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 호세아의 음란한 가정과 음란한 이스라엘 그리고 불륜의 십자가 결혼 (호 1, 1- 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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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후가 아합왕이 아닌 그의 아들 요람 왕을 죽였습니다 이미 벌써 죽었는데, 수정합니다)
23-01 호세아의 음란한 가정과 음란한 이스라엘 그리고 불륜의 십자가 결혼 (호 1, 1- 5)

여호와 삼마 (겔 48,30-35)
에스겔 2019 2023. 6. 3. 22:20
19-145 여호와 삼마 ; 거룩한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할 지어다 (겔 48,30-35)

〈호세아 1, 1- 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7쪽, 찬송가 233장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162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

〈찬송가 233장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1.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2.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3. 마른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4.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겠네. 
   기쁨으로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5.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 뿐이라. 
   주가 주신 면류관 쓰고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호세아 1, 1- 5, 개역한글 구약성경 1257쪽〉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3)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찬송가 162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

1.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 됐느냐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2. 주를 나와 맞으라는 소리 들릴 때 
   기뻐하며 주를 맞이할 수 있느냐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3. 항상 깨어 기도하며 거룩한 기름 
   준비하지 않고 주를 맞지 못하리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4. 그 날 밤에 영화로운 혼인자리에 
   기뻐하며 할렐루야 찬송 부르리
   그 날밤 그 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호 1:1, 현대어) 이것은 여호와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내릴 때에 유다에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대를 이어서 다스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다스렸다.
(호 1:2, 현대어) [배신한 이스라엘의 모형 고멜]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처음 말씀을 시작하실 때 이렇게 이르셨다. '너는 가서 창녀와 결혼하여 그 어미와 똑같이 음행하는 자식들을 낳아라. 내 백성이 나를 떠나 창녀처럼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
(호 1:3, 현대어) 그리하여 호세아가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호 1:4, 현대어) 이때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이름을 ㄱ) 이스르엘이라고 지어라.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예후의 왕조를 벌하여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겠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를 궤멸시켜 그 나라를 없애 버리겠다.' (ㄱ.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는 뜻)
(호 1:5, 현대어) (4절과 같음)

다윗언약이 원인 없이 결과적으로 덮쳐버리니까
이제 이유도 없이 무조건
다윗 개인의 겪었던 경험이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가 됩니다

그러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거죠
언약 곧 약속의 문제
계시의 문제
말씀의 문제
묵시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숙제

자 그럼 개인은 깨져버립니다
개인 곧 모둔 인간의 몸인 장소와 시간인 역사 모든 인간의 역사가 말이죠
약속의 반대가 그럼 뭡니까 비언약 아닙니까?
그게 다윗입니다 다윗의 언약이라고 해 놓고서는
자 이렇게 말이죠 [다윗언약] 이라고 언약을 말해 놓고서는 [다윗] 그 개인을 비언약으로 두시는 겁니다
다윗언약이 다윗을 공격하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니 다윗언약은
다윗을 깨뜨린 언약이다 라는 의미에서 다윗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박살난 방식으로
이제 이스라엘 전체가 박살내는 개인에서 전체로 확대 되는 박살이 종말이 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음란성은 개인이 아닌 
전체 이스라엘의 멸망이 되도록 하시는 겁니다 개인 구원 따위는 없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언약
이삭 언약
야곱언약 다 그런 십니다

왜 처음부터 예수님언약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의 이름이 개입이 되는 겁니까
구약은 여호와 언약이라고 하면 될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 언약이라고 하면 될 것은

구약에서 특히 사람의 이름이 왜 낑기는 겁니다
물론 이건 신학적인 용어라서 그렇고
성경에 나오는 용어로 하자면

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들만이 산 자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시고

왜 다른 수 많은 인간의 이름은 왜 안 들어가는 겁니까

이들은 그냥 들어간게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이다 라는 거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말이죠
아브라함은 본향의 이름으로 살고싶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브람으로만 살고파 합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지독히 괴롭히십니다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울리는 꽹과리 곧 우상으로만 살려고 하기에
우상 조각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고자
인자를 투입 시켜서 전쟁을 하시는 겁니다
나와 전쟁을 말이죠
이름 전쟁 입니다

그래서
인자 로써  누구 누구의 아들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모르겠다 라는 겁니다
도대체 누구 아들이지? 요셉 아들 목수의 아들?
그러면 우리와 같을 것인데 어라
우리의 세계관과 하나도 단 한 개도 통하는 소통되는 것이 없어요
관계단절이요 이게 거룩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다른 몸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 인자
사실은 모르는게 아니지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어요

예수 너 요셉의 아들 아니냐
목수의 아들이다 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숨겨진 의미가 들어감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판단을 그 해석에 포착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리는 식이 되는 겁니다

자 그렇게 되면
분명 요셉의 아들인데 요셉의 아들로 보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자만
산 자의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그 자는 죽은 자의 하나님만을 섬겨왔던 것이 드러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음란 곧 죄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란의 차이입니다

고로 이 몸 이 새몸 곧 인자의 등장으로써만 죄가 되듯이 죄가 규정되듯이
이 인자로써만 왕이 규정 되는 겁니다 몸이 규정되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여러왕들의 이름이 거론 되는 이유는
이 왕들이 아무리 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왕 아니다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백성을 섬기는 왕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저 개인적인 왕 이라는 자리에만 앉은 허구 허상이다 라는 거죠
그럼 이 우상과 이 허상과 차이로써 등장하는 자만이
왕이요 백성을 섬기는 자이다 라는 겁니다
그 나머지는 우상이요 음란이 되는 겁니다

과거의 음란은 돌 조각 나무 조각으로 신의 형상을 만드는
보이는 것으로 권력을 추구한 것인데
이제 안 보이는 것으로 음란을 규정해 버리시는 겁니다
앗수르의 정책으로 혼혈정책에 의해서 이방나라와 몸이 섞여지는 강제결혼이 음란으로써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나라 임금이 노리는 음란이고
정작 그게 음란이 아니라
저런 앗수르 저런 바벨론 임금을 주의 종 또는 메시아로 삼아서
죄를 유발케 만들어서
이스라엘을 음란 죄로 만들어버리시는
세상이 음란하다 또는 죄다 라고 규정하는 것 보다
주님이 음란하다 또는 죄다 라고 규정하는 것이 더더더 무서움을 보여주시는 식으로써
우리를 음란한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마치 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으로 모세에게 이혼증서를 요구하는 그 완악한 마음을
더더더 더 깊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더러운 여자랑 못 살겠고
깨끗한 여자와 다시 결혼하겠다 라고 노리고 있는 마음
그래서 모세에게 이혼증서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그 완악한 마음을 음란이라고 
산상수훈 율법강화에서 밝히시듯이 말이죠

어차피 사랑하는 마음이나
어차피 성경에서 말하는 한 몸이나
관심은 없고 그저 선악의 법으로 그것을 율법과 섞어서
그저 깨끗한 여자랑 살아가는 깨끗한 남자가 되겠다 라는 심뽀 자체가
더럽기 짝이 없는 음란이다 라고 규정하시듯이

독수리가 바로 그런 시체의 썩어빠진 마음을 놓칠 리가 없듯이
독수리가 있는 곳에 주검 시체가 있듯이
선악이 있는 곳에 말이죠

그렇게 인간을 무조건 이유 없이 시체로 보는 독수리 곧 마귀의 시선 보다
더더더 시체의 더러운 원수 시선으로 보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곧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라고 하신 분의 말씀이 우리를 보고 계시는 시선이다 말이죠

그 말씀이 여러 왕을 비켜가고 오늘 호세아 곧 누구 누구의 아들에게 임해 버렸습니다
인자란
다른 몸으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저렇게 언급된 여러 왕들과 다른 몸으로써 내던져 지는 겁니다

아 그럼 우리도 저 호세아 처럼 제대로 보도록 훈련하면 되고 지식을 쌓고 공부하면
특히 제자훈련 하면 그 놈의 제자훈련 과거 다른 나라에서 다 실패한 프로그램들 아닙니까
비젼 운동 비젼을 품고살자 이거 미국 복음주의에서 다 실패한 것 아닙니까
아직까지도 하고 있어요 글쎄 
아무튼 
불가능을 가능으로 포착하도록 노력해서 우리도 다른 몸으로 살자 라고 나올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한 것이

문제는 바로 그것이 원인을 갖추는 식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자기 쪽에서 신랑을 선택하겠다 라는 것이 음녀 라고 했지요
악한 무화과 나무라고 했습니다

아니 맞잖아 원인을 갖추어야 정답을 맞출꺼 아니냐
결과를 정답을 알게 될 것 아니냐

바로 그것이
언약에서는 안 통한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 비언약을 공격하시고자 일부러 무조건 우리를 비언약의 자리에 놓아버리셨다니깐요
지금 마귀 독수리의 시선을 주님을 끌어오시겠다 라는 데
우리는 독수리와 무관하게 자기 숙제 하겠다 라고 나서는 식입니다

원인을 갖추게 되면 결과가 없어요
미래완료가 없기에 계속해서 의문의 반복만이 있게 되는 겁니다
아니 지금까지 그 의문의 반복 안 했으면 또 몰라
지금도 계속 하고 있잖아요
그래놓고 뭘 계속하겠다 라고 원인을 갖출려고 하느냐 말이죠

아마 다음차례 로마서를 하나 빠뜨린 로마서 1장 1절을 다시 하고자 하는데
뭐 하다 보니 처음것을 빠뜨린 채로 했었는데
다행이 말씀을 나누다가 아 이번에 꼭해야 겠다 싶더라구요
마침 오늘 본문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로마서 1장 제목을 복음이 나타나다 라는 의미인데
오늘 본문 호세아 식으로 하자면 호세아에게 말씀이 임했다 말씀이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다른 왕들에게는 안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졸지에 나타나버린 겁니다 마지막 아담 말이죠
즉 다른 몸들은 모조리 첫 아담의 실패의 반복만 하는 몸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롬 1:1, 개역)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2, 개역)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3, 개역)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롬 1:4, 개역)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즉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되는 겁니다
이꼬르 동일하다 말이죠
자 그럼 기독교는 복음이냐? 아닌거죠
인간 쪽에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종교의 모든 방식은 결국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족하는게 아니라
체제를 갖추는 식입니다 그러니 교리가 필요해요 법입니다
법이 필요하다는 말은 지키는 실천이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실천하게 되면 도리어 자기가 법이 됩니다 권력이 되어버려요
깨끗한 남자라꼬  법과 권력이 되어버렸으니 이제 예수님의 몸에 의해서 멸망해야 함이 마땅함을 알까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까요? 자기 의로움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쌓고자
그것이 더더욱 완악한 법이 되어서 모세에게 이혼증서 써 달라고 모세를 죽일려고 하는
그러니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이다 라는 겁니다 살인의지예요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할려는 자가 도리어 지옥을 만든다 라꼬 칼 포퍼가 말했구요
유럼속담에서도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어라 여기에 가장 저촉받는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시네요
그래서 죽였다 말이죠
저런 속담을 만드는 놈들 또한 마찬가지이거든요
비평 비판한다고 해서 자기자신도 그 속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몸이긴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괜히 공산당의 천국건설이 지옥을 만든다 라고 다 아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공격하는데
안 그러는 몸 곧 첫 아담에 속하지 않은 자는 없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이 속담을 깨뜨리려 오신 유일한 몸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판국일 뿐이다 말이죠

자 이렇게 철학자들의 비평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라고 해 본들
역시나 답이 없이 원인 갖추기만 하겠다 라는 의문의 반복일 뿐인 겁니다
그런 비평 할 줄 아는 나 라는 인간 괜찮은 인간 아니냐 라고 말이죠
다른 몸 정답의 몸 다 이루었다 라는 미래완료의 몸이 와버렸다니깐요
그러니 사기치는 것 밖에 안되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고 말이죠

자 이렇게 처음아담의 모든 것들이 하나의 원인 갖추기 형성하기가 되는 겁니다
문제는 정답이 없어요
놀랍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없게 되는 겁니다
과거 천주교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지게 되어버렸듯이
이제 개신교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왜? 원인을 갖추니까 말이죠

자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말은
반대로 법은 사라졌다 라는 말입니다
네 맞아요 의문의 증서 율법이 찢어졌다 라는 겁니다

법이 사라져야 하는데 도리어 예수님이 사라져 버렸어요
법이 사라지면
이 놈들 방종한다고 우기는데
그 반대입니다
사랑이 나타납니다 다른 몸이 말이죠

어라 그런데 사랑 곧 예수님이 사라져 버리고
울리는 꽹과리만 계속 징징징 거리며서 소음을 냅니다

아 그럼 너는 율법폐기론자이구나 라고
실제로 이 문제로 저를 이단으로 몰아갈려고 한 놈이 있었어요
이미 이단인데 뭘 자꾸 새삼스럽게 이단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원

