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2. 예루살렘 입성 페스티발과 예루살렘 성 보시고 우심

(눅 19:28-48)



기쁜 소식 : 희년 은혜의 해 - 철저한 불공평, 철저한 모순이 기쁨이 됨

(원수의 성문을 열 자가 왔도다,

보라! 와서 구경하여 보라!, 복된 자가 왔도다)



하늘의 구조 :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신 이여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 (있는 자는 더 받겠고)

어찌하여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느냐? 돌 위에 돌이 남지 않을 것이다.(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


http://media.woorich.net/passofday/passofday090522luk52.mp3

 

(눅 19: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눅 19:29, 개역)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눅 19:30, 개역)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눅 19:31, 개역)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눅 19:32, 개역)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눅 19:33, 개역)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 19:34, 개역)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눅 19:35, 개역)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눅 19:36, 개역)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눅 19:37, 개역)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눅 19:38, 개역)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 19:39, 개역)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 19:40,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41, 개역)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2, 개역)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눅 19:43, 개역)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눅 19:44, 개역)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5, 개역)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눅 19:46,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 19:47, 개역)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눅 19:48, 개역)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

하나님이 주신 희망 (예레미야 3:16-18)


하나님의 주신 희망

2009년 5월 20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3:16-18

(렘 3:16,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7, 개정)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8, 개정)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오늘 본문에 ‘강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뜻에 대해서 거부 반응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가슴에 구멍이 뻥하니 뚫린 듯이 콸콸 말씀이 쏟아져 들어와야 합니다. 그냥 문자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아예 성도 안에 들어와서 사는 말씀이 됩니다.

바로 이러한 변화가 어디서 주어지는 겁니까?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이 땅에서 천국갈 백성들이 번성한다고 했습니다. ‘번성’이라는 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의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았을 경우에만 번성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 받을 자들이 복을 달라고 해서 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의 원천지의 마음과 복 받을 자의 마음이 일치되면 복이 오지 말래도 복이 오는 겁니다. 왜냐하면 복받을 자가 복을 달라는 주장을 할 수 없고, 복받을 자는 복을 내리시는 쪽의 작품이요 생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창세기 1장~2장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 위주로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위주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천지와 에덴동산과 각종 피조물과 사람을 통해서 어떤 구조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 구조 속에 사람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아니됩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유지하는 원리가 따로 있습니다. 인간들이 그 원리를 위배했을 때 그 구조로 무너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구조란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원리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한 예로서, 구조의 일부에 해당되는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신 이유는, 오로지 생명나무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닙니다. 즉 인간을 살리고 생명나무를 훼손하려는 것이 이 창조 구조의 원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선악과 따먹은 인간으로 하여금 결코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지 못하게 단단히 추가적 조치를 취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조치를 간단히 말하면 이러합니다. ‘사람이란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계신 것이 아니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을 위한 세계란 아브라함 링컨이 외치는 민주주의 세계이지 결코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인간이 절대로 들어와서는 아니 될 나라입니다. 하나님만이 사실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 흙에 속해서 흙으로 지어진 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복이 주어질 수 밖에 없고, 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그 창조 구조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겉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땅에서 번성하고, 그들이 다시는 언약궤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데, 그 예루살렘에는 전혀 서로 갈라섰던 이스라엘과 유다가 동행해서 모여와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전체 내용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구조와 그 기능이 전부 하나님께 속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인간이 주축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볼펜을 쥐고 있다면 이 볼펜은 제가 무슨 글씨를 쓸 줄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내 손에 쥐어있는 볼펜은 그저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쓰기 위한 수단인 겁니다. 인간도 하나님의 원리를 유지하는 구조 속에 포함될 뿐입니다. 로마서 8:20에 보면,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이 늙고 아프고 죽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요 오직 그런 죽임을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겁니다. 구조의 일부에 속한 자가 전체 구조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6:28-29에 보면,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예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구조와 그 원리를 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보내신 아드님이 하실 일입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여 살린 것이 떡을 받아먹는 사람들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남은 떡 조각도 다 거두어서 예수님에게 도로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즉 축복이란 결코 축복받을 자격이 있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하실 일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전에 사람들은 ‘언약궤’를 찾거나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언약궤가 요구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그 일로 인하여 복을 받는 자들이 숱하게 등장하게 된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 예루살렘이 곧 ‘어린양의 신부’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집니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친히 자신의 신부를 만들어내신 그 복의 원천지가 예루살렘이라는 겁니다. 이 때 신부들은 신랑되시는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되는 그 영광스러운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빌립보서 3:20-21에 보면,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현재 이 지구상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만물을 자신의 능력으로 지배하고 계십니다. 그 계신 능력으로, 흙으로 저주스럽게 죽어있는 성도의 낮은 몸을 자신의 부활의 영광체처럼 만들어 버릴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복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 홀로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복의 원천과 창조적 구조와 원리를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예루살렘에 성도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자기네들 노력과 열성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한 분 예수님이 하신 일에 감격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이게 되는데 그들이 곧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예루살렘성’입니다.

자신의 생명의 면류관까지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 앞에 던지면서 영원토록 감사할 때, 그 곳이 바로 하나님만이 살 수 있다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단지 예수님께서 천국과 영생과 구원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11강-렘3장16-18(하나님이주신희망)-jer090520.mp3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11강-렘3장16-18(하나님이주신희망)-jer090520.wmv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11강-렘3장16-18(하나님이주신희망)-jer090520.hwp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