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성문과 여자와 복

2009년 4월 22일 메모

원수의 성문과 여자(교회)와 복(열매)

믿음의 조상이라고 칭함을 당하는 아브라함에게 기업이라는 약속이 부여된다.

그 기업은 곧 하나님 자신인데 하나님 자신을 기업으로써 아브라함에게 부여하겠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서는 상대적인 기업이 날라갈 판국에 놓여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 생각한 믿음에 상대적인 하나님의 믿음을 기업으로 부여받듯이
아브라함이 생각한 복에 상대적인 하나님의 복을 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없음이라는 부재성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집단 이스라엘이요 이 집단 이스라엘은 아들이라는 표현으로써 원수의 성문을 여는 어떤 민족도 할 수 없는 유일한 독보적인 일에 참여가 된다.

그래서 자유하는 여자는 반드시 어떤 아들을 낳는가 하면 원수의 성문을 여는 약속의 아들을 낳도록 되어 있다.

무덤을 열고 지옥을 열고 죽음을 열어 재낌으로써 약속의 세계의 진면목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다.

무덤의 시체 속에서 부활을, 지옥 속에서 천국을, 죽음 속에서 생명을, 악 속에서 선을, 부정함 속에서 정결한 거룩을, 슬픔 속에서 기쁜 소식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의 아들은 반드시 하늘에 속한자로써 무덤과 지옥과 죽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부재성으로써 거룩을 증거함으로써

공개 되는 보임으로써 그 보임이 보이지 않는 비밀로써 여호와의 전쟁을 펼친다.

남을 죽이는 것이 남을 곧 살리는 길이다? 아니다.
남에게 심판과 이 땅의 종식인 끝을 증거하는 것이 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라는 여호와의 전쟁 방식의 선포이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하는 것이 유일한 이웃 사랑이듯이 말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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