또 어떤 목사는 넌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했다 라고 가룟유다로 만들려고 하던데
제가 그 목사에게 그것을 이제 알았냐 라고 하니까
갑자기 파리채를 들고 책상을 쾅쾅 내려치면서
지가 화난다 라고 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가더라 말이죠
남의 가게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말이죠

처음아담에 속한 모든 인간은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했는줄 모르고 있더라구요
그래놓고 목사짓 하고 있으니
자기 알아달라 제발 목사말 믿어달라고 징징 거릴 뿐이다는 겁니다

또 아까 말한 율법폐기론자 이단으로 몰아갈려는 장로는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얼마나 나에게 정치를 하는지
제가 안 받아주고 안 속아주니까
저를 율법폐기론자라고 쫓아낼려고 얼마나 벼르던지
율법을 완성했는데 고등학교 졸업을 했는데 아직도 고등학교 교과서를 가지고 
대학교에서 배울려고 다녀야 하느냐 말이죠
대학교재가 있는데 거부하면서 말이죠 아직도 울리는 꽹과리 붙잡고 말이죠
말이 율법이지 이 놈들은 알고보면 유교 숭배자들이더라 말이죠
가관이더군요
유교와 기독교를 섞어놓고서는 뭐 율법폐기론자?
뭘 믿고 그러느냐? 너 보다는 지킨게 많다 라는 겁니다 법을 말이죠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성하러 왔는데
이 말은 또 안들은척 해요
얼마나 감사한지 영원히 갈라놓으시는 거죠

어찌 우상숭배자와 함께 하느냐 말이죠

우리 에스겔 20장 하면서 고린도후서 6장이랑 똑같다 라고 했지요

(고후 6:16, 개역)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성전은 건물성전이나 조직체를 두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 자체가 성도 자체가 성령의 전이라고 했다 말이죠

율법도 아닌 유교를 지켜놓고서 그거 안 지킨다 라고 돌삐던지다가
도리어 유교에서도 율법에서도 십자가의 다 완료 앞에서도

그 우상 그 미완료로 돌삐던지다 보니
도리어 자기 얼굴에 누워서 침뱉기 식으로
맨날 당하면서도 또 해요 글쎄
도로 돌삐 몰래 놓고 도망쳤어요 그러 돈만 섬겼으니 돈 챙기는 것으로 만족하고서 말이죠

아 말씀이 맞더라 말이죠
세상이 너희가 미워서 미워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미워서 미워한다 라고
아 그럼 원인이 세상이구나가 아니라
정답이 세상을 악하다 라고 규정했기에
세상은 미움을 발산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회현상을 가지고서 왜 세상은 악하냐 라고 성경말씀 쪽으로 끌고와서 그 원인을 찾으면 안되고요
주님 본인이 세상을 악하다 라고 규정을 해 버렸기에
그들은 악한 짓만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레스 바벨론왕 등등 주의 종으로 삼으셨다 라는 겁니다
부정적인 도구인 거죠 마귀로 사탄의 가시로 말이죠

그러니 저런 목사들 저런 장로들 교회종사들을
악하다 라고 주님이 규정을 해 주셨기에
오히려 빨리 쫓아내겠다 라는 그들의 다짐이 얼마나 고맙냐 말이죠
돈 안되는 인간 빨리 나가도 라고 말이죠
부도난 수표 ㅋㅋㅋㅋ 아이고 썩는 물을 위하여 일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더라 말이죠
결국 정치도 돈 문제입니다 잉여문제예요 생산력

그래서 십자가의 정치는 더더더 부정적인 잉여문제 생산문제 창조문제로
결과 곧 정답을 미리 완료해 놓고서 오시는 겁니다
말씀이 임했다 라는 뜻이 그런 뜻입니다

자 그러면 반대로 저들 왕들은 정답이 없으니까
그 허구를 남의 것 빼앗아서 유지하는 잔칫집을 구성하는 겁니다
사랑한다는 둥 평강이다 라는 둥 섬긴다는 둥 하면서 빨 때 꽃아서 피 빨아먹는 거죠

그게 바로 원인을 갖출려고 하기 때문인 겁니다

이게 복음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두 충돌
눈에 보이는 권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과의 전쟁입니다

정작 주의 이름의 나타나심으로 사라져 버린 의문의 증서가 되어야 하는데
폐기가 아니라 다 완료함으로써 사랑이 나타나는데
도리어 법이 나타나더라 말이죠 주의 이름이 사라져 버리고 말이죠
그러니 이 놈들은 도리어 그 의문의 증서를 도로 들고와서 정죄하기 바빠요 글쎄
칼 자루 쥔 놈이 깡패짓한다 라고 지금 도리도리가 그 짓으로 무당짓만 하잖아요

결과가 없응께 할 짓이 그것 밖에 없는 겁니다

(호 1:1, 개역)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자 호세아 1장 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나서 졸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했다 
즉 인자에게 임해 버렸다가 되어버렸으면

이제 나머지 언급된 저 인물들 즉 이스라엘 왕들의 이름 아닙니까

웃시야왕
요담왕
아하스왕
히스기야왕
요아스왕
여로보암왕

이들의 몸 장소 공간을 언급함과 동시에
여섯명의 왕들의 때를 말하면서 시간도 언급이 되어버리는 식이 되는 겁니다

이제 몸도 시간도 박살
바로 이스라엘 멸망이
바로 다른 몸이 등자함을써 쌋다 마우스 그 입 다물라 라고
중심이 떠 버린 이상
정답이 떠 버린 이상
고맙게도 빨리 빨리 퍼뜩 퍼뜩 멸망하는
심판의 주를 증거하는
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공간 장소와 시간이
이제 호세아 라는 누구 누구의 아들인 인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남으로써

이제 너거들 다 죽었다가 되는
전쟁 충돌로써 왕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저들 이스라엘 왕들이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말이죠

정 그러면 중심을 세우던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중심이 있던가요?
결국 목사들 장로들 모조리 우상숭배라는 탐심만을 본으로 보여주었지
중심을 단 한번도 보여준적이 없어요

또 그렇다고 남들은 못해도 난 하겠다 라고 나서지도 마세요
그래서 다윗 언약 아닙니다
다윗은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이미 선언했어요

그러니 다른 왕들은 뭐 볼껏도 없지요
이 중심과 비교를 하시면 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여호와가 누구신지
창조주가 누구신지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실패를 할 수 밖에 없는
본인들도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남에게 알려줄수 있느냐 말이죠
왕 자리에 괜히 앉은게 아닌데 말이죠
모조리 다 옆길로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한계점이 있는 자들 그것도 왕 그것도 이스라엘 왕으로써 언급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그 자리아 인간들 중에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다 라고 해도
못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도리어 인자
다른 몸이 보여줍니다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몸 말이죠
싫어버린 바 된 몸

왕은 못 보여주는데 말이죠

그런데 왕도 아닌 호세아가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복음이 나타남에 있어서
저들은 도리어 누락 배제 탈락을 보여주는 식으로 언약이 증거가 되는 겁니다

신약의 사복음서에 나타난 아들의 나라 비유 천국비유도 동일합니다
배제의 원리로써 탈락의 원리로써 이러이러한 자만이 구원받았다 선택받았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제대로 심판받은자가 제대로 용서받은 자로써 말이죠
그럼 배제되는 자는 심판도 모르니까 심판의 주도 모르니 배제될 수 밖에 없는
그저 하나님 나라 천국 운동이나 주구장창하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밖에 모르는 겁니다
다른 몸 앞에서 심판받아야 마땅한 원수인줄도 모르기에
우는 마음인 회개의 영 곧 새 영을 못 받아서

배제되는 거죠
그 배제를 도리어 인자에게 퍼붓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가 자기 거울을 보고 침뱉고 칼로 찌르고 못 박아 버렸어요 글쎄

그 배제 되는 자들이 다 원인을 갖추었다 라고 자부한 자들이였는데
그래서 천국과 안 맞더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막대기와 언약의 줄로 국수 채로 걸러내듯이 가려내시는 겁니다

놀랍게도 원인은 대따 많이 갖추면 갖출수록 더 떨어지고
단 하나도 갖춘적도 없고 시도도 한 적도 없는 자들이
결과적으로 무시험 합격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이들은 천국갈 자격이 없다 라고 스스로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인데도 말이죠

자 그러니
원인이냐 결과냐 라는 싸움이 되는 겁니다

율법의 행함으로 후사 곧 정답 맞추기 이냐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난 후사 곧 정답 맞추기 이냐 라는 겁니다

당연히 인간 쪽에서는 답이 없어요
그런데 복음이 나타났어요

저 여섯명의 왕에게서는 답이 없어요
어라 그런데 호세아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났다 말이죠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 들 끼리에서 저 사람 보다 더 낫지 않느냐 라고 따지는 겁니다
왜 원인을 갖추었으니까

그러나 주님은 원인을 갖추는 자를 찾는게 아니라
결과가 덮쳐진
복음이 그 사람에게 나타났느냐
기뻐하심을 입은 자 이냐 라는 결과 만을 따지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 결과를 더 증폭 시키고자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간극을 좁히는 원인갖추기가 아니라
간극을 더더더 벌리는 죄인 중의 괴수에게 더더더 딱 맞는 결과로써

더 나쁜놈 더 악한 놈 더 부정한 놈 더 음란한 놈을
그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결과 이다
문제아를 부르러 오신 정답 이시다 라고 나오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 까지 일을 다 꽉 채운 자가
때린 시어마이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라고
딸랑 30분 일 한 자보다 자기랑 똑같은 페이로 주는 시누이가 더 밉다 라고
주인을 악하다 라고 하도록 만드시더라 말이죠

왜냐하면 행함이라는 원인은
이 무시험 합격이라는 부조리 불륜을 극도로 싫어하는 살인의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죠

그래서 제가 예수 믿지 마세요 왜? 예수 믿는 나를 갖출려고 원인 갖추기로 보고 있으니까 말이죠

말이 믿음이지 알고보니 율법의 행함입니다

그럼 진짜 믿음은 뭐냐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 즉 내 쪽에서 발생 불가능한 것이 믿음이더라 말이죠
그런데 덮썩 믿음을 외부에서 선물로 받아버리니까
많이 탕감 받아버리니까 많이 안 사랑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 놈들이 이 외부에서 오는 선물을
내부에서 조작해서 지가 지 한데 선물로 주고서는
부자청년처럼 주여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습니다 부족한 것 말씀해 보세요 언제든지
그 원인을 다 갖추도록
조건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어 원인이 없어야 하는 것이 사랑인데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데
원인을 갖추었다고? 그럼 사랑은 있는지 보자
결과가 있는지 정답이 있는지 보자
저들 가난한 자 저들 문제아
저들 매국노 세리
저들 탕자에게
전 재산
니 목숨 보다 더 귀한 전재산 다 나누어 주어라
니 이웃을 니 몸처럼 사랑해 보아라

못하는 겁니다

이 한계가 드러나야하는 자들이 오늘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요
왕을 대표성으로써 언급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전체가 다 실패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 한계점이 들추어져여 한다는 겁니다

자 그럼 이제 눈치 채셨지요
이스라엘을 뭘로 만들어서 구원하신다?
네 맞아요 탕자
죄인 중의 괴수
다윗처럼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들어서 구원시키시는
이 십자가 라는 불륜의 결혼을 이스라엘 창녀와 그 죄인과
하나님은 결혼 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왜 호세아 자녀 이름을 저 부정한 이름으로 지어야 하지 라고
20년 가까이 끙끙 거리면서 이유를 찾아헤맸다 말이죠

목사놈들 워낙 공부를 안하니까 답을 해주는 놈들이 단 한 놈도 없어요

얼마니 기가찬지

아니 그래놓고 복음을 외친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죠

목 마른 놈이 우물 찾는다고

왜 이 놈들이 답을 못 해주는고 하니
복음을 단 한 번도 증거한 적이 없었고
그저 종교나 외쳤던 마약팔이 꾼들이였다는 거죠

종교는 마약이다 말이죠

제가 싫어하는 놈 중에 강신땡 이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남들에게 실천하라 벼랑 끝에서 손 놓아라 라고
마치 실천하는 원인을 갖추자 라는 식으로 나오던데

종교는 마약이다 라고 그 놈도 무지 종교 싫어하거든요
문제는 지는 더 종교라 ㅋㅋㅋㅋ

부처를 죽여야 부처가 된다 라고
지난 주 였던가요 오이디푸스 정신병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그때 이 놈 욕 할려다가 말았는데
종교는 마약이다 라는 말에 또 흥분에서 막 나오는데

