인해 내 시간 내 안식일 지킨 마일리지 도장 찍은
그 허구의 카드 찢어지지 않는 이상

주님의 시간과 합해 질수가 없는
종말 마침이 되는 완성이 되는 이 새마음을 모르도록 하시는 겁니다

제가 신약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어 그 자체가 하나 있는데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달음박질 함도 아니요 라는 의미입니다

원하는 자 깨뜨리는 복음 이다는 겁니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 가운데 거하리요 살리요 그거 깨뜨리는
그렇다고 반작용으로 한풀이로 원수갚기로 너 보다는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으로
거봐 거봐 방종하면 안된다 아이가 도 복음은 무참하게 짖밟아 깨뜨리고

달음박질 함도 아니요 이게 방종 안 하기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바로 이 화목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만 밀어붙이신다 라는 이 첫맹세 대로만
첫사랑 대로만 밀어붙이심으로 인해서

거 보세요

기생라합이 간담이 40년 동안 녹았잖아요
기생인 주제에 국가의 민족의 신 민족의 종교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외부에서 생판 모르는 그 신의 이름만 듣고도 벌벌벌 떨어 간담이 녹아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자기 민족의 신 자기 민족의 종교를
냅따 여호와 라는 그 이름 앞에서 다 팔아버리는 겁니다

허락도 안 받고 자기 땅도 아닌데 이 나라 땅 다 가지고 가이소 라고
심판해 달라고

이 심판의 주를 만난 것이 창조주의 이름을 부른 적 없던 자에게 부르신바 되도록 말이죠

그래서 거짓말로 자기 민족을 죽이러 온 심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을
거짓말로 숨겨주는

이 행함이 있는 믿음
곧 부정적인 행함입니다
그냥 행함이 아닙니다
그건 비밀 비유가 될 수가 없어요

비유 비밀이란 풀수가 없도록
앞 뒤가 모순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말인데 구원이다? 말이 되냐 말이죠

똑같이 기생라합이 구약에 있었다면 신약에는
십자가에 달린 한 쪽 강도가
아니 글쎄 이 죽음의 권세를 심판하시고자
죽음 속으로 뛰어든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당신의 나라에

저의 나라 모조리 다 팔아버리겠습니다 라고
이 사망의 몸도 팔아버리겠습니다 책임져 주세요 라고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아무리 사형수이고 아무리 미친 정신병자 사이코패스 라도
야 이 두 미친 놈들아 정신 차려라 라고 하는 겁니다

앞 뒤가 모순이 되기에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날 괴롭히는 엘리야 또 너냐

아이고 좀 제발 좀 죽어라 왜 죽지도 않고 또 왔냐

신약에서는 이 기생라합의 고백이 바로 한 쪽 강도였다 라는 겁니다

나라 장소 천국 장소 개념이 덮쳐지지 않는 이상

죄 문제를 개인이 짓냐 안짓냐 라는 되도않는 빵께이 소꿉놀이 종교오락 장난질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결국 성화론자들이 이 소꿉놀이를 종교오락을 가르치는 이유는
설마 소꿉놀이가 목적이겠습니까? 아니지요

나 목사의 구원
돈 달라 라는 소리 인 겁니다

그러나 복음은 금과 은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오로지 주 나사렛 예수 이름 뿐입니다

이 나사렛 이단 예수 이름 때문에
사도바울은 비로소 외치는 겁니다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 겁니다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왜? 제대로 부정한 입술로써 죽었기에

다시 싸매어 주심이 있었기에

이 앞 뒤 모순된 비유 비밀로써의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외칠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외치고 있는 겁니다

부정한 입술을 제거함을 받고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고

이 새 것 이 그리스도의 죽음만 외치기 위해서
이 앞뒤 모순된 비밀인
그루터기만을 남기고자

심판의 불을 지르러 막 돌아다니는 겁니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11,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 6:12, 개역)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불을 지르러 왔다 라고

그리고 모조리 다 태워서
오로지 그루터기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때 몸 장소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한 새로워진 몸 새로워진 때를
이 땅에서 펼치고자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하듯이
사도바울은
이 주의 나라를 이 땅에 퍼붓고 있는 겁니다

이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자 만이
남도록 말이죠

이 동행하는 중심을 세상의 중심을 
하나님의 집인 온 유대와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유대로부터 공중해체 시키고
그 다음 사마리아와 이방나라 구석 구석 주님의 피가 안 증거되는 곳이 없도록
땅끝까지 
죽음끝까지

