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무관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악의 세계 조차도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1-01 15:03:26,

이스라엘의 뼈는 애굽에서 막벨라로 갖고 왔고 라헬은 베들레헴에서 장사 지낸것은 애굽은 주님과 무관한 곳이고 베들레헴은 주님과의 관계성이 있는곳이기에 거기서 장사지내어도 상관이 없었던 것인가요

답변 :

막벨라와 라헬에 대해서 또 질문하셨네요 어떤 지역 개념이 나오면 항상 역사와 연관되었기에 제가 그런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취약하죠

항상 단편적인 것만 겨우 이해할 정도라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아무튼 제 나름대로 답변을 해 보면

애굽도 항상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출애굽하듯이 출예루살렘이고 구원의전쟁을 이런식으로 벌린다는 일종의 기준이 되는 셈이겠죠.

그렇기에 항상 애굽과 예루살렘은 항상 같이 언급이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함과 가나안 땅이기 때문에 언약이란 이 둘을 하나로 역어서 항상 언약의 활동 배경으로 본 겁니다.

오늘날로 치면 묵시(계시)란 전 인간의 역사(전쟁마당터)를 배경으로
언약 활동 무대로써 또 언약의 차이를 드러내는 비언약으로써 항상 이용되듯이 말이죠.

동방박사의 헤롯 잠시 들렀다가 여기 유대인의 왕 어디있냐고 괜히 소동 일으키고 빠짐으로써 무고하고 죄없는 많은 어린아이 두 살 밑으로 다 죽는

일종의 출애굽의 재현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애굽의 의미는 별개의 의미가 아니죠.
베들레헴은 아마 라헬의 죽음을 잊지 않고 반드시 그 위로의 약속을 실현한다는 의미가 아닌지? 아무튼 무지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

목사님의 답변을 살펴보니

4. 마태복음 2장에서 라헬이 나오는 것은 이스라엘의 본처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을 이스라엘의 어미의 고통으로 대신하면서 야곱이 진정 사랑했던 라헬이 대표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을 새언약을 예고한 예레미야 입장에서 볼 때에 진정한 참 이스라엘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 2:16, 개역)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마 2:17, 개역)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마 2:18, 개역)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예수님의 신부인 새이스라엘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의미를 반드시 부각 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인해 첫사랑 처음자리의 의미인 이스라엘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죠.
엉터리 이스라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이나 또는 이스라엘을 이겼다고 보는 악의 세력들을 마치 레아와 비교했을때에 상대적으로 졌다 라고 의식이 되는 분위기와 모든 역사를
뒤 엎어 버리는 식이 된다는 겁니다.

과연 그 애곡? 일종의 출애굽 당시의 부르짖음 이라는 기도죠
그 기도에 응답한 참신랑에 대한 활동을 부각 시키는 듯

아무튼 때려죽어도 나의 신부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죽었더라도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살려서라도 나의 신부를 내가 높이겠다 라는 취지인 듯

그럼으로 의인의 죽음은 또는 주님의 자녀의 죽음은 개인적인 죽음이 없습니다.
약속을 보여주기 위한 죽음이기에
그 죽음조차도 사소하게 개인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반드시 약속의 발현을 드러내기 위한 의미로써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만 증거로써 쓰여지는 철저한 약속의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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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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