남들에게는 실컷 벼랑끝 낭떠러지에서 손 떼라 라고 해 놓고서는
정작 그 놈은 손 안 떼는 것을 봐버렸거든요
한번 언급한적 있는데
방송 아마 이명박 소고기 파동으로 유모차까지 끌고와서 데모를 한
그 2008년 촛불시위 생중계 방송 패널로 나와서
자꾸 빼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말이죠 아니 그럼 그런 말들을 하지 말던가 ㅋㅋㅋ
우와 이런 놈이 한국의 인기있는 인문학자라니
역시나 이 놈도 하나의 증상물이니까
진보주의자들의 위선을 그대로 보여주죠
보수는 아예 독재요 갑질이니 이미 이 놈들은 마약덩어리이들이고
그 마약을 비판하는 종교화 된 정치꾼들을 비판하는 이 진보놈들 또한
마약을 파는 놈들이니 

자 그러니 세상을 악하다 라는 복음의 외침이 맞습니다
그러니 저들 정치 게임 오락에 말려들 필요가 없어요

어줍잖게 그딴걸 배워와서 교회에 써먹다 보니
교회가 더 정치판이네 그려

정 그러면 십자가의 정치를 하던가
제대로 죽이던가 말이죠

못해요 꼴에 남의 눈치를 또 봐요
벼랑끝까지 예수님을 몰아세워도
아직 때가 안 되다 보니
남 눈치 보다가 말아 버리는 겁니다
그렇다고 저들이 원인 갖추기를 포기 할까요
안 합니다

주님이라는 결과는 유월절에 죽어야 하는데
그래야 유월절 어린양이니까 말이죠
저들의 원인 갖추기는 답이 없으니 지들끼리도 정치적인 상황을 봐야 하니까
그카이 미적미적 46년 동안 지어도 완공못하는 겁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원인 갖추기의 한계입니다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그래놓고 주님이 정하신 마치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부림절처럼 말이죠
그 결과에 은근슬쩍 숟가락 얹어서 예수님을 죽이더라 말이죠
저들이 백날 날짜 맞춰본들 소용 없어요

예수님이 짜놓은 새로운 판 새언약대로만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거기서 눈 뜬 자가 사도바울이였고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종교 라는 마약
국가 라는 마약
자아 라는 마약만 빨라다 헛짓하다가 가는 놈들인 주제에
예수 이단 죽였다 라고 좋아라 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원인 갖출려는 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주님은 천국은 복음은 배제하는 원리와

반대로 어떻게 해서든 원인을 갖출수 없는
아예 불가능한

더더더 죄인
다윗을 순식간에 1급 살인자로 만들어서 까지
베드로는 1급 배신자로 만들어서 까지

복음은 왜 이 결과만을
원인 없이 결과로써

의사로써 환자를 찾고

천국은 왜 건강한 자는 배제시키는지
왜 의인을 배제시키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는지를

이 호세아서가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에스겔 하고 있는데
포로 잡혀가기 직전
나라 쫄딱 망하기 직전

우리가 예상을 해도
극도의 타락과 음행 음란이 판을 칠꺼다 라고 예상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도리어 신났어요
드디어 복음이 나타났다고
의사가 나타났다고

이제 환자만 찾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러 왔는데
단 한 놈도 없었다 말이죠

중심 구역 장소를 엉뚱한 이스라엘도 아닌 놈들이
이스라엘 유대인 혈통을 우려먹어 가면서
나는 아브라함 자손이다 라고
모태신앙이라고 재탕 삼탕 사탕 우려먹어 가면서
중앙을 다 차지하고 있던데
어라 정작 이스라엘이 없더라 말이죠
예수님 믿는 자들이 없더라 말이죠

그래서 변두리에서 찾는 겁니다
교회 안에는 구원이 없고
교회 바깥에 구원자가 돌아다니면서 찾고 있어요 글쎄

또 다시 두 번째로 우려먹는 이야기네요
제가 신학교 다닐때에 한참 교계에서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있냐 없냐
그것도 불안해서 이제는 교회 안에만 구원인가 아닌가 라고

또 마약을 빨고 있어요 글쎄
원인 갖추는데 있어서 부자청년 보다 못하다 라고 여기니까
완벽한 신학을 갖추어야 하는데 여기 보충하면 저기 터지고
저기 땜빵하면 여기 찢어지고

허구헌날 의문의 반복만 해요
아니 그런데 주님이 IMF 터트리시니까
돈 문제 배고픔 문제 걸려버리니까 싹 다 사라졌다 말이죠
물론 또 배불러 터지면
저 날 때부터 소경된 실로암 소경이 누구 죄냐 자기 죄냐 부모 죄냐 라는
이 신학 오락 놀이에 또 마약을 빨아야 한다 말이죠
평생 이 게임중독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복음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의사가 말이죠
환자에게만 보이는 의사 말이죠

지들은 할게 없으니까 이 죄론 이라는 교리신학을 형성 못하면 직무유기가 될꺼라고 보니까
원인 갖출려고 할 것 아니냐 말이죠
네 맞아요 그러나 그것 또한 세상의 원리이고 세상은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데
문제는 복음을 증거한다는 놈이 아직도 죄론이라는 종교교리 오락을 못 넘어서고 있으니 말이죠

자자자 이렇게 나라가 망하기 일부 직전이 이런식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말이죠
알곡과 가라지로 나누는
배제의 원리를 가지고서
복음이 천국이 나타나듯이

여호와의 말씀이 호세아 곧 누구 누구의 아들에게 임합니다

이제 이 호세아를 누구누구의 아들로 볼 것인가 보편적진리 속담 윤리 도덕 이성 논리로 볼 것이내

아니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 버린 인자로 볼 것인가

거울로 볼 것인가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와야 합니다
왜?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덮쳤으니까

즉 이말은 그렇게 보는 자들은 자기들은 이미 긍정해 놓고서 보는 겁니다
그 긍정에 그 원인에 하나도 단 한 개도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물과 기름의 이질성으로써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전쟁으로써 대립되고 차이나고 구별 되는 이 거룩이
이 간극이 이 하나님의 의가 전쟁이 나타났으니 말이죠

하나님의 의와 우리의 의가 특히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의로움 곧 거룩이
단 한 개라도 일치하는게 단 한 개라도 본적이 없어요

결과가 덮쳐져서 나오는 의이어야 하는데
원인을 갖추어서 억지로 짜낸 의로움 거룩이다 보니
고난 속에 집어넣었다 빼니 정금이 아예 하나도 나온 것이 없이
다 불순물이였더라 말이죠

그럼 아예 얘초부터 시도를 하지 말라 말이죠
그냥 정금인 그 자체로 오신 예수님에게 그냥 항복하면 될 것을
뭘 자꾸 믿겠다 성화되겠다 라고 하니까
오히려 예수님하고 싸울려고 해요

예수님을 이겨먹을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믿음 곧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마침 제가 아주 아주 무서운 발언을 했더군요 로마서 환난 인내 연단 소망에서
녹음 내용 중에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벌이 되고 죄가 되는게 없다 라고 18분 20초 쯤에 나옵니다

아 그럼 행한대로 벌 내린다 라는 행함의 책은 그럼 뭐꼬?
네 맞아요 그건요 결과적으로 그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형 에서처럼
진노의 그릇에 해당되는 자에게만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복음이 나타난 자에게는 성경책에 하라 하지말라가 없어요
지옥갈 자만이 하라 하지말라가 있는 겁니다

또 어떤 놈은 막살기를 지키는 자기를 또 원인으로 갖추어서
나는 하라 하지말라를 지키는데 왜 너는 못 지키지 이렇게 또 나와요
결과(종말=다 이루었다)에 관심이 없구요 또 원인을 갖추는
안 갖추고는 못배기도록 미치게 만드는 미끼를 덮썩 물더라 말이죠
내 쪽으로 끌어당길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정작 나는 지옥 갈 자 맞습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어야 하는데
왜? 결과 앞에서는 뭐든지 다 가짜로 들통나 버렸거든요
그런데 더 더 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가 되어버리면
예수님의 죽음은 뭐가 됩니까?

저는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그리고 막살기를 실천했구요
저 매국노 세리는 막살지 못하고 로마 앞잡이로써 세금 뜯어냈습니다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결과 앞에서는 화로다 나여 다 죽어 마땅한 자 이구나 해야 할 판국에
거꾸로 보더라 말이죠 결과가 결과이기 때문에
정답을 내 쪽으로 끌어당길수가 없어요
정답 스스로가 문제아(죄인 오늘 본문의 고멜을) 탕자를 찾아나서는데
어딜 지가 가로 막고서 막살기를 지켰다고 나옵니까?
한계점에 부딧히면 또 말이 달라지도록 되어 있는데
그러니 그런 마약 빤 놈들이 율법폐기론자라고 쫓아내야 한다 라고 하듯이 말이죠
결국은 누워서 침뱉기 하더라 말이죠
무기를 엉뚱한 것을 잡았어요

그렇게
그 진노의 그릇에 해당되는 자들은 결과적으로 된 것이
원인을 아무리 갖추어 보세요 진노의 그릇에서 긍휼의 그릇으로 바뀌어지나?
태어나기도 전이고 창세전인데? 원인을 무슨 수로 뒤 바꾸냐 말이죠
자 그럼 예정론을 또 들먹이겠죠 결정론이냐 선택론이냐 라고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자체가 또 원인 갖추기 라는
강요된 선택이다는 겁니다
백날 해 보세요 창세전에 정한 것을 무엇으로 바꾸냐 말이죠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말은
나 라는 개인의 판단 유무와 아무상관 없이
저 복음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써
이제 선택할 필요도 없이 사라졌다 라는 것에서 기쁨이요 결과인데
자꾸 또 결정론이냐 선택론이냐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냐
이게 또 원인을 선택하라고 하는 겁니다
예정론 백날 신학을 갖추어 보세요 성경과 안 맞아요
예수님이 처음과 나중인데 예수님 외에는 예정된 게 없는데
왜 인간이 왜 낑겨들어서 왜 예정이니 유기니 왜 그딴 선악의 논리에 말려들어야 하느냐 말이죠
또 진보냐 보수냐
둘다 답이 안 나옵니다
아 그럼 중보냐? ㅋㅋㅋㅋ
인간에게서는 없고요
또 오해 할라 진노의 그릇을 피해서 긍휼의 그릇이 될 방법이 없어요
그게 바로 복음이 나타났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는 저런 진노의 그릇 안될래 라고 해도 소용없듯이
진노의 그릇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거든요
그래놓고 이런 행함을 감출데가 없이 다 드러나버렸는데
무슨 수로 감추어서 긍휼의 그릇이 되겠노라고 생각한다는 발상 자체가
여전히 결과를 무시하고 원인을 갖출려는
이 자기 의로움 쌓기 그러나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거부하는
우라의 완악함이다는 겁니다

벗어날수가 없어요 벗어날수가
그래서 매국노 세리는 우는 겁니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우는 겁니다
안 망할 방법이 있다면 벌써 했구요 울 필요가 없잖아요
바리새인은 벗어날 방법 곧 구원을 찾았다고 울 필요가 없었거든요
사망의 몸이 안 될 방법을 찾았다고 마음껏 정죄하는 겁니다
그것이 자기 몸 구원될 몸 기준에서 가장 가까운 자부터
매국노 세리부터 정죄하기 시작하듯이 말이죠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토색하지 않기를  안해서 우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다른 몸
새 몸을 보고 우는 겁니다

바리새인처럼 사망의 몸이 아닌 구원될 몸을 못 갖추어서 우는게 아닙니다
구원될 몸을 갖추어도 안 맞는 새 몸을 보고서
이건 다른 차원의 몸이기에 무조건 다 엉터리 몸
진짜 사망의 몸 절대심판받아야 할 몸이라서 우는 겁니다
그러니 바리새인처럼 구원의 조건을 갖춘 몸 조차도
가짜 몸으로 보았기 때문에
저들의 시선 저들의 경계선 영역치는 몸 따위에 개의치 않는 겁니다
제대로 심판하시는 몸 앞에서
저따위 몸으로 정죄하는 법을 쥔 몸 따위가 절대죽음 앞에서
주름 잡고 있는 것은 아이고 그래가 들리겠냐 라고 더 크게 소리질러야지 라고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을 비웃는 모습인 겁니다
사망아 누굴 쏘느냐 아이고 사기를 쳐라 사기를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굴 쏘는데?