사망의 권세 사망이 왕 노릇하는 그 구석 구석까지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십자가의 깃발을 박아버리는 겁니다 푯대의 깃발을 꽂는 겁니다
우리 마음 구석 구석 끝까지 이 십자가라는 다이나마이트로 폭발 시키고자 말이죠

나의 몸 나의 시간
인간의 몸 인간의 역사가 공중해체 되는 그 자리에

예수님의 몸 예수님의 시간을 꽉 꽉 채우시고자 말이죠

화목제물로 첫맹세대로 붙도져로 평탄케 다리미질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찾을래야 찾을 수 없도록 말이죠
흰 눈과 같이 희게 ~~~~~~~~~~~~~~~~

나와 변론하자
토론하자 따져보자 배틀토론 하자

죄를 흰 눈으로 
먹보다 더 검은 죄를
붉은 피로 다 덮어버리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저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주시고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 밖에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 밖에는
제대로 심판 당했으니 제대로 그 입 다물라 라는 입다물게 하시는
중심을 정직한 영이 없어어 우는 자에게
값없이 정직한 영 새영 그리스도의 마음
종말의 영을 부어주시니
황공무지로소이다

토론하자굽쇼? 아닙니다
저에게 묻지 마소서 당신의 그 깊은 뜻을
저 따위가 뭘 안다고 대화에 끼어들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의미이다 말이죠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당신의 거룩한 영광 앞에서
더럽기 짝이 없는 지옥의 몸 사망의 몸으로 드러났는데
내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해 주시는
죄를 사하시다니요
그것도 당신의 피를 흘려서

의사의 피를 뽑아서
환자인 나를 수혈해 주시다니요
내가 뭐라꼬


그러니 어찌 아니 기쁠수 있겠느냐 말이죠 기뻐하기 싫어도
기뻐하심을 입게 당해버렸으니 말이죠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래서 다 이루어진 이 거룩한 한 씨만을 남기고 다 제거하는
이 심판을 증거하는 기쁨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인 선지자
지상의 왕들의 모가지를 댕칼 댕캉 날리는
이미 하늘의 이스라엘이 다 세워졌다 라고
눈에 보이는 왕을 왕 취급도 하지 않는 냥

임금 없는 나그네 같이

심판의 10가지 재앙 같이 선지자는
개구리재앙 태양재앙 장자의 죽음 재앙
애굽강을 피바다로 만드는 재앙 등등 처럼 말이죠

바울은 지금 친절하게 쉽게 알려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앞 뒤 모순되는 비유 비밀로써
더더욱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모순은 생각지도 않으면서
도저히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말이죠
도리어 우리의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더더욱 모순으로 몰아가버리는
그렇다고 반박 할수도 없고
(정 그러면 이 지옥의 세 구덩이 넘어서보시던가?
왜 다윗의 자손에게 다윗은 주여 라고 했는지 답해보시던가?
행함의 차원이 아닌 믿음의 문제 곧 믿음의 달인들인 유대인의 문제가 아닌
인간 몸의 문제가 아닌 예수님의 몸 문제인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믿음 문제를 지금 바울은 외치는 겁니다
고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한 몸이기에
이것이 유일한 죄 안에서 죄 바깥의 말도 안되는 생명인 겁니다
어떻게 당신의 나라에 기억해 달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이 세상 밖으로 못 나가는 안에 갇혀버렸는데
밖에 나가면 죽어요 글쎄
사망인 자에게는 사망 바깥이 죽음입니다
물 속의 물고기가 물 바깥의 세계가 곧 죽음이듯이
몸이 그래요 몸이
인간의 선악의 신체는 이 사망의 세계가 딱 맞아요
그런데 당신의 나라? 그것은 죽고자 하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겁니다
인간의 천국은 자기 지금 신체를 여전히 그대로 천국에 까지 잇고자 하는
연속성의 천국이지
다른 몸이 아닌 겁니다 여전히 안이지 전혀 다른 바깥이 아니다 말이죠
그러니 이 땅의 세계에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이상
버린다 라고 해서 버렺지도 않는 바이러스인데 그 증상물의 몸인데 우찌
숙주가 된 몸을 버리겠냐 말이죠 그저 그 몸 그대로 천국으로 옮기고자 하는
그 망상 그 조작된 천국을 깨뜨리는 몸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는 몸으로써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한 자로써 모든 육체를 신나게 이사야는 사도바울은 못 박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맞물리도록
우리의 죄악과 복음이 한 세트가 되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몸을 소개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그 영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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