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을 칠지라도 잘 용납하는구나 !

(고후 11:20, 개역)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2-21 15:41:18,
강아지가 크면 개가 되고 망아지가 크면 말이 되고 송아지가 크면 소가 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크면 하나님이 된다 이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는건가요

답변 : 그래서 성화론이란 작은 예수 운동 작은 하나님 운동 류의 흉내내기 입장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그것만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흉내를 자신이 흉내내기의 달인의 수준으로 이루어 반드시 진짜 하나님을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국 십자가란 인간의 모든 행동을 미리 결론 내려서 확정 지은 겁니다.

하나님 믿기도 예수님 믿기도 교회 다니기도 모든 목적이 하나님 죽이기입니다.

그래서 다 죄 라고 하는 겁니다.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울산목양교회 [구원, 그 이후] 특강 음성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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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6:02:03,
하나님을 굉장히 너그러운 분으로 아는데 그 분은 굉장히  깐깐한 분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다 성경을 보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할수 있을까 그것만 봐도 그 분이 어떤분인가 철저히 나타나지 않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말씀이라고 하는 말씀이 생명이기에 이것 하나 얻자고 다 버린것이다 자신의 것을 다 놓으니까 그결과 하나님이 주신것이다 하나님은 공짜가 절대로 없다 값없다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내것이 안 된다 돈내라는 얘기가 아니고 그만큼 말씀에 몰두하라는 얘기이다

답변 : 하나님을 포착 못하는 인간이
어차피 포착 못하는 하나님이기에 자신 또한 자기멋대로 하나님 증거하는데 있어서 마음대로임을 정당화 하는 것이 그런 식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너그러운 분이 아니고 깐깐한 분이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자신이 하나님 운운하면서 너그럽지 못하고 깐깐하게 하겠다는 약탈성을 정당화 하는 겁니다.

인간은 당하는 입장 뿐인데도 그런 하나님을 운운하면서 자신의 행위 곧 배설과 권력 폭력성을 정당화 하겠다는 정당성을 항상 하나님 핑개로 하겠다는 취지인 겁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처럼 자신이 자신을 치심 곧 죽으심으로 증거하시는데 있어서
인간은 다 흉내내어도 그것만큼은 흉내내질 못하는 겁니다.
죽음으로 증거하는 예수님입니다.
성경 보세요 어떻게 하나님의 말슴을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을까요?
어느정도로 그분이 철저하셨는가 하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철저하게 갈기 갈기 찢어버리심입니다. 결국 인간도 예수님 따라 갈기 갈기 찢겠냐 말이죠? 그렇게 말한 그 목사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갈기 갈기 찢느냐 말이죠? 못 찢으면 그 딴 소리 사기입니다.
그리고 갈기 갈기 자기자신을 쳐서 찢으신 예수님만 혼자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목숨 버려도 상관 없음을 즐거워 하십시오.

맞습니다, 돈내라 라고 했다면 자기부터 재산을 바쳐야 하기에 자기단도리를 일단 해야 하는데 있어서 돈 보다 몰두하라 라고 하는 겁니다.
결국 그 소리가 그 소리죠.
사기를 칠려면 무슨 소리를 해도 사기꾼들은 뻔한 소리입니다.

값없이 주어진 은혜를 인간의 실적과 공적과 눈에 보이는 효과로 만들려고 하는 저 뻔한 술수

그런데 마귀의 활동도 잉여이기에 그 뻔한 술수에 넘어간다는 놀라운 기적이다는 사실에
마귀가 활동하는 것이지 그런 인간들의 잘못성이 있는게 아닙니다.
잘못이라면 고치면 되지만
잉여는 이유도 원인도 조건도 없이 무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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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6:03:20,
돈은 없으면 못 하는 것이지만 몰두는 내가 하면 되는것이지 않는가

답변 : 거 봐요 결국은 눈에 보이는 것을 나타내라 라는 행위 행함을 요구하는 겁니다.
지금 만약 돈 내라 라고 하면 돌삐 맞아 죽습니다.
지금 현재 경제는 다 망한 상태입니다. 눈치 없이 돈 내라 했다가는 우찌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사기는 쳐야만 하고 무슨 방법이 없느냐 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몰두 라는 용어로 또 세뇌 시키는 겁니다.
새로운 용어 새로운 단어를 발설 할 때 마다
거기에 따른 탐욕은 어떤 방식인지 미리 예상을 해 보세요.