도저히 근처도 갈수 없는 닮을 수 없는 새 몸이 떳어요
닮고 흉내내고 모양 겉모양 외모를 갖추고자 하는 시도 조차
그런 의지 조차도 아예 깡그리 없애버리는
이 십자가에 달리신 몸 앞에서는 이유없이 무조건 사망의 몸으로 드러나는 판국입니다
너무 너무 이질적인 몸입니다

그 결과로써의 몸이 떠 버린 이상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지옥의 몸인줄 비로소 본 겁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지옥에 갈 몸일 뿐인 모든 인간의 몸을 본 겁니다
유일한 생명의 몸
지옥에 안 갈 몸은 저 분 딱 한 분 뿐이다는 겁니다
그것을 봐 버렸어요 글쎄
비로소 화로다 불타야 함을 비로소 본 겁니다
이게 거룩을 본 자입니다
결과가 덮쳐진 자입니다
나 개인을 구원하러 온 예수로 보는 자는
또 원인을 갖출려고
막살기를 또 지킬려고 해요
지금 불타야 할 상황인데 무슨 그런 배부른 소리냐 말이죠
사고방식 자체가 틀려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자에 의해서 새 판이 다 이루어졌는데
옛날 판에서 게속 깨작 깨작 거려요
우리 몸은 옛 술 옛 부대에 저촉이 된 이상
제대로 된 정답은 그냥 무조건 이유없이 찢겨지는 것 밖에 없어요

답이 새 판에 새술은 새부대에 이미 다 완성 되었는데
말라꼬 이 세상에서 단판 지을려고 승부를 거느냐 말이죠

그 새판을 누리는 사도바울과
구판을 언급하면서 
아 그럼 우리가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겠네? 에라이 사기꾼아 라고 
자기들이 이미 정죄 받은 사기꾼임을 감추기 위해서 도로 사기꾼으로 몰아버리는

미끼에 제대로 걸려들게 된 겁니다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제사장이 있는 왕이 있는 중앙집권지에서는 제사장은 있어도 기능이 안 발휘가 되고요
성전의 기능이 안 나옵니다 도리어 우상으로 도배가 됩니다
오히려 창녀 세리 강도에게 제사장이 없는데 제사장 기증
새성전의 기능인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겨지는 기능이 이 호세아서에서 펼쳐지고 있어요
누가 믿겠으며 누가 반발 하겠습니까?
그러니 하루 아침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야만 하는 겁니다
이게 기쁜소식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 불타야 합니다
왜? 새 몸이 떳기에
그림자를 누락되어야 합니다 실상이 와 버렸기에
그러니 이스라엘의 기능은 왜 나는 누락 되어야만 하느냐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먼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되는 이유이고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무기입니다 이 약함이 바로 처음자리입니다
그 어떤 무기를 쥘 수 없도록 하시는 것이 무기가 된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 마른뼈입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결과 라는 새 몸을 외치는 자입니다
막사는 자기 몸을 외치는 자가 아니라 결과도 아닌 주제에
의문의 반복인 주제에 얼마나 결과를 새몸을 무시했으면 말이죠)

마침 소제목을 단 번역을 올리다 본 제목이 이상했습니다

(호 1:2, 현대어) [배신한 이스라엘의 모형 고멜]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처음 말씀을 시작하실 때 이렇게 이르셨다. '너는 가서 창녀와 결혼하여 그 어미와 똑같이 음행하는 자식들을 낳아라. 내 백성이 나를 떠나 창녀처럼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
(호 1:10, 현대어) [여호와께서 보신 미래의 전망]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번창하고 큰 민족이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측량할 수도 셀 수도 없을만큼 많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너희는 나의 아들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라고 말하겠다.

현대어 번역 말이죠
아래 쉬운 번역은 평이한 제목인데

(호 1:1, 쉬운) <부정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유다 왕으로 있던 때이며,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으로 있던 때입니다.
(호 1:2, 쉬운) <호세아의 아내와 자녀들> 여호와께서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가서 부정한 여자와 결혼하여 부정한 자식을 낳아라! 그것은 이 나라가 여호와를 버리고 부정한 짓을 하였기 때문이다.”
(호 1:10, 쉬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시다> “그러나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달아 보거나 세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나, 후에는 그들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

막상 현대어 제목이 배신한 이스라엘 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세요 누가 배신한 겁니까?
네 맞아요 저는 주님이 배신한 모습으로써
주의 이름을 누구인가 라고 증거하신다고 봅니다

네 물론 우리가 배신했지요
배신 하면 간첩 생각 나지요 저 위에서 주의 종으로 고레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왕을 주의 종으로 삼았다 했지요

김어준이가 자꾸 도리도리 옆에 간첩이 있다고 하는데 딱 깨놓고 무당이 간첩이다 라고 보는 거죠 뭐

아무튼 그 간첩을 주의 종으로 삼으신 겁니다
그래야 누가 진짜 배신자인지를 보는 겁니다

네 맞아요 저는 주님이 배신자로 보여야
그 거울에 비친 자기자신이 배신자로 보이게 된다 라고
간첩이라는 사탄의 가시를 거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악마의 세계에 눈 뜨면 출근했다가
눈 감으면 다시 퇴근하는 식입니다

하늘의 본향의 이름이 있기에
그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이 이름이 있기에
그래서 주의 이름이 왜 이 세상을 악마의 세계로 만드셨는지를 보라꼬

네 맞아요 호세아의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깨끗하고 건강한 신부로써 결혼하시는게 아니라
더럽고 창녀로 만들어서 결혼하시겠다는 것에
이 기존의 가짜 하나님을 믿었던 그 마음이 우상이라고

저런 깨끗하고 건강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 라는 그 마귀의 세계를 들추어내시면서
광명한 천사가 요구하는 신부의 조건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피가
십자가가 요구하는 새성전에 맞는
죄인으로써 말이죠

저들이 말하는 죄인이 아니라
언약이 말하는 죄인 그래서 다윗언약이라고 했지요

그 죄인의 자리에서
창녀 고멜의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이라는 신랑 쪽에서 넘어오시는 언약으로만 맺은

언약의 피로만
새성전이 기능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시는
십자가의 기능
사랑의 기능
원수도 사랑하는 그 기능에 맞는 신부로써
한 몸을 이루시는 겁니다
네 우리가 에스겔을 하면서
계시록처럼 겁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재산 전부를 바치라는 식의 
세상의 종말론이 아니라

마지막 몸이 있기에
그 마지막 몸에 맞는 죄인으로써
음란한 고멜의 자리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 아무것도 한 것이 용서 받는
이 피의 기능에 맞는 환자로써
언약의 백성
언약의 신부가 되게 하시는

이 신랑의 사랑을 외치라고 주시는
말씀의 임하심을

저런 왕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악한 무화과 나무들과의 차이로써 보여주시는 겁니다
물론 저런 악한 무화과 나무들은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선한 자들이고
광명한 천사로써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는 배신 때리지 않는 무당들이지만
사람을 돕고자 하는 무당이기에 말이죠 물론 돈을 잘 낼 때만 말이죠

그러나 진짜 사랑은 우리를 제대로 거울로써 보여주시는
왜 음란한 백성인지를 또렷히 밝혀내시고
그렇게 높은 자로써 꺽으셔서 목이 곧은 백성을 낮추셨다가
다시 그런 음란한 백성 마저도 용서하시는
제대로 섬기는 왕으로써 새성전을 다 이루었다 라고 나타나시는 말씀의 임함입니다

이 말씀이 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이 말씀 곧 예수님이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지옥이였음을

거울로써 인자로써 비춰주시고
고쳐달라 구원해 달라 라고
아니 죄인이 자기 죄에서 구원해 달라고 우는자 아닙니까
건강하고 의인인데 누구 자기 죄악에서 건져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배신자로써 거울을 비춰주심으로써
막상 그 배신자 그 음란한 자가 우상숭배자가 나 였음을
나의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의 상한마음을 주심으로써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자로 만드시는
내가 신부되기가 아닌
주님이 직접 손수 만드신

십자가의 죽음으로 만드신 새신부입니다
비록 고멜같을 지라도 말이죠

이 사랑에서 끊을자 없도록 피로 맺은 결혼식
언약식을 펼치시는 겁니다

모세에게 이혼증서를 요구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예수님은 나눌수 없는 사랑 곧 결혼
곧 한 몸을 말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엉뚱한 신랑 곧 우상을 신랑으로 삼아서 음녀로써 음란을 추구했지만
주님은 그런 음란한 이스라엘을 이혼증서를 요구하는 자들처럼 하시지 않고

도리어 마지막 아담으로써 죽은 사랑인 우상이 아니라
그 죽은 자를 살려주시는 사랑으로써 신랑다움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 신랑이 누구신지를 외치고자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펼치시는 그 여호와를 더더욱 사랑하는 자로써 외치는 겁니다

도리어 불 바깥이 이미 지옥이기에 (아삽의 시처럼 시편 73편 성소 안에
한 몸 안에 들어가서 비로소 안 겁니다)


세상을 악하다 라고 그 애굽이라는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잔칫집을 지옥으로 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과 이사야 그리고 계시록을 하면서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 베푸는 그 사랑으로 창조한 창조의 세계를
인간들은 우상으로 도배를 합니다 호세아 또한 같은 결론으로써
이 사랑 앞에서 반드시 우상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수술칼을 끄집어 드시는 겁니다
음란과 간음은 바로 번제와 제사를 원하는 하나님으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자 믿음을 음녀라고 합니다
여기에 주님은 혼인잔치를 바로 우상문제를 해결하시는 신랑으로써
신랑이 원하는 것은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라는 사랑
그래서 그 사랑의 대상물로써 고멜 곧 이스라엘이라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겁니다
자신의 죄악으로 우는 자를 부르러 오신 겁니다
왜 뭘 해도 우상숭배 밖에 안나오는 음녀짓 밖에 없는지
뭘 해도 간음이요 음란 밖에 없는 왜 엉터리 하나님을 만들어 조작하고 있는지
바로 자기자신의 신체가 지옥의 몸이기에 말이죠
그 사망의 몸을 바꾸시는 자는 대신 죽는 
사망의 몸과 대비되는 허물을 대신 짊어지는 몸 뿐이다는 겁니다
이 몸 곧 인자를 쳐다보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이 새 몸으로 인한 증상물을
혼인잔치 종말때의 하이라이트 새 몸이라는
성소 안에서 비로소 창조주를 만나는 겁니다
나의 멸망이 또렷함이 도리어 새창조 다 이루었다를 보는 겁니다
과거의 창조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창조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용서를 받은 자 만이 발설 외치는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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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1 복음(예수님)에 사로잡힌 자 사도바울 (롬 1, 1- 7)
로마서 2022 2022. 1. 8. 11:13
22-001 복음(종말;원인 없는 결과)에 사로잡힌 자 사도바울(피 발린 문제아 탕자) (롬 1, 1- 7)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마태복음 2018 2021. 12. 11. 13:32
18-155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로마서 1, 1- 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찬송가 277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가 277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1.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수많은 심령 멸망하겠네 
   그 누가 갈까 주의 복음 들고 생명을 구원하는 곳으로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2. 구원의 문은 넓게 열렸으니 십자가 군병 일어나거라 
   너희의 힘을 하나로 뭉쳐서 죄악의 쇠사슬을 끊어라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3. 왜 너는 멸망길을 가려느냐 주 음성 듣고 응답하여라 
   널 구원하려 예수 죽었으니 생명의 이 복음을 전하라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4. 온 천하 만민 승리의 그 날에 영광과 찬송 주께 드리네 
   속죄함 입어 구원받았으니 기쁘게 할렐루야 부르세
   큰 권세 주께 있으니 큰 권세 주께 있으니 
   너는 가서 주의 복음 전하라 주가 너 항상 지키리라


〈로마서 1, 1- 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가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2.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3.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 바다 건너가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4.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롬 1:1,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롬 1:2, 새번역)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롬 1:3, 새번역)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롬 1:4, 새번역)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 '거룩함의 영' ㉡또는 '확인되신, 지정되신, 지명되신'
(롬 1:5, 새번역)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 1:6, 새번역)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 들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롬 1:7, 새번역)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어! 신약에서도 소제목을 여전히 달아놓았군요
아 맞다 새번역은 소제목을 안 달았어 그렇게 봤군요

(롬 1:1, 쉬운) <인사말> 나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특별히 선택되었습니다.
(롬 1:8, 쉬운) <로마 방문을 간절히 원하는 바울> 
(롬 1:16, 쉬운) <복음의 능력> 
(롬 1:18, 쉬운)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롬 1:1, 현대어) [인사] 로마에 사시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께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이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전도자가 되었고, 복음을 전하도록 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입니다.
(롬 1:8, 현대어) [감사기도] 
(롬 1:16, 현대어) [믿음을 통한 구원] 
(롬 1:18, 현대어) [인간의 타락한 모습] 

