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는 인자가 나의 주인이요 심판 주


인자(남이 아닌 내가 싫어해서 죽여버린)라는 심판주가 자신의 주인으로 생긴 자는 구원받은 자이고
인자(남이 아닌 내가 싫어해서 죽여버린)라는 심판주가 전혀 심판주로써 다가오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받은 자이다.

그것이 바로 끝까지 사랑하는 자와 vs 끝까지 미워하는 자의 차이 이다.


(남녀가 사랑하는 원리와 똑같다. 일단 인자는 연애의 고수다. 그리고 여자인 교회는 무능자이다. 아무리 저 인자를 싫어해도 인자가 좋다고 무조건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 방식이 사건을 통한 죽음 속에서 꺼내는 방식이다. 아무리 싫어해도 죽음을 이겨버린 이상 더 이상의 확정적인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 쪽에서 사랑했음을 확정 짖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의 부정적인 방식 뿐이다.
아무리 싫어해도 그 싫어하는 것을 유발케 만들어서 교체 시키는(성전) 방식이다.

인자란 먼저 된 자(옛언약)가 나중 되고, 나중 된자(새언약)가 먼저 되도록 하는 방식 뿐이다.

아무리 우리가 먼저 사랑한다고 다가가도 그것은 옛언약의 율법의식이다.
오로지 나중 된 인자가 자신만의 방식의 사랑(새언약=십자가의 부정적인 죽음)으로써만 사랑을 이루고서 다 이루었다고 외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인자는 옛언약의 방식에 젖어 있는 그 하나 하나와 충돌하면서 그것을 반드시 깨뜨리는 방식으로만 일관 되게 일하신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의 방식이다.

그 차이로 사람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진 자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말씀 해석 행위에 따라 실천한 것을 모은 것이 사람의 일의 방식이다.

인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일을 차이 내면서 자신의 새언약을 증거하신다.

이 충돌로써 깨어지고 발가벗겨지고 발목이 짤림을 당한자만이 새언약의 대상이지

인자만이 해석 가능한 새언약을

또 다시 옛언약의 방식으로 새언약을 해석하는 그 모든 시도는 거짓임을 인자가 친히 증거하신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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