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잉여성은 총알받이
(멋 대로 사세요. 막 사세요. 마음대로 사십시요 = 왜? 총알받이 이니까)
강이아빠가 나와라 해서 갔더니
영화를 보여줬다.
포화 속으로 라는 영화다.
나 또한 방공세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스토리는 없는
그저 눈요기 하나는 괜찮은 무지 돈을 때려부은 영화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서 두 가지를 건졌다.
까먹을까 싶어서 팜플렛에 메모해 두기를
1. 최고의 잉여성은 총알받이
이것이 바로 은사다. 누락을 보여주는 육을 후패케 하는
소모품 또는 말세에 둔 구경꺼리 비방꺼리 또는 미말에 둔 찌기 조롱꺼리
(고전 4:9, 개역)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4:10, 개역)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고전 4:11, 개역)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전 4:12, 개역)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고전 4:13, 개역)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여기서 아벨의 족보가 생각났다. 일명 죽었더라 족보
이 영화를 통해서 아벨의 족보에 새로운 별명을 붙였다.
바로 총알받이 족보 이 총알받이 족보인 아벨의 족보에 예수님이 뛰어드신다.
예수님의 족보가 그래서 유대인을 거부하는 총알받이 족보인 잉여족보이다.
결국 교회란 누락의 총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서 하나가 생각난 것이 바로
멋대로 살아라 라는 것이다.
이 말 때문에 반발하는 자들이 한 둘이가 아니였다.
문제는 총알받이 되는 판국에 멋대로 살아라는 것이 믄말인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지 멋대로 살아도 결국 총알받이라는 소모품이다는 것이다.
이 소모품에서 벗어날 자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멋대로 살아라 라는 말에 실족 당하는 자는 뭔가 챙길것이 많은 자만이 실족하여 넘어지게 된다.
(이미 바닥을 친 자는 넘어질꺼리가 없다. 이미 넘어졌기에 선 자 만이 넘어지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저 모든게 은혜요 감사 뿐인 감사 아닌 것이 없다. 왜 바닥을 쳤기에 밑바닥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우물가의 여인인 사마리아 여자가 바로 이 바닥친 여인이다. 물동이 던져 버리고 동네 사람들 동네사람들 선지자를 만났어요 온 동네 방네가 니느웨백성처럼 심판의 주를 만났다고 기뻐한다.)
소모품이 된 것을 기쁘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째로 건진 것이 바로
2. 두 세력의 각자의 내부 갈등이다.
하나의 내부 갈등은 적을 앞에서 두고서 실적을 올려야 하는 집중력에 의한 서열이다.
또 하나의 내부 갈등은 무조건적인 감독의 일방적인 편애성이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미 감독은 내부의 갈등이 있든 말든 총알받이의 의미에서는 다 용서가 된다.
그래서 한 쪽은 인간들이 그렇게 지긋지긋 힘들어하면서도 못벗어나는 성화론이고(행함)
또 한 쪽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내세울꺼리가 안된다고 무시해 버릴수 밖에 없는
일방적인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하는 원인 없는 결과인 외부에서 덮친 믿음이다.(믿음)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성화론자들이 걱정을 한다. 사람 곧 대중들을 손아귀에 쥐락펴락할수 있는 지도력이 상실될까봐 늘 걱정이다.
그래서 조직신학 또는 교리는 항상 정치적이다.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냐 라는 처세술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고 성화론자들의 공격처럼 막살아라 라는 것이 인간에게 잘 될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총알받이가 되기 때문에 막살아 본들 의미가 없다 라는 것이다.
일을 아니하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라는 다윗의 고백은 주의 목전에서 자신이 범죄했다 라는 것을 느꼈을때이다.
이것은 원천의 바닥이 드러났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원천의 바닥을 친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행적과 사랑실천 말씀실천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은 너무 너무 더러운 배설물일 뿐임을
상대적인 예수님의 믿음과 행함과 말씀완료를 보고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격차를 보게 되고 미흡하기 짝이 없음을 주님이 이루신것과 비교해서 알게 된 것이다.
즉 이것을 강이아빠 말대로 주일설교 내용을 인용해서
원인과 원인 끼리 결정난 사항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결과 끼리만 끼리 끼리 논다는 것이다.
한 쪽의 내부갈등은 이미 결정난 결과와 결과 끼리만의 놀이 이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그 결과는 자기들끼리 내부의 갈등이 있든 말든 의미없다.
원인 원천 근원이 이미 한쪽을 택해버렸다.
단 총알받이 로써 곧 잉여다.
마침 이 부분을 오늘 수요설교에서 다루었다.
http://crosslamb.tistory.com/888
이스라엘을 총알받이 잉여의 최절정으로 사용하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방인이 놀린다. 구경꺼리가 된 것이다.
너거 여호와 믿는 이스라엘이면서 여호와 한테 멸망받나? 차라리 욕하고 죽어라
욥에게 욥의 아내가 비아냥 거리는 것과 똑같다.
바로 그 비방 때문에 이스라엘은 비록 총알받이 이지만
그 멸망의 자리 심판의 자리 저주의 자리인
원수의 성문을 만들고 얻음으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된다.
마치 삼손이 자신이 죽는 자리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리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이것이 수수께끼 사랑이다. 아무도 못 푼다는 것이다.
잉여물 또한 아무도 갈구질 못한다. 이 세상이 감당이 불감당인 총알받이 이다.
그래서 너무 너무 기뻐서 예배 마치고
당장 전화 했다.
강이아빠 실시간 방송 들었나요?
아뇨
오늘 같이 영화보고 제가 영화평을 최고의 잉여성은 총알받이 라고 했잖아요
네
오늘 수요 설교 그대로 나옵니다. 라고
꼭 들어보세요
총알받이가 된게 뭐가 기쁘다고 전화를 했는지 원
그러나 이것 보다 복 받은게 없다.
총알받이 보다 최고의 잉여성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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