개역개정한글
롬1:1 <인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8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롬1:18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오늘은 이미 로마서 1장 시작의 부분을 글로 적은 글에다가 더해서
호세아 1장을 한 것을 연결 시켜서
글을 보충으로 더해서 내용을 말하고자 합니다

https://crosslamb.tistory.com/2527

이미 말했듯이
지금 에스겔 20장 정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원래 주 요 중심이 되고
나머지 에스겔 끝부분과 로마서를 보충으로 글로만 올렸었는데
어라 너무 중요한 부분을 하게 되다 보니 그냥 설교녹음으로 다 해버렸다 말이죠
그러다나 빠뜨린 부분 로마서에서 첫 1장 첫글만 빠뜨리고 나머지는 다 하다 보니
안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때가 되었다 말이죠 에스겔 끝 부분은 중간에 빠진 것이 많지만
원래 주로 하는 부분이 있기에 나중에 다 메꾸어 지니까 그때 하면 되고요
로마서는 빨리 해야 싶었는데 다행히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 그래서 로마서 첫 시간에
복음이 사도바울에게 나타났다 라는 내용으로 하고자 합니다
네 맞아요 호세아서에서 말씀이 브니에의 아들 곧 인자죠 수수께끼죠
요셉의 아들 아니냐 목수의 아들 아니냐 그런데 왜 이런 행동을 하지
그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임하다 보니
말씀이 임한 호세아 에게서처럼 복음이 나사렛 이단 예수를 핍박하던 그 당사자 사도바울에게 임해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호세아서에서 6명의 남유다 왕 4명 북이스라엘 왕 2명 그들에게는
왜 백성을 대표하는 왕이면서도 안 임하는가?
그러면 인자는 곧 그들의 증상물인 허물을 들추어내는 거울임과 동시에
말씀이 임한 자 복음이 임한자 로써 중간에 낑긴 목에 탁 걸린 자로써
역사 속에 투입되는 인자 곧 묵시를 등에 업고 나타난 자가 되는 겁니다

마치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죽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버렸다 말이죠
누구를? 나타나 버린 예수님을
물 위가 아닌
풍랑을 거쳐서 물에 빠진 사도바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버렸으니
이제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증상물로써 왜? 유대인이 사탄의 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그 당사자가 바울 본인이고 그런 바울이 누구를 핍박했다?
나사렛 예수 말이죠
이 나사렛이라는 에브라임 지파에서 난 예수님을
둘로 나누어진 두 막대기를 합치고자 하신 주님의 뜻에
이 새성전 건립에 누가 최고의 방해자인가?
사도바울인 된 겁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도리어 삼키더라 말이죠

(요 2:16, 개역)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 2:17, 개역)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7, 새번역)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 ㉢시 69:9

아 이게 시편 69 구 였구나 육구구 비둘기 육구구 이래 외워야 겠네요 ㅋㅋ
자꾸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와 헷갈렸네요 ㅋㅋㅋ

(시 69:9, 개역)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시 69:9, 새번역)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에게로 쏟아집니다.
(요 2:17, 새번역)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 ㉢시 69:9
(롬 15:3, 새번역)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69:9

왜? 중심이 세워지면 동시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나를 미워해서 그렇다 라는 겁니다
왜? 내가 세상을 악하다 했기 때문에
지지난 주에 예배 후에 어머니께 왜 저런 도리도리 무당을 주님은 왕으로 메시아로 세웠습니까? 우리가 흔히 사회의 악한 현상을 가지고서 성경으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그 반대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이미 세상을 악하다 했기에
저런 놈들이 제발 좀 나타나줘서 이태원 세월호 등등 만들어줘여 한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중요한 것 문재앙과 같은 자들도 바리새인 같은 자칭 거룩한 자들도
어릴적부터 단 한번도 율법 어긴적 없는 부자청년도 반드시 포함이 되어서 말이죠
이들이 세상을 악하다 했다 라는 먼저 성경말씀의 선언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하는 짓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키는 행동들로 부자가 되고 이스라엘 관원 지도자 선생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 성전의 중심 세우기 위한 것 때문에 비방 받듯
물론 다윗 또한 한계점을 가진채로 이 중심세우기에 레위인들처럼 동원이 되고
실패한 레위인을 다시 지도하고 지시하듯이
역시 다윗 또한 실패한 것을 다윗의 자손이신 왕이 오심으로써
이 중심 세우기에 열심인 겁니다 물론 정직한 영 성령 곧 새마음입니다
이 새마음 앞에서 사람의 손으로 짓는 성전은 강도의 소굴일 수 밖에 없음이 들통당하는 겁니다

(눅 4:9, 개역)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눅 4:9, 현대어)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올라가서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시오. 성경에 ㄷ) `주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천사를 보내 보호하게 하시니 그들이 두 손으로 너를 꽉 붙잡으리라. 혹시나 돌부리에라도 채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리라'고 하지 않았소?' (ㄴ. 시91:11-12)


아 맞다 911 구급차로 외원는데 늘 까먹네요 ㅋㅋ 구 일일 일일 일이

자 그러니 사도바울에게 느닷없이 나타나버린 겁니다
이 나타남은 갑자기 순식간에 이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원인과 조건을 갖추는 식이 되어버리면 시간과 공간의 가입이 됩니다
지금 시공간을 깨뜨리는 의미이니까
아무리 사도바울이 가장 나사렛 예수를 핍박했다 라는 그 이유로
그 원인으로 이런 결과
이런 원인 없는 결과
정답의 나타남
갑자기 느닷없이 나타남 때문에 취소가 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이럴때에 불가항력적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불가항력적이다는 것이지 절대죽음 절대심판 절대저주를 타넘고서 말이죠

우리의 선택이 불가항력이다 라고 나오면 이게 또 교리가 됩니다
그카다가 사탄의 회로 빠진 자들이 유대교였고 지금의 천주교요
기독교도 이미 그래 된지 오래된 거죠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냐 라고 하신 말씀이 나타나버렸으니까 말이죠

아무튼 본문으로 들어가서
다른번역에서 소제목을 공통되게 인사말로 표현했군요
저는 로마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계속 생각해 오다가
에스겔과 마태복음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니(그때는 마태복음을 하고 있는 중이였거든요)

종말의 시작이다 또는 원인 없는 결과의 무한반복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공백의 반복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시작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곧 역사의 끝남이다 라는 겁니다
찢으셨으니 다시 싸매어 주심이라는
종말을 단순히 시간의 끝 내 인생의 끝 보다
시공간이나 역사와 몸이 이 새 몸 앞에서는 이전 것은 지나가버려야 한다 라는
완료가 왔다 라는 겁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의 완성이다 라고 했거든요
이것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도 안 기쁜 이유는 내가 지키는 율법은 그럼 뭐가 되느냐? 똥덩어리 배설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였거든요

율법의 가입으로 나는 오히려 이전 것은 지나가야만 하는 가짜로 들통남에 있어서
우는 자게에만 죄인 환자에게만 남을 사랑하는 자가 왔음이 기쁜데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는 자들에게는 법 지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가장 나쁜소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희년은 복음 기쁜날 은혜의 날은
오로지 고아 과부 나그네
눈 먼자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 죽은자 가난한 자
에게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나타나버린 겁니다

(마 11:5, 개역)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반대로 본다는 자, 건강히 걸어다닐줄 아는 이동자 무엇을 이동합니까 자기 몸 공간 아닙니까
그 공간 그 몸 무너진다 라는 겁니다 우상이거든요, 문둥이 피부가 섞었다 말이죠
즉 세균에 의해서 불타는 몸이다는 겁니다 귀도 안 들려요 글쎄 사망의 몸이지요
가난한 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악마 취급 받게 되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늙은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그 미친짓을 왜 하냐 라고
도리어 본인들이 드러누워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이라는 넷플렉스 한국드라마처럼 유럽의 선악구조가 이제는 파괴가 되어버린
니만 악이냐 나도 악 될란다 라고 어차피 부의 불평등 앞에서는 가진 놈만 가지게 되니
그럴빠에 드러누워 버리는 식이 되는 겁니다

자 이런 답도 없는 세상에서 정답이 나타나버렸다 말이죠
내 눈 앞에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은혜의 날이
기쁜소식이 말이죠

자 그럼 기존의 옛것 옛부대의 것들을 사수하는 것들이 왜 남의 것을 빼앗아서 유지해온 것들인
불타야 하는 의문의 반복이였는지가 이 새것 앞에서 새부대 앞에서 들추어니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타났듯이
누구에게? 고아 과부 나그네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 죽은자 가난한 자에게만 말이죠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자 개같은 이방인 갈릴리여 에게 나타났듯이

죽었던 예수님이 사도바울에게 느닷없이 나타나버렸습니다
호세아에게 임해 버렸습니다

그 앞에서 기존의 쥐고 있었던 배설물 손 놓고
명예고 뭐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고 뭐고
가말리엘 문하생 그딴 훈장들 다 버리고

이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춤구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씹고 뜯고 
안하고는 못 배기는 복음이 임하는 겁니다
나 라는 주체를 없애는 내 기쁨을 넘어서는 초월하는 메타 기쁨 중의 기쁨입니다
용서 중의 용서입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기뻐하심을 입은 나타남입니다

세상 노래에 김범수의 노래 나타나 라는 노래가 있더라 말이죠 고 부분만 압니다
안들어봐도 사랑이 나타나면 다 무너집니다 무릎 꿇어 경배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그런내용이지 싶습니다 

사망아 누굴 쏘느냐 라고 사망은 그저 죽이는 것 밖에 몰라요
공포와 불안을 야기 시킵니다 그런 사망 속에 살다 보니 옆에 누가 죽어도 덤덤해 지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세상이다는 냉냉함 뿐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나타나니까
사랑아 죽은자도 살리는 사랑 당신 누구요 라고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서 자꾸 자꾸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 엄마 라고 아이는 마음껏 마음 푹 놓고 물을 수가 있습니다
자신은 어리석고 미련하지만 든든한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안 속에 있으면 물어봤다가는 야단만 맞습니다
법을 쥔 자들은 그렇게 야단을 침으로써 정치를 합니다
물어봤다가는 자신의 무식함이 탈로 날까봐 그거 먼저 걱정하니까 힘으로 윽박지르는 겁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이 복음이
이제 마음껏 물어볼 수 있는 복음이
그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해져도 상관 없고
소경이 되어도
앉은뱅이가 되어도
귀머거리가 되어도
문둥병자 죽은 자 가난한 자가 되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사랑이 나타났기에 말이죠
자본주의에서 취급하는 악마가 되어도
이상한 변호사에서 장애인은 독일 나치에게서 같은 독일인이더라도 악마 취급받았거든요
우월한 열성 유전자 속에 이런 건강한 자가 못되는 장애인은 같은 
유대인 취급을 받아버리거든요 가스실에 집어넣어서 죽여버립니다
이제 교회가 저들을 악마 취급하잖아요
세월호 이태원 그들을 악마취급해 버립니다
물론 그들도 안 당하기 전에는 같은식으로 악마로 취급했다 말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
졸지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음이 나타나버렸습니다
사랑아 누구를 살릴려고 나타났니

내 눈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말이죠

예상을 빗나가버렸고
지금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어요
찾아버리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 다음부터 조건이 되어버립니다
법이 되어버려요
번제와 제사를 없애러 온 인애와 자비인데
번제와 제사가 되어버리면
그 다음부터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가 쳐들어 옴으로 인해서

이제 에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입장에서
성령으로 시작했던 사도행전처럼 곧 성령행전이지요 성령행전처럼

이제 종말의 영을 받은 사도바울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어떻게 이 사도바울을 죽여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심으로써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는지
복음을 나타내시는지

아 이래서 사도바울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구나 라고
성도의 죽음 실패 멸망을 통해서 복음을 나타내심을 증거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로마서가 아닌가

마치 요한복음이 영과 육의 대립처럼
로마서는 육의 시작인가? 아니면 영 곧 복음의 시작이냐? 라는 대립처럼 느껴져서
율법이냐 은혜냐 라는 대립으로써 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은 이 은혜로 시작하기 때문에
왜 율법이 아닌지를 한 세트로써 대립시켜 증거합니다

그러니 역사 즉 시공간과 육이 어떻게 종말이라는 끝에서 쳐들어오는 은혜에게
복음에게 어떻게 무너져야만 하는 지를
이것이 평화 즉 전쟁종식 아닙니까

그 무너짐이 도리어 새것을 세우심이나를 기쁨인지를
인간의 기쁨은 행복은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쁨이다는 겁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끔씩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 이지만
묻지마 살인 묻지마 폭행에 그 이유가 생뚱맞게도
행복해 보여서 라는 말을 뉴스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지 못하면
그거 불행이다 라고 여기는 그 타인의 욕망은 과연 어디서 왔냐 말이죠
네 맞아요 모든 병 모든 죽음은 죽음 조차도 남의 시선입니다
죄도 모르는 인간의 눈치를 보고 죽는
욕심도 모르는 우리가 호세아 서에서 다룰 이 음란 이 음행 이 우상이
욕심도 모르면서 욕심을 부리거나 반대로 욕심을 심판하겠다 라고 법을 세워요 글쎄
바로 그게 욕심인데 말이죠
사망도 죽음도 모르면서 죽여버리는 남이 행복해 보여서 그렇게 죽여버리면
자기는 안 죽습니까? 그렇게 자기가 죽을 줄도 알면서도 죽이는 그 죽음도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겁니다 물론 지옥에 가서 압니다
내 속에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라는 것을 말이죠
결과적으로 지옥에서 여전히 예수님의 죽음을 모른채로 계속 의문의 반복인 죽음만 반복하는 겁니다 불가마 속에서도 안 죽는 불멸이 된 채로 말이죠 그게 망한 것인 거죠