몰두란 결국 눈에 보이는 교회에 집착 하라는 말 밖에 더 되겠나요?

예수님만 사랑 하십시오 교회도 끼어넣지 마시고 눈에 보이는 목사도 끼어넣지 마세요.
오로지 예수님만 사랑하세요. 그 십자가의 사랑의 피만으로 족하십시오 라고 말 못하는 이유는 결국 목사의 사심이 예수님 이라는 브랜드 이용해서 돈이 되든 돈이 안 되든 자기 수하게 두는 방식으로 밥풀떼기로 삼겠다는 취지 뿐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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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6:05:06,
유업은 자기 인격의 분량만큼 받는다고 합니다

답변 :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나님을 찾아내는 취지가 바로 유업이라는 소유물을 가지고 그 소유물로써 자기의 영역과 가치를 높이겠다는 취지가 있는 겁니다.

그에 반해 주님 쪽에서 찾아와서 다가와서 주시겠다는 기업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주겠다고 하니 다들 기적을 보고 따라다니면 구원의 자리나? 천국의 큰 자리 영역을 차지할 줄 알았는데, 아예 주님 쪽에서 그런자를 다 털어버리는 식으로써
오직 예수 자신만이 기업이라고 하니? 에이 그러면 안 받겠다고 다 떨어져 나가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만이 저의 기업이 되어달라고 청하는?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주님이 기업이 되는 식으로만 어리석은 십자가의 지혜가 작용이 되기에
똑똑하고 의인이고 높고자 하는 자들은 바로 그런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이 천국에 못 살겠다고 차별된 소유의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진해서 지옥이 땅기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의 믿음에 의해 두 패로 나누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으로 두 패로 나누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이 심판의 주를 만났음을 아는 자는
예수님 혼자 기업되심으로 족하지만

주님 앞에서 자신의 구원의 주로 보는 자는
예수님 자체가 기업이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천국에서 따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고파 하는 겁니다. 그런 기업은 없습니다. 주님에게 없는 것 달라고 생때를 부리는 겁니다. 주님에게 없는 것은 죄=욕심=사망 입니다. 그것을 기업이라고 우기면서 또는 사기치면서 그런 소유의 본심을 감춘채 기업이라는 용어로 사기치는 거죠.

(창 17:8, 개역)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라함 언약에서의 기업이란 예수님 자체 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알기까지 자신이 생각한 기업이란 다 빼앗겨야만 할 입장에 놓였습니다. 그 기업은 죽음 속에서만 십자가 속에서만 보이는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주어지는 보호자 그 자체입니다. (이삭을 바치는 제사를 통해서 왜 이스마엘은 안되고 이삭만 인지, 나 아니요 왜 예수님만 인지를 이삭 때문에 알게 됩니다. 이삭 없으면 알 길이 없죠. 제물 되는 희생자 때문에 말이죠. 이삭의 죽음 없이는 아브라함은 알 길이 없습니다.)

또 분량이 자꾸 많고 크기를 바라는데?
믿음의 분량이 커서 톱으로 켜임을 당해 몸둥아리가 두 조각 나는 그런 분량을 받고자 분량을 운운하는 자는 과연 있을까요?
결국 그렇다면 분량도 자기 처세술로 이용되는 자기성깔의 분량대로 또 이해되는 분량만큼 이라는 조건을 달게 될 겁니다. 그런 조건 다는 분량은 분량이 아닙니다.

일종의 은사인데
은사란 무능의 자리로 돌려놓는 겁니다.
그런데 분량 곧 은사 개념을 무능의 자리로 돌려놓는 식으로 증거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해서
조그마한 탐욕 조차도 큰 탐욕으로 맞추어야 자기의 탐욕도 정치적으로 정당화 되는 겁니다.
그런 노림수 까지 파악 해야겠지요. 모르면 당하던가요? 당하다 보면 또 저절로 다 알게 됩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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