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2010년 6월 23일 수요일 오전 9:15:48  김대식


(마 12:7, 개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마 12:8, 개역)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9, 개역)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마 12:10, 개역)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2:1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마 12:12, 개역)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 12:13, 개역)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 12:14, 개역)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마 12:15, 개역)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2:16, 개역)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마 12:17,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마 12:18, 개역)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 12:19, 개역)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20,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1, 개역)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2:22, 개역)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사 42:1, 개역)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사 42:2, 개역)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사 42:3, 개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사 42:4, 개역)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사 42:5, 개역)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 42:6, 개역)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 42:7, 개역)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 42:8, 개역)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 42:9, 개역)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히스기야 왕이 15년 더 살도록 생명을 연장해 준 것은
그야 말로 상한 갈대가 꺽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복이 아니다.

분명 본문은 종말의 영인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을 부으심에 있어서 주어진 말씀이다.

원래 15년 전에 죽어 마땅했음이다.
아무리 15년 생명을 연장해도 인간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15년 사이에 사람이 바뀔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시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다. 15년 동안에도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른다.

이해를 돕고자 이런 구절을 언급하고자 한다.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6, 개역)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눅 13:7, 개역)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8,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눅 13:9, 개역)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 13:10, 개역)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눅 13:11, 개역)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눅 13:12, 개역)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눅 13:13, 개역)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눅 13:14, 개역)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눅 13:15, 개역)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눅 13:16, 개역)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눅 13:17,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눅 13:18, 개역)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눅 13:19, 개역)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눅 13:20,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눅 13:21, 개역)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눅 13:22, 개역)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눅 13:23, 개역)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눅 13:24, 개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5, 개역)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 13:26, 개역)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 13:27, 개역)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눅 13:28, 개역)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눅 13:29, 개역)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눅 13:30, 개역)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눅 13:31, 개역)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 13:32, 개역)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13:33, 개역)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4,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 13:35, 개역)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망대 무너진 사건을 언급하고자 해서 구절을 찾았는데 마침 오늘 제가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이 누가복음 13장에 다 언급이 되어버렸다.

긍휼과 안식과 성령 도 오늘 주제와 다 연관이 된다.

4절에 실로암 망대가 무너졌는데 과연 갈릴리 출신의 유대 사람 몇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다가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자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했는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실로암 망대가 무녀져 8명이 죽은 것이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보다 죄가 더 많이서 죽은 것이 아니듯이

누구든지 종말때에는 누구든지 회개치 아니하면 즉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할 자임을 모르는 자는 이미 심판 받은 자 이다 라는 뜻이다.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1, 쉬운)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 피가 저희의 드릴 희생 제물과 뒤범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눅 13:2, 쉬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고난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눅 13:3, 쉬운)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
(눅 13:4, 쉬운) 『또 실로암 탑이 무너져 죽은 열여덟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눅 13:5, 쉬운)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

(눅 13:1, 현대인) 『바로 그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제사를 드리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을 죽인 이야기를 하였다.』
(눅 13:2, 현대인)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그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다고 생각하느냐?』
(눅 13:3, 현대인)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와같이 망할 것이다.』
(눅 13:4, 현대인)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다고 생각하느냐?』
(눅 13:5, 현대인)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와 같이 망할 것이다.'』

(눅 13:1, 현대어) 『[회개하지 않으면] 이 무렵 예수께서는 갈릴리 출신의 유대 사람 몇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다가 빌라도에게 학살되었다는 말을 들으셨다.』
(눅 13:2, 현대어)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서 그 같은 일을 당하였겠느냐?』
(눅 13:3, 현대어) 『아니다. 너희도 너희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눅 13:4, 현대어) 『실로암 탑이 무너졌을 때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그들이 예루살렘에 살던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들이었기 때문이냐?』
(눅 13:5, 현대어) 『아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쓰러질 것이다.'』

또 같은 의미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데도 주님께서 귀히 기르신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 풀도 오늘 귀히 귀히 부요히 부요히 입히신다 라고 하신다.

바로 이것이 오늘 주제의 키 포인트 이다.

(참고로 베드로를 왜 물 위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허락지 않고 꼭 물에 빠뜨려서 주님을 알게끔 하는가? 같은 의미이다.)