전쟁 종식 곧 마침이 없으니까
평화가 없으니까
둘이 원수 된 것을 한 몸을 이루는 한 몸이 없으니까 그게 지옥입니다
꼭 지옥에 가야 지옥이 아니라
이 땅은 시온에서 중심이 세워짐으로 인해서
지옥 다움을 펼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계속 의문의 반복 속에서 마침이 없이 말이죠
평화가 없이
한 몸 됨이 없이 말이죠

아 맞다 로마서 시작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서 한달동안 고민한 것이
저야 뭐 신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니까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다 보니
에스겔과 이사야를 하면서 로마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게 뭔고 하니 과연 구원 그 이후 라는 말이 되는가 라는 점을 갑자기 생각나게 되어서
이것을 로마서와 연관해서 봤다 말이죠

구원 그 이후 라는 그 이후 자체가 시간 아닙니까
역시나 육은 이 시간을 끌어온다 말이죠
곧 구원 이후의 자기의 몸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구원이 된 이후에도 손을 못 때는
결국은 자기가 자기자신을 단도리 하겠다 라는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 라는 지옥을 천국에 가서까지도 하겠다 라는 심뽀인 겁니다

자 그렇게 구원 전과 구원 후 로 나눈 시선이지요
자 이것이 인간 자기 시선의 기준 아니겠습니까
교리가 그래서 문제입니다 교리란 실천 플러스 교리 이거든요
인간의 숙제를 강요해요
강요 인 듯 강요 아닌 강요 같은 강요된 선택 이다는 겁니다
선택은 선택인데 자유는 자유인데 강요된 자유라?????????
이것이 죽은 자의 하나님 입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셔서
즉 오늘 본문에서도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부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을 자꾸 인간 쪽으로 끌어당가지 말자 말이죠
구원을 자꾸 인간 쪽으로 끌어당기지 말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숙제로써 또 봐야할 판국이다 말이죠

자꾸 내 쪽으로 끌어당길게 아니라
부활이 자꾸
복음의 나타남이
말씀이 호세아에게 임함이
다메섹에서 너가 핍박하던 나사렛 예수다 가 나타나서
자꾸 쳐들어 온다 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요

한 몸이 안되는 이상
공포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빨리 항복해서
한 몸이 되는 화친 평화를 이루는게 낫지
괜히 뻐팅기고 있다가는
지만 손해가 되는 겁니다

지금 유대교의 최선봉의 최고의 인재도 박살이 나 버렸어요 글쎄
그런 사도바울 없애버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사도바울과 한 몸으로 쳐들어오신 예수님의 복음이 약속이 말씀이 
희년이 나타나버렸어요 
이제 자기인생 없습니다 삭제 당한 겁니다 자기 이름도 없어요
졸지에 사울 큰 자에서 갑자기 바울 이라는 작은 자로 이름을 갈아버렸어요
그럼 큰 자는 누굽니까? 예수님의 죽음 곧 복음이 큰 자입니다
이 큰 자 앞에서 작은 자로써 한 몸이 되어 신부로써 쳐들어온 신랑 앞에서
이 신랑이 몰고온 세계
사랑아 누구를 살릴려고 왔니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외치기만 합니까? 실제상황으로써 벌이지도록 말이죠
그럼 바울은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로써
계속해서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이 산 자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누구누구의 언약 최종적으로 새언약을 새성전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어머니 말 마따나 바울이 하는게 아니라 성령 새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신랑의 마음이 안 외치고는 못 배기도록
바울 본인이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 죽은자 가난한 자의 자리에서
말도 안되는 


나타난

기쁜소식을 이 은혜의 날을

은혜는 새성전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린양의 죽음이고
날은 일곱절기처럼 다 이루었다를

저 46년 동안 아직도 미완료로써 완공 못하는 의문의 반복으로 율법 지키는 자들과 대비해서
그 차이로써 증거하는 겁니다

물론 바울 또한 그 차이로써 죄수 복을 입고서 특별사면이라는 피로 적힌
무시험 합격이라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타남에
말도 못할 기쁨으로써 춤 안 추고 노래 안 하고 씹고 뜯고 마시고 안 하고는 
바지가 벗겨질 정도로 말이죠

아니 30살 쯤에 복음을 시작해서 3년 지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끝나버렸다면 여기서도 3년 이네요 절대심판이자 3년 동안 
발가벗은 모습으로써 거울로 비춰주셨다 말이죠 이것이 종말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 종말 끝 ~~~~~~~~~ 이냐 말이죠
맞잖아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허망하게 다 끝났고
제자들도 다 각기 제 갈길로 다 흩어졌잖아요

뭐 다시 모였다고 소문이 들려오던데 그거는 저거들끼리 이야기이고
지 사정이고

그런데 사도바울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야말로 생뚱맞잖아요
저런 예수의 제자들 저 종교꾼들이 미쳐서 다시 모였다고 해 본들
뭐가 달라지냐 말이죠
이미 끝났는데

그 어떤 연결 고리 하나 없이
바울에게 나타났다?

아니왜요? 예수님을 죽이는 사형집행 행사 총괄본부장 행동대장인데
그 사도바울에게서 복음이 나타나서

어떤 철학자는 제자들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관심이 없었다 라고 하고
오로지 사도바울에게서 기독교가 발생했다 라고 하던데
그야 논리 이성적 사고방식 자체가
제자들은 안된다 라고 봤는데
바울은 달랐다 라는 거죠 유대교만 박살내는게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써 주변의 철학이나 이방인의 논리까지 다 깨뜨렸으니까
자연적으로 발행할 수 밖에 없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문명 문화(우상)으로 해석하지 기독교문화의 발생으로 말이죠
복음이 나타났다 라고 안 보는 겁니다
예수는 그 때 죽고 끝났다 라고 볼 뿐이고
같은 인간으로써 바울을 독재와 세상과 맞써서 싸운 투쟁가 혁명가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위대한 지식인으로 볼 뿐이다 말이죠
마귀들 답죠

아니지요 
바울에게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것은 이제 비울은 제대로 삭제 당했고
예수님이 그 안에서 활동하신다 라는 겁니다
이제 더 확산이 되어가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죽음의 세 구덩이를 타넘어서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그 중에 한 놈이 사도바울이라는 나사렛 예수 이단 예수를 핍박하는 자를 타 넘어서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사도바울 눈 앞에 나타나  말이죠

https://youtu.be/pgc5yzUfO2U

범수의 세계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도 사랑을 인애와 자비를 번제와 제사로 바꾸어서
범수의 세계를 고수하고 유지할려고 여전히 둘로 나누는 경계선을 치는 자기영역을 고수 하지만(범수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ㅋㅋ 고소하지 마시길)

https://youtu.be/kbzJoHmsFBs

고로 인간은 마침이 없어요 그저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의 세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의 세계
은혜의 세계인 마침이 된 평화의 세계는 사도바울의 세계를 죽이시기로 작정 하시면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사는
바울에게서 죽음으로 나타났나다가 다시 생명으로 부활로 나타나시는
이 간극을 이 모순을 좁히는게 더더더더 벌리는 것이 거룩입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더더 많이 사랑하도록 말이죠
이 둘로 나누어진 막힌 담을 헐어버려서 평화의 몸으로
끝사랑 마침이 된 마지막 아담으로써 
살려주시는 영으로 말이죠
한 몸으로써 쳐들어 오신 겁니다

이 예수 안의 세계 밖은 다 죽음일 뿐이기에 지옥일 뿐입니다

우와 이제 특정 장소 예루살렘을 초월해서 우주까지 확장된 종말이 펼쳐지게 되니
종말 다 이루었다 라는 미래완료를 펼치게 되니

종말의 무한반복이 되는거 아니냐 말이죠
구원 그 이후가 아니라 말이죠

구원의 계속 됨 멈추지 않음이 아니냐 말이죠
매일 매일이 구원
매일 매일이 사랑이 넘쳐나고
매일 매일이 살려주심뿐이고
매일 매일이 7에 70번 용서이고
매일 매일이 일만 달란트 44조 탕감입니다 이거 20년 전에 검색해서 안 것인데
지금의 체감가치는 빈살람이 3000조? 만수르가 1000조 인데 이들이 16만년 일해도 못 갚는 빚입니다

이 놈은 왕자이고 석유나라이지만
일반인인 우리는 오죽 하겠습니까?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고아 과부 나그네
눈 먼자 앉은뱅이 문둥병자 귀머거리 
물론 그 어떤 누구도 모든 인간 다 마찬가지입니다 잠재되어 있지
늘 지옥이 늘 올라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늙고 병들고 약하면 다 걸리는 겁니다
이 죽은자
이 가난한 자

이 불도져 앞에서 늘 밀려져야 할
다리미질 앞에서 늘 심판받아야 할 
발라버려져야 할 죄인들이 뭐 니 잘났니 내 잘났니 하는 짓들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불도져 앞에서 도리어 이 첩경을 평탄케 하시는 심판만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는 겁니다
마리아와 한나의 종말의 기도, 다 이루었다 완료의 기도
율법의 완성인 인애와 자비를 요청하는 기도가 바로 유일한 산 소망이자 기도인 겁니다

종말의 무한의 빚 반복
원인 없는 결과의 무한반복

박땡선의 세계가 무너진 그 자리에서 말이죠

정답이 찾아나서시는 문제아 잃어버린자 찾기 탕자찾기 죄인찾기
왜? 십자가의 피 발라 버리기 앞에서

쪽팔려서 성화운동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를 무너뜨리는 겁니다

https://youtu.be/VSE5IJTUmX4

빰 밤 바바 빰 발라버려 즉 은혜의 실제확장의 라이브 방송이다 말이죠
실시간 스트림 생방송이다 말이죠
모든 문화계는 철학도 포함해서 말이죠 다 성화론자 혁명가들입니다

인간이 발라버리는 것은 안 발려져 버립니다
의문의 반복만 해요 정답에 가까이 갈 줄 알고 말이죠
광주학생운동가들이 지금 딴나라당놈들 아닙니까
독재를 저들이 더 옹호하고 있습니다 무당까지 다 동원해서까지 말이죠

민주당은 아직까지도 광주학생운동하고요
그거 제대로 안한다고 삐친놈이 진중땡이고요
이 세상을 천국 만들겠다 라는 놈들이 더 지옥을 만들고 있잖아요
또 이것을 반대로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고 해서 답이 나오냐
답 안 나옵니다 

정작 세상을 악하다 하신 분이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신 겁니다

그러니 저들의 모든 짓이 헛짓이 되는 겁니다
그냥 자기 편 만들기 위한 인정투쟁일뿐인 정치판입니다
정치도 과학도 모든계 종교화 되어버린 겁니다 끼리 끼리 오락게임 말이죠

드렁큰 타이거가 발라버려 라고 괴물이 되어서 세상을 무너뜨리겠다 라는 식으로
모든 부조리를 발라버리겠다 라고 외쳐도 못 무너뜨립니다
제대로 못 무너뜨리는 놈들이 무슨 놈의 괴물이 됩니까?

마귀가 벌벌 떠는 분이 제대로 된 심판 주 이신데 말이죠
율법을 주니 이 놈들이 자기를 찌르는게 아니라 남 찌르는데 다 활용하더라 말이죠
광명한 천사처럼 말이죠

그래서 은혜로 심판하시는 겁니다
율법으로 심판하니까 지가 좋아하는 놈들은 다 뒤로 빼돌려서
10가지 재앙의 10가지 신들 우상으로 보디가드나 삼고 있으니

중심이 필요 없는 놈들이더라 말이죠

그런 애굽나라 잔칫집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유사천국이 실제상황 실제 라이브 생방송이 아니라

이 복음이 나타났다 가 진짜 생방송 실제상황입니다
다 불도져로 밀어버리는 말씀이 말이죠

뭐가? 로마서가 말이죠 로마서가 실제상황인 겁니다
백날 따져보세요 로마서랑 지금의 나와 내가 쳐해져 있는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무것도 연결 고리가 없어요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의 기능과
즉 사도바울이라는 새이름의 기능과

야곱이라는 이름
사울이라는 큰 자 라는 이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어요

그럼 이 로마서는 나와 상관이 없는 겁니다
야곱에게 쳐들어온 새이름을 주신 분
사울 큰자에게 쳐들어온 새이름 바울을 주신 분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말이죠

네 맞아요 그 분의 숙제가 벌어져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만 기쁜소식이지
그냥 읽으면 생방송 실제상황도 아니고요
나랑 상관도 없구요
남의 일 로 그저 지식쌓기 용도로 많이 많이 억수로 많이 의미를 부여해서 볼 뿐이지
사도바울 죽이시기로 작정 한 것은 그저 남 이야기일 뿐인 겁니다

어떻게 사도바울이라는 이 인물을 어떻게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의 거룩을 입혀서
복음을 증거하는가?
복음을 나타내는가?
개인 문제로 보면 어줍짢에 바울 흉내라고 낼려고 하겠지만
주변의 환경 특히 유대교 까지 쥐고 흔 들수는 없다 말이죠
그들을 무슨 수로 이 바울과 대비된 한 세트로 구성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러 억수로 미운 짓을 유대교에게 하면 될까요?
지금 우리가 기독교 기득권층들에게 억수로 미운 짓을 하면
그렇게 되면 언약이 되고 말씀 약속 묵시가 되는 겁니까?

정작 바울은 본인이 하나님의 원수로써
복음의 나타남 앞에 무릎 꿇게 되는데 말이죠

그렇게 찢겨진 바울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라는 또 노래 가사가 생각나네요
박진영 제이와이피 인가? 난 남자가 있는데 또 다른 남자를 어떻게 어떻게 사귀냐
난 여자가 있는데 또 다른 여자를 어떻게 어떻게 사귀냐
맞아요 불륜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우상을 자기 남편으로 자기 여자로 남편 아내로 지내고 있어요
기생라합에게 느닷없이 새남편이 나타나니까 전남편 율법처럼 전남편 국가와 민족 그리고 우상의 신을 졸지에 버려야 할 판국입니다 자기의 손으로? 아니지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지옥을 몰고온 심판의 주 앞에서
새신랑으로 맞이하지 안될 판국으로 급박하고 신속한 이름이 복음이 나타나버렸기에 말이죠

바울 보세요 스데반 죽여놓고도 뻔뻔스럽게 3초도 안 되어서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 라고 이 예수님을 복음을 외치지 않습니까?
그것도 예수쟁이를 죽일려고 가는 와 중에 

여전히 진행 중에

너가 핍박하는 나사렛 이단 예수다 라는 분이 나타남으로 말이죠

적군을 무찌르러 가다가 갑자기 본인이 적군이 되어서 말이죠

어떻게 이 하나님의 원수가 
원수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었는가 라고 말이죠

그 어떤 연결 점이 있나요?
원인이나 조건이 있나요?

과학에서는 원인이 없으면 더 이상 논리를 진행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양자역학을 만나고 나니 인간은 쥐뿔도 아는 것이 없다 라고 해 놓고서는
그것을 아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 위대한 인간이다 라고 나와요 
하여튼 구제불능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원인을 갖추지 않으면 논리를 이어 갈 수가 없어요

자 그렇게 그 어떤 접촉점이 없이 복음이 졸지에 나타나 버린 겁니다

마치 창세기 38장 이였던가요?

갑자기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이야기가 갑자기 난데없이 낑겨있습니다
앞뒤 안 맞게 말이죠 갑자기 슥 
사이 간극처럼 얼룩처럼 공백이 생긴것처럼
둘 사이에 빵구멍이 뚫힌 것처럼 말이죠 
누가! 구원의 뿔로 빵구멍을 낸것처럼 말이죠

며느리 다말이라는 종말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시아버지 유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종말의 단체가 되기 위해서
며느리 다말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이죠

이 부정적인 부조리 스캔들이 바로 십자가라는 종말성이다 말이죠
다 이루었다 라고 완성을 미래완료를 이미 미리 뿌뿌뿌 나팔불고서 말이죠
이게 믿음의 세계 복음이 나타난 세계입니다
우찌 죽은 자가 우찌 가난한 자가 기뻐하냐 말이죠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전혀 다른 
반대를 위한 반대의 방향 간극을 더더더더 벌리는 식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믿음이 나타났거든요 복음이 나타나버렸다 말이죠

마침 또 찾은 것이

우리가 에스겔 시작할 때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말이죠

2019.07.12 계시의 출발과 사로잡힌 자 (인자) (겔 1, 1- 3)

구원 그 이후 라는 시간은 역사는 공간은 이제 없어요 날라가 버렸어요 
공중분해 해체 되어버렸다 말이죠 내 몸 중심이 아닌
예수님 중심의 새 술 새 부대 새 판으로 재구성이 되었는ㄷ
여전히 옛언어로 또 속일려고 할 뿐입니다
이제 사로잡힌자만 있을 뿐이다 말이죠

누구의 운명이 내 속에 들어와 버렸다 라는 거죠
결정체로써 동결되어버렸다 말이죠 확정

멋들어진? 아니지요 죽이시기로 작정된 모욕적인 구원 곧 종말 곧 요나의 표적으로써 말이죠
싫어버린 바 된 다들 귀히 여기지 않는 고개를 돌리는 버림받은 모습
세상의 찌끄레기로 말이죠

(고전 4:9, 개역)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마침 중간에 낑긴 이라는 의미를 찾다가
철학자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검색해 찾은 것이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발가벗은 생명체

2000년 이후로는 이제 본격적인 난민시대가 되었다 말이죠
유럽으로 유입하고자 하는 난민이 천만명이다는 거죠
결국 실제적으로 2천만명 어디 그곳 뿐이겠습니까

https://youtu.be/rloH9Gou2HM

마침 어제 시사다큐를 하더라 말이죠
(아 이게 2부넹 또 1부를 찾아 봐야겠네요 ㅋㅋ
지젝은 오래전부터 난민의 시대가 될 것을 알고 받아주면 안된다 라는 식으로 
말은 해 놓고서는 또 가까운 이웃이 아닌 
불편한 이웃을 사랑치 않는 것은 아무리 이웃사랑이어도 가짜다 라는 식으로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식으로 말을 하던데 
실천하라고 해 놓고서는 본인들이 헷갈리게 말한다 말이죠 
물론 막살아라 라는 뜻인데 강요된 선택을 비판하고서는 
역시나 강요한 된 선택을 유도한다 말이죠 누가 자유로울수 있겠습니까? 
자기자신만 빼고 확증편항으로 볼 것인데 말이죠 안 그러는 사람이 있냐 말이죠)

우리나라도 미얀마 난민이 돌아 돌아서 외국인 노동자로 왔지
난민으로 들어왔다가는 한국이 받아줍니까? 지 밖에 모르는 놈들인데 ㅋㅋㅋㅋ

지금 있는 자들도 어떻게 하면 쫓아내고파서 안달인데
뭐 잠재적인 범죄자이다 이슬람 테러자 이다 그럼 너는 안 그렇구????

그러나 철학자가 말하는 발가벗은 예외상태는 아무리 성경을 끌어와서 개념을 붙여도
안 맞아요

끌어오지 말라 말이죠

우리가 에스겔 새성전의 치수를 아무리 숫자로 표기가 되었다고 해도
그 의미를 내 쪽으로 끌어와 본들
또 의문의 반복 뿐인 내 숙제만을 늘려갈 뿐이다 말이죠

주님의 숙제로써 오로지 천사들만이 새성전을 정확하게 짓는데
자꾸 내 쪽으로 끌어오면 또 함량미달이 된다 말이죠

발가벗은 생명이라는 난민을 수용하니 거부하니 해본들
정작 발가벗은 생명으로부터 배제당하는
배제된 난민으로부터 배제 당하는 이 종말성은
아무리 철학자들이 저런 의미를 도출해 본들 다 거짓이 되는
또 함량미달인 666 사람의 수 일 뿐입니다

총명한 자는 즉 똑똑하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을 입은 자는
그런 사람의 수에 속지 말아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마치 남을 7번 용서 했습니다 라는 말에 속지 말아라 말이죠
난민을 7번 수용했습니다

도리어 7에 70번이나 배제 당하고 난민으로 쫓겨나는 발가벗은 나를
예수님의 피로써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목숨을 내어주심으로써 
원수가 목 마르거든 마실 것 입을 것 먹을 것을 받아 먹어라 라는 겁니다
내가 떠돌이 난민이다 라는 거죠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 골칫거리 말썽쟁이 이다 라는 겁니다

인자의 몸에 담겨져야만 하는 사로잡힌자 이다는 거죠

그런 자로써 사도바울이 이제 종말을 복음을 
사도바울에게서 시작하시는 겁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점점점 후패가 되고
패하게 되고
사도바울 속에 있는 속사람 예수님은 곧 복음은 곧 종말은
점점점 날로 날로 새로워 지는

그 후패하는 내용과
그 날로 새로워 지는 내용을

이제 사도바울은 기록해야만 하는 겁니다

집이 낡아서 공사를 하는데
아예 다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공사도 있지만
비용이 없어서 내부공사를 통해서 점점점 새로지어가는 그런 공사를
너튜브에서 찾아서 보면
썩은 벽들과 낡은 지붕을 어떻게 밀어내고
새건물을 어떻게 확장시켜가는지를 보여준다 말이죠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새공사를 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나를 어떻게 주님이 이기시는지를 말이죠 넉넉히 승리하시고
어떻게 나는 매일 매일 찢겨지고 폭파당하고 해체가 되는지를 본인 당사자가
해체가 되면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기록하는 식입니다

네 맞아요 에스겔처럼 묵시의 실체상황 종말의 실제라이브 방송이다 말이죠
이스라엘을 해체하고 있잖아요
왜? 새성전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 해체를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증상물은 이미 숙제를 누가 외부에서 다 완료했기에 이것을 믿음이라고 했지요
믿음이란 외부의 숙제라고
다 완료했기에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가 없는

누리기 이다는 겁니다 누리기
즐기기

이것을 존재가 아닌 당위 라고 했지요 기능

존재가 존재 하기도 전에 있었던 당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을 나타내는 증상

감기가 걸리면 눈에 안 보이는 감기가 말이죠
어 그런데 증상물로써 콧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말이죠

저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슴에 흰수건을 달았다 말이죠
3월달 입학식때 말이죠 여전히 추운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기에
7, 8살 코 찔찔이들이 늘 콧물을 주루룩 마르지 않을 정도로 늘 흘리니까 말이죠

그 증상이 나타나니까 막을 방법이 없어요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 사나이 그 콧물을 즐길수 밖에요

누리기 뿐입니다

내 숙제가 하나도 없이 주님의 숙제
종말의 영의 숙제
종말의 마음인 예수님의 마음을 누리기 할 뿐이예요

우리의 마음은 곧 육이지요 이 새 마음에 의해서 밀려나는 과정을 누릴 뿐입니다
밀려서 밀려서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듯이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아 내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자기 의로움을 쌓은 것을 밀어버리시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도 밀어내시고
알고보니 예수님의 의로움에 비해 보니 똥 덩 어 리 강마에 냄새나기 짝이 없는 ~~~~~

이 썩은 내를 하나 하나씩 밀어내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우리는 도리어 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썩은 내로써 우리의 시커먼 죄악을 불태워서
흠향하시더라 말이죠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태운 그 냄새 그 역겨운 살타는 냄새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향기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야야 사도바울아 너에게서 탄내 난다 뭘 태웠노

아 내게서 그리스도의 피 냄새가 십자가의 흔적으로써 새겨지듯
몸에 평생을 베여버렸단다 라고 그것을 자랑해요 글쎄

다들 그 그리스도의 향기를 역겨워 하는데
사도바울은 도리어 자랑하고 다니는 사로잡힌자로 사도바울을 만들어버렸다
사도로 말이죠

그것이 영광이다 라고
권세와 나라와 영광이 입혀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약할 때 강함이라는 약함이 입혀졌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운명이 덮쳐졌다 라고 말이죠

이것을 영광이라고
권세라고 누가 거꾸로 보겠냐 말이죠

너무 너무 약하게 되어버렸는데 말이죠

저런 철학자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
무국적자
서류난민
서류 또는 신분증이 없는 Sans Papiers 상파피에 (한국식 표현은 불법체류자)
발가벗은 생명

이라고 규정된 그런 발가벗겨진 자들로부터 더더더 발가벗겨진
절대로 때려죽어도 자기들의 신 종교 포기하지 않잖아요
그게 무슨 발가벗겨졌냐 말이죠

나의 신은 나를 버렸습니다 라고 나와야지
역시나 다른 나라에 난민으로 가서 또 테러하는데 그게 무슨 발가벗겨졌냐 말이죠

자기가 믿는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발가벗겨 져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 밖에 없는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지나개나 다 발가벗겨졌다고 자기 쪽으로 끌어와요

그것이 우리가 에스겔 몇장이였죠?