왜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도 오늘 귀히 입히시는가?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눅 12:28,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1, 개역)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 12:2, 개역)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3, 개역)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 12:4, 개역)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 12:5, 개역)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눅 12:6, 개역)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 12:7, 개역)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 12:8, 개역)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눅 12:9, 개역)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눅 12:10, 개역)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거역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눅 12:11, 개역)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눅 12:12, 개역)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눅 12:13, 개역)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 12:14, 개역)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6, 개역)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 12:17, 개역)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 12:18, 개역)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24, 개역)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5, 개역)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눅 12:26, 개역)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8,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29, 개역)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눅 12:30, 개역)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31, 개역)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2, 개역)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3, 개역)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4, 개역)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5, 개역)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눅 12:36, 개역)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눅 12:37, 개역)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눅 12:38, 개역)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39, 개역)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눅 12:40, 개역)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1, 개역)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눅 12:42,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 12:43, 개역)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4,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눅 12:45, 개역)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눅 12:46, 개역)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눅 12:47, 개역)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8, 개역)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개역)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눅 12:52, 개역)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눅 12:53, 개역)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눅 12:54, 개역)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눅 12:55, 개역)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눅 12:56, 개역)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눅 12:57, 개역)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눅 12:58, 개역)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눅 12:59, 개역)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이 외치는 소리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아궁이에 던지시는 주님의 긍휼이 옳았습니다 라는 외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주님의 긍휼을 거꾸로 해석해 왔다.
긍휼과 용서 조차도 자기를 위한 유익으로 챙겨버렸다.

그 반대이다. 철저하게 주님의 소욕이다.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내일 아궁이에 던지심이다.
곧 종말이다.

이 도저히 알수 없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종말의 영을 선물로 받으면 된다.
성령이 오면 이런 취지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 모든 성경이 이 주제와 상관되어 있다.

그래서 반대로 해석하면 된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원래 상한 갈대는 꺽여져야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는 것이다.

총알받이 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의 생각에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다.
믿음이 있어도 소용 없다. 믿음의 대가인 바리새인이 거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와야 한다. 성령이란 인간의 믿음을 배제시킨 예수님의 믿음에서 나온 예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믿음이다.

그 믿음의 주체자가 정작 상한갈대로써 꺽이지 않는 것이 복으로써 자신을 드러낸게 아니라.
상한갈대로써 꺽이심으로써 도리어 종말을 이루신다.

즉 종말 덩어리가 되는 것이 복이다.

종말을 피해 다니는 것이 복이 아니라 말이다.

안식이란 바로 종말 인간이 되는 것이다.

종말 인간이 된다는 것은
마치 사람을 지으시고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안식 곧 쉼을 마침을 완료를 선포하는 것과 같다.

종말 인간이 바로 안식 인간이다.

우리는 안식을 어떻게 해석했는고 하니 유대인과 동일하게 안식 지키기에 미쳐버린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놓고 안식일의 주인을 죽여버렸다.

잘못 건드렸다.

종말의 벌집을 건드렸으니 이제는 종말의 벌집에 당하는 길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종말 인간의 맛을 봐야 할 것이다.

종말 인간이 되어야 할 자가
안식 인간이 되어야 할 자가
도리어 안식 인간을 거부하는 안식 주위만 뱅뱅 도는 안식 지키기만 대따 잘하는 안식의 달인만 되어버렸다.

기도 인간이 되어야 할 자가 정작 기도 인간 되기를 거부하는 방식이 바로
기도 대따 잘하는 기도의 대가 기도의 달인만 되어버린 것이다.

즉 이 말은 기도든 안식이든 종말이든 사랑이든
죽음 속에서 가려 내겠다는 것이다.

죽음 속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본선 본체 원천이 드러나지 않는다.

기도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사랑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안식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금식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헌신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충성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믿음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행함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종말에 바닥을 쳐 보질 않아서

여전히 쳐다보는 것은 자기자신인 것이다.

다윗을 바닥을 치다보니 다른 마음을 아예 쳐다보게 되는 성령이 정직한 마음이 새 영이 덮쳐버렸다. 바닥을 치치 않는데 우에 덮치겠는가? 두 주인이 있을 수 없다.

마치 유대인에게서의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 두 주인의 소욕의 싸움처럼 보인다.

자신의 것이 바닥을 쳤다면
차라리 나 보다 더 나은 기도를 쳐다 볼 것이다.
차라리 나 보다 더 나은 사랑를 쳐다 볼 것이다.
차라리 나 보다 더 나은 안식를 쳐다 볼 것이다.
차라리 나 보다 더 나은 믿음를 쳐다 볼 것이다.
차라리 나 보다 더 나은 행함를 쳐다 볼 것이다.
차라리 나 보다 더 나은 종말를 쳐다 볼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다. 아무거나 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짓을 하든지 그 어떤 짓인 나의 짖 과 예수님이 하신 것과의 비교와 대조 이다.