2021.11.13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

에스겔 11장입니다

예루살렘 거주민과 포로로 잡혀가는 포로민 
난민은 아니지만 역시나 난민 같은 포로민 바벨론 포로민은
언젠가는 주님이 회개하는 나를 돌봐줘서 보상을 해주듯이
예루살렘으로 돌와오도록 해주실테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야겠다 라고 나오지만

이스라엘 해체라는 문제아가 실패가 멸망이
이미 하늘에 새이스라엘이 다 이루어졌기에
새성전이 다 이루어 졌기에 나타난 증상인데

이런 주님의 언약과
안 맞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이스라엘 입니까

이스라엘은 원래 처음부터 없었는데
원래 잃어버릴 것이 없는 자로써 세워졌는데
자기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나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또 기대하고 또 희망을 가지더라 말이죠

이것이 사랑이 없기에 또 울리는 꽹과리
또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자기 의를 또 쌓아요 글쎄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내더라 말이죠 율법을 자꾸 지켜요 글쎄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어딜 주님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고자 하는데 감히 속일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또 사기치는 의문의 반복인 율법 지킨 몸을 형성하냐 말이죠 육을 또 세워요
그리스도의 몸이 있는데 말이죠

마치 불 타는 성전을 또 지어요 글쎄 교회를 말이죠
불 타지 않는 새성전 걸어다니는 새성전인 예수님이 있는데
그 예수님의 몸으로써 신부된 교회
곧 성령의 전인 우리가 있는데

우리는 돈 안되니까 건물성전 짓기에 집착한다 말이죠

그런 성전은 마치 46년 동안 짓는 의문의 반복일 뿐

삼일 만에 짓는 성전 앞에서 무너져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체를 그런 46년 동안 짓는 의문일 뿐이다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고
난민 7명 수용하는 것이 다 거짓이다는 겁니다

지젝은 난민을 수영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둘 모두다 나쁜 짓이다 라고
어쭈 좀 다르게 주장하지만
역시나 답은 없다 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우리는 정답이 있기 때문에 문제아 진정한 문제아로써 증상물로 나타나는 겁니다
내 숙제로 탕자가 되는게 아니라 주님의 숙제로써

난민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자로써 말이죠

예루살렘 거주민과 다르고 바벨론으로 포로잡혀간 포로민들이
어쭈 우상을 믿는 바벨론으로부터 공격받을 줄 알았는데

어라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그들과 잘 썩이는 겁니다

왜 이렇게 친근감이 있는고 했더니

예루살렘에서 우상섬겼듯이 하나님과 우상을 썩어서 
시온산에 산당으로 도배했잖아요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그림을 그리고 우상숭배했잖아요

역시나 바벨론도 마찬가지였다 말이죠

도리어 바벨론 포로민인 된 이스라엘로부터
난민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자가 누굽니까

에스겔 인자 아닙니까

마치 예수님이 유대인으로부터 당하는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종말을 그대로 보여주곻 있어요 그 당시 유대인이 로마 식민지로써 나라를 빼앗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빼앗긴 자들로부터
유대인으로부터 예수님이 버림받는 ~~~~~~~~

에스겔이 미리 앞당겨 보여줬다면
사도바울은 그럼 뻔하죠

네네 바로 그겁니다

역시나 사도바울이 왜 믿는자들로부터 버림받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부터 거부당하는지를

로마서 내용을 보면 결국은 버림받을만 하네 라고

왜?

율법 지키는 자들과 안 맞거든요

완전히 극과 극인 상극
정반대 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사도바울 본인이 율법의 달인이였던

저 육의 세계의 최고 최전방 행동대장 아니였냐 말이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도 예수님의 운명이 에스겔 인자에게 나타났듯 
점점점 확장되면서
이스라엘은 해체가 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미래도 사도바울에게 덮쳐져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식으로
모든 육체를 해체 시키는 식으로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그 당사자 사도바울이 그 1번 타자로써

의문의 증서 율법의 마침이 덮쳐져서 해페가 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새로 지어짐이 되는 ~~~~~

이거 제가 안다고 해서 머리로 지식으로 말이죠
나의 육은 절대로 수용 못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요

그러니까 사로잡힌 자로써 그냥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불도져 앞에서 깔려 주름이 펴지는 평탄케 되는
이 평화만이 이미 다 완료되었기에 그 증상물로써

거부할 수가 없는 당위로써 그저 즐길 뿐입니다

사도바울 보세요 완전 박살이 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웃으면서 기뻐하면서

하나도 안 기쁜 나쁜소식을 기쁜소식이라고 그 다음 니 차례이다 라고
종말의 멈춤이 없다 라고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너도 깔려 납작이가 되라 라고 한다 말이죠

되라 라고 이것이 명령어로 들려서 지키는 개념으로 받아 들어야 합니까
아니지요 존재는 어떻게 해서든 지킬려고 하겠지만
존재 이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당위로써 그저 나타날 뿐입니다
(당위는 오히려 거부하고 싶어도 못할 정도로 밀려 닥쳐옴 입니다)

아이가 자라면 몸에 털이 나고 여자아이는 가슴이 올라온다 말이죠

누가 이것을 지키기를 해서 가슴이 나옵니까
저절로 나오지 (지키기와 무관하게)
때가 되니까 말이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고
이 어린아이 라는 의미가 지키는 행함의 문제에서 떠난 의미이듯이)

남자아이는 이제 목소리가 변하고 근육이 발달하게 되니까
엄마가 이길수 없을 정도로 힘에 부치게 된다 말이죠

나는 싫어 다시 어린아이 때로 돌아갈래 해도 소용이 없구요
나는 지켜서 더 어른이 될 거야 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니 아예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곧 죽는 자연사 하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해서
아무리 지켜본들 지키기를 해 본들 안되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찢어지는 시공간 역사인데
아무리 역사를 내 쪽으로 끌어온들
이 말은 아무리 실천하고
지키기 라는 내 숙제로 해 본들
다 소용없는 육이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기 위해서
누락 되어야 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공간 이라는 역사가
육이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즐기는 증상
누리는
정답이 떳기에 문제아로써 누린다 말이죠

불가항력적 은혜 ~~~~~~~~~ 저항이 안되요 안돼 ~~~~~~

웃끼게도 자기들이 불가항력적 은혜 라고 해 놓고서는 교리로 만들어요
교리 로 형성 자체가 안된다 라고 말해놓은 셈인데 교리로 지키겠데요 글쎄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 말로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면 또 몰라

알맹이는 역시나 쏙 빼놓고 이런 교리로 또 결국은 돈 빼먹을려는 ㅋㅋㅋ

뭐 외부의 공격인 이단 때문에 어쩔수 없다 라고 핑계거리로 삼지만
결국 그게 이단인 어쩔수 없는 나 라는 이단을 치고자
나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라고 나오면 되거든요

알고보면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누가 가장 거부합니까
오늘날 교회요 우리 자신 아닙니까

유대인도 그렇게 사단의 회로 빠졌고
천주교에서 빠져나온 이 개신교
이 캘빈주의도 마찬가지 아니냐 말이죠

성경적인 바른 성경적인 교리 뒤에 숨는다고 해서
주님이 속아 넘어가겠냐 말이죠

그래 따지면 진짜 법궤 뒤에 숨었던 홉니와 비느하스 또한 죽임 당하면 안되잖아요

심지어 예수님 이라는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은 더더욱 그렇구요

내 구원을 위해 내 쪽으로 끌어올 말씀이 아예 단 하나도 없어요

그 버릇에 취한 자였던 자가 사도바울이였거든요

그 교리실천의 달인이 이제야 비로소 복음을 외칩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도리어 종말의 시작이였다는 거죠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내가 붙잡으면 며칠 못 가서 끝나지만
십자가가 나를 튼튼히 붙잡아 버리니까 때려죽어도 끝나지가 않는 겁니다

4.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앞에 찬양할 때까지

내가 이기면 내일 또 언제 질지 모르지만
이미 넉넉한 승리가 나를 붙잡고 가면

내가 찬양하는게 아니라
찬양이 나를 다루어서 스피커로 전류를 흘려버리니 소리가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아무리 벙어리요 음치 박치 라도 소용이 없어요

지금 바울이 딱 그 짝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 예수님의 복음을 외친다?

말이 되냐 말이죠

바울 너가 핍박하는 예수 그것도 나사렛 이단 예수를

정통 중에 정통
스카이 중에 스카이

과연 바울의 숙제로써 감당하실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만 어머니 감당 하실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바울 학생이나? 바울을 키운 모교 가마리엘 문하나
감당 못 합니다 

은혜만이 감당합니다
박은혜 김은혜 최은혜 이은혜 등등 말고

예수님의 죽음만이 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 감당 하시는 겁니다
바울 숙제 단 하나도 없어요

예수 쓰앵님 만이 감당 너끈히 하셨음을 그 증상물로써 바울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흔히 목사들이 무식한 베드로 보다 (일반인 어부 베드로와 학자 바울을 비교하니 웃끼죠, 다른 것을 노린거다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과 바리새인을 비교하듯 결국 눈뜬 소경인 거죠)똑똑한 바울을 좋아라 하는데

그런 목사들을 보면 베드로 보다 더 모잘라요 총명한 성령을 받은 자 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겁니다
베드로도 감당 못하면서
베드로를 얼마나 싫어라 하는지 원 ~~~~~~~ 티를 너무 너무 내더라 말이죠

결국은 사기꾼으로 들통내니까 출교를 시키던데

이단 잡는 바울이 되겠다 라고 ㅋㅋㅋ
다락방 이단 까지는 좋았는데
신천지 앞에서는 다들 같은 편 되어버리니까
돈 안 쓰는 이단은 충분히 잡지만 돈 많이 뿌리는 이단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더라 말이죠

자기가 이단 인줄 모르니까 자꾸 무슨 무슨 운동을 하는 겁니다
이단 방지 대책 운동 본부 따위처럼 말이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처럼 모든 종교라는 마약에 다 있는 짓을 해요 글쎄

차라리 이단 중의 이단이 되어라 말이죠
나사렛 이단 예수의 운명이 미리 덮쳐진 인자 에스겔과 사도바울처럼 말이죠

마치 과거의 에스겔이 다시 활동하듯이
미래의 사도바울로써 활동하는 겁니다 
인자라는 그리스도의 몸은 멈추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육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
곧 예수 안이다 말이죠 이런 시선이 바로 새성전의 시선입니다
걸어다니는 참성전 되신 예수님의 시선 말이죠

바로 이런 시선이 약속의 사고방식이고
반대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 무조건 비언약적 사고방식인 육이 되는 겁니다
반드시 자기 자랑인 육의 자랑으로 귀결이 되니까 말이죠

복음은 아무리 나를 자랑하고 파도
복음이 나를 지워버리고 삭제시켜 버리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십자가의 피 용서인 사랑만 자랑하도록 하니까 말이죠
안 그러면 울리는 꽹과리 소음 밖에 안되니 말이죠

인간의 몸은 이미 죽은 자의 몸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의 몸에서 출발하는 믿음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일 뿐입니다
이것을 산 자의 하나님을 유일하게 증거하신 유일한 참이스라엘이신 예수님이

심지어 사도바울 조차도 가짜이스라엘였음을 알려주시지
가짜가 너 가짜야 라고 알려주지를 않습니다
유일하게 진짜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 되신 분 오직 예수님 만이 알려주심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이 복음 덕분에 내가 가짜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거룩이 없다 라고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가 너 거룩 없단다
거룩이 없으면 너는 차단되고 배제 되어야 한단다를 비로소 알려 주심으로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죽은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자 이렇게 자복케 만드시고자 알려주신 분이 바로
내 손에 죽은 예수님이다 라고 비로소 불쌍히 여겨달라고 상한심령으로써
성령으로써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써 성령을 구하는 겁니다

기도 조차도 엉터리로 하기 때문에
성령의 놀라운 탄식인
주님의 기도를 곧 종말을 곧 복음이 나를 다루어 달라고
기도가 나를 다루어 달라고 그것도 종말의 기도
성령의 기도가 나를 다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령의 기도를 말이죠

기도를 할 줄 모르니까
종말의 기도가 뭔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내 대신 기도하시는 분의 기도를 구하는 기도를 말이죠
이중배제 이중누락 이중소외인 거죠

회개의 달인이 되는 결국은 나에게로 귀결이 되는 회개를 할게 아니라
회개 조차도 할 줄 모르는 우는 자로써의 회개
회개 할 줄 모릅니다 내 회개는 차단 당하는 회개를
다윗이 비로소 종말의 인자의 기도 꺽으신 뼈의 기도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꺽으신 뼈인 아이가 이름 없는 아이 곧 솔로몬의 형이
다윗을 바로 그런 4종 세트로 자기 죄악을 스스로 가리고자
아이를 죽게 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그 기도를 누락 시키는 기도를
꺽으신 뼈가 기도하는 이중배제 이중차단 이중단절로써
반대를 위한 반대로서의 기도로써
막살기를 지키는 달인이 아닌 막살기를 거부하는 막사는 종말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대신 막 죽어 대신 심판받는 이 종말의 복음을
나 사도바울 속에서 시작 하셨다 라고

이제 부서지는 
입술이 찢어지는 그 기쁜소식만 누릴 뿐이다 라고
복음을 개시 하는 겁니다

나 사도바울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당해서 기쁘다 라고 말이죠

육은 정녕 죽으리라를 보여주는 몸이고
몸과 영은 정녕 다시 살리라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몸 곧 예수 안을 보여주도록 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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