일부러 비교 하라고 어떤 것도 할 수 밖에 없도록 육에서 나온 배설물을 배설 할 수 밖에 없도록 몸을 치신다.

그 배설물과 비교 해 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 배설물이 아니다 라는 것은 예수님과의 비교가 되지 않아서이다.
차라리 예수님을 없애버리면 배설물일 리가 없게 된다. 간단하다. 예수만 없애버리면 될 일을 말라고 그렇게 귀하게 모으고 모은 쌓고 쌓은 것을 무로 돌리겠는가?

왜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가?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왜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 연장하는가?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성령이 오면 비교하게 되고
성령이 오지 아니하면 비교 조차 할 수도 없다.
자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도 오늘까지는 귀히 입히시는가?

긍휼과 자비 때문이다.

주님이 원하는 제사는 긍휼과 자비이다고 했다.

이것을 또 성화론자들은 거봐라 긍휼과 자비를 실천하자 라고 또 이렇게 나온다.
성령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긍휼과 자비가 심판이다는 뜻이다.

마땅히 죽어 마땅하고
마땅히 지옥 가도 할 말 없는 죄인이며
마땅히 저주 받아 마땅함을 아는 자 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들은 거꾸로 해석을 한다.

종말 인간이 되지 않고
종말에 대한 정보 지식만 흡수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고 자기소유로 삼는다.

아니 인간이 소유가 될 말씀은 애초부터 없다.

자기 것으로 아무리 스폰지처럼 빨아서 소유해도 소용없다.
온 몸에 말씀을 휘감아서 달달달 외워도

성령이 오지 않으면 도리어 성령과 충돌하게 된다. 훼방자가 되는 것이다.

즉 성령 훼방이란 자신이 늘 성령 훼방자 임을 모르는 자가 성령 훼방자 이고
자신이 늘 상 성령 훼방자 임을 고백하는 자가 성령으로 인한 고백자 인 성령인간 종말인간이다.

종말의 영이 오면 모든 것이 가치전도 뒤 바뀐 시선으로 보게 된다.

무화과 나무의 저주 속에서 우리는 그 저주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이 비유를 알게 된다.
그 무화과나무 저주 밖에서는 예수님의 비유를 알 길이 없다.

마땅히 저주 받아 마땅함을 아는 자에게만 곧 성령 곧 종말의 영이 임한 자에게만 이 비유가 이해가 된다.

이 무화과 나무 저주 속에서 어떤 누구도 예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시원한 음료를 마실수 있게 함을 주지 못함을 말이다.

그래서 고맙게도 주님께서 나무가 되어 주신다. 그리고 접붙인다. 죽은 나무에서 생명의 나무로 말이다.

무화과나무의 저주 속에 있지도 않는데 어찌 접붙임의 교체작업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교체작업 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주 속으로 인위적으로 와도 소용없다.

애굽왕 바로를 강퍅케 해서 애굽군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여호와께서
어찌 그것을 모르시겠는가?

그렇다고 홍해 라는 숨이 단절된 물 속 죽음 속에 인위적으로 들어가본들 소용없다.
광야에서 다 걸러내기 때문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했다.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요 15:19, 개역)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의 미움으로부터 견뎌낼 재간이 없다.
더더욱 하나님으로부터의 저주를 이길수 있는 자도 없다.

(마 6:14, 개역)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8:35, 개역)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눅 11:13, 개역)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천부께서 심지 않는 것은 다 뽑힌다. 성령이 선물로 주어지지 않는자는 도저히 그 저주를 이길 자는 없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미리 종말을 체험한다.

미리 앞당겨 심판을 체험한다.

그 심판 속에서
그 꺼져 가는 심지 속에서

간구한다.

마땅히 저주 받을 자 임을 알기에
마땅히 지옥 자도 마땅함을 알 기에

그저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고

긍휼과 자비라는 내 속에 없는 내가 도저히 원하지도 않았던
나 라는 나의 것이 바닥을 쳤기에 더 이상 나 에게 기대를 걸수가 없어서
내가 원치 않았던 마음을 달라고

그것이 바로 종말의 영인 성령이요 새 영이요 새 마음이요 정직한 영인
예수님의 마음이다.

왜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을 오늘까지 귀히 입히실까?

새 영 새 마음 정직한 영 앞에서 더러움을 정직한 영 때문에 그 차이를 알게 되어서
귀히 입히심을 아는 것이다.

(시 51: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개역)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개역)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개역)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개역)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7, 개역)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개역)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개역)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시 51:10, 개역)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개역)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개역)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 개역)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 개역)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51:15, 개역)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 개역)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개역)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개역)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 개역)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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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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